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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충북학습연구년
 
 
 
카페 게시글
청주교대 스크랩 [제주 여행] 4월 17일 이야기
박진환(충남) 추천 0 조회 107 13.04.25 13:3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어제 오늘 편안하게 잠을 잤던 탓인지 아들녀석의 발걸음이 초반에는 가벼웠다. 그러다 조금씩 절룩거리기 시작하더니 함께 걷는 아버지 마음을 점점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어떡하랴. 목표는 정해졌고 길은 가야하니 말이다. 숙소에서 나와 아왜나무가 있는 월평마을 8코스 출발지점에서 스탬프 찍고 출발!

 

 

 

한동안 도로를 걷다 샛길로 빠져들어 얼마 가지 않아 약천사라는 절이 나왔다. 절이 만들어진지는 50여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는 데 그 규모가 엄청났다. 아시아 최대 대웅전을 가진 절이라나. 정말 대웅전의 크기가 3층 건물로 멀리서 보면 중국의 어느 거대한 사찰을 보는 듯한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너무 커서일까? 무게감에 짓눌려 오래 있지 못하고 길을 재촉해 빠져 나가기에 바빴다. 거대한 교회, 거대한 사찰. 이 모두가 성인들이 바랐던 일일까?

 

 

 

 

약천사를 빠져나와 대포포구로 향했다. 이름 그대로 큰 포구라고 하는데, 대포포구에는 큰 횟집들이 많고 관광요트투어도 마련돼 있는 것 같았다. 대포포구를 돌아 나와 마을길로 귤밭을 지나면 중문단지 축구장이 나온다. 바다를 바라보며 축구를 하는 곳이어서 동호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곳이겠다 싶었다. 그렇게 축구장을 뒤로 하고 나오니 올레리본이 해변가로 길을 안내한다. 거센 파도를 묵묵히 감당하고 있는 검은 바위들이 일순간 나타나는데, 이건 그야말로 외계에 온 듯한 기분이 드는 풍경이었다.

 

 

 

 

 

 

 

 

 

 

1코스에서 7코스까지 와 봤지만, 해변에 있는 검은 바위들 중 가장 기괴한 모습이 아닐까 싶어 연신 폰카메라를 눌러댔다. 약 1km 가까이 이어지는 검은 바위 행렬의 신비함은 주상절리를 보면서 나와 아들의 감정을 극에 달하게 만들었다. 대포주상절리. 일명 지삿개 바위라 일컫는 주상절리는 용암이 흐르다가 바다와 만나면서 육각기둥 모양으로 굳어 생긴 지형인데, 약 1100도의 두꺼운 용암이 화구에서 흘러나와 급격하게 식으면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 거대한 돌기둥이 병풍처럼 펼쳐 서 있는 약 30~40m의 1km 폭의 규모는 한국에서는 최대라고 한다.

 

 

 

 

그렇게 8코스의 장관을 감상하며 길을 걷다보니 중문관광로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베릿내오름으로 가려는 길에서 올레 리본을 찾지 못해 헤매기 시작했던 것. 주변에 다니는 사람도 없어 묻지도 못해 일단 안내 책자를 찾아 가까운 곳이 어딜지를 살폈다. 멀리 베릿내 오름이 보이건만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천제연 계곡과 폭포. 우리는 베릿네 오름을 포기하고 천제연 폭포를 보기 위해 표를 구입해 들어갔다. 7선녀를 형상화한 거대한 다리를 지날 때는 순간 다리가 후들거리기도 했는데,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지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찾은 천제연 폭포와 천제연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천제연 제2폭포는 정말 나뭇꾼과 선녀를 극화해도 될만한 아름다운 장소였고 그위로 더 올라가 찾은 천제연은 수량이 적어 아쉽기는 했지만 표현할 수 없는 물색으로 보는 이로하여금 감탄을 쏟아내게 만들었다. 한동안 천제연에 머물다 다시 올라간 곳은 후문쪽. 후문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건 작은 식당. 그곳에서 아들은 제주의 독특한 음식이라는 고기국수를 시켰고 나는 해녀들의 음식이라는 몸국을 시켰다. 고기국수에는 돼지고기가 몸국에는 닭고기(나중에 제주현지인의 말을 들어보니 닭이 아닌 돼지일거라 했다. 빼째 오랫동안 끓이다 보니 그렇게 보일 수가 있다나. 하여간 몸국도 잘 하는데 가야 한단다.)가 들어간 육수의 국수와 국밥이었는데, 아들과 나의 평으로는 그냥 먹을 만한 음식이었다. 김치를 많이 곁들여 먹어야 할 것 같다는 공통 의견.

 

 

 

 

밥을 먹으면서 올레리본을 찾을 수 있는 가까운 곳을 검색해 보았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중문관광안내소가 있다. 우리는 8코스를 그곳에서 새로 시작해야 했다. 불행하게도 중문색달해변은 생략해야만 했다. 올레코스를 따라 걷다보면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책에 나온 코스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도 있고 할 수 없을 때도 있다. 이제는 이런 흐름에 익숙해진다. 똑같은 길을 완주한다는 생각보다는 변수를 감안해 움직이는 지혜와 너그러움이 올레길은 걷는 이들에게는 꼭 필요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큰 도로를 따라 한동안 재미없게 길을 걸었다. 그러다 보니 지나가는 택시 한 대가 서서 우리를 부른다. 어디까지 가냐고. 8코스 걸어봐야 딱딱한 아스팔트라며 호객행위를 한다. 무시하고 걸었다. 우리 부자가 어떻게 온 제주고 어떻게 다닌 올레길인데, 아스팔트가 많은 길이라고 택시를 타서 편하게 움직이겠는가. 올게꾼들을 무시하는 그 택시 운전사의 호객행위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엇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 제주까지 비싼 비용을 들여 걷는지를 아직도 그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열심히 걸어가자 예래생태공원쪽으로 반가운 흙길이 보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꽃과 나무로 그야말로 생태공원처럼 꾸며놓은 곳을 발견했다. 걷다보니 공원의 규모가 참으로 엄청나다. 비수기여서 그런지 사람이 우리 아들과 나밖에 없다. 이 큰 공원에 사람은 우리 둘. 각종 동물과 식물들이 아기자기한 자태를 뽐내며 우리를 반긴다. 흐린 날씨가 어느덧 거두어지고 따가운 햇살이 내비쳐 걷는 걸음을 더디게도 했지만 제주 안에 또다른 인공공원을 조성한 이유가 무얼지 궁금해 하며 걸었다. 이 곳 주변에 있는 마을인 예래마을 자체가 생태마을이라고는 하던데, 굳이 이렇게 공원까지 조성할 필요가 있었나 싶었다.

 

 

 

 

 

 

 

 

 

 

 

그렇게 거대한 생태공원을 빠져 나와 해안길을 걷자니 파도소리가 자꾸 내 눈을 바다로 부른다. 천천히 걷는 걸음 옆으로 거대한 바다와 파도소리.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앞으로 전국 어디를 다녀도 제주만한 곳을 또 볼 수 있을까 싶다. 제주 때문에 자연경관에 대한 눈높이만 자꾸 높아졌다. 가을에 곶자왈까지 섭렵하면 이 땅의 풍경은 내게 제주도와 늘 비교당할 것이다. 그렇게 해안가를 지나가다 보니 아주 예쁜 포구인 하예포구가 나타난다. 그 뒤로 이어진 대평포구 그야말로 호젓하고 아늑한 마을의 분위기때문에 이곳을 찾는 이들이 많아진다는 게 맞는 말인 것 같았다.

 

대평포구의 옛이름은 난드르. 바닷가 한켠에 숨은 듯 자리하고 있는데, 북쪽으로는 군산과 안덕계곡, 서쪽으로는 예래동월랑봉과 박수기정 등이 감싸듯 가리로 있어 4.3의 참상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송항 또는 송포라고 불렸는데, 당시 일본인들이 정치망 어선 수십척과 어류 저장선인 무동력 배를 끌고와서 이 포구를 거점으로 9월초순부터 겨우내 어류를 남획해 일본으로 가져간 아픈 역사를 지닌 곳이란다. 아름다운 풍경 아래 이렇게 아픈 역사를 간족한 대평포구가 더 놀라웠던 것은 주상절리 못지 않게 장관을 이루고 있는 박수기정때문이었다. 9코스의 오름 코스이기도 한 그야말로 거대한 장관의 절벽 병품을 나 같은 표현력이 부족한 이들에게는 설명조차 불가능하다. 그저 폰카메라로 담아내기에 급급할 뿐.

 

 

 

 

 

 

이렇게 8코스를 마무리 했다. 스탬프를 찍고 아들과 나는 서둘러 예약해 둔 벗 게스트 하우스로 힘겨운 다리를 옮겼다. 길을 가다 만난 '거닐다'카페. 사실 이곳에서 파스타와 피자를 먹으려 오늘 아침 일찍부터 전화를 해 예약을 하려 했건만 실패를 했다. 22일까지 모든 예약이 돼 있고 테이크 아웃도 안 된다는 것. 사실 나는 이곳을 몰랐다. 2코스 둥지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투숙객들이 전해준 곳이었다. 지난 3월 인간극장에도 나왔다는 젊은 부부세프. 답답한 서울생활을 정리해 내려와 자리를 잡은 그들의 일상이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는데, 방송 이후 급격히 늘어나는 방문객과 예약자들 때문에 홍역을 치르고 있다고 한다.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그들의 말에 아침 일찍 예약하면 되겠지 해던 내 생각은 여지없이 깨져 버렸다. 오늘이 수요일인데, 다음주 월요일까지 예약이 찼다니.

 

 

 

 

 

 

 

 

 

 

아들과 나는 대평리에서 맛나게 먹을 피자와 파스타를 꿈꾸며 어제 잠을 청했더랬는데.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내가 아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 건 모레 금요일 어제 만난 김경남 선생님이 한 턱 쏜다 했으니 제주시에 가서 파스타와 피자를 실컷 먹자는 것. 아들은 마지 못해 그러고마 했는데, 정말 아쉬웠다. 바로 그 장소가 우리가 묵을 '벗 게스트하우스' 옆이라니..... 아무튼 다리가 불편한 아들과 함께 생각보다 일찍 숙소로 들어왔다. 오늘은 조금 일찍 하루 일과를 정리한다. 저녁 먹고 써야할 보고서 하나와 계획서 하나가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모두 마무리 짓고 내일 이 여행에서 가장 힘들 것 같은 9코스와 10코스 완주를 위한 준비를 하려한다. 하루에 두 코스를 뛰는 강행군에서 부디 우리 아들이 버텨내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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