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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초록〉
한국시의 새 방향
신경림(시인)
안녕하십니까. ‘강연’이라는 형식적인 자리이긴 하지만 여러분을 만나 함께 얘기를 나누게 되어 반갑습니다.
오늘 얘기해야 할 제목은 「한국시의 새 방향」입니다. 그러나 제가 이 자리에서 우리 시의 새 방향을 정확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흔히들 오늘의 우리 시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하는데, 정말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타계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제 생각을 여러분과 함께 공부하는 기분으로 나누어 볼까 합니다.
최근에 들어 ‘시의 위기다’, ‘시의 시대는 갔다’, ‘시는 이제 더 이상 힘이 없다’ 라는 말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7·80년대에는 시의 사회적 영향력이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시의 힘이 상당히 위축된 것은 사실입니다. 요즘에는 시를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나 다들 ‘시의 위기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말 시가 위기인가? 그렇다면 그 위기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 시의 위기는 우리 사회가 정보화 사회로 넘어가면서 급속하게 진척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의 우리 사회를 가리켜 정보화 사회라고 하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의 이 정보화 사회는 우리의 삶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 왔습니다. 요즘에는 시골에도 전화, TV, 컴퓨터 없는 집이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본격적인 정보화 사회로 넘어간 것은 1987년이 아닌가 싶습니다. 올림픽이 있기 바로 전 해인 1987년을 기점으로 정보화 사회가 본격화되었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얘기입니다.
이제는 청와대 안의 일도 단 몇 초면 모든 국민들에게 전달이 됩니다. 이런 사회에서 시가 설 자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정보사회에서는 빠른 문화가 기득권을 장악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시라는 것은 느린 예술에 속합니다. 그렇다면 이 빠른 문화 속에서 느린 예술이 과연 버텨 나갈 수 있으냐, 하는 것이 문제로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정보사회에서의 예술의 총화는, 즉 문화의 중심은 어차피 영상문화가 될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영상문화, 즉 영화나 TV, 비디오 등만을 보고 그런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시나 소설로부터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 스스로도 그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어느 정도 사실입니다. 최근에 뉴스를 보니까 전에 뉴스를 진행하던 앵커를 여당에서 데려다 지역구를 맡겼더군요. 이런 일은 우리 나라에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에서도 텔렌트나 코메디언이 시장도 되고 국회의원도 되고 그럽니다. 사실 이런 현상은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영상매체가 세계를 지배하고, 영상예술이 예술의 총화가 되고 있는 시대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학은 이제 뭐가 되느냐, 시는 완전히 없어지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상문화 즉, 빠른 문화에 비해 시나 소설이 힘을 잃어버린 것은 틀림이 없고, 비교가 안될 정도로 영향력이 사라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영상문화 시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것이 많습니다. 과학의 발달에 의해 새로운 매체가 개발될 때마다 그 전의 예술은 이제 끝났다고 말해왔던 것을 여러분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사진이 처음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림이라는 것, 미술이라는 것은 사라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들 이제는 인물화는 그릴 필요가 없다고 했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참에 영화가 등장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제 사진은 소멸될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림은 그림 대로 존재하며 사람들에게 사진으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더 깊은 것을 예술로 형상화시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사진도 마찬가집니다. 영화로서는 할 수 없는 것, 다시 말해 어느 한 순간을 포착해냄으로써 영화가 하지 못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사진입니다.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상 예술로서는 절대로 보여줄 수 없는 것이 있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이미지가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심리, 즉 사람의 마음 속 깊은 곳, 생각의 깊은 곳, 이런 것까지는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사진 등 영상예술입니다.
그렇게 볼 때 ‘시는 절단 났다’, ‘시는 망했다’ 하는 말들의 경우 근거는 있지만 반드시 옳은 얘기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시의 영향력이 발달하는 영상예술의 영향력과 똑같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늘날과 같은 정보화 사회에서도 시는 일정하게 독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시가 영상예술과 대항해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시가 영상예술과 같이 빠른 문화하고 어떻게 싸워 이길 수 있겠습니까. 시와 영상 예술은 기본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역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미래학자로 잘 알려져 있는 앨빈 토플러는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는 자본주의의 빠른 문화, 빠른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결국 빠른 문화가 이기는 것이, 빠른 예술이 더 빛을 보는 것이 오늘의 세상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느린 문화, 느린 예술이 완전히 망하거나 그 존재 의미가 상실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사실을 우리는 앞에서 말한 그림과 사진의 예를 통해서도 익히 확인한 바 있습니다.
‘시의 위기’와 관련하여 두 번째로 따져 보아야 할 것은 ‘상업주의’일 것입니다.
오늘 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여기 광주에까지 오는 도중의 일입니다. 우연히 버스 안에서 어느 대학생이 자기가 좋아 하는 시를 노트에 베껴 놓은 것을 엿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아는 시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베스트셀러로 팔리는 시집들에서 옮겨 놓은 것이겠지요. 왜 있지 않습니까. 통속연애시들 말입니다.
요즘 나오는 베스트셀러 중에는 차라리 안 읽는 것이 좋을 책들이 더 많아요. 이런 판에 어떻게 제대로 된 시가 어떻게 견디겠습니까.
소설가 이문열씨 같은 사람은 한 달에 천만원에서 천오백만원까지 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같은 사람은 시 한편 쓰면 특별한 경우에야 10만원 정도 받습니다.
이런 경향은 현실사회주의 국가가 몰락한 이후 더 심해 졌습니다. 지금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배금주의 아닙니까. 미국의 그릇된 풍조 아닙니까. 모든 것을 돈으로만 측정하고, 능률로만 생각하고, 크게만 만들고, 많이만 만들고, 많이만 쓰고‧‧‧‧‧‧. 이런 판에 시가 살아남을 길이 있겠습니까.
어떻게 보면 영상매체가 조장하는 위기보다도 상업주의가 조장하는 위기가 더 무섭습니다. 저도 가끔은 돈도 안되는 시를 써서 무엇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하더라도 언제까지 이런 경향이 계속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가 주기가 있습니다. 어느 일정한 주기를 넘기면 다음 번에는 새로운 가치를 찾아야 겠다는 생각이 당연히 생겨 나게 마련입니다. 세상을 바로잡아 나가려는 사상 같은 것 말입니다.
돈만 많이 벌어 잘 먹고 잘 살자는 잘못된 사상이 언제까지 세상을 지배하지는 않습니다. 역사를 더듬어 보면 쉅게 알 수 있는데, 19세기말에도 그런 사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산업이 발달하면서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돈이다, 돈만 벌면 다다, 돈이 되지 않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하는 사상은 결국 패배했습니다.
세상을 그런 생각으로만 살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삶을 좀더 좋게 만들고 우리의 삶의 질을 좀더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다시 보편화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이러한 바람이 완전히 꺼지지 않는 한 아무리 시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시가 멸망하거나 몰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의 사회적 분위기로 보아서는 이인화, 장정일 등의 소설만이 언제까지 최고의 소설이 될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얼마쯤 가면 다시 삶을 진실되게 살아가고, 진실되게 그리려고 하는 경향이 분명히 되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노춘성이라는 사람 아십니까. 몰라요. 그러면 방인근이라는 사람은 아십니까. 모른다고요. 김내성라는 사람은 알겠지지요. <청춘극장>이라는 유명한 소설를 쓴 사람인데‧‧‧‧‧‧.
춘성 노자영이라는 사람은 시도 썼지만 1930년대에 연애 편지 비슷한 에세이집을 많이 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분입니다. 그러나 문학사에 찾아보면 그 사람에 대한 얘기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제는 그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조차 없습니다.
방인근이라는 사람은 소설을 한 100권쯤 썼습니다. 연애소설, 탐정소설, 추리소설 등 닥치는 대로 썼지요. <청춘야화>니 하는 것이 방인근의 소설인데 모두 거지같은 작품입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 때입니다. 당시에는 그 사람 소설을 안 읽으면 대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그 사람의 소설을 읽어야 비로소 대화가 통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방인근을 읽었던 기억조차 잘 나지 않습니다.
상업주의 문학이라는 것이 다 그런 것입니다. 상업주의 문학이라는 것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일 뿐이지요.
이런 시기가 지나가면 다시 참되게 세상을 살아가려는 경향, 참되게 문학을 하려는 경향이 되살아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의 역사가 삼천년씩, 오천년씩 어떻게 이처럼 건전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었겠습니까. 대체로 인류의 역사는 건전한 방향으로,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발전해 가게 마련입니다.
그렇습니다. 물론 시의 몰락, 시의 퇴락은 세계적인 추세다, 당장 미국, 일본, 프랑스만을 보더라도 시가 잘 안 읽히고 있지 않느냐, 하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는 사실입니다.
재론할 할 필요도 없이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시를 가장 많이 읽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 나라와 같은 이런 시의 전성시대가 오래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선진 외국의 경우는 우리 나라와는 그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많이 다릅니다. 시에 대한 역사적, 문화적 전통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본에서는 시가 완전히 사라졌는가. 프랑스에서는 전혀 시가 읽히지 않는가. 미국에서도 그러한가.
물론 이들 나라에서 시가 아주 안 읽혀지는 것은 아닙니다. 자랑일지는 모르지만 여기 조태일 시인과 저의 시가 70년대 말이던가, 일본에서 번역이 되어 나왔습니다. 일본에서 제법 반응이 좋았다고 합니다. 일본의 독자들이 시라는 것도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구나, 하는 얘기를 많이 했다고 일본 평론가 그러더군요.
최근 일본이나 미국이나 프랑스에서는 바람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시가 다시 읽히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나온 유종호씨의 책 <시란 무엇인가>에는 이른바 선진국에서 시가 되살아나고 있는 까닭을 우리가 주의 깊게 봐야 한다는 얘기가 실려 있습니다. 프랑스 등 유럽의 선진국뿐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시가 살아나고 있습니다.
프랑스 갈리마르라느 출판사는 몇 해전까지 시집을 한 권도 안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금년부터는 시집을 내기로 하여 이미 몇 권이 나왔다고 합니다.
정보화 시대가 시의 위기를 가져 왔지만 거꾸로 정보화 시대가 시의 부활을 가져 오고 있는 것입니다. 앨빈 토플러라는 사람은 정보화 시대의 ‘빠른 문화’의 특징을 공개적, 보편적, 대중적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정보화 시대가 발전해 가면서 사람들은 보편적, 대중적, 공개적인 빠른 예술에만 만족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아니라 자기만이 접하고 자기만이 느끼고 싶어 하는 그런 경향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의 시가 위기에 처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소멸하거나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며 곧 부활될 길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시의 시대’가 갔다고 하지만 프랑스 사람 붙잡고 물어 보면 자기네 시 20, 30편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외국 사람들은 웬만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면 자기네 시 몇 십편은 다 외웁니다.
우리는 우리의 시를 자세히 읽지 않고 거품처럼 읽어 버리고 있습니다. 우리도 시를 좀더 자세히 읽어야 할 것입니다. 시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시를 좀더 애정을 가지고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곳에 오는 길에 고속버스 터미널에 게시되어 있는 시를 몇편 보았습니다. 얼른 보아 그런지 별로 감동적인 작품은 없었습니다. 광주가 예향이기 때문이겠지만 시가 있다는 것 자체는 참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다. 서울에 가면 지하철에도 시가 참 많습니다. 선정한 사람들의 안목에 문제가 있어 고르다 고르다 제일 거지같은 것만 골라 걸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오늘의 시의 경우 위기에 처해 있기는 하되 이 위기는 반드시 극복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정보사회 또는 영상문화의 보편성, 경제성, 이런 것에 염증을 가진 사람들이 언젠가는 자기만의 성취, 자기만이 즐길 수 있는 예술을 찾아 시나 소설로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둘째, 상업주의 시, 황금만능주의 시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만 일정한 주기가 넘어가면 반드시 다시 진실된 시를 찾으려는 경향이 생길 것입니다.
셋째,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황금만능주의 시, 상업주의 시의 횡행은 상호 관계가 있습니다. 물론 사회주의 운동이 금방 부활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려는 노력은 계속될 것이고, 그런 한 진실된 시와 진실된 소설에 대한 욕구는 다시 생겨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우리 시에 대해 많은 애정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시를 좀더 많이, 좀더 잘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확실한 것은 읽고 나서 ‘재미 있다’ 하고 그냥 덮어버리는 시는 좋은 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읽고 또 읽고 싶은 시가 좋은 시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런 노력을 할 때 시의 위기는 극복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한국 사람들의 전통적인 특성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한국인들은 아주 옛날부터 시를 좋아했고 시를 중시했습니다. 옛날에는 글을 조금만 하면 시를 읽고, 시를 짓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시라는 것은 억지로 짓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열심히 공부하고 세상을 진실되게 살아가면 자연히 씌여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은 어느 정도 학문을 하게 되면 시를 읽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또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은 기본적으로 본래 시와 궁합이 잘 맞습니다. 이 또한 우리 나라의 경우 시의 위기라는 진단이 반드시 옳은 진단만은 아니라는 근거가 됩니다.
시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 가운데 우리 시를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금도 시가 사는 것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사랑하고 연애하는 것만 노래하는 것이 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사실 시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습니다. 국문학사에서 배워 알겠지만 우리 나라 근대시의 아버지는 정지용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 김소월이나 한용운 같은 천재 시인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김소월이나 한용운, 이런 사람들의 경우 시를 쓴다는 의식을 가지고 썼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김소월이나 한용운의 경우는 시인이라는 투철한 의식이 없었습니다. 우리 말에 대한 자각, 우리 말에 대한 의무감이 없었던 것이지요. 근대시라는 것이 우리 말에 대한 자각, 우리 말에 대한 투철한 의식, 그런 것으로부터 출발했다면 그 선각자는 바로 정지용입니다. 나는 전문적인 시인이다, 나는 시 쓰는 것 외에는 하는 것이 어떤 것도 없다, 하는 의식의 면에서 말입니다.
또한 1920후반부터 1930년대초까지 가장 시를 많이 쓴 사람이 정지용이기도 했습니다. 정지용의 뒤를 이어 우리 시단을 대표한 사람이 누구였는가 하면 우선 백석, 이용악, 오장환,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시인으로는 임화, 권환, 박아지, 박세영 등이 있습니다. 그 다음이 서정주, 유치환 이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순수시를 썼습니다. 시를 통해 역사적 현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원한 가치, 어떤 ‘영원성’이라는 것을 추구했습니다.
일제 강점이 끝나고 마침내 해방이 되었습니다. 해방이 되자 임화라든가 백석, 오장환, 이용악 등은 이제는 시가 달라져야 한다, 시도 인민을 위해 봉사해야 하고, 인민의 정서, 인민의 사상을 맑게 그려내야 하며,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 아래 나라를 바로 세우는 데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해방기의 역사가 어떻게 진행되었습니까. 친일파가 정권을 잡으면서 그런 양심적인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로 몰렸습니다. 그리고 정지용, 임화, 백석, 이런 시인들은 시를 발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시인들이 월북을 하거나 납북을 당하게 되고, 또 일부는 남쪽에서 구속이 되기도 했습니다. 여하튼 6‧25 전쟁을 치루고 나자 우리 시단에는 서정주, 유치환,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 등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의 시에는 우리의 현실, 우리의 생활, 우리의 땀냄새가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이런 시만 남아 교과서의 지면을 차지하고 우리의 의식 속에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오늘의 우리 시가 이처럼 이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의 우리 시는 불구가 된 것입니다.
박남수라는 시인이 있습니다. 6·25가 나자 북한에서 남한으로, 평양에서 서울로 왔습니다. 북한에서는 기라성같은 시인들 틈에 끼여 신인티도 못 벗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남한에 와보니까 자기와 함께 문단에 등단했던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 등이 모두 대가가 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당시 남쪽은 시에 관한한 불모의 땅이었습니다.
조지훈 시인이라고 여러분도 다 잘 알지 않습니까. 그 사람은 29살에 예술원 회원이 되었습니다. 당시 문단의 상태가 어느 정도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의 예술원 회원은 모두 70살이 넘은 사람들입니다. 제일 젊은 회원이 이호철이라는 소설가인데 지금 그 분이 64세입니다. 그런데 조지훈 시인은 29살에 예술원 회원이 되었습니다.
물론 순수시가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순수시도 시의 한 부분으로서 좋은 면이 많습니다. 사실 시사에서도 여러모로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경향의 시인은 다 쫓아내고 자기들끼리만 안방을 차지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새삼스런 이야기지만 그렇게 되면 당연히 우리 시가 발전할 수 없게 됩니다. 적어도 60년대 중반까지 이런 시가 우리 시단에서 판을 쳤습니다.
6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김수영‧신동엽 등의 시인이 나타나게 됩니다. 김수영 시인은 당시 지식인의 비판적인 목소리를 시에 담아 극적으로 형상화한 시인이고, 신동엽 시인은 당시의 민중의식‧역사의식 등을 시 속에 담아낸 시인입니다. 물론 그때 이런 시인들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우리 전통시를 다시 이은 사람들입니다. 그 뒤를 이은 것이 <우리들의 양식>의 이성부, <국토>의 조태일, <오적>의 김지하 등이고, 또 그 뒤를 이은 것이 80년대의 민중시인, 노동시인 들입니다.
다시 본래의 문제로 돌아와서 시의 위기와 왜 이런 것들이 관련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직도 시라는 것을 영원한 것, 신비한 것만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잖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오늘의 시는 정말 위기입니다. 그러나 크게 보면 우리 시는 이미 회복단계에 들어서 있고, 또 아직은 크게 번창할 필요성을 갖고 있는 것이 우리 시입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영원’이라는 것에 대해 궁금하게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겁니다. 사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눈 앞의 현실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영원의 문제, 신의 문제, 즉 보이지 않는 세계의 문제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오늘의 구체적인 삶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오늘의 구체적인 삶과 연결되지 않았다면 하나도 중요할 것이 없습니다.
오래 전의 일입니다만 김동리 선생과 대담할 자리가 있었습니다. 내가 시라는 것은, 문학이라는 것은 오늘의 현실을 반영하고 형상화해햐 한다고 했더니 김동일 선생이 화를 버럭 내며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문학은 항상 ‘영원성’이나 ‘신’을 잡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어디 문학이야, 잡문학이지. 도스트예프스키의 <죄와 벌>도 연애나 신을 다루고 있지 어디 현실 문제를 다루고 있나.”
그래서 내가 시침미를 딱 떼고 다시 물었습니다. “선생님! 도스트예프스키 전집 중에서 <죄와 벌>만 읽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안 읽으신 것 아니십니까?” 이렇게 물은 까닭은 도스트예프스키의 <악령>이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당시의 러시아 현실을 다룬 것이지 그와 동떨어진 얘기를 다룬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잘 알겠지만 도스트예프스키는 당시 러시아의 현실에 가장 충실했던 작가입니다.
이런 얘기를 왜 강조하느냐 하면 사실 영원이라는 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원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이라는 하루하루가 차곡차곡 쌓여 이루어지는 것이 영원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영원이라는 것은 본래 오늘의 현실을 진실된 자세로 추구할 때 신의 존재가 무엇이고 인간의 존재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 더불어 우리에게 저절로 터득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의 문제와 아무 관계가 없는 소리를 하는 것은 문학의 좋은 길이 아니라는 것을 ‘시의 위기’라는 문제의식과 더불어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시의 위기를 재촉하는 것 중에는 우리 시에 대한 잘못된 재단도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가령 80년대 젊은 비평가들이 쓴 평론을 보면 노동문제나 통일문제를 쓰지 않으면 시가 아닌 것처럼 주장하는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들 문제를 담지 않으면 시가 아니라는 생각이 시인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번지게 되었습니다. 너도 나도 노동문제, 통일문제를 시에 담게 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당연히 시의 품위를 떨어뜨리지 않을 수 없었고 시의 재미를 반감시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강조하지만 어떤 획일된 재단으로는 좋은 시가 씌어지지 않습니다. 시의 대상이 현실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에 대한 접근 방법은 각기 구체적이고 각기 다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현실에 대한 나름대로의 개성이 요구된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시의 위기라고 하는데 그런 면이 없지는 않지만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는 것이 저의 평소의 생각입니다. 인간이 즐거움과 깨달음을 찾는 방법과 길이 다른 만큼 시를 좋아하고 시로부터 삶의 기쁨과 지혜를 얻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많을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시만큼 오래되고 전통 있는 예술 형식도 없지 않습니까.
두서 없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벌써 예정된 시간이 조금 지난 것 같습니다. 이런 정도에서 오늘의 강연을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