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인물
(7) 제레미 테일러(Jeremy Taylor 1613-1667)
- 왕정의 옹호자
제레미 테일러는 키도 크고 얼굴도 잘 생긴데다 똑똑하고 말과 글이 빼어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성격도 너그럽고 가족애 넘치는 가정에 하느님과 사랑에 빠진 사람이니 누구나 좋아할 만한 인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역시도 개인사의 비극을 많이 겪었고 당대 정치 종교적 격변의 소용돌이를 피해가지는 못했습니다.
생전에 수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았던 인물도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슬픔 속에 생을 마쳐야 했던 인물이 테일러입니다.
런던 성 바울로 대성당에 강연을 하기로 한 사람이 갑자기 못 오게 되자 갓 서품 받은 젊은 테일러가 대타를 하게 된 것이 세간의 주목을 끌게 된 계기였다고 합니다.
젊은 사람이 대단히 설교를 잘하더라는 평판을 듣고 당시 켄터베리 대주교인 윌리엄 러드(William Laud)는 늘 제대로 된 성직자를 길러내고 싶어 했던 차에 테일러를 옥스퍼드에서 더 공부하도록 주선해 줍니다.
좀 복음주의적 분위기가 강했던 캠브리지보다는 고교회풍의 옥스퍼드를 대주교가 더 선호했던 탓도 있다고 하지요.
여하튼 옥스퍼드에서 공부를 마친 테일러는 런던 근교의 교회에 부임하는 한편으로 왕 찰스 1세의 채플린으로 임명되기도 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의 미래는 보장된 듯이 보였습니다.
당시 찰스 1세는 11년 동안이나 의회를 열지 않고 억압적인 정책을 펼쳤던 탓에 청교도들은 극도로 불만에 싸여 있었습니다.
고교회풍의 윌리엄 러드 대주교 역시 청교도들의 증오대상이었지요.
그래서 이들은 영국은 왕정도 필요 없고 주교제도 필요 없다고 요구했습니다.
내전이 일어났고 청교도 중심의 의회는 러드 대주교를 1641년 런던탑에 가뒀다가 1645년 처형합니다. 이어 1649년에는 왕마저도 처형당합니다.
주교제와 기도서는 폐지되고 청교도 중에도 호전적인 집단이 장악한 의회가 영국을 통제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제레미 테일러 같은 성공회 왕정 옹호자들에게 이 무렵은 너무나 위태로운 시기였습니다.
러드 대주교가 투옥된 이듬해 1642년 테일러는 주교제란 하느님께서 세우신 제도라는 관점의 책을 출판해 청교도들의 미움을 삽니다.
잠깐 투옥된 다음 그는 웨일즈 남쪽에서 8년간 유배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 기간 중에 1651년 아내 피비(Phoebe)가 사망하는 아픔을 겪습니다.
하지만 테일러의 역작은 대개 이 무렵에 탄생한 것도 사실입니다.
테일러는 재수감되어 일 년간 옥살이를 치룹니다.
1656년 석방된 그는 재혼하여 아이들을 여럿 둡니다.
하지만 가족은 늘 가난했고 떠돌이 생활을 면치 못했습니다.
1660년 왕정이 복고되고 성공회도 이전 모습을 회복하게 됩니다.
고생한 테일러도 주교로 임명되어 교구 하나쯤 맡을 법한데 이번에는 저술의 일부 내용이 수상쩍다는 비난을 받게 됩니다.
그 바람에 그에게는 북아일랜드의 장로교인들로 가득한, 도무지 성공회나 주교와 아무 관련도 맺고 싶어 하지 않은 사람들로 가득한 가난한 지역 교구가 할당 되었습니다.
가난한 변두리 생활, 그것도 신학적으로 수상하다는 비난이 늘 끊이지 않는 가운데였지만 테일러는 그곳을 사랑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전에 고생하던 시기에 여섯 아들을 이미 잃었던 그가 유일하게 남은 아들 찰스마저 런던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자 병석에 눕게 되고 며칠 지나지 않은 1667년 8월 13일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제레미 테일러는 타고난 글재주로 다작(多作)을 한 작가입니다.
영어권 최초의 예수전도 테일러의 역작으로 수천 페이지가 달하는 이 책은 복음서 이야기와 묵상, 신학적 담론, 테일러가 직접 쓴 기도문들로 엮어진 책인데 사실 테일러는 청교도들이 기도서 사용을 금하자 기도서에 준하는 책과 예배양식을 만드는 노력의 와중에 이런 책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복음서를 체계적으로 읽고 묵상하며 리듬에 따라 점진적으로 성스러운 생활을 이끌어가려는 것이 성공회의 유산이요 풍모임을 일깨워주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테일러의 가장 유명한 저술은 그의 사후 300년이 넘도록 독자가 끊이지 않는 「거룩한 생활의 규칙과 수련」(The Rule and Exercises of Holy Living)과「거룩한 죽음의 규칙과 수련」(The Rule and Exercises of Holy Dying)입니다.
두 책 모두 그리스도인 생활이란 거룩함이 점진적으로 자라는 그런 생활로 묘사합니다.
거룩한 죽음에 관한 책은 사랑했던 아내 피비가 죽고 6개월 뒤에 나온 것입니다.
침울하면서도 부드럽고 살아 있는 신앙을 느끼게 하는 이 책은 오랜 세월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테일러 글의 특징은 빼어난 영적통찰을 늘 실천적인 적용과 섞으려 한다는 점입니다.
당대 최고의 지성으로서 테일러는 신학적인 이슈를 논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그의 관심은 늘 그리스도인이 매일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데 있었습니다.
이 신학적 사고가 보다 나은 인간적인 세상을 가져올 것인지, 사람들의 실제생활에 이 논의가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이를 통해 신자들이 하느님과 보다 깊은 관계에 들어갈 수 있을지를 그는 늘 염두에 두었습니다.
관념적이지 않고 실천지향, 일상성의 예찬이 성공회 영성의 중요한 면모이거니와 제레미 테일러 같은 분들에게서 물려받은 성공회의 유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테일러가 왕정복고 이후에 북아일랜드 변방으로 밀려나게 만든 것도 기실 이 실천적 관심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테일러가 유배생활 중에 쓴 첫 번째 책은 분쟁과 당파성으로 가득한 당대의 분위기에 걸맞지 않게 신앙의 관용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도신경이면 교리적으로 충분한데 신경의 해석에 있어서도 서로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권리를 인정하는 가운데” 그 외의 문제들은 신앙에 본질적이지 않은 문제로 치부하고 서로 관용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초대교회는 국가권력으로 자기네 신앙을 강요하는 짓 같은 건 하지 않았다는 점을 일깨웁니다. 그러니 힘으로 밀어붙여도 박해하는 자나 박해받는 자 어느 쪽도 더 거룩해지지 못한다는 점을 꼬집습니다.
그러나 관용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시대분위기에서 이 책은 그리 환영 받지 못합니다.
한편 테일러는 펠라기우스주의자로 낙인이 찍혀 신학적으로 수상한 인물 대접을 받았습니다.
펠라기우스는 로마에서 활약한 브리튼 출신의 수사인데 비록 하느님의 능력과 은총이 있어야 인간이 구원을 받는 건 맞지만 인간 역시도 스스로 구원을 향한 첫발을 내디딜 수는 있다고 본 사람입니다.
반면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는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고 무기력해서 첫발이고 뭐고 은총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비유로 하자면 절벽에 매달린 사람이 최소한 도와달라고 소리는 쳐야 누가 올 게 아니냐는 게 펠라기우스의 입장이라면 그저 매달려 도와줄 사람이 오기만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칼뱅이 제네바에서 득세함으로 해서 아우구스티누스적 입장이 종교개혁의 정통이 되었고 면죄부 따위를 판매하며 미사 몇 대를 드리면 죄를 탕감 받는다는 식의 중세적 관행이 인간이 자기 힘으로 뭘 어쩐다는 펠라기우스적 오류로 정죄되면서 펠라기우스주의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가 되었습니다.
영국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청교도든 성공회든 펠라기우스주의는 옳지 않은 신학적 관점으로 대접을 받았습니다.
하필 이 꼬리표가 제레미 테일러에게 붙은 것입니다.
하지만 제레미 테일러는 순전히 실천적인 관점에서 글을 썼던 것입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향할 수조차 없이 타락하고 무능하다면 회개를 말하고 변화를 촉구하고 옳은 일을 하라고 권하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이냐는 것입니다.
시대의 격변 속에서 모두가 무력감을 느끼던 시대에 “아니다, 우리는 용기를 내어 하느님을 향할 수 있다, 이 어둠 속에서도 우린 거룩할 수 있다”고 외친 테일러의 글들은 어쩌면 극단으로 치우치는 저울의 중심을 잡는 균형의 추가 아니었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주님의 이름을 사랑했던 이들에게 하셨듯이 제게도 행해 주소서.
주님의 진리로 저를 위로하시고, 주님의 자비로 건져주시고, 주님의 지팡이로 저를 버텨주시고, 주님의 은총으로 제 슬픔을 거룩하게 하시고, 주님의 선하심으로 제 모든 죄를 사해 주시고, 주님의 천사들로 저를 안내하시어 죽음의 그늘을 안전하게 통과하게 하시고, 주님의 지극히 거룩한 성령께서 저를 이끄시어 의의 땅에 이르게 하소서.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가장 친애하는 주요 가장 자애로우신 구세주를 인하여 그리 하소서. 아멘.” (「거룩한 죽음」에서)
이주엽 신부 (프란시스, 분당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