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거룩한 바람
아모스 4 : 12-13, 사도행전 2 : 1-4
김 정 국 목사
그리스도의 승천 후 열흘만에 약속하신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이때가 오순절이었습니다.
유월절에 주님께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의 모습으로 죽으셨고 오순절에 성령님이 강림하셨습니다. 성탄절을 주님이 강생하신 날이라고 하면, 오순절은 성령이 강림하신 날입니다. 한국 교계에 두 종류의 바람운동이 일어났는데 60년대에 신풍(新風)운동 있었고, 70년대에는 성풍(聲風)운동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이 두 바람이 한국 교계에 계속 불고 있습니다. 확실히 기독교는 바람과 깊은 관계 속에서 발전되어 있습니다.
1. 물리적인 바람이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미미한 공기입자의 흐름에서 시작하여 누구든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여러 가지 바람이 있습니다. 계절에 따라 불어오는 계절풍이 있습니다. 봄에 부는 바람은 죽어 있던 산천초목을 소생케 하는 힘이 있고, 여름에 부는 바람은 만물을 무럭무럭 자라게 하는 이 있으며, 가을 바람은 모든 초목과 곡식을 열매맺게 하고 익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겨울철에 부는 바람은 초목의 잎을 말라죽게 합니다. 그런가 하면, 때로는 미친 바람이 불어 큰 피해를 입히기도 합니다. 이 바람은 주님 당시 갈릴리 바다에 가끔 일어나서 제자들을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광풍이라도 하나님이 쓰실 때는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널 때 바다를 갈라놓게도 합니다.
이러한 것은 구약시대뿐 아니라 1915년 4월 22일 16시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영국군· 향해서 역사상 최초로 독가스를 사용한 일이 있었습니다. 독일군은 측후소의 세밀한 관찰에 의해 그때 풍세가 적군인 영국 쪽으로 불 것을 판단하고서 독가스를 뿌렸습니다. 바로 이때 예상을 뒤엎고 바람이 역습하여 독일군이 큰 피해를 입어 결국 전쟁에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자연의 바람을 통해서도 그의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2. 세상 풍조라는 바람이 있습니다.
잠언 11 :29에 "자기 집을 해롭게 하는 자의 소득은 바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자신이 바람을 일으켜 놓고 자기 집을 해롭게 하는 자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세상 풍조라고 말합니다. 풍조란 바람의 흐름을 의미합니다. 이 풍조 때문에 가정이 파탄되고 사회가 혼란하고 국력이 약화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른 민족에게서는 별로 찾기 힘든 풍조가 우리 민족에게서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치마바람입니다. 성적은 좋지 않고 상장은 받고 싶으니까 선생을 매수해서라도 부모의 욕심을 채워 보려고 하는 치마바람이 있습니다. 자녀를 위한다는 것이 오히려 멍들게 하는 일입니다. 한때는 춤바람 때문에 자신과 가정을 망하게 하는 일이 있었지요.
요즘에는 사치와 과소비 풍조라는 바람에 휩쓸려 주체성 없이 갈팡질팡하는 군상들 때문에 민족과 국가의 장래마저 위태롭게 합니다. 바울은 "우리는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엡 4:14)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연적인 바람이나 세상 풍조의 바람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3. 성령의 바람이 있습니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행 2 : 1-2)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순절에 바람 같은 성령이 오셨습니다. 유월절 안식일의 다음 날부터 계산하여 제 50일에 지키는 절기였습니다. 그날이 바로 주일이었습니다. 그날에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부는 것같이 소리가 나더니 약속하신 성령께서 강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어느 날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거듭나는 진리를 설명하시면서 성령님의 동작을 바람에다 비유한 일이 있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 3:8)고 하셨습니다.
성령을 헬라어로 푸뉴마라고 하는데 숨결, 호흡, 생명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흙으로 창조하신 후 그 코에 하나님의 바람, 하나 님의 숨결과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생명이 되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받으라"(요 20 :22)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숨결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생명의 바람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은 사람은 생명이 있습니다. 이 생명이 충만하면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게 되고 권능을 받으면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행 1 :8). 겨우 생명이 있을 정도가 아니라 성령의 충만을 통하여 능력 있게 살아갑니다.
주일을 지키는 데도 능력이 있으며, 교회를 봉사하는 데도, 그리고 전 도하는 데도 능력이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 성령의 바람의 힘을 빌려서 하루에 3천 명이나 회개하게 하는 초인간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성령은 하나님의 거룩한 바람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으면 거룩한 사람, 즉 성도가 됩니다. 이 바람이 부는 곳마다 생명운동이 일어나고, 정의가 실천됩니다. 또한 이 바람이 부는 곳마다 사랑운동이 일어나므로 기쁨과 화해가 있습니다.
어느 날 에스겔 골짜기에 이 바람이 불었습니다.
골짜기에 마른 뼈들이 가득히 쌓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에스겔에게 그 곳을 지나가게 하신 다음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이때에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했더니 이 배들을 향해서 내 말을 대언하라고 하셨습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겔 37:4-5)고 하셨습니다.
이때에 에스겔이 그 명하신 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서 일어나서는데 극히 큰 군대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기는 하나님의 숨결이며, 하나님의 숨결은 곧 생명입니다. 성령께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신령한 의미를 주는 말씀입니다. 에스겔 골짜기와 같은 이 땅 위에 수많은 뼈들이 뒹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바람, 즉 생기를 받지 못한 채 여기 저기 굴러다니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차를 타고 다니니까 생명이 있어 움직이는 줄로 알고 있지만 이것은 하나의 착각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는 마치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이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망을 당한 자들을 살리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생기인 성령의 거룩한 바람을 불게 하셨습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성령께서 세차게 불어 마른 뼈와 같은 인간들이 살아나게 하십니다.
이젠 이 거룩한 바람이 무신론 공산국에까지 불고 있습니다. 공산국의 종주국이었던 소련까지 이 바람이 힘있게 불고 있으니 할렐루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멀지 않아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땅 끝'이라 할 수 있는 저 북한 땅에도 이 바람이 불게 될 것입니다.
첫댓글 성령설교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