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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제2권 21
2019년에 읽은 정서(淨書)
오늘로써 마침내 2019년이 저뭅니다. 작년에도 한 해를 보내면서 편지 제2권 12를 「올해의 불서」라는 제목으로, 한 해 동안 어떤 책을 읽었는지 정리하면서 한 해를 마감하여 보았습니다.
금년에도 그렇게 해 봅니다만, 책의 범위는 훨씬 더 축소되고 말았습니다. 금년에 들어서는 불교 책 이외의 것이 시들해졌음은 말할 나위 없고, 같은 불서라고 해도 점점 더 정토 관련 서적 외에는 흥미가 일지 않아서 손에서 멀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로 정서만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한 해 결산 역시 2019년에 어떤 정서를 읽었던가를 정리하는 것으로 가름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온갖 잡서(雜書)들까지 다 읽어대던 저로서는 상당히 폭이 좁아지게 된 것입니다. 좋게 말하면 ‘한 갈래 살 길(一條活路)’이 더욱 분명해 졌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선, 그 목록을 정리해서 제시합니다.
1. 『무량수경우파제사원생게(無量壽經優婆提舍願生偈)』(세친 저, 보리류지 역, 대정장 26)
2. 『일본의 정토사상』(길희성, 민음사, 1999)
3. 『교행신증(敎行信證)』(親鸞 저, 6권, 대정장 83)
4. 『신란스님 편지글, 에신니 편지글(親鸞聖人御消息惠信尼消息)』(본원사출판부, 2008)
5. 『고승화찬(高僧和讚)』(親鸞 저, 『진종성전』, 동본원사출판부)
6. 『정상말화찬(正像末和讚)』(親鸞 저, 『진종성전』)
7. 『최후의 신란』(吉本隆明, ちくま學藝文庫, 2012)
8. 『야나기 무네요시 묘코닌논집(柳宗悅妙好人論集)』(柳宗悅, 岩波文庫, 1991)
9. 『잇펜(一遍)』(柳宗悅, 『柳宗悅全集』에서 복사한 것을 합본한 것.)
10. 『신란과 그의 정토교』(A.Bloom, 이종후 옮김, 이문출판사, 1985)
11. 『염불보권문(念佛普勸文)』(明衍, 한불전 9)
12. 『청택법보은문(請擇法報恩文)』(箕城快善, 한불전 9)
13. 『염불환향곡(念佛還鄕曲)』(箕城快善, 한불전 9)
14. 『신편보권문(新編普勸文)』(好隱有璣, 한불전 9)
15. 『권념요록(勸念要錄)(懶庵普雨, 한불전 7)
16. 『현행서방경(現行西方經)』(元旵, 한불전 6)
17. 『정토보서(淨土寶書)』(栢庵性聰, 한불전 9)
18. 『정토문류취초(淨土文類聚鈔)』(親鸞, 『진종성전』)
19. 『우독초(愚禿鈔)』(親鸞, 2권, 『진종성전』)
20. 『정신게대의(正信偈大意)』(蓮如, 『진종성전』)
21 『존호진상명문(尊號眞像銘文)』(親鸞, 2권, 『진종성전』)
22. 『일념다념문의(一念多念文意)』(親鸞, 『진종성전』)
23. 『유신초문의(唯信鈔文意)』(親鸞, 『진종성전』)
24. 『집지초(執持鈔)』(覺如, 『진종성전』)
25. 『구전초(口傳鈔)』(覺如, 『진종성전』)
26. 『개사초(改邪鈔)』(覺如, 『진종성전』)
27. 『정토진요초(淨土眞要鈔)』(存覺, 2권, 『진종성전』)
28. 『어전초(御傳鈔)』(覺如, 4권, 『진종성전』)
29.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 미의 보살 - 』(아마 도시마로, ちくま學藝文庫, 2019)
30. 『신란과 일본주의』(中島岳志, 新潮社, 2018)
31. 『정신게주(正信偈註)』(蓮如, 『정토진종성전전서 5』, 본원사출판부, 2014)
32. 『정신게주석(正信偈註釋)』(蓮如, 『정토진종성전전서 5』, 본원사출판부)
33. 『융통원문장(融通圓門章)』(大通, 대정장 84)
이렇게 해놓고 보니, 몇 가지 뚜렷한 특색이 보입니다.
첫째, 앞으로 정토학을 넓고도 깊이 공부해 갈 젊은 학인들과 인연이 되어서 읽게 된 책들입니다. 이는 그분들 덕분에 제 공부가 넓어지고 깊어진 것이니, 크게 감사할 일입니다.
1번 책은 우리 인도철학과 대학원에서 제 지도로 이번 학기에 석사학위를 받게 된 미탄스님의 석사논문 텍스트입니다.
20, 31, 32는 모두 그 제목에 「정신게」라는 말이 보이지요. 바로 그 「정신게」에 대해서 본원사 제8세 렌뇨스님이 붙인 주석서입니다만, 제 연구실에서 함께 공부하고 있는 무진스님의 석사논문 주제입니다. 「정신게」는 3번 『교행신증』의 제2권에 나오는 게송입니다. 갖추어 말하면, 「정신염불게」입니다만, 흔히 줄여서 「정신게」라고 합니다. 이 「정신게」는 우리나라 법회식순에서 그 유사한 것을 찾아본다면, 『천수경』이 있다고 봅니다. 『천수경』부터 독송하고 법회를 시작하듯이, 정토진종에서는 「정신게」부터 읽고서 합니다. 20번 「정신게대의」는 옛날 중세 일본어이고, 31번 「정신게주」와 32번 「정신게주석」은 모두 한문입니다. 「정신게대의」는 동본원사출판부에서 나온 『진종성전』에 수록되어 있고, 「정신게주」와 「정신게주석」은 모두 본원사출판사에서 만든 『정토진종성전전서』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다음 33번 「융통원문장」은 융합학과 송동규 군의 석사논문 텍스트인데, 송군은 우리 독서회에서 오래 함께 공부도 했고 “나무아미타불독서회” 권진도 해주었던 인연으로 제가 심사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일본의 정토문 중에서 융통염불종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이 문헌은 그 종파의 가장 대표적인 문헌입니다.
둘째, 신란스님과 정토진종에 대한 책들입니다. 신란스님 저술로는 3, 4, 5, 6, 18, 19, 21, 22, 23번이 있습니다. 물론, 여기 들어가지 않은 신란스님의 저술이 더 있습니다. 스님은 90년을 사셨는데, 만년에 저술을 많이 남겨주셨습니다. 이들 저술에 대해서 하나하나 설명 드리려면 너무 지면이 많이 필요하고,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 다만 여기에서 두 가지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는 4, 5, 6번 책들입니다. 편지와 화찬인데요. 화찬은 시입니다. 편지와 시에서는 논술적인 저술들에서보다 좀 더 신란스님의 육성이나 속내가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으로 봅니다. 사상체계를 따진다면 3번 『교행신증』같은 대저가 좋을지 모르지만, 그 분의 인격과 신심의 세계 같은 것에 매력을 느끼는 분들이 더 많으리라 봅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이러한 편지와 시 같은 것들이 번역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른 하나는 22번과 23번입니다. 이들 책에는 다 ‘문의’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글의 의미라는 말이지요. 즉 『일념다념』이라는 책에 나오는 문장의 의미, 또 『유신초』라는 책에 나오는 문장의 의미에 대해서 쓴 책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22번과 23번 책은 둘 다 선행하는 텍스트에 대한 주석서임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제가 여기서 다른 저술은 그만 두고, 이 두 저술에 주목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책들이 다 사형의 저술이라는 점입니다. 22번 『일념다념문의』는 류칸(隆寬, 1148-1227)의 책에 대한 주석이고, 23번 『유신초문의』는 세이가쿠(聖覺, 1167-1235)의 책에 대한 주석입니다. 이 두 분은 모두 호넨스님의 제자이니, 신란스님과는 동문이 되는 사형들입니다. 저는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사제스님이 사형스님의 책을 이토록 숭상하고 그것을 교재로 해서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주석까지 달았다는 이야기를 달리 알지 못합니다. 신란스님과 같은 사제를 둔 류칸스님이나 세이가쿠스님도 행복한 스님이고, 이러한 제자들을 둔 호넨스님도 행복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 사형사제간의 우정과 의리가 부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토진종의 책으로서 원전은 가쿠뇨의 책들이 넷이나 들어 있습니다. 가쿠뇨(1270-1351)는 본원사 제3세입니다. 본원사의 기초를 닦은 가쿠신니(覺信尼)의 손자이니까, 신란스님으로부터 따진다면 외증손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신란스님을 뵙지는 못했지요. 신란스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을 것입니다. 특히 본원사 제2세 뇨신(如信, 신란으로부터 의절당한 젠란/善鸞의 아들)으로부터 신란스님의 이야기를 듣고서 기록한 책이 25번 『구전초』입니다. 26번 『개사초』는 말 그대로 삿되게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20조에 걸쳐서 경계한 것으로, 일종의 이단을 경계하는 글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쿠뇨의 기여는 28번 『어전초』에서 결정적이 됩니다. 사실, 『어전초』는 4권이라고 하였지만 보통의 책들 권수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전초』는 『신란덴네(親鸞傳繪)』라는, 일종의 그림책에서 글만 뽑아놓은 것입니다. 이 『신란덴네』를 만든 사람이 가쿠뇨입니다. 이 그림전기를 통해서 신란스님을 추앙할 뿐만 아니라, 본인이 주지로 있는 본원사 – 즉 신란의 혈맥 – 를 중심으로 정토진종을 파악하고자 해서 만든 것입니다. 『신란덴네』는 그림이, 한 면에 4칸 씩 들어가는 그림을 4면으로 만들어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까 총 16면의 그림책입니다. 그 그림들에는 반드시 글이 있는데, 신란스님의 전기적 사실이 연대순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시간적인 배열은 아닙니다. 이 『신란덴네』는 본산에서 만들어서 말사로 내려 보냈고, 말사에서는 그것을 시청각교재로 삼아서 법회시간에 신도들에게 신란스님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합니다. 그 그림전기에서 글만 있는 것이 『어전초』이고, 그림만 있는 것도 있습니다. 그것은 『어회전(御繪傳)』이라고 합니다.
신란스님이나 정토진종에 대한 2차 자료도 몇 권 읽었습니다. 2, 7, 10, 30번입니다. 이 중에 우리말로 쓰인 것은 2번과 10번입니다. 2번 『일본의 정토사상』은 우리나라 필자에 의한 신란스님에 대한 단독의 저술로는 최초이자, 현재까지도 유일합니다. 이 정도의 종합적인 연구는 이후 송재근 박사에 의해서 이루어졌으나, 그분은 학위논문에서 한 것이고 단행본으로 출판되지 않았습니다. 영어에 능통한 필자가 영어로 번역된 신란스님 저술을 이용해서 집필하였는데, 후반부로 가면서 기독교 신학자의 입장에서 다소 비판적으로 논의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입장의 정리가 정토진종에서 어떻게 나올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원래 이 책은 일본의 남산대학 종교문화연구소에서 나왔는데, 원서는 영어로 된 것입니다.
10번 『신란과 그의 정토교』는 미국의 학자가 쓴 책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종후 교수님은 영남대 철학과에서 근무하셨는데, 이 책을 번역했습니다. 그 시점이 1985년입니다. 선구자, 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지금도 아직 우리나라에서 신란스님을 읽는 사람이 드문 형편인데, 지금부터 34년 전에 이 책을 번역해서 훗날의 독자를 기다리고 있었다니 말입니다. 물론, 현재는 품절되었습니다. 도서관에 빌려서 복사하면 될 것입니다.
나머지 두 책은 일본어 책입니다. 이 중에서도 7번 『최후의 신란』은 대단한 책입니다. 요시모토 다카아키 선생은 일본에서 “전후 최대의 사상가”라고 말해질 정도의 인물입니다. 제가 일본에서 공부하는 후배에게 물어본 일이 있습니다. “요시모토 선생 같은 분을 우리나라에서 찾아본다면 어떤 사람이 있을까?” 후배가 말하더군요. “백낙청 선생 정도.” 속으로 저는 이 말을 부정했습니다. 백락청 선생도 훌륭한 지성인이고 사상가로 이름났지만, 제가 알기로는 우리의 고전문학에 대한 연구는 별로 없는 것으로 압니다. 또 불교에 대해서나 기독교 신학에 대해서나 그다지 큰 저술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요시모토 선생의 범위는 그것들을 다 포괄합니다. 신란스님은 일본의 지성인이라면 한 두 권의 저술을 다 내곤 하는데, 대개는 그 범위가 『탄이초』 주변을 갖고서 합니다. 그러나 요시모토 선생은 화찬은 물론, 편지글이나 『교행신증』까지 다 읽고서 이야기를 합니다. 본원사파와 같은 정토진종 안에서도 인정을 받습니다. 책을 읽어보면 독창적인 사유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일본 소설 읽는 분들은 요시모토 바나나라는 여류작가를 아실 것입니다. 바로 그녀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30번 『신란과 일본주의』는 나온 지 10개월 만에 7쇄를 찍을 정도로 화제의 책입니다. 나카지마 다케시는 오사카외국어대학 인도어과를 나왔니다. 인도학자로서도 입지를 굳힌 분인데요. 겸하여 일본 현대의 정치사상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발언하는 분입니다. 그도 그럴 수 있는 것이 그분의 인도학에서의 전공이 바로 인도 현대정치사상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통하는 점이 있습니다. 현재는 동경공업대학에서 교수하는데, 그 대학을 나온 분이 바로 요시모토 다카아키라는 점, 그런 인연도 있습니다.
『신란과 일본주의』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옹호했던 많은 사상가들이나 종교인들이 어떻게 자기 마음대로 신란스님을 왜곡했던가를 추적하여 고발한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는 우리가 많이 이야기했던 『스님과 그 제자』의 작가 구라타 햐쿠조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카지마 선생이 신란스님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 역시 요시모토 다카아키 선생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우연히 요시모토 선생의 강연회를 갔는데, 그때 강연 제목은 기독교의 성서 중 『욥기』에 대해서였다고 합니다.
마침 그 무렵은 옴진리교라는 신종교에 의해서 도쿄 지하철에 사린가스라는 독사가 살포되어서 많은 사람이 죽었을 때입니다. 강연을 듣고 나서,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젊은 나카지마가 물었습니다. “신란스님의 입장에서 볼 때, 옴진리교의 교주(사린사건의 주범) 아사하라 쇼코 같은 사람도 극락에 갈 수 있습니까?” 이에 대한 요시모토 선생의 대답은, “정토신앙이나 신란스님의 입장에서 볼 때, 아사하라 쇼코 역시 틀림없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것이었고, 이로부터 서서히 신란스님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작년 봄, 아사하라 쇼코는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그 전에 진종 대곡파(동본원사)에서는 사형을 반대한다고 청원을 해왔었고, 또 집행 이후에는 규탄 성명까지 내고 했습니다. 그런 동본원사의 교학연구소에 객원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 또한 나카지마 다케시 선생이라고 합니다. 사실, 저 역시 인도철학을 공부하고 있는 입장이라서 나카지마 선생의 작업을 지켜보고 더러 읽습니다만, 저 보다 나이가 어린 분이라서 여러모로 제가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셋째, 우리나라 스님들의 정토서적입니다. 11번부터 17번까지입니다. 특히 조선시대 후기의 것이 많습니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염불문이 선문인 경절문과 화엄의 원돈문과 더불어 삼문(三門)으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신라시대 이후 가장 염불이 성행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른바 삼문수업이라는 분위기입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염불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 중에 11번 『염불보권문』은 경전의 말씀이나 영험설화 같은 것을 모아서 편집한 것입니다. 영험 설화는 우리나라 것이 드물고 중국의 것이 거의 대다수인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보다 의미 깊은 것은, 그것들을 한문 원문만 적지 않고 우리말(당시로는 언문)로 번역한 것을 같이 나란히 적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염불이 가려고 했던 서민들이나 무지하고 못 배운 사람들(조선시대에는 배운 사람은 한문을, 못 배운 사람은 언문을 읽었음)에게 염불의 가르침을 전하려고 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단순히 중국의 글을 편집한 17번 『정토보서』와는 다른 입장입니다. 종래 보면, 조선조 후기의 정서 중에서 『정토보서』를 갖고서 그 시대의 정토신앙이나 백암성총의 정토사상을 운운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만, 차라리 그런 것을 찾자면 11번 『염불보권문』의 경우가 훨씬 편하고 낫습니다. 또 하나 이 책에는 염불가사가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 주의를 요합니다. 「나옹화상서왕가」나 「회심가곡」같은 작품들입니다. 정토문학사에서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14번 『신편보권문』은 11번 『염불보권문』을 이어서 나오는 것이지만, 그 내용이 줄어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말 번역이 없습니다.
다음으로 특별히 기록할 만한 것은 바로 기성쾌선스님의 두 작품입니다. 조선시대 후기에 염불사상을 권진한 분들이 여럿 계십니다만, 그 백미는 단연 기성쾌선스님입니다. 12번 『청택법보은문』과 13번 『염불환향곡』 모두 나름의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청택법보은문』의 경우는, 만약 제가 우리나라 스님들 저술 중 명저 10권을 뽑으라면 이 책을 그 안에 하나로 넣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당연히 중국스님들의 책이나 영험 같은 것들을 많이 읽고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만, 이 책에서는 우리나라 스님들 인용도 많이 합니다. 의상스님이나 보조지눌스님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순히 편집정리하는 수준이 아니라, 나름대로 불교사상 전반을 도마 위에 올려 놓고 평가를 하고 논의합니다. 그 결과 경절문과 원돈문보다 더 염불문이 높다, 중요하다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염불문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앞으로도 이 기성쾌선스님의 입장을 높이 떠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불교사 분야에서 이종수, 김용태 교수 같은 분이, 또 불교문학의 입장에서 김종진, 김기종 선생 같은 분들이 이 조선조 후기의 정토사상을 많이 연구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를 정토문으로 이끌어 주신 스승 야나기 무네요시 선생의 책이 1권, 즉 8번 『야나기 무네요시의 묘코닌논집』, 야나기 선생의 삶을 논의한 평전이 1권, 즉 29번 『야나기 무네요시』 역시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이 2권 중에서도 『야나기 무네요시의 묘코닌논집』의 경우에는 우리가 번역했던 『나무아미타불』(모과나무, 2017)과 서로 보완될 수 있는 글들이 많이 모여져 있습니다. 묘코닌(妙好人)만이 아니라, 일본의 정토불교에 대한 야나기 선생의 논설들이 많이 모여져 있습니다. 이 책은 사실 번역이 되었으면 합니다. 『나무아미타불』과 이 책, 그리고 제가 편집해 본 9번 『잇펜』을 합하면 야나기 선생의 정토사상을 아는 데 어느 정도 자료를 갖춘 것으로 생각됩니다.
자, 몇 시간 뒤면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됩니다. 2020년 경자년입니다. 벌써 궁금해 집니다. 또 어떤 인연을 만나서, 또 어떤 책을 읽게 될까요? 내년에는 좀 더 알차게 읽고서, 내년 연말에 쓰는 편지에서 이렇게 보고드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새해 모두들 건강하시길 빕니다. 그리고 늘 아미타부처님의 가피를 받고 있음을 아시고, 아미타불의 이름과 함께 한 해를 또 힘차게 보내시길 빕니다.
금년 2019년에도 모두들 감사했습니다. 제 사정으로 편지를 9번 밖에 못 썼습니다만, 새해에는 좀더 자주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잘 읽어주시고, 또 주위에 권진해 주십시오.
나무아미타불(2019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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