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두산은 죄인의 목을 베는 곳이라고 해서 절두산이다. 절두산으로 가려면 강변로로 들어서거나, 아니면 강변로에 묻힌 암거를 통과해야 한다. 강변로는 승용차용이고, 암거는 보행자용이다. 승용차를 타면 편하게 가지만, 도보로 가면 불편하게 간다. 만약 보행자가 빠르고 쉽게 가겠다고 강변로를 무단 횡단했다가는, 보행자의 보행권을 무시하는 이 나라의 교통정책의 덕을 톡톡히 보느라고, 일찌감치 천당으로 가기가 십상이다. 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이 철저하게 법을 지키겠다고 무단횡단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형편이 이러하니, 보행자들은 오밀조밀하게 붙은 집들 사이로 뚫린 길을 헤매다가 암거를 찾거나, 당산철교의 교각이 줄지어 들어서 있는 길로 접어들어, 암거를 찾아야 한다. 암거에는 비가 오든 아니 오든 물이 고여 있을 때가 많다. 그래서 더러운 흙탕물에 발을 적시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수행과정을 거쳐야만, 천주교 박해 때 천주교인들이 목을 잘린 절두산에 가게 된다.
절두산은 산山자가 붙어서 산이지 산이 아니다. 아마 천주교인들을 잡아다가 목을 베었을 때, 이곳은 양화진을 상징하는 우뚝 솟아오른 산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산을 깔아뭉갠 자리에 성당이 들어서있다. 천주교인들이 뿌린 피 위에 성당이 서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곳 성당은 성당으로서는 최고의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절두산은 지나간 날의 역사가 어떠하든, 봄의 신록과 여름의 갈매 빛 나무들, 한겨울의 포근한 설경으로 강변의 운치를 느끼게 하는 곳이다. 무심한 듯 불어오는 강바람에 나부기는 들풀이 보는 이의 가슴을 쓸쓸하게 하고, 때로는 옛일을 생각나게 하여 숙연해 지기도 한다. 절두산은 새벽 안개에 잘 숨고, 아침햇살에 찬연한 모습을 드러낸다. 비가 와서 강변로의 공해가 씻긴 다음엔 깜짝 놀랄 만큼 청결하게 보인다. 검은 빛과 황갈색이 어우러진 절벽 위에 평평하게 지은 성당이 신목神木일 듯 싶은 나무들에 둘러싸여 있다. 성당 건물 밖으로 성당의 회랑이 노출되어 있다. 강변로 쪽으로 비행기의 수직꼬리날개처럼 생긴 탑이 서있는데, 십자가가 붙어 있다.
현대식 건물로 지어서 그런지 외국의 성당들과는 그 형태가 다르다. 성당의 경내에 김 대건 신부의 동상, 오오따 줄리아의 묘비, 현풍현감 남 상교의 공덕비 등이 서있다. 그리고 1984년 5월 3일 성지참배를 하게 되는 로마교황 바오로 Ⅱ세의 흉상이 제막을 기다리고 있다.
양화진 파출소장인 김 명지는 로마교황 방한 일정이 발표되고 나서부터 평소보다 자주 성당을 찾았다.
성당의 박 신부는 환갑 나이였으나 나이보다 젊어 보였고, 훌륭한 인품을 지니고 있었다. 박 신부는 평소에 파출소에 따듯하게 대해왔고, 누구와 대화하든 격의가 없었다. 명지의 얼굴을 보면 그의 마음과 기분을 모두 읽었다. 파출소에 전화를 걸어 부르기도 하였다.
그날도 명지는 박 신부의 전화를 받고, 파출소소내근무자에게 자기의 행선지가 성당이라고 말하고, 우산을 받으며 빗길을 뚫고 걸어갔다. 1백 미터도 가지 않아서 빗줄기가 세차졌다.
그들은 회랑으로 올라서 박 신부의 방 앞에 가서 인기척을 내었다.
『들어와요.』
박 신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방은 박 신부가 서재 겸 집무실로 쓰는 방이었다. 방 안에서 비를 맞고 서있는 김 대건 신부의 동상이 내다보였다.
『앉아요. 비가 너무 쏟아지는 군.』
『근래에 보지 못하던 비입니다.』
『이렇게 퍼붓다가는 한강이 곧 불어날 것 같아.』
한강이 불어난다고 해도 높이 있는 성당에 물이 넘친 적은 없었다.
『준비하시느라고 바쁘시지요?』
『나야 뭐 바쁠 것이 있겠어?』
『그래도 성하聖下께서 이리로 오시니까…』
『나름대로 책임 맡은 사람들이 잘 하고 있으니까, 나야 조급할 것이 없겠지.』
『박 신부님은 여유가 있으시군요. 저는 벌써부터 마음의 여유가 없어요. 지시하는 높은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자, 성당에 왔으니, 긴장된 마음을 풀어요.』
명지가 천주교에 대하여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박 신부를 만나고 나서부터였다. 사람의 사악하고 교활한 심성을 매일 접하며 살아온 그에게 박 신부와의 만남은 별세계 사람과의 만남이었다. 수도사의 순수함과 따뜻함을 그는 박 신부에게서 체험하고 있었다. 그들은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박 신부는 비가 오는 날 자주 비에 젖어 있었다. 그가 빗 속을 거닐기 때문이었다. 강변로 가까이에 오오따 줄리아의 무덤이 만들고 난 다음부터 무덤 앞에 서있는 일이 잦아졌다. 오늘도 박 신부는 옷이 젖어 있다. 또 오오따 줄리아의 묘비 앞에 섰다고 온 모양이다.
『신부님 옷이 젖었습니다.』
『비가 오면 늘 줄리아의 무덤 앞에 가고 싶어서 비에 젖는다네.』
『줄리아의 혼백이 신부님을 부르는 것 같군요.』
오오따 줄리아는 임진왜란 때 소소행장에게 끌려가서 소소행장 가문의 영향을 받아 천주교에 귀의하게 되고, 아울러 높은 신앙심을 갖게 되었다. 그 2년 뒤에 일본 땅에 천하대란이 일어나 덕천가강이 실권을 쥐게 되었다. 소서는 덕천에게 대항하여 싸우다가 패하여 멸문의 화를 당하고 말았다. 소서의 포로였던 줄리아는 주인 소서가 멸문을 당하자 덕천의 손에 넘어가 시녀가 되었다. 덕천이 천주교를 탄압하면서 줄리아에게 배교할 것을 회유하였으나, 회유를 거절하고 고즈섬으로 귀향가게 되었다. 그녀는 신앙심이 높았고 몸가짐이 단정하여, 당시 일본에 와 있던 서양의 성직자를 통하여 덕행이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다. 고즈섬에서 일생을 마치고 장사지내어 부토로 돌아갔다. 이 사실이 한국 천주교회에 알려져, 1972년 10월 2일에 부토를 담아 와, 10월 26일에 순교자의 피가 배어 있는 절두산 성지에 묻었다. 그녀를 장사한지 실로 372년 만의 일이었다.
박 신부는 명지에게 줄리아의 행적을 알려주었다. 줄리아는 그에게 크게 위안이 되었다. 그도 이상하게 비만 오면 줄리아의 묘에 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가 박 신부가 비에 젖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명지가 양화진 파출소 소장으로 부임하여 성당에 찾아가던 날, 나무들이 분분한 초설을 맞고 있었다. 겨울새인 물오리가 강물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그가 성당을 찾은 것은 일상적인 업무의 하나로 부임하여 관내의 기관장들을 방문하여 인사하는 전례를 따른 것이었다. 때마침 그를 엄습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명지는 성당에서 비서의 일과 살림살이를 도맡아 보는 김 줄리아 수녀를 통하여 박 신부에게 면담을 요청하였다. 박 신부는 곧 그를 만나주었다. 그는 밝은 영안으로 명지가 우울증을 앓고 있음을 간파하였다.
『파출소장은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고통을 덜어내도록 하시오.』
의례적인 인사가 오고 간 후에 박 신부가 명지에게 말했다.
김 줄리아 수녀가 손님을 대접한다고 과자 한 접시와 차 두 잔을 박 신부의 방으로 들여와 탁자 위에 놓고 나갔다. 연한 바람처럼 조용한 행동이었다.
『김 줄리아 수녀에게 병을 고치는 능력이 있으니 기도를 받아 보는 것이 어떻겠소? 내가 부탁해 보리다.』
박 신부가 뜻 밖의 제안을 하였다.
명지는 기도가 무엇인지 모르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는 기도를 받기로 하였다. 박 신부는 김 줄리아 수녀를 불러들여 명지에게 신유기도를 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저를 따라 오세요.』
김 줄리아 수녀는 명지를 데리고 성당 제단 앞으로 다가갔다. 신단 앞에서 무릎을 굻어 앉게 하더니 조용하게 오랜 시간을 기도해 주었다. 그러자 그를 괴롭히던 우울증이 가시기 시작하였다. 머리가 맑아졌다.
『이제 다 되었습니다. 우울증은 마음의 병입니다. 우울증이 소장님을 괴롭히기 시작하면 성당으로 오세요. 제가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김 줄리아 수녀가 말했다.
명지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박 신부에게도 가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성당을 나서려다가 줄리아 묘비 앞으로 다가갔다. 문득 줄리아 묘비 앞에 서있는 한 여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소복을 한 30대 초반의 젊은 여자였다.
명지가 파출소에 돌아오니, 대학교 2학년생 또래의 젊은 사내가 딱딱한 장의자에 앉아 있었다. 연탄난로가 벌겋게 달아 실내가 후끈하였다. 젊은이는 어디에서 본 듯 낯이 익었다. 젊은이를 어디에서 보았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젊은이는 머리가 단정하고 복장도 깨끗했다. 그러나 정상이 아닌 것 같았다.
『머리가 돈 청년 같습니다.』
파출소소내근무자 현 경장이 책상 서랍을 열고 권총 한 자루를 꺼냈다. 정교하게 만든 콜트식의 리벌버 2인치형의 권총이었으나, 그것은 아이들의 장난감이었다.
『저 청년의 주머니가 볼록하여 검문을 했더니 이것이 나왔습니다. 이 청년이 성당으로 가는 암거 입구에 서서 순찰함에서 순찰표를 꺼내어 들고 들어다보고 있었습니다.』
『조그마한 상자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했나 보지?』
청년은 싱긋이 웃었다.
『네.』
『자네는 나이가 어리군. 순경놀이를 하고 싶었나? 아니면, 첩보원놀이?』
명지는 젊은이를 관찰하며 물었다.
『그건 장난감인데요.』
젊은이가 태평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런데 왜 장난감 권총을 숨겨 가지고 동네를 어슬렁거렸지?』
『동네를 어슬렁거린 게 아니에요.』
『그럼?』
젊은이는 대답이 궁한지 입을 다물어버렸다.
『카우보이처럼 재고 싶었나?』
젊은이가 빙글빙글 웃기 시작하였다.
현 경장이 권총의 실린더를 열어 모조실탄 6개를 뽑아 책상 위에 놓았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이었다.
명지는 젊은이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눈동자에 생기가 없고 초점이 흐려 있거나, 이상스런 광기가 번적거리고 있으면, 정신에 이상이 있을 가능성이 많았다. 명지는 눈에 생기가 없고 초점이 흐린 사람이 과대망상증 증세를 보인다는 것을 직무경험을 통해서 일고 있었다. 젊은이의 눈은 정상의 눈이 아니었다. 초점이 없었다.
『인적사항을 파악했나?』
『네. 기록이 여기에 있습니다.』
명지는 현 경장에게서 16절지 한 장을 받아들었다. 거기에 젊은이의 이름 나이 주소가 적혀 있었다. 명지는 젊은이의 집 주소가 마음에 걸렸다.
『자네의 집이 발전소가 있는 쪽에 있나?』
『네.』
『이 젊은이를 백차에 실어 보내야 하지 않을까요?』
현 경장이 명지에게 물었다.
경찰에서는 보호조치保護措置의 하나로 정신이상자를 백차에 실어 정신병원으로 보냈다. 정신에 이상을 보이는 부랑자를 백차로 싣고 가면 입원되었다.
『백차에 싣고 갈 만큼 심각한 것 같지 않은데. 우선 보호자에게 인계를 하도록 하지.』
『제가 순찰 근무 시간에 보호자에게 데리고 가겠습니다.』
『아니, 내가 데려다 주지.』
명지는 젊은이의 거소를 알아 둘 겸해서 자기가 보호자에게 대려다 주기로 하였다. 보호자가 사는 곳이 당인리 발전소 쪽이라면 파출소에서 멀지 않았다. 명지는 젊은이를 데리고 파출소 밖으로 나왔다. 강바람이 추웠다.
『내 옆에 바짝 서라. 네 집으로 함께 가자.』
『혼자서 갈 수 있어요.』
『네가 길을 잃을까보아 너를 데리고 가는 것이 아니야.』
『그럼요?』
『거동이 불편한 사람에게 지팡이가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야.』
그들은 교각 밑을 걸어갔다. 젊은이가 교각을 하나 하나 세었다. 명지는 한 번도 교각을 세어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을 왜 세니? 그런 거나 세고 다니면 머리가 안 아파?』
『교각이 없어질까 보아 그래요.』
『교각에 발이 달렸니? 없어지게. 아니면 누가 훔쳐 가니?』
『아마, 교각은 없어지고 말 거예요.』
『저런.』
강변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이 품어대는 소음이 영원히 깊이 잠든 외국인들의 잠을 방해하고 있었다.
『여기가 어딘지 아겠니?』
『알아요.』
『어떤 사람들이 묻혀 있어?』
『서양 사람들이요.』
『그래. 서양 사람들이지. 우리 나라에 와서 고종황제 밑에서 일하다가 죽은 사람도 있다. 묘지에 가 보랴? 아마 지금쯤 눈을 부릅뜨고 있을 게다.』
『정말요?』
젊은이는 갑자기 두려워하는 빛을 보였다. 그가 어린애처럼 명지의 오른 팔을 잡았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중얼거렸다.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너 무어라고 했냐?』
『내가 무어라고 했어요?』
『네가 무어라고 했으니까 내가 묻지.』
『무언가 이상스러운 것이 있어요.』
『그게 뭔데?』
『…』
『말하기 싫어?』
『그런 건 아니지만…』
『알았다.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마.』
『얼굴이 있어요. 저 하늘에.』
젊은이가 명지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명지는 순간적인 동작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하늘에 얼굴 같은 것은 없었다.
『예, 하늘엔 아무 것도 없어. 나를 놀리는 거냐?』
『지금은 없어졌지만 아까는 분명히 있었어요. 하나 둘 … 아아, 셀 수 없이 많은 얼굴들이었어요.』
젊은이는 너무나 진지했다. 명지는 비록 보지 못했지만, 젊은이가 본 환상 가운데 나타난 얼굴들의 실체를 인정해 주기로 하였다.
『나는 보지 못했지만, 네가 본 것을 네가 보았다고 인정해 주마. 나는 네가 하늘에서 얼굴들을 보았다고 믿어.』
젊은이의 얼굴이 밝아졌다.
『저는 가끔 얼굴들을 보아요. 그러나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어요. 다시 또 얼굴들이 하늘에 나타나면, 그때 알려드릴 게요.』
『나는 이 곳의 파출소장이므로 하늘에 무엇이 나타나는지 반드시 알아야 한다. 그것을 확인하고 분석하여 정체를 알아내어 대처하는 것이 파출소장의 임무야.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알아요.』
그들은 교각 밑을 돌아 당인리 발전소가 있는 동네로 들어갔다. 추위에 얼어붙은 낮은 집들이 빡빡하게 들어차 있었다.
『너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니?』
『부모님은 돌아가셨어요. 누나와 함께 살고 있어요.』
『단 두 식구가?』
『매형이 있는데, 집을 나갔어요. 매형은 돌아오지 않아요.』
『왜 집을 나갔어?』
『제가 싫대요. 제가 집을 나가면 매형은 돌아올 거예요.』
젊은이는 슬픈 얼굴을 하였다. 명지는 그런 말을 들으면 언제가 가슴이 아팠다. 그가 어릴 때부터 그러한 일들이 언제나 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를 따라다녔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그를 우울증에 빠지게 하였다.
『네가 집을 나간다고 집을 나간 매형이 돌아오겠느냐. 한 번 집을 버린 사람은 다시 오지 않는다. 돌아오고 싶어도 올 수 없어. 그들은 남이 되는 거야. 남이 되면 끝이지. 그러니까 네가 집을 나가면 매형이 돌아온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마라라. 네가 집을 나간다고 해도 매형은 누나에게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나 때문에 매형이 집을 나갔어요. 나 때문이라고요.』
『너 때문에 매형이 집을 나간 것이 아니야. 매형이 집을 나가고 싶어서 집을 나간 것이야. 너 때문에 집을 나갔다는 것은 핑계야.』
『아녜요. 매형은 나 때문에 집을 나갔어요.』
『누나도 그렇게 생각하느냐?』
『몰라요.』
젊은이가 갑자기 울기 시작하였다. 그는 젊은이를 달래야 하였다. 명지는 머리가 아파 오기 시작하였다.
『울지 마라. 남자가 울긴. 네가 집을 나가고 싶어 하듯이 사내는 다 집을 나가고 싶어 한다. 집을 나가서 살아보려는 것이야. 도망쳐서 몰래 살고 싶은 것이지. 마누라로부터 자식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야. 알겠냐? 너도 집을 나가고 싶으면 매형 핑계를 대지 말고 당당하게 나가야 해.』
명지는 젊은이의 어깨에 팔을 올려놓았다. 젊은이를 따뜻하게 해 주고 싶었다.
『울지 마.』
젊은이가 잠잠해졌다.
『앞으로 총을 가지고 놀지 마라. 비록 장난감 총이라도 총은 위험하다는 생각을 해야 해. 총에 귀신이 붙으면 사람을 상하게 할지 누가 아니?』
『알았어요.』
그들이 집에 도착하자, 젊은이가 부자를 눌렀다. 누나로 보이는 여자가 집안에서 나왔다. 명지가 양화진 파출소장으로 부임하던 날 줄리아의 묘비 앞에 서있던 그 여자였다. 그때 그녀는 하얗게 소복을 하고 있었다.
『동생을 데리고 왔습니다.』
명지가 정중하게 말했다.
그녀가 놀라서 흐트러진 눈빛을 하였으나 이내 제 눈빛으로 돌아갔다.
『고맙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에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들어가라. 성수로 십자가를 긋고.』
그녀가 동생에게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동생이 명지에게 꾸뻑 절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말을 잘 듣는 동생을 두고서도 마음 고생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여자가 애처롭게 보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심한 편이 아니니까. 사랑으로 감싸주는 누나가 있으니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 많이 좋아졌어요.』
『빨리 회복이 되겠죠. 힘을 내세요.』
그녀가 가슴에 성호를 그었다.
『혹시 집안에 도검류刀劍類가 있으면 각별히 간수를 잘 하세요.』
『도검류요?』
여자가 알아듣지 못했다.
『칼 말입니다.』
『네.』
명지는 돌아섰다.
로마교황의 성지참배가 있기 3개월 전부터 관할경찰서인 마포경찰서에서 경비 병력을 절두산 성당에 상주시켰다. 명지는 자기의 파출소관할에서 경호경비가 시작되었으므로 거의 매일 성당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마포경찰서에 배속된 전경부대와 의경부대가 경비를 전담하였다. 명지는 밤낮을 이들과 머리를 맞대며 살았다. 경비경警備警들은 취약지의 요소요소를 경비했고, 파출소직원들은 순찰을 돌았다. 날씨는 밤에 추웠다.
『길어야 3개월이니까 열심히 해. 한눈 팔지 말고.』
『춥지? 내복을 입어. 모양을 낸다고 벗지 말고.』
『독감이 유행하니까 감기 조심해.』
명지는 하루에 몇 차례고 경비경들이 경비를 서고 있는 초소를 찾아다니며 말했다. 밤이고 낮이고 경비근무를 한다는 것은 비록 쉬는 시간이 있고, 교대근무를 한다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인내심의 한계를 실험하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망아지처럼 뛰는 혈기가 왕성한 젊은이들을 잡아다가 제복을 입히고 훈련을 시켜 병정놀이를 시켜야 하는 상사들도 그들처럼 고생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한 주일이 지나고 나니까 명지의 눈에는 충혈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소장, 성하께서 오시려면 아직 멀었어. 건강을 아껴요.』
박 신부가 명지가 눈에 띄면 그가 전경들에게 하듯 말했다.
『괜찮습니다. 이런 생활에 숙달이 되어서요.』
『하여간 조심해야 해요.』
명지는 그에게 잔정을 베풀며 배려를 해 주는 인간적인 폭이 넓은 박 신부가 고마웠다. 성당에서는 구역별로 돌아가며 어머니 회원들이 야식을 만들어 가지고 와서 전경들을 먹였다. 그래서 늘 커피며 떡이며 김밥이 정문 초소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절두산 성당 경호경비가 시작되면서 본서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마포경찰서 관내에 있는 파출소 업무를 관장하는 외근계장外勤係長이었다. 파출소 직원의 신상과 직무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일이 그의 소임이었다. 외근계장은 전경중대장과 의경중대장이 교육이나 휴가 등으로 자리를 비우게 될 때는 그 기간 동안 그 임무도 대리하였다. 그러므로 경찰서에 배속된 전경중대나 의경중대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래서 출동을 할 때는 이들을 데리고 출동하였다. 그도 매일 하루에 주야로 두 번은 절두산 성당에 나타났다.
외근계장이 때마침 정문 초소에 순시를 나와서 파출소장과 함께 있을 때, 박 신부가 라면 한 상자와 팸플릿 몇 권을 보내왔다. 팸플릿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인쇄되어 있었다.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대회 및 103위 시성식
이 땅에 빛을
1984년 5월 6일 여의도 광장
그 아래 공간에는 붉은 십자가와 여의도 시성식장이 그려져 있었다. 그날의 행사시간표가 인쇄되어 있었다.
외근계장은 근무교대 병력을 실은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근무교대가 끝나면 경찰서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마침 교대근무자를 실은 녹색 버스가 도착했으므로, 그는 밖으로 나갔다. 경비경들이 버스에서 내려 3열 횡대로 정렬하였다. 선임자가 열의 우측에 서서 외근계장에게 경례를 하며 충성!하고 소리쳤다.
『펀한 자세로 들어.』
외근계장이 그들 교대자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고 나서 말했다.
『아직 잠이 덜 깼구나. 몸을 움직여 잠을 깨도록 해. 근무지에서 꾸벅꾸벅 졸지 않도록. 졸다가 물귀신에게 잡혀갈라.』
외근계장이 대원들의 바지 가랑이를 올리도록 하였다. 녀석들은 내복을 입지 않아 신경을 건드렸다. 그래서 의례히 내복검사를 하는 것이 일이었다. 또 지시를 어긴 몇 녀석이 만년내복을 노출시키고 있었다. 얼굴을 보니 고참으로 불리는 녀석들이었다.
『이 녀석들 또 지시를 까먹었구나. 춥지 않나?』
외근계장이 앞 열에 선 경비경에게 질문했다.
『춥지 않습니다.』
『지금이 3월이야? 6월이야?』
『3월입니다.』
『낮이야? 밤이야?』
『밤입니다.』
『다음 교대 때는 내복을 입고 와. 바지 내려.』
대원들이 치켜 올렸던 바지 가랑이를 내리고 부동자세로 돌아갔다.
『내복이 없어서 그런 것 같은데, 오늘 내복을 입지 않아 적발된 여섯 명의 명단을 소대장은 내게 제출하도록 해. 내가 내복을 구해 주도록 하지.』
교대 근무자가 제 자리로 들어가고 근무를 마친 전경들이 녹색 버스를 타고 경찰서로 돌아갔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아서 주위가 조용했다. 그러나 강변로를 질주하는 차들이 나타나 정적을 깨트렸다.
『계장님, 쉬시죠.』
명지가 말했다.
외근계장이 돌아가고 나서 명지는 잠시 눈을 감고 쉬었다. 벌써 새벽이었다. 그러나 아직 날은 밝지 않았다. 이제 파출소로 돌아가서 몸을 씻고 이날의 근무준비를 해야 하리라. 그는 정문초소를 나와 암거를 향하여 걸어갔다. 암거를 비추는 불빛에 한 여자가 보였다. 젊은이의 누나였다. 새벽기도를 올리기 위하여 성당으로 오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다행스럽게도 소복을 하지 않아서 마음이 놓였다. 한강에서 불어오는 새벽 바람이 찼다. 나무들이 가로등 밑에서 바람에 흔들렸다. 나무의 그림자가 음울하게 춤을 추었다.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강변에 떠있는 바지에 매어둔 경비정이 마음에 걸렸다. 바지에는 지렁이 채취선 여러 척이 함께 매어 있었다. 그는 무전으로 경비정을 호출하였다. 경비정에는 두 사람의 직원이 매일 교대로 24시간 근무하고 있었다.
『바람이 세차지는데 별일이 없나?』
『별일 없습니다.』
『만약에 대비해서 점검을 해 봐.』
『알겠습니다.』
명지는 직원을 믿고 있었다.
명지가 손전등을 들고 강변으로 다가가자, 손 경장이 배 안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물가로 나왔다.
『소장님, 나오셨습니까? 경비정은 이상 없습니다.』
『힘들지 않아?』
『괜찮습니다.』
경비정은 여름철에 운행을 하는데, 교황의 경호경비를 위하여 일찍 가동하기 시작하였다. 경비정 담당직원은 양화진 파출소에 배속되어 파출소장의 관리감독을 받았다. 지렁이채취선 선주들은 경비정담당직원에게 배를 맡겨두고 집에 가서 편히 쉬고 있었다.
『어부들이 통제기간이 너무 길다고 불평을 하지 않습디까?』
『겉으로는 그런 기색을 내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부들은 교황이 일찍 다녀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강 가운데로 나가서 그물을 치고 지렁이나 민물고기를 잡았지만, 일일이 경비정근무자의 통제를 받아야만 하였다. 이러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명지는 그들과 만나서 대화를 해야 하였고, 그들과 함께 강물 위에도 떠있어야 하였다.
『수고해. 손 경장.』
명지는 손 경장 앞을 떠났다. 강가에 선 몇 구루의 나무 사이로 사람들이 밟아서 생긴 소로를 따라갔다. 메마른 네 잎 갈퀴풀이 발에 걸렸고, 역시 메마른 벗풀 잎이 옷을 서걱서걱 긁었다. 명지는 젖은 점토질의 흙을 밟으며 몇 번이고 미끄러졌다. 발을 들어올려 옮겨놓을 때마다 흙덩이가 신 바닥에 붙어 올랐다.
『정지! 누구냐? 사과.』
경비경이 소리쳤다.
『배.』
명지는 경비경의 수하를 받아 걸음을 멈추고 암구호의 뒤 짝을 맞추었다. 근무자는 상대방이 명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교육을 시킨 대로 따라하고 있었다. 암구호의 뒤 짝이 맞자 대원은 경계를 풀고 경례를 하였다.
『근무 중 이상 없음!』
『수고한다. 춥지?』
『춥지 않습니다.』
『건강은 본인이 알아서 지키는 것이야.』
대원이 손끝으로 강 쪽을 가리켰다.
『물체가 보입니다.』
검은 물체가 희미한 빛을 반사하면서 물 위에 떠있었다. 무엇인지 판단이 가지 않는 물체였다.
『언제부터 떠있었나?』
『10분 정도 되었습니다.』
『경비본부에 보고했나?』
『좀더 관찰을 하고 보고하려고 아직 하지 않았습니다.』
물체가 느리게 접근해 오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 속도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하류로 흘러가는 듯했다.
『저것이 무엇인가 잘 관찰을 해.』
『네. 알겠습니다.』
명지는 인접 초소로 가서도 먼저 초소의 근무자가 자기에게 한 보고를 받았다. 내용이 같았다. 그는 경비정에 타고 있는 손 경장을 불러 확인을 하였다. 손 경장은 상류에서 떠 내려오는 나무등걸로 보인다고 보고해 왔다. 손 경장의 보고가 타당성이 있을 것 같았다. 명지는 파출소로 가서 눈을 좀 붙일까 하는 생각을 접었다. 정문 경비실로 돌아와서, 그 시간의 근무자인 보안과 이 순경이 종이 컵에 타주는 커피를 마셨다. 손 경장이 현장에 가서 강물에 떠있는 물체가 나무등걸이 틀림 없음을 확인하고 보고해 왔다.
명지는 박 신부가 보내온 팸플릿을 집어 들었다. 앞면에 성가가 인쇄되어 있었다.
장하다 복자여
주님의 용사여
높으신 영광에 불타는 넋이여
칼 아래 스러져 백골은 없어도
푸르른 충절 찬란히 살았네
무궁화 머리마다 영원한 복자여
승리에 빛난 보람
우리에게 주옵소서
명지는 팸플릿을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절두산이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소장님, 일어나세요.』
누군가 명지를 흔들어 깨웠다. 잠깐 졸았던 것 이다. 명지는 눈을 떴다.
『전화 받으세요.』
이 순경이 송수화기를 넘겨주었다. 박 신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고가 많아요. 나 박 신부예요.』
『신부님, 웬 일이세요?』
『소장에게 부탁이 있어요.』
명지는 이 밤중에 박 신부가 전화를 거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뭡니까?』
『성 안나 자매님의 동생이 집에 안 들어왔대요. 찾아 보아 주었으면 좋겠어요.』
박 신부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무엇인가 불길함을 예감하고 있는 듯했다.
『성 안나 자매님이라면? 당인리 쪽에 사는 여자 분을 말합니까?』
그는 당인리 발전소 쪽에 살고 있는 오뉘를 머리에 떠올렸다. 성 안나 자매란 이들 오뉘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네, 맞아요. 자매님에게 남동생이 있어요.』
『알겠습니다. 찾아 보겠습니다.』
명지는 통화를 끝냈다.
그는 마음이 어수선해졌다. 인접 파출소로 전화를 걸어서 모조권총을 휴대하고 다니는 젊은이, 정신이 좀 이상해 보이는 젊은이가 있는가를 수소문하였다. 경찰서에 속한 각 파출소를 모두 확인했으나 그런 젊은이를 보호하고 있는 파출소는 없었다. 그는 순찰근무자와 방범대원이 그 청년을 찾아 보도록 하였다. 한 시간 후에 박 신부에게서 또 전화가 왔다.
『뭐, 소식이 있어요?』
『관내 각 파출소에 찾아 달라고 수배를 해 놓았으나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저희 직원들도 찾고 있으니 기다려 보시지요.』
『알겠어요.』
명지는 통화를 끝내고 나서 파출소 밖으로 나왔다. 그가 그에게 들려준 하늘에 많은 얼굴이 떠있다는 말과, 교각을 하나 하나 세어나가던 행동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하였다. 그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에는 아무 것도 떠 있지 않았다. 구름이 짙게 깔려 별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문득 성 안나 자매의 동생이 하늘을 바라보다가 절두산 절벽에서 실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생각을 고쳐먹었다. 경비근무자들이 24시간 경비하는 경비구역 내에서 그가 실족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경비정을 매어 둔 바지로 내려갔다. 손 경장이 배 안에서 밖으로 나왔다.
『아무래도 강안을 수색해야 할 것 같아.』
『무슨 일이 있습니까?』
『신부님의 부탁인데, 머리가 좀 이상해진 젊은이가 가출을 했다는 것이야. 그런데 아무래도 그 젊은이가 강물에 빠진 것 같아.』
『소장님, 너무 성급한 판단이 아닐까요?』
『예감이야. 며칠 전에 내가 그 젊은이를 집에 바래다 준 적이 있는데, 그가 내게 보여주고 들려준 행동과 말이 무엇인가를 예시하고 있었거든.』
『소장님은 그 젊은이가 물에 빠졌다고 단정을 하시는 군요.』
『이러한 예감을 갖는 사람은 나 뿐이 아닐 거야. 본당 신부님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시겠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이 밤중에 내게 다급하게 전화를 했을 리가 없지 않아.』
『만일 마포대교 쪽에서 빠졌다면 서강 후미진 곳에서 한 번 떠오를 가능성이 있고요, 그렇지 않으면 난지도 앞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난지도를 빠져나가면 그 다음엔 행주이지요.』
손 경장의 말 대로라면 이 밤중에 경비정을 띠운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다. 이 일은 잠수부를 동원하여 물밑을 수색하여 해결할 일이었다.
과연 청년의 시신은 사흘 후에 난지도 앞 강에서 건졌다. 명지는 경비정에 젊은이의 시신을 싣고 양화진으로 돌아왔다. 박 신부의 집전으로 영결미사를 올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성 안나가 경비정에서 하선하는 동생의 시신을 붙잡고 통곡했다. 애간장이 다 끊어져나가는 울음소리였다. 명지는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었다.
로마 교황 바오로 Ⅱ세는 1984년 5월 3일 절두산 성지를 참배했다. 그리고 같은 해 5월 6일에 여의도 광장에서 103위의 성인의 시성식을 집전했다. 시성식장에 100만 명 이상의 신도가 운집했다고 보도되었다. 시성식이 끝난 다음 여의도 광장은 평상시의 상태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