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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사우회보 36호
<정동산책>
사우회는 ‘웰빙 쉼터’
‘존 웨인 증후군’서 벗어납시다
지 용 우 회 장
미국에서는 ‘존 웨인 증후군’이란 말이 요즘도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고 합니다. 다 알다시피 존 웨인 이라면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장장 50년간을 미국 카우보이(서부)영화의 주인공역을 독차지하다시피 한 남성의 심벌이자 강자의 대명사였습니다. 존 웨인 증후군이란 ‘남자는 강해야 한다’ 또는 ‘강해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몸이 아파도 건강한 체 하거나 병을 숨기고 혼자서 고민하는 허세를 비꼰 말입니다. 물론 남자가 여자보다 힘이 강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러냐? 고 깊이 캐고 든다면 답변은 궁해질 수 밖에 없겠지요. ‘존웨인 증후군’이란 말을 지어낸 사람은 미국 하버드대 의대의 하비 사이먼 교수였습니다. 그는 ‘남자는 여자보다 약한 존재’라고 단정적으로 말해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사람입니다. 그의 지론에 따르면 남성들은 평소 건강문제에 소극적이고 회피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병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병원을 찾는 버릇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오래 살려면 질병의 조기발견과 예방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충고하고 그러려면 남성들 마음속에 자리 잡은 ‘존 웨인 증후군’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즉 몸에 사소한 이상이 있어도 병원을 찾아가 조기진단을 받고 조기에 예방 조치하는 것만이 오래 사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퇴직언론인들의 친목단체인 경향신문사우회가 출범한지도 벌써 11년이나 되었습니다. 창립당시 50대 회원은 60대로, 60대는 70대 노인으로 변했습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여년 동안 이미 타계해서 만날 수 없는 그리운 얼굴들도 적지 않습니다. 회원수첩을 들여다보아도 이제는 70대 회우들이 사우회의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세월은 유수(流水) 같다는 말이 정말 실감 납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건강이 최고의 가치라 하겠습니다. 첫째도 건강, 둘째도 건강입니다. 그러자면 우리는 우선 존 웨인 증후군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아프면 엄살을 부려서라도 가족들의 관심을 끌어야 합니다. 자주 병원에 들러 건강상태를 체크하는 일을 생활화해야겠습니다. 그리고 하는 일 없이 집안 울타리 안에 칩거(蟄居)하지 마시고 무슨 운동이라도 좋으니 매일 계속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기 바랍니다. 주제넘은 말씀 같이 들리겠지만 이런 저의 당부 말씀은 제가 무슨 의학전문가라도 되어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제 자신 건강을 너무 과신한 나머지 나이를 잊고 인생의 전성기 때 마냥 과음하다가 쓰러져 병원신세를 진 뼈아픈 체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회우 여러분! 노년에도 모두들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 우리의 만남도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을 것이 아닙니까. 자주 사우회에도 들르셔서 옛 친구 들과 담소도 나누시고 바둑과 장기도 두시며 때로는 소주잔이라도 기울이시며 인생을 논하는 자리를 만들어 보시는 것이 메마른 삶을 윤택하게 하는 방법이 아닐까요. 사우회는 항상 열려있는 여러분의 웰빙 쉼터입니다.
표완수 사장·송영승 국장
중앙대 언론문화상 수상
중앙대는 제19회 중앙언론 문화상 수상자로 표완수 YTN사장(수습 14기·사진 좌) 송영승 편집국장(수습 22기)을 선정했다고 10월 8일 밝혔다. 표사장은 자사의 콘텐츠 혁신과 경영혁신을 주도한 점을, 송 편집국장은 대형 기획기사를 통해 사회적 담론을 제시해 저널리즘 가치를 실현한 점을 각각 인정받았다.
사우회 발전 현안 논의
본회 회장단 간담회
지난 10월 10일(수요일) 본회 회의실에서 회장단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를 갖고, 사우회 발전에 관해 심도있는 의견을 교환했다. 특히 이날 간담회에서는 연말 송년모임, 사우회보 제작, 동호인모임의 활성화 등 제반문제를 비롯, 회원 배가 운동 등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한편, 미국순방을 마치고 인사차 내방한 최순열 본회이사도 참석해 한층 분위기 있는 모임이 됐다.
三重苦에 시달리는 노인들
건강·외로움·용돈 부족
한국 노인헌장은 그럴듯 한데…
일자리 하나 만들어주지 못하나
정 운 종 편집주간
지하철 노선마다 노인들 좌석은 언제나 비어있는 자리가 없다. 70은 훨씬 넘게 보이는 노인도 서서 가야 하는 처지니 장수시대가 실감나는 세상이다. 그 많은 노인들이 다 어디를 가는지, 또 어디 가서 무엇을 하는 지는 알바가 없으나 집에 있기가 무료해서 무작정 나선 분들도 없지 않을 듯싶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한국의 노인들은 삼고(三苦)에 시달린다고 한다. 외로움·건강·용돈 세 가지 고민이 그것이다. 몸은 말을 안 듣고 아픈 곳은 늘어나는데다 용돈마저 궁하니 그럴 수밖에 더 있는가. 그중에서도 할 일이 없는 무료(無聊)함, 말하자면 고독함이 제일 고통스럽다고 한다. 뉘라서 날 늙었다 하는고/ 늙은이도 이러한가/ 꽃보면 반갑고 잔(盞)보면 웃음난다/ 춘풍에 흩날리는 백발이야 낸들 어이하리… 청구영언에 나오는 시구로 늙는게 서러운 노인의 심경을 애틋하게 묘사한 대목이다. 노인들이 늘어날수록 젊은이들로서는 노인들이 부담스런 존재로 보이기 쉽다. 노인가(老人歌)에도 보이지만 젊은이가 노인을 괄시해 원망스럽다는 구절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노인 경시 풍조를 엿보게 한다. 어와 청춘 소년들아/백발보고 웃지마라/덧없이 가는 세월 넨들 매양 젊을소냐…?B. 어른을 몰라보는 젊은이들에게 한번쯤 읊어 주고 싶은 구절이다. 게다가 황혼 이혼이 늘고 어떤 노인은 나이 80에 이혼을 결심한다니 부부해로란 옛말인가. 말벗도 없는 고층아파트의 한 방에서 유폐(幽閉)생활을 하고 있는 노인, 이민 가버린 자식들에게 버림받은 노인들도 서럽지만 늙어 이혼을 결심해야 하는 노부부의 갈등을 치유할 명약은 없는 것일까. 노인은 나라의 어른이다. 노인은 자손의 극진한 봉양을 받아야 한다.노인은 의(衣)·식(食)·주(住)에 있어서 충족하고 안락한 생활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B 한국의 노인헌장(老人憲章)만은 어느 선진·복지국가의 노인헌장도 뺨칠 정도로 그럴 듯한데 현실은 딴판이니 한심스럽다. 경로당(敬老堂)을 노인복지센터?B로 만들겠다고 큰소리치던 정부의 약속은 구두선이 돼버린 지 오래지만. 무료하게 시간만 가기를 바라는 할일 없는 노인들에게 무엇인가 고용차원의 일거리를 만들어주는 일도 젊은 실업자 구제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는 요즘이다.
2면
<時 論>
대선과 ‘대통령 大罪論’
국민과 역사 앞에 후회 없는 한 표를
김 경 래 명예회장
대통령이란 단어가 가장 많이 의미 있게 쓰여 지는 시국에 접어들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천하대세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특히 금년 12월 19일로 예정된 대선에는 북의 김정일과 그의 추종세력들이 총동원 될 것이 분명해 졌다. 정상회담이 대선용이었다는 분석도 거기에 근거한다. 따라서 압도적인 표차로 좌파 10년을 퇴출시키지 않으면 자유민주 대한민국은 제2의 월남 꼴이 되고 말 것이다. 파리 평화협정에 속은 월남은 미군철수에 동의했다. 미군과 함께 외국 자본들이 월남을 떠났다. 다음날 공산월남은 협정을 파기하고 총공세를 취했다. 그리하여 자유월남 공화국은 소멸되었다. 보트피플 60만, 대량학살 200만, 그리고 경제는 거덜 났고, 교회와 성당, 사찰들은 숙청 대상이 되었다. 1960년 4.19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스스로 하야하고 망명길에 올랐었다. 그 당시 남북한의 공산좌파들은 일제히 일어나서 독재자 이승만?B을 성토했다. 살벌한 그 와중에 한 사람의 목사 김린서 옹이 어엿이 나타나 “망명노인 이승만을 변호함”이란 책을 펴냈다. 이승만은 대통령이 절대로 범해서는 안 되는 네 가지 대죄(大罪)는 짓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첫째: 전쟁패망 죄, 둘째 : 국체변혁 죄, 셋째 : 영토상실 죄, 넷째 : 국록토색 죄, 그 외의 크고 작은 허물과 죄는 다 용서 받을 수 있고 덮어두어 역사에 맡기면 된다고 했다. 이승만 이후의 역대 대통령을 김린서 잣대로 살펴보면 적어도 몇 사람은 국민저항권 발동대상이었다. 서해교전에서 패하게 한 자, 독도 영유권을 외면한 자, 자유민주체제를 허무는 자, 대북비밀 송금·공적 자금 남용·재산 해외도피 등 반 헌법적 돌출 행동으로 국민들을 불안하게 한 자들이다. 지난 10월 4일 평양에서 노무현대통령은 김정일과 만나 평화선언을 발표했다. 허울이 좋아 평화 선언이지 일방적으로 퍼주겠다는 약속에 다름 아니다. 한두푼도 아니고 천문학적인 액수로 퍼주겠다는 것은 국민들에게 그만큼 부담을 주겠다는 얘기다 . 국민들의 동의도 없이 대통령 마음대로 이렇게 퍼주겠다니 임기 말을 앞두고 해도 너무했다는 비난의 소리가 높다. 한나라당은 이명박 후보를 대선후보로 확정했지만 정신 똑 바로 차리고 시선을 집중시켜야 할 곳이 어딘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경선 승리가 위기의 시작일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남북관계만 잘되면 다른 건 다 깽 판쳐도 좋다”고 한말이 누가 어디서 왜 했는지를 되새기면서 2인 3각 경주에 나서야 한다. 대통령이 되었던 사람, 대통령 직에 있는 사람,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 모두에게 김린서 목사의 대통령 대죄론을 놓고 국민과 역사 앞에 자유로워지기를 기대해 본다
. “어눌한 말투에 호감이 갔단다”
박무일 부회장 LA한인방송 17년 회상
박 무 일 본회부회장
◇ 내가 미국 방송을 시작한지도 어언 17년이 되었다. 1991년 신문사 사업국장으로 발령 났을 무렵. ‘주식회사 문화방송 경향신문’ 시절부터 가까웠던 MC 이종환 씨가 미국 LA에서 ‘미주한인방송’이라는 이름의 방송국을 설립해 놓고 나더러 하루 30분만 전화대담에 응해주면 “자동차 월부 값을 물어주겠다”고 솔깃한 제의를 해와서 발동이 걸렸다. 그런데 우연히도 ‘대박’이 터졌다. 내 프로그램에 광고가 물밀듯이 밀려들었고 드디어 한 시간짜리로 확대되었다. 그 후 1년쯤 지났을 무렵 평소 필자와 친분이 있던 작가 최인호 씨가 미국서 밀명(?)을 띠고 특파된 친동생 최영호(당시 라디오코리아 전무, 현 라디오코리아 사장) 씨를 저녁식사 자리에 합석시켰다. 그리고 나는 스카우트 당했다. 그 무렵은 신문사에 새벽 5시에 출근해서 8시에 방송을 마치는 강행군이었지만 수입이 쏠쏠한 맛에 고달픈 줄도 몰랐다. 그때를 미루어 봐도 나는 소시민이었다. 95년 5월 신문사를 떠나서 난생 처음 LA 땅을 밟았을 때 나는 또 한번 얼굴 화끈한 장면과 맞닥뜨렸다. 코리아타운에 있는 거리에 〈환영! 박무일 선생 방미!〉 이런 글씨가 커다랗게 박힌 플래카드가 걸려있지 않은가. 그러고 안내한 현지 관계자가 “선생이라는 타이틀로는 왕년에 김대중 선생을 제외하고는 이런 환영은 처음”이라는 토까지 다는 것이었다. 나는 솔직히 그 장면이 면구스러워서 기념 사진 한 장 찍어달라는 말도 못했다. 그 이후 나는 내 프로그램을 즐겨 듣는 우리 동포들을 만나면 곧잘 묻는다. “왜 내 방송이 좋으냐고…?” 그러면 대체로 하는 대답, “말도 가끔 더듬고 사투리도 쓰는 사람이 설마 거짓말까지 하겠냐 싶어서죠…”다. 그러니까 내가 방송에 무슨 특별한 재능이나 노하우가 있어서라기 보다 오히려 방송 부적격(?)적인 조건이라서 신뢰가 간다는 말들이 대부분이었다. 좀 창피하다. 오늘도 조금 더듬으면서 방송 시간을 채우고 이 원고를 쓴다.
연작이 어찌 대붕의 뜻을…
◇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의 대화 한마당은 생각만 해도 부끄럽고 낯 뜨겁다. 2002년 어느 날 경상북도 포항 MBC의 프로그램 ‘100분 토론’에서 나는 사회자였고 그는 5공시절 한때 실세였던 허화평 씨와 함께 출연했다. 두 사람은 막상막하의 대결을 펼쳤고 방송은 밤 11시에 시작, 새벽 1시경 끝났다. 문제는 서울로 돌아오는 승용차 속에서 생겼다. 경부고속도로의 심야는 일촉만촉(?)으로 사고와 정체가 그날따라 속출했다. 그것도 거의 차체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대형 사고였다. 핸들을 잡은 기사가 깜빡 졸기라도 하는 순간이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광경이었다. 그래서 기사를 졸지 못하게 할 생각에 소음효과를 노려 둘은 계속 떠들었다. “내가 신문사 떠나서 잡지 같은 데 글을 써봤지만 요즘 세상에는 돈이 안 됩디다. 그런데 방송은 대우가 꽤 좋아요. 유시민 선생도 기왕에 방송에 발을 들여놓았으니 칼럼 같은 원고 써서 시비 걸리고 그러지 말고 방송이나 열심히 해보세요.” 통성명 끝에 같은 지역에서 초·중·고등학교에서 마쳤다고 그는 차 중에서 나를 깍듯하게 선배 예우를 했다. 한때 그도 MBC 본사 ‘100분 토론’ 프로그램의 사회자였었으니 내가 못할 말 한 것도 아니었다. 당시 원고 여남은 장 써봐야 10만~20만원 안팎이었는데 포항 MBC 그 프로그램은 비행기 삯을 빼고도 90만원이 넘었다. 아마 그도 그 정도는 받았을 테니 내 말이 아주 틀린 것 같지는 않았다. “나도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해요” 하고 그는 선뜻 맞장구를 쳤다. 그러고 헤어졌다. 한동안 잊고 있던 중 ‘유시민’이라는 이름이 난데없이 클로즈업 됐다. 뒤에 그가 경기도 한 지역 재보궐 선거 후보로 신문, 방송의 조명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당선돼서 ‘백바지 선서 시도’로 뉴스의 주목을 끈 국회의원이 됐으며 다음에는 개혁신당의 창당주역, 이어서 장관도 했고, 최근에는 범여권 대통령 후보로 서치라이트를 받았다. 등에 땀이 밴다. 내 말대로 했으면 그는 신세 조질 뻔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봐도 엉망진창으로 잘못 본 것이다. 국회의원에 장관에, 한때는 이 나라 국가수반까지 노릴 정도로 꿈이 태평양만한 사나이를 그저 식구나 굶기지 않는 소망이 고작인 나와 같은 소시민으로 착각해서 충고라고 하고 앉아 있었으니 돌이켜 생각해보니 얼마나 황당하고 민망한 일인가. 그야말로 대붕(大鵬)을 잘못 본 연작(燕雀)의 수치스러움이었다
3면
이두성 회우
어떻게 지내십니까
57년을 신문광고와 함께
희수 지났어도 봉사활동에 여념 없어
1.4후퇴때 단신월남 온갖 고생 이산가족 신청 아직도 소식없어
신문사 광고부 쪽 일에 오래 종사해온 언론인들이라면 이두성(李斗星) 여사(본회 이사)를 모르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1950년대 후반 어린 나이에 연합신문사에 입사해 줄곧 광고 업무에만 종사해온 이 회우는 그로부터 57년간을 신문광고와 함께 했다. 가히 신문광고분야의 달인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이 회우의 신문인생은 거의 광고인생 그 자체였다. 한참 뜰 때는 국방부 정문 헌병이 이 회우가 탄 지프차의 번호만 보고도 깍듯이 거수경례를 할 정도로 지명도가 높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연합신문에서 성가를 올린 이 회우는 그 후 일일신문으로 잠깐 자리를 옮겨 역시 광고 수주실적을 과시했고 대한일보(7년) 신아일보(1년) 중앙일보(11년) 경향신문(7년)을 거쳐 상당기간 광고영업소를 직접 운영하며 폭넓은 인간관계를 형성해 왔다. 매체가 다양해진 지금 신문광고가 옛날만큼 인기를 끌지는 못하지만 하나의 광고를 만들기 위해 쏟아 붓는 광고인의 노력은 이 분야에 종사해 보지 않은 사람은 실감하지 못한다.. 처음 신문광고 일에 참여하면서 이 회우는 신문광고가 신문사 사세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름대로 자부와 긍지를 느꼈다고 한다.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자신의 얼굴이 곧 회사의 얼굴이라는 생각으로 광고주를 대할 때 마다 뿌듯한 성취감을 맛볼 수 있었다는 그의 회고담은 신문광고의 진수가 무엇인지를 또한 일깨워 준다. 그러나 이 회우는 뜻하지 않은 세금폭탄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광고 영업소를 운영하며 법원 공고를 대행해오던 많은 신문광고인들에게 생각지도 않았던 세금이 한꺼번에 부과 되면서 이 회우도 본의 아니게 수난을 겪는 입장이 된 것이다. 동료들 간에 우정이 두터웠던 것은 이 회우가 친 남매처럼 다정하게 우애를 돈독히 할 수 있도록 인보정신을 발휘해 왔기 때문이다. 이 회우는 특히 사우회 모임이 있을 때마다 거금을 희사하는 등 사우회 발전에도 공이 컸다. 늘 겸손해 하면서 묵묵히 협조해온 이두성 회우가 본회 이사로서 큰 몫을 해 온 사실을 회원들은 모두 감사히 생각하고 있다. 1950년 1. 4후퇴 당시 홀홀 단신 월남 하여 파란만장 온갖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기 까지 부군의 외조가 컸음도 그는 고맙게 생각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2남 4녀의 다섯째 딸로 태어나 올해 나이 78세, 그가 애타게 그리든 부모님과 혈육지친은 거의 타계했으리라는 것이 이 회우의 짐작이다. 살아 있다면 막내 여동생 정도, 이산가족 찾기에 신청은 했지만 아직 소식 없는 것을 보면 그마저도 행방 불명이가나 이 세상에 없을 공산이 크다며 눈시울을 적신다. 틈나는 대로 부군과 인근 ‘하늘공원’을 산책하며 건강을 다진다는 이 회우는 주일마다 성당에 나가 봉사 활동에도 여념이 없는 독실 한 신자이자 인정 많은 할머니로 동네에 칭송이 자자하다. 어느날 서울 시내 작은 음식점에서 된장찌게를 들며 근황을 묻는 기자에게 “늘 하나님께 감사하며 산다,”고 미소를 짓는 이회우, 그의 여생이 더욱 건강하고 다복할 것이라는 믿음이 갔다. 〈J〉
만나서 한판 둡시다
경향OB기우회 1년 회고
구 건 서 기우회장
바둑판의 풍운조화에 인생의 쾌락이 경향OB기우회가 발족한지 벌써 1년이 가까워온다. 지난 해 12월 21일 창립총회를 가진 이후 지금까지 월례 바둑 모임을 한번도 거른 적이 없다.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스럽다. 기우회는 이제 경향OB산악회와 함께 사우회 산하 양대 동호인 모임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그동안 활발한 활동을 해오던 몇몇 동호인 모임이 지금은 유명무실하게 된 마당에 기우회의 존재는 어느때보다 뚜렷하다. 지난 1년 동안 기우회 운영과 활동을 뒷바라지 해온 필자는 앞으로 기우회가 더욱 발전하고 성장 하리라 믿는다. 이러한 믿음에는 몇가지 근거가 있다. 우선 회원들 사이가 원만하고 참여가 꾸준하다는 점을 들수 있다. 명색이 회장인 필자의 바둑급수는 5급쯤으로 회원들 중 최하위 수준이다. 말하자면 사병출신이 재향군인회 회장을 맡은 꼴이다. 그런데도 ‘하수 회장’의 하는 일에 ‘상수 회원들’ 모두가 협조하고 하수 다루듯 하지 않으니 고맙기 그지없다. 또 하나는 회원들의 대국자세나 월례모임의 분위기를 들 수 있다. 흔히들 바둑은 수담(手談)이라고 한다.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손으로 대화를 나눈다’는 뜻이다. 그런데 간혹 바둑 친구들이나 바둑 모임에 가보면 손보다 입이 앞서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수담은 초급인데 입담(구라)은 유단자 급인 친구들이 분위기를 흐려놓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우리 기우회 회원들에는 이런 사람이 한명도 없으니 다행스럽다. 기우회 월례모임은 사우회 회원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바둑을 두지 못해도 매달 둘째 목요일 오전에 사우회에 나오면 점심식사와 대화의 즐거움을 나눌 수 있다. 작가 정비석 씨는 생전에 다음과 같은 바둑예찬론을 쓴 적이 있다. “순리를 알아 갈수록 재미나는 것이 바둑이기에 나는 노후의 쾌락을 바둑에서 찾으며 살아갈 생각이다. 바둑판 위에서 소리 없이 전개되는 풍운조화야 말로 인생최대의 쾌락이라고 생각 한다.” 다소 과장된 감이 없지 않으나 퇴직 후 노후 생활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우회 회우들이 한번쯤 음미해 볼만하다. 이 글을 읽고 기우회에 가입하는 회원들이 급증하기를 기대하는 것이 필자의 희망이다.
인왕산 오른 산우들 -
경향신문창간 61돌 기념 산행-
경향신문OB산악회(회장 이상호)는 지난 10월 6일 경향신문창간 61주년을 맞아 인왕산에서 기념등반행사를 가졌다. 화창한 날씨 속에서 진행된 이날 산행에는 20여명의 회우들이 참여해 경향신문 창간 61돌을 축하하며 경향신문의 끊임없는 발전과 도약을 기원했다. 이날 창간기념 산행행사를 위해 정운종 회우(산악회 고문)는 7m짜리 대형 플래카드를 제작, 협찬했으며 조명동 회우는 대형 카메라를 들고 이날의 행사 이모저모를 하나도 빠짐없이 렌즈에 담는 수고를 해주었다. 또 이날 산행에는 10여년 동안 주말마다 인왕산을 오른 인왕산 전문등산인 강윤상 회우의 안내로 산행로를 따라 곳곳의 명소를 탐방했다. 창간기념 산행에 참여한 회우는 다음과 같다.(가나다 순) 강윤상 구건서 김무부 김성묘 김영재 김종향 김진룡 김충한 박강지 박오영 박정강 양희대 여구만 유병희 이상범 이상호 이성희 이정세 임상학 장 옥 정운종 정종상 조명동 최귀조 등.
대둔산 절경에 감탄
경향신문사우회 회우들 다수가 지난 10월 26일 단풍이 절정을 이룬 충남의 대둔산(878m)을 올랐다. 각 언론사 출신 언론인들로 구성된 大韓言論人會山岳會(회장 조창화) 주관으로 이루어진 대둔산 산행에는 40명의 언론인 산우들이 참여했다. 이상호 경향OB산악회 회장의 산행안내로 진행된 이날 산행에는 본회 지용우 회장을 비롯, 이구열 이정세 정운종 최귀조 맹태균 김 화 여구만 양성목 장 옥 임상학 김성묘 회우 등 경향사우들이 동참했다. 본회 회우들의 대둔산 산행 소식을 듣고 대전의 유인석 회우(전 충남도의원)는 옥천의 세천 막걸리(2말)와 손두부를 직접 가져와 회우들에게 일일이 잔을 돌려 박수갈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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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회 오심을 환영합니다
◇尹德漢 회우 = 서울 성동구 옥수동60 옥수강변 풍림아이원아파트 102동 302호(6287-3878, HP=011-9928-5822)
◇金昌裕 회우 = 경기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 죽현마을 현대아이파크 204동 903호 (05 02-734-7000, HP=011-730-2114)
◇鄭鍾相 회우 = 서울 강동구 길동 91-1 (471-5949, HP-019-691-5949)
O B기우회 총무 朴愚鶴회우 선임
OB기우회(회장 具健書)는 새총무에 박우학(사우만평 화백)회우를 선임했다.
본사인사
▲D&G본부장 직무대행 심언준 〈7월30일〉
▲편집국 국제부 차장 이재국 〈8월 2일〉
▲편집국 사회부 의학전문 기자겸 헬스경향 팀장 이준규 〈10월18일〉
2007년 회비내신분
7월= 김장기 유인석 김윤권
8월= 김창유
9월= 정종상 윤덕한
10월=김용언
소식 알려 주십시오
본회는 격월로 회보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알찬 소식지가 될수 있도록 사우회 운영을 위한 좋은 의견이나 주변에 있는 사우들의 크고 작은 소식을 하나도 빠짐없이 소식지에 싣도록 하겠습니다. (회보편집자)
동 정
◇李桓儀(전경향신문사장)회우=서울서초구 방배4동 805-1호 라빌라트 402호로 이사(533-6350,HP=011-229-5523) ◇朴南熙회우=7월 14일 새벽 적십자 병원서 장모상(031-285-3088) ◇朴康雨회우=집전화 6413-1115로 변경 HP=011-9760-1115 ◇沈相基(전경향신문사장)회우=서울미디어그룹 시사저널대표이사 회장겸 발행인(011-9729-1133) ◇李耕一(80년 해직언론인 협의회회장)회우=간행물 윤리위 제3심의위원회(정기간행물)위원장 위촉(HP=010-9907-2252) ◇李鶴基회우=도봉구 창동347 주공3단지아파트 318동 1310호로 이사(904-6442,HP=016-695-2075) ◇金海原회우=전북 무주군 적상면 포내리 318-20?A반딧불 팬션?B로 이사(063-324-4122, HP=011-686-4167) ◇金忠漢회우=성동구 하왕십리2동 풍림아이원아파트 103동 1802호로 이사(835-3758, HP=011-9787-3758) ◇全大喆회우=6월4일 LA친지 방문차 50여일간 머물다 8월16일 입국 (031-919-7167, HP=0 19-311-8297) ◇金鎭燮회우=8월16일 강북삼성병원서 상배(387-2290, HP=010-2890-2290) ◇張峻峰(국학원상임고문)회우=11월6일 제53회 고려대 최상용교수의?A지금 평화와 중용을 생각한다?B를 주제로 대한출판문화 협회강당에서 가졌다. ◇崔相 회우=경기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66 ‘까치마을 신원아파트312동102호로 이사(031-714-9650, HP=016-737-9650) ◇金昌洽회우=HP=010-2217-2240로 변경(031-984-2240) ◇趙庸中(전편집국장)회우=서울대 분당병원서 1주간 입원, 척추협착증 수수을 받았음.(031-897-3475) ◇文振英회우=9월5일 16시15분 영동세브란스병원서 부친상(019-272-2416) ◇李相秀회우=9월7일 오전4시30분 서울의료원에서 장모상(011-745-5881) ◇金壽萬회우=부천시 소사구 소사본3동 221-35호(지층)로 이사(032-343-5336,HP=019-437-6335) ◇安信培(전경향신문사장)회우=9월6일(일요일) 1시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장남결혼(549-3833) ◇金漢吉회우=9월29일(토요일) 오후1시 대구 그랜드호텔 다이어스티A에서 아들(재영군)결혼 (914-2781, HP=011-9146-2781) ◇李 善회우=9월24일 동대구 병원서 장모상(031-441-4513, HP=019-258-4513) ◇金正孝회우=10월20일(토요일)낮12시 여의도 웨딩컨벤션3층 그랜드볼룸에서 딸(지연양)결혼(032-525-7909) ◇金后蘭(?A자연을 사랑하는 문학의집 서울?B이사장)회우=삼성생명 공익재단 제7회 비추미 여성대상 달리상(문화,언론,사회공익부문)에 선정,10월10일 발표. ◇任殷淳,金海鎭회우=한나라당 이명박대선후보가 40여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특보단을 10월10일 발표.언론 특보중 본회 회우2명을 내정. ◇洪玩善회우=10월27일(토요일)오전11시30분 서울 교육문화회관 3층 거문고B,C홀에서 딸(승은양)결혼.(2643-5528, HP=017-275-5528) ◇金鎭滉회우=11월3일(토요일) 낮12시 청담웨딩프라자 2층 노블레스홀에서 딸(경미양)결혼. (557-6122, HP=016-9477-6068) ◇姜炳國회우=서울서초구 서초동 1642-34 래미안서초7차아파트 102동 303호로 이사(3471-4226, HP=011-9707-4225) ◇李萬福회우=(주)웰빙바스 자재부장(서초구 방배동905. 3472-3690, HP=011-9349-3243) ◇車濟宇회우=es대표(강남구 포이동219-1 청우빌딩 2층.577-3501, HP=011-243-5702) ◇郭忠道회우=10월17일(수요일)정오12시 강남구 역삼동 성당에서 딸결혼(031-262-8620, HP=011-257-7237) ◇朴錫興회우=강남구 도곡1차 아이파크아파트 105동 1604호로 이사(3642-2271, HP=019-398-2271) ◇姜信煥회우=아시아 투데이 판매이사 (영등포구 여의도동4-11 인영빌딩5층.769-5052, HP=019-250-7677)·權寧一회우(발송팀장) ◇金鐘玉(모터 매거진사장)회우=서초구 양재2동 5-16 연이빌딩 2층으로 사무실 이전(578-5403~6) ◇金 和(본회이사)회우=서대문구 홍은3동 393-2 신원지벤스타 105동502로 이사 (303-2813, HP=019-9177-2813) ◇鄭雲宗(본회 이사. 편집주간)회우 =‘대한언론인회 30년사’(4. 6배판 740쪽 비매품) 대표집필 끝내. 오는 11월 30일 오후 5시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사단법인 대한언론인회(회장 제재형) 주관으로 출판 기념회를 갖는다.
◇李永煥(고운손카드방대표)회우=후지제록스(컬러복사,출력,소책자) 신형기계도입(2278-9339, HP=011-282-1255)
본사 편집국 산업부 李柄光 부장 別世
경향신문 이병광 편집국 산업부장이 9월1일 별세 했다. 향년 45세. 고 이부장은 지난해 11월 암 진단을 받고 투병해 왔으나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했다. 고인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87년 경향신문 수습기자 27기로 입사, 사회부 기자·정치부 차장 등을 지냈다. 95년 외무부 출입시 ‘한·미 팀스피리트 훈련중단’ 기사를 특종보도하는 등 성실한 언론인 생활로 선후배들의 신망이 두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