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영화계에는 10년 정도에 한번씩 흥행 역사를 새롭게 쓰는 일들이 벌어져 왔다.
70년대의 스타워즈, 80년대에 E.T, 90년대의 타이타닉은 세상 어느 영화 페이지에도 맨 첫줄에
기록되어 지고 있다. 하지만 거대하나 차고 넘칠 그릇은 못되는 군웅할거의 시대로 10년이 다해
가는 지금, 드디어 21세기의 첫번째 페이지를 장식하는 영화가 탄생하였으니.
[타이타닉]이후 12년 동안 그 어떤 영화도 근접하지 못했던 기록에 다가섰다는 것 만으로도
놀라운 이 영화는 동시에 [대부]의 평점을 뛰어 넘어 더욱 세간을 놀래키고 있다.
그 열풍의 실체인 [다크나이트]를 직접 만나보라. 일단, 영화의 오프닝을 장식하는 5초 남짓한
무음의 검푸른 폭발 영상은 [다크나이트]라는 영화 전체를 소스라치도록 놀랍게 함축해 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 짧은 영상은 '레드썬' 외침처럼 극장에 앉은 수많은 관객들을 집단최면
의 상태로 인도한다.
필자가 초등학교 이후 30년이 넘도록 극장을 내집처럼 드나들었지만 영화제가 아닌 일반 상영관에서
관객들이 엔딩과 함께 박수를 치기 시작한 영화는 결단컨데, 처음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걸렸던 오프닝의 최면이 풀리면 관객들은 마치 가위에 눌렸다 깨어난 것 처럼 서늘해진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기도 모르게 박수를 치게 되는 것이다.
지금껏 수퍼히어로 영화들은 아무리 철학적인 메세지를 바닥에 깔고 시작하더라도 그 초인적인 능력
때문에 '남의 얘기'로 전락 할 수 밖에 없는 태생적인 한계를 갖고 있었다.
'나는 배트맨을 잘 모른다'는 놀런 감독의 말은 '나는 음계를 모른다'는 음악가의 말보다 더 경악할
일이 었지만 그는 결국 세상 누구도 영화사를 새로 쓸 주인공이 될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배트맨
시리즈를 '걸작'으로 끌어올리는 충격적인 아이러니를 보여주었다.
배트맨을 잘 모르기에 배트맨 탄생 70년간 쌓아올려진 거대한 이미지에 매몰될 수 없었던 감독은
자신이 공고하게 그려왔던 범죄영화에 배트맨의 이미지만 빌려오게 되는 역발상을 성공시켰다.
이 영화의 1등 공신인 히스레저(조커역) 는 역사상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범죄자인 '조커'를 진정한
악의 화신으로 잉태하였다. 수많은 영화들이 그려온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주인공과 악당'의 대결에 불과했다.
하지만 [다크나이트]의 조커는 '악당'이 아니라 '惡'그 차제이다. 사회적인 통념상의 행위로서의 '악'이
아니라 신학에서 다루는 순수한 '惡'이다. 그 '악'이 바라는 것은 댓가 없는 진정 명예로운 악의 승리다.
육체와 함께 태어난 태생적 악을 튀쳐나오게 함으로서 질서라는 뿌리를 근원적으로 파괴하고 우리 모두가
혼돈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기를 바랄 뿐이다.
특히 고담시의 법질서 수호자인 하비덴트 검사를 몰락시키고, 혼란에 가득찬 그를 새치혀로 순식간에
타락의 길로 빠져들게 하는 모습은 그가 악당이 아니라 악마 그 자체임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조커는 배트맨에게 너도 나와 똑같은 무리라고 말한다. 정의라는 이름은 허울일뿐 법질서라는 테두리를
무시하는 것은 똑같을 진대, 결국 사회는 너를 인정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그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배트맨의 행위라는 것이 결국 부모의 복수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는다면 배트맨의 단죄행위는
결코 순수한 것이 못된다는 한계를 갖는다.
영화 [다크나이트]는 배트맨과 같은 '사이비 정의'는 결코 '절대악'을 상징하는 조커를 이기지 못한다는
충격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맹렬한 기세로 달려오던 배트맨은 자기를 콱 짓밟아 뭉개달라고 미친듯이
소리지르는 조커 앞에서 안쓰러울 정도로 비참하게 나자빠진다.
왜 배트맨은 조커를 죽이지 못하는가에 대한 쉬운 질문은 매우 어려운 대답을 요구한다.
惡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善이라는 것이 무의미 하듯, 惡은 善의 균형을 잡는 근본적인 요소이다.
이 우주가 '균형'이라는 대전제하에 움직이고 있듯 선은 악을 당기고 악은 선을 당긴다.
다크나이트, 즉 "흑기사" 라는 제목이 극명하게 말해주듯이 절대선에서 출발하지 않은 배트맨의 존재는
결국 사회로 부터 어둠 속으로 추방된다. '너는 결국 이용만 당하고 버려지게 될 것이다'라는 조커의
말은 배트맨에게는 사망선고나 다름없다. 그의 말처럼 개개인의 이기주의와 사회적인 필요에 의해
한 순간에 버림을 받게 되는 배트맨은 그 늠름한 망토를 측은하게 휘날리며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다크나이트]는 법질서가 물러질대로 문란해진 사회에서 스스로 자신이 법질서 임을 자처하는
자경주의의 한계를 이야기 한다. 검찰과 경찰이 부패하고 그들을 통제할 힘이 없는 사회에서 배트맨이라는
심볼하에 자행되는 자경주의가 얼마나 근본적으로 큰 모순을 갖고 있는지 말해준다.
독한 살충제가 더 독한 변종 벌레들의 출현을 가속화 시키듯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자생된 폭력 행위가
결국 그 폭력에 대항하기 위한 더 무서운 폭력을 탄생시키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마침내 조커를 이기는
것은 배트맨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희망 뿐이라는 메세지를 툭 하고 던져 놓는다.
그러나 배트맨은 악의 힘이 아닌 우리 손에 의해 어둠 속으로 퇴출당하지만 언젠가 다시 사회가 감당 못할
불균형의 상태가 도래하면 반드시 돌아올 거라는 암시를 남긴다.
배트맨을 잘 모른다고 말하는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은 자신의 천재적인 데뷔작 [메멘토]에서 보여준
솜씨처럼 3시간에 가까운 시간 속에 도무지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은 크기의 거대한 이야기를, 그것도
단 한 순간의 긴장의 끈도 놓지 못하도록 힘있게 밀어부친다.
사상 최초로 상업영화에 사용된 IMAX 카메라의 위용은 중요한 시퀀스에서 현기증을 일으킬 만큼
초현실적인 경험을 선사하는 동시에 영화의 긴장을 고점에서 더 높은 고점으로 한없이 올려보낸다.
배트맨의 화려한 액션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크리스토퍼 놀런의 [다크나이트]속에는
대신 촘촘한 플롯과 커다랗고 팽팽한 사건만 가득차 있다.
신화속에 갇혀버린 위기의 배트맨을 구원하고 이제는 "크리스토퍼 놀런의 배트맨"으로 환골탈퇴
시킨 그의 놀라운 행보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이 놀라운 영화의 중심에 있는, 이제는 이세상 사람이 아닌 히스레저의 불멸의 연기는
가슴속에 따갑도록 슬프게 자리 잡았다. 아마도 관객 대부분이 엔딩후에도 일어서지 못하는 순간 불구
의 상태에 빠지는 이유가 다시는 그의 놀라운 연기를 볼 수 없다는 슬픔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조커를 연기하는게 아니라 조커가 되기 위해 가정과 삶까지 던져버린 그는 결국 그 악령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신경 안정제에 의지해야만 했었다. 그가 열연했던 '브로크백 마운틴'을 보고 눈물 콧물이 범벅된 채로
극장문을 3번이나 나와야 했던 필자는 아직도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
그의 영혼에 부디 이제는 평화가 깃들기를...
첫댓글 오늘 우리 아들 온 기념으로 아웃백에 가서 바비큐 폭립 먹고, 위에 있는 영화관으로 가서 영화 [베트맨-다크나이트] 볼려 그런다...
우와~ 다크나이트 장난이 아니다... 대단한데? 버릴게 하나도 없는 영화다... 전부 꼭 보삼... 용찬이도 한국 왔을때 꼭 보거라.... 처음에 영화평점이 9.77이 나오길래 뭐 그럴까? 생각하고 갔는데 정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버릴것이 없다... 사운드 좋고, 내용좋고, 구성좋고, 우와~~
참~ The Dark Knight는 흑기사라는 뜻임... 나는 어두운 밤 인줄 알았음...ㅎㅎㅎ dark night~~ 영화 보고 나면 그 의미를 암
이게 조회수가 왜이리 많지???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