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풍 휴게소(창원 방향) ‘500년 할아버지 느티나무’
송은석(대구문화관광해설사)
010-9417-8280, 3169179@hanmail.net
프롤로그
1977년 개통된 구마고속도로. 대구와 마산을 잇는 고속도로다. 이후 중부내륙고속도로로 명칭이 바뀌었지만 대구시민 중 상당수는 지금도 여전히 구마고속도로라 부른다. 구마고속도로 창원 방향 첫 번째 휴게소는 현풍 휴게소다. 이곳에 잘 알려지지 않은 특별한 명소가 하나 있다. 이른바 ‘소원 들어주는 500년 할아버지 느티나무’다. 대구시민 중 상당수는 현풍 휴게소를 이용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현풍 휴게소에 이런 이름이 붙은 거대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다는 것은 잘 모른다. ‘귀신(?) 붙은 나무’로도 알려진 현풍 휴게소(창원방향) 500년 느티나무. 신통방통한 느티나무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48년 전 구마고속도로 건설과 함께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달성군 현풍읍 성하리 272]
구마고속도로 현풍 휴게소(창원방향)
1970년대 중반까지 대구와 마산을 오가는 시외버스는 비포장 자갈길을 달렸다. 승객들은 버스 탑승 내내 심한 충격에 노출됐고 골관절에 무리가 가는 ‘바운드 병’을 얻게 됐다. 승객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40여 년간 대구-마산간 도로 개선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대한 결실이 구마고속도로 개통이었다. 총길이 86.3km인 구마고속도로는 1976년 6월 24일 착공해 1977년 12월 17일 개통됐다. 착공에서 준공까지 걸린 기간은 놀랍게도 17개월에 불과했다.
우리나라에서 7번째로 개통된 구마고속도로는 공사 과정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전체 공사 면적의 78%가 저습지역이자 연약지반이라, 불량토를 걷어내고 양토를 채워 넣은 성토작업이 필요했다. 성토작업에 공급된 흙 양이 1,200만㎥였다. 이는 8톤 트럭 27만 대분으로 트럭을 한 줄로 세우면 길이가 27,000km, 서울-부산 간을 30번 넘게 왕복하는 길이였다. 이 험난한 공사 중, 지금의 현풍 휴게소(창원방향)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요즘이라면 ‘세상에 이런 일이’에 소개될 법한 상황이었다.
마을 수호신이 깃든 당산나무, 아무도 손 못 대
1976년 구마고속도로 현풍 휴게소(창원방향) 공사 현장. 당시 이곳은 현풍면 성하2리 웃물문 마을 북쪽 지역이었다. 휴게소 건립을 위해 마을 일부가 철거됐고, 마을 당산나무였던 500년 느티나무 두 그루[할배나무·할매나무]도 함께 제거될 계획이었다. 당산나무 제거는 고속도로 건설이라는 대공사 과정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500살 당산나무 중 한 그루가 잘려 나가지 않고 지금껏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기에는 믿기지 않는 기이한 사연이 있다.
느티나무를 베기 위해 불도저를 동원했다. 할배 나무, 할매 나무 두 그루 중 할매 나무가 먼저 타깃이 됐다. 500년 할매 나무는 무지막지한 불도저 힘에 저항 한번 못하고 꺾였다. 다음은 할배 나무 차례였다. 이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방향을 틀어 할배 나무쪽으로 전진하던 불도저가 할배 나무를 몇 미터 앞두고 갑자기 시동이 꺼진 것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이런 현상이 여러 차례 반복되자 결국 공사업체 측에서 나무 제거를 포기했다. 이 사연이 알려지자 현풍 휴게소 조성 공사는 할배 나무를 그대로 살려둔 채 휴게소를 조성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결국 웃물문 마을 500년 할배 느티나무와 당산은 살아남아 지금은 현풍 휴게소의 일부가 됐다. 현풍휴게소 정식 명칭이 ‘500년 느티나무와 함께 하는 현풍휴게소’인 것도 이런 사연 때문이었다.
마을에는 또 이런 이야기도 전한다. 어느 해 정월 보름날, 마을 동제를 지내기 위해 느티나무 아래에 제상을 차려 놓았는데, 느닷없이 멧돼지 한 마리가 나타났다. 멧돼지는 제상을 뒤엎고 제단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잠시 후 아무런 이유 없이 멧돼지가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즉사한 것이다. 이를 지켜본 마을 주민들은 마을 수호신이 노해 멧돼지를 벌한 것이라 생각했다.
현재 현풍 휴게소 500년 할배 느티나무 주변에는 작은 테마동산이 조성되어 있다. 휴게소 조성 과정에서 발생한 기이한 현상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 준다’는 현풍 휴게소 500년 할배 느티나무 테마동산은 2014년 국토교통부 선정 대한민국경관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내력도 있다. 현재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는 높이 13m, 밑둥치 지름 1.6m 정도이며 건강 상태는 매우 양호한 편이다.
현풍읍 성하리 물문[수문진] 마을
‘현풍읍 성하리 272’. 현풍 휴게소(창원방향) 주소다. 성하리(城下里)는 산성 아래에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실제로 마을이 산성 아래에 있다. 성하리 산성은 이름이 여럿이다. 현풍 읍내 서쪽에 있어 ‘서산성(西山城)’, 수문진(水門津)에 있어 ‘수문진 산성’, 수문진 산성의 순우리말인 ‘물문 산성’, 반달을 닮았다고 ‘반월성’ 등이다. 나루이자 자연부락명이기도 한 성하리 물문 나루[수문진]는 지금으로부터 1,000여 년 전인 통일신라 말기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물문 나루는 과거 낙동강 수로를 이용하던 시절, 현풍의 관문이자 강 건너 고령군 개진면 부리로 연결되는 현풍지역 대표 나루였다. 남쪽으로 흐르는 낙동강 동편을 따라 북에서 남으로 웃물문[성하2리]-아랫물문[성하1리]-수문진 산성이 이어진다. 이중 현풍 휴게소가 자리한 웃물문 마을은 영월 엄씨 집성촌이다. 지금도 문중 재실인 공신정(拱辰亭)과 입향조 엄계(嚴誡·1456-1506)가 임금을 향해 북향사배(北向四拜)를 행한 단(壇) 등이 남아있다. 현풍 휴게소 할배 나무 뒤편, 마을로 이어진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면 공신정과 단을 만날 수 있다.
에필로그
과거 우리네 전통 마을에는 ‘성황당·당산’ 등으로 불리며 마을제사를 모시는 신성한 공간이 있었다. 마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상당·중당·하당’, 두세 곳 정도 있었다. 마을제사는 정월 보름날 자정을 전후해 행해졌다. 제사가 끝나면 마을 풍물패가 중심이 되어 마을 곳곳을 돌며 지신밟기를 하고, 마을주민과 한데 어울려 판굿[놀이마당]을 벌리곤 했다. 달성군에는 아직도 마을제사가 행해지는 곳이 몇 곳 있다. 이 중 한 곳이 현풍 휴게소 500년 느티나무에서 행해지는 물문마을 당제다. 예전에 비하면 많이 간소해졌지만 그래도 무속식·유교식 제사 절차가 혼재된 우리나라 전통 마을제사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이제라도 창원 방향 구마고속도로를 이용할 일이 있으면 일부로라도 현풍 휴게소를 한 번 들려보길 권한다. 아니, 굳이 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 글을 읽은 독자라면 현풍 휴게소를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