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모두들 ‘웰빙’을 외치기 시작했어요. 혹시 건강이나 삶의 질을 비싼 제품 구매와 맞바꾸라는 상혼(商魂)에 말려드는 건 아닐까요?”
경기도 용인의 전원주택에 살면서 허브 요리 칼럼을 쓰는 ‘자연주의 요리연구가’ 주부 박현신(41)씨는 “요즈음의 웰빙 바람이 어째 ‘운동 안 하고 술 먹고 담배 피우면서, 보약과 비타민과 정력제 잔뜩 먹는 중년 신사’와 비슷하다”고 꼬집었다. “웰빙이란 돈 주고 사는 게 아니라 생활에, 요리에, 몸에 조금씩 입혀나가는 것”이라는 게 그의 지론. 스스로는 “웰빙으로 수식되는 게 어색하다”고 손을 젓지만, 지금 그의 삶은 누구보다 웰빙스럽다. 그리고 거기에는 사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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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브 요리연구가 박현신씨가 경기도 용인의 전원주택 야외에서 봄꽃을 얹은 오이 알팔파 말이, 오리알 프라이를 곁들인 아스파라거스 등 4월의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허영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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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하던 박씨는 “어려서부터 좋아했고, 도무지 포기가 안 되던” 요리를 공부하기 위해 1984년 일본에 유학가 조리사 전문학교를 졸업했다. 1994년 결혼한 남편 손진수(49)씨는 광고회사 디자인팀에 근무하면서 몸이 녹아나는 격무와 입을 떠나지 않는 단내에 지쳤다. 부부는 “돈 없는 건 불편하지만, 피곤에 패하도록 일하는 삶은 의미가 없다”고 깨달았고, 남편은 1996년 퇴직했다.
부부는 목조주택 사업을 하는 ‘2인회사’를 차렸다. 남편이 디자인과 건축을 맡고 아내는 마케팅을 한다. 지금 사는 집도 부부의 작품이다. 땀 뻘뻘 흘리도록 일하지 않되, 눈물 흠뻑 흘리도록 즐겁게 산다는 게 이들 부부의 원칙. 올해에도 목조주택은 딱 3채만 짓는다.
대신 자연에 묻혀, 자연을 먹으며 부부는 ‘알콩달콩’ 산다. 아내는 전원주택에서 각종 허브와 꽃을 키우며 자연 요리의 내공을 키워나간다. 결혼 후 10년째 자녀가 없지만, 억지로 아기를 갖는 건 부자연스러워 그냥 섭리에 맡기고 산다.
그를 만나러 간, 봄이 만개(滿開)하던 4월 8일. 저수지를 끼고 고목이 된 산수유가 노랗게 웃고 있는 곳에, 그는 햇살과 웃음을 가득 안고 서 있었다. 정원에는 비올라팬지·민들레·제비꽃이, 집안에는 수선화·시클라멘지·백색덴파레(서양란의 일종)가 화사했다. 직접 말린 과일, 화장실 세면대 아래의 물 담긴 막사발에 동동 띄운 매화 몇 송이는 기성품 방향제 사용자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끼니 때 온 손님을 그냥 보내지 않는다며 차려낸 점심 식사에는 그의 건강함이 묻어나왔다. 4월 초에만 나는 품종이라는 달콤한 토마토, 소금·후추·양파·셀러리에 재워 두었다가 구운 닭 다리살, 천연 효모로 발효시켜 구운 통밀빵 샌드위치, 뒷마당에서 직접 기른 쫄깃쫄깃하고 향긋한 표고버섯구이, 땅속 항아리에서 꺼낸 묵은 김치, 그리고 잡곡밥과 된장국….
유기농 매실 농축액과 백야초 효소를 물에 탄 건강음료며, 친정아버지가 직접 만들고 볶은 원두를 즉석에서 갈아 낸 커피며, 직접 발효시킨 요구르트에 곁들인 오디(뽕나무 열매) 설탕 절임이며…, ‘호사스런’ 식사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그의 요리 철학은 무엇일까. 건강한 식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건강한 재료의 선택이 중요하단다. 강화도 염전에서 구입한 국산 소금을 저장해 간수가 빠진 뒤 사용하고, 유기농 설탕은 이웃 전원주택 가정과의 공동구매를 통해 싸게 구입해 쓴다. 도시의 공동주택에서도 웰빙에 관심 있는 몇 가족이 뜻을 모으면 이런 현지 구매와 공동 구매가 가능하다고 박씨는 조언했다.
“간섭받기 싫어하는 신세대 가족은 이런 커뮤니티에 혹시 부담을 느낄지 모르지만, ‘따로 또 같이’를 지키면 됩니다. 웰빙에 대해서는 협력하지만, 다른 분야에는 철저하게 독립적으로 사는 게 충분히 가능하거든요.”
1년에 단 하루를 투자해 만든 백야초 효소나 매실 농축액은 장 담그기나 겨울 김장처럼 가족의 4계를 든든하게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박씨는 “요리를 할 때 ‘생각은 길게, 조리시간은 짧게’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머리를 많이 쓰되 간단한 요리를 만들라는 이야기다. 너무 복잡한 요리는 조리와 설거지로 주부를 지치게 만들면서 실제로 그렇게 맛나는 것도 아니란다. 결국 재료로 승부를 보라는 말이다.
(김철희 주부리포터)
(장원준기자 wjjang@chosun.com )
●레몬밤 향의 딸기 빙수
봄·여름의 별미. 딸기 300g, 설탕 90g, 레몬밤 2줄기 비율로 섞어 믹서에 간다. 이 ‘혼합 딸기’를 지퍼백에 넣어 냉동실에 보관한다. 필요할 때마다 얼음을 갈아 우유를 넣은 후 ‘혼합 딸기’를 칼로 썰어 얹고 레몬밤 잎으로 장식한다.
●딜과 세이지를 넣어 구운 전갱이 구이
생선 구울 때 허브를 넣으면 허브 향이 배어 비린내가 없어지고 집 안에 배는 냄새도 적어진다. 전갱이 내장을 빼고 소금을 뿌린 후 굽기 전에 딜과 세이지를 듬뿍 전갱이 입에 넣고 굽는다. 그릴에 구울 때는 생선과 석쇠에 식초를 바르면 붙지 않는다.
●토마토 위에 올린 황금 알팔파와 치즈
0.5㎝ 두께로 썬 송이 토마토 위에 모차렐라 치즈, 황금 알팔파, 보리순 순으로 올린다. 송이 토마토 몇 개는 황금 알팔파, 마르메산 치즈, 보리순 순으로 올린다.
(자료 제공: 쿠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