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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상구는 내 삶의 의미, 그리고 기억이란 신비 글쓴이 : 민기식
파견교사가 된 뒤에도 또 몇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옛 사람들과의 재회와 대화 속에서 과거의 나 자신을 발견하고 또 다시 놀란 것입니다. 과거의 기억이 나에게서 점점 빠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몇 년 전부터 느꼈지만, 계속적으로 확인한다는 것은 삶의 무상과 허무만 부추길 뿐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털어놓고 훌훌 털고 싶어서 글로 옮겨봅니다. 파견교사 여러분들에게 미리 공표하는 거지만 저와의 만남이 나중에 어떤 모습으로 남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상구라는 측면에서 저와 관계하지 않는다면 기억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인생무상! 제법무아!
1. 기억 상실의 시작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내가 의도한 계획이 아니었다. 세상의 무참한 일들이 어린 영혼에게 커다란 파괴를 저질렀기에 가녀린 영혼이 살아남고자 피동적으로 세상을 일그러지게 그린데서 비롯한다. 나는 당시 중학생이었고 내 집안의 문제가 천당과 지옥을 오고가는 나의 문제로 귀착될 때 나는 현실과 꿈을 거꾸로 기획하게 되었다. 잠자리에 들 때 꿈 속 나라를 현실로 의도했고, 아침에 잠에서 깰 때 헛된 세계가 열린다고 생각한 것이다. 정신병의 시초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시골을 뜨기까지 3년 가까이 현실과 꿈을 거꾸로 생각하는 생활이 지속되었다.
2. 세상과 맞닥들이다. 세상의 초월
서울에 올라왔지만 만족할만한 성적은 나오지 않고 입시에 끌려다니다 궁여지책으로 교대를 선택했다. 처음 돌파구가 열렸다. 이규형 사범님과의 만남! 그와의 만남이 1년 이상 지속되었을 때 대학 3학년 어느 가을밤, 불현듯 밤하늘의 별들이 내 마음으로 들어왔다. 그 선연한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건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다.
3. 하화의 시작과 단절
새로운 놀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 골목대장이 된 듯 했다. 몸이 부서져라 하화에 전념했다. 두 번째 학교에서 장학사들과 갈등하기 전까지 4~5년은 교육자로 일관했다. 제도와의 갈등 이후에 난 내가 디디고 있는 기반을 모색해야 했고 언어와 존재의 이유를 캐는 철학을 전공할 운명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많은 학자들이 나의 상구를 기다리고 있었고 어느 시점에선 사라지고 다시 부각되고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4. 문제의 발견
철학에 빠졌을 때, 불과 몇 년전에 경험했을 나의 육친인 내 자식들의 아기 때 기억을 떠올리지 못했다. 내 소중한 핏덩이들의 아기 시절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내 기억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그 때 실감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커서야 양육하기 수월했지만, 내가 기저귀도 갈고 빨고, 어루고 달랬을 텐데 그 추억이 사라지다니 얼마나 허망한가? 난 연년생에 이어 세째를 아내에게 간절히 원했다. 갓난 아기의 기억을 떠올리고 싶었다. 지금은 그냥 사진이로만, 동영상으로만 남아있다. 마치 나랑 관계없는 아이들처럼 느껴진다. 그나마 자식들이 초등 1,2학년 때 내가 데리고 다니면서 방과후에 태권도를 가르치고 한자도 가르치고 했던 기억은 남아있다. 내가 원하는 간절한 하화를 했기 때문일까?
5. 사건의 연속
초, 중학교 동창들이 날 보고 싶어한다. 그 중간에 선영이가 있다. 선영이는 나와 초등학교 6학년 동창이고 서울교대를 함께 입학했다. 그래서 나의 어린 시절과 대학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이 친구의 문제는 그 기억이 너무나 선명하다는데 있고, 나는 모든 기억이 남아있지 않다는데 있다. 그래서 나의 과거를 알려면 선영이에게 전화를 하면 간단히 해결된다.
선영이와 만나는 날은 각오를 단단히 해야한다. 나의 과거 치부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근데 이번엔 유수 얘기를 떠올렸다. 유수야 나와 한 동네 친구고 진해를 뜨기까지 가장 많은 시간과 정을 나눈 친구이다. 근데 유수가 날 꼭 보고 싶어한다고 했다. 전화번호를 알려주면서 서로 만나자고 하자기에 전화를 했더니...... 유수가 하는 모든 얘기가 나에겐 금시초문일 뿐,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 전혀 없는 것이다. 유수와 관련된 나의 과거 기억이 모두 지워진 것이다. 중학교 때 놀았던 얘기, 시험 전날 함께 공부하기로 했다가 만화책 보다가 밤을 홀딱 지새운 얘기.... 모두 나에겐 망각의 늪을 지나서 공감할 수 없는 얘기만 떠올리는 것이다. 유수는 주말이든 언제든 자기가 근무하는 현대백화점에 놀러오라고 청한다. 난 전화를 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과거를 떠올릴 수 없는데 만나서 무슨 얘기가 반가울까? 그게 아직까지 유수를 만나고 있지 않은 이유다.
장성우는 내가 귀하게 생각하는 친구다. 사연이 좀 기이하다. 군대에서 공병으로 작업하다 손가락이 절단되어 의병 제대하고 다시 교대로 복학했다가 교사로서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자퇴하고 남해 시골에서 농부로 살고 있을 때였다. 당시 나는 초임 학교에서 부지런히 하화의 기쁨을 수확하던 때였다. 친구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다시 복학할 것을 권하고자 나의 학교에 초대하여 일일교사로 시골의 삶을 듣고 식사를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방학이면 내려가서 농사도 거들기도 했다. 그리고 성우가 복학하고 고향 남해로 내려가 결혼도 하고 교사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몇 년 동안 인연이 단절되었다. 몇 년 뒤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고 마늘도 팔아주고 인연이 재개되었는데 또 과거의 기억을 돌이킬 수 없어 절망했다. 오히려 성우가 내가 있는 가락초에 와서 수업을 받은 내 제자가 성년이 되어 그 기억을 떠올려도 난 그런 일이 있었는지 가물했으니 성우와의 진한 추억이 모두 망각의 늪으로 빠진 것이다. 지금은 내가 바빠 1년에 한번 마늘이 출하되는 이 즈음 한번 연락하고 있다. 소비자로서.
승진이는 내가 결혼할 즈음 인연이 되었다. 내가 존경하는 사범님의 제자로서 승진이는 놀라운 성취를 거듭하고 있다. 중3 때 보디가드란 영화를 보고 최고의 경호원이 되고자 다양한 무술을 공부하면서 적합한 대학인 고려대 체육교육과를 다니다 사범님과 인연이 되었다. 청와대 경호원이 되고자 장교로 특수 임무까지 수행하나 결국 경호원 시험에 떨어지고 우여곡절 끝에 미국유학에서 여러 일을 전전하다 지금은 잘 나가는 IT 기업에 근무하고 있다(올해 36살인데 보기 드문 청년이다. 잘 되면 미래에 큰 성공을 할 사람이다. 파견 선생님들 혹시 관심 있으면 결혼 중매로 나서주시기 바랍니다). 기억과 관련하여 문제는 승진이가 미동초에서 부사범으로 혹독한 수련을 거치는 대목인데, 이 때 내가 그에게 상당한 위안을 주었다는 것이다. 승진이는 늘 나만 보면 고마워하고 깎듯한데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고, 난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와의 추억은 고스란히 그에게만 있고 나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내가 그에게 운동 마치고 맛있는 것 사주고 좋은 이야기 많이 해주었다는 것은 나에게 그리 좋은 기억이 아니다. 나에게 상구의 희열이 없기 때문인듯. 가끔 승진이를 만나면 1998년~2001년 미동 태권도부의 추억을 들을 수 있다.
나의 옛 제자들과의 만남은 나를 교육자로서 유지 가능성을 더욱 떨어뜨리고 있다. 차라리 그들을 만나지 않았으면 그래도 교사로서 분발할 수 있을텐데 상황을 더 악화시킨 듯하다. 글에서나마 내 자랑을 하자면 교육자로서 나도 한 때 4~5년은 열정 면에서는 레전드급이다. 현직 교사가 할 수 없는 실험적인 일들만 저질렀으니 제자들의 나에 대한 기억이 오죽 하겠는가? 연예인으로 성공한 유천이도 나에 대한 기억이 강렬하여 나를 만나고 싶어하지만 내가 자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을 만나면 내가 할 말이 없다. 그럼 이들의 말을 들으면 될 것 아닌가? 근데 그들의 말은 내 귀를 의심할 정도로 나의 기억 저편에 있다. 난 단지 미친 듯 가르쳤고 그 보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있어 구체적이지 않고 추상적으로 떠올린다. 구체적인 기억은 하나 둘 사라지고 추상만 난무하는 것이다. 근데 제자들의 얘기는 매우 구체적이다. 그런 얘기를 밤 새워 들어도 나에게 와닿는 게 없다. 그래서인지 나에겐 추상성이 부각되는 철학이 더욱 절실히 와닿는다.
올해 파견이 되기 전 작년 면접에서 정민이를 보았다. 아! 정민이. 어쩌면 그 때 내가 대화를 포기했는지도 모른다. 파견교사로 다시 만나니 과거를 떠올려보았다. 몇 가지 남지 않는 기억들이 있다. 그리고 정민이 남편 정식이도 만나야 하는데 여전히 주저된다. 기억 속에서 사라졌으니 어떻게 복원할 것이며 공감할 것인가? 이래저래 과거의 군상들과 맞닥들이면 도망가고 싶다.
6. 내가 기억하는 것들
내가 한 때 진정으로 존경했는 선생님들과의 만남은 매우 생생하다. 모든 기억들이 상구로 집중된다.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나의 기억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너무나 생생하여 당장의 일로 불러올 수 있다. 상구에 대한 지나친 의욕일까? 나의 근거가 박약하기에 스승에 대해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일까? 아무튼 기억에 있어서 이런 불균형은 매우 좋지 않는 것이다. 이제야 나의 병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당장 가고 싶지 않지만 기회가 된다면 정신과 상담도 허락하고 있다.
7. 교대 대학원을 다니며
나에게 있어서 강렬한 체험은 상구인 듯 하다. 내가 진정 배울 수 있다면 나는 불나방처럼 덤벼들어 꼭 성취하는 바가 있다. 하지만 성취하는 바가 없으면 기억으로 통하는 문을 닿는 듯하다. 그냥 대학원 학비만 내고 자유시간을 갖는 것 같다. 윤리과 교수들로부터 내가 자극받을 것은 거의 없다고 판단하고 이제는 거의 체념했다. 그냥 선사초로 복귀할까도 생각한다. 돈이 아깝기 때문이다. 이 따위 허접한 공부를 위해서 가짜 교수들로부터 가짜 교육을 얘기듣느니 정직하게 복귀하여 내 나름의 공부와 직업인으로서 교사 신분을 유지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일단 2학기 수업료를 내지 않을 작정이다. 그렇게 할 때 교대에서 나를 쫓아낼지? 내가 곧바로 학교로 복귀될 지? 재미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지금 주력하는 교육본위론 공부가 마음에 걸린다. 하루의 대부분을 장상호의 교육본위론을 싸매고 있는데도 재미있다. 신기한 일이다. 장상호란 인물이 내 마음 속에 들어온 게 5, 6년 전의 일인데 점차 스며들더니 이제는 내 마음 속 안방을 차지하고 군림하고 있다. 내가 싸워 이겨야하는데 쉽지 않은 상대다. 이에 집중하자면 앞으로 몇 년이 걸릴 지 모르는데 현장을 복귀하면 더 지체될 것이고... 이래저래 고민이 있다. 돈을 지불하고 자유를 택하느냐? 자유마저 없다면 대학원에 다닐 이유는 전혀 없다.
8. 기억 속에서 나오면서 나에게 다시 묻는다.
어릴 때 남는 정신적 상처가 인생을 지배할 수도 있다는 증거가 바로 나인 것 같다. 다시 어쩌지도 못하기에 그냥 내 길을 간다. 내가 진정 원하는 교육학자의 길이 무엇인지 아직 막연하지만 대학 3학년 때 들어온 세상의 별들이 "교육이란 무엇인가?"를 추궁했던 세상의 초월이지 않았나 떠올린다. 그래서 지금으로서는 장상호로 골인했고 그의 교육이론의 완성을 위해 힘을 보태고자 한다. 물론 이 일은 교사들의 실천적인 삶과 무관한 듯 보이지만 나중에 미칠 영향은 학교 현장에만 미칠 제한된 영역이 아니다. 좀더 넓게 연구하고 깊이 사유하기를 갈망한다. 현존의 교육학과 교과교육학으로는 교육의 모습을 떠올릴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학문으로서의 자격조차 없는 것이다. 당신이 공부하는 교육학과 교과교육학 논문이 앞으로 100년 뒤 쓰레기 더미 위에서 발견될 것을 떠올려보라. 온갖 악취가 풍기는데도 그 추악함을 모른채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한 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학문의 정도는 더디 가더라도 바른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다시 묻는다. 나의 공부가 진정 교육을 지향하고 있는가? 도대체 교육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을 참고 삼아 글이라도 한번 써보자. 혹시라도 교육을 빙자한 가짜 교육을 떠올린다면 그건 교육 아닌 것이고 그런 가짜 교육에 관한 논의가 어디서 왔을지 의심해보자...
첫댓글 선생님, 나쁜 남자 향기가 나는데요.. ㅋㅋㅋ
그렇죠.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매우 이기적인 인간 유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