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로 내달 재개방 앞두고 사전답사 해보니…
휴식년제 실시후 94% 회복 기존 코스보다 2㎞ 줄어
해발 500m서 시작된 숲길 거대한 산림욕장에 온 듯
남벽~서북벽 장엄함에 탄성
지난 30일 오전 10시20분 제주도 한라산 돈내코 등반로 평괴대피소. 해발 1400m의 현무암 굴 위에 33㎡(10평 남짓) 규모로 아담하게 지어진 대피소 위에 올라서자 서귀포 시가지와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남원읍 위미리 앞바다에 떠 있는 지귀도(地歸島)에서부터 섶섬, 문섬, 서귀포월드컵경기장 앞바다의 범섬까지 이어진 풍경은 3시간 넘는 등반으로 숨이 찬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줬다.
1994년 7월 백록담 남벽이 붕괴되면서 남벽순환로와 함께 자연휴식년제에 들어가 폐쇄됐던 이 돈내코 등반로가 다음 달 15년 만에 재개방된다. 등산 마니아를 설레게 하는 재개방을 한 달여 앞두고 서귀포시 지역 전문산악인들과 사전답사에 나섰다.
한라산의 정남쪽으로 오르는 등반로로 1973년 공식 개설된 돈내코 코스는 충혼묘지와 교회묘지 등이 몰려 있는 서귀포시 공동묘지를 가로지르며 시작된다. 기존 코스(9.4㎞)가 돈내코 야영장에서 출발했던 것과 비교하면 2㎞가량 줄어든 셈이다. '돈내코'는 골짜기가 깊고 숲이 울창해 야생 멧돼지가 자주 물을 마시는 하천의 입구라는 뜻에서 유래됐다. '돈'은 제주사투리 '돗(돼지)'의 변형이고, '내'는 '하천', '코'는 '입구'라는 의미다.
▲ 1994년 폐쇄된 지 15년 만인 다음 달 재개방되는 한라산 돈내코 등반로를 산악동호회 회원들이
사전답사 하기 위해 오르고 있다./이종현 객원기자 grapher@chosun.com
등반로와 어울리지 않는 공동묘지를 지나 난대림연구소 시험림 숲 속으로 들어서면서 산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해발 500m가량에서 시작된 숲길은 평괴대피소로 빠져나올 때까지 늦가을에도 푸른 잎이 무성한 상록수가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꾸며놓은 거대한 산림욕장이었다. 해발 700m를 알리는 표지석을 지나면서 산길이 가팔라질 때쯤 '썩은 물통(돈내코 4.14㎞, 백록담 5.95㎞)' 푯말이 나타났다. 썩은 물통은 버섯재배 용수를 얻기 위해 만들어놓은 웅덩이였다. 해발 1100m표석을 넘어서자 '살채기도(돈내코 6.4㎞, 백록담 3.69㎞)' 표석이 나왔다. '살채기'는 사립문, '도'는 입구를 뜻하는 것으로 이 일대까지 방목하며 길렀던 소와 말을 통제했던 곳임을 알 수 있었다.
평괴대피소에서 미리 준비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느긋하게 출발한 시각은 오전 11시15분. 10여분을 더 오르자 널찍하게 펼쳐진 개활지(해발 1440m)가 드러났다. 철제 골조 위에 목재로 바닥을 끼워 맞추는 조망대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곳에서 바라본 조망은 세계자연유산으로서의 제주의 가치를 입증하기에 충분했다. 서귀포 앞바다의 섬에서 제주 섬의 서남쪽 끝 산방산까지 펼쳐진 조망은 등반객에게만 주는 선물이었다.
조망대에서 병풍처럼 펼쳐진 한라산 정상 남벽 분기점(해발 1600m)까지는 목재데크로 된 계단식 등반로가 통제하고 있었다. 국내 유일의 아고산대에서 자생하는 털진달래, 산철쭉, 구상나무숲, 시로미군락 등 희귀 특산식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남벽 분기점에서 남벽을 통해 정상 등반을 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남벽 순환로를 따라 최종 목적지인 윗세오름(해발 1700m)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쉬움도 잠시, 120만년 전 화산 폭발로 한라산이 생겨난 뒤 지금까지 모진 비바람을 맞으며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남벽에서 서북벽으로 이어지는 장엄한 모습은 돈내코 등반로가 주는 또 다른 매력이었다.
마침내 최종 목적지인 윗세오름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 해발 500m 지점에서 시작해 해발 1700m까지 9.5㎞ 구간(서귀포시 시립 공동묘지~남벽분기점 7.4㎞, 남벽분기점~윗세오름 2.1㎞)을 오르면서 한라산의 아름다움을 즐기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자연휴식년제로 생태적 안정화 이뤄
제주도 환경자원연구원은 2008년 조사에서 자연휴식년제로 지정·보호되고 있는 한라산국립공원 등산로 가운데 돈내코 등반로는 94%가 자연회복이 이루어져 생태적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윗세오름에서 남벽분기점까지 이르는 남벽순환로는 전체적으로 자연에 가까운 매우 양호한 환경조건을 보였다. 이 구간은 전체의 94.3%가 환경피해도 3등급 이하로 생태적 안정화 단계이며, 5.7%가 4등급으로 훼손 잠재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돈내코 등산로 7.4㎞ 구간은 0등급에서 5등급으로 조사됐는데, 구역별로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제주도 환경자원연구원 고정군 박사는 "돈내코 등반로가 남벽순환로와 만나는 해발 1600m이하 지역은 환경피해도 1등급 이상으로, 과거 등산로의 흔적은 발견됐지만 주변 식생피해가 거의 관찰되지 않거나 자연 상태에 가까운 환경으로 복원된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재개방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제주 세계자연유산관리본부는 올해 9억2100만원을 들여 탐방로를 보수 중이다. 목재 데크와 보호책 시설, 대피소 보수, 안내초소와 발효식 화장실 설치 등의 작업이 진행 중이다.
내년에는 7억원을 더 들여 목재데크와 보호책 시설을 보강한다. 서귀포시도 등반로 출발지점인 공동묘지 인근에 150여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을 갖출 예정이다. 또 돈내코 등반로 재개방이 지역 상권 활성화 차원에서 추진된 만큼 올레 코스와 연계하는 관광 프로그램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세계자연유산관리본부 김대준 한라산국립공원 관리부장은 "탐방로와 주변 훼손을 최소화하고 탐방객 이탈을 방지하는 데 역점을 두고 각계 자문을 수렴해 최적의 운영시스템을 확정 지을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