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e-공군
6·25전쟁 중 한국공군의 강릉기지 전개와 단독작전
(6·25전쟁 60주년 기획연재 글. 소령 김경록 | 6·25전쟁 60주년 사업단{
항공기지의 운영권을 포함한 작전권이 미군에 넘어간 상황에서 한국공군은 사천기지 이외에 보다 적극적인 공군작전을 전개하기 위해 전진기지를 필요로 하였다. 이에 미 해병대 항공대대가 사용하던 강릉기지를 확장하여 한국공군 단독작전의 전진기지로 건설하였다.
1950년 11월 이후 전황과 한미 공군의 전략
한국공군은 1950년 11월 이후 공군력을 강화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였으며1), 미 공군은 항공작전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최신형 전투기(F84)를 한국전선에 투입하였다2). 1951년에 접어들면서 미국은 중국과 한국에서의 행동방침(NSC101)을 작성하여 미군의 각종 작전 및 전략·전술작전을 시행하였다3). 1951년 3월27일의 비망록에서 미국은 한국의 정전에 대해 보다 긍정적인 태도를 가졌다.
미 국방장관대리 Hoyt S. Vandenberg 공군참모총장이 국무장관에게 설명한 한국전쟁 정전에 대한 합동참모본부의 입장을 살펴보면, 기존의 1950년 12월 13일 국가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된 합동참모본부의 견해(NCS 95)를 변경한 것으로 중국과의 일반적인 합의수용은 모든 공격을 중지하고 미국이 만족할만한 안정의 기본조건을 수용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었지만, 유엔총회에서 임명된 평화 위원회 산하의 정전위원회가 정전사항을 관할하도록 하였다. 구체적으로 추가 전쟁장비와 제재를 도입하는 것을 억제하고, 한반도의 항구적인 안정을 위한 세부적인 사항이 준비될 때까지 정전위원회가 효과적으로 계속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4).
6·25전쟁과 미 공군의 항공기지 운영
6·25전쟁에 직접 참전한 미 공군은 극동공군(Far East Air Forces:FEAF)이었다. 극동공군은 일본 도쿄에 사령부를 두고 30개의 비행대대(Combat Squadron)를 보유한 해외파견 공군부대 중 가장 큰 규모를 보유하였다5). 6·25전쟁이 발발하자 미 극동공군의 제5공군은 모든 전력을 한반도로 전개시켜 효과적인 항공작전을 수행하고자 하였다. 항공작전이 진행되면서 항속거리 문제가 발생하자 한국의 기지로 이전을 모색하여 7월 3일부터 현지조사를 실시한 후 김해비행장(K-1), 대구비행장(K-2), 부산 수영비행장(K-9), 포항비행장(K-3) 등 비행장을 확장하여 8월부터 전술부대의 작전기지로 활용하였다. 또한, 항공작전이 확대되면서 항공작전을 효율적으로 지휘·통제하기 위해 제5공군은 8월 말까지 제6002, 제6131, 제6133, 제6149, 제6150전술지원비행단 등 총 5개의 ‘전술지원비행단(Tactical Support Wing)’을 창설하여 공중공격과 공중방어를 포함하여 야전군과 전술공군의 空地합동작전을 지휘하기 위해 만들어진 합동작전본부(Joint Operations Center)의 지시에 따라 전술항공작전을 지휘 통제하였다.
제5공군은 1951년 5월 18일부로 제314항공사단을 제5공군에서 분리 독립시키고, 모든 전투부대를 한국 내 기지로 이동시켰다6). 휴전 당시 제5공군의 보유전력은 B-26기 128대, F-84기 218대, F-86전폭기 132대, F-86요격기 165대였으며, 일일 출격 능력은 B-26기가 85회, F-84기가 181회, F-86전폭기가 171회, F-86요격기가 143회였다7).
6·25전쟁 중 항공작전의 핵심 분야는 폭격이었으며, 이를 전담한 부대는 일본 요코다에 사령부를 둔 극동공군폭격사령부(FEAF Bomber Command)였다. 미 합동참모본부의 ‘목표물 공격계획(Target Attack Plan)’에 따라 폭격사령부는 미 본토에서 일본으로 이동 전개한 제15공군의 제22폭격전대와 제92폭격전대, 제98폭격전대, 제307폭격전대, 제31전략정찰대대, 그리고 극동 제20공군의 제19폭격전대 등 B-29중폭격기에 대한 작전을 통제하였다.
한국공군의 강릉기지 건설과 전진기지 확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미공군 전술부대의 배치현황을 살펴봐야 한다.
1951년 5월 9일 미 공군은 최고의 시설을 갖춘 비행장을 건설하여 항공작전을 수행하고자 하였다8). 이에 미 공군에 의해 한반도에 다양한 비행장이 건설되었다. 제5공군은 한반도에 총 55개의 비행장을 보수하거나 건설하여 사용하였다9).
여의도기지(K-16)
제5공군전방사령부, 제6167작전대대 제5수송대대, 제931항공공병전대, 제1전염병대대, 제1쇼오란비이콘대대, 제5통신전대, 제10연락대대, 제30기상대대, 제502전술항공통제대대, 제1818항로통신대대, 제6154기지전대, 제6167기지전대
김포기지(K-14)
제4전투요격비행단(F-86 3개 대대), 제67전술정찰비행단(3개 대대), 호주공군 제77대대
수원기지(K-13)
제8전투폭격비행단(F-80 3개 대대), 제51전투요격비행단(F-86 2개 대대), 제319전투요격대대, 제934항공공병전대
평택기지(K-6)
제12해병비행전대
군산기지(K-8)
제3폭격비행단(B-26 3개 대대)
사천기지(K-4)
제6146항공기지대, 한국공군본부
진해기지(K-10)
제18전투폭격비행단(F-51 2개 대대), 제2남아연방대대
수영기지(K-9)
제17폭격비행단(B-26 3개 대대), 제930항공공병전대
대구기지(K-2)
미 제5공군사령부, 제49전투폭격비행단(F-84 3개 대대), 제136전투폭격비행단(F-84 3개 대대), 제6149의무전대, 제417항공공병여단, 제6151기지대
포항기지(K-3)
해병제1비행단
강릉기지(K-18)
제6152기지대
횡성기지(K-46)
한국공군, 제18전투폭격비행단(전방)
춘천기지(K-47)
제6147전술통제전대
일본
이타즈케기지
제8, 49, 136전투폭격전대의 파견대와 제67전술정찰비행단의 파견대
쓰이키기지
제4, 51전투요격비행단 파견대
미호기지
제3, 17폭격비행단과 제67전술정찰비행단 파견대
✽ 출전 : USAF Historical Division Air University, United States Air Force Operations in the Korean Conflict 1950. 11. 1~1952. 6. 30 1953. 100~104쪽.
<표 1> 제5공군 전술부대의 배치 현황(1952. 6. 2)
1. 경향신문 1950년 11월 12일.
2. 경향신문 1950년 12월 13일.
3. FRUS 1951, 70~72쪽.
4. FRUS 1951. 285~288쪽.
5. Robert F. Futrell, The United States Air Force in Korea 1950~1953, Office of Air Force History US Air Force, 1983. 58쪽.
6. Hq. FAFIK, Daily Journal, 5 May 1951.;Ltr. Stratemeyer to Partridge, 3 May 1951;Message, CG FEAF to CG FAF and CG 314th Air Div., 16 May 1951;Hq. FAF, General Orders No. 405, 13 June
1951.
7. Memo, A Survey of Enemy Air Power and Capabilities in the Far East, 7 Jan. 1954.
8. FAF Staff Mtg. Summary, 9 May 1951.
9. 비행장은 한국에 있는 공군기지(Korea Air Base)라는 의미에서 ‘K’를 붙이고, 사용하기 시작한 순서에 따라 아라비아 숫자를 붙였다. K-1 김해기지부터 K-55 오산기지에 이르는 순서는 전선의 변화와 일맥상통한다.
- 계속- 첨부화일 참조
5609_file_13.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