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신춘문예 2025년 겨울호⌟ 권두언-
사랑의 계절 겨울, 문인의 길
발행인 엄원지
벌써 옷깃을 추스르는 겨울이 왔다.
겨울은 사계절 중에서 육체보다는 정신의 활동이 더 활발해 진다.
뇌 세포가 몸보다는 더 활성화되어 추운 밖에서의 활동이 주춤해 지는 이 계절은 문인들에겐 생각에 따라 좋은 작품이 잘 완성될 절호의 기회이다.
그래서 노력의 정도에 따라 글의 깊이가 좌우되는데 여기에는 평소 독서하는 습관과 사색하는 고뇌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바쁜 생활을 하다보면 또 먹고 살기 바빠서 글 지을 틈이 없는 사람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글에 대한, 문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있는 사람은 그러한 핑계를 대지는 않는다.
문인이 쓰는 하얀 백지 위의 글들은 그리고 지상에 발표되는 글들은 누군가의 가슴을 흔드는 바람이 되어 메마른 삶의 촉매제 역할을 한다.
모든 자연이 그러하듯 몸이 위축되는 겨울은 마음도 웬지 움추러 들어 사람은 특히 추운 겨울에 삶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더 많이 느끼게 된다고 하는데 이 말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땅에 떨어진 낙엽들이 수북이 쌓이고 서산에 넘어가는 햇살조차 한여름보다는 어딘지 처량히 느껴지는 겨울은 그래서 사랑이 필요하고 사랑을 그리워하는 그 뒤편 내면의 은밀함 속에 무엇인가를 글로 쓰지 않으면 안되는 문인의 숙명이 꿈틀대는 것을 그대는 느끼질 않는가?
사랑을 배경으로 한 글이 문인의 주 테마인 것은 논쟁할 필요도 없는 진리이다.
개인에 대한, 사회에 대한, 국가에 대한 사랑 등 인생과 세상은 사랑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일관된다.
문인이 사랑할 때에 세상은 사랑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이 추운 겨울도 결국 사랑으로 변해가며 따뜻한 이야기가 되어 우리 기억 속에 아름답게 남는다.
일제 시기에 한국 문단에서 활동했던 시인 백석은 어느 날 연인 김영한(자야)과 헤어지기 전 다음과 같은 시 한 편을 주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이 시는 먼 훗날 길상사의 시주로 알려지고, 자서전 ‘내 사랑 백석’을 펴낸 저자 김영한이 밝힌(받은) 시인 백석과의 러브스토리의 시로 알려져 있다.
김영한은 1987년에 대지 7천평과 건물 40동의 당시 시가 1천억원의 재산을 법정스님에게 시주해 지금의 길상사가 지어졌는데 후일 기자들이 “아깝지 않냐?”는 질문에 “이 재산 모두는 백석의 시 한 줄에 미치지 못한다‘는 유명한 말을 하였다.
겨울은 글짓기에 좋은 계절이다.
이 겨울이 가슴이 시리도록 추운 만큼 더 깊숙한 그리움으로 가득 찬, 여러분의 생각과 사색 그리고 고뇌와 고독이 아름다운 시, 수필, 소설 등으로 표현되어 누군가로부터 “이 세상의 그 무엇도 당신의 작품 하나보다 못하다”는 감동적인 말을 듣는 겨울이라면 얼마나 문인으로서 그대는 가슴 뿌듯하겠는가?
그러한 문인으로서의 명예와 영광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기도하며 ‘한국신춘문예 2025년 겨울호’를 내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