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3차전이 열린 잠실야구장에서 시구에 나섰다. TV와 언론은 온통 박 대통령의 ‘007 시구’를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촛불엔 꿈쩍도 않던 터라 정치권과 국민은 비판적인 반응 일색이다.
최근 국정원과 경찰에 더해 국방부, 국가보훈처 등 국가기관이 총체적으로 대선에 개입하고 검찰수사에서 외압이 존재했음이 국정감사를 통해 밝혀지면서 민심은 더욱 요동치고 있다. 공공연히 ‘탄핵’과 ‘하야’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외신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도 그래서다. 지난달 28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선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공이 아닌 야구공을 던졌다’는 돌직구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이 보도에선 “박의 깜짝 방문은 정부 기관들이 불법으로 박을 지원하기 위해 대선에 개입했다는 혐의들에 대해 여야가 설전을 주고 받으며 정치적 긴장이 한창 고조되는 가운데 이루어졌다”라고 지적했다. 야권에선 거센 반격에 나설 조짐이 관측되고 있는 가운데 박 대통령이 야구장에 선 모습이 마치 폭풍전야의 고요함을 만끽하는 모양새로 비춰지는 이유다.
‘부정선거’와 ‘대선불복’을 두고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민주당 의원도 입을 열었다. 문 의원은 지난달 23일 지난 대선을 불공정 선거라고 규정하곤 박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했다. 문 의원은 “군사독재 시절 이후 찾아보기 어려웠던 군의 선거개입은 경악스럽다”며 “빙산의 일각이 드러났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문 의원은 특히 “지난 대선의 불공정과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며 박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에 “대선불복 유혹은 악마가 야당에 내미는 손길이란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국가기관의 조직적인 대선 개입은 명백한 헌법 불복행위이며, 이를 비호하고 은폐하는 행위 역시 헌법 불복이다”이라고 맞섰다.
SNS 상에선 더욱 노골적인 언쟁이 벌어졌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문 의원의 가세가 대선불복을 위한 정략이라며 이를 ‘정치적 내란’이라고 표현했다. 변 대표는 “예산안 처리로 황우여 등 새누리당 기회주의자들 포섭한 뒤, 결국 탄핵까지 저지를 것”이라며 “결국 국민의 예산을 담보로 박 대통령을 몰아내는 정치적 내란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민 국민TV 라디오 PD는 “공공장소에서 독재를 지지하지를 않나, 호남 비하차별이 당연한 듯 거리낌 없이 시도되지 않나, 비리는 척결이나 배제가 아닌 필수 자질이 되는 세상. 이런 세상을 미치지 않았다고 하면 뭐라 할까요”라면서 “답은 하나입니다. 무자격자 하야”라고 박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했다.
요동치는 정국에 외신의 관심도 집중됐다. 미국 유력 일간지인 뉴욕타임즈(NYT)는 지난달 22일 “박 대통령 취임 후 국정원 사건으로 한국정치가 마비됐다”고 평가한 기사를 보도했다. 이 기사에선 이석기 의원에 씌운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국정원이 불법 대선 개입의 혐의에 대한 조사를 피하고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대중의 관심을 돌리는 수단으로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정치적 음모론을 제기했다. 프랑스 AFP통신은 “치명적 화상 입을 수 있는 거대한 스캔들로 무섭게 끓어오를 조짐”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의 지지 통신은 “검찰 수사과정에 대한 압력을 폭로해 정권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고, 산케이 신문은 “박 대통령의 침묵으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통합진보당은 지난 대선을 총체적 관권‧부정선거로 규정하고 총력투쟁에 나서고 있다. 당 대변인인 김재연 의원은 지난달 24일 “연일 드러나고 있는 18대 대선의 관권선거, 부정선거 의혹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입을 꾹 다물고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는 무시 전략은 변함이 없어 보인다”며 “국정원과 법무부, 여당과 보수언론을 동원해 찍어 누르고 왜곡하고 덮어버리면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국민의 시선을 딴 데로 돌릴 수 있다고 믿는가”라고 물었다.
김 의원은 “검찰 수사팀의 수사를 항명사태라며 엎어버리고, 민주당의 발언을 대선불복이라며 길길이 날뛰어도 달라질 것이 없다”며 “진보당을 희생양 삼아 내란음모사건을 일으켜 매카시즘에 불을 붙이고 난데없는 사초실종 프레임까지 끌어다 붙여본다고 한들 드러나는 진실을 가릴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관권선거, 부정선거에 대한 국민의 여론이 ‘대선 무효’ 목소리로 이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며 “부정선거의 수혜자, 현 정권의 최고수장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는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