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구원의 확신이 없이 믿는 것은 이방종교인이나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기독교의 탈을 쓴 행위론 자로서 미련한 다섯 처녀나, 3대 불법 자나 다를 바가 없다. 이들은 다 주여 주여 하나 주님이 모르는 자들이다.
목사나 교사의 신분이기는 하나,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받지 못한 자는 성경을 가르칠 수가 없다.
하나님은 구원의 확신이 없이 이를 유지하려는 자에게 자격을 부여한 사실이 없다.
그렇다면 義의 일군이나 선생으로 가장한 무리에게 속한 자에 해당하는 것이라 믿는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소명에 의한 신분이 아닌 자칭 목사나 교사로서 귀결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성경에 반하는 메시지로 강단을 어지럽히고 있다는 지적이 이구동성이다.
3. 자살만은 지옥을 해결할 길이 없다는 것이 오류이다.
장 목사는 자살하면 계명을 범하는 것으로 해결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는 타락, 실족, 주님 부인은 해결할 길이 있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자살의 죽음이든지, 타락, 실족, 주님 부인이든지, 회개하지 않고 죽으면 해결할 길이 없음은 일반이다.
사실 율법에 저촉되지 않는 인간의 불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회개를 반복하여 유지하려는 자에 구원의 확신은 요원하여 미래에 가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구원의 확신이 믿음으로 현재 완료형으로 계시한다.
장 목사의 주장은 구원유지를 위하여 끊임없이 회개가 요구되는 구원론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분과 구원을 유지하려고 끊임없이 회개를 요청하는 가르침은 없다.
4. 예수를 믿어도 지옥에 가는 네 가지 경우는 없다.
장 목사의 구원론 관련 메시지는 은혜인 것 같으나 행위이다.
왜냐하면 성경에 존재하지 않는 지옥 가는 네 가지 경우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장 목사의 주장은 은혜도 율법도 아닌 혼합형 공존을 의도한 것이다.
따라서 스스로 자의든지 타이든지 죄를(자범) 지으면 지옥에 간다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천국 가기에 적당한 영적인 상태에서 죽는 것이 이상적이라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죽을 수 있는 것을 기대할 수가 없다.
(장동경 목사처럼) 성경에 없는 것을 더하는 구원론은 은혜구원을 훼방하는 사단의 조작이다.
이는 장경동목사의 신종 구원론으로서 자의해석의 결과이다.
5. 천국과 지옥의 문 앞을 왕래케 하는 구원론이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삶은 구원신앙으로 양의 문에 입문한 것이 아니다.
이 상태는 늘 불안한 신앙생활로 구원을 받으려고 매달려 있는 형국이나 다를 바가 없다. 이는 잘 믿는 것 같으면 천국에 갈 것 같고, 잘 못 믿는다면 지옥에 갈 가봐 두려움에 떨게 한다.
이들은 죄를 회개하지 않고 죽으면 지옥의 문이 열려서 삼킨바 될 것으로 믿는다.
그렇다면 오래 길게 믿거나 짧게 믿거나 죄를 짓고 회개하지 못하면 지옥이다.
장 목사의 경우를 적용하면 지옥 가는 네 가지 죄를 짓고 회개하지 못하면 지옥행이다.
그러나 이것이 지옥 가는 경우라는 구원의 조건은 없다.
성경에는 오직 구원을 받는 이름은 예수님뿐이다(행4:12).
따라서 예수님을 믿으면 100% 구원을 받고, 이를 유지하려고 네 가지 경우를 지켜야 천국에 간다는 것은 없다.
그야말로 서로 모순된 명제로 조화되지 않는 두 개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성도의 구원이 천국과 지옥의 문 앞에서 미확정되어 어슬렁거리는 것이 아니다.
구원의 확신은 영원불멸한 영생을 얻어 영생의 삶을 사는 것이다.
구원론이 잘 못된 이들은 수많은 죄 중에 하나라도 회개하지 못하면 지옥에 간다고 믿고 있다. 이는 잘 못된 구원인식이다.
지옥에 가는 것은 예수님을 주로 믿지 않는 불신앙의 죄로 말미암아 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수많은 죄로 인하여 지옥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지 않아 지옥인 것이다.
장 목사의 구원관은 이방들의 구원행위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은 예수를 믿는다는 명분 아래 탈 기독교형 구원론이다.
구원의 미완성 행위 메시지로 성도들을 불안케 하는 것은 용납 할 수 없는 것이다.
성도는 구원을 받으려고 천국과 지옥의 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자가 아니다.
불신앙의 죄인이 예수님을 믿어 물과 성령으로 속사람 영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고, 영생을 보장 받은 거룩한 무리이다.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기 위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므로 성화되어야 할 존재이다. 성도는 지옥에 대한 두려움이 완전히 해결이 된 자이다.
반면에 천국을 영원히 보장을 받은 존재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천국에 가려고 노력하는 자들은 구원에 입문하지 못한 분이다.
구원을 받은 성도는 구원을 인정받거나 유지 하려고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백성으로서 개인 인격의 성화는 물론 내게 주신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사명을 다하며, 전도의 직무를 수행하여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림에 있는 것이다
6. 행위론 자임을 벗어 날 수 없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예수님을 믿어도 지옥 가는 네 가지 경우는 성경에 없다.
장 목사의 구원론은 포리부동하다.
구원론에서 수다한 조건부 수행을 첨부한 것은 성경이 아니다.
예수를 믿으면 100% 구원받는다면서, 네 가지의 경우를 회개해야 지옥을 면한다니, 이신득의와는 상관이 없다. 예수님을 믿으면 100% 구원받고 율법을 범하면 지옥에 간다는 것이 그럴싸한 것 같으나, 이런 이중적인 기준은 성경에 없다.
구원론 잣대가 은혜와 율법으로 오락가락하는 것은 성경이 아니다.
성경에 합당한 구원론은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장 목사의 말대로라면 어느 정도 믿어야 구원인지, 지옥에 가는 멸망인지 그 수준을 한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은 성경은 행위론 조건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없는 것을 만드는 것은 율법주의를 벗어날 수 없다.
장 목사가 말하는 지옥 가는 네 가지 조건에 문자 의미를 적용하건대 걸리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성경은 사랑하지 않으면 율법을 다 범한 자임을 가르친다.
장 목사의 구원은 구원을 위하여 끊임없는 회개의 반복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구원은 현재 확신한 영생이 아니고, 가 봐야 안다는 결론이니 구원의 확신이 불완전이다.
이는 예수님을 믿을 때에 구원이 현재완료 시상인 성경계시를 부인하는 것이다.
장 목사는 타락, 실족, 부인, 자살을 해결하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것이니,
지옥 가는 경우에 문자적인 의미를 살피지 않을 수가 없다.
이에 속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것은 아래의 문자 의미에서 확인이 되는 것이다.
첫째 경우 : 타락(墮落))
“ ① 품행이 좋지 못하여 헛된 곳에 빠짐. corruption
② 죄를 범하여 불신(不信)한 생활에 떨어짐. apostas
③ 수도(修道)하다가 속심(俗心)으로 떨어짐. apostasy" 이다.
헬라어로는 “파라핖토 : 겉에 덜어진다. 길을 잃는다. 놓친다. 낙심한다. 저버린다. 배반한다. 비교한다. 배신한다.
둘째 경우 : 실족(失足)
“ ① 발을 잘 못 디딤. false
② 행동을 잘 못함. mistake"이다.
헬라어로는 “스칸달리조 : 걸리게 한다. 넘어지게 한다. 범죄케 하다.
셋째 경우 : 부인(否認)“ 그리하지 않다고 보거나 주장함. denial"이다.
헬라어로는 “아팔네오마이 : 부정한다. 부인한다. 포기한다.”이다.
마지막 경우 : 자살(自殺)은 “자기 목숨을 스스로 끊어서 죽음. suicida"이다.
라틴어로는“자살의 어원은 라틴어의 sui(자기 자신을)와 cædo(죽이다)의 두 낱말의 합성어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자살이란 그 원인이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당사자가 자유의사(自由意思)에 의하여 자신의 목숨을 끊는 행위를 말한다.”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이는 없다.
이에 자신들을 적용하면 하나님의 판단의 표준에서 인간이 의롭다는 것을 내 세울 자는 없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함이 성경이다(롬3:9,10,23)
7. 장 목사 자신의 주장에 적용이 된다는 것이다.
장 목사의 경우는 자살에 대하여는 살아 있어서 제외되나, 타락, 실족, 주님 부인을 벗어 날 수가 있을까?
사실 장 목사는 불행하게도 반성경인 양태론, 마귀론, 구원론 등에서 성경을 불신하는 신앙에 떨어져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회개하여야 할 것이고, 이를 고집한다면 유감스럽지만 지옥행이다.
자신의 메시지가 성도들로 하여금 탈 구원론의 올무를 놓아 걸려 넘어지게 하여서 실족케 할 뿐 아니라, 성경을 부정하거나 포기나 부인하는 행위에 크게 일조한 것이다.
사실 주님을 부인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케 하는 행위 그 자체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벗어 날 수가 없음이다.
장 목사는 지옥 가는 네 가지를 제시하여 스스로 판 함정과 올무에 빠지는 형국이다.
8. 장 목사 주장이 반성경적임을 지적한다.
성경적인 구원은 물과 성령으로 영이 거듭나는 것이다(요3:6).
이는 곧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요1:12).
이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서 천국을 보장받는다(엡2:8, 요3:16).
장 목사의 주장대로라면 현재형으로 죄인 중에 괴수임을 고백하는 사도바울은 지옥행으로 단죄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면서 위로를 받은 구원받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이다. 사실 구원 받은 백성은 상황에 따라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므로 고민하는 상태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회개와 자백을 권함을 받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 회개와 자백은 신자가 지옥을 면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의 구원을 가르친다.
사도바울은 장 목사와 같이 지옥에 가는 네 가지 경우를 가르친 사실이 없다.
따라서 이러한 주장은 유감스럽게도 지옥불안공포를 조성하는 언어폭력 행위
이라 믿는다.
성경은 죄인이 영원불멸의 구원을 받아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 안에서가 아니라, 현재완료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장 목사의 구원론을 성경에 적용하면
①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에 지론이다.
▲ 갈5:4 “율법 안에서 의롭다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② 회개가 지옥을 면하는 구원유지 조건이니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한다.
▲ 롬11:6“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 하느니라”
③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에 얻음에 반하는 것이다.
▲ 갈2:16“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노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④ 예수님을 믿는 믿음 이외에 구원과 유지의 조건이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되이 하는 것이다.
▲ 갈2: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기독교이단사이비연구대책협의회
첫댓글 그러게요. "등에 북을 매고 발로 북을 치면서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닙니다." 하는 약장수입니다. 일명 사탕 맛이 나는 구원약인가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