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주' 프로필
제5장춘교 바로 앞, 옛날 여관이 있던 자리에는 해남이 낳은 시인 이동주(李東柱, 1920∼1979)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이동주는 1940년 6월 '조광(朝光)'에 시 '귀농(歸農)', '상렬(喪列)' 등을 발표하고, 이어 1950년에는 서정주(徐廷柱)의 추천으로 '문예(文藝)'지에 '황혼(黃昏)', '새댁', '혼야(婚夜)' 등의 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시인의 길로 들어선다. 그의 시집으로는 '네 동무'(합동시집, 1946)와 '혼야'(婚夜, 1951), '강강술래'(1955), '이동주시집'(1987)이 있다. 그는 주로 한국적 정한에 바탕을 둔 향토적 서정을 노래한 시를 많이 썼다. 시비에는 향토적 서정을 노래한 그의 대표적인 시인 '강강술래'가 새겨져 있다.
여울에 몰린 은어(銀魚)떼
삐비꽃 손들이 둘레를 짜면 가응 가응 수워얼래에
갈대가 스러진다 (강강술래-이동주)
달빛이 환하게 비치는 뜰에서 처녀들이 강강술래를 하는 모습이 시청각적 심상을 통해서 환상적이면서도 역동적으로 묘사된 시다. 강강술래를 하기 위해 모여든 처녀들을 여울에 몰려온 은어떼에 비유한 표현이 재미있다. 강강술래는 '달무리가 비잉빙' 도는 것처럼 원을 그리면서 서서히 돌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빨라진다. 나중에는 갈대가 스러지고, 기폭이 찢어질 정도로 빠르게 돌아간다. '백장미 밭'처럼 달빛이 하얗게 쏟아지는 뜰에서 '공작이 취한' 듯 춤을 추는 처녀들의 환상적인 모습에는 '목을 빼면 설움이 솟'는 어떤 정한이 짙게 배어 있다. 한은 풀어야 하는 것...... '열두 발 상모가 마구' 도는 것처럼 처녀들의 강강술래는 숨가쁘게 돌아가다가 '술보다 독한' 달빛에 취해 무아지경으로 들어간다. 이러한 무아지경 속에서 설움은, 한은 마침내 풀어지고 극복된다. 한민족의 집단무의식에는 한의 정서가 뿌리깊게 남아 있다. 이 시는 대동세상을 여는 춤판 즉 강강술래를 통해서 한민족의 집단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한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잘 형상화하고 있다. 이 시를 읽고 있노라면 처녀들이 강강술래를 하는 모습이 마치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장면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다.
이동주는 '현대시와 서정의 문제'(문학춘추, 1964)를 비롯하여 여러 평론을 쓰기도 하였다. 1967년부터 그는 실명소설(實名小說)이라는 분야를 개척하여 '박종화'(현대문학, 1967), '김영랑'(현대문학, 1967), '유치환'(현대문학, 1967) 등 문인들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그의 유고집으로는 시선집 '산조'(우일문화사, 1979)와 실명소설집 '빛에 싸인 군무(群舞)'(문예비평사, 1979)가 있다. __ 현재 시비는 해남 문학회에서 관리중임__동 |
출처: 그리움 & 추억 한스푼 원문보기 글쓴이: 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