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시끄러울 때, 마음에 평화를 주는 그림을 찾다보면 Thomas Mcknight 그림도 빠트릴 수 없다.
사람때문에 시끄럽다면, 그리고 환경때문에 시끄럽다면, 정물화같은 느낌을 주는 풍경에 빠지는 것도...
그의 그림안에서는 나의 마음도 존재도 조용하게 정지할 것 같다.
토마스 맥나이트 ㅡ 고요와 평화 그리고 쓸쓸함
Nantucket Harborview
맥나이트의 작품에는 고요와 평화 그리고 신비가 담겨 있습니다.
테라스에 나왔더니 맑은 달이 떠 있습니다. 어찌나 크고 밝은지 곳곳에 그림자를 남겼습니다.
작은 화면이지만 방금 까지 사람이 있었던 흔적이 보입니다. 기타 악보는 의자에 걸쳐 있고
오른쪽 방 에는 이젤 위에 놓인 그림이 보입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또 하나의 풍경이 담겨 있습니다. 수박도 아직 그대로이고--- 주인은 어디 간 거죠? 참 고요하군요.
맥나이트는 1941년 캔자스의 로렌스에서 태어났으니까 올해로 예순 여덟입니다. 열 세 살 때 어머니로부터 유화 물감 세트를 선물로 받았는데 이 선물이 그에게 미술에 눈을 뜨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 그린 작품은 ‘ 언덕 위 눈 쌓인 교회당’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었는데 물론 지금의 그림과는 다른 화풍이죠. 그 후 3년 간 회화에 대한 기술을 닦았는데 어머니의 선물이 아들의 일생을 결정하는 계기가 된 것이겠지요.
시원한 맥주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옵니다. 창문 너머 푸른 바다 위, 달은 비수처럼 날카롭게 빛나고 있는데 잠을 잊은 배 한 척이 바다 위에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화려한 색상과 단순한 스타일은 맥나이트 작품의 특징이죠.
그리스 산토리니를 닮은 모습의 동네가 열린 문을 통해 파란 바닷물 옆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의자 앞에 벗어 놓은 신발 --- 이 작품에서도 사람은 보이지 않고 문은 열려 있습니다.
화면 위까지 열린 바다를 보다가 담 위에 놓인 수박에 눈이 멎었습니다. 맥나이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과일입니다. 수박을 좋아했던 걸까요?
16세가 되던 해 맥나이트가 장래 진로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유명한 하퍼스 바자 (Harper’s Bazaar)의 디자이너이자 디렉터였던 알렉세이 브로도비치의 조언이 또 한 번의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해왔던 대로 해’
그는 코네티컷 미들타운에 있는 웨슬리 대학 교양학부에 입학합니다. 미술을 전공하겠다는 학생은 다섯 명이었습니다.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이 것이 기존의 틀에 박혀 ‘~ 주의’를 따르지 않아도 되게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오늘날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독특함도 여기에 기인한 것 아닐까요?
컵도 두 개, 그릇에 담겨 있는 스푼도 2개 --- 두 사람은 오른쪽으로 열려 있는 계단을 따라 달빛 아래 빛나는 건너편 성당에라도 간 모양입니다. 세속적인 행복의 이미지를 천상의 이미지로 만들었다는 평론가들의 말이 맞습니다. ‘이발소 그림’ 같다는 사람도 있지만 이런 고요와 평화를 이발소 그림에서는 만나기 어렵습니다. 이발소 그림에서는 담백함을 느끼기 어렵거든요.
맥나이트는 평생 여행을 좋아했습니다. 어려서 뉴욕, 몬트리올, 워싱턴 DC등에서 살았다고 하는데 어렸을 때의 영향도 있었겠지요? 유럽 문명에 대한 동경을 갖게 했다는 파리는 특히 그가 좋아 한 곳이었고 젊은 한 때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할 무렵 맥나이트는 미술관의 큐레이터나 교수로 나가는 길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엉뚱한 곳에서 그의 경력을 시작합니다.
파리의 보름달 Full moon over Paris / 61cm x 76.2cm / 1979 / Acrylic on Canvas
노틀담 사원이 파리의 밤하늘 아래 우뚝 서 있습니다. 파리의 밤 모습은 옅은 푸른 색으로 아스라히 퍼져 나가고 있고 보름달은 세느강 위에 수많은 점들로 조각조각 떠 있습니다. 사람 모습을 찾기 어려운 것이 맥나이트의 작품 특징 중 하나라고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고요함과 함께 쓸쓸함이 다가 옵니다. 마치 정적만 남아 있는 듯 합니다.
맥나이트가 졸업 후 취직한 곳은 타임 매거진 (Time Magazine)이었습니다. 처음 맡은 일은 서류담당이었습니다. 8년간 그 곳에서 근무를 했는데 그가 퇴사하기 전 맡았던 업무는 광고 카피라이터였습니다. 대학에서 배운 전공대로 인생이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야 잘 알지만, 맥나이트는 특이한 길을 따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 그에게 미술은 늘 그의 주변을 맴돌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코네티컷의 골짜기 Connecticut Valley
길은 산등성이를 따라 가다가 마을로 머리를 돌렸습니다. 해가 뜨는 모습일 수도 있지만 해가 지는 모습으로 보기로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 가는 길은 해가 질 무렵이 더 어울리기 때문이죠. 종일 하늘을 날던 새들도 이제 다가올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나뭇가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퇴근 길에 지는 해를 보면서 ---- 울어 본 적이 있으신지요?
1970년, 회사를 그만 두기 2년 전인 스물 아홉의 맥나이트는 휴가를 그리스에서 보내고 있었습다.휴가 기간 중 이렇게 회사 생활을 하는 것이 그의 삶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랜 시간 그의 주변을 얼쩡거리던 미술이 그에게 달려든 것이죠. 2년 후 맥나이트는 타임 매거진을 그만두고 그리스 미코노스섬에서 여름을 보내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토르톨라섬 Tortola / 53.34cm x 58.42cm / 1988 / Silkscreen
창문 너머 키 큰 야자수가 방안을 너머다 보고 있습니다. 혹시 눈치 채셨는지 모르겠지만 맥나이트의 작품에는 창문이 자주 등장합니다. 창문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설정이지요. 그가 왜 줄기차게 열린 창의 모습을 그림 속에 묘사했는지 알 수 없지만, 혹시 조금 떨어져서 보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요? 창은 세상과 통하는 길이기도 하지만 닫고 나면 세상과 단절 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지요. 온 몸으로 먼저 보기 보다는 혹시 머리로 본 다음 가슴에 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의 작품 속 바다는 늘 정리 된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맥나이트 작품에는 그리스의 작은 섬부터 롱 아일랜드의 해변까지 그리고 뉴잉글랜드부터 베니스의 휴일 모습까지 담기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 밝은 색과 깔끔한 선 처리를 위해서 그가 선택한 실크스크린 기법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비록 더디기는 했지만 미국과 독일에서 그의 작품이 관객들의 시선을 끌었고 판매되기 시작했습니다.
1979년 38세가 되던 해, 맥나이트가 꿈꾸던 여신이 그를 찾아 왔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과 죽음의 신 Sower and Death / 67.08cm x 71.12cm / acrylic on canvas
어떻게 보이시는지요?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그림이 담고 있는 의미가 떠 오르지 않습니다. 씨를 뿌리는 남자 옆에 긴 낫을 든 죽음의 신이 서 있습니다. 죽음의 신이라고 하기에는 연약한 여인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좀 야합니다. 씨를 뿌리는 밭에는 돌도 있고 거둬내야 할 것들이 있는데 --- 그냥 뿌리는군요. 혹시 죽음의 신의 마음 속에는 이런 말이 흐르고 있는 것 아닐까요?
너, 밭도 안 갈고 씨를 뿌리고 있구나. 나중에 싹이 돋을 것 같니? 너 그때 죽었어!
그 해 여름도 맥나이트는 그리스 미코노스 섬에서 여름을 나고 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레나테 (Renate)도 그 섬에 휴가 차 와 있다가 둘이 만나게 되었죠. ‘오랫동안 찾아왔던 뮤즈’라는 표현을 보면 첫 눈에 반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 다음 해 둘은 결혼합니다. 사랑은 그렇게 어느 날 문득 찾아 온다는 말이 틀린 이야기는 아니죠.
푸른 소파 Blue Couch
맥나이트의 작품 배경은 바다가 제일 많은 것 같은데 이 작품의 배경은 마천루로 가득 찬 도시입니다. 우울하고 답답할 것 같은 느낌을 가운데 푸른색 소파가 다 날려 버렸습니다. 더구나 소파 가운데 위치한 붉은 꽃과 초록색 잎사귀의 대비가 강렬해서 상큼한 맛도 줍니다. 창문 너머는 거대한 회색의 도시이지만 안쪽은 원색과 생명력이 가득한 곳입니다. 도심 속 거주자들에게는 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겠군요.
결혼 후 1980년 대부터 맥나이트의 작품은 대중들의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그림 자체도 아름답지만 보는 사람 마음에 평화와 조화로움을 심어준다는 평도 있고 꿈 속의 언어로 마술에 의한 매력적인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는 평도 얻었습니다. 수 백점의 작품이 제작, 판매되었는데 일본 사람들에게 아주 인기가 있었습니다. 또한 일본의 고베시로부터는 고베의 모습을 담은 연작을 그려달라는 주문도 받았습니다.
델로스의 아폴로 Apollo on Delos / 45.72cm x 40.64cm / casein on paper
델로스는 아폴로가 태어난 곳이죠. 신들 중에서 가장 잘 생긴 신이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사방에 있는 여인들로 부터 아이를 얻습니다. 태양의 신이기도 한 그는 지금 밤 새 하늘을 지켰던 달을 가슴에 품고 이제 하늘로 오르려하고 있습니다. 아직 잠에서 못 일어난 아이도 있는가 하면 여인은 아침 빛에 눈이 부셔 얼굴을 가리고 있습니다. 이제 세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신화 속 이야기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많이 보입니다. 이런 기법과 주제를 표현한 작가 중에서는 아마유일하게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가 아닐까 하는 평도 보입니다. 화실에서 상상과 실제의 아르카디아(낙원)을 그리면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맥나이트는 요즘도 작품에 대한 영감을 찾아 아내와 함께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신이 느끼는 행복함이 작품 속에 녹아 들어가 작품을 보는 사람에게도 전해지게 하는 능력,한 없이 부럽습니다.
맥나이트 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