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은 왜 한달한달 붙여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씩하나씩 뜯어가는 것이어서 연말이면 벗겨진 허물처럼 한 장만이 나풀거리는 걸까. 항상 이맘때면 한 해 생활에 대한 아쉬움이 크리라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다시 붙일 수도 없고....
자연은 끊고 이어짐이 없고 나뉨도 없는 것을, 사람이 아침과 저녁을 구별하고 한 날, 한 달, 한 해를 정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평가와 반성의 과정으로 삼는 것. 주님을 사랑한다고 해 놓고 오히려 주님의 이름 앞에 부끄러움을 보지는 않았는지... 맡겨진 1년의 뜨락을 쓸면서 이제는 유종의 미를 깨달아야 할 때인가 봅니다.
다네이 영성학교를 사랑해주시고 격려해주시고 이름이라도 한 번 불러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기 예수님 잘 맞이하시고 새해에도 주님으로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에 곁들인 정일근 시인의 글 하나 부칩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가시덤불 속에 핀 하얀 찔레꽃의 한숨 같은 것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한 자락 바람에도 문득 흔들리는 나뭇가지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은 무수한 별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거대한 밤하늘이다
어둠 속에서도 훤히 얼굴이 빛나고 절망 속에서도 키가 크는 한마디의 말
얼마나 놀랍고도 황홀한 고백인가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이해인/황홀한 고백〉
찬미 예수!
당신의 성탄을 앞둔 세상은 여전히 거룩함보다는 화려함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성탄 전야는 화려한 사람의 축제가 되어버렸고 그 밤은 한반도에서 가장 요란하고 잠들지 않는 밤이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그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사람의 죄입니다. 사랑의 허언이 난무하는 성탄 전야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젊은 시절 그 밤에 저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취기였고 진실이 아니라 욕망이었음을 술이 깬 숙취의 그 아침에 뼈저리게 후회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시를 쓸 때마다 손을 씻는다는 어느 시인처럼 사랑을 고백할 때는 몸도 마음도 깨끗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그때였습니다. 첫사랑을 할 때 몇 번이나 양치질을 하고 그 소녀를 만나러 갔던 것처럼 가장 맑고 향기로운 시간에 가장 빛나는 사랑이 강림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찬미 예수!
당신의 사랑론(論)은 ‘고린도전서(前書)’에 전합니다. 바울이 자신이 세운 고린도 교회에 처음 보낸 16장의 편지인 그 전서 13장에 당신의 사랑론이 담겨있습니다. 바울은 그 처음에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다’ 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고 했습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을 사랑의 명제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몸이 뜨거운 사람의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 아니라 번개처럼 한순간에 영혼을 사로잡는 것이며, 온화하고 부드러운 것이 아니라 기름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 사랑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하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이니 ‘믿음 소망 사랑 중에서 사랑이 제일이다’는 낡은 명제는, 더는 사람의 사랑을 가르치는 말씀이 될 수 없다는 건방진 생각을 했었습니다.
찬미 예수!
혹 당신도 얼마 전 TV를 통해 방영된 ‘24kg의 아내’라는 방송을 보셨는지요? 성인 조로증이라는 희귀한 베르너 증후군을 앓는 아내 장미향씨와 그런 아내를 사랑하는 키 작은 남편 박상기씨의 사랑을 보셨는지요? 베르너 증후군으로 살과 뼈만 남은 24kg의 아내. 마치 살아있는 미라처럼 변해버린, 시력과 청력이 떨어지고 조금만 부딪쳐도 몸에 상처가 생기고 진물이 나는 아내를 돌보는 남편. 그 역시 ‘난쟁이’라는 장애를 가졌지만 15년 동안 한결같이 아내를 위해 밥하고 머리를 감겨주며 상처를 치료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당신의 사랑론을 인정했습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고린도전서의 사랑이 바로 거기 있었습니다. 그 방송을 보던 밤에, 펑펑 울면서 그 사랑을 보던 밤에 저는 두 사람의 사랑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으로 이름 했습니다. ‘세기의 사랑’으로 명명됐던 사랑들도 그 사랑 앞에서는 기름지고 배부른 사랑이었습니다. 내가 읽고 썼던 그 어떤 사랑의 시보다 찬란한 사랑의 시가 거기 있었습니다.
없는 것까지 다 잃고, 몸서리쳐지는 세상 가장 밑바닥에서,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나은 살아있는 고통 속에,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한다는 것이 희망이며 사랑인 그 부부에게 당신의 사랑은 분명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랑 앞에 그 어떤 사랑도 호사일 뿐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한 아픈 사랑도 사치였습니다.
찬미 예수!
올 성탄 전야에는 저도 누군가에게 ‘무수한 별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거대한 밤하늘’ 같은 ‘황홀한 고백’을 하고 싶습니다. 저의 소원을 허락하신다면 거룩하고 고요한 밤에 함박눈을 내려 축복해주소서.
첫댓글 위원장님 성탄 메세지 감사합니다. 황홀한 고백 저의 소원을 들어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너무나 가벼운 마음으로...생각할수록 즐거운 날들입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같이 가게 되니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세상 이기신 주님! 항상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며 새 힘을 주시리!!!
위원장님 1년동안 아름다운 모습으로 영성학교를 위해 동분서주하셨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24일이 생일이시고 25일이 결혼기념일이라 하셨던가요? 아마 30년전에 그런 황홀한 고백을 세레나언니에게 하셨을 것 같습니다. 두분의 모습이 행복해보입니다.
그동안 궂은 일 마다 않고 도와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젠 큰 일 맡아 하시니 운영진에서 보다는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항상 관심 가져 주시고 격려 바랍니다.
위원장님이라고 불러드려야 하나 봅니다. 위원장님, 아름다운 글 올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한 번만 읽고 말기엔 아까워 자주자주 들어와 읽고싶습니다. 다네이 영성학교의 발전을 위해서 수고하시는 위원장님께 주님의 축복이 함께하시길 기도드립니다. 행복하세요~*^^*
멀리 부산에 계시면서도 큰 도움주신 마리아님!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저희 운영진 모두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기예수님과 함께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창립년도의 수고로움에 하느님께서 축복을 듬뿍 주시옵길!!! 생일과 결혼기념일을 아기예수님이 축복하시는 2008년이 되겠군요/// 축하 드립니다...메리 메리 메리 크리스마스...
민수사님! 고맙습니다. 전국의 동반자 두루두루 살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기예수님께서 수사님 안에 영원히 머무르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