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49재 때 불법만나 지난 삶 참회
108배 수행 홍순화 보살 (상)
지금도 엄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간간히 극락에 계실 엄마에게 편지 올리면서 눈물 흘리지만 어느 때나 할 것 없이 엄마를 생각하기만 해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난다. 내가 참다운 불자의 길을 가게된 것은 사실 2년 전 엄마의 49재를 지내면서다. 당시 첫 번째 재를 지내는 것 자체가 걱정이었다. 그동안 불교와 깊은 인연을 맺지 않아도 사는 데는 별다른 장애가 없었고, 스님의 법문 한 번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막상 재를 지내려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하나 큰 고민을 안게 됐다.
그러던 중 엄마의 유물을 정리하며 법공양이라는 책을 보게 됐고, 영가 천도에 대한 설명을 읽게 됐다. 아마도 광명진언과 절하는 순서와 방법 등으로 기억된다. 아무튼 두 차례 연습을 하고 그 다음날 첫 번째 재를 맞이했다. 스님과 함께 처음 해보는 염불이기에 그 뜻은 알 수 없었지만 마음에 크게 와 닿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염불의 공덕이었던 것 같다.
매주 재를 지내면서 부처님께, 스님께 또 영가에게 지극한 정성으로 절을 했다. 그 슬픔 속에서도 절할 때만큼은 나의 몸 하나하나의 움직임에 지성을 들여 표현하고자 노력했고, ‘아, 부처님 세계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49재가 끝나고 나니 부처님은 오간데 없고 우울증이 심해 근무도 못할 지경이었다. 허탈함에 그저 멍하니 하루를 보냈고, 쏟아지는 눈물로 직장생활은 물론 일상생활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부산불교교육원 여래사불교대학을 다니며 부처님 법 공부를 하게 됐다. 불법을 공부하다 보니 그동안 얼마나 내가 까칠한 성격이었는지, 동료 관계며 나는 왜 출세를 못했을까 하는 명예욕, 재물욕 등 지금까지 살면서 삼독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었음을 알게 됐다. 다른 사람들보다 욕심이 심했고 이 욕심으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줄 알았지 마음 공부하는 도량이 있는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다.
불법을 배우면서 느낀 것은 살아온 내 삶 중에 제일 후회되는 것이 명예도 재물도 아닌 부처님을 늦게 만난 것이었다. 좀 더 젊었을 때(30대) 만났더라면 멋진 인생을 즐길 수 있었으며 수행 또한 깊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지혜만 조금 있었더라도 부처님을 누구보다 빨리 뵈올 수 있었을 텐데 돌아가신 엄마에게 참으로 미안할 뿐이다.
엄마는 일찍부터 부처님 법을 알았던 스님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였던지 항상 자태가 곱고 음식 솜씨와 말씀 또한 깨끗하셨으며 여느 엄마들과 다른 점이 많으셨다. 엄마는 젊었을 때부터 새벽마다 염불하시며 하루를 시작하셨지만 나는 관심 밖이었다. 그리고 엄마의 팔에 있는 여러 개의 커다란 연비 자국도 부산불교교육원 수계식때가 되어서야 그 의미를 알게 됐다.
법명 또한 엄마와 비슷한 것이 내가 불교를 알게 되고 공부하는 것이 그냥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엄마는 황옥연화, 나는 홍연화선이다. 엄마는 건강하고 정정하셨는데 우리 집을 다녀가신 후 어느날 새벽 돌아가셨다. 다행히도 나에겐 엄마의 공덕으로 태어날 때부터 불심이 심어졌던 것 같다. 부처님 공부를 할 수 있게 부산불교교육원과 인연을 맺게 해 주셨고, 또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신 것은 나이 많은 딸이 불교를 너무 모르고 살아가는 게 안타까워서 심어놓은 불심에 불을 지펴 주시느라 그러셨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엄마에게 감사할 뿐이다.
(연하선.55. 부산 세일병원 간호과 직원)
첫댓글 감사합니다. _()_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