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관시론 :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2
1. 문제제기
대한불교조계종에서는 조계종 총무원장이 3선을 한다고 하여 정치적으로 협력을 얻어 종권을 장악한다고 하여 조계종 개혁운동이 일어났다. 조계종 총무원장의 소임이란 24개 본사를 독점하고 있는 거대 조직이었다. 1994년만 하더라도 기독교나 천주교신도들보다도 불교신도들 가운데 국회의원이 많았다. 이러한 현상은 조계종의 기존 세력들이 장악하고 있는 독점적 기초를 관리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불교정화세력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불교정화세력들이란 일본식민지 시대 일본교육을 받았던 승려들은 일본승려들과 같은 모습으로 대학교육을 이수한 이들이 주지로 명을 받았던 것인데 1945년 8월 15일 이후 조선이 해방된 이후 조선은 분단이 되고 남북이 갈라지면서 미군정 이 실시되면서 미군은 분단 남쪽에 기독교를 전하려는 목적으로 미국식 신학대학을 건립하는 조직 작업을 시행했다. 그러나 불교계는 일본식민지 시대에 산물이라고 하여 일본 옷을 벗기는 작업을 하면서 미국식 옷을 입히려고 하였다.
미군정 2년 10개월 그리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라는 분단국을 선포하고 기독교식으로 정치를 시행하면서 이승만은 기독교 전파하는 미군 총독과 같은 역할을 12년간 시행했다. 그리고 4,19학생 혁명으로 인하여 이승만을 축출한 이후 윤보선 장면정부에서는 천주교를 선양하였다. 그러다가 박정희 군사정권 18년 동안 불교정책을 실시하려는 듯이 보였지만 미국식에서 이탈 하지 못했다.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민중혁명을 전두환은 무자비로 탄압하여 광주는 그야말로 아비지욕으로 만들어버린 시기에 불교계에서는 전두환을 찬양하고 그 다음 노태우를 찬양하는 세력들로 전환되었다. 김영삼 기독교시대에 이러러 불교개혁운동이 일어났다.
김영삼 시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은 불교정화운동시대 인물인데 불교정화이념의 토대를 실천하려고 했던 세력이었지만 정치권과 연관이 이어 그 세력을 교체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것이 오늘의 대한불교조계종의 역사관이다.
1. 승가의 교육목적
대한불교조계종 승가의 교육은 1964년 동국대학에서 승려들을 교육하려는 위탁을 통해 승려교육이 시행되었다. 불교정화운동 당시에 전국에서는 강원교육제도가 마련되어 있어 강원출신들에게도 그 특혜가 있었다. 비구 계통, 통도사 강원 직지사 강원 범어사 강원 해인사 강원. 비구니 계통 운문사, 동학사 등에서 승려들애게 교육을 실시하였다. 1964년 종비1기. 1965년 종비2기 2017년에 이르는 동안에 승단 교육을 이루어졌다. 중앙 승가대 교육 1979년에 1기 2000년 김포학사 이전 승단에 교육을 이수하게 하였다. 1994년 불교를 개혁을 실행하려고 하였던 것은 독점을 방지하려는데 있었다. 독점을 올바른 교육에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고찰하면서 대한불교조계종은 교육목적에 전념해야 한다.
2. 승려 박사 양성 교육 목표
대한불교조계종의 승려에게 석사 박사 교육에 힘을 다해야 한다. 동국대학 종비생으로부터 2기 박사. 2명은 프랑스박사, 국내박사는 승가학과 이후 선학과에서 박사 탄생. 중앙승가대에는 박사가 14며 석사112명이라는 통계를 접했다. 대한불교조계종의 발전은 박사 1000명의 시대를 향해 대한불교조계종에서는 전심전력해야 한다. 조계종 24개 본사별로 특별 교육 실시해야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종정과 불교계의 원료 24명과 대한불교본사 24개 본사를 통해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은 교육 정책에 총력을 다하는 소임을 실행해야한다
교육원의 지적재산, 동국대 석사 논문 발간 박사논문 발간 중앙승가대 석사 박사논문 발간 교육원의 재산으로 시행해야 한다.
3. 소결
이러한 관점에서 대한불교조계종의 교육목적을 실현하지 않고서는 불교교단은 물론 역사발전에 참여할 수 없다. 마치 조선 시대 과거시험에 응할 수 있는 자격이 없는 승과 시험폐지 후의 승단과 같은 위기를 맞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승과 시험이 폐지된 이후에 과거에 합격하였던 성균관과의 관계를 단절됨을 성찰하지 않을 수 없다.
2017년 1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