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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샘의 시창작강의 (13) : 시창작의 4단계
As a child holds a pet,
Arms clutching but with hands that do not join,
And the coiled animal watches the gap
To outer freedom in animal air,
So the earth-and-rock flesh arms of this harbour
Embrace but do not enclose the sea
Which, through a gap, vibrates to the open sea
Where ships and dolphins swim and above is the sun.
In the bright winter sunlight I sit on the stone parapet
Of a bridge; my circling arms rest on a newspaper
Empty in my mind as the glittering stone
Because I search for an image
And seeing an image I count out the coined words
To remember the childish headlands of Port Bou.
A lorry halts beside me with creaking brakes
And I look up at warm waving flag-like faces
Of militia men staring down at my French newspaper.
'How do they write of our struggle, over the frontier?'
I hold out the paper, but they refuse,
They did not ask for anything so precious
But only for friendly words and to offer me cigarettes.
In their smiling faces the war finds peace, the famished mouths
Of the rusty carbines brush against their trousers
Almost as fragilely as reeds;
And wrapped in a cloth - old mother in a shawl -
The terrible machine-gun rests.
They shout, salute back as the truck jerks forward
Over the vigorous hill, beyond the headland.
An old man passes, his running mouth,
With three teeth like bullets, spits out 'pom-pom-pom'.
The children run after; and, more slowly, the women,
Clutching their clothes, follow over the hill,
Till the village is empty, for the firing practice,
And I am left alone on the bridge at the exact centre
Where the cleaving river trickles like saliva.
At the exact centre, solitary as a target,
Where nothing moves against a background of cardboard houses
Except the disgraceful skirring dogs; and the firing begins,
Across the harbour mouth from headland to headland.
White flecks of foam gashed by lead in the sea;
And the echo trails over its iron lash
Whipping the flanks of the surrounding hills.
My circling arms rest on the newspaper,
My mind seems paper where dust and ink fall,
I tell myself the shooting is only for practice,
And my body seems a cloth which the machine-gun stitches
Like a sewing machine, neatly, with cotton from a reel,
And the solitary, irregular, thin 'paffs' from the carbines
Draw on long needles white threads through my navel.
보우 항
스티븐 스펜더
어린 아이가 애완동물을 안듯
팔로 잡긴해도 손 깎지를 끼지 못해
그놈이 틈을 노려 야생의 자유를 노리는 것처럼,
흙과 바위로 이루어진 항구의 싱싱한 팔뚝은
바다를 움켜지지만 꽉 가두지는 못해
이 바다는 틈새를 통해
배와 돌고래가 헤엄치고 태양이 빛나고 있는
열린 바다를 향해 요동을 친다
밝은 겨울 햇빛 속에서
나는 다리의 돌 난간에 앉아
쉬고 있는 팔을 신문에 할일없이 논 채
빛나는 돌처럼 마음은 텅 비어
이미지를 찾고 있다.
왜냐면 이미지를 보고
이 항구의 유치한 곶을 기억하도록 하는
지어진 단어들을 생각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럭 한대가 끽 하는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멈춰서고 나는
내 프랑스어 신문을 내려다 보는
민병대원들의 따뜻하고 흔들리는 깃발 같은 얼굴을 올려다 본다.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이 전쟁에 대해 뭐라고 합디까?"
신문을 건네지만, 그들은 받지 않는다
그들은 그렇게 값비싼 것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
단지 따뜻한 몇마디의 말과 내게 담배를 권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그들의 미소 띈 얼굴에서 전쟁은 잠시 평화를 찾고
녹슨 카빈 총의 굶주린 입은 잡초처럼 연약하게 바지에 묻혀있고
무시무시한 기관총은 늙은 어머니의 숄과 같은 천에 휩싸여 있다.
고함소리와 경례를 뒤로 한 채
트럭은 힘든 언덕과 곶을 넘어 사라진다
어느 노인 한명이 탄환같은 이빨 세개만 남아
그 사이로 '폼폼폼' 내뱉으며 지나간다
아이들은 그 뒤를 쫒아 달려가고
여인네들은 옷깃을 여며진 채 좀더 천천히 언덕을 넘어 따라간다
이제 마을에는 사격연습으로 아무도 남지 않아
오직 나만이 정확히 그 한가운데 갈라지는 강물이 타액처럼
물을 흘리는 그곳의 다리 위로 홀로 남았다
바로 그 한가운데
마분지로 지어진 집들의 배경에는
재빠르게 움직이는 더러운 개들 이외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외로운 표적처럼
그때
항구의 입을 건너 곶에서 곶으로
바다에 납덩이가 일으키는 흰색포말을 일으키며
둘러싼 언덕을 채찍질 하는 쇳소리의 메아리가 따라돌며
사격은 시작 되었다
쉬고있는 팔을 신문에 할일없이 논 채
내 마음은 먼지와 잉크가 내려앉은 종이와 같아
나는 스스로 사격은 단지 연습일 뿐이라고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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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ress
Stephen Spender
급행열차
스티븐 스펜더
처음에는 강력하고 명백한 선언
피스톤의 검은 성명이 있고 나서, 조용하게
여왕처럼 미끄러져 그녀는 역을 떠난다.
인사도 없이 억제된 마음으로
교외에서 초라하게 밀집된 집들과 가스 공장을 지나
그리고 마침내 공동 묘지 비석에 새겨진
죽음의 따분한 페이지를 지나간다.
도시를 넘으면 환히 트인 시골이 있고
거기에서 그녀는 속도를 더해 신비와
대양의 기선이 갖는 밝은 침착함을 갖는다.
그녀가 노래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때 - 처음에는 나직히
그리고 나서 더 높게 마침내는 재즈처럼 미쳐서 -
커브에서 소리치는 기적의 노래와
귀머거리 터널과 브레이크, 또 무수한 나사의 노래
그리고 언제나 경쾌하고 공기처럼 밑으로
차륜의 의기양양한 운율이 달린다.
선로의 금속성 풍경 속으로 달리며 그녀는
하얀 행복의 새로운 시대로 돌진한다.
이 곳에선 속도가 기이한 형체를 넓은 커브를,
그리고 대포의 탄도처럼 깨끗한 평행선을 던지고
그리하여 마침내 에든버러나 로마보다 더 멀리
세계의 정상을 넘어 그녀는
단지 낮게 파도치는 언덕 위에
한 가닥 밝은 인광이 흐르는 밤에 도착한다.
아, 불꽃 속의 혜성처럼
어느 참새의 노래도
꿀의 새 순이 터지는
어떤 나뭇가지와도 비길 수 없는
노래에 싸여 그녀는 황홀하게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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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음악 : Miserere mei, Deus - William Byrd. Judy Martin, Worcester College Chapel Choir, Oxford
클릭 :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AiL8i8vAPds
3. 구체적인 언어 찾기
런던출생의 영국의 시인ㆍ비평가 "스티븐 스펜더의"의 시 "보우항과 급행열차"이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한 스펜더는 1929년 독일에서 살며 나치스의 대두(擡頭)가 임박할 시기에 T. S. 엘리엇 등 1920년대의 황무지(荒蕪地) 의식에 대항해 적극적인 반 파시즘 운동을 벌이고 1930년대 시인 대표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1937년 한때 공산당에 입당, 에스파냐 내란에 참가하였지만 사회주의에 대한 개인의 양심과 수단과 모순상을 솔직히 인정하고 차츰 인도주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결국 필자처럼 자유주의자가 되었다. 제2차 대전 중에는 외무성의 일을 보았으며, 전후에는 유럽, 근동(近東)을 여행하면서 시행문을 썼다. 이 밖에 자서전 《세계 속의 세계 World with in World(1951)》를 썼으며 1954년부터 《인카운터》지(誌)의 편집을 맡기도 했다. 나는 스펜더를 시창작에 있어 개인의 양심과 수단과 모순상을 솔직히 인정한 점을 매우 높게 평가한다. 그는 무엇보다 칠레의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옥타비오 파스'처럼 내면의 순수성을 인정, 시를 매우 진솔하고 솔직하게 써온 영국의 대 시인이다. 우리나라의 시인 박인환, 김기림 등이 스펜더에게서 영향을 받기도 했다. 스펜더는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는데 울산 현대조선소 앞 바닷가에서 "언어"라는 시를 썼다. 언어, 즉 말을 물고기에 상징, 비유해 뛰어난 이미지즘의 시를 썼는데 내면의 표현할 수 없는 바를 구체적으로 은유와 상징, 이미지로 표현한 대가(大家)다.
자, 우리는 지금까지 마음 속에서 시의 씨앗이 끊임없는 성장을 해왔다. 싹이 트고 줄기와 잎을 뻗으며 꽃을 피웠는데 이 무르익은 성숙을 통해서 마침내 시의 열매를 맺는 순간이 된 것이다. 이 시의 열매라는 것은 구체적인 언어의 표현에 의해서 탄생된다. 이 단계에서는 아기를 출산하는 산모처럼 시인은 가장 완벽하고 정확한 언어를 찾기 위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진통은 고도의 정신집중을 요구하는데 스펜더는 시인의 정신집중에 대해서 말하기를 "액수를 셈하는 데 필요로 하는 집중과는 다르다"고 했다. 그것은 시인 자신의 주의를 특수한 방식으로 초점을 맞추기 위해 있는 것으로 이 집중을 통해 자신의 생각이나 사상의 온갖 함축성과 가능한 발전을 깨닫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마치 식물이 기계적으로 어느 한 쪽으로만 뻗어가지 않고 잎은 빛을 찾아서, 뿌리는 물을 찾아서, 모두가 여러 방향으로 동시에 뻗어가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정신집중 상태를 이루기 위해서 시인들은 시를 쓸 때 자기만의 독특한 버릇이 생겨나기도 하고 심지어 괴벽을 부리기도 한 시인들도 있었다. 실러의 썩은 사과나 김현승 시인은 커피를 굉장히 많이 마셨다고 한다. 갖가지 몸에 좋지 않은 나쁜 버릇들도 다양하기도 한데 그것은 집중을 위한 곁가지 일들이지 그렇다고 해서 언어들이 순수하게 골라지는 것만은 아니다. 갑자기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것처럼 한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은 막막함과 안타까움으로 언어찾기를 포기해야 할 순간들을 수시로 만나게 마련이다. 필자의 경우에도 예전에 수천편의 낙서들을 쏟아놓은 어느 순간 더이상 일상적인 개인감정과 넋두리들만이 변해지고 꾸며진 내 졸작들이 점점 싫어지게 된 것이다. 그럴때 나는 기도를 하거나 전원을 산책하거나 요즈음은 아예 시창작을 접어두고 각 사회과학 학문의 사상서를 읽는다. 사상자체는 딱딱하고 재미없지만 그속에서 "푱"하고 무슨 내게 중요한 문구나 의미가 발견되면 또 나는 그것을 졸시로, 메타포나 상징, 이미지들을 찾아 바꾸어 내게, 우리에게 와닿는 정서를 주입, 시를 쓰는 작업을 하는데 이 약간의 인내가 요구되는 작업을 잘 견디려면 재미를 불어넣어 주는 친구가 있어야 하며 그것이 바로 그 내용과 시를 연상케 하는 음악이다. 대게 찬찬히 시를 음미하며 읽으려면 배경음악으로 조용하고 감미로운 클래식 음악이 좋다. 또 조용히 내면을 침잠하면 원초적인 생명력이 넘쳐나는 유년시절의 자연체험과 고향, 내가 체험했던 공간과 장소들을 떠올려 보곤 한다.
자갈치 미소
맑은 샘
이제는 성냥갑같은 회센터가 늘어선 자리
아주 오래 전 백골단에 쫓겨 도망 나오면
아지메들은 나를 숨겨주고
꽉 막힌 가슴 저 탁트인 바다처럼
노릇노릇 연탄불 꼼장어를 그냥 구워주셨지
붉은노을 아부지가 홍조를 띄우면
푸른파도 넘실대는 울엄마 자리를 깔고
오줌싸게 그 사이 파고들 듯 비릿한 내음의 영도다리
"전갱이나 고등어 칼치 사이소"
구수한 사투리는 태종대 자갈마당 앞바다에 쏫아
용왕나라에 있던 내 작은 기암괴석이 불렀던 노래
용두산 40계단 새기고 새겼던 염원 다들 지워졌지만
부끄러운 고향총각 출세해 왔다고
삶은 고래고기에 얼큰한 우럭 매운탕이 공짜
어찌 잊으랴
창고같은 관사들, 시커먼 객차공장과 오래된 목욕탕 굴뚝을 지나
명백한 기적을 울리던 추억은 이젠 사라졌지만 KTX는 달려간다
줄지어 닭고닭아 일신우일신 바퀴는 이미 유치해
다시 가보고, 다시 먹고 싶으면 언제나 하룻밤이라
자갈치 마당을 간보며 어슬렁 거리는 "나까무라 순스케" 자식은
전단지를 뿌리고 있다
녀석 저 바다 건너에선 "조센징"이라 떠들겠지
그러나 나는 "어이, 니혼징, 이리 와" 라고 하지 않는다
고요한 사투리와 섞인 정중한 영어는 녀석의 입으로 들어가는 우럭매운탕 국물에
나오는 한마디가 "센세이,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다
어릴 적 보수동 뒷골목에서 회초리를 맞던 기억은
도쿄 진보쵸의 거리에서 영어로 "식당이 어디 있느냐?" 묻던 나에게
"*마그도 나르도 데스까?" 답하던 그 녀석 딸같은 어설픈 목소리로 되돌아 왔지만
아 아 옛날 아프던 그 보수동에서의 내 종아리를 때리던
이젠 힘없는 회초리가 파리도 뉴욕도 '뻥' 찰 수 있게 하셨다
고향이여
녀석이 사라진 후, 멀뚱한 횟집 아지메 내 말을 듣고
읽지도 못하는 녀석이 놓고간 전단지를 찢어 버리며 소금 뿌린다
'하모, 우리가 남이가, 저것들 마이 묵었다 아이가, 독도는 우리낀기라'
'이모요, 대마도도 우리 꺼,
'하모, 하모'
우리 영도할매 쑤시는 다리 이젠
온천하러 뉴욕으로 갈까나? LA로 갈까나? 하와이로 갈까나?
센다이는 죽어도 안간다 카이
고소하니 담백하니 파마늘 송송송, 구수한 된장바른 하모회가 또 추가
이거는 내 암만 생각해도 파리에서 대박 히트칠끼라
영도 삼신할매가 감히 누구신데, 용왕님 애인이다 아이가
친구야, 속쓰린 다음날 아침은 걱정하지를 마시라
옛 소년이 뛰놀던 황령산의 구름이 미소를 띄면
반드시, 기필코 동백아가씨의 미소 모나리자를 눌러 버리고
소더비에 나타날끼라
유관순 누나보다 더 또렷했던 미소여
전사이가도난(戰死易假道難), 어릴적 옛음성이 꽃비되어 바람타고
갈매기 오륙도 다섯형제 위를 날면서
오대양(五大洋)으로 '뚜우 뚜' 힘차게 간다네
서면의 복맑은탕 천하의 속풀이 "행님 왔능교?"
붉은 노을 우리 아부지가 홍조를 띄우면
푸른파도 넘실대는 울엄마 자리를 깔고
오줌싸게 그 사이 파고들 듯 비릿한 내음의 영도다리
자갈치 아지메 쭈글쭈글 주름살에는
이젠 비제의 L'Arlésienne 미뉴엣 선율이 하녀되어 감싸고
동백 꽃 환한 미소, 영원히 살아 있어라
영원히 살고 있어라
내사랑 남쪽바다 자갈치 무지개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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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마그도 나르도 데스까? : 1992년이던가? 나는 아르바이트겸 책장사 비즈니스 일로 일본 동경과 센다이, 미국의 뉴욕과 보스턴에 있었다. 동경 진보쵸의 엄청난 헌책방 거리를 둘러 보다가 배가고파 어느 일본 여고생에게 나는 "식당이 어디 있느냐?" 고 물었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이 바로 "마그도 나르도 데스까?" 였다. 통역하면 "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 찾느냐?" 라는 말이다. 우리 청소년, 습작생 여러분들은 절대로 일본 학생들에게 지지마시라....일본학생들의 맹점은 우리 학생들보다 영어와 수학을 못한다는 점이다. 필자도 필자 분야에서는 공부든 일이든 특히, 일본애들에게 진 적이 없다. 당시 나는 독일의 저명한 법철학자이며 형법학자인 "구스타브 라드부르흐"의 저서를 번역하러 책장사 비즈니스로 일본 동경대학 법대와 진보쵸 책방거리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우리와 일본동경대 법대가 누가 먼저 번역하나?로 경쟁한 적이 있었다. 결국 우리의 서울대 법대가 승리했었다. 앞으로 여러분들에게 펼쳐지는 글로벌 무대는 철저히 실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무대이지만 승리하면 하늘이 축복하는 멋진 무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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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구체적 언어로 표현하기는 제각기 이성적 사고에서 감성적 사고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강하거나 약하거나 진통이 따르다 보니 언어를 찾는 데 걸리는 시간도 시인마다 제각기 다르며 시에 따라서도 크게 차이가 나기도 한다. 서정주 시인이 그의 대표작 <국화 옆에서>를 쓸 때 맨 먼저 표현한 것이 3연이었는데 이것을 써놓고 몇 시간을 누웠다 앉았다 하는 사이 1연과 2연의 이미지가 저절로 모여 들었다고 한다. 이때의 심정을 시인은 "그것은 마치 내게 있어서는 어느 구석에서 잊어버렸다가 앞서 찾아내어서 쓰게 되는 낯익은 내 옛날의 소지품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감개였습니다" 라고 밝혔다. 그런데 마지막 연만은 사정이 달라 언어들을 찾는데 며칠이 걸렸다고 한다.
필자의 위 졸시 "자갈치 미소"도 마찬가지다. 부산이 고향인 사람은 "자갈치, 영도다리, 고래고기,자갈마당, 부산역을 막 떠나는 옛기차를 타고가던 풍경들, 복맑은 탕, 하모회(갯장어회)" 등등을 모를 리가 없다. 고향을 떠난 지 20년이 지난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부산사람들이면 누구나 알수있는 보편적 이미지들이다. 언젠인가 나는 뉴욕의 우리교포들 앞에서 '정지용 시인'의 "향수"를 노래 부른 적 있었다. 우리의 소박한 농촌, 고향의 이미지, 정서, 교포들은 정말 미친다. 마찬가지로 아마 해외에 있는 부산이 고향인 사람들은 내 졸시를 읽으면 나와 마찬가지로 마, 미칬삔다. 돌았삔다.^*^.
나는 시가 잘써지지 않을 때, 예를들어 이 사실적 이미지들을 스펜더 시인처럼 구체적인 이미지의 언어들로 일단 나열해 놓고 그것에다가 뒤척이며 정서나 감정, 현실적인 체험의 사건,장면,사상들을 가미해 넣어 본다. 그럼 어릴적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자갈치의 비린내가, 지겨워서 떠났지만 이제는 가고싶어 미치는, 쭈글쭈글한 주름살의 자갈치 아지메들의 짚은 사랑이 글로벌 동백꽃으로, 자갈치의 미래로, 세계예술로 영원히 변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작업을 해야하는 것이 바로 시인이니 구체적 언어찾기가 시창작에서 얼마나 중요한가?
세상의 열매들은 왜 모두가
둥글어야 하는가.
가시나무도 향기로운 그의 탱자만은 둥글다.
땅으로 땅으로 파고드는 뿌리는
날카롭지만,
하늘로 하늘로 뻗어가는 가지는
뾰쪽하지만
스스로 익어 떨어질 줄 아는 열매는
모가 나지 않는다
덥썩
한 입에 물어 깨무는
탐스런 한 알의 능금
먹는 자의 이빨은 예리하지만
먹히는 능금은 부드럽다.
그대는 아는가.
모든 생성하는 존재는 둥글다는 것을
스스로 먹힐 줄 아는 열매는
모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 오세영, <열매> 전문------
위 시를 통하여 시인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자기 희생으로서의 사랑의 정신"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깨달음은 능금을 먹다가 우연하게 발견하게 된 것인데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시의 씨앗을 찾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가 겪는 일상적인 일에서 이렇게 시의 씨앗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낯익은 사물일지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던 시인의 호기심과 새로움을 찾으려는 관심 때문이었다. 시인은 자신의 딸이 들고 온 쟁반 위의 능금을 보면서 어째서 모든 열매들은 둥근 것인지 궁금증에 빠졌다고 한다. 이것이 시적 사고로 이어지면서 "둥글다는 것은 곧 원이며 불교에서는 자비의 상징이라는 것과 열매는 타인을 위해 자신의 육체를 아낌없이 바치는 존재"라는 통찰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시인의 생각들이 어떤 구체적인 언어를 찾아서 표현되는지 그 과정을 시인의 말을 통해서 알아보자
"<이 단계에서 요구되는 것은 상상력의 작용이다. 그리하여 우선 나는 열매와 대립되는 사물의 가능성을 상상해 보았다. 그러자 원에 대립되는 기하학적 모형은 직선이라는 것, 직선은 원과 달리 둥글지 않고 날카로운 모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의 지각에 이르렀다. 그리고 나의 생각은 다른 한 편, 원의 상징이 열매라면 직선의 상징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으로 발전하여 갔다. 물론 쇠창살이나 젖가락이나 텔레비젼 안테나 따위의 사물들도 직선의 상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소재인 능금의 전체 의미망으로서는 적합한 것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쇠창살이나 젖가락 이것들은 인식대상인 능금과 아무 관련 없는 사물들이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인식 대상으로서의 능금과 관련있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드디어 나뭇가지와 뿌리, 가시라는 직선의 상징들을 찾게 되었던 것이다. 뿌리와 가지는 안테나나 젖가락, 쇠창살 등과 달리 능금 열매가 거느리고 있는 사물이라는 점에서 무책임한 사고인 환상과는 달리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오세영, 세계를 통찰하는 힘과 시쓰기, 중에서.....)
위의 인용문이 알려주듯이 구체적인 표현의 언어를 찾는다는 일 역시 구체적이고 유기적인 시적 사고의 연장인 것이다. 사고없이 언어가 건져질 리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 표현과정에서도 요구되는 것이 시인이 강조한 바 무책임한 환상이 아니라 '상상력'임을 볼 때 상상력의 도움 없이는 '표현'이라는 언어의 옷을 재단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시의 씨앗이나 발전, 그리고 가장 정확하고 구체적인 표현을 하기 위해서는 시 지망생들은 상상력을 키우는 훈련과 깊이 있는 시적사고, 정확한 언어를 찾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다.
4. 시 다듬기
상당한 산고 끝에 구체적인 언어표현을 통해서 한 편의 시가 탄생되었을 때 그 순간의 느낌을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시인마다 제 각각이다. 어떤 이는 뿌듯하고 행복하다고 이야기 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또 허전하다는 시인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표현과정을 끝낸 시가 곧 완전한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다듬기의 단계를 거쳐야 하는 거칠게 마련인 초고들인 것이다. 개중에는 쓰자마자 완결되는 것도 있으나 이는 지극히 드문 경우다 할 수 있다. 지금 막 태어난 시를 천연의 옥이라고 한다면 최고의 아름다움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 옥을 더욱 정련되고 세련되게 갈고 다듬어야 할 것이다. 이 다듬기 과정의 중요성과 필연성은 역대 명시인들이나 작가들이 자신의 체험을 통해서 누누히 강조하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발레리는 "퇴고를 하지 않은 문장은 북더기와 같다."고 했고, 중국의 시성 두보도 자신이 쓴 시가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을 때까지 다듬고 고쳤으며 고려시대 우리의 탁월한 문장가 이규보도 시에 적합하지 못한 아홉가지 문체를 말했는데, 그 중 하나는 "글이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잡초가 가득한 밭"에 비유 하면서 이 다듬기의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표현단계를 끝낸 후 시가 완성되었을 때 대부분은 마음의 긴장상태가 가시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의 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거리에 있기 쉽다. 그래서 흠이나 티를 발견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시는 어떠한 글보다 완전한 표현이 되어야 하며 언어 하나마다 갖는 무게가 엄청나고 심지어는 문장부호 하나 잘못 선택하여 시 전체를 망칠 수도 있기 때문에 가장 냉철하고 객관적인 태도에서 자신의 시를 다듬고 매만지는 기간이 필요한 것이다. 끝으로 시 창작의 4단계를 알기 쉽게 요약,제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시의 씨앗얻기 - 시의 씨
* 강렬한 인상
* 특별한 경험
* 하나의 착상, 충동, 영감
(2) 성장시키기 -시의 싹
* 가슴이 뜀
* 시적 분위기 생성, 한 행의 구절로 여물게 됨
* 이미지로 발전
* 마음진행 발전
(3) 표현찾기 - 시의 줄기, 잎, 꽃
* 창작과정에서 벌이던 작업의 의미, 이미지를 지니는 여러 개의 시구를 만듦
* 행과 연으로 적절히 배열
(4) 퇴고하기 - 시의 열매
* 창작이 완료된 상태
* 총체적 미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