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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 (朴裕河)
1957년 서울 출생 (3월 25일)
1993년 귀국
1994년 번역 풍장의 교실(야마다 에이미) 출판 [웅진출판]
1994년 번역 인생의 친척(오에 겐자부로) 출판 [웅진출판]
1994년 일본 최고의 권위 학술지 「일본문학」 논문 등록
1995년 세종대 교수 임용
1998년 「일본근대문학」 논문 등록
2000년 번역 만연원년의 풋볼(오에 겐자부로) 출판 [고려원]
2000년 저서 누가 일본을 왜곡하는가 [사회평론(주)] 출판
2002년 번역 마음(나쓰메 소세키) 출판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 선정) [웅진지식하우스]
2004년 저서 반일 민족주의를 넘어서 [사회평론] 출판
2005년 번역 인생의 친척
2005년 저서 화해를 위해서 [뿌리와 이파리] 출판
2005년 번역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가라타니 고진) 출판 [민음사]
2006년 저서 소멸하는 순간 출판 [황소자리]
2007년 번역 만엔원년의 풋볼(오에 겐자부로) [웅진지식하우스]
2007년 일본 오사라기 지로(大佛次郎) 논단상 수상
2008년 저서 카페 드 파리 출간 [황소자리]
2009년 번역 풍장의 교실 [민음사]
2009년 번역 아름다운 에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오에 겐자부로) 출판 [문학동네]
2010년 번역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가라타니 고진) 출판 [도서출판 b]
2010년 저서 하얀손 그림자 [신아출판사(전주)] 출판
2011년 저서 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 [문학동네]
2013년 e-북 화해를 위해서 [뿌리와 이파리]
2013년 저서 제국의 위안부 출간 [뿌리와 이파리]
직업 세종대 일어일문학과 교수
기타 日本近代文学会 편집위원・평의원
전공 일본근대문학
학사 게이오대(慶應義塾大) 문학부 일본문학
석사 와세다대(早稲田大) 문학연구과 일본근대문학 전공
박사 와세다대(早稲田大) 「일본 근대문학과 내셔널 아이덴티티」학위 논문
세종대 인문대 연구실 위치 집현관 714호
세종대 인문대 연구실 전화 02-3408-3119
박유하 약력
일본에서 게이오대학 국문과(일본문학)을 마치고 와세다대학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문학을 전공. 그 동안 연구활동 이외에 통역회사 '사이말'의 통역사로서 노태우 전 대통령, 다케시타 전 일본 수상 등이 참석한 정재계의 주요 회합의 통역을 맡고, 일본 외무성 북동아시아와 한국어 강사, NHK 국제국 아나운서 생활을 하는 등 일본 사회를 폭넓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1994년, 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일본 최고 권위를 가족 있는 학술지 <일본 문학>에 논문이 실렸으며, 1998년 <일본 근대문학>에 실린 논문에서 일본의 문호 나쓰메 소세키와 그를 신화화하는 일본 학계를 비판함으로써 비상한 주목과 함께 나쓰메 소세키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
1993년 귀국한 뒤 일본을 소개하는 작업의 하나로 『20세기 일문학의 발견』시리즈를 기획, 그 가운데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오에 겐자브로의 『인생의 친척』, 야마다 에이미의 『풍장의 교실』을 번역했다. 그는 또 일본을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비평가인 가라타니 고진의 평론집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 강연 「책임이란 무엇인가」, 논문 「일본 정신분석」「언어와 정치」등을 소개해 가라타니 고진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현재 세종대 일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박유하 연구 실적
저서 『반일민족주의를 넘어서』
저서 『화해를 위해서-교과서, 위안부, 야스쿠니, 독도』
저서 『日本近代文学とナショナルアイデンティティー漱石・文学・近代』
공저 『座談会昭和文学史』
공저 『東アジア歴史認識のメターヒストリ-』
공저 『歴史和解と泰緬鉄道』
2013년 6월 교도통신사 인터뷰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大阪) 시장의 구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한 발언과
아베(安倍) 정권의 역사문제 대응에 대해 한국에서 반발이 나오고 있다. 일•한 관계에 정통한 한국
세종대학교 일어일문학 박유하 교수는 당사자와 양국 정부관계자, 전문가 등이 참가하는 위안부 문제 협의체 설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시모토 시장의 발언을 어떻게 보는가?
“군이 위안부를 필요로 했다는 발언은 군대와 성의 문제를 환기했다는 의미로는 중요한 문제제기였지만, 위안부를 용인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오키나와(沖縄)의 미군에 풍속업(향락업) 활용을 권고한 것은 모순이다”
—강제연행의 유무에 대해 일•한의 인식에 차이가 있다.
“군이 조직적으로 강제연행했다는 이해는 수정돼야 한다. 한국에서도 최근 견해가 바뀌어가고 있으며 중개업자가 속이고 데려갔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위안부는 군을 지지하기 위해 사실상 국가적으로 동원된 것이기 때문에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없었다면 갈 필요도 없었다. 그러한 구조로 봐야 하며 강제연행 여부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일본 측이 아시아여성기금을 통해 보상금을 지불한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나는 기금을 평가하지만, (보상문제는 이미 해결됐다는) 1965년의 일•한 기본조약이 있었기 때문에 취해진 수단이라고는 한국에서 이해되지 않고, 국가에 의한 사죄가 아니라는 반응이 주류가 됐다”
“2002년에 한국에서의 보상금 지급은 끝났지만, 일본은 2011년 가을 이후에 한국 정부의 움직임이 있을 때까지 접수를 거부한 사람들에 대한 추가조치를 자주적으로 취해오지 않았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열리는 항의집회를 본 채 만 채 해온 것이 지금과 같은 사태를 초래한 부분도 있다”
—위안부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이 문제는 냉전붕괴의 여파로 일•한 양국내의 좌우 대립과 연결됨으로써 악화됐다. 지금까지 무엇이 있었고, 어디서 어떻게 악화됐는지를 돌이켜 보고, 조선인 위안부라는 것이 무엇이었던가에 대한 공통이해를 다시 구축한다. 그를 위해 당사자와 지원단체, 정부 당국, 전문가 등으로 일•한 협의체를 설치해야 한다”
—아베 정권의 역사인식에도 한국에서 비판이 많다.
“나도 기본적으로는 비판적이지만 일본에서 우경화가 추진되고 있다는 비판만으로는 사태는 개선되지 않는다. 일본의 우경화 비판은 1990년대부터 있었지만, 그렇다면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를 설명할 수 없다. 일본의 주장도 듣고 적절히 비판하지 않았던 것이 일•한 관계를 악화시킨 하나의 요인이다”
—2015년에는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이한다.
“2015년을 의미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도 이제라도 협의체를 구성해 기한을 두고 해결에 대처해야 한다. 일•한처럼 교류가 깊은 이웃나라는 그렇게 없다.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지금까지 축적해 온 교류의 힘을 이제야말로 발휘해야 한다”
2007년 "위안부 가해성 책임 한국에도 있다" YTN 보도
[YTN TV 2007-04-06 20:36]
[앵커멘트]
한 한국인 대학 교수가 일제의 위안부 동원 과정에서 한국인도 관여한 사실이 있다며 가해성에 대한 책임은 한국에도 있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이 교수는 특히 한국 사회가 위안부 문제의 진실과 그에 대한 일본의 태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도쿄에서 윤경민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지난 달 말로 해산된 일본의 아시아 여성기금과 관련해 도쿄 주재 외국 특파원 클럽에 초청된 박유하 세종대 교수는 먼저 이 기금의 성격에 대해 한국인들이 잘 모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박유하, 세종대 교수]
"(일본)정부가 관련했고 수상의 편지가 붙어 있는 단순하지만 상당히 상징적인 것인데, 그조차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박 교수는 그러면서 한국에서는 위안부의 실상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채 오해를 사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녹취:박유하, 세종대 교수]
"(위안부) 동원 과정에서 한국인도 관여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런 가해성에 대한 책임은 확실히 한국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자신이 인터뷰한 한 한국인 위안부 피해 여성은 당시 의붓 아버지에 의해 팔려갔고 일본군보다 아버지가 더 밉다고 말했다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또 위안부 문제는 일본군만의 전용물이 아니었다는 시각도 드러냈습니다.
[녹취:박유하, 세종대 교수]
"한국전쟁 때 한국군도 위안대를 운영했다는 사실, 연구가 나왔습니다."
박 교수는 이어 위안부 동원에 있어 좁은 의미의 강제성은 없었다는 아베 총리의 발언을 충분히 이해한다면서 마치 그것이 위안부가 전혀 없었다는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에 대해 유감스럽다고 말했습니다.
박 교수는 자신이 한국의 책임 등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일본의 가해 사실이 엷어지는 것은 아니라면서 그렇지만 그런 사실을 앎으로써 한국 내 일본 비판의 내용이 바뀌어 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회견에 함께 한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지난 95년 창설된 아시아 여성기금은 일본 정부와 국민이 50년 만에 상처 입은 아시아 여성에 대한 사죄와 보상의 길에 나선 것이라고 평가하고 그러나 사업이 중도에서 끝나 한일 간 화해는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도쿄에서 YTN 윤경민입니다.
2002년 중앙일보 이경희 기자 보도
한·일 교수들 NHK 위안부 왜곡방송에 항의
'우익과 싸우는 일본 지식인들을 도웁시다 - ' .
일본방송협회(NHK)의 종군위안부 관련 왜곡방송에 항의하는 e-메일 서명 운동이 한창이다.
한국에서는 세종대 일문과 박유하(朴裕河.44.여)교수가 지난달 한글 홈페이지(http://www.jca.apc.org/~itagaki/nhk/index_k.html)를 개설, 서명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홈페이지 작업은 한국에 연구차 체류 중인 '안티 히노마루-기미가요 네트워크' 관리인인 이타가키 류타(板垣龍太.29.도쿄대 박사과정)가 도왔다.
이 운동은 지난 1월 말 NHK에서 방영한 '여성 국제전범 법정' 특집 방송이
우익단체의 압력으로 ▶일왕의 유죄 판결▶옛 일본군 병사의 가해 증언이 삭제되는 등 왜곡된데 항의하는 내용이다.
지난해 12월 도쿄(東京)에서 열린 이 법정을 주최한 '바우넷(VAWWNET)재팬' 은 NHK에 즉각 항의했다.
지난 3월에는 방송에 참여한 일본 교수들이 e-메일 서명운동을 벌여 미국.영국.독일 등 8개국 학자 3백60여명의 이름으로 에비사와 가쓰지(海老澤勝二)NHK회장에게 항의서를 보냈었다.
朴교수도 지난 4월 공동서명 발의인으로 참가한 뒤 한국에서 서명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는 "일본을 싸잡아 비난하기보다는 우익 세력을 비판하는 일본 지식인들과 적극 연대키로 했다" 고 말했다.
한국에서 지금까지 서명에 동참한 인사는 최원식(崔元植.52.인하대 국문과).김승옥(金承鈺.60.세종대 국문과)교수 등 60여명. 23일 일본 서명 사무국<scripti@hotmail.com>에서 집계한 전체 참여 인원은 1천2백여명이다.
NHK에 대한 <우리들의 견해와 요망>에 대한
공동성명에 관한 호소문
여러분, 2001년 1월 30일에 방영된 NHK교육텔레비젼 방송<문책되는 전시 성폭력>에 관해서는 이전부터 우익단체와 자민당 정치가 등의 압력을 배경으로 NHK간부에 의한 강력한 현장개입이 이루어져 방송직전에 중대한 내용변경을 강요당했다고 하는 의혹이 보도되어 왔습니다.우리는 이제까지 이 의혹을 대단히 심각한 문제로서 받아들여 왔습니다만 이제는 그것을 구체적 행동으로써 NHK에 대해 묻고 광범위한 계층의 사람들과 함께 진상을 물어야 할 단계에 온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따라서 여러분들께 NHK에 대한 [견해와 요망]의 취지를 알려 드리고 공동서명자가 되어주시기 를 호소하는 바입니다.
[부자연스러운 프로그램 방영]
문제가 되고 있는 방송은 1월 29일부터 2월1일까지의 나흘동안 밤시간에 연속해서 방영된 ETV 2001<시리즈-- 전쟁을 어떻게 재판할 것인가> 의 2회분으로 방영된 것으로, 작년 12월에 동경에서 행해진 [일본군성노예제를 단죄하는 여성국제전범법정]을 다루면서 이를 중심으로 [종군위안부]로 칭해지고 있는 일본군 전시 성노예제를 [인도에 반하는 죄]로서 단죄하는 일의 의의에 대해 생각하고자 하는 내용의 것이엇습니다. 나흘동안 방영된 이 시리즈는 90년대에 들어와 현저해진 전시하 폭력을 [인도에 반하는 죄]로서 그 죄를 물으려 하는 국제적 인식의 확산을 정면에서 다루려한 , 대단히 그 의의가 큰것으로 독일이나 프랑스의 [과거]와의 대면을 소개한 제2회부터 남아프리카의 [진실 화해 위원회]의 시도를 통해 [화해]의 가능성을 찾는 제 4회까지 ,전 체적으로 질높은 다큐멘터리로 완성된 것이었습니다.그런만큼 제2회의 돌출적인 부자연스러움은방송된 날 이미 눈에 띄는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제 2회 [문책되는 전시 성폭력]이 방송으로서 [부자연]스러웠던것은 이하와 같은 점에서입니다. 방영시간자체가 다른 3회에 비해 4분이나 짧았고 제목도 직전에 [일본군의 전시 성폭력]에서 [ 문책되는 전시 성폭력]으로 변경되었으며,<법정>을 다루면서 [주최단체]에 대한 설명이나 천황을 유죄로 한 [판결]등 법정의 핵심부분 소개가 없었고 ,또한 <법정>에 부정적인 견해를 갖는역사학자의 의견은 두번에 걸쳐 길게 소개되었지만 <법정> 관계자나 찬동자측에게는 반론의 기 회가 없었다는점,그리고 스튜디오에 초청된 코멘테이터들 로부터도 <법정> 그 자체에 대한 적극적 언급이 되지 않았다는점등,말하자면 주제였을 터인 <법정>에 대해서 오히려 부정적인 평가를 심어놓는 인상을 남겼고 내용구성상에서도 다른 회분에 비해 혼란과 결함이 크게 드러나는 것이었다는점 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법정>의 일본측 주최단체인 VAWW -NET 재팬[전쟁과 여성에 대한 폭력]일본 넷트웍 .마츠이 야요리 대표)가,[시청자의 오해와 편견을 야기시킨다]며 즉 각 항의하였고 NHK에 대해 설명을 요구하는 공개 질문장을 제출한 바 있습니다.
[제작과정의 의혹과 출연자의 고발]
이러한 방송의 제 2회에 대해 그 제작과정에 [의혹]이 있다는 것은 매스컴의 [검증]기사에 의해 알려졌었습니다.그중에서도 3월 2일자 [아사히 신문]의 [검증]란과 [주간일요일]의 3월 2일호 및 3월 30일호에는 비교적 상세하게 이 일이 보되되어,이 제 2회 내용이 방영직전에 NHK상층부에 의한 [이례적인 시사]를 거쳐 대폭적인 내용변경이 행해졌다고 하는 사실이 드러나기에 이르렸습니다. 뿐만아니라 그 배후에 우익 단체에 의한 집요한 항의활동이 있었다는 사실도 그에 의해 알려졌습니다. 또한 이러한 직전변경에 대해, 방송에 출연했던 다카하시 테츠야 요네야마 리사,우츠미 아이코씨와 제 4회에 출연한 우카이 사토시 씨가 연명으로 NHK 회장에 대해 설명을 요구하는 신청서를 제출했고 그 중 한사람이면서 미국에 거주하는 요네야마 리사씨는 해외연구자 360명의 연명으로 항의문을 역시 회장앞으로 제출했다는 사실도 보도에 의해 알려졌습니다.
이번 문제에서 가장 특징적이고 주요하기도 한 점은 방송 출연자라는 내부자의 입장에 있었던 인물이 내용변경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지적하고 또 그에 대해 항의의 목소리를 냈다고 하는 점일 것입니다.그것은 우선 요네야마 리사씨가 앞서의 [아사히 신문]지상에서 [(<법정>의 )의의나 가해자의 증언을 평가한 논평은 전부 삭제되어 지리멸렬하고 오해를 낳는 내용이 되었다]고 명확히 지적했고 ,또 [주간금요일]에서도 [프로그램에서는 책임자처벌에 관한 문제가 회피되고 있다]고 비판된 바 있습니다.그리고 방송의 기획단계부터 제작까지 깊이 관여했고 시리즈 4회전체에 걸쳐 코멘테이터 역할을 한 다카하시 테츠야 씨도 잡지 [세계]5월호에서 방송제작의 경위와 방송 이틀전(1월 28일) 단계에서 사용된 대본의 일부를 공표,[무엇이 직전에 사라졌나]에 관해 상 세한 보고와 분석을 행했습니다. 관계자들에 의한 이러한 보고는,우리에게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고, 목소리를 내지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즉 제작단계의 대본과 실제방영작품을 대조함으로써 우리는 적어도 방영직전의 이틀사이에 놀랄 만큼 의도적이고 대폭적인 내용변경이 실제로 행해졌다는 사실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직전단계에서 가해병사의 증언이나 일본의 국가책임과 쇼와천황의 유죄인정등,[법정]의 핵심부분이 방영내용에서 사라졌고 또 출연자에 의한 [법정]이나 [위안부문제]에 직접 관여하는 코멘트도 체계적으로 방송에서 삭제되었던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타카하시씨가 지적하는 것처럼 [변경의 목적이 일본군의 범죄를 단죄한 <법정>의 핵심부분을 은폐하고 <법정>의 의의를 평가하는 코멘테이터의 발언을 삭제하는 데에 있었다]면 그 정치적인 함의도 도저히 부정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문제의 의미 확산]
이처럼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를 발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물론 이번 방송 변경문제에 관해서는 우선은 실제 방영된 방송 자체에 의해 ,방송이 다루고 있는 <법정>의 내용이 왜곡되고 [시청자의 오해와 편견을 야기]시키는 일로 명예가 훼손되었다는점이 지적되지 않으면 안되겠지요.우리도 이에 의해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은 <법정>관계자들의 분노 와 슬픔을 무엇보다도 우선해서 생각하고 싶습니다.하지만 실은 이번 문제는 그러한 관계자들만의 일이 아니라는 데에 그 심각성이 있습니다.즉 우리로서는 이에 더해 다음과 같은 제반 사항을 문제로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1) 우선 이것이 [종군위안부]문제 그리고 쇼와천황의 전쟁책임이라는 문제를 초점에 두면서 일본의 전쟁책임을 묻는 일에 대해 현재의 일본 매스컴이 일반적으로 공유하는 소극적 태도/부정적 태도를 결정적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생각해보면 처음부터 그것을 문제화한 <법정>에 대해 일본 매스컴의 태도는 대체적으로 냉담했습니다. 이일은 해외의 매스컴의 주목도와 비교해 보면 한층 더 드러나는 특징입니다.그렇게 생각해보면 이번 NHK에 의한 [전쟁을 어떻게 단죄할 것인가] 시리즈는 일본의 전쟁책임이 문제화되는, 보기 드문 가능성의 하나였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그런 만큼,우익세력의 반응도 민감한 것이었던 것입니다.그런데 그 보기드문 가능성 까지가 사라지려 하고 있습니다. 이는 정말로 심각한사태이며 결코 방치할 수 없습니다.
2) 또,방송변경이 우익세력의 협박을 직접/간접적으로 배경에 두고 실현되고 말았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 [외부압력]과 [방송내용변경]과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NHK는 부정하고 있고 그 점을 증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설사 [자주적 규제]라 하더라도 타이밍상으로 봤을 때는 관련을 연상할 수 있는 형태로 내용변경이 이루어졌고 우익세력이 그것을 [성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실제로 우익의 [국민신문]3월 25일자 판에는 1월 27일의 [방송중지]를 요구
한 자신들의 행동이 [방송내용의 대폭변경에 기여했다]며 성과를 과시하고 있고 ,이는 그들에게 중요한 [경험]이 되겠지요. 금년은 각지 졸업식에서의 [히노마루 /기미가요]의 [완전실시] 압력이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편집한 역사교과서가 교과서검정에 합격하는등,내셔널리즘의 급속한 대두가 눈에 띄게 드러나고 있는데, 이번 일을 방치하게 되면 이 역시 그러한 단계의 또하나가 될지도 모 릅니다.언론에 우익이 압력을 직접적으로 행사하는 어두운 시대를 예감케 하는 이러한 사태를 우리는 좌시할수 없습니다.
3) 또한,앞의 두가지와는 차원이 좀 다른 문제입니다만 ,매스컴의 취재대상이 된 사람들 혹은 출연자 /협조자의 권리(기대권 혹은 인격권)의 침해라는 문제가 있습니다.그건 이번문제가 NHK가 취재대상인 VAWW NET 재팬의 전면적 취재협력을 얻어놓고 최종단계에서 그 의향과 기 대를 배반했고,또 다른 한편으로는 타카하시 테츠야씨나 요네야마 리사씨등 출연자에게 기획단계 부터 협력을 얻어 그들의 내용 양해하에 제작을 진전시켜 놓고 역시 마찬가지로 최종단계에서 그러한 상호이해에 반해 방영직전의 변경을 일방적으로 행했다는 데서 기인된 것이기 때문입니다.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VAWW NET 재팬이나 출연자들이 항의한 것이었고 또 그로인해 문제가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이 항의에 대해 NHK은 방송 [편집권]을 무기로 최종단계 변경까지도 정당화고 있지만, 그렇게되면 취재협력한이들이나 출연자들의 권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만약 NHK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해 [편집권]을 절대화한다면 취재대상자나 출연자/협조자는 협 조를 한 시점에서의 상호이해에서 크게 벗어난 방송이 나중에 제작되어도 일체 항의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취재자와 취재협조자와의 신뢰관계는 성립되지 않게 되고 우리는 어떠한 취재협조요청에 대해서도 더이상 안심하고 받아들일 수 없게 됩니다.이러한 사태는 실은 매스미디어로서의 NHK에 있어서도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이번일은 이러한 '권리'의 충돌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4) 또한 매스컴에 대한 시청자의 권리라는 문제가 있습니다.이번 일은 시청자에게는 아무런 권리침 해가 없는걸까요.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점차 밝혀지는 중인 문제의 구도를 보면 우익이나 정치가의 압력이 작용했든 아니든 중요한건 NHK 상층부의 최종적 의향에 의해 내용변경이 결정되고 실행되었다는 점입니다.그리고 그 내용이 [일본군 범죄를 단죄한 <법정>의 핵심부분을 은폐하고 <법정>의 의의를 평가하는 코멘테이터의 발언을 삭제하는 방향]으로 간 것이라고 한다면 거기에는 명백한 정치적 의미를 갖는 조작이 있었다고 판단하지 않으면 안되겠지요. <전쟁을 어떻게 단죄할것인가>라는 시리즈이고, 더우기 다른 회에서는 독일이나 프랑스로부터, 혹은 아프리카로부터 <단죄> 자체를 주제로 하는 보고가 이루어지고 있는데,일본을 대상으로 하는 내용 에서는 일본의 범죄가 단죄되었다는 [핵심부분]을 체계적으로 은폐하는 조작을 일본의 유일한 공 영방송의 상층부가 의도적으로 행한 것입니다.이런 일이 은밀하게 행해졌다는 사실자체가 일방적 인 여론 조작이며 시청자의 알 권리의 침해가 아니면 무엇일까요.우리는 이를 중대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상 네 가지점에서 문제는 충분이 제시되지 않았을까요.적어도 이러한 점들을 생각했을 때 이번 NHK에 의한 방송내용변경이 얼마만큼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가는 분명하겠지요. NHK는 분명히 중대한 책임이 있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이 문제는 그 의미의 폭으로 보았을 때 <여성 국제전범법정>의 관계자나 방송 관계자출연자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이점에 우리가 이러한 공동서명을 호소하는 이유가 있으며 또 이러한 공동성명의 폭을 넓히는 일의 의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우리는 이러한 관점에서 우선 NHK에 대한 [견해와 요망]으로써 사실경과와 견해를 물을 것이며 그 태도의 변경을 요망하는 바이며 또 거기서부터 문제를 더 넓혀서 생각해 나가고 싶습니다 .
이에 많은 분들께서 호응해 주실것을 호소하는 바입니다.
2001년 4월 20일
※공동서명 발의자(2002년 4월 27일 현재 50음도순)
아사다 아키라(교토대학 교원), 아비코 마코토(매스컴시민 편집장), 아마노 케이치(반천황제운동 연 락회), 이케우치 야수코(리츠메이칸대학 교원), 이케다 히로시(교토대학 교원), 이타가키 유조(도쿄대학 명예교수), 이타가키 류타(반 히노키미 네트 관리인/조선사연구), 이토 키미오(오오사카대학 교원), 이토 히로미(시인), 이와사키 미노루(동경외국어대학 교원), 오오고시 아이코(긴키대학 교원), 오오사와 마사치(사회학자), 오니와 에리(가나가와대학 교원), 오하시 유미코(프리라이터/편집자), 오카 마리(오오사카여대 교원), 오구라 도시마루(도야마대학 교원), 오사 시즈에(고배시외국어대학 교원), 가가와 마유미("여성과 예술"프로젝트/죠사이국제대학 강사), 가와모토 다카시(동북대학 교원), 기타하라 메구미(고난 대학 교원), 김 부자(간토가쿠인대학 강사/젠더사 연구), 고다마 시게오(오차노미즈대학 교원), 고마고메 다케시(반 히노키미네트 관리인/교토대학 교 원), 고모리 요이치(동경대학 교원), 사카이 나오키(코넬 대학 교원), 사카모토 히로코(히토츠바시대학 교원), 사카모토 요시카즈(도쿄대학 명예교수), 사토 히데오(니혼대학문리학부교육학과 교원), 사부리 유타카(치바단기대학 교원), 시미즈 키요코("여성전쟁·인권"학회원), 스즈키 가오리(서점원), 소라노 오시히로(변호 사), 송연옥(대학교원/젠더사 연구), 다카하시 치카코(에쎄이스트, 번역가), 다자키 히데아키(主夫/정치철학), 다나카 미쯔(침술사), 치노 카오리(각슈인대학 교원), 치바 마코토(국제기독교대학 교원), 정영혜(사회학자), 쓰시마 유우코(문인), 도미야마 이치로(오사카 대학 교원), 나카노 도시오(동경외국어 대학 교원), 나카노 리에(회사경영/영화 디스트리뷰터), 니시카와 유코(젠더연구와 근현대문학연구), 나리타 류이치(역사연구자), 박유하(세종대학 교원), 하나사키 고헤이(철학), 하야시 히로시(간토가쿠인 대학 교원), 히라이 겐(음악문화론), 히로타 마사키(역사연구자), 노마 필드(시카고 대학 교원), T.후지타니(켈리포니아대학 센디에고 교원), 마츠다 모토지(교토대학 교원), 미나토 오히로(블루스 뮤지션), 무토 가즈히로(피플즈 플랜 연구소 공동대표), 무라이 요시타카(조치대학 교원), 모치다 키미코(오츠마여자대학 교원), 야마구치 지로(홋카이도대학 교원), 야마가미 치에코(영상작가), 요시자와 나츠코(사회학자), 요시와라 마리(하와이대학 교원), 요시미 슝야(동경대학교원), 요네타니 마사시(도쿄외국어대학 교원), 이효덕(시즈오카 문화예술대학 교원), 와카쿠와 미도리(미술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