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공사라는 것이 원래 그렇듯이 한번 손대기 시작하면 거기서 끝나지 않고 더 일이 많아지지요. 낡은 배관이 수시로 터지고 새서 언젠가는 한번 전면적으로 손을 봐야겠다 마음만 있었는데 이번에 배관 전체를 교체했습니다. 그동안 집 없이 떠돌면서 머리 뉘일 안정적인 공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절감했습니다. 별것 아닌 것 같은 그런 나만의 공간이 사람을 지켜주는 기초인 것 같습니다. 배관을 교체하다 보니 다른 곳의 문제도 발견되어 공사가 추가되었습니다. 그래도 2주 정도가 걸릴 것이라고 예상하였고 일을 서둘러 이제 다 마쳤습니다. 건물에서 정화조로 들어가는 배관도 땅을 파서 확인해 보니 정화조로 들어가는 배관 중간이 꺼져서 땅바닥으로 오수가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배관을 손본 것도 잘했다 싶습니다. 그리고 살펴보니 요셉관 옥상에서 내려오는 빗물이 화단을 통해서 건물 아래로 전부 흘러 들어가게 되어 있어서 이번에 그것도 바깥 배수로로 물이 빠지도록 해뒀습니다. 비가 오면 요셉관 지하에 냄새가 나고 습기가 가득한 이유가 다 있었습니다. 큰비가 와서 흘러내리는 큰물이 건물 밑으로 다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는 뻔한 일인데도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요셉관 지하도 습기가 조금은 덜하지 싶습니다.
성당 마당에는 작년에 죽은 느티나무도 새로 심었습니다. 이 나무가 잘 자라서 우리 마당에 큰 그늘을 다시 만들어 줬으면 좋겠습니다. 이런저런 일들을 마무리하면서 지난주 토요일에는 성모회 회원들만이 아니라 많은 교우들이 청소를 내 집 청소처럼 도와주셨습니다. 정말 고맙다는 인사드립니다. 본당 신부보고 장가가면 되겠다고 농담하셔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만큼 집이 새집 같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지난주 월화는 제주도에 가서, 어제 월요일에는 김천 증산에 있는 모티길 트레킹하고 왔습니다. 가을은 지나가는데 일에 묻혀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너무 아쉬워서 다녀왔습니다. 제주도는 서남쪽에 있는 산방산 자락과 송학산 자락을 걸었습니다.
마침 읽고 있던 책이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여서 더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 소설은 제주 4.3을 다루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편향성이 있는 책이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던데요. 무엇이든 관점은 있기 마련입니다. 소설은 제주도 중산간에 있는 친구의 빈 집을 이야기꾼이 찾아가면서 전개됩니다. 소설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제주 4.3을 지켜본 할머니의 증언이었습니다. 피해자의 입장도 아니고 가해자도 입장도 아닌 그 학살의 현장을 무심코 지켜본 분의 말씀이지요.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그 아픔과 슬픔과 결코 작별하지 않겠다는 것이 소설의 핵심인 것 같습니다. 바닷가 절벽에서 죽임을 당한 분의 시신이 바다에 버려져 어디로 갔을지를 화자는 묻고 있습니다. 올레길 10구간을 걸으면 섯알오름과 알뜨르 비행장을 지나게 되는데 이 두 곳은 제주의 대표적인 아픈 흔적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섯알오름에는 예비검속 희생자의 주검이 있는 곳이고 알뜨르 비행장은 일제 때의 대륙 침탈의 야심이 숨어 있는 곳이죠. 이 비행장의 버려진 탄약고에서 학살이 이루어졌습니다. 시간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착취와 학살의 아픔이 고스란히 중첩된 아픈 곳입니다. 잊혀진 역사는 반복됩니다. 잊지 않는 것이 아픔을 반복하지 않는 길입니다. 그래서 슬픈 사람의 자리를 외면하지 않고 나의 슬픔으로 공감하는 일이 바로 우리 신앙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좋은 가을날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