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Klein> - 조셉 로지
한국 번역이 <고독한 추적>인데 참 어울리는 제목이라 생각했다. 유령 같은 유대인 클라인을 쫓는 과정과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경찰에 추적 당하는 과정이 참으로 고독하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특히 유대인 클라인의 존재가 메타포, 혹은 맥거핀 같은 존재가 아니라 실존하는 것이 분명한데 잡히지 않는 점이 유효했다. 일련의 과정에서 어느 순간 유대인 클라인에 자신을 동일시하는 듯한 느낌도 묘했다. 내가 이를 명확하게 느낀 것은 개를 신경쓰던 순간인데, 2회차를 한다면 그 순간에 주시하며 보게 될 것 같다.
아무래도 영화를 보며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정체성의 상실이었다. 가격을 후려쳐서 미술품을 매입하던 방관자(가해자)의 위치에서 피해자로 격하되는 과정. 결국 스스로가 유대인 클라인이 되는 것은 갈 곳 없는 자아의 정착을 위해서였을까? 왠지 가슴에 다가오는 엔딩이나 머리로 완전히 이해가 가진 않는 것 같다. 다만 거대한 구조적 압력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상황을 상상해 볼 뿐이다. 주연 클라인은 거의 모든 소속 집단에서 부정당한다. 유서깊은 집안 소속임을, 프랑스의 비유대인임을. 신분을 바꾸고 완전히 잠적했다면 엔딩은 수용소가 아니었을 것이다. 자아의 확립은 생존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일까? 주연 클라인에겐 의사에게 검사를 받는 방법 또한 있었다. 하지만 이 방법 또한 택하지 않았다. 이 자체가 프랑스 귀족임을 포기하기 때문이라 생각했는지, 혹은 정말 유대인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서 기인한 선택인지 또한 알 수 없다. 아니면 사회가 불합리하게 만든 기준에 자신을 맡길 수 없다는 저항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경우엔 그럼에도 그 사회에 속하려는 것이 아이러니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재수를 하던 시기를 떠올린 것 같다. 영화 속 상황에 비교하면 우습지만, 대학생이 되지도 못했고, 더는 고등학생일 수도 없는 무소속의 상태가 외로웠던 것 같다.
영화 외적으론 감독 본인은 맥카시즘에 시달렸다고 하는데, 영화 속 경찰들과 오버랩됐다. 개인의 미스터리, 홀로코스트라는 거대한 역사적 배경, 감독 개인의 일화까지 수많은 레이어들이 물음표로 엮여 마지막엔 느낌표로 끝나는 영화라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