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 용봉산 ( 龍鳳山 381m)
♣ 소개 / 특징 / 볼거리
높 이 : 381m
위 치 : 충남 홍성군 홍북면
♣ 용봉산(381m)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면과 예산군 덕산면·삽교읍에 걸쳐 있는 산이다.홍성군의 진산으로,1973년 가야산(678m)·덕숭산(495m) 등과 함께 산 일대가 덕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동남쪽으로 금마천이 흘러 가야산 쪽에서 흘러온 효교천과 함께 삽교천을 이룬 뒤 삽교호로 흘러든다.
용봉산은 고려시대에는 북산, 조선시대에는 팔봉산으로 불렀다. 일제시대에 용봉사의 절 이름을 따서 용봉산으로 붙여졌다고 전한다. 산의 형상이 용의 몸집에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얹은 듯한 형상인데서 유래)하여 용봉산(龍鳳山)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다.
높이 381m로 큰 산은 아니며 험하지도 않으나 산 전체가 바위산으로 산세가 기묘한 바위와 봉우리로 이루어져 충남의 금강산이라 불릴만큼 아름답다. 정상까지 산행하는 동안 수백장의 한국화를 보듯 시시각각으로 풍경이 바뀌는 것이 용봉산의 특징이다.
용봉산은 높이는 낮지만 주변 전경이 수려하고 기암괴석이 수석처 같다. 미륵불이 있는 미륵암을 지나 능선에 오르면 5형제바위, 공룡바위, 칼바위 등 즐비한 기암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용봉산은 산세가 수려해 등산길로도 그만이다.용봉초등학교 뒷편을 따라 올라 상하리 미륵불을 구경하고 크고 작은 봉우리를 휘휘 돌아 정상에 오른 뒤 용봉사 쪽으로 내려오면 두 시간쯤 걸리는데 산 아래 펼쳐지는 경관이 일품이다.가을철 단풍도 볼만하다.
용봉산은 바위산 답게 기암괴석이 기기묘묘한 형상을 빚어 여느 명산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다. 홍성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이 용봉산을 내세울 만큼 이 고장 사람들은 큰 자랑으로 여기고 있는 산이다.
용봉산을 낀 홍성 일대는 충절의 고향이라는 얘기답게 만해 한용운 선사, 백야 김좌진 장군, 최영 장군, 사육신의 한 분인 성삼문 등의 생가와 9백 의총 등 위인들의 삶의 흔적과 백제 부흥의 마지막 보루였던 임존성 등 역사유적지가 도처에 남아있다.
남방향 중턱과 서편산록에 완만한 경사가 길게 펼쳐져 있고 요소요소에 소나무 군락이 자연 발생적으로 있으며, 장군바위 등 절경과 백제 때 고찰인 용봉사와 고려시대 불상인 홍성신경리마애석불(보물 355)을 비롯한 문화재가 곳곳마다 산재하며 예산군 덕산면 쪽에 덕산온천이 있다.
용봉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예산의 덕숭산(수덕사), 서산의 가야산, 예당 평야의 시원한 경치도 일품이다.
인기명산 100 99위 (한국의산하 1년간 접속통계에 의한 순위)
수덕사를 품고 있는 용봉산은 산세는 수려하지만 산이 낮아 산행지라기보다
나들이 코스 같아 특정 계절에 치우치지 않고 사계절 두루 인기 있는 산이다.
▶ 산행코스
A코스 : 용봉초교 ~ 미륵암 ~ 용봉산 ~ 악귀봉 ~ 용바위 ~ 수암산 ~
병풍바위 ~ 용봉사 ~ 휴양림 입구 주차장 ( 약 5시간 )
B코스 : 용봉초교 ~ 미륵암 ~ 용봉산 ~ 악귀봉 ~ 용바위 ~ 병풍바위 ~
용봉사 ~ 휴양림 입구 주차장 ( 약 4시간 )
▶ 산행지도

◈◈◈ 풍물, 전설 한 마당 ◈◈◈
● 용봉사
용봉사는 백제시대 때 창건됐다고 전하는 유서 깊은 사찰인데 광무 9년(1905)
평양 조씨 일가가 명당으로 알려진 용봉사 터에 묘를 쓰기 위해 폐사시켰다.
다행히 절이 폐사된 것을 안타깝게 여긴 마을 주민들이 이듬해 원래 위치에서 동쪽으로 절을 옮겨 지어 법등을 겨우 이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옛 문헌에는 영봉사라고 기록되어 있는 용봉사는 지금은 대웅전과 요사체 등 2동밖에 남아있지 않다.하지만 고려시대에는 절 크기가 아흔 아홉간에 불도를 닦는 승려 수가 천여명에 이를 만큼 큰 절이었다고 한다.
● 수덕사
수덕사(修德寺)는 충남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덕숭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비교적 규모가 큰 절로 공주의 동학사, 청도의 운문사와 더불어 3대 비구니 도량으로 꼽힐 만큼 유명한 비구니 사찰이다.
백제 법왕 원년(599년)에 창건된 고찰(古刹)로 대웅전이 유명한 사찰이다. 수덕사의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년)에 지어진 건물로 국보 제49호이다.
수덕사 대웅전은 현존하는 건물중 안동 봉정사의 극락전,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에 이어 세 번째로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규모면에서는 부석사의 무량수전과 비슷해 보이나 앞의 두 건물보다 크다. 이렇듯 규모도 큰 건물이 특이하게 팔작지붕이 아니고 맞배지붕 건물인 것이 특이하게 느껴진다.
부석사 무량수전이 팔작지붕의 효시라고 하니 아마 당시에는
대부분의 건물이 크기에 관계없이 맞배지붕이었을 것이다.
맞배지붕이라 고운 처마의 선이나 의젓함을 느낄 수 는 없고, 대신 단정하고 견고한 느낌을 준다.또 전혀 단청을 입히지 않아 고풍스런 원목의 느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대웅전 앞으로는 1990년 황하정루라는 큰 건물을 새로 지어 성보박물관(정확히 근역 성보관이란 이름으로 불린다)으로 쓰고 있다.
대웅전과 일주문의 정중앙을 가로막고 서 있는데,이 황하정루를 지나는 길도 모두 새로 반듯하게 대리석을 깔아 놓아 고찰의 고풍스럼움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수덕사 대웅전 안의 괘불(의식용 불화)은 보물 제1263호이다.
● 덕산온천
덕산 온천은 알칼리성으로 규산 나트륨, 칼슘, 마그네슘이온 등이 함유되어 소화기질병 피부병 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이율곡 선생도 효능이 탁월하다고 언급하였다 한다.
● <"수덕사의 여승"에 얽힌 일화>
(60년대 중반 발표 히트한 대표적 대중가요)
수덕사 여승의 실제 모델은 있었을까? 있었다면 그는 누구일까?
이야기는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 때, 시대를 앞서간 신여성 세분이 있었으니,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가요로 불리는“사의 찬미”로 유명한 윤심덕이 그 한명이요,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화가이며 문장가인 나혜석이 그 한명이고, 나머지 한명은 시인으로 유명한 김일엽이다.
이 신여성 세 사람은 조선사회 남존여비의 실체가 그대로 존재했던 시기에 시대의 요구를 단호히 거부하고 불꽃처럼 살며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건 여인들이다. 나혜석은 사랑에 버림을 받고, 윤심덕은 현해탄에서 사랑과 함께 했으며, 김일엽은 스스로 사랑을 버린 여자다.
여기선 실제로 수덕사의 여승이었으며 한국 비구니계의 거목으로 추앙받는 김일엽의 이야기다.
김일엽의 본명은 “김원주”다. 일엽(一葉)이란 필명은 춘원 이광수가 그녀의 아름다운 필체에 반해 지어준 이름이다. 그런 사연 때문인지 둘 사이의 스켄들이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연애대장이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자유 분망하게 살아갔으며 진취적인 자신의 삶을 여성운동으로 승화시켜 “자유연애론”과 “신정조론”을 주장하게 된다.
김일엽은 한국최초 여자유학생으로 일본으로 유학하게 되는데 여기서 또 일본인 “오다 세이조”와 운명적 사랑을 하게 된다. 오다 세이조는 아버지를 은행총재로 둔 일본 최고 명문가의 아들이며 당시 규수제국대학생 이었다.
남자 부모님의 반대로 결혼하지 못하고 헤어지는 아픔을 겪는데, 이때 둘 사이에 아들이 하나 태어난다. 이 아들은 아버지 친구의 양자로 입적되어 자라나게 되며 이 사람이 한국과 일본에서 인정받는 유명한 동양화가 일당스님이며 이름이 “김태신”이다.
일당스님은 지금도 김천의 직지사에서 활동(?)중이며 해방직후 김일성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김일성 종합대학에 지금도 걸려있다 한다. 당시 그 일로해서 조총련계로 오해받아 작품 활동에 고초를 겪기도 했다. 오다 세이조와의 사랑을 아픔으로 겪은 그녀는 곧, 일본에서 돌아와 수덕사의 여승이 된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 어린 아들이 수덕사를 찾아 왔는데 불자가 되었으니, “속세에 맺어진 너와 나의 모자인연은 속세에서 끝났으므로 더 이상 나를 어머니라 부르지 말라” 하며 모질게도 모자의 정을 끊고자 이역만리 찾아온 어린 자식을 절 밖에 재웠다 한다.
이때 김일엽의 절친한 친구인 나혜석이 수덕사 밖에 있는 수덕여관에서 같이 지내며 어머니 처럼 자신의 젖가슴도 만져보게 하고 그림도 가르쳤다고 한다. 비구니로서 그의 인생이 한국 불교계에 큰 족적을 남길 만큼 성공적인 것은 우연이 절대 아니다.
아들 일당스님(김태신)이 최근 발표한 자전소설 <어머니 당신이 그립습니다.>에서 발췌했음을 밝혀 둡니다.
● 홍성군의 유래
홍성군은 옛 홍주군과 결성군을 합한 군이다.
홍주는 본래 고려의 운주로 995년에 도단련사를 두고, 1012년 지주사로 고쳤다가
홍주로 다시 고쳤다.1358년에 목으로 승격하여 1368년 지주사를 두었다가,
1371년 다시 목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여러 차례의 변혁을 거쳐 1895년에 군이 되었고, 1914년 옛 결성군을
합쳐 홍성군이 되었다.
결성은 본래 백제의 결기현인데 신라 때 결성으로 고쳐 서림군의 영현이 되고, 고려시대인 1018년 운주에 이속되었다가 1172년에 감무를 두었다.우왕 때 왜구의 침입으로
주민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1390년 에는 진성을 두고 유민을 정착시켰다.
조선시대 1413년 현감을 두었다가 1895년 군으로 승격, 1914년 홍주군·결성군 및 보령군의 일부를 통합하여 홍성군이 되었다.1941년 홍주면이 홍성읍으로 승격하고, 1942년 광천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83년 2월 전국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서산군 고북면 대사리와 결성면 와리를 갈산면에, 홍동면 월림·대평·운용리를 광천읍에, 결성면 중리를 서부면에, 홍북면 내법리, 홍동면 구룡리를 홍성읍에 각각 편입하여 현재와 같이 홍성·광천읍, 갈산·결성·구항·금마·서부·은하·장곡·홍동·홍북 등 2개읍 9개면으로 개편되었다.
● 홍성 8경
○ 제1경 용봉산
용봉산은 해발 381m로 주변경관이 수려하고 기암괴석이 수석 같으며, 서해의 금강산이라 칭할 정도로 여느 명산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으며, 산세가 운무사이를 휘도는 용의 형상과 달빛을 감아 올리는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용봉산이라 부른다.
또한 산 전체가 바위산이라 병풍바위, 장군바위 등 전설을 간직한 기암들이 많으며, 수려한 자연경관과 함께 타오르는 듯한 일출광경이 장관을 이루어 제2의 금강산이라 불리운다.
더불어 백제시대의 고찰인 용봉사와 고려시대의 불상인 보물 제355호 마애석불 등 다양한 문화재가 존재하는 곳이며, 30분에서 2시간 정도의 다양한 등산로를 통한 등산의 묘미를 즐길 수 있는 사시사철 등산객이 끊이지 않는 명산이다.
○ 제2경 홍주성과 여하정
서해의 관문이자 국방의 요새였던 홍주성은 최장 1,772m에 달하였으나 현재는 810m만 현존하며, 35동에 이르렀던 관아 건물 중 조양문, 홍주아문, 안회당, 여하정만이 남아 있다.
여하정은 고종 33년 홍주목사 이승우가 신축한 이래 역대 홍주목사들이 정사를 구상하며 휴식을 취하였던 곳으로 목조기와의 6각형으로 된 수상정이다.
수면을 장식한 연꽃과 금잉어들은 한폭의 그림과도 같다. 외래관광객들이 홍성을 방문하였을 때 빼놓지 않고 방문하는 곳이다.
○ 제3경 만해 한용운 선생 생가
독립운동가이자 승려이며 시인인 한용운(1879~1944)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낮은 야산을 등진 양지 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생가가 쓰러져 없어진 것을 1992년에 생가를 중심으로 주변지역을 사적화하기 위해 복원사업을 시작하였다.
생가인 초가 외에 사당삼문관리사화장실 등을 건립하였으며, 주변 정비사업을 추진하였다. 가옥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초가인데 양 옆으로 1칸을 달아내어 광과 헛간으로 사용하고 울타리는 싸리나무로 둘렀으며 바깥에 흙벽돌로 화장실을 만들었다.
한용운(韓龍雲) 선생의 애민애국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이곳에 표석(標石)을 설치하였다.
○ 제4경 그림이 있는 정원
자연의 순수함을 최대한 보존한 친환경 문화휴식공간 그림이 있는 정원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한 그루 나무가 되고, 한 송이 꽃이 된다.
연꽃 정원, 꾀꼬리의 노래소리가 들리는 숲, 오솔길 옆에 핀 벌개미취, 참나리, 투구꽃, 접시꽃이 반겨주는 그림이 있는 정원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수 있다.
온실식물원, 연꽃정원, 야생정원, 자연생태관, 폭포전망대, 미술관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어 평일 500명, 주말 2,500명의 관광객이 왕래하고 있다.
내 집의 정원과도 같은 편안하고 안락한 자연과 예술이 함께하는 그림이 있는 정원에서 공간여행을 떠나보시기 바랍니다.
○ 제5경 오서산
아름다운 전설과 전통사찰을 끼고 산정에는 은빛깔의 억새풀을 두른채 서해의 푸른 물결을 굽어 보고 있는 오서산은 충남 서북부 최고봉으로 정상을 중심으로 약2km의 주능선이 온통 억새밭으로 이루어져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수목이 울창하고 물이 맑아 곳곳에 약수터가 있으며 붉게 물든 노을에 서해바다의 섬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산 아래로는 질펀한 해안평야와 푸른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한적하고 호방한 기운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또한 고혀 대운대사가 창건한 정암사가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 제6경 남당항
광활하게 펼쳐진 천수만과 어우러진 제1종항으로 대하, 우럭, 새조개, 까나리, 새우, 기타 장어등이 풍성하여 횟집이 산재하고 있어 연중 미식가들이 즐겨 찾고 있는 홍성 유일의 바닷가 관광명소이다.
또한 매년 9,10월에 전국의 미식가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우리나라 최대의 대하축제가 열리는 청정항으로서 잔잔한 은빛 수면으로 석양이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괭이 갈매기등 철새 도래지인 궁리방조제와 피서객들이 낚시를 즐길 수 있는 대섬인 죽도등 자연경관이 수려한 관광지이다.
○ 제7경 김좌진 장군 생가
우리나라의 대표적 독립운동가였던 백야 김좌진장군이 태어나고 성장한 곳으로 하루 300여명의 방문객이 찾아와 장군의 삶을 배우는 역사의 현장으로...
1991년부터 성역화사업을 추진하여 본채와 문간채, 사랑채를 복원하고 관리사 및 전시관, 사당등이 건립하여 1일 방문객 300여명이 찾아와 김좌진장군의 삶을 배우는 역사의 현장으로 발돋음하고 있는 곳이다.
○ 제8경 궁리포구
광활하게 편쳐진 천수만을 앞에 두고 있으며 갯벌 체험등을 할 수 있는 체험장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고 있다. 일몰과 일출을 동시에 바라 볼 수 있는 곳으로 해넘이나 새해 해돋이를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리기도 한다.
또한 천수만을 끼고도는 임해관광도로의 경치가 일품으로 드라이브 코스가 환상적인 아름답고 소박한 포구이다. 이곳에서 잡히는 어종으로는 대하, 새조개, 붕장어 등이 있다.



















◑ 차량 경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