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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09월13일 월요일 선교6기 영성 피드백♥
말 씀 : 장 미 영 목 사 님
♥2010년 09월13일 월요일 선교6기 영성 피드백.hwp
주님의 은혜가 쏟아지는 것은 자기하기에 따라 달려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주님의 구름으로 이 자리에 섰으니, 성령의 바람 불어주시어서 정확한 위치에 사모하는 심령들에게 주님의 단비가 뿌려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오기를 너무 잘했다는 고백이 나올 수 있도록 사모하는 사람과 사모하지 않는 사람이 티가 팍팍 날수 있는 그런 시간되기를 원합니다.
노만 빈센트 필 박사님이 기차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옆에 한 중년부부를 보게 됩니다. 그 부인은 투덜거리면서 계속 불평불만을 토로합니다. 남편은 계속 좀만 참으라고 하면서 원래 나오면 고생이라며 부인을 달래기만 합니다. 남편의 직업은 변호사였습니다. 원래 변호사라는 직업은 좋은 점을 부곽 시켜서 피고를 변호하는 것이고, 검사는 나쁜 점을 들추어내는 변호사와는 반대의 역할에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부인은 이런 검사 보다 더 온갖 단점들과 나쁜 점들만 들추어 보는지, 쉴 틈도 없이, 끝임 없이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있었습니다.
요즘 우리교회에서는 불평하는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불평불만을 하는 사람들은 병균이라는 이미지가 자리 잡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 GRSC가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 남편이 부인의 끝도 없는 불평불만에 민망한 나머지 필 박사님에게 인사를 합니다. 안녕 하세요. 전 ㅇㅇㅇ이고, 변호사입니다. 그리고 저의 아내는 ㅇㅇㅇ이고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필 박사님이 물었습니다. 제조업이라면 뭐를 만드는 일을 하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말합니다. 자기 아내는 불평제조기라서 불평제조업자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도 자기 소리하면 입 다물고 있는데 그 변호사 부인은 그 시간부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필 박사님은 창밖을 내다보며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았다고 합니다. 자신이야 말로 불평을 찍어내는 불평 제조업자는 아니었나 생각하며, “불평을 다량으로 만들어 내면서 어떻게 내가 행복할 수가 있겠는가. 불평을 다량으로 만들어 내면서 어떻게 우리 교회를 행복하게 만들 수가 있겠는가. 불평을 다량으로 만들어 내면서 어떻게 우리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 수가 있겠는가.”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작은 일에 불평하고 불만을 토로한다면 나를 위해 죽으신 우리 주님께 얼마나 죄송하겠습니까. 감사의 자세는 우리의 인생을 복되게 바꿉니다. 하지만 불평의 자세는 우리를 불행한 인생으로 살게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출애굽 했던 이스라엘 민족들과 같이 말입니다.
감사해야 할 이유임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지 못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딱 한번 홍해가 갈라졌을 때 감사를 드렸을 뿐 만나를 내려주셨을 때도 좋아만 했을 뿐이라고 말씀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출16:31]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고도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
[민11:8] “백성이 두루 다니며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으니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더라.”
하늘에서 내려주신 만나를 가지고 처음에는 꿀 섞은 과자라고 좋아하지만 나중에는 기름 섞은 과자라는 표현을 씁니다. 기름기가 좔좔 흐르면야 입맛이 돌겠지만, 기름을 바르는 것이 아니라 기름을 부어서 섞어버리면 그 맛이 어떻겠습니까. 식용유 한잔해보시겠습니까?^^ 바로 이스라엘 민족들은 만나를 기름 섞은 맛 같다고 불평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감사해야 할 것에 오히려 불평을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물이 없다고 불평하고, 고기 먹고 싶다고 불평하고, 지도자가 못마땅하다고 불평하고 매사에 원망불평만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평제조업자로 살았던 민족이 바로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평을 계속 했더니 그들의 삶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불평으로 말미암아 진짜로 불행한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눈앞에 가나안 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40년을 돌아서 가나안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그동안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하고는, 출애굽당시 20세 이상은 가나안땅을 밟기 못하고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행복을 만드는 제조업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행복의 비결이 바로 감사입니다. 바로 감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만, 불평은 사탄을 기쁘게 한다고 합니다. 바로 사탄을 기쁘게 하는 것이 불만이라는 것임을 기억하는우리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항상 좌절하라. 쉬지 말고 원망하라. 범사에 불평하라.”이것은 우리를 향한 사탄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하라는 것은 다 못하더라도, 사탄이가 기뻐하는 일, 사탄이가 하라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앞장선 자들, 임원들, 엄마들이나 첫째들은 식구들이나 남들 챙기느라 정작 자신은 은혜를 못 받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식구들이 다 왔는지 마지막까지 확인하고 나서, 은혜 받으려고 자리에 앉으면 주기도문을 합니다.ㅜㅜ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가 모델이 되면 됩니다. 임원진들이 먼저 본이 되면 모두들 따라오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질서입니다. 앞선자들이 본이 되면 모든 것들이 해결이 된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귀신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겠다는 사람이나,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결단을 하는 사람에게는 떠나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그 귀신은 멀리 떠나가지는 않습니다. 호시탐탐 우리들을 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특히나 특별영성기간에는 교회 안에 귀신이 더 득실거린다는 것입니다.
장미영 목사님은 특히 반주자들에게 정신 차리고, 더욱더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기도시간에 성도님들에게서 나온 마귀들이 멀리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높은 직책, 앞장선 자, 단상위의 목사님들은 더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에게도 달라 들었던 사탄이가 직분의 높낮이를 따질 이가 만무 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빠져나온 귀신들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정신 차리고 내 옆에 있는 사람들 보다 더 더 열심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귀신은 물 없는 곳, 쉴만한 곳을 찾아다닙니다.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사람들이, 귀신을 못 들어오게 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사람입니다. 나 살기 운동을 해야 합니다. 남들 챙기다가 자신이 지옥에 갈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귀신을 내속에서 멀리 쫓아내고 접근 하지 못하게 진리가운데 바로 서기만 한다면 아무리 초신자라 할지라도 귀신은 범접하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가족대표로 온 우리들이 살아야지 만이 가족영혼 구원도 시킬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교회에 “아멘 권사님”이 있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아멘을 잘하는지, 이름이 아멘 권사님 이였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에서 위험한 지역인 아프카니스탄으로 청년들이 선교를 떠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선교의 미래가 밝다고 하면서 축복해주자고 노래를 부르며 그 청년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주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아멘 권사님의 모습에 정말 선교에 대한 열정이 대단 하다고 칭찬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아멘 권사님이 자기 딸이 미쳤다면서 담임 목사님을 찾아왔다고 합니다. 갑자기 자기 딸이 전쟁지역인 위험한 아프카니스탄에 선교를 간다고 한다며 자기 딸 죽는다고 말려달라고 목사님께 애원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남의 자녀들의 헌신과 희생에는 박수를 보내면서, 자기 자녀가 희생하고 봉사한다면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난리피우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 자녀와 남의 자녀를 차별하는 모습, 이것은 마치 예수님에게 위험한 곳에 선교는 저 말고 다른 사람을 보내달라는 격이라 할 수가 있겠습니다.
권사님의 행동은 바로 찬양 중에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 말고) 자를 보내소서~♬이렇게 가사를 바꿔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내가 힘들면 남들도 힘들다는 것, 그리고 내 것이 귀하면 남들 것도 귀하다는 것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500여명의 사람들 앞에서 [행1:8] 말씀으로“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이렇게 말씀을 하시고 승천을 하십니다. 그리고 500명중에 120명만이 마가 다락방에서 기도를 하게 됩니다.
마가요한은 다락방에 120명이 들어갈 정도로 엄청나게 컸던 모양입니다. 다락방이 이정도로 큰데 얼마나 부자였을지는 짐작이 가실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행13: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저희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말씀에 요한마가는 바울과의 1차 전도여행 중간에 돌아가 버립니다. 마가는 돈이 많은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랐기 때문에 조금만 힘든 일이 생기면 피해버리기 일수였었던 것 같습니다. 귀하게 자란다고해서 다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톨스토이의 “이반일리치의 죽음”에서의 주인공의 삶을 보면 그는 귀족으로 태어나서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삶을 살아갑니다. 단 한 번도 밥값을 하는 삶을 살지를 못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손으로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어른이 되어서, 나이가 들어서도 자기 손으로 뭔가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게 나이만 들어가던 이반일리치는 자신이 뭔가 보람된 일이라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 방에 있는 삐뚤어진 커튼을 바로 잡기 위해서 의자를 놓고 올라가서 커튼을 고쳐달려고 하다가 그만 뒤로 넘어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으로 “철들자 망령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슬픈 이야기이지만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남들이 해놓은 것 쓰기만하다가, 보람된 일 하나 해보고 싶었는데 죽음이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바로 삶속에서 무언가 깨달음이 왔을 때, 보람된 의미 있는 일을 하려고할 때에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젊은 시절 1,000명의 여인들과 사랑을 나누어 봤지만 진정한 사랑을 알지 못 했습니다. 비로소 40대 이후에는 지혜가 최고이며 하나님을 아는 지혜, 즉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혜와 지식의 근본인 것을 알게 됩니다. 솔로몬은 그의 아들인 르호보암에게 잠언을 써줍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말년에 이방여인을 가까이 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결발케 하는 행동들을 하기 시작합니다. 결국엔 이방 여인들에게 우상 신전을 지어주고 급기야 그곳에 가서 절까지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솔로몬은 인생을 되돌아봅니다. 그리고 아버지 다윗을 떠올립니다. 솔로몬은 일생일대의 최대의 오점을(우리야의 아내 밧세바) 남겼던 아버지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 범죄 한 부끄러운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선지자적인 사명이 있었기에 밧세바가 임신을 했다는 것과 그로인하여 자신의 입지가 좁아질 것을 알았기에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불러 밧세바와 잠자리를 하도록 휴가를 줍니다. 하지만 충신 이였던 우리야는 전쟁 중에 어찌 자기만 편안하게 아내를 품고 있을 수 있느냐며 거절을 합니다. 악이 받친 다윗은 요압을 시켜 암몬 전쟁에서 선봉으로 우리야를 세워서 죽게 하라고 수를 쓰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야는 전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본분을 망각하지 않고, 직무유기하지 않고, 업무태만하지 않는 이러한 우리야가 얼마나 예쁘겠습니까. 아무튼 결국 이러한 다윗의 범죄로 말미암아 보응으로 밧세바에게 얻은 첫 번째 아이는 죽게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아이가 바로 솔로몬이 됩니다. 이렇게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부끄러운 과거를 떠올립니다.
솔로몬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나라를 뺏어 버리려고 하셨지만 아버지 다윗을 보고 그 일을 아들 때(르호보암)로 넘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담아두시는 분입니다. 기쁨도 저주도 모두다 담아두셨다가 그 아구가 차면 쏟아 내신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참으로 많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정작 “담아두시는 하나님”은 잘 몰랐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범죄 함으로 아들 때에 심판을 내리신다는 그 하나님을 잘 몰랐던 것입니다. 솔로몬은 무역의 대가였으며, 영통확장에 있어서도 최고의 왕 이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다 가져 봤습니다. 하지만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착한 일을 많이 한사람이나, 나쁜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나 죽는 것은 일반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좋은 일 보람된 일들을 아무리 많이 한다하더라도 죽음은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을 인생은 허무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상의 모든 지식을 탐독했던 솔로몬 이였지만 인생의 말로에 와서야 헛되고 헛된 인생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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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향을 위해서 기도 못함을 회개해야 합니다. 음향이 잘 들려야 말씀도 들을 수가 있으니 음향을 위해서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금은 단체 벌을 받는 중입니다. 교회에 손해를 끼친 것에 회개하지 않고 있는 사람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께 단체 벌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음향에 관련된 이 범죄한 자의 온가족이 베옷이라도 입고 회개해도 부족한데 회개를 하지 않으니 우리가 이렇게 단체 벌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음향 시스템에만 지금까지 4,000만원 이상 소요되었으며 이제 5,000만원을 육박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손해 끼친 것들과 손해 입힌 것들 모두 다 걷어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책임을 물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가장먼저 하나님 마음을 풀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야지 만이 음향이 돌아올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뉘우치고 회개하여 천국오기만을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너무나 힘이 듭니다. 해도 해도 너무 합니다. 제발 좀 회개 합니다. 이렇게 말씀이 선포되어도 회개를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빙산을 모조리 다 들추어 버리신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햇빛이 내리쬐면 처음엔 딱딱했던 얼음도 녹아지게 됩니다. 반면 처음엔 말랑말랑했던 진흙은 오히려 더 딱딱해진다는 것입니다. 체찍의 말씀이 있었을 때 엎드려 회개하여 녹아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는 엎드려 회개할 수 있는 자입니다. 그러나 사울이나 바로처럼 그 마음이 더욱더 강팍하여 진다면 하나님의 진노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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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살아온 인생과 허무함을 뉘우치고 돌아보며 솔로몬은 전도서를 쓰게 됩니다. 해아래 폐단을 보게 됩니다.
아버지는 개고생하며 재물을 모아놓고 죽습니다. 아들은 그것을 펑펑 쓰면 살아갑니다.
착한사람이 오히려 누명을 쓰고 벌을 받는가 하면 악한 사람이 상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억울하고 황당한 일들이 점점 더 많아져가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헛된 인생에서 우리는 무엇을 구하고 무엇 때문에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이런 헛된 인생에서 누구를 의지해야 해야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하늘 소망으로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솔로몬은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잃게 뭐 좀 알게 되고 깨달은 후에 뭐라도 좀 해보려고 하면 죽음이 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전도서를 마지막으로 솔로몬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6개월 정도 시한부 암환자들이 지내고 있는 암 병동에 가보면 고스톱이나 치며 시간 죽이기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고 합니다. 돈4,000원 따서 좋다고 웃고 있습니다. 어제는 3,000원 잃었는데 오늘은 더 많이 따서 좋다고 합니다.[엡5: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다고 했는데 이들은 얼마 남지 않는 귀한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스톱을 치다가 아프면 진통제 맞고 하다가 결국엔 시간이 되서 죽게 됩니다. 누구는 건강이 없어서 보람된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데 누구는 이렇게 시간 죽이기나 하고 있고 인생의 폐단은 너무나도 많은 곳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혜와 명철이 제일이라고 교훈을 주고 떠난 솔로몬. 깨닫고 뭐 좀 해보려고 하면 인생은 끝이 나고 맙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아멘 권사님”기억나실 것입니다. 아무리 위험한 곳이라도 남들이 가면 좋고, 자신이 가면 싫고, 두렵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초대교회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던 것입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렇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지상명령을 내리시고 하늘위로 올라 가셨습니다. 하지만 성령도 받고 권능도 받았지만 예루살렘을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얼마나 은혜가 있었겠습니까. 예수님의 산증인 이였던 직접보고 듣고 함께 지내온 제자들이 전하는 말씀은 모든 이들로 하여금 은혜로 충만하게 만들 만한 강력하고도 생생한 말씀 이였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세상에 흩어져 살던 헬라파(과거 남북 이스라엘이 바벨론과 앗수르에 각각 멸망당할 때 적국에 포로로 끌려가서 거기서 정착했던 유대인) 유대인들이 부모를 찾겠다고 이스라엘로 들어와 있었습니다. 이들에게라도 말씀을 전하면 전 세계로 말씀이 퍼져나가고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하지만 이들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있는 곳이 너무나 은혜로워서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선교를 나가는 선교사들은 대부분이 목회에 실패하신 분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목회자들 가운데 자신이 목회하고 있는 곳이 은혜가 되고 생활이 안정되면 현실에 안주해 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잘하고 있는 목회를 포기하고 선교사의 길을 택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바로 초대교회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목회 잘하고 있는 목사님에게 선교사로 나가시라고 한다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당연한 권유임에도 불구하고 욕을 먹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순교합니다. 그리고 야고보도 순교합니다. 점점 기독교인들에 대한 핍박의 강도가 거세져만 갑니다. 핍박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을 떠나 도망을 가게 됩니다. 결국 핍박으로 인하여 복음이 퍼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방지역으로의 전도가 시작이 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가만히 놔두면 선교를 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움직이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 주님의 일을 핍박하거나 순종치 않는다면 벌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껍데기뿐인 세상 것에는 자족하고, 은혜에는 침노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더 이상 있는 자리에서, 받은 은혜에 자족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삶이 아닌 은혜를 더욱더 침노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움직이지 않는 이들에게 핍박을 가하시거나 칼을 들어서라도 흩으셔서 선교를 하게끔 하셨음을 기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첫 번째 성령을 받고, 두 번째 권능을 받았으면 선교를 나가야 합니다. 때가 되었음에도 나가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예루살렘에 모여 있던 초대교회 모습 이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성령도 받지 못하고, 권능도 받지 못했으면서 무작정 나가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때가 되지 않아서 나가게 되면 후회를 하게 되고 고생만 하게 되어 있습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예수님께 직접 전해들은 말씀과 직접 만난 예수님을 선전했으니 그 말에 능력과 힘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제는 제발 남에게 전해들은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난 예수님을 자신감 있게 전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먼저 예수님을 만나 성령과 권능을 받아 보내심을 받고 나간다면 우리는 예수이름으로 성공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준비된 자, 많이 받은 자는 나가지 않고, 못 받은 자, 준비되지 않는 자만 나가려 하다 보니 선교의 속도는 더디기만 합니다.
미얀마 선교를 갔을 때의 일입니다. 일명 CF목사님이(C학점 목사님, F학점 목사님) 계셨습니다. 이 목사님은 글쎄 자기 집에 미얀마 아이들을 감금해놓고 밥도 안줘 가며 돗자리를 만드는 일을 시키고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의 집은 으리으리하게 컸고 자동차며 정원이며 할 것 없이 너무나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선교도중 내내 그 목사님은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 말씀시간에는 귀퉁이에 앉아 인상만 쓰고 있었습니다. 미얀마 사람들은 멍청해서 아무리 가르쳐 봐야 소용이 없다며 먹을 것이나 줘서 보내라고 악담을 하는 것 이였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무모한 짓을 하고 있다며 손가락질을 하는가하면, 주변교회에서 말씀 듣고 싶어서 기웃거리는 사람들 걷어차며 쫓아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배를 방해하는 그 목사님에게, 우리 장미영 목사님께서 강단의 권세와 위엄으로 말씀하신다며, 이곳에서 나가시던지, 강단권 침해하지 말고 잠자코 양떼처럼 있으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얀마 청년들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을 사모했던 그들이 듣고 이해가 되고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이제 그들은 빵이 없어도 말씀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로 바뀌고 있었던 것입니다. 빵 없이는 절대 말씀자리 오지 않는다는 미얀마 현지 목사님의 말은 틀렸던 것 이였습니다. 들릴 귀가 열리니 쓰고 읽고 하려고 더욱더 노력을 하고 말씀을 더욱더 사모하게 되었던 모습을 보았습니다.
말씀으로 깨우치고 계몽이 되어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배고픈 것이 주님과 함께라면 가난이 더 좋다는, 정직하게 어렵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다는 모습으로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영원한 것, 천국을 소망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현지 목사님들이 협조를 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능력 복음의 말씀, 부럽기는 한데 따라 하기는 싫고, 그렇다보니 내놓기도 싫고 하니, 남들도 못 먹게 해야지 하는 못된 심보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오죽했으면 말씀 통역을 승려를 데려와서 통역을 하게 하려고까지 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들도 선교를 나가게 되면, 같은 편들이 시비를 걸고 도와주지 않는 모습을 너무나도 많이 경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1차 전도여행 때 안디옥에서 핍박을 많이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곳을 피해버리고 살라미 지역인 바보라 하는 섬에 오게 됩니다.
[행13:6-12]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박수를 만나니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이 박수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박수라) 저희를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기니라."
위 말씀을 보면 바보에서 주의 사역을 방해했던 박수 바예수가 소경이 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그로인하여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겼다고 합니다. 결국엔 소문이 퍼져서 비시디아 안디옥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사소한 시비에 신경 쓰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는 바울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골리앗과의 큰 싸움을 앞에 두고 있었던, 즉 엘리압의 시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다윗의 모습과 같은 모습이라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 일이 있은 직후 요한마가는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러 바울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그리고 2차 전도여행 이후로는 바울과 함께 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일로 바나바와 바울이 갈라서게 되면 바울은 실라와 함께 전도여행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 볼 것은 요한마가가 이로부터 1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아무 일도 맡기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0년이 흐른 후에 디모데에게 요한 마가를 데려오라고 하고 합니다. 그 후 요한 마가는 마가복음을 쓰게 됩니다. 바로 하나님의 선지자와 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지자가 풀어주기 전까지 10년 동안 아무것도 못했던 요한 마가의 모습을 기억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행13:44-46]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결국엔 이고니온으로 향하는 바울과 바나바는 유대인을 떠나 이방인에게 복을 전하러 가게 됩니다. 그리하여서 지금의 우리에게까지 이 복음이 전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롬11:13-24]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또 한 가지 얼마가 꺾여 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저희도 믿지 아니하는 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은즉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
[롬11:13-24] 말씀에서 같이 돌감람나무인 이방인이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멀쩡했던 참감람나무를 꺽어서, 복음을 거부한 유대인들로 인하여 이방인에게까지 복음이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유대인을 시기케 하시는 방법으로라도 본 백성들이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마지막에 예수님 믿는 민족이 바로 하나님의 선민 유대인들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은 바로 유대인들에게 더 집중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투정만 하는 유대인이 예수님 믿고 회개하여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 마음만 알면 되는데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절함으로 우리에겐 선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엔 이렇게 이방인들을 구원하심으로써 시기케 하셔서라도 본 백성이 아버지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경건의 모양을 채우고 나면 다음에 그 능력을 채우기는 어렵습니다. 다시 낮은 데로 내려가기가, 처음으로 돌아가기가 너무나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늦은 비가 잘하고, 나중에 온자들이 열심히 하기에,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요즘 장미영 목사님이 쓰시는 방법입니다. 우리교회에는 초창기 맵버를 비롯하여 10년차가 넘는 많은 성도님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온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이나, 오랜 기간 방황을 하다가 다시 열심을 내는 사람들이나, 이들이 열심을 내서 달려가니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어서 원래 우리 초창기 맵버나 오래된 자들을 시기케 하여서, 부러움을 품게 하여서라도,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장미영 목사님의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본 백성에게 관심이 있고, 본 백성을 사랑하기 때문에, 시기케 해서라도 돌아오게 하시려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돌아올 때까지 버려두셨다가 시기케 하여서 깨닫고 회개하여 돌아오면 본래와 같이 회복을 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서진선교에서와 같이 마지막에는 예루살렘에 복음이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시기는 아마도 북한과 비슷한 시기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세상은 끝이 날 것입니다.
유대인들을 보면 미안하지만 하나님께는 고마운 마음과 감사뿐입니다. 복음을 얻었으니 영적 유대인인 내가 늦은비 나중된자로서 더 많이 노력하며 더 열심히 해야 하는 주인의 마음을 알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친자식도 버리시는데 양자인 우리라야 어떻게 행해야 하겠습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똑바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본 백성에게 더 관심이 있음을 알고 우리는 알아서 더욱 잘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육은 이방인이지만, 영으로는 진짜 자식이 되었음을 감사하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선교도중 아무리 주변에서의 방해가 있다 하더라도, 앞만 바라보고 자기 할 일만 했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하나님 은혜의 말씀만을 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고 나가면 가는 그곳이 바로 성령의 도가니가 된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본이 됨으로 말 빨 세워 드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본 백성이 아닌 우리들이 여기까지 올수 있었던 것은 본 백성으로 시기케 하여서 깨닫고 돌아오게 하시려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주변의 열심 있는 자들을 통하여서 우리를 자극하여서 바로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십니다.
책망의 말씀에도 전혀 떨어져 나가지 않고 실패를 오히려 밑거름삼아서 아버지 곁에 더욱더 꼭 붙어 있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성령의 단비가 내려서 우리의 갈라진 메마른 심령을 갈아엎어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햇빛이 비추면 얼음은 녹아내리지만 진흙은 점점 더 굳어져갑니다. 잘못한 것이 있다면 그에 대한 책망의 메시지에 짐을 싸서 나가는 자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실패를 거름삼아 더욱더 양심이 녹아져서 엎드려 회개함으로 아버지 품으로 파고 들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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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당 승현쌤의 모든 기도제목 이른비의 축복으로 몽땅 이루어질줄믿습니다! 주일학교와청년부우리교회의제일큰자랑이에요~!
사랑합니다.^^* 감사감사합니다. 모든것 주님이 하셨습니다.
어름은 녹아내리고, 땅은 굳어지고 !!~~~~~~~~~~~~~
녹아내릴때 녹아내리고, 굳어질때 굳어지고 !!~~~~~~~~
녹아내리기도 하고 굳어지기도하고 !!~~~~~~~~~~~~~감사드립니다.-아멘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