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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궁가(水宮歌)
<핵심 정리>
갈래 : 판소리 사설
성격 : 해학적, 풍자적
표현 : 율문체, 대구, 열거 등
특징 : 우화적 수법으로 안간 사회에 대한 풍자와 한문학의 영향으로 중국의 고사성어를 많이 인용
형성 : 설화(구토지설)→판소리(수궁가)→고소설(토끼전)→신소설(토의간)
주제 :
①허욕을 피하고, 어려움에 빠지더라도 지혜롭게 해결해야 한다.
②조선후기의 무능한 집권층에 대한 비판과 집권층끼리의 대립에 대한 풍자
출전 : 신재효 창본
의의 : 전래 설화가 먼저 소설로 형성된 후 판소리로 발전했음을 보여주는 특이한 작품
인물 :
토끼 - 궁핍한 서민상을 대변하며, 허욕과 공명심에 들떠 있는 인물. 신분 상승에의 욕망도 갖고 있다. 지혜가 있고 영악하며 임기응변에 뛰어난 인물. 위기에 처해서도 당황하지 않고 이를 극복하는 배짱도 있다. 같은 처지에 있는 민중을 대변하며, 오랜 생활 과정에서 축적된 슬기와 기지로써 무지막지한 처사로 일관하는 지배층에 대항하여 결국 승리하고 만다는 민중들의 의식세계를 보여주는 인물.
자라 - 우직하고 충성스러운 신하의 전형. 언변이 뛰어나 영리한 토끼를 용궁으로 유혹해 데려오는 임무를 충실히 완수한다. 그러나 뭍에 도착한 토끼로부터 속은 것을 알고 그것이 자기의 전적인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면목이 없어 용궁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명분론에 사로잡혀 있는 관료의 모습이다.
용왕 - 생존과 부와 사치를 위해서는 민중들의 피땀과 생명도 경시하는 봉건왕조의 지배층을 대변한다.
구성
대목 1 - 용왕이 병이 들어 백방으로 시술(施術)하는 대목
대목 2 - 자라가 톡기를 유혹하려고 육지로 나오는 대목
대목 3 - 톡기를 유인하여 용왕앞에 데려오는 대목
대목 4 - 토끼가 용왕을 속이고 자라를 궁지로 모는 대목
대목 5 - 토끼가 다시 세상에 나와 몇 차례 곤욕을 겪는 대목
<내용 연구>
해(蟹) 운공 : 바다 '해(海)'자와 음이 같은 방게 '해'자를 써서 말의 재미를 부린 말이고, 공은 존칭 접미사
해구 : 물개
부별랑청 : 군사 기밀을 맡아 관리하던 종육품 벼슬.
장대 : 달강어의 방언
지평 : 조선 시대의 사헌부의 정오품 벼슬
장령 : 조선 때 사헌부의 정사품 벼슬
깨고리 : 개구리의 방언
도물주 : 물건 파는 곳의 주인 중의 우두머리
어두귀면지졸 : 고기 머리에 귀신 얼굴을 한 병졸, 곧 지지리 못난 사람들
면면상고(面面相顧) : 서로 얼굴만 쳐다봄.
할고(割股)사군(事君) 개자추 : 중국 춘추 시대의 진나라 충신인 개자추는 문공이 조나라에 망명하고 있을 때에 배고파하는 것을 보고 허벅지의 살을 베어 문공에게 먹였다고 한데서 온 말.
방초망신 : 광초망신(狂楚亡身)의 잘못. 한 고조의 부하 장수 기신이란 사람이 고조가 초나라 군사에게 포위되어 위급하자 자신이 고조의 수레를 타고 성밖으로 나가 죽음으로써 고조를 살렸음.
정언 : 임금에게 간하는 일을 맡아 보던 사간원의 정육품 벼슬
수국인갑곧 : 바다의 물고기만, '곧'은 단독보조사
위지 : 위주(爲主)의 방언
밀이개 살착 : 망건을 쓸 때에 살쩍을 망건 밑으로 밀어넣는 데에 쓰는 도구
탕건 묘또기 : 탕건의 오똑한 데에 붙이는 꾸미개인 듯한데, 확실히 알 수 없다. '묘뜩'은 오똑의 방언
관방휼지세허고 좌수어인지공이라 : 휼조, 곧 도요새와 조개가 서로 물고 놓지 않으며 싸우는 것을 보고 어부가 가만히 앉아서 손쉽게 둘 다 잡는다는 뜻으로, 엉뚱한 사람에게 이익을 주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어부지리(漁父之利)
장수구대하야 : 수염이 길고 입이 커서
호풍신 : 풍채는 좋은데
너머 : '너무'의 방언
사풍세우불수귀 : 스쳐가는 바람과 가랑비 속에서 어부가 세월을 잊고 돌아갈 줄을 모른다는 당나라 장지화의 시 '어부'의 한 구절
천봉만학 : 수많은 봉우리와 골짜기기
왕배탕 : 등에 임금 '왕(王)'자를 달고 다니는 것을 끓인 탕, 자라탕이나 거북탕
해중지소생 : 바다에서 사는 생물
동정유리 청홍연 : 중국 호남성에 있는 동정호의 유리창에서 나는 푸른빛과 붉은 빛이 도는 고운 벼루
연적 : 벼룻물을 담은 그릇
상백초 : 맛을 보던 백가지 풀.
헤굽은 : '에굽은'의 방언. 조금 휘우듬히 굽은
양류 : 버드나무
앙그주춤 ; '엉거주춤'의 방언
이여서 : 이보다. '-여서'는 비교격 조사인 '에서'의 방언
오연 : 까마귀와 솔개
위방 불입 :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를 말라.
아미(蛾眉)산월(山月)반륜(半輪)토(兎) : 이백의 시 '아미산월가'의 첫구절인 '아미(蛾眉)산월(山月)반륜(半輪)추(秋)'의 변형으로서 '아마산 위에 뜬 반달 속의 토끼'란 뜻
아니리 : 판소리에서, 창을 하는 중간 중간에 가락을 붙이지 않고 이야기하듯, 즉 일정한 장단없이 자유리듬으로 엮어 나가는 사설을 말하며, 말로 하는 '말조 아니리'와 소리로 하는 '소리조 아니리'가 있다.
반찬대갱이 : 반찬으로 할 생선 대가리.
용당기 : 농악 때 쓴 용을 그린 깃발.
뒷줄 썩이듯 : 깃발을 잡아 맬 때 새끼 꼬듯해야 하므로 매기가 무척 어려워 속을 썩임.
잣 샌 : 잼. 뽐냄
남아하처불상봉 : 남자는 어느 곳에서라도 만나지 않을 수 없음.
상호 : 용모
인중 : 관상 보는 데 쓰는 용어로 코와 윗입술 사이 오목하게 팬 곳.
쩔은 : 짧은.
단명객 : 수명이 짧은 사람.
화망살 : 화로 망할 살. 살은 사람이나 물건 등을 해치는 독하고 모진 기운, 곧 악귀의 짓
온동 사슬 : 덩지가 큰 짐승을 잡을 때 쓰던 총알.
수화상층 : 물과 불은 맞지 아니하고 서로 어긋남
목물만 지면 : 물의 깊이가 목에까지만 차면.
실기니 : 슬그머니.
편전살 : 빠르고 꽂히는 힘이 센 짧은 화살. 아기살.
아구지 : 아가리
간물 : 짠물.
소상팔경 : 중국 호남성 동정호 남쪽 언덕의 소수와 상강이 모이는 곳에 있는 여덟 가지의 아름다운 경치. 곧 소상 야우·평사 낙안·원포 귀범·산시 청람·강천 모설·동정 추월·연사 만종·어촌석조.
진양 : 민속 음악에서, 판소리 및 산조 장단의 한 가지.
이비 : 중국 요 임금의 두 딸인 아황과 여영. 함께 순 임금에게 시집 갔는데, 순이 죽자 상수에 빠져 죽어 동정호를 지키는 물귀신이 되었다 함.
한라산 : 동정호 안에 있는 산. 오늘날 형남산.
악양우 : 중국 호남성 악양현에 있는, 당나라 때 세워진 성루.
완경(玩景) : 경치를 천천히 구경함
팔경 : 팔경을 여기서는 위와 같이 이름.
별유천지비인간 : 이태백의 '산중답속인'의 끝구절에서. 인간처 아닌 곳에 별천지가 있네.
산중유객이 도수궁허니 사해풍광이 입안중이라 : 산 가운데 노닐던 객이 수궁에 오니 온 바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는 뜻.
진세 : 육지 세계
남녀 : 가마
패려 : 예의에 어그러짐, 또는 어그러진 예의
입시 : 대궐 안에 들어가 임금님을 뵘
말질 : 질이 나쁜 것
현신 : 나타남
어서 들어가서 - 살게 해 주시오 : 토끼가 자라에게 부탁하는 말로 이욕에 눈이 멀면 자신의 죽음도 잊게 된다는 뜻.
방자사경 : 방재사경(方在死境) : 바야흐로 죽음을 눈앞에 둠
생금(生擒) : 산 채로 잡음
병부 : 군사를 동원할 수 있는 나무로 된 패.
자진모리 : 민속 음악에서, 판소리 및 산조 장단의 한 가지. 중중모리보다 좀 빠르고 휘모리보다 좀 느린 속도임.
산양 싸움에 마초 싸듯 : 중국의 삼국 시대 조조에게 원수 갚기 위해 군사를 일으켜 장안성을 열흘 동안 포위해서 함락시킨 사건.
약개장 : 약으로 쓰는 개를 삶은 국물
잘량 : 개잘량의 준말. 방석처럼 깔기 위해 털이 붙어 있는 채로 다룬 개가죽.
내종 : 내장에 난 부스럼
만병 회춘 : 온갖 중한 병이 낫고, 다시 건강을 회복함
후박없이 : 똑같이. 후박은 인심의 두터움과 엷음
선간목후간족 : '먼저 눈을 보고 뒤에 다리를 본다'는 뜻으로 좋은 말을 고를 때의 방법을 일컬음).
요단항장 천리마 : 하루에 천 리를 달릴 만큼 썩 빠른 말은 대개 허리가 짧고 목이 김
연인도 오백금으로 네 뼈를 사 갔으니 : 중국의 전국 시대 연나라의 사람 곽외가 어진 신하를 구하기 위해서 죽은 천리마의 뼈값으로 5백 냥도 서슴없이 치른 일.
주장대 : 붉은 칠을 한 몽둥이. 죄인을 심문할 때 쓰임.
천택지신 : 내와 못에 사는 물고기 신하
어병지졸 : 물고기 병졸
진퇴유곡(進退維谷) :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여, 어찌할 길이 없음. 오도 가도 못함
필사당유 : 토끼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함
김생 : 짐승
정조 : 정초, 정월 초하루
방색(防塞) : 방남의 청을 완강히 거절함
태산이 붕퇴(崩頹) : 태산이 무너짐
오성이 음음 : 화성·목성·금성·수성·토성이 어둠침침함
시일(時日)갈상(曷喪) : '언제 해가 지느냐'는 뜻으로, 하나라의 폭군 걸이 자신을 해에 비유하자 이에 백성이 빨리 해가 없어지기를 기다렸다고 하는 고사
상 : 은나라 사람은 수도의 이름에 따라 상나라로 자칭하였음.
주엄군 : 은나라 마지막 임금인 폭군 주를 일컬음.
비수병즉구불능식허고 담수병즉혈불능언허고 신수벼즉이불능청허고 간수병즉목불능시라 : 지라에 병이 들면 음식을 먹지 못하고, 쓸개에 병이 들면 말을 잘 못 하고, 콩팥에 병이 들면 제대로 듣지 못하고, 간에 병이 들면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뜻.
월륜정기 : 달의 정기
삼겼삽기로 : 생겼기로.
영주 : 신선이 산다는 삼신간의 하나
탁족(濯足) : 발을 씻음
지기일이요 미지(未知)기이 : 하나는 알고 둘은 모름
복희씨 : 중국 고대의 제왕. 팔괘를 만들고 고기잡이 방법을 가르쳤다 함
사신인수 : 복희씨의 몸이 뱀의 몸에다 사람의 머리를 함
신농씨 : 중국 고대의 제왕. 백성에게 농사 짓는 법을 가르쳤다 함
인신우수 : 사람의 몸에다 소의 머리를 함
지드란 : 길다. 길단.
가마구 : 까마귀.
비금주수 : 날짐승과 길짐승
궁기 : 구멍
만물시생이 동방삼팔목 남방이칠화 서방사구금 북방일륙수 중앙오십토 : 천지 만물이 처음 생길 때 목은 동쪽, 화는 남쪽, 금은 서쪽, 수는 북쪽, 토는 중앙을 가리킴.
응하야 : 굳혀서.
강태공 : 중국 주나라 초엽의 신하로서 성은 강, 이름은 상, 태공망이라 함. 강태공은 속칭. 문왕이 위수 가에서 곧은 낚시를 하고 있는 그를 만나 스승으로 삼았음.
표자 : 표주박
궁팔십 단팔십 : 강태공이 주 문왕을 만나기 전인 팔십 세까지는 궁하게 지냈고, 그 뒤 팔십 세는 호사스럽게 살았음.
요산요수(樂山樂水) : 산을 즐기고 물을 즐김).
동방삭이 : 한나라 무제 때의 사람. 속설에 서왕모의 복숭아를 훔쳐 먹어 죽지 않고 장수하였다 함.
보채 : 내장 전체
환흥 : 환흑. 다시 검어짐).
낙치부생(落齒復生) : 빠진 이가 다시 남
연녁익수 : 더욱 오래 삶
토끼 기가 막혀 - 망아지 새끼요 : 죽음이라는 급박한 상황을 골계적으로 표현함으로써 판소리적 묘미를 잘 살리고 있다.
앞발을 - 딱 들더니 : 죽음에서 벗어난 기쁨으로 토끼가 두 발을 들고 선 모습
조목 금수라도 치소할 터이요 ; 새나 나무, 날짐승, 들짐승들이 모두 비웃을 만큼 어리석은 일
잦은 몰이
숭상은 거북, 승지는 도미, 판서 민어, 주서 오징어, 한림 학사, 대사성 도루목, 방 첨사 조개, 해 운공 방게, 병사 청어, 군수 해구, 현감 홍어, 주 부장 조구, 부별랑청 장대, 승대, 교리 수찬, 낙지, 고등어, 지평, 장령, 청다리, 가오리, 금부 나졸, 좌우 순령수, 고래, 준치, 갈치, 삼치, 미끈 배암장어, 좌수 자개사리, 가재, 깨고리까지 영을 듣고 어전에 입시하야 대왕으게 절을 꾸벅꾸벅 허니,
아니리
병든 용왕이 이만 허구 보시더니마는, "어, 내가 이런 때는 용왕이 아니라, 팔월 대목 장날 생선전의 도물주가 되얐구나. 경들 중에 어느 신하가 세상에를 나가 토끼를 잡어다가 짐의 병을 구하리요?" 좌우 제신이 어두귀면지졸되야 면면 상고에 묵묵 부답이었다.
중모리
왕이 똘똘 탄식헌다. "남의 나라는 충신이 있어서, 할고사군 개자추와 방초망신 기 신이는 죽을 임금을 살렸건마는, 우리 나라도 능신은 있건마는, 어느 뉘기랴서 날 살리리요." 정언 잉어가 여짜오되, "세상이라 허는 곳은 인심이 소박하와, 수국인갑곧 얼른하면 잡기로만 위지를 허니, 지혜 용맹이 없는 자는 보내지를 못허리다.",
"승상 거북이 그럼 어떠하뇨?" 정언 잉어가 여짜오되, "승상 거북은 기략이 널렀삽고, 복판이 모도 다 대모인 고로, 세상으을 나가 오면 인간들이 잡어다가 복판 떨며, 대모 장도, 밀이개 살착, 탕건 묘또기, 주일쌈지 끈까지 대모가 아니며는 헐 줄을 모르니 보내지를 못허리다.", "아서라, 그래면 못 쓰겼구나. 방 첨사 조개가 그럼 어떠하뇨?", "방 첨사 조개는 철갑이 꿋꿋하야 방신제도는 좋사오나, 옛글에 이르기를, 관방휼지세허고 좌수어인지공이라, 휼조라는 새가 있어 수루루 퍼얼펄 달려들어, 휼조는 조개 물고 조개는 휼조 물고 서로 놓지 아니허다 어부 손에 모도 다 잽하여 속절없이 모도 죽을 것이니, 세상 보내지를 못허리다."
아니리
"아서라, 그러면 못 쓰겠다. 수문장 미에기가 그럼 어떠하뇨?"
잦은 몰이
정언이 여짜오되, "미에기는 장수구대하야 호풍신허거니와, 아가리가 너머 커서 식량이 너른 고로, 청림 벽계 산천수, 요기감을 얻으랴고 이리저리 히댈 적에, 사립 쓴 어옹들 사풍세우불수귀라. 입갑 뀌여서 물에다 풍덩, 감식으로 덜컥 생켜, 인간의 이질, 복실, 설사 배아피 얻은 듸 약으로 먹사오니, 보내지를 못하리다."
아니리
한참 이리 헐 죽에, 해 운공 방게란 놈이 열발을 쪽 벌리고 엉금 엉금 기어 들어오며,
중중모리
"신의 고향 세상이라, 신의 고향은 세상이라. 청림 벽계 산천수 가만히 장신하야 천봉 만학을 바래봐. 산중퇴 월중퇴 안면 있사오니, 소신의 엄지발로 토끼놈의 가는 허리를 바드드드드 집어다가 대왕 전에 바치리다."
아니리
"아니, 그럼 너도 이놈, 그러면 신하란 말이냐?" "아, 물고기떼는 다 마찬가지지요.", "어라, 저놈 보기 싫다! 두 엄지발만 똑 떼여 내쫓아라!" 공론이 미결헐 적에,
진양
영덕전 뒤로 한 신하가 들어온다. 은목 단족이요 장경 오훼로다. 홍배 등에다 방패를 지고 앙금앙금 기어 들어와 국궁재배허며 상소를 올리거날,
아니리
떼어 보니 별 주부 자래라. "네 충성은 지극허나, 세상에를 나가며는 인간의 진미가 되어 왕배탕으로 죽는다니, 그 아니 원통허냐?" 별 주부 여짜오되, "소신은 수족이 너이오라, 강상에 둥신 높이 떠 망보기를 잘하와 인간의 봉폐는 없사오나, 해중지소생으로 토끼 얼골을 모르오니, 화상 하나만 그려 주시면 꼭 잡어다 바치겄습내다.","아, 글랑 그리하여라."
중중모리
"화사자 불러라." 화공을 불러들여 토끼 화상을 그린다. 동정 유리 청홍연, 금수 추파 거북 연적, 오징어로 먹 갈아 양두 화필을 덥벅 풀어 단청 채삭을 두루 묻히어서 이리저리 그린다. 천하 명산 승지 강산 경개 보던 눈 그리고, 두견, 앵무지지 울제 소리 듣던 귀 그리어, 봉래, 방장 운무 중의 내 잘 맡던 코 그리고, 난초, 지초, 왼갖 향초, 꽃 따먹던 입 그리어, 대한 엄동 설한풍의 방풍허던 털 그려, 만화 방창 화림 중의 펊펄 뛰던 발 그려, 신농씨 상백초 이슬 털던 꼬리라. 두 귀난 쫑곳, 두눈 도리도리, 허리난늘찐, 꽁지난 묘똑. 좌편 청산이요, 우편은 녹수라. 녹수 청산의 헤굽은 장송, 휘늘어진 양류 속, 들락날락 오락가락 앙그주춤 기난 김생, 화중퇴 얼풋그려, "아미산월으 반륜퇴 이여서 더할소냐. 아나, 엿다, 별 주부야, 네가 가지고 나가라."
아니리
별 주부, 토끼 화상 받어 목덜미 속에 집어넣고 꽉 옴틀여 놓으니, 물 한 점 들어갈 배 만무하지. 사은 숙배 하직헌 후에 본댁으로 돌아올적에, 그때에 주부 모친이 있는듸, 자래라도 수수 천년이 되어서 삶아 놔도 먹지 못할 자래였다. 주부 세상에 간단 말을 듣고 울며불며 못 가게 만류를 허는듸,
진양
"여봐라, 주부야, 여봐라, 별 주부야. 네가 세상을 간다 허니 무얼 허로 갈라느냐? 장탄식, 병이 든들 어느 뉘가 날 구하며, 이 몸이 죽어져서 오연의 밥이 된들, 뉘랴 손뼉을 뚜다리며 후여처 날려 줄 이가 뉘 있더란 말이냐? 여봐라, 별 주부야, 위방 불입을 가지 말어라."
아니리
별 주부 여짜오되, "나라에 환후 계옵셔 약 구하러 가는 길이오니, 어머니, 너무 근심치 마옵소서.","내 아들아, 기특허다. 충성이 지극허면 죽는 법이 없느니라. 그럼 수로 육로 이만리를 무사히 다녀오너라.": 배별하고 침실로 돌아올 적에, 그때에 주부 마누라가 있는듸, 이놈이 어디로 장가를 들었는고 허니 소상강으로 장가를 덜었것다. 택호를 부르며 나오는듸, "아이고 여보, 소상강 나리, 세상을 간다 허니, 당상의 백발 모친 어찌 잊고 가랴시오?","오냐, 네가 아이고 지고 운다마는, 내가 너를 못 잊고 가는 일이 하나 있다.","아, 무슨 일을 그렇게 못 잊고 가세요?","다른 게 아니라, 재너머 남생이란 놈이 제 조에 덧붙임 사촌간이라 하여 두고 볼곰볼곰 자주 돌아당기는 게 아마도 내 구망에 껄쩍지근혀. 그놈 몸에는 거 노랑내가 나고, 내 몸에는 고순내가 나니, 글러 징험해서 부대 조심허렸다잉." 든든히 단속 후에 수정문 밖을 썩 나서서.
(중략)
아니리
토끼 보고 무서라고,
"아이고, 나 저 물 무서 못 가겄다! 물 속에 들어가서 용왕된대도 나 못 가겄다! 물 속에 들어가서 용왕된대도 나 못 가겄다!"
도로 깡짱깡짱 올라가더니 따뜻한 양지 바른 곳에 앉어 그 잘생긴 낯을 반찬 대갱이 굽듯 뙤작뙤작허고 앉았것다.
별주부 기가 막혀.
"예끼, 이 자식. 벼슬허로 가자는데, 용당기 뒷줄 썩이듯 너무 잣샌 것 아니꼬와 못 보것다! 올 테면 오고 말 테면 말어라, 이 녀석아! 네 몸 위해 가지, 날 위해 가느냐? 그러나 남아하처불상봉이니 후일에 만나더래도 알은 체나 하고 지내자. 네 상오(相好)를 보면 인중 밑이 쩔은 것이 단명객이 분명하고, 안중(眼中)에 화망살이라, 내일 묘시 말 진시 초에 재 너머 김 포수, '무'자 '현'자 '금'자때, 온동 사슬 잘 가는 총으로 네놈의 북두자리 양 미간 골치 대목에다 들이대고 그저 꿍그르르르쾅!"
토끼 듣고 깐짝 놀래,
"아이고, 여보쇼, 쾅 소리는 빼 버리시오. 우리 삼대가 다 총으로 망했소. 수궁에가면 총 없소?",
"아, 수화가 상충인데 무슨 총이 있단 말이요? 총이라 허는 것은 불이 일어나야 나가는듸, 아 물 속에서 무슨 총이 있단 말이요?"
"대체 그렇겠소잉. 그럼 별주부, 좋은 수가 있소. 별주부 먼저 물에를 들어가 시험을 해 봐 가지고 목물만 지면 따라갈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못 가겠소."
"아, 글랑 그러시요."
별주부가 물에 풍덩 들어서서 이리저리 둥덩둥덩 떠다니니, 토끼 보더니,
"아, 그 물이 그거 보기보단 아주 실없구려. 나도 한 번 들어가 볼밖으. 여보, 별주부!"
버드나무 가지를 앞니로 꽉 물고,
"내 뒷발 들어가오."
"어서 들어오시오."
뒷발을 실기미 물에다 담것다. 별주부라 하는 것은 물에서는 편전살보다 더 빠른 짐생이라, 수루루루 달려들어 토끼 뒷발을 앞니로 꽉 물고 툭 채노니, 뚝 떨어져서 물 속으로 울룩울룩 들어가며, 토끼 기가 막혀,
"아이고, 갑갑하야 나 못 살겄다! 별주부야 날 좀 놔라!",
"네 이놈아, 아구지 벌리지 마라. 간물 들어가면 간 녹는다. 이놈아. 인제 헐 수 없으니, 내 등에 업히어서 곳곳이 이르께 구경이나 착실히 해라. 헐 수 없다."
소상 팔경(瀟湘八景)을 들어가는듸,
진양
이편을 가리키며 강남 지방이요, 저편은 고소성이라. 구름 밖에 솟은 것은 동정호 칠백 리요, 하늘에 닿은 것은 이비의 한라산이라, 악양우(岳陽樓) 완정허고 파륜·군산 돌아드니 경개가 처처 그윽허구나. 소상 야우 달 밝은듸 창오 모운, 황릉 애원, 무산 낙조, 한산 모종, 평사 낙안, 원포 귀범 팔경을 다 본 후에 양구로 돌아드니, 금계 소리가 쨍그렁 청 들리거늘, 토끼가 눈 들어 사면을 살펴보니 백옥 현판으 황금 대자로 새겼으되, '남해 영덕전 수정문'이라 뚜렷이 새겼거날,
아니리
토끼 보고 좋아라고,
"과연 들어와 보니 좋기는 좋다. 네 귀에서 풍경이 웽기렁 젱기렁 허고 별유천지 비인간이라. 이런 좋은 경치에 풍월이나 한 수 읊어 볼까? 산중 유객(山中遊客)이 도수궁(到水宮)허니 사해 풍광(西海風光)이 입안중(入眼中)이라."
토끼 좋아라고,
"여보, 별주부, 어서 들어가서 하관 말석이라도 참여나 시켜주시오. 내 정승 하면 주부는 꼭 판서 시키지요.",
"아, 글랑 그러시요만, 진세(塵世)나 수국(水國)이나 풍속이 달라 혹 '토끼 잡어 들여라' 허는 청령이 나더래도 부디 놀래지는 마시요잉. 세상 같으면 훈련대장 입시 들라는 분부니 가만히 여기 앉었시요. 내 안에 들어가서 남여 내보내리다.",
"글랑 그러시요마는 법인즉 아주 거 패려 하오. 내 훈련대장 되면 그 법 꼭 뜯어 고칠라요."
"그는 처분대로 하시요."
별주부가 들어가니 용왕이 방자사경이로구나.
"진세에 나갔던 별주부 현신이오."
병든 용왕이 이만 허고 보시더니,
"어, 수로 육로 이만 리를 무사히 다녀왔으며, 토끼를 어찌하였느냐?",
"예이, 토끼를 산 채로 생검하야 궐문 밖에 대령하였습니다.",
"어허, 기특코 고마운 말이로구나. 그러면 토끼를 잡어 들여라.",
"예이",
청령이 으근으근 나니 토끼 이 잡것 물색 모르고 좋아라고,
"옳다, 인제 훈련대장 입시 들라나부다."
병부를 여다 찰까, 저다 찰까, 생방정을 떨고 있을 적에,
자진모리
좌우 나졸 분부 듣고 수달, 해구, 좌우 모지리, 둥글 일시 내달라 토끼를 에워쌀 제, 진황 만리장성 싸듯, 산양 싸움에 마초 싸듯, 첩첩이 둘러싸고 토끼 들입대 잡는 모냥, 영문 출사 도적 잡듯 토끼 두 귀를 꽉 잡고,
"이놈, 네가 토끼냐?"
토끼 기가 맥혀 벌렁벌렁 떨며,
"나, 토끼 아니요.",
"그러면 네가 무엇이냐?"
"개요.",
"개 같으면 더욱 좋다. 삼복달음에 너를 잡어 약개정도 좋거니와, 네 간을 내어 오계탕 달여 먹고, 네 껍질 벗겨내야 잘량 모와서 깔고 자면 어혈, 내종, 혈담에는 만병 회춘 명약이라, 이 강아지를 말어 가자.",
"아이고, 내가 개도 아니란 말이요.",
"그러면 네가 무엇이냐?",
"송아지요.",
"소 같으면 더욱 좋다. 도탄에 너를 잡아 두피, 족 살찐 다리, 양 회간, 처녑, 콩팥, 후박없이 노놔 먹고, 네 껍질은 벗겨 내야 북도 매고, 신도 짓고, 네 뿔 베여 활도 묶고, 네 속에 든 우황 값 중한 약이 되고, 똥오줌은 거름 허니 버릴 것없나니라. 이 송아지를 말어 가자.",
"아이고, 내가 소도 아니란 말이요.",
"그러면 이제사 무엇이냐?",
"가만 있으시오. 생각해 갖고 갈쳐 줄 테니 좀 노시요. 나 망하지 새끼요.",
"말 같으면 더욱 좋다. 선간목 후간족, 요단항장 천리마로다. 연인도 오백금으로 네 뼈를 사 갔으니, 너를 산 채로 말아다 대왕 전 바쳤으면 천금상을 아니 주랴. 들어라."
우우, 토끼를 결박하야, 빨그란 주장대로 쿡 찔러 들어메니, 토끼 하릴없어 대랑 대랑 대랑 달려가며,
"어따, 이놈 별주부야.",
"워야.",
"나 탄 거 이름이 무엇인고?"
"오, 그거 수국 남녀라고 하는 것이다.",
"수국 남녀는 본래 이러느냐?"
"오냐, 그러느니라.",
"어따, 이 놈의 남여, 두 번만 타거드면 옹두리뼈도 안 남겄구나!"
대랑 대랑 대랑 대랑 대랑 대랑 달려갈 제, 영덕전 너른 마당에 동댕이쳐,
"예이, 토끼 잡아 들였고."
아니리
토끼를 그 영덕전 너른 마당에다가 서덧서덧 바퀴를 동댕이쳐서 내궁글려 노니, 토끼란 놈이 눈을 깜작깜작, 좌우를 살펴보니 천택지신과 무수한 어병지졸이 겹겹이 둘러쌌거늘, 진퇴 유곡이요, 용궁지하에 필사당퇴라, 토끼란 놈이 하릴없이 꼭 죽었지. 눈을 깜작짬작 뜨고 있을 적에, 용왕이 이만 허고 보더니마는,
"어, 그놈 뱃속에 간 많이 들었겄다. 토끼 배 따고 어서 간 내어 소금 찍어 올려라."
분부를 했거든 썩 토끼 배 따고 간 내어 먹었으면 아무 폐단이 없었을 텐듸, 일이 그릇되니라고, 타국 김생이라 귀히 여겨서 말을 한번 시켜 보것다.
"토끼 너 듣거라. 내 우연히 득병하야 명의한틔 문의헌즉, 네 간이 으뜸이라기로, 어진 신하를 세상에까지 보내서 너를 잡아왔으니, 죽노라 한을 말어라. 너 죽은 후에라도 목비(木碑)라도 해 세울 것이고, 네 육신은 안장하야 정조, 한식, 단오, 추석, 제사를 착실히 지내 줄 것이니 조끔도 죽는 거 한을 말고, 헐 말이 있걸랑은 말이나 허고 그냥 죽어라."
토끼란 놈 그제야 인자 죽을 듸 돌아온 줄 알았구나.
"어뿔까, 이거 큰일났구나."
눈을 깜짝깜짝하더니, 한 꾀를 얼른 생각하야 배를 훨씬 내밀며,
"자, 내 배 따 보시오."
용왕이 의심이 나지.
"저놈이 배를 아니 때일라고 방색을 할 터인듸, 배를 의심 없이 내민 것이 필유곡절이라. 무슨 연유인고 말이나 허고 죽어라.",
"말할 것도 없고, 소퇴(小兎)의 배만 촥 따보시오.",
"어따, 이놈아, 말을 해라.",
"말하여도 곧이듣지 안 헐 테니 어서 따 보란 말이요."
"어따, 이놈아, 어서 말을 허여라."
중모리
"말을 하라니 허오리다, 말을 허라니 허오리다. 태산이 붕퇴허고, 오성이 음음헌듸, 시일갈상 노랫소리 억조창생 원망 중에, 탐학한 상 주엄군 성현의 뱃속에가 칠 궁기가 있다 허고 비간의 배를 갈라 일곱 궁기가 있더니까? 소퇴도 배를 갈라 간이 들었으면 좋거니와, 만일 간이 없고 보면 불쌍헌 퇴명(兎命)만 끊사옵제, 눌다려 달라 허며 어찌 다시 구하리까? 당장으 배를 따 보옵소서."
용왕이 화를 내여,
"이놈, 네 말이 간사헌 말이로다. 의서으 이르기를, 비수병즉구불능식허고 담수병즉혈불능언허고 신수병즉이불능청허고 간수병즉목불능시라. 간이 없고야 눈을 들어서 만물을 보느냐?"
토끼가 당돌히 여짜오되,
"소퇴의 간인즉 월륜 정기로 삼겼삽기로, 보름이면 간을 내고 그믐이면 간을 들입내다. 세상의 병객들이 소퇴 곧 얼른하면 간을 달라고들 보채기로, 간을 내여 파촛잎에다 꼭꼭 싸서 칡노로 칭칭 동여, 영주 석상 계수나무 늘어진 상상개비으 끝어리으다 다랑 매놓고, 도화 유수 옥계변으 탁족하러 내려왔다가 우연히 주부를 만나 수궁 흥미가 좋다고 허기로 완경차로 왔나니다."
용왕이 꾸짖어 왈,
"이놈, 네 말이 당찮은 말이로다. 사람이나 짐생이나 일신지 내장은 다를 바가 없는듸, 출입지 못하는 간을 어찌 내고 들이고 임의로 출입헌단 말이냐?"
토끼가 히히히히 웃으면서,
"대왕이 지기일이요, 미지기이로소이다. 복회씨난 어이하야 사신인수가 되얐으며, 신농씨 어짠 일로 인신우수가 되었으며, 대왕은 어이하야 꼬리가 저리 지드란허고, 소퇴난 무삼 일로 꼬리가 요리 묘똑하옵고, 대왕의 몸뚱이는 비늘이 번쩍번쩍허고, 소퇴의 몸뚱이난 털이 요리 송살송살. 가마구로 일러도 오전 까마구 쓸개 있고, 오후 까마구 쓸개 없사오니, 인생 만물 비금주수가 한가지라고 뻑뻑 우기니 답답지 아니허오니까?"
용왕이 어이없어,
"그러하면 네 간을 내고 들이고 허는 표가 있느냐?"
"있습지요.",
"어디 보자.",
"자. 보시오.",
빨그런 궁기가 서이 늘어 있거늘,
"저 궁기가 모두 다 어쩐 내력이냐?"
"예, 소퇴가 아뢰리다. 한 궁기로는 대변을 보고, 또 한 궁기로는 소변을 보고, 남은 궁기로는 간 내고 들이고 임의로 출입허나니다.",
"그러하면 어느 궁기로 넣고 어느 궁기로 내느냐?"
"입으로 넣고 밑궁기로 내되, 만물시생이 동방삼팔목, 남방이칠화, 서방사구금, 북방일륙수, 중앙오십토, 천지 음양, 사시 정기, 아침 안개, 저녁 이슬, 오색 광채를 응하야 입으로 넣고 밑궁기로 내오니 만병 회춘으 으뜸 약이라고 허나이다."
용왕이 어이없어.
"그러하면 네 간 먹고 효험 본 이 뉘 있는고?",
"있기를 이를 말씀이요? 위수 어부 강태공은 고기 낚으러 나왔다가, 우리 선조 간 씻을 적에 낚싯대 내버리고, 찼던 표자를 선뜻 끌러서 그 물 조끔 떠 마시고 궁팔십 단팔십에 일백육십 세를 살으시고, 우리 부친 현고께서 요산요수를 하올적에, 물에 빠져 죽게 될 적에, 동방삭이가 건져 주어 그 은혜를 갚노라고 간 쪼금 주었더니 삼천 갑자를 살았으니, 대왕의 성덕으로 영주 석상 달아놓은 간 보채 들여다 자셨으면 백발이 환흥, 낙치 부생, 환골 탈태, 연년 익수, 만병회춘을 허오리다."
(후략)
박봉술(朴奉述) 창(唱)
(전략)
진양
진 회수를 바라보니 격강(隔江)의 상녀(商女)들은 망국한을 모르고서 연롱한수월롱사에 후정화만 부르는구나. 소상강 들어가니 악양루 높은 집이 호상(湖上)에 높이 떴다. 동으로 바라보니 삼백 척 부상(扶桑)까지 일륜홍이 어리었고 바다가 뒤틀리며 어룡(魚龍)이 출몰허고 한 곳을 당도허니 금고(金鼓) 소리가 쨍그랑쨍 들리거날 눈을 들어 살펴보니 흰 옥현판에 황금대자로 남해 수궁 수정(水晶)문이라 뚜렷이 새겨난데 토끼가 보고서 좋아라고 헌다.
아니리
" 아닌게아니라 대체 좋소 좋아. 어서 들어가서 훈련대장 좀 꼭 살게 해 주시오."
"글랑은 그리하시오. 여기 앉어 계시다 토끼 잡아 들여라 하거든 놀래지 마시오."
"아니, 어찌 그렇단 말이오."
"우리 세상 같고 보면 훈련대장 입시(入侍)들여라 하는 말이오."
"법인즉 말질이요. 내가 훈련 대장 허게 되면 그 법 내가 뜯어 고칠라요."
"글랑은 그리 하시오."
그 때에 별주부는 영덕전 너른 뜰 공손히 복지하야 여짜오되,
"만리 세상에 나갔던 별주부 현신이요. "
"수리 만리를 무사히 다녀왔으며 토끼를 어찌하여 왔는고."
"예. 토끼를 생금(生擒)하야 문 밖에 대령하였나이다."
"그럼 토끼를 빨리 잡아들이도록 하여라." 영을 내려 노니,
자진모리
좌우 나졸 금군 모조리 순령 일시에 내달아 토끼를 에워쌀 제 진황(秦皇) 만리장성 싸듯 산양(山陽) 싸움에 마초(馬超) 싸듯 첩첩이 둘러싸고 토끼 겹쳐 잡는 거동 영문(營門) 출사(出師) 도적 싸듯 토끼 두 귀를 꽉 잡고 네가 이놈 토끼냐.
토끼 기가 막혀 벌렁벌렁 떨며, 토끼 아니오. 그러면 네가 무엇이냐. 개요. 개 같으면 더욱 좋다. 삼복 다름에 너를 잡아 약개장도 좋거니와 네 간을 내어 오개탕 다려 먹고 네 껍질 베껴 내야 잘양 무어 깔게 되면 응혈(凝血), 내종(內腫), 혈담(血痰)에는 만병 회춘(萬病回春)의 명약이라 이 강아지 몰아가자. 아이고 내가 개도 아니요. 그러면 네가 무엇인가. 송아지요. 소 같으면 더욱 좋다. 도판(屠板)에 너를 잡아 뒷핏죽 살찐 다리 양 횟간 천엽 콩팥 후박(厚薄) 없이 나놔 먹고 네 뿔 빼어 활도 메고 네 가죽 베껴 내어 신도 짓고 북도 메고 똥오줌은 거름을 하니 버릴 것 없나니라. 이 송아지를 몰아가자. 토끼가 생각하니 날도 뛰고 못 허고 꼼짝없이 죽었구나. 아이구 내가 소도 아니요. 그러면 네가 무엇인고. 망아지 새끼요. 말 같으면 더욱 좋다. 선관목(先觀目) 후관족(後觀足)이라. 요단항장천리말(腰短項長千里馬)이다. 연왕(燕王)의 오백금(五百金)도 네 뼈를 사 갔으니 너를 산 채 몰아다가 대왕전에 바쳤으면 천금상을 아니 주랴. 듣거라. 토끼를 결박하야 발그런 주장(朱杖)대로 꾹찔러 들어 놓니 토끼 하릴없이 대롱대롱 매달려, 아이고 이놈 별주부야, 왜야. 나 탄 게 무엇이냐. 오 그게 수궁 남여(藍輿)라 하는 게다. 아이고 이 급살을 맞은 년의 남여 두 번만 타게 되면 옹두리뼈도 안 남겄네. 토끼를 결박하야 영덕전 너른 뜰에 동댕이쳐, 토끼 잡아들였오.
아니리
토끼란 놈이 눈을 깜작깜작, 좌우를 살펴보니 천택지신과 무수한 어병지졸이 겹겹이 둘러쌌거늘, 진퇴 유곡이요, 용궁지하에 필사당퇴라, 토끼란 놈이 하릴없이 꼭 죽었지. 눈을 깜작깜작 뜨고 있을 적에 용왕이 이만 허고 보더니마는
"어, 그놈 뱃속에 간 많이 들었겄다. 토끼 배 따고 어서 간 냉어 소금 찍어 올려라."
분부를 했거든 썩 토끼 배 따고 간 내어 먹었으면 아무 폐단이 없었을 텐듸, 일이 그릇되느라고, 타국 짐생이라 귀히 여겨서 말을 한번 시켜 보것다.
"토끼 너 듣거라. 내 우연히 득병하야 명의 다려 물은 즉, 네 간이 으뜸이라 하기로, 우리 수궁의 어진 신하를 보내여 너를 잡아왔으니, 죽노라 한을 마라. 너 죽은 후에라도 목비(木碑)라도 해 세울 것이고, 네 육신은 안장하야 정초, 한식, 단오 추석, 제사를 착실히 지내 줄 것이니 조끔도 죽는 거 한을 말고, 헐 말이 있걸랑은 말이나 허고 그냥 죽어라."
토끼란 놈 그제야 인자 죽을 뒤 돌아온 줄 알았구나. 토끼가 생각하니, 저놈한테 속절없이 끌려 와서 꼭 죽게 되었구나. 한꾀를 얼른 내어 배를 의심없이 척 내밀며,
"자, 내 배 따보시오."
용왕이 생각하기를, 저놈이 배를 안 따일랴고 무수히 잔말이 심할 터인데 저리 의심없이 배를 썩 내어 밀으니 필유곡절(必有曲折)이로구나.
"네가 무슨 말이 있거든 말이나 하려므나."
무슨 연유인고 말이나 허고 죽어라."
"할할 것도 없고, 소퇴의 배만 촥 따보시오."
"어따, 이놈아, 말을 해라."
"말하여도 곧이듣지 안 헐테니 어서 따 보란 말이요."
"어따, 이놈아, 이왕에 죽을 바에야 말이나 허고 줄으려므나."
중모리
말을 허라니 허오리다 말을 허라니 허오리다. 소토의 간인즉 월륜(月輪) 정기(精氣)로 생겼삽더니 보름이면 간을 넣고 그믐이면 간을 들어 내다, 세상에 병객들이 소퇴 곧 얼른 하면 간을 달라고 보채기로 간을 내어 파초(芭蕉) 잎에다 꽁꽁 싸서 칡넝쿨로 칭칭 동여 의주(義州) 석산(石山) 계수나무 느러진 상상가지 끝끝토리 달아 매고 도화 유수 옥계변에 탁족(濯足)허러 나왔다 우연히 주부를 만나 수궁 흥미가 좋다기로 완경(翫景) 차로 왔나이다. 용왕이 듣고 진노하야, 이놈 네 말이 모도 다 당찮은 말이구나. 사람이나 짐생이나 일신지내장은 다를 바가 없는데 네가 어찌 간을 들이고 내고 임의로 출입헌단 말이냐. 토끼가 당돌히 여짜오되 대왕은 도지일(徒知一)이요. 미지기이(未知其二)이로소이다. 복희씨는 어이하야 蛇身인수(人首)가 되얏으며 신농씨 어찌허여 인신(人身) 우두(牛頭)가 되얏으며 대왕은 어이하야 꼬리가 저리 기드란허옵고 소토난 무슨 일로 꼬리가 이리 뭉툭하옵고 대왕의 옥체에는 비눌이 번쩍번쩍 소토의 몸엔 털이 이리 송살송살, 까마귀로 일러도 오전 까마귀 쓸개가 있고 오후 까마귀 쓸개 없으니 인생만물 비금(飛禽) 주수(走獸)가 한가지라 뻑뻑 우기니 답답지 아니허오리까. 용왕이 듣고 돌리느라고, 그리허면 네 간을 내고 들이고 임의로 출입하는 표가 있느냐. 예 있지요. 어디 보자. 자 보시오. 빨간 궁기가 셋이 느런이 있거날, 저 궁기 모두 어찌 된 내력이냐. 예 내력을 아뢰리라. 한 궁기는 대변 보고, 한 궁기로는 소변 보고, 남은 궁기로는 간 내고 들이고 임의로 출입하나이다. 그러허면 네 간을 어데로 넣고 어데로 내느냐. 입으로 넣고 밑궁기로 내놓으니 만물(萬物)시생이 동방(東方) 삼팔목 남방 이칠화 서방 사구금 북방 일륙수 중앙 오십토 천지(天地)음양(陰陽) 오색 광채 아침 안개 저녁 이슬화하여 입으로 넣고 밑궁기로 내어 놓니 만병 회춘에 명약이라 으뜸약이 되나니다. 미련트라 저 주부야, 세상에서 나를 보고 이런 이야기를 하였으면 간을 팥낱만큼 도려 내어 대왕 병도 직차하고 너도 충성이 나타나서 양주(兩主)양합이 좋을 것을 미련하드라 저 주부야 만시지탄(晩時之歎)이 쓸데가 없네.
아니리
토끼가 어찌 궤변(詭辯)을 늘어놨던지 용왕이 딱 돌렸는가 보더라.
"여봐라, 이 토공에게 해한 자는 정배(定配)를 보낼 터이니 각별히 조심허고 술상 한 상 차려 오너라."
뜻밖의 수궁 풍류가 낭자할 적에,
엇모리
왕자진의 봉피리, 곽처사의 죽장구 찌지렁쿵정저쿵 석련자 거문고 설그덩둥덩둥, 장량의 옥통수, 혜강의 해금이며, 완적의 휘파람 격타고 취용적 능파사 보허사 우의곡 채련곡 곁드려서 노래할 제 낭자한 풍악 소리 수궁이 진동하니 토끼도 신명 내어,
아니리
앞발을 묏산자 뽄으로 딱 들더니 한번 놀아 보것다.
중중모리
앞내 버들은 청포장 두르고 뒷내 버들은 유록장 둘러 한가지 찢어지고 펑퍼져 춘비춘흥을 못 이겨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흔들흔들 흔들흔들 노닐 적에 어머니는 동이를 지고, 아버지는 노구를 지고 노고지리 지리 지지리 앞발 번쩍 추켜들더니 촐랑촐랑 노닌다.
아니리
대장 범치란 놈이 토끼 뒤를 졸졸 따라다니다가 촐랑촐랑 소리를 듣더니,
"에그, 토끼 뱃속에 간 들었다."
고함을 질러 노니 토끼가 깜짝 놀라 주저 앉으며,
"아니 어느 시러배 아들놈이 내 뱃속에 간 들었다 하느냐, 어 못 먹는 술잔을 빈 뱃속에다가 먹었더니 아마 촐랑촐랑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아서라, 내가 용왕을 속인 김에 빨리 세상을 나가야지 오래 지체하다가는 배를 딸 모양이다. 용왕께 하직을 하는데,
"제가 세상에 빨리 나가 간을 속히 가지고 오겠나이다."
용왕이 이 말을 듣더니,
"여봐라 별주부야. 토공을 모시고 세상을 나가 간을 주거들랑 속히 가지고 오도록 하여라."
명을 내려노니 별주부 기가 막혀,
중모리
별주부가 울며 여짜오대, 토끼란 놈이 본시 간사하야 뱃속에 달린 간 아니내고 보며는 조목 금수라도 치소(嗤笑)할 터이요. 맹획을 칠종칠금(七縱七擒)하던 제갈량의 재조 아니어든 한 번 놓아 보낸 토끼를 어찌 다시 구하오리까 당장에 배를 따 보아 간이 들었으면 좋으려니와 만일에 간이 없고 보면 소신의 구족을 멸하여 주옵고 소신을 능지처참하드래도 여한이 없사오니 당장 따 보시오. 토끼가 기가 막혀, 여봐라 이놈 별주부야 야 이놈 몹쓸 놈아 왕명이 지중커늘 내가 어이 기만하랴. 옛말을 네가 못 들었느냐. 하걸 학정으로 용방을 살해코 미구에 망국되었으니 너도 이놈 내 배를 따보아 간이 들었으면 좋으련만 만일에 간이 없고 보면 불쌍한 나의 목숨이 너의 나라서 사(死)가 되고 너의 용왕 백 년 살 때 하루도 못 살테요. 너의 나라 만조 백관 한 날 한 시에 모두 다 몰살시키리라. 아나 옛다 배 갈라라 똥밖에는 든 것 없다. 내 배를 갈라 내 보아라.
아니리
"왜 이리 잔말이 심헌고. 어서 빨리 나가도록 해라."
별주부가 하릴없이 토끼를 업고 세상을 나가는데 세상 경개가 장히 좋던가 보더라.
(박초월 창본에서)
판소리 수궁가
토끼란 놈이 눈을 깜작깜작, 좌우를 살펴보니 천택지신(川澤之臣)과 무수한 어병지졸(魚兵之卒)이 겹겹이 둘러쌌거늘, 진퇴유곡(進退維谷)이요, 용궁지하에 필사당퇴(必死當兎?)라, 토끼란 놈이 하릴없이 꼭 죽었지. 눈을 깜작깜작 뜨고 있을 적에, 용왕이 이만 허고 보더니마는, "어, 그놈 뱃속에 간 많이 들었겄다. 토끼 배 따고 어서 간 내어 소금 찍어 올려라." 분부를 했거든 썩 토끼 배 따고 간 내어 먹었으면 아무 폐단이 없었을 텐듸, 일이 그릇 되느라고, 타국 김생이라 귀히 여겨서 말을 한번 시켜 보것다. "토끼 너 듣거라. 내 우연히 득병하여 명의한틔 문의헌즉, 네 간이 으뜸이라기로, 어진 신하를 세상에까지 보내서 너를 잡아왔으니, 죽노라 한을 말어라. 너 죽은 후에라도 목비(木碑)라도 해 세울 것이고, 네 육신은 안장하여, 정조, 한식, 단오, 추석 제사를 착실히 지내 줄 것이니 조끔도 죽는 거 한을 말고, 헐 말이 있걸랑은 말이나 허고 그냥 죽어라." 토끼란 놈 그제야 인자 죽을 듸 들어온 줄 알았구나. "어뿔까(아뿔싸), 이거 큰일났구나." 눈을 깜작깜작하더니, 한 꾀를 얼른 생각하여 배를 훨씬 내밀며, "자, 내 배 따 보시오." 용왕이 의심이 나지. "저놈이 배를 아니 때일라고 방색(防塞)을 할 터인듸, 배를 의심없이 내민 것이 필유곡절(必有曲折)이라. 무슨 연유인고 말이나 허고 죽어라.", "말할 것도 없고, 소퇴의 배만 쇂 따보시오.", "어따, 이놈아, 말을 해라.", "말하여도 곧이 듣지 안 헐 테니 어서 따 보란 말이요.", "어따, 이놈아, 어서 말을 허여라."
(중략)
토끼가 당돌히 여짜오되, "소퇴의 간인즉 월륜(月輪) 정기로 삼겼삽기로, 보름이면 간을 내고 그믐이면 간을 들이내다. 세상의 병객들이 소퇴곧 얼른하면 간을 달라고들 보채기로, 간을 내여 파촛잎에다 꼭꼭 짜서 칡노(칡덩굴)로 칭칭 동여, 영주(瀛洲) 석상(石上) 계수나무 늘어진 상상(上上)개비으 끝끝어리으다 달아매 놓고, 도화 유수 옥계변으 탁족(濯足)하러 내려왔다가 우연히 주부를 만나 수궁 흥미가 좋다고 허기로 완경차(玩景次)로 왔나니다." 용왕이 꾸짖어 왈, "이놈, 네 말이 당찮은 말이로다. 사람이나 짐생이나 일신지내장은 다를 바가 없는듸, 출입지 못하는 간을 어찌 내고 들이고 임의로 출입헌단 말이냐?"
(중략)
"대왕이 지기일(知其一)이요 미지기이(未知其二)로소이다. 복희씨(伏羲氏)난 어이하여 사신인수(蛇身人首)가 되뒶으며, 신농씨(神農氏) 어짠 일로 인신우수(人身牛首)가 되었으며, 대왕은 어이하여 꼬리가 저리 지드란허고(길고), 소퇴난 무삼 일로 꼬리가 요리 묘똑하옵고, 대왕의 몸뚱이는 비늘이 번쩍번쩍허고, 소퇴의 몸뚱이난 털이 요리 송살송살. 가마구로 일러도 오전 까마구 쓸개 있고, 오후 까마구 쓸개 없사오니, 인생 만물 비금주수(飛禽走獸)가 한가지라고 뻑뻑 우기니 답답지 아니허오리까?"
<핵심 정리>
연대 : 미상
작자 : 미상
형식 : 고대 소설. 판소리계 소설. 우화 소설.
성격 : 풍자(諷刺)적. 우화(寓話)적. 해학(諧謔)적. 교훈(敎訓)적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배경 : 시간적(옛날 옛적). 공간적(용궁, 바닷가, 산 속), 사회적(유교적 사상(忠)이 강조되던 사회)
표현 : 우화적, 의인화수법으로 인간 사회를 풍자, 고사성어와 속담, 한자어가 많이 쓰임.
제재 : 용왕의 병과 토끼의 간
주제 : 어려움을 극복하는 지혜. 허욕에 대한 경계와 왕에 대한 충성심, 인간의 허욕에 대한 풍자
구성 : 4단 구성
특징 : 근원설화를 바탕으로 형성된 판소리계 소설로, 우화적 수법으로 인간 사회에 대한 풍자를 하고 있으며, 한문학의 영향으로 중국의 고사성어를 많이 인용하고 있다.
<내용 연구>
토끼란 놈이 눈을 깜작깜작, 좌우를 살펴보니 천택지신(川澤之臣 : 내와 연못의 신하)과 무수한 어병지졸(魚兵之卒)이 겹겹이 둘러쌌거늘, 진퇴유곡(進退維谷 : 나아갈 수도 없고, 물러설 수도 없는 궁지에 몰려 있음)이요, 용궁지하에 필사당퇴(必死當兎?)라[토끼란 놈이 - 필사당퇴(必死當兎?)라 : 수중의 신하들과 물고기 병졸들로 둘러 싸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토끼란 놈이 하릴없이(어떻게 할 도리가 없이, 틀림 없이) 꼭 죽었지. 눈을 깜작깜작 뜨고 있을 적에, 용왕이 이만 허고 보더니마는, "어, 그놈 뱃속에 간 많이 들었겄다. 토끼 배 따고 어서 간 내어 소금 찍어 올려라." 분부를 했거든 썩 토끼 배 따고 간 내어 먹었으면 아무 폐단이 없었을 텐듸, 일이 그릇 되느라고, 타국 김생이라 귀히 여겨서 말을 한번 시켜 보것다. "토끼 너 듣거라. 내 우연히 득병하여 명의한틔 문의헌즉, 네 간이 으뜸이라기로, 어진 신하를 세상에까지 보내서 너를 잡아왔으니, 죽노라 한을 말어라. 너 죽은 후에라도 목비(木碑)라도 해 세울 것이고, 네 육신은 안장하여, 정조, 한식, 단오, 추석 제사를 착실히 지내 줄 것이니 조끔도 죽는 거 한을 말고, 헐 말이 있걸랑은 말이나 허고 그냥 죽어라." 토끼란 놈 그제야 인자 죽을 듸 들어온 줄 알았구나. "어뿔까(아뿔싸), 이거 큰일났구나." 눈을 깜작깜작하더니, 한 꾀를 얼른 생각하여 배를 훨씬 내밀며, "자, 내 배 따 보시오." 용왕이 의심이 나지. "저놈이 배를 아니 때일라고 방색(防塞 : 남의 청을 완강하게 거절함)을 할 터인듸, 배를 의심없이 내민 것이 필유곡절(必有曲折 : 반드시 까닭이 있다는 뜻)이라. 무슨 연유인고 말이나 허고 죽어라.", "말할 것도 없고, 소퇴의 배만 쇂 따보시오.", "어따, 이놈아, 말을 해라.", "말하여도 곧이 듣지 안 헐 테니 어서 따 보란 말이요.", "어따, 이놈아, 어서 말을 허여라."
(중략)
토끼가 당돌히 여짜오되, "소퇴(소토의. 토끼의 의인화하여, 스스로를 낮추는 말인 '소인' 대신으로 소토라는 말을 씀)의 간인즉 월륜(月輪 : 달) 정기로 삼겼삽기로, 보름이면 간을 내고 그믐이면 간을 들이내다. 세상의 병객(아픈 사람)들이 소퇴곧 얼른하면 간을 달라고들 보채기로, 간을 내여 파촛잎에다 꼭꼭 짜서 칡노(칡덩굴, 칡노끈)로 칭칭 동여, 영주(瀛洲 : 중국 전설에 나오는 삼신산의 하나.) 석상(石上 : 바위 위에) 계수나무 늘어진 상상(上上)개비[ '상상가지'의 방언으로 늘어진 맨 윗가지]으 끝끝어리(끝머리의 방언)으다 달아매 놓고, 도화 유수 옥계변으 탁족(濯足 : 발을 씻으러)하러 내려왔다가 우연히 주부를 만나 수궁 흥미가 좋다고 허기로 완경차(玩景次 : 구경하러)로 왔나니다." 용왕이 꾸짖어 왈, "이놈, 네 말이 당찮은 말이로다. 사람이나 짐생이나 일신지내장은 다를 바가 없는듸, 출입지 못하는 간을 어찌 내고 들이고 임의로 출입헌단 말이냐?"
(중략)
"대왕이 지기일(知其一)이요 미지기이(未知其二)로소이다[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사물을 두루 보지 못하고 융통성 없이 한 면만을 봄]. 복희씨(伏羲氏)난 어이하여 사신인수(蛇身人首)가 되뒶으며, 신농씨(神農氏) 어짠 일로 인신우수(人身牛首)가 되었으며, 대왕은 어이하여 꼬리가 저리 지드란허고(길고), 소퇴난 무삼 일로 꼬리가 요리 묘똑하옵고, 대왕의 몸뚱이는 비늘이 번쩍번쩍허고, 소퇴의 몸뚱이난 털이 요리 송살송살. 가마구로 일러도 오전 까마구 쓸개 있고, 오후 까마구 쓸개 없사오니, 인생 만물 비금주수(飛禽走獸 : 날짐승과 길짐승)가 한가지라고 뻑뻑 우기니 답답지 아니허오리까?"
<이해와 감상>
판소리계 작품은 서민들의 삶의 고통을 해학과 신랄한 풍자로 속시원하게 드러냄으로써 서민층의 현실주의적 태도를 반영한다. 서민층에 해당하는 토끼의 신분상승에 대한 욕망으로 죽음 직전까지 가게 되고, 토끼의 현실주의적 행위를 통해 별주부의 충의 사상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망상이며, 현실 권력이 얼마나 무능한가를 보여 주고 있다.
<이해와 감상1>
수궁가는 구토지설을 토대로 하여 인간 사회를 풍자할 수 있는 내용을 보태어 만든 작품이다. 이 대목은 자라의 꾀에 넘어간 토끼가 수궁에 도착하고 용왕앞에 끌려온 장면으로 토기의 대화에서 나타나듯 벼슬길에의 헛된 욕망 때문에 죽을 고비에 처하게 된다. 이는 당대 서민들의 가장 절실한 소망이 표현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병든 용왕이 자기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서 남의 생명을 요구하게 되는 것은 권력에 의한 부당한 횡포이다.
또한 토끼는 벼슬길에의 헛된 욕망에 사로잡혔다가 죽을 고비에 이르러 지혜롭게 살아난다. 권력에의 힘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병든 권력의 횡포에 대한 경계가 이면적 주제로 잘 나타나 있으며, 당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가 나타나 있다. 또한 수궁가에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대립구조가 있으나 결국은 피지배층, 다시 말해서 서민층의 최후의 승리를 말하는 것으로 당대 서민들의 현실적 불만과 욕구, 비판이 해학과 풍자의 수법으로 표출된 것이다.
<심화 자료>
줄거리
용왕이 병이 나서 죽게 되자 용궁에서는 어전 회의가 열린다. 토끼의 간이 영약이라는 사실을 안 용왕은 이를 구해 오라고 하나 어느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 이 때 자라가 자청하여 육지에 가서 토끼를 잡아오겠다고 나선다. 육지에 간 자라는 어렵게 토끼를 유혹해서 용궁으로 데리고 오나, 토끼가 꾀를 내어 자신의 간은 볕에 말려 놓고 왔다고 거짓말을 하여 위기를 모면한다. 토끼는 육지로 돌아가고 낭패를 본 자라가 자살하려 할 때 도인이 나타나 자라에게 선약을 건네 준다.
판소리 및 판소리계 소설의 소설사적 위치
판소리계 소설은 대체로 판소리 사설이 독서물로 전화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판소리는 공연 예술로서 당대의 역사 속에서 성장하였다. 그런데 판소리가 기반으로 한 역사적 현실을 당시 역사적 주체로 성장하고 있던 평민들의 생활이었다. 판소리는 점차 양반들까지도 청중을 끌어들이게 되면서 상충 문화적 요소들도 갖게 되지만, 평민 중심적인 기본적 세계관은 바뀌지 않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지배하는 것은 서민층의 현실주의적 태도이다. 서민들의 삶의 고통을 해학과 신랄한 풍자로 속시원하게 드러내고 있다. 가령, '수궁가'의 경우, 토끼의 현실주의적 행위를 통해 별주부(자라)의 봉건적 충의사상(忠義思想)이 얼마나 허무한 망상인가와 현실권력의 무능함까지도 보여 죽 있고, '배비장 타령'에서는 양반인 배비장의 위선이 여지없이 공박당하고 있다. 이 밖에 양반 지배층에 대한 서민의 저항 의식을 표현하기도 했는데.'춘향전'에서 변학도에 대한 춘향의 반향이 그 한 예이다. 여기에서 조선 후기 서민 의식의 성장이 반영되어 있다.
'수궁가'의 주제 의식
작품의 주제는 중심 갈등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그 외의 주변적인 갈등 관계들에서도 파악된다. 수궁가에서는 토끼와 자라와의 갈등, 토끼와 용왕과의 갈등이 중심 갈등이다. 전자의 갈등 즉, 자라가 용왕에게 충성하기 위해서 토끼를 속이는 것에서는 표면적으로 충성심이 주제이지만, 그 속에 또 다른 주제가 감추어져 있다. 창자는 충성심을 강조하면서 현실의 권력의 무능함을 청자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것이다. 후자의 갈등에서도 이러한 이면적 주제가 내비친다. 용왕과 자라를 속이는 가운데, 위기에서 벗어나는 지혜와 허황된 욕망에 대한 경계가 그 표면적 주제이다. 이 작품은 영리한 토끼와 우둔한 자라를 대조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토끼가 계속 긍정적이고 자라는 계속 부정적으로만 표현되지는 않고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긍정과 부정을 오가는 관점의 다양함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 판소리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토끼가 용궁으로 잡혀가거나 용왕이 토끼를 다시 육지로 귀환시키는 것은 모두 명리(名利)를 추구하는 인간의 속물적 근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박봉술 창본 수궁가(水宮歌)
<아니리>
세재(歲在) 지정(至正) 갑신년(甲申年) 중하월(仲夏月)에 남해 광리왕(廣利王)이 영덕전(靈德殿) 새로 짓고, 복일(卜日) 낙성연(落成宴)에 대연을 배설(排設)하여 삼해 용왕을 청하니, 군신빈객(君臣賓客)이 천승만기(千乘萬騎)라. 귀중(貴重) 연(筵)에 궤좌( 坐)하고 격금고이명고(擊琴鼓而鳴鼓)로다. 삼일을 즐기더니, 남해 용왕이 해내(海內) 열풍(熱風)을 과(過)히 쏘여 우연 득병허니, 만무회춘지도(萬無回春之道)하고 난구명의(難求名醫) 지구(至久)라. 명의 얻을 길이 없어, 용왕이 영덕전 높은 집에 벗 없이 홀로 누워 탄식을 허는듸,
<진양>
탑상(榻牀)을 탕탕 뚜다리며 용왕이 운다. 용이 운다. "천무열풍(天無熱風) 좋은 시절, 해불양파(海不揚波) 태평헌듸, 용왕의 기구로되, 괴이한 병을 얻어 남해궁으가 누웠은들 어느 뉘랴 날 살릴거나? 의약 만세 신농씨(神農氏)와 화타(華 ), 편작(扁鵲) 노월(老越)이며, 그런 수단을 만났으면 나를 구완허련마는, 이제는 하릴없구나." 용궁이 진동허게 울음을 운다.
<아니리>
이렇닷이 설리 울 제, 어찌 천지가 무심하리요.
<엇몰이>
현운(玄雲) 흑운(黑雲)이 궁전을 뒤덮어, 폭풍세우(暴風細雨)가 사면으로 두르더니, 선의(仙衣) 도사가 학창의(鶴 衣) 떨쳐입고 궁중으 내려와 재배이진(再拜而進) 왈, "약수(弱水) 삼천리 해당화 구경과, 백운 요지연(瑤池宴)의 천년벽도(千年碧桃)를 얻으랴고 가옵다가 과약풍편(果若風便)으 듣사오니 대왕의 병세 만만 위중타기로 뵈옵고저 왔나니다."
<아니리>
용왕이 반기허사, "나의 병세는 한두 가지가 아니오라 어찌 살기를 바래리요마는, 원컨대 도사는 나의 황황(惶惶)한 병세 즉효지약(卽效之藥)을 가르쳐 주소서." 도사가 두 팔을 걷고 용왕의 몸을 두루두루 만지더니, 뒤로 물러앉어서 병 집증(執症)을 허것다.
<중몰이>
"대왕님의 중한 형체, 인생(人生)과는 다른지라, 양각(兩角)이 쟁영( 嶸)하여 말소리 뿔로 듣고, 텍(턱) 밑에 한 비늘이 거실러(거슬러) 붙었기로, 분을 내면 일어나고, 입 속의 여의주는 조화를 부리오니, 조화를 부리재면 하늘에도 올라가고, 몸이 적자 하거드면 못 속에도 잠겨 있고, 용맹을 부리자면 태산을 부수며 대해를 뒤집으니, 이 형체 이 정상으 병환이 나겼으니(나셨으니), 인간으로 말허자면,
<잦은몰이>
간맥(幹脈)이 경동(驚動)하여 복중(腹中)으서 난 병이요, 마음이 슬프고 두 눈이 어둡기는 간경(肝經) 음화(陰火)로 난 병이니, 약으로 논지허면, 주사(朱砂), 영사(靈砂), 구사(狗砂), 웅담(熊膽), 창출(蒼朮), 백출(白朮), 소엽(蘇葉), 방풍(防風), 육계(肉桂), 단자[丹砂], 차전(車前), 전실[蓮實], 시호(柴胡), 전호(前胡), 목통(木通), 인삼(人蔘), 가미육군자탕(加味六君子湯), 청서육가탕[淸暑六和湯], 이원익기탕(二元益氣湯), 오가탕(五加湯), 사물탕(四物湯), 신농씨 백초약을 갖가지로 다 써도 효험 보지를 못하리다. 침으로 논지허면, 소상(少商), 어제(魚際), 태연(太淵), 경거(經渠), 내관(內關), 간사(間使), 곡지(曲池), 견우(肩骨禹), 단중( 中), 구미(鳩尾), 중완(中脘)이며, 삼리(三里), 절골[京骨], 심총[神庭], 사혈(瀉血), 갖가지로 다 주어도 회춘(回春)허지 못하리다.
<아니리>
진세(塵世) 산간에 천년 퇴간[千年兎肝]이 아니며는, 염라대왕이 동성 삼촌이요, 강님 도령이 외사촌 남매간이라도, 신사이원(身死離遠), 누루 황, 새암 천, 돌아갈 귀 하겠소." 용왕이 이 말을 듣더니마는, "그 어찌 신농씨 백초약은 약이 아니 되옵고 자그마한 거 퇴간이 약이 된단 말이오?" 도사 가로되, "대왕은 진(辰)이요, 토끼는 묘(卯)라, 묘을손(卯乙巽)은 음목(陰木)이요, 간진술(艮辰戌)은 양퇴(陽土ㅣ)온데, 갑인진술(甲寅辰戌)은 대강수(大江水)요, 진간사산(辰艮巳山)은 원속목(元屬木)이라, 목극토(木克土)하얐으니 어찌 약이 아니 되오리까? 용왕이 이 말을 듣더니 탄식을 허는듸,
<진양>
왕 왈, "연(然)하다. 수연(雖然)이나, 창망(蒼茫)헌 진세간의 벽해만경(碧海萬頃) 밖으 백운이 구만리요, 여산(驪山) 송백(松栢) 울울창창 삼척(三尺) 고분(孤墳) 황제묘(皇帝墓)인데, 토끼라 허는 짐생은 해외 일월 밝은 세상 백운 청산 무정처로 시비 없이 다니는 짐생을 내가 어찌 구하더란 말이요? 죽기는 내가 쉽사와도 토끼는 구하지 못하겠으니 달리 약명을 일러 주고 가옵소서."
<아니리>
도사 가로되, "대왕의 성덕으로 어찌 충효지신이 없으리까?" 말을 마친 후에 인홀불견(因忽不見), 간 곳이 없것다. 공중을 향하여 무수히 사례한 후에, "수부(水府) 조정 만조백관(滿朝百官)을 일시에 들라." 영을 내려 노니, 우리 세상 같고 보면 일품 재상님네들이 모두 들어오실 터인듸, 수국이 되어 물고기떼들이 각기 벼슬 이름만 따가지고 모두 들어오는듸, 이런 가관이 없던가 보더라.
<잦은몰이>
승상(丞相)은 거북, 승지(承旨)는 도미, 판서(判書) 민어, 주서(注書) 오징어, 한림학사(翰林學士), 대사성(大司成) 도루목, 방첨사(蚌僉使) 조개, 해운공(蟹運公) 방게, 병사(兵使) 청어, 군수(郡守) 해구(海狗), 현감(縣監) 홍어, 주부장(部將) 조구(조기), 부별랑청 장대, 승대, 교리(校理), 수찬(修撰), 낙지, 고등어, 지평(持平), 장령(掌令), 청다리, 가오리, 금부(禁府) 나졸(邏卒), 좌우 순령수(巡令手), 고래, 준치, 해구, 모지리, 원참군( 參軍) 남생이, 별주부(鼈主簿) 자래, 모래모자(모래무지), 멸치, 준치, 갈치, 삼치, 미끈 배암장어, 좌수(座首) 자개사리, 가재, 깨고리까지 영을 듣고 어전에 입시(入侍)하여 대왕으게 절을 꾸벅꾸벅 허니,
<아니리>
병든 용왕이 이만 허고 보시더니마는, "어, 내가 이런 때는 용왕이 아니라, 팔월대목 장날 생선전의 도물주(都物主)가 되얐구나. 경들 중에 어느 신하가 세상에를 나가 토끼를 잡어다가 짐의 병을 구하리요?" 좌우 제신이 어두귀면지졸(魚頭鬼面之卒) 되야 면면상고(面面相顧)에 묵묵부답(默默不答)이었다.
<중몰이>
왕이 똘똘 탄식헌다. "남의 나라는 충신이 있어서, 할고사군(割股事君) 개자추(介子推)와 방초망신[ 楚亡身] 기신(紀臣)이는 죽을 임군을 살렸건마는, 우리나라도 능신(能臣)은 있건마는, 어느 뉘기랴서 날 살리리요." 정언(正言) 잉어가 여짜오되, "세상이라 허는 곳은 인심이 소박(疎薄)하와, 수국인갑(水國鱗甲)곧 얼른하면(언뜻하면) 잡기로만 위지[爲主]를 허니, 지혜 용맹이 없는 자는 보내지를 못허리다." "승상 거북이 그럼 어떠하뇨?" 정언 잉어가 여짜오되, "승상 거북은 기략이 널렀삽고(널르옵고), 복판이 모도 다 대모(玳瑁)인 고로, 세상으를 나가 오면 인간들이 잡어다가 복판 떨어, 대모 장도(粧刀), 밀이개 살착, 탕건 묘또기, 주일쌈지 끈까지 대모가 아니며는 헐 줄을 모르니 보내지를 못허리다." "아서라, 그래면 못 쓰겼구나. 방첨사 조개가 그럼 어떠하뇨?" "방첨사 조개는 철갑이 꿋꿋하여 방신제도[防身之道]는 좋사오나, 옛글에 이르기를, 관방휼지세(觀蚌鷸之勢)허고 좌수어인지공(坐收漁人之功)이라, 휼조라는 새가 있어 수루루 퍼얼펄 달려들어, 휼조는 조개 물고 조개는 휼조 물고 서로 놓지 아니허다 어부 손에 모도 다 잽히어 속절 없이 모도 죽을 것이니, 세상 보내지를 못허리다."
<아니리>
"아서라, 그러면 못쓰겠다. 수문장 미에기(메기)가 그럼 어떠하뇨?"
<잦은몰이>
정언이 여짜오되, "미에기는 장수구대(長鬚口大)하여 호풍신(好風神)허거니와, 아가리가 너머 커서 식량이 너른 고로, 청림 벽계 산천수, 요기감을 얻으랴고 이리저리 히댈(허둥댈) 적에, 사립 쓴 어옹들 사풍세우불수귀(斜風細雨不須歸)라. 입갑 뀌여서 물에다 풍덩, 감식(甘食)으로 덜컥 생켜, 인간의 이질(痢疾), 복질(腹疾), 설사, 배아피(복통) 얻은 듸 약으로 먹사오니, 보내지를 못하리다."
<아니리>
한참 이리 헐 적에, 해운공 방게란 놈이 열발을 쩍 벌리고 엉금엉금 기어 들어오며,
<중중몰이>
"신의 고향 세상이라, 신의 고향은 세상이라. 청림 벽계 산천수 가만히 장신(藏身)하여 천봉만학(千峰萬壑)을 바래봐, 산중퇴 월중퇴 안면 있사오니, 소신의 엄지발로 토끼놈의 가는 허리를 바드드드드 집어다가 대왕 전에 바치리다."
<아니리>
"아니, 그럼 너도 이놈, 그러면 신하란 말이냐?", "아, 물고기떼는 다 마찬가지지요.", "어라, 저놈 보기 싫다! 두 엄지발만 똑 떼여 내쫓아라!" 공론(公論)이 미결(未決)헐 적에,
<진양>
영덕전 뒤로 한 신하가 들어온다. 은목단족(隱目短足)이요 장경오훼(長頸烏喙)로다. 홍배 등에다 방패를 지고 앙금앙금 기어 들어와 국궁재배(鞠躬再拜)허며 상소를 올리거날,
<아니리>
떼어 보니 별주부 자래라. "네 충성은 지극허나, 세상에를 나가며는 인간의 진미가 되어 왕배탕(王背湯)으로 죽는다니, 그 아니 원통허냐?" 별주부 여짜오되, "소신은 수족이 너이오라, 강상에 둥실 높이 떠 망보기를 잘하와 인간의 봉폐(逢弊)는 없사오나, 해중지소생(海中之所生)으로 토끼 얼골을 모르오니, 화상(畵像) 하나만 그려 주시면 꼭 잡어다 바치겄습내다.", "아, 글랑 그리하여라.
<중중몰이>
화사자(畵師子) 불러라." 화공을 불러들여 토끼 화상을 그린다. 동정(洞庭) 유리(琉璃) 청홍연(靑紅硯), 금수추파(錦水秋波) 거북 연적(硯滴), 오징어로 먹 갈아 양두(兩頭) 화필을 덥벅 풀어 단청 채색을 두루 묻히어서 이리저리 그린다. 천하 명산 승지 강산 경개 보던 눈 그리고, 두견, 앵무, 지지 울 제 소리 듣던 귀 그리어, 봉래, 방장 운무 중의 내 잘 맡던 코 그리고, 난초, 지초, 왼갖 향초, 꽃 따먹던 입 그리어, 대한 엄동 설한풍의 방풍(防風)허던 털 그려, 만화방창(萬花方暢) 화림(花林) 중의 펄펄 뛰던 발 그려, 신농씨 상백초(嘗百草) 이슬 털던 꼬리라. 두 귀난 쫑곳, 두 눈 도리도리, 허리난 늘찐(늘씬), 꽁지난 묘똑, 좌편 청산이요, 우편은 녹수라. 녹수 청산의 헤굽은 장송(長松), 휘늘어진 양류(楊柳) 속, 들락날락 오락가락 앙그주춤 기난 김생, 화중퇴(畵中兎) 얼풋 그려, "아미산월(蛾眉山月)으 반륜퇴(半輪兎ㅣ) 이여서 더할소냐. 아나, 엿다, 별주부야, 네가 가지고 나가라."
<아니리>
별주부, 토끼 화상 받어 목덜미 속에 집어놓고 꽉 옴틀여 놓으니, 물 한점 들어갈 배 만무하지. 사은숙배(謝恩肅拜) 하직헌 후에 본댁으로 돌아올 적에, 그때에 주부 모친이 있는듸, 자래라도 수수천년이 되어서 삶아 놔도 먹지 못할 자래였다. 주부 세상에 간단 말을 듣고 울며불며 못 가게 만류를 허는듸,
<진양>
"여봐라, 주부야, 여봐라, 별주부야. 네가 세상을 간다 허니 무얼 허로 갈라느냐? 장탄식, 병이 든들 어느 뉘가 날 구하며, 이 몸이 죽어져서 오연(烏鳶)의 밥이 된들, 뉘랴 손뼉을 뚜다리며 후여쳐 날려 줄 이가 뉘 있더란 말이냐? 여봐라, 별주부야, 위방불입(危邦不入)을 가지 말어라."
<아니리>
별주부 여짜오되, "나라에 환후 계옵셔 약 구하러 가는 길이오니, 어머니, 너무 근심치 마옵소서.", "내 아들아, 기특허다. 충성이 지극허면 죽는 법이 없느니라. 그럼 수로 육로 이만리를 무사히 다녀오너라." 배별(拜別)하고 침실로 돌아올 적에, 그때에 주부 마누라가 있는듸, 이놈이 어디로 장가를 들었는고 허니 소상강으로 장가를 들었것다. 택호(宅號)를 부르며 나오는듸, "아이고 여보, 소상강 나리, 세상으를 간다 허니, 당상의 백발 모친 어찌 잊고 가랴시오?", "오냐, 네가 아이고 지고 운다마는, 내가 너를 못 잊고 가는 일이 하나 있다.", "아, 무슨 일을 그렇게 못잊고 가세요?", "다른 게 아니라, 재너머 남생이란 놈이 제 조에(주제에) 덧붙임 사촌간이라 하여 두고 볼곰볼곰 자주 돌아당기는 게 아마도 내 구망(久望)에 껄쩍지근혀. 그놈 몸에는 거 노랑내가 나고, 내 몸에는 고순내가 나니, 글로 징험(徵驗)해서 부대 조심허렷다잉."
(중략 - 별주부가 바라를 거쳐 지상에 당도하여, 온갖 짐승들이 모여서 나이자랑을 하는 광경을 본다. 마침 그 자리에 호랑이가 나타나는데 별주부가 이를 토끼로 잘못 알고 불렀다가 곤욕을 치른 끝에 겨우 호랑이를 따돌린다.)
<아니리> 그때에 별주부는 호랭이를 쫓아버리고 곰곰 생각을 허니, "내가 충성이 부족하여 산신님이 변화를 붙였나부다, 산신제나 좀 지내볼 밖으." 산신제를 지내는듸,
<진양>
계변(溪邊) 양류(楊柳) 늘어진 가지를 앞니로 아드득 꺾어 내여 진퇴[塵土]를 씰은(털어낸) 후에, 반석(盤石)으로 제판(祭板) 삼고, 낙엽으로 면지(面紙)를 깔고, 산과 목실 줏어다가 방위(方位) 갈라 차려 놓고, 천어(川魚) 잡어다 어동육서(魚東肉西)로 갈라 놓더니, 분향재배(焚香再拜)허며 독축(讀祝)을 헌다. '유세차(維歲次) 갑신(甲申) 유월 기우삭(朔) 십오일 기해(己亥), 남해 수궁 별주부 자래 감소고우(敢昭告于). 상천일월(上天日月) 명산 신령 전으 지성 발원(發願)하나니다. 용왕이 우연 득병하여 천의 도사으게 문의헌즉 천년 퇴간이 즉차(卽 ) 운(云)한 고(故)로, 원해(遠海) 만리(萬里)에 신고월섭(辛苦越涉)하여 내도차산하(來到此山下)에, 천년퇴 일수(一首)를 허급지지(許給之地) 복망축수(伏望祝手), 상사(常事) 상향(尙饗).
<아니리>
축문 읽고 한 곳을 바라보니,
<중중몰이>
건넌산 바위틈에 묘한 짐생이 앉었다. 두 귀난 쫑곳, 두 눈 도리도리, 허리난 늘찐, 꽁지난 묘똑, 좌편 청산(靑山)이요 우편은 녹수(綠水)라. 녹수 청산의 헤굽은 장송, 휘늘어진 양류 속, 들락날락, 오락가락, 앙그주춤 기는 김생 분명한 토끼라. 화상 보고 토끼 보니 산중퇴 월중퇴라. "저기 앉은 게 퇴생원 아니요?" 허고 불러 노니 토끼가 듣고서 깡짱 뛰며, "게 뉘가 날 찾나, 게 뉘기가 날 찾어? 기산(箕山) 영수(潁水) 소부(巢父) 허유(許由) 피서가자고 날 찾나? 수양산(首陽山) 백이(伯夷) 숙제(叔齊) 채미(採薇)허자고 날 찾나? 백화심처 일승주[百花深處一僧歸]라, 춘풍 석교(石橋) 화림 중의 성진(性眞) 화상(和尙)이 날 찾나? 도화유수(桃花流水) 무릉(武陵) 가자 거주속객[擧酒屬客]이 날 찾나? 완월장취(玩月長醉) 강남 태백(太白) 기경상천(騎鯨上天)허는 길에 함께 노자고 날 찾나. 거 누구 날 찾어, 거누구가 날 찾어. 차산중 운심처에 부지처 오신 손님, 게 뉘가 날 찾나? 건넌산 과부 토끼가 연분을 맺자고 날 찾나?" 요리로 깡짱, 저리로 깡짱, 호도독똑 깡짱 뛰고 놀다
<아니리>
후닥닥허다가 자래와 토끼가 서로 마주쳤것다. "아이고, 코야!", "아이고, 이마빡이야! 여보, 초면에 방정맞게 남의 이마는 이리 들이받다?", "당신 이마보다 복스럽게 생긴 내 코도 다쳤소.", "그러면 우리 피차 일반이니 통성명이나 헐끄라우?", "그럽시다. 대체 게서는 거 뉘랴 하옵시요?", "예, 나는 수국 전옥주부 공신 사대손 별주부 별나리라 하오." 토끼 듣고, "예, 나는 천상 월궁 으음양순사시[理陰陽順四時]허던 예부상서 월퇼(月兎일)러니, 독약주[搗藥酒] 취케 먹고 장생약(長生藥) 그릇 지여 적하중산(謫下中山)하여 머무른 제 오랠러니, 세상에서 나를 우주왈(宇宙曰) 퇴 선비라고 헙넨다." 자래가 토명을 어찌 반겨 들었던지 문자를 쓴다는 게 뒤집어 쓰것다요. "구황성활[久仰聲華]려니, 금일 상봉(相逢)은 하생견지만만[何相見之晩晩] 무고불칙[無故不測], 호로아들놈의 자식이로고." 토끼 듣고 "어, 그놈 뽄은 말질뽄[末質本]으로 생겼으되, 속에 글이 다뿍 든 놈이로고. 내가 이놈한틔 문자 한 마디라도 밀려서는, 나뿐 아니라 세상 문장들이 날로 하여금 해서 망신을 당할 테니, 내가 전일에 배운 문자를 이놈 앞에 한번 베풀어 볼 밖으. 여보, 별 주부, 내 문자통 궁글어 나가오.", "어디 나와 보시오.", "법은홍안[法眼弘眼]이요, 홍안백발(紅顔白髮)이요, 홍불감쟁[紅不敢藏]이요, 이불가독식(利不可獨食)이요, 맥전통로[陌前通路]요, 구행방통(九行旁通)이요, 오륙칠 두루송이요, 친사둔통가문[親査頓通家門]이요, 당구(堂狗) 삼년에 폐풍월(吠風月)이요, 우비독경(牛鼻讀經)이요, 어동육서(魚東肉西) 홍동백서(紅東白西)요, 명지위적[明其爲賊]은 전라 감영이요, 일구이언(一口二言)은 백부지자(百父之子)로고." 이놈의 문자를 뒤집어 썼다, 꺼꾸로 썼다, 이런 야단이 없지. 별 주부 듣고 함소왈(含笑曰), "대체 퇴선비 퇴선비 허더니마는 글도 문장이려니와, 풍신이 선풍도골(仙風道骨)이요그려. 저러한 귀골(貴骨)이 대체 세상에서 무엇을 허고 지내시는지? 어디 세상 경개나 좀 일러 보시오." 토끼 듣고 좋아라고, "내 팔자야 무쌍이지요.
<중몰이>
인적 없는 녹수청산(綠水靑山) 일모황혼(日暮黃昏) 잠이 들었다가, 월출동령(月出東嶺) 잠을 깨여, 값없난 산과 목실을 양식 삼어서 감식헐 제, 신여부운(身如浮雲) 일이 없어 명산 찾어 완경(玩景)헐 적에, 여산(廬山) 동남(東南) 오로봉(五老峰)과 진국명산(鎭國名山) 만장봉(萬丈峰) 기엄기엄 기어 올라 가만히 굽어보니, 화간접무(花間蝶舞)는 분분설(粉粉雪)이요 유상앵비(柳上鶯飛) 편편금(片片金)이라. 모란, 작약, 영산홍과 왜철쭉, 진달화는 여기저기 피였난듸, 등태산소천하(登泰山小天下)의 공부자 대관(大觀)인들 이여서 더하더란 말이냐? 밤이면 완월(玩月)허고 낮이 되면 유산(遊山)헐 제, 강산 풍경 홍미간(興味間)의 지상 신선이 나뿐이든가. 적송자(赤松子), 안기생(安期生)은 나의 제자 삼아 두고, 이따금 심심허면 종아리 때려가며, 글로 소일을 허나니다."
<아니리>
별주부 듣고 탄복하며, "대체 퇴선비 퇴선비 허더니마는, 얼굴이 남중일색(男中一色)이요, 발맵시가 단정한 오입쟁이라. 우리 수국에 들어가시면 훈련대장은 틀림없게 하겠으나, 미간에가 화망살기(禍亡煞氣)가 비쳐서 세상에 있다가는 죽을 지경을 여덟번이나 당하겄소.", "허허, 그 분이 거 초면에 방정맞은 말을 하는고?", "아니, 그대의 세계 팔란(八難) 내 이르께 한번 들어 보시요잉."
<잦은몰이>
"일개 한 퇴 그대 신세, 삼춘(三春) 구추(九秋) 다 지내고, 대한 엄동 설한풍 만학에 눈 쌓이고 천봉의 바람 칠 제, 화초 목실 바이(전혀) 없어 앵무 원앙이 끊쳤다. 어둑한 바우 틈, 발바닥 할짝할짝, 터진 듯이 앉은 모냥, 초운 편월의 무관수 초회왕의 원혼이요, 일월(日月) 고초(苦楚) 북해상 소호(蘇乎) 무호(武乎) 기생(其生)이로다. 벽도홍행(碧桃紅杏) 춘이월(春二月) 주린 구복(口腹)을 채우려고 이리저리 히댈 적에, 골골이 묻은 것은 목다래 엄착귀요, 봉봉이 섰난 것은 매 받은 응주(鷹主)라. 목다래 채거드면 결항치사(結項致死)가 대랑대랑, 제수(祭需) 괴기가 될 것이요. 몰이꾼, 사냥개, 반중송, 떡갈잎, 포기포기 뛰어갈 적에 토끼 놀래 호도독 호도독. '추월자 매 놓아라.' 해동청 보라매, 북두루미, 빼지, 공작이, 망월(望越) 도리당사 끈꾸리 비쳐갈 적에, 방울을 떨쳐 주먹을 박차고 펄펄 수루루 달려들어, 그대 귓전 양발로 당그랗게 추여들고, 고부레한 주둥이로 양미간 골치 대목을 그저 콱콱." "허허, 그 분이 그 방정맞은 소리 말래도. 그러기에 뉘가 거 있간듸, 산중등으로 돌지." "중등으로 닫난 토끼, 풀감투 푸삼 입고 방패 뀌미(꿰미)를 앞세워, 오는 토끼를 놓으랴, 상사밤을, 왜물(倭物) 조총(鳥銃), 월귀약, 덮사실, 반달 같은 방아쇠, 고초 같은 불을 연적(얹어), 한 눈 찡그리고 반만 일어서 괴약불 번쩍 지끈 탕, 토끼 때그르르르르르." "어따, 그분네가 그 방정맞인 소리 말래도 그리 점점 허는듸? 그러기에 뉘가 거 있간듸? 너른 들로 다니제." "들로 닫난 토끼, 초동(樵童) 목수(牧竪) 아 이놈들 몽둥이 들어메고 '들토끼 잡으러 가자', 없는 개 부르며 워리 두둑 쫓아갈 제, 그대 간장 생각허니 백등(白登) 칠일 곤곤(困困) 한태조(漢太祖) 간장이요, 적벽강(赤壁江) 전패(戰敗)하던 조맹덕 정신이라. 짜른(짧은) 꽁지 샅(사타구니)에다 찌고 적은 눈 부릅떠 죽기 망상 올라갈 제, 무슨 정(情)으로 유산, 무슨 정의 완월, 아까 안 기생, 적송자 종아리 때렸단 그런 거짓부렝이를 어느 뉘 앞에다가 헐라고? 에이 여보슈, 그런 소리 마슈."
<아니리>
가만히 토끼란 놈이 듣더니마는, "대체 주부, 상은 잘 보요. 내 팔자가 하기는 영락없이 그렇게 생기기는 생겼소. 그래면 어디 수궁 경개 얘기나 한번 해 보시오.", "에이, 또 수궁 경개 얘기허면 따라올라고?", "아니, 안 따라갈 테니 어디 얘기나 한번 해 보시오.", "수궁 경개 얘기하면 대번 당신 환장할 것이요. 우리 수국 장허지요. 천양지간의 해위최대(海爲最大)하고 인물지내에 신위최영(神爲最靈)이라. 무변대해에다가 천여 간 집을 짓고, 유리 기둥, 호박 주추, 주란화각(朱欄畵閣)이 반공(半空)에가 번듯 솟았난듸,
<진양>
우리 용왕 즉위허사 만족(萬族)이 귀시(貴示)헌듸 백년이 앙덕(仰德)이로구나. 왕모(王母) 금병(金甁) 천일주(千日酒)와 천빈옥반(千賓玉盤) 담은 안주, 불로초 불사약 취토록 먹은 후에, 일흥(逸興)이 도도허면 미색(美色), 세악(細樂), 갖은 풍악을 대홍선(大紅船)에다 가득하니 실고 요지(瑤池)로 돌아들 적에, 칠백리 군산(群山)은 물 속에가 그려 있고, 삼천 사장 해당화는 약수으 붉었구나. 해내 태평하여 월청명(月淸明) 추강(秋江) 상으 어적(漁笛) 소리로 화답허고, 경수(涇水), 위수(渭水), 낙수(洛水), 회수(淮水), 양진( 津), 포진(蒲津), 평야[彭 ], 소상(瀟湘), 혹거혹래(或去或來) 노닐 적으, 적벽강 소자첨(蘇子瞻) 채석강(采石江) 이태백이가 이런 흥미를 알았으면 세상으서 왜 있으리? 원컨대 퇴서방도 나를 따라서 수궁을 가면 훈련대장은 헐 것이고, 미색게악[美色之樂]을 맘대로 다리고 만세 동락을 허오리다."
<아니리>
토끼란 놈 듣더니, "대체 참 좋기는 좋은가부요. 꼭 그렇게만 될 테면 나 당신을 따라가겠소마는." "아, 되고 말고.", "아, 그러면 나 따라갈라요.", "그러면 우리 같이 갈끄라우?", "같이 내려갑시다.", "그럼 같이 갑시다."
<중몰이>
자래는 앞에서 앙금앙금, 토끼는 뒤에서 깡짱깡짱, 원로해변(遠路海邊)을 내려갈 제, 건넌산 바우틈에 여호란 놈이 나앉으며, "여봐라, 토끼야." "워야." "너 어디 가느냐?" "나 수궁 간다." "수국은 무엇 하로 가느냐?" "훈련대장 살러 간다." "어따, 자식 실없는 놈아, 자래놈의 말을 듣고 망망창해(茫茫滄海)를 가랴느냐? 옛일을 모르느냐? 삼려대부(三閭大夫) 굴원(屈原)이도 어복(魚腹) 중의 고혼(孤魂) 되고, 장사태부(長沙太傅) 가의(賈誼)도 양자강에가 빠져죽고, 요녀(堯女) 순처(舜妻) 아황(娥皇) 여영(女英), 창오산(蒼梧山) 저문 날으 순임금 따라오다 소상강에가 죽었으니, 가지 마라." "그래도 나는 수궁 가서 귀경만 하고 올란다." "어따, 내 말 또 듣거라. 고집하다 망신된 일 네 어이 모르느냐? 상(商) 주(紂)의 몹쓸 고집, 비간(比干)의 말을 아니 듣고 목야분사(牧野焚死)하여 있고, 진(秦)나라 시황(始皇) 고집, 부소(扶蘇)의 말을 아니 듣고 궁심소욕(窮心所欲) 십오년의 이세(二世) 망국(亡國)하여 있고, 한(漢)나라 한신(韓信)이도 괴철( 徹)의 말을 아니 듣고 삼족을 멸했으며, 칼 잘 쓰는 위인 형가(荊軻) 적수한풍[易水寒風] 슬픈 노래 장사일거(壯士一去) 제 못 왔고, 천추 원혼 초회왕도 진무관에 한번 가서 다시 오지 못했으니, 가지 마라. 녹록(碌碌)한 자네 몸을 말려 무엇허랴마는, 옛글으 이르기를 퇴사호비[兎死狐悲]라고 일렀으니, 너와 나와 이 산중에서 암혈(岩穴)이 길뜨리고 임천(林泉)으 같이 늙어, 통승상[通天上] 통지상국(通地上國), 일시 이별을 마잤더니 네가 저 지경이 웬일이냐? 가지 마라, 가지 마라. 수국인즉 위방이라, 위방불입(危邦不入)을 가지 말어라."
<아니리>
토끼 이 말 듣고 뒤로 발딱 자드라지며(나자빠지며), "우리 여호 사촌 아니었더라면 하마트면 죽을 뻔하였고! 여보, 별주부, 평안히 가시요. 나 안 갈라요." 깡짱깡짱 올라가니, 별주부 기가 맥혀, "네 이놈, 여호야. 네 사촌 수달피를 따라서 우리 수국에 들어왔기여, 타국 김생이라고 귀히 여겨서 호조판서 시켰더니, 호조돈 삼만냥을 못된 갑잡골이 하여 없애 버렸기로 어전 곤장 삼십도에 문외 출송하였더니, 네 말이 탄로 날까 싶어서 남조차 못 가게 심술을 부린단 말이냐, 이 때려죽일 놈아!" 토끼란 놈 듣고 깡짱 돌아서며, "대체 주부 말씀이 똑다 다 옳소. 저 놈의 심술이 꼭 그러하지요. 먹을 데는 지가 앞서서 가고, 재너머 김포수 목 잡고 앉은 데는 나를 저 놈이 꼭꼭 보냅넨다. 여보 별주부, 나랑 같이 갑시다. 그런데 가기는 가되, 만일 따라갔다가 수국 천 리 먼먼 길에 가서 일거 소식 끊어지면 그 아니 원통하요?" 별주부가 또 구변(口辯)을 한번 내는듸,
<중몰이>
"수궁 천리 머다 마소. 맹자(孟子)도 불원천리(不遠千里) 양혜왕(梁惠王)을 가 보았고, 위수 어부 강태공도 문왕따라 입주(入周)허고, 한개도창[漢旣渡倉] 촉도란(蜀道難)의 황면(黃面) 장군 한신이도 소하(蕭何)따라 한중(韓中) 가서 대장단 올랐으니, 원컨대 퇴서방도 나를 따라 수궁 가면 훈련대장을 헐 것이니 염려 말고 들어가세." "그러허면 내려가세." 벽해수변을 내려갈 제. "강상의 둥둥 떴난 배는 한가히 초강 어부 풍월 실고 가는 밴가? 소소 추풍 송안군의 울고 가는 저 기럭아. 거그 잠깐 머물렀다가 나의 한 말 들어라. 백운청산 노든 토끼가 벽해 용궁을 가더라고, 우리 벗님 앵무전의 그 말 한말 부디 전하여라." 잔소리허며 내려갈 적에, 그날사말고(그날이야말로) 풍세가 산란허여 물결이 워르르르르르르르 출렁 쇄, 뒤둥그러져 떠나간다.
<아니리>
토끼 보고 무서라고, "아이고, 나 저 물 무서 못 가겄다! 물 속에 들어가서 용왕 된대도 나 못 가겄다!" 도로 깡짱깡짱 올라가더니 따뜻한 양지 바른 곳에 앉어 그 잘생긴 낯을 반찬 대갱이 굽듯 뙤작뙤작허고 앉았것다. 별주부 기가 막혀, "예끼, 이 잡년의 자식, 벼슬허로 가자는데, 용당기 뒷줄 썩이듯 너무 잣샌 것 아니꼬와 못 보겄다! 올 테면 오고 말 테면 말어라, 이 녀석아! 네 몸 위해 가지, 날 위해 가느냐? 그러나 남아하처불상봉(男兒何處不相逢)이니 후일에 만나더래도 알은 체나 하고 지내자. 네 상오[相好]를 보면 인중(人中) 밑이 쩔은(짧은) 것이 단명객(短命客)이 분명하고, 안중(眼中)에 화망살이라, 내일 묘시말 진시초에 재너머 김포수, '무(戊)'자 '현(玄)'자 '금(金)'자 때, 온동 사슬 잘 가는 총으로 네놈의 북두자리 양 미간 골치 대목에다 들이대고 그저 꿍그르르르 쾅!" 토끼 듣고 깜짝 놀래, "아이고, 여보소, 쾅 소리는 빼 버리시오. 우리 삼대가 다 총으로 망했소. 수궁에 가면 총 없소?", "아, 수화(水火)가 상충(相衝)인데 무슨 총이 있단 말이요? 총이라 허는 것은 불이 일어나야 나가는듸, 아 물 속에서 무슨 총이 있단 말이요?", "대체 그렇겠소잉. 그럼 별주부, 좋은 수가 있소. 별주부가 먼저 물에를 들어가 시험을 해 봐 가지고 목물만 지면 따라갈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못 가겠소.", "아, 글랑 그러시요." 별주부가 물에 풍덩 들어서서 이리저리 둥덩둥덩 떠다니니, 토끼 보더니, "아, 그 물이 그거 보기보단 아주 실없구려. 나도 한번 들어가 볼 밖으. 여보, 별주부." 버드나무 가지를 앞니로 꽉 물고, "내 뒷발 들어가오.", "어서 들어오시오." 뒷발을 실기미(슬그머니) 물에다 담겄것다. 별주부라 하는 것은 물이서는 편전(片箭)살보다 더 빠른 짐생이라, 수루루루 달려들어 토끼 뒷발을 앞니로 꽉 물고 툭 채노니, 뚝 떨어져서 물 속으로 울룩울룩 들어가며, 토끼 기가 막혀, "아이고, 갑갑하여 나 못 살겄다! 별주부야, 날 좀 놔라!", "네 이놈아, 아구지(입) 벌리지 마라. 간물(짠물) 들어가면 간 녹는다, 이놈아. 인제 헐 수 없으니, 내 등에 업히어서 곳곳이 이르께 구경이나 착실히 해라. 헐 수 없다." 소상팔경(瀟湘八景)을 들어가는듸,
<진양>
이편을 가르키며 강남 지방이요, 저편은 고소성(姑蘇城)이라. 구름 밖에 솟은 것은 동정호 칠백리요, 하늘에 닿은 것은 시비의 한라산이라. 악양루(岳陽樓) 만정허고 파륜[巴陵], 군산(君山) 돌아드니 경개가 처처(處處) 그윽허구나. 소상야우(瀟湘夜雨) 달 밖은듸 창오모운(蒼梧暮雲), 황릉애원(黃陵哀怨), 무산낙조(巫山落照), 한산모종(寒山暮鐘), 평사낙안(平沙落雁), 원포귀범(遠浦歸帆) 팔경을 다 본 후에 양구로 돌아드니, 금계(金鷄) 소리가 쨍그렁 청 들리거늘, 토끼가 눈 들어 사면을 살펴보니 백옥 현판으 황금 대자로 새겼으되, '남해 영덕전 수정문'이라 뚜렷이 새겼거날,
<아니리>
토끼 보고 좋아라고, "과연 들어와 보니 좋기는 좋다. 네 귀에서 풍경이 웽기렁젱기렁 허고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라. 이런 좋은 경치에 풍월이나 한 수 읊어 볼까? 산중유객(山中遊客)이 도수궁(到水宮)허니 사해풍광(四海風光)이 입안중(入眼中)이라." 토끼 좋아라고, "여보, 별주부, 어서 들어가서 하관 말석이라도 참여나 시켜 주시오. 내 정승 하면 주부는 꼭 판서 시키지요.", "아, 글랑 그러시요만, 진세(塵世)나 수국(水國)이나 풍속이 달라 혹 '토끼 잡어들여라' 허는 청령(廳令)이 나더래도 부디 놀래지는 마시요잉. 세상 같으면 훈련대장 입시 들라는 분부니 가만히 여기 앉었시요. 내 안에 들어가서 남여(籃輿) 내보내리다.", "글랑 그러시요마는 법인즉 아주 거 패려(悖戾)하오. 내 훈련대장 되면 그 법은 꼭 뜯어고칠라요.", "그는 처분대로 하시요." 별주부가 들어가니 용왕이 방자사경[方在死境]이로구나. "진세에 나갔던 별주부 현신이요." 병든 용왕이 이만 허고 보시더니, "어, 수로 육로 이만 리를 무사히 다녀왔으며, 토끼를 어찌하였느냐?", "예이, 토끼를 산 채로 생검[生擒]하여 궐문 밖에 대령하였습니다.", "어허, 기특코 고마운 말이로구나. 그러면 토끼 잡어들여라.", "예이." 청령이 으근으근 나니 토끼 이 잡것 물색(物色) 모르고 좋아라고, "옳다, 인제 훈련대장 입시 들라나부다." 병부를 여다 찰까, 저다 찰까, 생방정을 떨고 있을 적에,
<잦은몰이>
좌우 나졸 분부 듣고 수달, 해구, 좌우 모지리, 둥글 일시 내달라 토끼를 에워쌀제, 진황 만리장성 싸듯, 산양(山陽) 싸움에 마초(馬超) 싸듯, 첩첩이 둘러싸고 토끼 들입대 잡는 모냥, 영문(營門) 출사(出使) 도적 잡듯 토끼 두 귀를 꽉 잡고, "이놈, 네가 토끼냐?" 토끼 기가 맥혀 벌렁벌렁 떨며, "나, 토끼 아니요." "그러면 네가 무엇이냐?" "개요." "개 같으면 더욱 좋다. 삼복달음에 너를 잡어 약개정도 좋거니와, 네 간을 내어 오계탕(烏鷄湯) 달여 먹고, 네 껍질 벗겨 내야 잘량 모와서 깔고 자면 어혈(瘀血), 내종(內腫), 혈담(血痰)에는 만병회춘 명약이라, 이 강아지를 말어가자(몰아가자)." "아이고, 내가 개도 아니란 말이요." "그러면 네가 무엇이냐?" "송아지요." "소 같으면 더욱 좋다. 도탄(塗炭)에 너를 잡아 두피(頭皮), 족 살찐 다리, 양, 회간, 처녑, 콩팥, 후박(厚薄)없이 노놔 먹고, 네 껍질은 벗겨 내야 북도 매고, 신도 짓고, 네 뿔 베여 활도 묶고, 네 속에 든 우황 값 중한 약이 되고, 똥오줌은 거름 허니 버릴 것 없나니라. 이 송아지를 말어 가자." "아이고, 내가 소도 아니란 말이요." "그러면 이제사 무엇이냐?" "가만 있으시요. 생각해 갖고 갈쳐 줄 테니 좀 노시요. 나 망아지 새끼요." "말 같으면 더욱 좋다. 선간목(先看目) 후간족(後看足), 요단항장(腰短項長) 천리마로다. 연인(燕人)도 오백금으로 네 뼈를 사갔으니, 너를 산 채로 말아다 대왕 전 바쳤으면 천금상을 아니 주랴. 들어라." 우우, 토끼를 결박하여, 빨그란 주장(朱杖)대로 쿡 찔러 들어메니, 토끼 하릴없이 대랑 대랑 대랑 달려가며, "어따, 이놈 별주부야." "워야." "나 탄 거 이름이 무엇인고?" "오, 그거 수국 남여라고 하는 것이다." "수국 남여는 본래 이러느냐?" "오냐, 그러느니라." "어따, 이 제기를 붙을 놈의 남여, 두번만 타거드면 옹두리뼈도 안 남겄구나!" 대랑 대랑 대랑 대랑 대랑 대랑 달려 갈 제, 영덕전 너른 마당에 동댕이쳐, "예이, 토끼 잡아들였소."
<아니리>
토끼를 그 영덕전 너른 마당에다가 서너너덧 바퀴를 동댕이쳐서 내궁글려 노니, 토끼란 놈이 눈을 깜작깜작, 좌우를 살펴보니 천택지신(川澤之臣)과 무수한 어병지졸(魚兵之卒)이 겹겹이 둘러쌌거늘, 진퇴유곡(進退維谷)이요, 용궁지하에 필사당퇴(必死當兎ㅣ)라, 토끼란 놈이 하릴없이 꼭 죽었지. 눈을 깜작깜작 뜨고 있을 적에, 용왕이 이만 허고 보더니마는, "어, 그놈 뱃속에 간 많이 들었겄다. 토끼 배 따고 어서 간 내어 소금 찍어 올려라." 분부를 했거든 썩 토끼 배 따고 간 내어 먹었으면 아무 폐단이 없었을 텐듸, 일이 그릇 되느라고, 타국 김생이라 귀히 여겨서 말을 한번 시켜 보것다. "토끼 너 듣거라. 내 우연히 득병하여 명의한틔 문의헌즉, 네 간이 으뜸이라기로, 어진 신하를 세상에까지 보내서 너를 잡아왔으니, 죽노라 한을 말어라. 너 죽은 후에라도 목비(木碑)라도 해 세울 것이고, 네 육신은 안장하여, 정조, 한식, 단오, 추석 제사를 착실히 지내 줄 것이니 조끔도 죽는 거 한을 말고, 헐 말이 있걸랑은 말이나 허고 그냥 죽어라." 토끼란 놈 그제야 인자 죽을 듸 들어온 줄 알았구나. "어뿔까(아뿔싸), 이거 큰일났구나." 눈을 깜작깜작하더니, 한 꾀를 얼른 생각하여 배를 훨씬 내밀며, "자, 내 배 따 보시오." 용왕이 의심이 나지. "저놈이 배를 아니 때일라고 방색(防塞)을 할 터인듸, 배를 의심없이 내민 것이 필유곡절(必有曲折)이라. 무슨 연유인고 말이나 허고 죽어라.", "말할 것도 없고, 소퇴의 배만 촥 따보시오.", "어따, 이놈아, 말을 해라.", "말하여도 곧이 듣지 안 헐 테니 어서 따 보란 말이요.", "어따, 이놈아, 어서 말을 허여라."
<중몰이>
"말을 허라니 허오리다, 말을 허라니 허오리다. 태산(泰山)이 붕퇴(崩頹)허고, 오성(五星)이 음음(陰陰)헌듸, 시일갈상(時日曷喪) 노래 소리 억조창생(億兆蒼生) 원망 중에, 탐학한 상 주임군 성현의 뱃속에가 칠 궁기가 있다 허고 비간(比干)의 배를 갈라 일곱 궁기(구멍)가 있더니까? 소퇴도 배를 갈라 간이 들었으면 좋거니와, 만일 간이 없고 보면 불쌍헌 퇴명만 끊사옵제, 눌다려 달라 허며 어찌 다시 구하리까? 당장으 배를 따 보옵소서." 용왕이 화를 내여, "이놈, 네 말이 간사헌 말이로다. 의서으 이르기를, 비수병즉구불능식(脾受病則口不能食)허고 담수병즉혈불능언[膽受病則舌不能言]허고 신수병즉이불능청(腎受病則耳不能聽)허고 간수병즉목불능시(肝受病則目不能視)라, 간이 없고야 눈을 들어서 만물을 보느냐?" 토끼가 당돌히 여짜오되, "소퇴의 간인즉 월륜(月輪) 정기로 삼겼삽기로, 보름이면 간을 내고 그믐이면 간을 들이내다. 세상의 병객들이 소퇴곧 얼른하면 간을 달라고들 보채기로, 간을 내여 파촛잎에다 꼭꼭 짜서 칡노(칡덩굴)로 칭칭 동여, 영주(瀛洲) 석상(石上) 계수나무 늘어진 상상(上上)개비으 끝끝어리으다 달아매 놓고, 도화 유수 옥계변으 탁족(濯足)하러 내려왔다가 우연히 주부를 만나 수궁 흥미가 좋다고 허기로 완경차(玩景次)로 왔나니다." 용왕이 꾸짖어 왈, "이놈, 네 말이 당찮은 말이로다. 사람이나 짐생이나 일신지내장은 다를 바가 없는듸, 출입지 못하는 간을 어찌 내고 들이고 임의로 출입헌단 말이냐?" 토끼가 히히히히 웃으면서, "대왕이 지기일(知其一)이요 미지기이(未知其二)로소이다. 복희씨(伏羲氏)난 어이하여 사신인수(蛇身人首)가 되얐으며, 신농씨(神農氏) 어짠 일로 인신우수(人身牛首)가 되었으며, 대왕은 어이하여 꼬리가 저리 지드란허고(길고), 소퇴난 무삼 일로 꼬리가 요리 묘똑하옵고, 대왕의 몸뚱이는 비늘이 번쩍번쩍허고, 소퇴의 몸뚱이난 털이 요리 송살송살. 가마구로 일러도 오전 까마구 쓸개 있고, 오후 까마구 쓸개 없사오니, 인생 만물 비금주수(飛禽走獸)가 한가지라고 뻑뻑 우기니 답답지 아니허오리까?" 용왕이 어이없어, "그러하면 네 간을 내고 들이고 허는 표가 있느냐?" "있습지요." "어디 보자." "자, 보시오." 빨그런 궁기가 서이 늘어 있거늘, "저 궁기가 모두 다 어쩐 내력이냐?" "예, 소퇴가 아뢰리다. 한 궁기로는 대변을 보고, 또 한 궁기로는 소변을 보고, 남은 궁기로는 간 내고 들이고 임의로 출입허나이다." "그러하면 어느 궁기로 넣고 어느 궁기로 내느냐?" "입으로 넣고 밑궁기로 내되, 만물시생(萬物始生)이 동방삼팔목(東方三八木), 남방이칠화(南方二七火), 서방사구금(西方四九金), 북방일륙수(北方一六水), 중앙오십토(中央五十土), 천지음양 사시(四時) 정기, 아침 안개, 저녁 이슬, 오색 광채를 응(凝)하여 입으로 넣고 밑궁기로 내오니 만병회춘으 으뜸약이라고 허나니다." 용왕이 어이없어, "그러하면 네 간 먹고 효험 본 이 뉘 있는고?" "있기를 이를 말씀이요? 위수 어부 강태공은 고기 낚으러 나왔다가, 우리 선조 간 씻을 적에 낚싯대 내버리고, 찼던 표자(瓢子)를 선뜻 끌러서 그 물 조끔 떠마시고, 궁팔십(窮八十) 단팔십[達八十]에 일백육십세를 살으시고, 우리 부친 현고(顯考)께서 요산요수(樂山樂水)를 하올 적에, 물에 빠져 죽게 될 적에, 동방삭(東方朔)이가 건져 주어 그 은혜를 갚노라고 간 쪼끔 주었더니 삼천 갑자(甲子)를 살았으니, 대왕의 성덕으로 영주 석상 달아놓은 간 보채 들여다 자셨으면 백발이 환흥[還黑], 낙치부생(落齒復生), 환골탈태(換骨奪胎), 연년익수(延年益壽), 만병회춘을 허오리다."
<아니리>
어떻게 이놈이 말을 잘해 놨던지 용왕이 벌렁 넘어갔던가 보더라. 제신들을 돌아보며, "이 일을 어찌 할꼬?" 제신들이 주왈(奏曰), "대체 간 유무는 알 수가 없습내다.", "어, 그러하면 토끼 해박(解縛)하라." 토끼를 해박하여 전상에 올려 앉히고, 용왕이 토끼를 도루는듸 이치에 꼭 닿게 도루것다. "토공 듣게, 내가 인제곧 잠시 허던 일은, 토공이 전장을 당하여 시석(矢石) 중에 가 들면 사생(死生)을 불피(不避)헐까 아니헐까 그 담기(膽氣) 보난 일이니, 부대 노여 생각지 말게잉." 토끼란 놈, 속으로 용왕 배 딸 마음이 있드되 겉으로는, "그럴 일이요, 고마운 말씀이요." 토끼를 위하여 술상을 들였는듸, 기린포(麒麟脯)로 안주 놓고, 앵무잔 유리병에 천일주 한잔을 졸졸 부어, 용왕이 주인지도래[主人之道理] 하노라고 먼저 몇 잔 먹고 토끼에게 술을 권해 논 것이, 토끼 이 잡것이 물색 모르고, 세상 술과 같은지 알고, 맛보느라고 이삽십잔, 먹어 보느라고 오륙십잔, 한 칠팔십잔을 먹어 논 것이 술이 까빡 취했던가 보더라. 용왕 자(字)를 제가 제 손수 하나 지어 가지고, "여보소, 용게미." 용왕 역시 술이 다뿍 취하여 토끼 자를 맞지어 부르것다. "아, 토게미, 무엇하랴나?", "아, 내가 전일 동의보감을 많이 보았으되 토끼 간 약 된다는 말은, 뱃속에 달린 간을 들이고 내고 한단 말은, 아차차차차차차, 춘치자명(春雉自鳴)이로고. 기왕 여까지 왔으니 수궁 풍류나 좀 듣고 갔으면 한이 없겠소.", "그란해도(그러지 않아도) 토공 위로헐라고 지금 수궁 풍류를 막 등대(等待)했습네." 뜻밖에 수궁 풍류가 낭자허는듸,
<엇몰이>
왕자 진(晋)의 봉피리, 곽처사 죽장고, 석연자 거문고, 장양(張良)의 옥퉁소, 혜강( 康)의 해금이며, 격타고(擊 鼓) 취용적(吹龍笛), 능파사(凌波詞), 보허사(步虛詞), 우의곡(羽衣曲), 채련곡(采蓮曲)을 곁들여서 노래허니 낭자헌 풍악 소리 수궁이 진동헌다. 토끼도 신명을 내여,
<아니리>
앞발을 묫 '산(山)'자 뽄으로 번쩍 치켜들고 놀아 보는듸, 팔 명창 선생님 중의 경기도 여주 사시던 염계달(廉季達) 씨 추천목으로 한번 노던가 보더라.
<중중몰이>
"앞내 버들은 초록장(草綠帳) 두리고, 뒷내 버들은 유록장(柳綠帳) 두리쳐, 한 가지는 찌여지고(찢어지고), 한 가지는 늘어져,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 흔들흔들 흔들흔들 춤을 출 제, 어머니는 동우(동이)를 이고, 아버지는 노구를 지고, 노고지리 지리 노고지리." 앞발을 번쩍 치켜들더니 촐랑 촐랑 촐랑 노는구나.
<아니리>
대장 범치(망둥이)란 놈이 토끼 뒤에 졸졸 따라다니다가 토끼 뱃속에서 올랑촐랑허는 소리를 딱 듣더니마는, 이놈이 여들없이, "어따, 토끼 뱃속에 간 들었다아." 해 논 것이, 토끼란 놈 깜짝 놀래 팍 주저앉아 술이 팍 깨어 버렸지. "에께, 이놈 보게. 야 이놈아, 빈 속에 술잔이나 들어가 노니 똥뗑이 쳐 농치는 소리가 올랑촐랑허는듸 그게 간 노는 소리냐, 이놈아?" 토끼가 말은 그렇게 했지마는 속으로는 질리던가 보더라. "군자는 가거이방(可去異邦)이요 견지이작[見知離 ]이라 하얐으니, 속인 김에 빼는 것이 제일 수다." 용왕전에 들어가서 여짜오되, "소퇴가 이리 놀기는 좋사오나, 대왕의 병세가 위중하오니, 먼점 나갔던 별주부를 안동하여(동반하여) 주시면 간을 속히 들여오겄습니다.", "어허, 기특코 고마운 말이로구나." 별주부를 불러들여, "네 토공을 모시고 세상에를 나가, 간을 주걸랑 그건 그저 빨리 가져 들어오너라." 분부를 해놓으니,
<중중몰이>
별주부가 울며 여짜오되, 별주부가 울며 여짜오되, "토끼란 놈 본시 간사하오. 뱃속에 달린 간 아니 내고 보내면 초목 금수라도 비소(誹笑)할 터이오. 맹획(孟獲)의 칠종칠금(七縱七擒)하던 제갈양(諸葛亮)의 재주 아닐질댄, 한번 놓아서 보낸 토끼를 어찌 다시 구하리까? 당장으 배를 따 보아 간이 들었으면 좋거니와, 만일 간이 없고 보면 소신의 구족을 망하여 주옵고, 소신을 능지처참(陵遲處斬)허드래도 여한(餘恨)이 없사오니 당장에 배를 따 보옵소서." 토끼란 놈 듣고 기가 맥혀, "이놈아 별주부야, 얘 이놈 별주부야. 너 날과 무슨 혐오 있나. 하(夏) 걸(桀)이 학정(虐政)으로 용방[龍逢]을 살해하고 미구(未久)에 망국이 되었기로, 너도 이놈, 내 배를 갈라 간이 들었으면 좋거니와, 만일 간이 없고 보면, 불쌍한 내것 목숨 너의 나라 원귀되야, 너의 용왕 백년 살듸(살 것을) 하로도 못살 터이고, 너희 수국 만조 백관을 한날 한시에 모도 다 몰살시키리라. 아나, 엿다, 배 갈라라. 아나, 엿다, 배 갈라라. 아아 아나, 엿다, 배 갈러라, 아나, 엿다, 배 갈러라. 똥 밖에는 든 것 없다. 내 배를 갈라 네 보아라."
<아니리>
어떻게 이놈이 말을 잘 해 놨던지 용왕이 돌려서(속아서) 제신을 가만히 보더니마는, "네 이놈들, 다시 토공을 해치는 자가 있으면 어망(漁網)살 앞으로 이놈들 정배(定配)를 보내리라!" 분부를 해놓으니 별주부 기가 맥혀, "놈, 용케 잘 살아간다. 네 이놈, 살아가기는 살아간다마는 양심은 있을 것이야잉. 헐 수 없다. 내 등에 업히어라." 사은숙배(謝恩肅拜) 하직헌 후에 수정문 밖 썩 나서서 다시 세상에를 나오는듸,
<진양>
가자 가자, 어서 가자. 이수를 지내여 백로주를 어서 가자. 삼산을 바라보니 청천외으가 멀어 있고, 일락장사추색원(日落長沙秋色遠)허니 부지하처조상군(不知何處弔湘君)고. 한 곳을 바라보니 한 군자 서 있으되, 푸른 옷 입고 검은 관을 쓰고 문왈, "토공이 하이직차[何以至此]오?" 토끼 듣고 대답허되, "회족청산(回足靑山)허니 관불과제관(觀不過諸觀)이요, 탁족무림(濁足無臨)허니 태불과봉황(殆不過鳳凰)이요, 소무지식(素無知識)허고 유매평생(流魅平生)이라." 그 군자를 하직허고 또 한 곳을 당도허니, 오호 창파(滄波) 연월(煙月) 속의 돛대 치는 저 사공은 월(越) 범여(范 ) 아니련가. 하묘장강공자류[檻外長江空自流]는 등왕각( 王閣)이 여그로구나.
<중중몰이>
아서라, 다 바려. 백마주 바삐 지내여 적벽강을 당도. 소자첨(蘇子瞻) 범주유(泛舟遊) 동해 상달 떠온다. 두우(斗牛)간으 배회하여 백로횡강(白露橫江)을 함께 가. 소지노화월일선(笑指蘆花月溢船) 추강 어부가 무인배. 기경선자(騎鯨仙子) 간 연후 공추월지단단(空秋月之團團). 자래 등에다 저 달을 실고 우리 고향을 어서 가. 환산농명월(還山弄明月) 원해근산(遠海近山) 좋을시고. 토끼란 놈이 좋아라 깡짱 뛰어 내려서더니, 이리 궁글고 저리 궁글 이리저리 넘놀 제, "얼씨구나 살았네."
<아니리>
이놈이 해변가를 썩 당도하여 산천으로 쭉 기어 올라가니, 별주부 기가 막혀, "아, 여보시오, 토공. 아 죽겄다 살겄다 업어다 놓으니까 그렇게 모르는 체하고 가신단 말이요? 간이나 좀 갖고 오시오." 가던 토끼가 실쩍 돌아다보더니 욕을 냅더 퍼붓는듸 꼭 이렇게 퍼붓던가 보더라.
<중몰이>
"제기를 붙고 발기를 갈 녀석. 뱃속에 달린 간을 어찌 내고 들인단 말이냐? 미련하더라, 미련하더라, 너의 용왕이 미련터라. 너그 용왕 실없기 날 같고, 내 미련키 너그 용왕 같거드면 영락없이 죽을 것을, 내 밑궁기 서이 아니드면 내 목숨이 어이 살아가랴? 병든 용왕을 살리랴 허고 성한 토끼 내가 죽을소냐. 내 돌아간다, 내가 돌아간다. 백운청산으로 내 돌아간다.
<아니리>
네 이놈. 네 소탕머리(소갈머리)를 이놈 생각하면, 네 복판을 저 내민 돌팍(돌멩이) 위에다 올려 놓고, 우루루루루 쫓아가서 콱 밟어 가지고 옹그짐 뿌시러진(부스러지는) 소리가 나게 해서 보낼 일이로되, 네가 나를 업고 수국 만리 먼먼 길에까지 들어갔다 나온 공을 생각해서 살려는 보내지마는, 네 이놈, 차후에는 그런 보초없는 버릇은 놔라잉. 하마트면 내가 너 때문에 수국에 가서 오살(誤殺)할 뻔 당했다, 이녀르 자슥아. 그러나 내가 수국에 가서 잠깐 근경(近景)을 보니, 네가 용왕한테 충성이 지극허던구나. 내가 약을 한 가지 일러 줄 터이니 갖고 이대로 해라잉. 너그 수국에 암자래 많더구나, 요놈. 하루 일천오백 마리씩 석달 열흘만 댈여 멕이고, 복쟁이 가루를 천석(千石)을 만들어서 오대대[梧子大]를 크게 지어라. 지어 가지고, 용왕 입에다 전지를 딱 들이대고, 안 먹을라고 해도 어쨌든지 다 멕여라. 그러면 죽든지 살든지 판단(결판)이 나 버릴 것이다. 네 이놈, 속 채리고 어서 들어가. 나도 갈 데로 가니까 어서 가란 말이야." 별 주부 곰곰 생각을 해 보니 저놈한틔 속절없이 돌렸구나. 하릴없어 수궁으로 들어가 버리고. 그때에 토끼란 놈은 살어왔단대서 금잔디 밭에 가 대그르르르 궁글며 귀를 털고 생방정을 떨고 한번 놀아 보는듸,
<중중몰이>
"관대장자(寬大長者) 한(漢)고조(高祖) 국량(局量) 많기가 날만허며, 운주결승(運籌決勝) 장자방(張子房)이 의사(意思) 많기가 날만, 신출귀몰(神出鬼沒) 제갈양(諸葛亮) 조화 많기 날만, 무릉도원(武陵桃源) 신선(神仙)이라도 한가허기가 날만? 예 듣던 청산 두견, 자주 운다 저 새소리. 타향 수국에 갔던 벗님이 고국 산천을 돌아오니 어찌 이리도 반갑냐." 예 먹던 머루 다래를 오도독 오도독 깨물면서, 요리로 깡짱 저리로 깡짱, 깡짱 깡짱 뛰고 논다.
<아니리>
산짐생 잡을라고 그물 쳐 논데 가서 이놈이 요리 뛰고 조리 뛰다가 탁 뒷발이 걸렸던가 보더라. "아이고, 나 또 죽네. 아이고, 내가 차라리 수국에서 죽었더라면 목비(木碑)라도 세워 주고, 정조, 한식, 단오, 추석, 제사나 착실히 받아먹을 것을, 이제는 속절없이 내가 죽는구나." 대롱대롱 허고 있을 적에, 뜻밖에 어디서 쉬파리떼가 앵 하고 날아오지. "아이고, 쉬 낭청(郎廳) 사촌들 어디 갔다 오시오?", "오, 너 옳게 걸렸구나. 너 이놈 뻣뻣이 그냥 죽어라.", "내가 이렇게 걸려서 살아날 길이 없소. 허니 내 몸에다 쉬나 좀 다뿍 쓸어 주시오. 그러면 나 꼭 살아날 꾀가 하나 있소마는.", "어라, 이놈, 네가 아무리 꾀가 많다고는 허지마는 사람의 손 하나를 이놈 당헐소냐?", "아이고, 대체 사람의 손이라는 게 어떻게 생긴 것이요?", "사람의 손 내력을 일러 줄 터이니 들어 봐라잉.
<잦은몰이>
사람의 내력을 들어라. 사람의 손 내력을 들어라. 사람의 손이라 허는 게 엎어 노면 하날이요 됫세놓으면 땅인듸, 요리저리 금이 있기는 일월 다니는 길이요, 엄지 장가락이 두 마디기는 천지인(天地人) 삼재요, 젓가락이 장가락만 못하기는 정월, 이월, 삼월, 장가락이 그 중의 길기는 사월, 오월, 유월이요, 무명지가락이 장가락만 못하기는 칠월, 팔월, 구월이요, 소지(小指)가 저룹고(짧고) 저룹기는 시월, 동지, 섣달인듸, 자오묘유(子午卯酉)가 여그 있고, 건감간진손이곤태(乾坎艮震巽離坤兌), 선천팔괘(先天八卦)가 여그 있고, 불도(佛道)로 두고 일러도 감중연(坎中連) 간상연(艮上連) 여그 있고, 육도기문(六道記文)이, 대장경(大藏經), 천지가 모도 일장(一掌) 중이니, 네 아무리 꾀를 낸들 사람의 손 하나 못당허리라. 두 말 말고 네 죽어라.
<아니리>
너는 글쎄 죽는 것이 순께(쉬우니까) 그저 죽어라." 토끼 듣고, "여보시오, 죽고 살기는 내 꾀가 가 매였으니, 있는 쉬니 애끼지 말고 좀 제발 씰어 주시오.", "글랑 그리해라." 수백 마리가 달려들어서 토끼털 속에다 빈틈 하나 없이 쉬를 다뿍 씰어 놨던가 보더라. 토끼란 놈 무죄간에 쉬 한짐 다뿍 짊어지고, 죽은 듯기(듯이) 눈만 깜작 깜작 뜨고 있을 적에, 그때에 저 아래서 목동 초군들이 지게 갈퀴를 짊어지고, 웨나리를 부르며 심심산곡으로 나무를 하러 올라오는듸,
<중몰이>
"어이가리 너, 어이가리 너, 어이가리 넘자 너화로구나. 하나님이 사람을 낼 제 별로 후박(厚薄)이 없건마는, 우리놈의 팔자는 무슨 놈의 팔자간듸, 날 곧 새며는 지게 갈퀴를 짊어지고 심산궁곡(深山窮谷)이 웬일이냐. 여보아라, 친고(親故)들아, 너는 저 골을 베고 나는 이 골을 베어, 부러진 잡목 떨어진 낙엽을 긁고 베고 엄똥그려(몽똥그려) 힘껏대로 허여다가, 위부모보처자(爲父母保妻子)를 극진 공대허야 보세. 어이가리 넘자 너화로구나, 어이가리 너 너화로구나."
<아니리>
한참 이리 올라갈 제, 한 놈이 보더니 토끼가 걸렸거든. "아따, 저 토끼 걸렸다아. 맛 좋은 놈 걸렸다. 우리 고기도 먹고 잡던(싶던) 판에 저놈 만났으니 폭신 궈 먹고 올라가자." 한 놈이 지게를 벗어 놓고 깡충깡충 뛰어 들어가서 토기를 쑥 빼 들고 보니 쉬를 다뿍 씰어 놨거든. "이거요, 요새 날이 따땃하니, 걸린 지가 오래 됐네여. 쉬를 다뿍 씰어 놨으니 먹겄나여?" 한놈이 그 젙에 있다가, "야, 이 녀석아, 그럼 냄새나 맡아 봐서 썩었걸랑 내버려라. 아무리 우리가 고기는 먹고 잡지마는 썩은 고기 먹었다가 뱃병 나버리면 여러 놈 죽는다, 이 녀석아." 이놈이 냄새를 맡는듸, 토끼 대가리다 대고 냄새를 맡았으면 아무 폐단이 없이 궈 먹고 올라갈 일인듸, 일이 그릇 되느라고 하필 토끼 궁둥이에다가 코를 딱 대고 냄새를 맡았던가 보더라. 토끼 음흉헌 놈이 삼년 몽그려(모아) 놨던 도토리 방구를 스르르르 딱 뀌어 놓으니, 쉬이. "어따, 이 구렁이 썩는 내가 난다. 이 못 먹겄다. 이거 내버려 버리자." 휙 집어던져 논 것이, 토끼란 놈 죽을 배도 만무하고, 저 건너 가서 깡짱 뛰며 허는 말이, "야, 이놈들아, 내가 썩어야? 너의 눈구녕이 썩었다, 이 육시(戮屍)헐 놈들아. 아, 멀쩡한 토끼를 썩었다고 그려여. 기왕 이리 된 것이니 나 노는 귀경이나 좀 해라." 이 사람들이 어이없어서 우두커니 서서 보니, 거기서 이놈이 또 한번 노는듸 이런 가관이 없던가 보더라.
<중중몰이>
"얼씨고나 좋을시고, 지화자 좋다. 얼씨고 절씨고 자화자 좋구나, 얼씨구나 좋을시고. 사지(死地) 수궁 먼먼 길 살아나니 장관, 복희씨(伏羲氏) 맺힌 그물에 접접이 쌓였다가 살어 나니 장관, 사람의 손이 무섭다 헌들 나의 잔꾀를 당할소냐, 얼씨고나 좋을시고. 영산홍(映山紅)도 봄바람, 넘노나니 황봉(黃蜂) 백접(白蝶), 붉을 단(丹) 푸를 청(靑)은 산영강수(山影江水)를 그림하고, 나는 나비 우는 새는 춘광(春光) 춘흥(春興)을 자랑헌다." 그 산 광야 너른 곳에 금잔디 좌르르르 깔린 듸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촐랑촐랑 노는구나.
<아니리>
아, 이렇게 놀 적에, 어디서 위이 소리가 나더니마는, 저 공중에서 달구둥지리만헌 독수리가 내려와 토끼 대가리를 탁 찼것다. 토끼란 놈 슬쩍 돌아다보니 독수리거든. "아이고, 장군님, 어디서 이렇게 오시요?", "오, 나 공중에서 망견(望見)허구 있다가 시장허길래 너 잡어먹으러 온다.", "아이고 장군님, 그러면 맛진 꽁지서부터 자실랴오?", "아니, 맛진 대가리서부터서 발톱까지 하나도 안 남기고 다 먹어야 배 차게 생겼어, 이놈아." 토끼란 놈 곰곰 생각허더니 꾀 하나를 얼른 생각하여, "아이고, 장군님, 그러면 이왕 저를 자실라거든 내 설움타령이나 한번 들어 보고 자시시오.", "그래라마는 너무 많이 울면 살 내릴라. 이놈, 쪼끔만 울어라잉." 토끼란 놈이 설움타령을 한번 내서 청승을 떠는듸,
<중몰이>
"아이고, 아이고, 내 일이야.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내 신세야. 사지(死地) 수국(水國) 먼먼 길에 겨우 얻어내 온 보물을 무주공당(無主空堂)에다 더져 두고 임자가 없으니 어찌헐거나,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내 일이야."
<아니리>
독수리란 놈 가만히 듣더니, "네 이놈, 금방 죽는 놈이 무엇이 서러워서 그렇게 운단 말이냐?", "장군님 들어 보시시오. 내가 이번에 수국을 갔습더이다.", "그래서.", "수국 용왕이 나를 타국 김생이라고 귀히 여겨 의사 줌치를 하나 줍디다.", "그래서. 의사 줌치라는 것이 무엇이냐, 이놈아.", "글쎄 들어 보시요. 의사 줌치를 쫙 펴노면 구녁이 여럿이 뚫어졌어요. 한 궁기를 톡 튕기면서 병아리 새끼, 도야지 새끼, 강아지 새끼 나오너라 하면 일천오백 마리가 그저 꾸역꾸역 다 나오고, 또 한 궁기를 톡 튕기면서, 썩은 개 창사, 되야지 창사, 병아리 창사 나오너라 해놓으면 몇날 며칠이고 그저 꾸역꾸역 다 나오니, 그러한 보물을 무주공당에다 더져 두고 금방 탁족(濯足)하러 내려왔다가 장군님을 만나서 죽게 생겼으니 그 아니 서럽단 말이요?" 독수리란 놈 가만히 생각허더니, 그것이 다 제 밥이거든. "네 이놈, 토끼야. 내가 너를 살려줄 테니, 그 의사 줌치 그놈 날 도라.", "장군님 제 목숨만 살려 줄테면 드리고말고 해요?", "그러면 어디다 두었느냐?", "저 석산 돌틈에다 두었으니 나를 들고 그리 갑시다.", "그러자." 독수리란 놈이 토끼를 좋은 술병 들듯 발로 꽉 찍어갖고는 훨훨 날아가, "어디냐?", "여기 여, 돌틈에 들었소.", "그럼 내가 발로 찍어 내 올란다.", "아이고, 장군님. 세안에 먹을라고 저 짚이 두어서 장군님 발 안 달 것이요. 그러니 내 뒷발만 꽉 잡고, 놔 돌란 대로만 놔 주면 내가 앞발로 가서 찍어내 오리다.", "글랑 그리하여라." 독수리란 놈이 토끼 뒷발을 딱 잡았것다. "조금만 노시요.", "자,", "조금만 노시요.", "자.", "조금만 더 노시요.", "자.", "발에 알친알친하요. 조금만 더 노시요.", "어라, 이놈, 너머 과타." 그럭저럭 잡은 것이 토끼 뒷발톱을 딱 잡었는듸, "조금만 노시요.", "자.", "조금만 노시요.", "자.", "조금만 노시오, 노시오, 노시오." 탁 차고 들어가 버려서 저 굴 막둥 창시에 가 앉아 갖고, 한가한 체하고 시조(時調) 초장(初章)을 썩 내것다. "반나마 늙었으니 다시 젊지 못허리라." 독수리란 놈 기가 맥혀, "네 이놈, 토끼야. 아, 너 이놈아, 의사 줌치 안 가져나오고 뭣하고 있는고?" 토끼란 놈이 거기서 인자 보를 우르는듸, "너 이놈, 독술아. 내가 너한테 죽을 것을 말여, 너를 홀겨 가지고 이 굴문 앞에까지 온 것이 그것이 의사 줌치라는 것이다, 이 때려죽일 놈아." 독수리란 놈 기가 맥혀, "너 이놈, 내 발 심 알제잉. 발만 딜여 놓고 회저어 놓으면 어느 발톱에 걸려 나오든지 나올 것인께, 이놈.", "오냐, 이놈아, 발만 들여놓기만 들여 놔라. 다른 것도 못 잡아먹게 차돌로 탁탁 좃아서 없애 버릴 것이다." 독수리란 놈 기가 맥혀, "너 이놈, 네가 이놈 그럼 생전 그 굴 속에서 늙어 죽을 것이냐?", "오냐, 이놈아. 인자는 먹을 건 많이 장만해 놨것다, 뭐 나갈 듸도 별로 없고, 인자 손자나 봐 주고 자봉(自奉)허다가 인자 늙을란다." 독수리란 놈이 곰곰 생각을 해 보니 저놈 놀랜 품이 며칠 동안은 안 나오게 생겼거든.
<엇중몰이>
독수리 그제야 돌린 줄 알고 훨훨 날아가고, 그때에 별주부는 수궁으로 들어가서 대왕 병 즉차허고, 그때에 토끼는 그 산중에서 암혈이 늙다가 월궁으 올라가서 도야하고 지냈다니, 그 뒤야 뉘가 알리, 더질더질.
<이해와 감상>
토끼전은 긴 설명이 필요 없는 유명한 작품으로서, 우화적인 설정을 통해 인간과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자신의 안위를 돌보기 위해 토끼의 간을 빼어먹고자 하는 용왕은 부패하고 무능한 권력의 상징으로, 그에 맞서 꾀로 위험을 벗어나는 토끼는 스스로 살길을 찾아나서는 일반 민중의 표상으로 읽어볼 수 있으나, 그 의미맥락이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 작가나 독자는 토끼에 대하여 일정한 희극적 거리를 두고 있는바, 권력의 문제를 떠나 속고 속이는 세상살이의 세태를 투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도 있다.
(출처 자료 : 토끼전은 소설본과 판소리 창본이 있는데, 아래 자료는 명창 박봉술의 창본에 해당한다. 서대석 편, 구비문학, 해냄출판사, 1997에 주석과 함께 자료가 실려 있다.)
*'희망의 문학'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