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을 총으로 쏴서 죽이다니…… 정말 이 나라는 끝장난 것인가. 문자 그대로 파란만장하게 평생을 바쳐 이국땅에서 조국 독립투쟁을 하다가 명색이 해방된 땅에서 4년을 다 못 살고 총을 맞아 죽어야 하다니……. 그분을 미워하고 적개심을 품은 놈들은 뻔하지 않은가. 첫째가 이승만이었고, 둘째가 한민당을 위시한 친일반역집단이었다. 그분은 줄기차게 단정수립을 반대하고 선거를 거부함으로써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자주독립국가 건설을 향한 민족 자주성의 확립을 위해 민족반역자들의 일소를 변함없이 역설했던 것이다. 결국 두 세력 중 어느 하나가 그분의 가슴에 총을 쏴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두 세력이 손을 맞잡은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결국 뿌리는 하나고 가지는 두 개로 뻗었을 뿐인 한 나무에 불과하니까. 이건 속단이 아니다, 경솔도 아니다. 대낮데, 군인이, 경교장까지 들어가서, 총질을 해댔는데 더 뭘 볼 것이 있는가. 그 무모하리만큼 대담한 수법은 반민특위를 습격한 수법이나 뭐가 다른가. 정말 이 나라는 끝장이 난 것인가……. 몽양을 죽이고, 그분마저 죽이다니……. 이 무법천지가 앞으로 어떻게 돼갈 것인가.
백범, 그분은 마지막 남은 민족의 영도자가 아니었는가. 민족 앞에 선 그분의 진실과 양심이 해방 4년 동안에 걸쳐 대쪽 같은 의지로 성취하려 했던 일이 무엇이었는가. 통일자주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여 첫째 외세배격, 둘째 민족통일, 셋째 민주실천이 아니었던가. 그 실현을 위하여 그분은 미․소가 점령한 현실상황에 정면으로 맞서 제2의 독립투쟁을 결연히 선언하면서, 지금은 권력쟁취의 시기가 아니라 진정한 독립쟁취의 시기이므로 모두 사심을 버리고 하나로 뭉쳐야 할 때라고 역설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반탁을 했고, 단정수립을 반대했으며, 좌익을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통일을 이룩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남북협상의 험로에 나섰고, 끝끝내 단정선거를 거부하여 권력의 길을 외면함으로써 스스로의 진정성을 증명해 보였다.
그분의 그러한 언행일치는 날이 갈수록 적을 많이 만들게 되었다. 상해임시정부가 결성될 때 문 파수 노릇을 자청하던 그분이 주석의 자리에 앉아서도, 조국이 독립만 된다면 정부 청사의 수위나 청소부 노릇을 해도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한 일념의 실천 앞에 모략중상 또한 얼마나 많았던가. 무자비한 테러리스트, 배운 것 없는 무식쟁이, 임정을 등에 업은 권위주의자, 자기의 생각밖에 모르는 고집불통, 그리고 납북협상을 시작하게 되자 급기야 공산주의와 야합하는 민족반역자․기회주의자라는 모략중상을 한민당 쪽에서는 서슴지 않았다. 이승만처럼 자기네들과 야합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자행한 그런 모략중상은 그 얼마나 치졸하고 저열한 것이었는가. 공산주의나 그 추종자들은 민족과 국가를 소련에 팔아넘기려는 집단이라는 황당하고 유치한 주장을 앞세우며 친일반역자들은 스스로를 민족진영이라 자처하는 또 한 번의 반민족행위를 저지르면서 진정한 민족주의자 백범을 반대쪽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두 강대국의 점령과 함께 두 이데올로기가 대립하는 상황 아래서 누가 가장 바람직한 민족의 지도자였을까. 사회주의 혁명을 앞세운 극좌의 박헌영이었는가, 권력장악만을 앞세운 극우의 이승만이었는가, 좌우합작을 앞세운 중도적 여운형이었는가, 민족자주를 앞세운 포용적 김구였는가. 두 강대국이 양보 없는 대립을 하는 한 극좌나 극우의 노선은 필연적으로 민족분열을 초래하게 되어 있었다. 이데올로기에 의한 민족의 분열, 그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어리석임이고 비극 아닌가. 그럼 여운형과 김구가 남는다. 그 두 사람이 한때 뜻을 같이 하려고 접근했던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민족의 분열을 막아 외세에 대처하고, 그 다음 단계로 사회혁명을 시도하여 민족정권을 세우려 했던 그들의 구상은 진정 바람직한 것이었다. 그러나, 몽양이 먼저 총을 맞고 떠나갔고, 이제 백범마저 총을 맞고 떠나가게 되었다. 두 민족주의자는 차례로 제거되고 극우와 극좌만 남겨진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제국주의의 패권주의와 소련이 주도하는 공산주의의 팽창주의가 대결하는 틈바구니에서 두 민족주의자가 그렇게 죽어가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고, 피할 수 없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해방 이후 좌익과 우익이 극한으로 대립하고 남과 북에서 한민족이 이데올리기 싸움을 하는 상황에서 좌익과 우익을 통합하려는 시도를 한 여운형과 민족주의를 내세운 김구는 모두 암살당하고 맙니다. 그리고, 확실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의 암살의 배후에 이승만이 있다는 의심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