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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박재릉(朴栽陵)의 시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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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시에서 인간의 사후(死後) 세계 속으로 들어가서 그것을 생생한 현실로 보여주는 박재릉의 시는 무속시(귀신시)로서 독보적 위치에 있다. 그는 이성(理性)을 넘어선 무당(巫堂)의 의식(意識)으로 귀(鬼)의 세계를 포착하고 있으며 그것을 동영상화(動映像化) 하고 있다. 현대시에서 이러한 무의식(巫意識)의 표출은 이른바 무의식(無意識)에서 생긴 이미지를 그대로 받아쓰는 초현실주의 시의 기법인 오토마티즘(automatism 자동기술법)과 결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따라서 박재릉의 무속시(귀신시)는 인간의 무의식(無意識)속에 잠재된 원천적인 욕망(慾望)으로부터 나온 포에지(poesy)라는 것과 우리민족의 토속적인 샤머니즘(shamanism) 세계의 시적형상화란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이런 관점에서 시집『가야의 혼』(2011, 2 시문학사)으로 2012년 제 13회 <청마문학상 본상> 수상자로 선정된 박재릉 시인의 시세계를 특집으로 조명(照明)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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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선정한 대표시 7편
지금 잠들면
지금 잠들면 무서워.
지금 꿈 속은 평원동 근철거야.
댕기 딴 시악시들이 불켜고 나올 거야.
아직 안 간, 머언 오매가 머리풀고 웃고 있구나.
오매한테 붙은 그 놈이
이젠 오매한테서 뜨려고 해.
지금 잠들면 무서워.
지금 잠들면 평원동은
온통 음산한 달빛일거야.
뜨락에 선 대추나무 하나가
넌지시 이켠 밖으로 손을 뻗어.....
지금 잠들면 무서워.
꿈속에선 언제나 난 애기처럼 어려
천년 전에 죽은 애귀신에 씌운 듯
발버둥치는 애기 울음으로 어려.
뒷 울 밑으로 선 서너 개의 장신
돌담 잎새 사이사이로 오락가락하는 머리카락.
히히 덤빌 거야. 입맞추러 덤빌 거야.
지금 잠들면 무서워.
지금 잠들면 무서워.
* 오매: 강원도 벽촌 사투리로 처녀를 뜻함.
행진곡行進曲
미칠라.
저 나무 위에 애기 셋이
나를 보고 웃지 않느냐.
미칠라.
간밤에 뒤따르던
돌다리 위의 호롱불 하나
울안에 파란 눈으로 살아 있지 않느냐.
미칠라.
영산동 갯마을에 구복이가 신음하는
신음 소리가 서녘 바람에
피흘려 오고 있지 않느냐.
꿈꾸면 또 빨간, 빨간 신방 하나
새로이 시왕풀
영신네와 금순네와
어제 바로 갓 묻힌 점이가 있지 않느냐.
허공 위로 바람 위로 허공 위로 바람 위로
뜬 눈 하나 뜬 눈 하나
흩어진 머리카락 머리카락 머리카락
미칠라.미칠라.
소리 없이 이 몸을
몰래 맡아 내갈 자 없을라.
징그럽기 징그럽기 만하던 남사당패 하나 없을라.
미칠라.
어느 밖으로 고요히
이 몸을 떠내다 말릴
어느 외딴 별 하나 없을라.
미칠라. 미칠라. 미칠라. 미칠라.
술시戌時의 시
희야, 같이 가자.
빨간 호롱불 들고
돌다리를 건너는 희야.
컴컴한 여흥산 묘밭을 휘휘 돌아
어지러이 굽은 소나무 사이사이를 휘휘 돌아
눈부신 네 꽃집 눈부신 네 곳으로 가자.
희야, 언제 빨리 네 나를 먹었니.
무등산 별밭을 헤메던 꿈속의 나를
어떤 오색깔 영롱히 묻은
열손가락 끝으로 따끔따끔 찔렀니.
지금은 환한 한낮의 생시라도
네 그림자 내 그림자 나란히 나란히
살얼음 같은 볕 속을 헛디디지 않게
네 발자국 내 발자국 미친 듯이 맞춰 찾아
검은 수렁이건 숲이건 뚝이건
눈감고 감아도 네가 주는 쪽빛길.......
네 가는 네 꽃집 네 곳이 어디냐.
달려라. 희야, 달려라.
쇤네 울안이냐,
돌이네 창 곁이냐.
건너온 여흥산 화산밭에 서 있던
일하는 시악시를 너는 보았지,
수렛마을 갯강에 빨래하던 시악시를
히히 네 몰래 나는 먹었지. 희야, 달려라, 달려라.
네 가는 네 꽃집 네 곳이 어디냐.
계시癸時의 시
새벽 1시
네가 올 시각이다.
하얀 달빛 능선 위에
아지랑이처럼 가벼이
흰옷 입은 여인 하나.
흰옷 입은 여인 하나.
뿌우연 문설주 곁에
허연 문쌀 하나.
허연 문쌀 하나.
내 설익은 어렴풋한 꿈사이
이 안과 그 밖이 깨지지 않게
어렴풋한 사이로
바람 사이의 바람 소리로 깨지지 않게 너를 불러
개천 위 빨간 호롱 불 곁을 지나
쉿쉿 성황당 근처의 쉿쉿 소리를 지나
순네 팔순 먹은 늙은 할멈이
저승이라고 바장이고 섰는
고령제 앞이마를 스쳐서 스쳐서
네 둔갑 열두번 재주 넘어도
시왕을 풀 수 없어
시왕을 풀 수 없어
네 눈물 열두 번 딴 세상을 굴려도
촛불을 켤 수 없어
촛불을 켤 수 없어
차령산상 도솔천의 정수리를 치달아 와도
그 무릎 암자 아래 물 떠 놓고
물 떠 놓고
오늘도 또
촛불을 켤 수 없어, 촛불을 켤 수 없어
애타선, 애타선, 애 타선, 애타선,
...............
새벽 3시
닭이 운다.
*시왕 풀이: 이승에 맺힌 한을 풀어 주는 굿
무두귀상난조無頭鬼像亂調
목매단 네 몸
비늘 갑옷 어깨 위로
춤추는 네 각시 무동 타고
여드레 속앓이 앓는 바람과
백발 백발 백발 센
십이궁十二宮 할매들이 무동 타고.
그 위로 아득히
네 상투 움켜쥔
저승 귀신과
그 위로 억수로 치는
저승 무당 굿하는
소나기 소리와
소나기 속에
번쩍번쩍 눈 뜨는
네 눈 번갯불이 무동 타고.
*무두귀(無頭鬼): 머리가 없는 귀신
내 눈 뜨는 날
내 미치는 날
울산 사당집 각시 눈에
내 모습이 보이는 날
내 몸 썩는 냄새 내 아는 날.
울안 까마귀 눈에
내 죽은 날이 보이는 날
내 기침 먹는 허공 위 서낭집.
서낭집 후살이하는
푸른 손각씨.
열두 나날을 어지러이 헛보고 사는
내 모습을 깨워내려는
열두 신장대로 오는
대들보 위의 성주와
천둥, 천둥치는 구천 보살과.......
내 냄새 허우적거리는 칠흑 그믐 속
흔들리는 흔들리는
내 몸짓 다하는 날이
내 눈 뜨는 날.
*손각씨(孫閣氏): 처녀귀신
꿈꿀 땐
꿈꿀 땐 다홍치마 입고
꿈속 연기 오르는 갯강으로 가고
꿈꿀 땐 젖은 속옷
삼단 머리 헝크린 채 나오고.
꿈꿀 땐 칠흑 어둠 그믐 한밤을 이고 가고
그믐밤 마늘 밭에서
까마귀 울음 먹다
돌아 올 땐 이빨 가는
이빨 가는 소리만 오고.
동東에서 번개가 번쩍할 땐
남南쪽 꿈으로 가고
서西에서 번개가 번쩍할 땐
북北쪽 꿈으로 가고.
백날 번갯불이 머문 곳에서
천둥 먹고 발가 벗고
웅크리고 죽은
더벅머리 숫총각
앙가슴을 껴안고
보름날을 키워선
둥근 보름달을 안고 나오고
나의 무속시 이론(巫俗詩 理論)
박 재 릉
1.귀신과 이미지
나의 무속시가 공감을 일으킨다면 귀신과 귀(鬼)적 존재가 인간 누구에게도 있다는 결론을 얻는다. 인간이 사멸하면 정신적 세계(무의식의 세계)에 잔재한 한(恨)의 요소가 남는다. 이 귀적 존재가 동하면 귀신이 된다. 이 귀적 존재는 생존한 우리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가령 미친 사람이 지껄이는 헛소리, 잠꼬대, 취중언동 등이 그것이다. 이는 우리 이성이 허약하거나 마비되었을 때 무의식의 관념들이 마구 나오는 것들이다. 즉 무의식의 단자(單子)가 이성이란 제약을 벗어나 임의적으로 발아되어 나오는 것들이다. 이 단자들은 곧 인간의 한(恨)인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한 즉 귀적 존재는 남는다. 이같이 귀적 관념이 무의식의 단자와 일치하므로 귀신이란 곧 우리의 내적 세계와 일치한다. 우리의 내적 세계와 귀신의 세계는 무엇이 다른가. 귀신의 세계는 이성을 벗어난 또 다른 세계가 될 것이다. 우리의 무속과 민속학이 그 해답을 보이고 있다.
나는 귀신을 직접 보지 않았다. 아니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 항간에 산재한 무속과 민속을 바탕으로 있을 법한 가공의 진실로써 말할 수 있고 또한 쓸 수도 있었다. 곧 허구로써 말이다. 이 글은 1995년에 발표한 것으로 그 이전에 쓴 「巫俗詩考(현대문학,1975년 1월호)」의 속편이다. 그 당시까지 나왔던 나의 시집『밤과 蓮花와 上院寺』(1972년간)와 『亡父祭』 (1992년 발간)의 시를 바탕으로 무의식학적인 이론의 해설을 붙인 것이다.
① 귀신 침입시의 전율
이미지의 출발은 귀신이 인간에게 접근하기 직전, 내적 감성이 외계에 대한 영적(靈的) 인식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귀신과 인간 사이의 경계선 사이― 이때는 인간 심리에 이상 야릇한 매료와 더불어 전율을 느끼게 된다. 이 전율과 더불어 내면엔 리듬이 생긴다. 귀신 침입 직전의 이 전율적 예감에서 생긴 리듬을 받아쓰면 시적 이미지가 태동하는 것이다. 이 리듬은 나의 무속시의 전신(全身)이라 할 수 있으며 리듬에 호흡을 맞출 수 있다면 곧 나의 무속시를 거의 이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잠들면 무서워/지금 꿈속은 평원동 근철거야./ 댕기 딴 시악시들이 / 불켜들고 나올거야. ―「지금 잠들면」의 일부
평원동은 원주시에 있는 지명으로 나의 무속시의 산실이 되는 곳이다. 꿈속에 있을 처녀 귀신에 대한 침입 예감이 전율로 다가오고 있다.
미칠라./ 저 나무 위에 애기 셋이/ 나를 보고 웃지 않느냐.
―「행진곡」의 일부
나무위에서 동자보살(애기귀신)인 애기 셋이 인간에게 침입하기 위해 웃는 장면이다. 동자보살의 웃는 전율적 모습이 나무 위에 있다.
새벽 1시/ 네가 올 시각이다./ 하얀 달빛 능선위에/ 아지랑이처럼 가벼이/ 흰 옷 입은 여인 하나./ 흰 옷 입은 여인 하나. ―「계시(癸時)의 시」의 일부
새벽 1시. 하얗게 소복한 여자귀신이 인간에게 침입하기 직전의 전율이다. 소복한 여귀는 미명귀이나, 달리 보는 견해도 있다.
어둠을 둘러쓰고/우리 애기를 먹으로 온/ 남산댁 그믐에 떠난 내 소실의 고운 이모./ 소복한 하얀 눈초리. ―「밀야」의 일부
소복한 하얀 눈초리의 여자귀신이 내 애기를 먹으러 침입해 오기 직전이다. 이모는 미명귀로 하얀 눈초리의 전율적 모습이다.
② 샤먼의 신장(神將)대
샤먼이 신장대를 잡고 집념 상태에 들어가는 것은 샤먼의 지성이 내적 무의식을 정돈 파악하는 상태(정신 집중하여 살피는 상태)라 볼 수 있다.무의식 내에 있는 귀신(자기와 공생하는 곧 자신이 믿는 신의 대상: 무당신 등)의 단자만을 찾는 상태이다. 여러 무의식 단자들 중 믿는 대상의 귀신과 통하게 될 때 신장대는 떨리기 시작한다. 필요한 사항을 물을 때, 그 단자는 떨림으로 답변한다. 떨림의 내용을 샤먼은 언어로 표현하기도 하고, 떨림 자체를 샤먼의 지각이 무엇이라고 감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떨림 자체의 관념보다는 떨림이 드러나는 샤먼과 신장대의 외적 객관 사항이 이미지로 효과를 드러낼 수가 있다.
네 시왕가르는 신대 위에 올라 앉아선/ 상문상 받고 눈물잔 받고
―「살풀이」의 일부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비는(시왕가름)무당의 신장대에 실린 원귀의 살풀이(액을 풀어 주는 굿)의 모습. 원귀가 신장대에 실려 무당이 차려 놓은 제물상(상문상)을 받고 있다.
③ 정신분열증의 형상
이성이 감성을 완전히 지배하지 못하고 마비되어 있는 상태를 미친 사람이라 한다, 미친 사람의 언어 그 자체는 무의식의 토로로 귀신 자체만의 술회와 거의 대동소이하나 그보다는 그를 보는 외부적 형상이 시적 이미지가 될 수 있다.
아직 안 간 먼 오매가 / 머리풀고 웃는구나./오매한테 붙은 그놈이/이젠 오매한테서 뜨려고 해 ―「지금 잠들면」의 일부
머리풀고 웃는 오매(강원도 처녀)는 몽달귀(남자귀신: 그놈)가 실린 미친 처녀이다. 머리 풀고 웃는 외부의 모습이 이미지로 된다.
이레 치레 고운 이승을 마지막 남겨두고/ 이켠보다는 저켠을 더욱 길들이느라고/ 에미는 저승 골목을 동냥을 구하러/ 하루에도 수십 번 드나들고/그러다가 저승이 멀 땐/ 이 산좌(山座) 툇마루를 길가처럼 들러 ―「삭망(朔望)」의 일부
이승 저승을 오락가락하는 에미는 미친 상태이다.
병든 애비를 보아라./ 저쪽 세상 헛보다/노오랗게 저쪽으로 돌아선/한많은 더벅머리 한날도 늙지 않고/한세상 저쪽으로 눈맞추었던/칠흑머리 댕기딴 푸른 손각씨(孫閣氏).
―「망부제(亡父祭) 서(序)」의 일부
애비의 병은 정신분열증. 처녀 귀신 곧 손각씨에게 실려 있는 미친 애비의 상태이다. 인간에게 침입한 귀신은 그렇게 단시일에 나가지 않는다. 귀신이 인간으로부터 떨어져 나아간 다음의 인간 상황은 침입 이전 과거의 백치(白痴) 아니면 ������죽음������두 가지 경우가 허다하다. 전자의 경우 인간 내적 감성과의 교합으로 존재하던 귀신이 감성의 극한적 소멸로 이 이상 무용한 인간에게서 떠나버릴 때, 인간은 허탈감 내지는 모든 활동이 원천으로 회귀한 백치 상태가 된다. 이때는 이미 미쳤을 당시를 기억하지 못한다. 미치기 이전 아니면, 보다 먼 유아적 상태로도 돌입한다. 지능도 그에 비례한다. 원상 복구된 백치 상태의 모습이 시의 이미지로 규명될 어떤 가치성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후자의 경우가 이미지로서의 만족도와 시적 생명력을 살릴 수 있었다.
접힌 실눈으로/저무는 이승빛을 깜짝깜짝 붙드는/ 노오랗게 병든 애비를 보아라.
―「망부제(亡父祭) 서(序)」의 일부
후자의 경우인 죽음의 말로이다.
④ 굿
샤먼이 무의식적으로 귀신과의 관념 상통을 통해(②의 샤먼의 신장대 참조) 어떤 문제점을 풀어주는 행위가 굿이다. 굿의 주술 내용보다는 굿의 외적 상황의 묘사가 무속적 이미지로 가치가 있다.
이달 저- 나를 키운/평원동 아득한 아지랑이 밑에선/소란소란 시왕굿으로 무당들이 들끓어 ―「삭망(朔望)」의 일부
굿의 내용보다는 굿의 외형을 나타낸 것이다. 임동권(任東權), 김태권(金泰坤)의 굿의 종류를 열거한 내용은 그 수가 상당하다. 그 수의 종류에 따른 특색 있는 굿의 외형도 이미지가 가능할 것이다.
네 시왕가르는 신대 위에 올라앉아선/상문상 받고 눈물잔 받고 ―「살풀이」의 일부
원귀의 한을 풀어 주는 시왕굿이다. 시왕굿은 시왕가름(한을 풀어 줌)해 주는 굿이다.
⑤ 허상(虛像)괴 실상(實像)
한 사람이 밤에 길을 가는데 키 큰 도깨비가 희롱하므로 큰나무에 묶어 놓고 다음날 아침에 가 보았더니, 도리깨장치(농기구) 하나가 묶여 있더라는 것. 밤에 본 그것은 허상이고 아침에 본 그것이 실상이다. 도리깨장치를 도깨비로 본 것은 그 사람 자신의 감성적 투시에 의한 것으로 시적 허구의 중요한 몫을 하고 있다. 가령 한낮이라도 으슥한 곳에 키큰 나무가 키큰 사람으로 빗보이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빗본다는 자체는 자신의 이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감성의 시야로 바라본 경우이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에 대한 허상이 우리 민속이나 무속에서는 엄연히 존재하며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귀신은 허상으로만 존재하며 허상의 이미지는 허구적 귀신의 이미지임은 부인 할 수 없다. 이 허상에는 실상이 허상화 되는 경우와 전혀 허상 자체만으로 생성된 경우가 민속학 상으로 나타나 있다. 필자가 시의 이미지로 실험한 것은 거의 전자의 경우다.
등나무 아래로 네 그림자가/흰 여인으로 빗보이게 서선/등나무 허리통에다 빨간 띠를 두르고/ 돌을 하나씩 쌓곤 절을 하고 있었다. ―「보련사(寶蓮寺)」의 일부
보련사는 김시습의 <만복사저포기>에 나오는 사찰로, 양생이 만난 여귀신의 대상(大祥)을 치르던 곳. 윗 구절은 여귀신이 양생과의 결혼을 발원하는 내용을 픽션화한 것.
쪼개진 하늘새로 무엇이 뵈는가/ 니이체의 머리칼과/ 보카치오의 우레와
―「잔적(殘跡)」의 일부
천둥치는 하늘 사이로 보이는 니이체와 보카치오는 일종의 귀신적 허상이다.
2. 귀신과 꿈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란 말은 이미 상식적인 말이다. 잠들었을 때 이성의 억압이 해이된 사이에 무의식의 내용이 형상화되어 보이는 것이 꿈인 것이다. 꿈에 대한 해몽으로 여러 현실들을 점(占)치는 것은 무의식적 사항을 지각이 알아내는 샤먼의 점술과 대동소이하다. 흔히들 꿈에 여인이 보이거나, 개(犬)가 보이면 악귀(惡鬼)라고들 한다. 그러나 그 말은 좁은 의미로 한정된 것이 아닌가 한다.
① 귀신의 꿈과의 내왕(來往)
여인이나 개가 보이는 꿈은 상식적으로 풀이되는 귀신의 내왕이지만, 귀신이 인간을 침범하는 때를 꿈으로 택했다면 다양한 상황으로 벌어질 것이다. 귀신이 꿈으로 침범할 때는 인간이 원하는 상태와 일치하는 모습으로 온다. 이를테면 누구를 그리워하는 한 남성의 꿈엔 그 남성이 그리는 이상적인 여인의 모습으로 침입한다. 꿈속에서 그 남성이 여인을 반겨서 수용하면 귀신(여귀)은 인간에게 침입한 것이다.
시방 그녀는 내 잠자리에다/ 빨간 꿈을 몇 개 묻어 두고 / 밤불이 달아 오르면/시왕 각시 댕기 풀고 호롱불 들고/핫슈 같은 입술을 달큰히 맞추러 오리./ ―「밀야」의 일부
남성의 꿈에 여귀가 침입하는 상태다. 남성의 꿈이 매혹적인 여성(여귀)을 물리칠 수 없을 것이다.
② 귀신의 둔갑
한 여성 귀신이 한 남성의 꿈으로 들어오기 위해선 그 남성이 희구하는 적절한 대상으로 둔갑한다. 귀신의 무형(無形)이 다양한 유형(有形)으로 둔갑하는 상태라 볼 수 있다. 이성적 상대, 혈육의 모습, 친한 지인의 모습 등으로 유형화(有形化)한다.
그 산상을 넘으면 지기(地氣)를 묻은 묘밭들이 돋아나/ 내 오랜 옛적 이복(異腹)으로 같이 살던/ 순네는 소복한 객귀/내 이모의 고운 모습으로 건너 오기도 하고./ ―「삭망」의 일부
순네의 객귀는 내 구미에 맞는 내가 좋아하는 이모의 모습으로 둔갑해 오기도 한다.
네 각시 영산 대밭에서 눈맞추었던/ 생시적 서방이/둔갑하고 있을 때다./ ―「닭이 울 때다」의 일부
각시의 꿈에 서방으로 귀신(男鬼)이 둔갑하고 있다.
③ 귀신과의 공생(共生)
침입한 귀신이 인간의 감성과의 공생이 이룩되었을 때, 꿈속의 상황은 시적 이미지의 형상화로 드러날 수 있다. 꿈은 인간과 귀신의 유희가 벌어지는 이미지의 제시장이 된다.
꿈꿀 땐 다홍치마 입고/ 갯강에 오르는 연기 곁으로 가고/ 나올 땐 젖은 속옷/삼단 머리 헝크린 채 나오고/(중략)/백날 번갯불이 머문 곳으로/천둥 먹고 발가벗고/웅크리고 죽은/ 들킨 더벅머리/앙가슴을 껴안고선/ ―「꿈꿀 땐」의 일부
침입한 귀신과 인간이 공생하는 이미지이다. 여성이 꿈에 남성 귀신과 교감하는 내용이다.
④ 현실과 꿈
인간과 인간의 내적 감성끼리의 교합은 귀신과 귀신의 교합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인간의 감성이 인간인 이상, 정화될 수 없다는 전제에서이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사람끼리의 갈등의식은 귀신과 귀신 자체의 것과 별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가령 어떤 사람에게 저주스런 일을 저질렀다면, 복수에 타는 원한의 심령은 때에 따라 꿈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감성의 내왕은 시공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그 갈등은 원귀적 속성과 다를 바 없이 꿈에 나타나질 것이다. 가령 어떤 남자가 한 여성을 강간하였다면 그 여성의 심령은 원귀자체와 같기 때문에 꿈으로 그 남성과의 교합을 위해(또는 복수하기 위해) 들어갈 것이다.
저 아가씨 빈 그림자 색동저고리 입고 / 새치름히 가는 척하는 저 아가씨./돌아볼 땐 돌아가고 돌아갈 땐 돌아보고/해종일 골목골목 기웃거리다간/날 저물면 허겁지겁 솟을대문 두드리고/사방맞아 떨던 몸을/ 꿈으로 찾아들고./ ―「저 아가씨」의 일부
저 아가씨������는 대낮에 강간당한 한 아가씨, 감성의 허상적 반영인 귀신이다. 그 귀신은 낭군을 찾아 꿈으로 들어간다. 강간당한 여성의 원한이 귀신이 된 것이다. 이상은 현실적 상황으로부터 꿈으로, 귀신과 같은 상태가 되어 드러나는 경우이지만, 반대로 꿈의 귀신이 현실에 어떻게 반영되는가도 흥미롭게 여겨진다. 아마도 현실의 적격자인 그 누구에게 반영돼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가령 한 남성의 마음속에 손각씨(처녀 귀신)가 침입해 들어 있다고 할 때, 그 손각씨는 생시엔 어느 K라는 여성에게 씌워 있어서, 그 남성은 이유도 없이 그 K여성이 보고 싶고 그리워지게 된다. 이때 K여성에게 오발적 애정의 행위가 이 남성으로부터 나타난다. 이는 우리 실생활에서도 왕왕 볼 수 있는 실태가 아닌가.
3. 무속과 불교
우리나라의 불교는 한국적 원시 종교와 결탁하면서 정착했다. 지금도 사찰에는 칠성당, 산신당이 있다. 임동권은 그의������한국민속학논고������에서 이에 대한 적절한 해석을 하고 있다. 곧 토착적인 본래의 우리 무속에 불교가 정착하기 위해선 무속과 결탁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여건이라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무속에도 불교가 침투되어 있다는 말도 당연히 성립된다. 샤먼들이 외는 주술 등에는 불교의 <천수경(千手經)> <반야심경(般若心經)> 등의 구절이 섞여 있을 뿐만 아니라 <관세음보살>등의 보살을 외는 경우도 여실히 볼 수 있는 점이다. 이상은 시대적 환경의 여건에 의한 것이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보면 불교와 무속의 관계는 밀접한 점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김시습의 소설<남염부주지(南炎部洲志)>에서 박생이 염부주에 끌려갔던 이야기는 불교와 귀신의 혼합 사항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박생이 염라대왕에게까지 간 자체는 귀신적 의존이며,<만복사저포기>에서 불전에 기도드리는 처녀 귀신의 사항도 같은 것이다.
귀신은 시간적 공간적 구애성이 없기 때문에 무당은 그를 이용해 점술을 치는 것이다. 불교의 불(佛)은 인간적 모든 욕망을 완전히 해탈한, 환언하면 인간의 감성이 갖는 귀(鬼)적 존재를 완전히 없앤 상태에서의 현상을 의미한다. 불(佛)의 경지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그러나 그것은 정(靜)적인 반면에 귀신의 경우는 동(動)적이다. 귀신의 동적인 것을 불교의 정(靜)적인 바닥이 안고 있는 것이 인간의 형체인 것이다.
한밤 오랜 밤 더딘 밤/ 징그럽게 너와 나는 엎치락뒤치락했고/ 한밤 오랜 밤 더딘 밤을
그러다가 너는 지쳐/저만큼 떨어져 누웠고/(중략)/지금 온통 밖으론/저승의 한낮이 들끓어 / ―「삼계무량(三界無量)」의 일부
삼세(삼계)의 바닥은 불교의 바탕이요, 내왕하는 너와 나는 동(動)적인 귀신이다.
전생(前生) 그쪽 제상 위에선/ 억만 조객의 곡소리가 새는 바람 사이로/소나기처럼 이쪽으로 들려오는 듯 들려오고/그쪽에 바로 그 시(時)에 죽은 혼이/이승에선 애기 혼으로 태어나야 할 것이/새로 온 수줍은 옆집 연순네 각시처럼/ 멍청히 그쪽에서 발가벗었던/ 벗었던 혼령채로 저 뜰위에 다가서 있고/ ―「고령(高靈) 대주(大主) 일품(一品)의 터에서」의 일부
전생의 저승은 이승이다. 이승에 온 것은 귀신이 아니라, 혼령이다. 귀(鬼)것이 있는 혼(魂)은 혼백(魂魄)이고, 귀(鬼)것이 없는 혼(魂)은 혼령(魂靈)이다. 전생에서 정화되어 이승의 혼령으로 승격한 것이다. 즉 발가벗은 혼령은 정화되어온 혼이다.
내 치성으로/ 전생의 빗소리 듣는 법을 하나 배워 가지고/ 오동나무 아래로 달빛에서 뿌우연히 그 소릴 들어 보았더니/ 내 일찍 이승으로 왔기 때문에/ 그 쪽에선 상사, 상사병에/ 시름하는 연이가 머리풀고 미쳐선/ 비맞으며 우는 울음이 그 빗소리 속에 섞여 있었다.
―「치성」의 일부
연이는 이승으로 혼령이 돼 올 수 없으므로 전생의 귀신의 울음을 이승으로 보낸다. 혼령이 돼 이승으로 올 수 없는 것은 한(恨)의 내용 때문이다. 이상은 주로 불교의 삼세를 내왕하는 경우들이다. 귀신이 불(佛)에 대해 자신의 한을 기원한다고 보면 (김시습의 <만복사저포기>에서 처녀 귀신이 불전에 기도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동(動)적 존재의 귀신은 전적인 불(佛)에 의존하고 있음이 확연해질 것이다.결국은 귀신을 움직이는 원리는 불(佛)의 바탕이란 것이다.
그래 우리는 처지가 곤란해질 때/ 이 외부에선 산란히 깨지지 맙시다./ 마음속 반야심경/ 어느 한 구절이라도/ 빠뜨리면 큰일입니다. /―「귀명례(歸命禮)」의 일부
귀명례(歸命禮)-불교 용어로 불법에 귀의한다는 뜻이다. 원래의 말은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이다. 이는 귀신의 바탕이 불(佛)이란 뜻이다.
4. 귀신의 색채관(色彩觀)과 체취관(體臭觀)
귀신이 좋아하는 색채는 흑(黑)과 백(白)이다. 방위로 따지면 북(北)과 서(西)이다. 귀신 자체는 색채가 없으나 그가 나타나는 곳을 볼 수 있는 세계는 북쪽의 흑색과 서쪽의 백색이다.
검은 수렁 위 물소리와 수선거리는/ 인복이네 누이 죽은 시악시 하나/생시인 양 물소리처럼 깨 있는 한밤이다./ ―「축시(丑時)의 시」의 일부
귀신이 나타나는 검은 색깔인 한밤이다.
새벽1시/ 네가 올 시각이다./ 하얀 달빛 능선위에/ 아지랑이처럼 가벼이/ 흰 옷 입은 여인 하나./ 흰 옷 입은 여인 하나. /―「계시(癸時)의 시」의 일부
귀신이 좋아하는 흰옷을 입고 있다. 귀신의 체취는 귀신 자체가 생의 감성적 본령이란 관점에서 생(生)의 체취와 동일하지 않을 수 없다. 음산하고도 어두운 냄새가 곧 생 자체가 사멸한(귀신) 냄새인 것이다.
칠흑 삼단 머리 늘어뜨리고/ 속가슴 다 훔치고/ 더벅머리 알몸과/목매다는 냄새.// 천길 하늘 먹구름 뚫고/ 을순이 네눈의 벼락과/ 더벅머리 벼락이/ 부딫혀 타는 냄새/
―「냄새」의 일부
남녀의 목매다는 죽음의 냄새와 혼신(魂神)이 타는 벼락 냄새가 그것이다.
내 가슴 냄새 먹고 크는/ 지어미의 눈감은 눈이/ 내 냄새 다하면 초승달로 눈뜰까.// 눈감은 속으로/ 내 천길 가슴 속은/ 얼머나 더 많은 냄새로 남아 있을까./
―「지어미」의 일부
나의 냄새는 생의 전신이요, 눈감은 지어미의 눈을 보름달로 뜨게 하는 원천이 되고 있다.
지어미 입덧할 때/월산 점이가 찾는 조상 잔치 음식이/ 남산 석이가 찾는 제상 음식이/ 칠흑밭에 메시꺼워 뒹굴며/ 입덧나선/ 입덧나선./ ―「입덧」의 일부
뱃속의 애기는 귀신이다. 애기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 냄새가 메스껍다. 그것이 입덧이다. 누구나 귀신을 싫어하고 있다. 살아있는 사람 중에서도 귀적 감성을 짙게 갖고 있는 인간을 증오하고 거부한다는 말도 성립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체취는 무속적 의미로는 절대적이다. 아니 무속 세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필연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현대시에서 흑색과 생에 결부된 체취가 왕왕 드러나는 실정을 본다. 그것이 무속적 원천에서 발상하지 않았다고 단정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정서가 불건전한 경우의 시들은 대부분 그 이미지의 색채가 흑색으로 드러나는 현상들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정서가 불건전한 상황 자체가 귀(鬼)적 전염에서 이루어진 경우임이 당연시된다.
5. 결어
이상으로 무속시가 형성될 수 있는 가능성을 합리화해 봄으로써 피상적 무속의 개념보다는 인간 내면과 결부되어 현실로 나타난다는 타당성을 제시해 보았다. 보다 차원 높은 세계를 개척할 수 있는 새로운 선구자를 갈망해서이다. 아울러 우리의 주체적 전통시가 과연 무엇인가를 일깨워 보고자 함에서이다.
필자가 시도한 무속시에 대해 터부시하는 오류를 갖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뜻도 있다. 시대 풍조가 새로운 현대적 소재로 응당 나아가야겠으나 인간 심성과 결부된 전통적 소재의 융합도 우리 시가 찾고 걸어야 할 한 방향이 된다고 믿어서이다. 전통과 결부된 시만이 생명을 갖는다는 말은 아니다. 시적 기술의 발전이 우선적 방편은 되겠으나 종말에 찾아가야 할 우리의 안착지는 과연 어디인가를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인의 토속적 샤머니즘 속으로 들어 간 박재릉의 시
인간의 원초적 에너지와의 만남 -「저년을 잡아라」
심 상 운(시인, 문학평론가)
1995년 <시문학> 8월호에「내 뒷모습을 보셨나요」「청기와집」「눈 감지마라」등과 함께 발표된 「저년을 잡아라」를 읽으면서 나는 후끈후끈한 지열이 식을 줄 모르는 여름밤에 지열보다 뜨거운 인간내면의 열기와 전율(戰慄)에 휩싸여 평소보다 더 많은 땀을 쏟아야 했다.
저년을 잡아라.
정신 나간 저년이다.
나를 노려보는 춘향이 같은 입술이
뱀처럼 달큰히 징그럽게 날름거리는 저년이다.
삼도천서 멱감던 저년이
도솔천서 깔깔거리던 저년이
이승 어느 낭자에 실려
내 입술이 지그시 닿으면
소름끼치게 펄쩍 뛰는 저년이
미친 저년이
이승 신방 숨은 골방을
몰래 덥쳐 안고
빨간 등불 시왕각시
타는 알몸으로 알몸으로...........
머구리를 먹은 듯 울렁거리는
질갱이를 씹은 듯 메스껍게
체한 울음을 토할 듯 미친 저년이
칠성당서 웃는 저년이
양천 우물가에서 뒤보는 저년이
감악산 약수터를 휘휘 돌아서
깔깔깔깔 달아난다. 달아난다.
저년을 잡아라.
저년을 잡아라.
내 혼비백산 타는 앓는 숨결속에서
주름살이 울고 바람이 울고
저년을 잡아라. 저년을 잡아라.
―「저년을 잡아라」전문
* 시왕각시: 이승에서 한 맺힌 젊은 여자
* 칠성당七星堂): 수명장수신(壽命長壽神)인 칠원성군(七元星君)을 모신 집
그때 나는 이 시에 대한 소감을 다음과 같이 썼다. “이 시편들은 박재릉 시인이 70년대부터 줄곧 한 길로 추구해온 한국의 토속적인 샤머니즘의 세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늙은 박수무당이 된 시인. 신 지핀 소릴 내며 시 속에서 자유롭게 춤을 추고 있다. 그 춤은 현실의 문제를 풀기 위한 춤이 아니다. 원초적인 생명력을 불러오기 위한 춤이다.
특히 「저년을 잡아라」에서는 그 생명력의 강렬한 호흡이 그대로 전해온다. 이 시인에게 강한 생명력을 주는 것은 ”나를 노려보는 춘향이 같은 입술이/ 뱀처럼 달콤히/징그럽게 날름거리는 저년“이며 ”이승 신방 숨은 골방을/ 몰래 덥쳐 안고/빨간 등불 시왕각시/ 타는 알몸으로 알몸으로...“ ”체한 울음 토할 듯 “ 징그러운 저년이다. 원초적인 생명력과 성적 에너지가 토속적인 귀신의 혼령과 결합되어 시 속에서 폭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저년을 잡아라」는 서정주(徐廷柱)의 초기 시「화사花蛇」나 「입맞춤」과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다. 박재릉의 시는 현실문제와는 무관하다. 그러나 현실의 뒤쪽에 숨어서 현실을 움직이는 에너지로 작용해온 토속적인 샤머니즘의 세계(무의식)를 현대시로 표현하고 그 세계를 줄기차게 지속해온 것은 독특한 개성이 만들어낸 성과라고 말할 수 있다.”(1995년 9월호 <시문학> 월평)
지금 읽어보아도 그때 내 판단이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나는 박재릉 시인의 샤머니즘 시에서 무엇보다도 용암같이 분출되는 뜨거운 시적 에너지를 중시한다. 그것이 시속에서 급박하고 뜨거운 리듬과 호흡을 만드는 동력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시 속에서는 이미 선(善), 악(惡), 미(美), 추(醜)의 관념은 사라지고 없다. 남아 있는 것은 죽음의 세계에서도 알몸으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인간 영혼의 원초적인 생명력이다.
박재릉의 시는 그 속에 깊이 들어가서 그 혼(魂)의 알몸들을 밝은 세상에 드러내어 뜨거운 전율의 감각으로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시인의 내적의식과 원초적 에너지의 만남이다. 그것은 접신상태(接神狀態)와 같은 정신적인 절정의 상황을 형성한다. 만약 박재릉의 시편에서 그런 원초적인 에너지가 사라지면 언어의 박제(剝製)만 남을 것 같다.
한국 현대시에서 시의 공간(이승에서 저승으로)을 확장하고, 한국의 토착적인 샤머니즘의 시세계를 당당하게 펼쳐서 보여주고 있는 박재릉 시인은 이제 세계적인 초현실주의(超現實主義) 시인들의 대열에서도 앞자리에 설 것 같다. 그런데 걱정스러운 것은 아직 박재릉 시인과 동류(同類)의 시인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비슷한 시편들은 찾아볼 수 있지만 접신상태(接神狀態)와 같은 정신적인 절정의 상황을 드러낸 시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것이 무당(巫堂)에 대한 무지와 폄하(貶下), 우리 것을 낮추어보는 문화적 열등의식 때문은 아니겠지만, 그 비어 있는 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진다. 그런 면에서 볼 때, 1973년 박재릉 시인의 초기 무속시집(巫俗詩集)『밤과 연화(蓮花)와 상원사(上院寺)』를 읽고 권위 있는「현대문학상」을 수여한 <현대문학사(주간 조연현)>의 혜안이 높이 평가된다.
박재릉(朴栽陵) 시인 약력
*1937년 강원도 강릉 출생 * 춘천고등학교 졸업 * 연세대 국문과 졸업 * 1961년 <자유문학>에 「너와 나」가 당선되어 등단. * 정일학원 국어과 강사, 교수실장 역임 * 한국현대시인협회 평의원 * 한국문인협회 한국사 편찬 위원 * 국제 편클럽 자문위원
* 시집 : 『작은 영지1집』(1963)『작은 영지2집』(1964)『않는 잔존』(1965) 『밤과 蓮花와 上院寺』(1972)『亡父祭』(1992)『분바르고』(2002)『박재릉시99선』(2005) 『박재릉 시전집』(2008) 『가야의 혼』(전집이후 시집 2011』
* 수상: <현대문학상>(1973), <한국현대시인상> (1992), <한국문학상>(2002) <청마문학상 본상>(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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