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년은 소를 닮았고 소는 소년을 닮았다.
[단편소설] 소년과 소 / 김류수
1
밤은 점점 깊어가고 있었다. 지금 몇 시 쯤 되었을까. 소년은 어디선가 헤매고 있을 자기네 소를 생각하면 울컥 목이 메어 왔다. 소년의 소는 새끼를 배서 낳을 때가 다 되었고 배가 불러 있었던 것이다. 한 번도 소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들에서든 산에서든 언제나 혼자서도 자기 집으로 찾아 들어오던 소였다. 소년은 큰 눈망울에 눈을 껌벅 거리는 자기네 소가 순둥이 이기는 했지만 때때로 자신보다 더 똑똑한 녀석이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어둠이 온 세상을 덮어 새까만 하늘에는 누군가 등불을 들고 무리지어 어디론가 가는 듯 수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숲속에서는 풀벌레들이 그 걸음에 맞추어 제각기 다른 음으로 연주를 하는 듯 했다. 주변은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차 있었지만 소년은 잃어버린 소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저녁 무렵부터 밤늦은 이 시각까지 온몸에 생채기를 내가며 정골과 터진목 부근 대봉산 자락을 이곳저곳 흩었지만 소년의 암소는 보이지 않았다. 나무 가지와 풀에 베인 상처가 쓰라렸다. 어스름 속에 솟아 있는 산등성이를 짐작 삼아 걸으면서 소년은 “음~머” 하고 소 울음소리를 냈다. 혹시 소가 자신의 소리를 듣고 어디선가 다시금 음~머 하고 울음으로 대답을 할 것 같았고 가끔씩 들려오는 부엉이 울음소리에 소름이 돋고 온몸이 떨리기도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핑갱이라도 달아 달라고 엄니한테 한 번 더 조를 걸 하는 생각이 들자 후회와 회한이 소년의 마음을 채우고 지나갔다. 조용한 밤에는 산속에서 ‘땡그렁’ 거리는 소리가 나면 멀리 서도 들릴 수 있을 텐데. 이제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 소년은 핑갱 소리를 좋아 했다. 황금빛깔의 작은 종에서 맑게 나오는 ‘땡그렁’ 소리는 언제나 소년의 마음을 아득한 곳으로 데려다 주곤 했다. 그 소리에서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미지의 세계가 어디선가 열리는 했다. 또한 그 뚜렷하지도 않은 그곳에 소년은 조심스레 한 걸음 걸어 들어 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기도 했다. 누나가 갔다는 곳이 바로 그런 세계는 아닐까. 아니면 책에서 보았던 미지의 사람들과 풍경이 어우러진 그런 곳일까 궁굼하기도 했던 것이다. 어느 날 소년은 어머니에게 핑갱을 달아 달라고 졸랐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건 비싸기도 하고 우리 소는 똑똑해서 집을 잘 찾아오기 때문에 굳이 그것을 달지 않아도 된다며 사주지 않았다. 소년이 몇 번 더 졸랐지만 그걸 사면 학교에 월사금 낼 돈이 없어 소년이 학교를 다 닐 수 없다는 말에 더 이상 조를 수 가 없었던 것이다. 하기야 그 예쁜 종은 수 십 마리 동네 소들 중에서도 두어 집의 소의 목에만 달려 있었다. 소년은 다른 집의 소가 산속에 들어가 있거나 가까이 혹은 멀리서 들려오는 그 ‘땡그렁’ 소리의 아득함을 느끼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 자기가 학교를 그만 두더라도 소의 목에 핑갱을 달았으면 이런 안타까움이 없었을 걸 하는 생각에 더욱 서러움이 몰려와 이번에는 목 놓아 소리 내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다른 소들은 해가 늬엇 거리기 전에 아침에 소를 놓았던 곳으로 올라 왔는데 소년의 소만 없었던 것이다. 동네 형과 누나들이 한사람씩 줄지어 집으로 향하는 소 뒤를 따라 산을 내려갔지만 소년은 발을 동동 거리며 산 이곳저곳을 휘돌아 보기도 하고 골짜기로 내려갔다가 혹시 제자리로 찾아올라 왔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잔디 마당이 넓게 펼쳐진 듬묵골로 오가길 여러 번 했지만 애타게 찾는 소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소년은 울먹이며 소가 제발 제자리로 돌아 와 주기를 빌고 또 빌었다. 혹시 어디선가 새끼를 낳아서 못 올까 생각도 해보았다. 동네 소들 중에 가끔은 산속에서 새끼를 낳아서 며칠 만에 집으로 내려 온 적이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소년의 어머니는 소를 놓을 때 고삐를 뿔에 감지 말고 풀어서 집으로 가져왔다가 소를 찾으러 갈 때 다시 가라고 한 적이 있었다. 감아 두었던 고삐가 풀려 나무 가지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소가 집을 찾아 올 수 없다는 것 이었다. 그러나 소의 고삐가 풀려 있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소년은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소년의 애타는 마음도 모른 체 저녁노을이 저 멀리 섬 위로 자맥질을 준비하며 그 붉디붉은 얼굴을 외로 돌리고 소년을 보기 민망하듯 스러져갔다. 바다에는 고깃배의 불빛들만이 반짝거렸다. 땀이 범벅이 되어 남루한 소년의 얼굴위로 눈물이 흘러 마지막 한 가닥 남아 바다를 비추는 빛은 더 몽롱해 보였다. 소년의 눈물은 어느 해 아버지가 송아지를 팔아버리고 난 뒤 집에 돌아 온 어미 소가 왕방울 눈에서 흘러내리던 그 눈물방울만큼 굵었다.
▲ 하늘에는 마음을 어루만지는 수많은 별이 떠 있었지만 소년은 소를 찾는 것만 생각했다.
소년은 울다가 지치면 또 달도 없는 밤 별빛에 의지하여 조금 걷다 쉬고를 반복했다. 걸음을 옮길 때 마다 소년만큼 서럽게 울던 풀벌레는 마음을 살피듯 일제히 숨죽이고 있다가 소년이 멀어지면 다시 목 놓아 울었다. 어둠 속에서 나무를 헤치고 바위틈을 지나 이른 곳에는 반짝이며 졸졸 거리는 희미한 소리가 들려 왔다. 골자기 끝 작은 샘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였다. 물을 보자마자 뱃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연이어 들려 왔다. 그곳에 쪼그리고 앉아 소년은 손으로 물을 떠서 여러 번 들이 켰다. 허기가 져서인지 물은 달디 달았다. 물을 잔뜩 들이켜 배는 볼록 해 졌지만 허기는 더 진 것 같았다. 낮에 소를 찾으러 산을 올라 올 때 어머니가 삶아 높이 걸어둔 바구니에서 고구마 두 개를 손에 들고 산에 올라오면서 먹은 것이 전부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시간 동안 산속을 걸으면서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허기가 느껴지자 소년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싶었다.
2
소를 찾지 못하면 산을 내려 갈 수 없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앞섰다. 소년의 집에서 소는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몇 마지기 없는 논과 밭에서 나오는 소출로는 가족에 먹고 살 수 없다고 생각 했는지 배를 타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없는 집에서 어머니는 농사일에 매달렸지만 가난에서 헤어날 수는 없었다. 그나마 아버지가 몇 달에 한번 집에 오면 비었던 두지에 곡식을 채울 수 있었고 섬에서 보리밥이나마 맘껏 먹을 수 있었다. 3년 전, 어장을 나갔던 아버지는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그물에 끌려 바다에 빠졌다고 했다. 소년의 아버지는 물고기와 함께 바다를 떠돌고 있을 거였다. 시신을 찾을 길이 없자 어머니는 전답의 절반을 팔아 아버지의 혼을 달래는 굿을 했다. 소년의 아버지는 공갈 묘에 묻혔다. 하지만 소년은 그 몇 년 동안 아버지가 함께 헤엄을 치는 물고기를 가득 담은 걸망태를 어께에 메고 집 마당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곤 했다. 소년은 그 꿈에 대해 엄니에게 말하곤 했다. 소년은 아버지가 꿈속에서처럼 집으로 돌아올지 모른 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꿈 이야기를 들을 때면 어머니는 소년을 안아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소년은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소년은 꿈에 대해 엄니에게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소년의 집은 더 어려워 졌다. 엄니는 남의 집 품앗이를 하며 늘 논밭에서 살았지만 형편은 펴지지 않았다. 그즈음 16살 누나는 배를 타고 뭍으로 갔다. 소년의 누나는 공부를 곧잘 했지만 초등학교만 졸업했다. 돈을 벌어서 학교도 가고 동생도 가르쳐야 한다며 울먹이던 소년을 달랬다. 누나가 안고 떠난 하늘색 보따리엔 누나의 눈물이 가득 담겼다. 누나가 집을 떠 난 후 소년에게 소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소년이 태어난 날 우연히 암소가 새끼를 낳았다. 소년이 어렸을 때는 누나가 소를 맡아 돌봤지만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다음 해 부터는 소년이 소를 돌보기 시작 했다. 소년은 소를 친구처럼 대했다. 형제 없이 외로운 소년은 자주 소에게 말을 걸었다.
“소야, 니가 우리 집 재산이여. 니가 새끼를 잘 나야 나도 학교 댕기고 돈 벌러 나간 우리 누나도 다시 집에 올 수 있응께. 잘 묵고 잘 커야 써. 알것지야”
소가 재산이라는 말은 소년이 어렸을 때 늘 아버지가 하던 말이었다. 소년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보다 덩치가 두 배나 큰 동네 형 누나들과 함께 소를 몰고 산길을 오르는 것도 소년의 몫이었다. 소년은 자신의 암소가 자랑스러웠다. 소년의 소는 이웃집 소들처럼 사납지 않았다. 뭍에 간 누나처럼 순하디 순했다. 소년이 자라는 동안 어미 소는 팔려 나가고 소년과 생일이 같은 송아지는 남아 함께 커 나갔다. 보통 암소가 송아지를 몇 번 낳을 동안 송아지가 팔려 나가고 암소가 나이가 들면 송아지를 키우고 암소를 파는 것이었지만 엄니는 소년 때문에 암소를 팔 수 없었다. 어느 날 이었다. 학교를 파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 모르는 아저씨가 신작로 길에서 소년의 소를 끌고 가는 것을 보았다.
소년은 대뜸.
“아저씨 우리소를 왜 몰고 간당가. 어째서 우리 소를 끌고 가냔 말이여라”
소년은 따지며 고삐를 잡고 늘어 졌다. 한사코 그 아저씨는 너희 엄니가 나한 테 소를 팔았다고 설명 했지만 소년은 소 코뚜레를 붙잡고 질질 끌려가면서도 소를 놓지 않고 울며 매어 달렸다.
“ 안되여라. 안돼. 내 소란 말이여라. 제발 내 소 돌려 주랑께라”
지난 가던 동네 어른들까지 소년을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두어 시간 실랑이 끝에 소식을 들은 소년의 어머니가 신작로까지 달려 나았다.
“어째서 그라냐. 악아. 이 소를 팔어야 우리가 먹고 살제. 소를 못 팔게 하믄 어찬다냐”
엄니는 끝내 소년을 말 릴 수 없었다. 울며 절며 빌고 하소연을 하고 끝내 혼절을 하면서도 소년은 소의 코뚜레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동네 사람들이 소 팔려다가 아들 잡겠다며 혀를 찾다. 소년의 엄니는 소장수 에게 미안하다며 받았던 돈을 돌려주고 소를 끌고 소년과 함께 집으로 돌아 올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에 소년은 소에 대해 더 끔찍하게 생각 했다. 소를 놓을 수 없는 비오는 날에도 소년은 꼴망태를 메고 산으로 올라가 꼴을 베어 날랐다. 동네 사람들은 소년의 소에 대한 정성에 탄복 했다. 엄니의 한숨은 깊었지만 차마 아들이 아끼는 소를 다시 팔 엄두를 내지 못했다. 소도 소년도 함께 자랐다.
---------------------------------------------------------------
계속 이어 집니다.
* 핑갱 - 워낭을 전라도 사투리로 핑경이라고 하는데 고향에서는 발음하기 쉽게 '핑갱' 이라 함.
|
첫댓글 제목이 최종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써 보겠다고 했던 소재를 가지고
단편소설을 4편에 걸쳐 연재 하고자 합니다.
마음속에 묻어 두었던 유년시절 경험이 묻어 있는 글입니다.
워낭- 핑경 * 산속에서 소 목에 매달려 울리던 핑갱 소리는 아주 멀리서도 잘 들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이리도 늙어 가는데 유년의 소년은 자라지도 않고
소띠끼러 가서 소를 잃었으니 밤인들 무서울까 우리소.
슬프고 안타깝게 끌고 가다가 해피하게 끝내주게 류수 ,안그러면 나 울어 버릴거야.
번던 헹님 웃고 울리는 것은 마지막 순간 감정에 좌우 될건데...지기님들 투표로 결정합시다.
어린소년은 소를찿다 결국 쓰러져 잠이 들었는데 소가 소년을 찿았고 어린소년과 소가 서로 부등겨 안고 울며 집으로 갈것
같습니다,
소설의 결말로 그럴 듯 하군요....참고 하겠습니다.
와~~~눈물 날것같다
그나마 시골에선 소가 엄청난 재산 이였죠 전 소띄끼로 가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수가 없었는데ᆢ저두 비슷한 경험을 햇었지요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가 황소 한마리를 끌고 오시더라구요 기달렷다는듯 동네 친구들과 소띄끼로 시커리 재넘어로 갔엇는데 어느한 장소에 소들을 풀어 놓더니 숨박꼭질 하며 노는 게예요 경험없는 저두 그런가 보다 하고 어스름 해진때까지 놀다가 하나둘씩 자기네 소를 찾아 집으로 향하는데 저만 소를 못찾아 목놓아 울엇던 기억이 나네요 몇일후 부모님께 듣던얘기중 그 소는 산넘고 재넘어 지가 살던 집을 찾아 갔다네요 알고보니 노름판에서 얻은 결과물 에고ᆢ가슴 시려오네
노름판에서 전재산을 가지고 오다니...아버님 통도 크시지.
어릴때 논에 쟁기질을 하는데 소가말을 안들어서 채찍질을 했는데 점심먹고 가서보니 새끼를 낳아서 혀로 할터주고 있던 그소가 생각이나요. 얼마나 소한티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 지금도 가슴이 짠하요야. 후속편 기대 됍니다
말 못하는 소의 눈물을 아는 자만이 진정으로 소 주인의 자격이 있는 것인데....ㅉㅉ... 그 죄스런 마음속에도 주인의 마음이 들어 있네.
그림이 그려지네요 너무좋은글 읽으면서 눈물이났어요 마무리 궁금합니다
오늘에야 시인님의 장문을 읽게 됩니다.
동시대를 살아왔던 그 시절 모습이 적날하게 펼쳐집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소와 관련된 추억이 많아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