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태(Hong ,Soon-Tae)
1934 서울출생
1960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졸업
양정고등학교와 보성고등학교 교사를 지냈으며, 덕성여대, 성신여대, 등에서 강의하였다. 1982년부터 2000년까지 신구대학 사진학과 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강사로 재직 중이다.
1980 국전초대작가
1986 86 서울아시안게임 공식기록 사진가
1988 88서울올림픽 공식기록 사진가
1989 사진예술지 편집주간 (-- 현재)
1993 엑스포` 93 멀티비전 총감독
한국 민족사진가협의회 의장
저서
홍순태, 『풍경사진 입문』, 서울, 대원사, 1998.
홍순태, 『사진 입문』, 서울, 대원사, 1998.
홍순태, 『현대사진의 전개와 비평』, 서울, 신구, 1994.
홍순태, 『현대사진의 조류』, 서울, 신라, 1985.
홍순태, 『풍경사진 기법』, 서울, 신라, 1986.
홍순태, 『사진이론을 버려라』, 서울, 대원사, 2000.
번역서
시게모리고엥, 『풍경사진 입문』, 홍순태(역), 서울, 해뜸, 1987.
와따나베 쯔도부, 『현대일본사진가』, 홍순태(역), 서울, 해뜸, 1988.
사진집
『아메리카 작품집』, 도서출판 시각, 1982.
『작품집 NUDE』, 도서출판 시각, 1984.
『홍순태 사진전집』, 사진과 평론사, 1991.
『끝없는 구도의 땅 티벳』, 서울, 불광, 1993.
『홍순태 사진집 1960-1994』, 사진예술사, 1994.
『홍순태 정년기념 사진집/존재』, 신구대 사진과, 2000.
개인전
제1회, <투시>, 미도파화랑, 서울, 1978.
제2회, <시점>, 미도파화랑, 서울, 1979.
제3회, <아메리카>, 롯데화랑, 서울, 1980.
현대칼라화랑, 부산, 1980.
어린이회관화랑, 춘천, 1980.
제4회, <한국의 미>, 삼일당화랑, 미국 L.A, 1981.
제5회, <동양을 통한 서양의 해석>, 미문화원, 서울, 1981.
<아름다운 미국>, 미국문화원, 광주, 1981.
제6회, <미국여성>, 파인힐 화랑, 서울, 1983.
제7회, <누드>, 한마당화랑, 서울, 1984.
제8회, <이 땅을 지키는 사람들>, 뉴코아화랑, 서울, 1987.
제9회, <포라로이드>, 조선화랑, 서울, 1987.
제10회, <시점2>, 파인힐 화랑, 서울, 1987.
제11회, <네팔과 히말라야>, 백상기념관, 서울, 1990.
제12회, <풍경>, 제일은행 본점, 서울, 1990.
제13회, <환상의 파리>, 파인힐 화랑, 서울, 1991.
제14회, <시점3>,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서울, 1991.
제15회, <북아프리카>, 일본, 1991.
제16회, <환상의 티벳>, 후지포토살롱, 서울, 1992.
제17회, <홍순태사진 콜렉션전>, 예인의 집, 서울, 1993.
제18회, <이스탄불>, 후지포토살롱, 서울, 1993.
제19회, <조형공간>, 예인의 집, 1993.
제20회, <부탄왕국>, 갤러리아 아트홀, 서울, 1993.
제21회, <홍순태 회고전 1960-1999>, 서울갤러리, 서울, 1994.
제22회, <무스탕 왕국>, 삼성포토갤러리, 서울, 1995.
제23회, <죠르단과 시리아>, 삼성포토갤러리, 서울, 1996.
제24회, <성산카일라>, 삼성포토갤러리, 서울, 1997.
제25회, B&W 일본의 인상, 한강갤러리, 서울, 1998.
제26회, Image of Painting, 시바포토갤러리, 서울, 1999.
제27회, <세계의 벽화>, 율동공원 갤러리, 성남, 1999.
제28회, <홍순태 사진전>, 성남시청 전시관, 성남, 1999. 8. 20.
제29회, <홍순태 2000>, 서울갤러리, 서울, 2000.
제30회, <홍순태 사진전>, 성남, 2000.
제31회, prospect of the korea society (1960s~70s) (60~70년대 한국사회의 조망),
김영섭 사진화랑, 서울, 2003.
제32회, <다시보는 청계천>, 김영섭 사진화랑, 서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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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하는 사람들이 요행이 아닌 끊임없는 노력으로 유명해져 국내 사진계를 짊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34번째 개인전 갖고, ‘실전과 이론 겸비한 사진가’를 키우는 홍순태 사진가를 만나다 -
사진계에서 ‘홍순태’라는 이름만큼이나 지명도가 알려진 경우는 드물다. 열심히 사진을 찍고 또 그만큼 사진문화의 보급을 위해 사회적으로 폭넓게 활동한 때문일 터다. 모르긴 몰라도 국내 사진가 중에 필름 소비량이 제일 많고 다룬 카메라나 이에 대한 정보가 제일 많은 것도 아마 그일 것이다. 최근 홍순태 작가의 34번째 개인전인 ‘마다가스카’전도 그렇고 그가 가지고 있는 사진 관련 서적도 그렇고 사진에 관한 지식이나 정보도 가장 그러하리라 생각된다.
이에 본보는 홍순태 작가를 직접 만나 그가 사진을 통해 어떠한 인생을 살아왔고, 향후 어떠한 사진인생으로 살아갈지를 들어봤다. - 편집자 주 -
▲ 홍순태 사진작가
■ 사진을 찍게 된 동기 및 본격적으로 사진작업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진을 즐겨 찍었는데, 대학에 들어가면서 부터는 사진이 좀 더 발전을 하더군요. 사진이 좋아지기 시작했던 거죠. 결국 저는 은행이나 기업 등 조건이 좋은 직장의 취업을 포기하고, 학교를 선택했어요. 왜냐하면, 방학 동안에는 촬영을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죠. 그리고 무엇보다 어렸을 적부터 꿈꿨던 세계 일주에 대한 꿈이 저를 그렇게 학교에 남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중간에 저는 제 자신의 실력을 테스트해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제 사진에 대한 테스트를 할 방법은 국전 뿐이더군요. 7~ 8년을 독학으로 사진을 배웠고,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국전에 제 사진을 출품했어요. 운이 좋았던지 연속으로 국전에 입선을 하게 되더군요. 그렇게 국전 추천·초대작가가 됐고 객관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부터가 제 본격적인 사진인생의 시작이었던 듯 싶습니다. 홍익대학교 미대를 시작으로 강의도 할 수 있게 됐고요.”
■ 스스로가 생각하는 ‘작가 자신의 작품 변화 모습’은 어떠한지요?
“제가 진정한 사진가로 정립될 수 있었던 건, 한국의 사진 장르를 기록물의 차원에서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 올린 작가로, 일명 ‘영상시인’으로 불리셨던 임응식 선생님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사진공부를 한 때입니다. 그 분에게 사사(師事)를 받고 나서 다큐멘터리 쪽으로 가게 됐습니다. 초기에는 미적인 시각의 사진에 주목했지만 사사 후 진실한 사회의 모습을 담는 기록주의자 입장으로 바뀌게 된 거죠. 그렇게 해서 두 가지를 하게 됐습니다. 한국의 전통미를 연구 보존해야겠다는 것과 서울이 고향인 만큼 서울이라는 주제로 서울을 평생 찍어야겠다는 것이었죠. 그런 생각을 가진 이후 저는 한국의 전통문화 사찰, 기와집과 초가집, 장터 등 한국의 전통미로 대변되는 소재들을 담았습니다. 또 서울을 주제로 한 사진들을 무척이나 열심히 찍었습니다. 아마도 저만큼 서울을 많이 찍은 사람도 없을 겁니다. 서울을 주제로 한 전시회도 가질 예정입니다. 아울러 지난 제 사진인생을 돌아본다면, 절반은 국내 또 나머지 절반은 1백30여 개국의 외국 사진을 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러한 변화 속에서 최근 작품 활동에 있어서의 변화가 있다면, 무엇인지요?
“단순한 기록이니까, 가급적이면 사진가의 주관이 개입 돼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누가 보더라도 객관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을 고집했는데, 최근 들어서는 ‘뉴 다큐멘터리’라는 개념처럼, 작가의 창의적인 생각이 개입되지 않고서는 객관성을 갖기 힘들다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퍼블릭(公衆)적인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죠. 단순한 기록 차원을 벗어나서 창작적인 이미지를 가미시켜 여론을 형성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남사당이 줄을 타는데 건너편으로 떨어지지 않고 가려면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 것이죠. 사진도 역시 마찬가지로 기록성에 치우치거나 창작성에만 치우치지 말고 서로 균형을 유지시켜야 합니다.”
■ 사진교육에 대한 철학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지난 1972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첫 출강을 시작으로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 성심여대를 비롯해 13년여를 강의한 덕성여대 등에 출강을 했습니다. 신구대의 경우는 처음 사진학과가 만들어지면서 20여 년을 교수로 강의를 했고요. 명예교수로 강의를 할 수 있는 것이 70세까지이고 현재 제 나이가 73세인데, 그렇다고 제 사진교육이 끝난 건 아닙니다. 현재도 신구대 사회평생교육원을 비롯해 성균관대 예술학부 등에서 교편을 잡고 있죠. 아마도 제가 죽는 날까지 사진교육은 멈추지 않을 겁니다. 물론 거창한 건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제 교육철학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사진가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사진 장르도 다른 예술 장르들과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의식이 없다면 결국 나오는 사진 결과물은 낙후된 사진일 수밖에 없는 거죠. 찍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또 이론만으로도 안 됩니다. 이론과 실기가 병합된 사진가를, 그러한 정신을 넣어주자는 게 제 교육 철학입니다.”
■ 디지털 시대의 사진 찍기에 대해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찍는 것만 가지고는 절대 안 됩니다. 엄청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요즘은 필름카메라보다 디지털카메라 공부를 더 해야 합니다. 디지털카메라는 단순히 카메라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사진 한 장 한 장을 놓고 ‘좋다’, ‘나쁘다’ 하는 식의 국부적인 평가를 했다면, 현재 뿐 아니라 앞으로는 단일 서브젝트 영상, 즉 흘러가는 맥이 이어지지 않으면 잘 찍은 사진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디지털 시대는 가히 종합예술이며, 또한 그래야 합니다. 때문에 접목이 필요한 겁니다. 그래서 제가 강의를 통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영상쇼 입니다. 1백 명의 사진가들의 사진을, 영상을 통해 보여 주고 느껴지는 게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거기에는 작가의 철학, 시각, 찍은 장소 등이 들어갈 것임으로 그 모든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거죠.”
▲ 홍순태 작가의 34번째 개인전 ‘마다가스카’ 제1부 ‘바오밥나무의 춤’ 중.
■ 사진가에게 사진을 찍는 것 외적으로 중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필름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를 모두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매개체를 사용하냐 보다 중요한 것은, ‘정리되지 않은 사진은 찍지 않느니만 못하다’는 겁니다. 제 자랑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저는 수백 만 장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물론 그 모든 사진들은 다 분류가 돼 있습니다. 일전에 개인적으로는 33번째 개인전이었던 ‘장 가는 길’을 보았던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로 프린터 했냐고들 묻더군요. 그건 전부 40여 년 전 필름으로 찍은 것들이고, 그 필름 원판을 현재까지 그대로 보관·유지해 왔을 뿐이라고 대답해 주면 모두들 깜짝 놀라더군요. ‘장 가는 길’이 끝나고 하루 뒷날인 9월28일에는 저의 34번째 개인전 ‘마다가스카’전이 열렸습니다. 제가 그렇게 많은 전시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많이 찍었기 때문이 아니라 정리가 잘 돼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필름이 됐든 디지털이 됐든, 원판을 잘 보존하고 관리하는 것이 작가의 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제 생각은 강의 시에도 중요한 내용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진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요?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진들은 현대 사진 시각에 눈을 뜬 작품들입니다. 다시 말해, 만들어진 논픽션이면서도 픽션에 가까운 사진들을 좋아합니다. 반면, 주관성과 객관성이 믹스가 된 기록도 아니고 파인아트도 아닌 사진들은 싫어하는 편입니다.”
■ 마지막으로 사진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거듭 반복해서 말하거니와 실기와 이론이 겸비된 사진가가 돼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새로운 것을 계속 노력해서 찾아내야 합니다. 기존의 카테고리 내에서 벗어나 제2, 제3의 시각과 시선을 만들어 내십시오. 예술이 쉽게 해서 되는 게 아니듯, 사진을 함에 있어 요행이 아닌 끊임없는 노력으로 유명해져 국내 사진계를 짊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터뷰 / 김정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