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에는 원래 16개의 성문이 있었다 한다. 의상능선을 비롯한 능선위의 12개 성문 외에 산성안의 내성에 있는 중성문(실질적인 문은 중성문 포함 13개 문)과 그리고 중성문옆에 있었다는 또 하나의 내성의 시구문, 중성문 아래와 대서문 아래에 각각 하나씩 수문(水門)이 있었다는 터가 있었다.
문헌에 의하면 이조 19대 왕인 숙종은 제위 46년 동안 많은 업적을 남겼다. 즉위 37년에 이 북한산성을 축성하고 44년에는 북한산성과 서울 도성을 중심으로한 방어시설의 완벽을 기하기 위하여 지금의 종로구 평창동 일대를 휘감는 탕춘대성(蕩春臺城)을 쌓기도 했다고 한다.
병자호란의 치욕을 당한 인조, 인질로 심양에 끌려가 쓰라림을 격은 효종에 의해 북벌론과 지리적 요충인 북한산 방어론에 의한 산성축성이 거론되었으나 아깝게 그만 일찍 돌아가시고 이어 숙종조에 와서 드디어 완성을 보게 되었다.
물론 사전에 많은 준비가 되어 있었겠지만 1711년 4월 3일 기공을 하여 만 6개월만에 성을 완성하였다는 사실에 다시한번 우리 선조들의 힘에 놀라움을 감추기 힘들다..
① 수문(水門)
대서문 북서쪽 근처 산성계곡에 있었던 폭 50척(15.5m)에 높이 16척(5m)인큰 규모의 수문(水門)으로 1925년 8월 을축년대홍수(乙丑年大洪水)때성돌과 장대석 하나 남기지 않고 완전히 유실되었다고 합니다.현재는 수구정이라는 음식점에서 보이는 시구문과 대서문으로 오르는계곡 양옆 산비탈에 남아있는 성곽의 흔적만이 이 두 성곽 사이의협곡에 웅장했던 수문(水門)이 있었음을 추측하게 할 뿐입니다.
※ 성곽의 배수를 위한 시설로 규모가 크고 문의 형식을 갖춘 경우수문(水門)이라고 하고 규모가 작은 것을 수구(水口)라 합니다.
②대서문(大西門)
의상봉(義相峯) 서북쪽 해발 150m 높이의 낮은 구릉지에 위치한 성문으로북한산성 성문 중 동서남북, 4개 방위중 서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인동시에 북한산성의 정문(正門)입니다. 지금의 문루(門樓)는 1958년에 당시경기도 지사 최헌길의 주도로 복원된 것이라고 합니다.
③중성문(中城門)
원효봉(元曉峯)과 의상봉(義相峯)을 직선으로 그은 중간 지점에해당되는 현재 산성주차장 일대에서 산성안 중심부에 위치한중흥동 계곡을 향하여 오르는 중간 지대 길목에 위치한 성문입니다.중성문(中城門)은 1998년 문루를 올리고 성벽도 말끔히 복원됐습니다.
산성매표소쪽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에서 바라본 중성문(中城門)입니다.특이한 점은 문 이름에 가운데 중(中)자를 써 중성문(中城門)이지만이곳에 쌓았던 중성(重城)은 무거울 중(重)자를 쓴다는 것 입니다.중(重)자는 '겹'이란 뜻도 있기 때문인데 북한산성에서 가장 수비가취약한 부분인 대서문(大西門)방면의 수비를 보강 하기 위해서안쪽에 쌓은 내성(內城)을 뜻하고 그 내성의 성문이 중성문입니다
④가사당암문(袈裟堂暗門)
의상봉(義相峯)과 용출봉(龍出峯) 사이 산능선 해발 488m 지점에위치한 성문으로서 부근 산성안에 국녕사(國寧寺)가 있다고 하여국녕문(國寧門) 또는 국령사암문(國靈寺暗門)으로도 불리웠답니다.
※ 암문(暗門)이란 노출을 꺼리는 출입통로로 출입문위에 문루(門樓)를세우지 않고 눈에 띄지 않게 몰래 출입 할 수 있도록 만든 문입니다.성안에 필요한 병기 및 식량등을 운반하고 적에게 포위당했을 때극비리에 구원을 요청하거나 적을 역습할 때 이 통로를 사용한답니다.참고로 현재 북한산성에는 모두 7개의 암문(暗門)이 남아있습니다
⑤부왕동암문(扶旺洞暗門)
나월봉(蘿月峯)과 증취봉(甑炊峯) 사이 산 능선 해발 521m 지점에 위치한성문으로 북한산성의 7개 암문(暗門)중 가장 규모가 크고 정식 홍예(虹霓)는아니지만 위쪽 성돌을 둥글게 파서 홍예문(虹霓門)처럼 만든 아름다운성문입니다. 최근까지 성문 우측에 '소남문'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었듯이이 암문(暗門)은 처음에는 소남문(小南門)으로 불리웠던 것으로 추정되며근처에 원각사(圓覺寺)가 있었기 때문에 원각사암문(圓覺寺暗門)이라고도불리우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부왕동(扶旺洞)이란 이름은 성안 동쪽에 있는부왕사(扶旺寺)로 내려 가는 계곡 일대를 일컫던 이름으로 보입니다.
※ 홍예(虹霓)란 성문 얼굴의 윗머리가 무지개같이 반원형(半圓形)이 되게만든 구조물 또는 그러한 구조로 만든 문 즉, 홍예문(虹霓門)을 말합니다
⑥ 청수동암문(靑水洞暗門)
문수봉(文殊峯)과 나한봉(羅漢峯) 사이 해발 694m 에 위치한 성문으로산성주능선과 의상능선 그리고 비봉능선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있습니다.
성 밖에서 바라본 청수동암문(靑水洞暗門)의 앞 모습입니다.청수동암문은 1999년에 해체 된 후 보수 되었습니다.
⑦ 대남문(大南門)
북한산성 성문 중 동서남북, 4개 방위중 남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으로처음 축조 당시는 문수봉암문(文殊峯暗門)으로 불리웠던 성문입니다.해발 715m 의 보현봉(普賢峯)과 해발 727m 의 문수봉(文殊峯)이라는두 거봉을 잇는 해발 663m 능선 한가운데 안부(鞍部)에 위치 해 있습니다.
성 밖, 정면에서 바라본 대남문(大南門)의 앞 모습입니다.서울시가 정도(定都) 600주년을 계기로 북한산성 복원계획을세워 1991년에 첫 번째로 문루(門樓)등 성문을 복원했습니다.여름철 구기동쪽에서 올라 오는 등산로에서 바라본 앞 모습입니다.참고로 대남문의 복원된 문루에 걸린 현판의 '대남문'이라는커다란 액자(額字)는 서예가 조재호라는 분의 글씨라고 합니다.
⑧ 대성문(大城門)
보현봉(普賢峯) 동북쪽으로 이어지는 산성 능선 해발 625m 지점에위치한 성문으로 북한산성 성문 가운데서 가장 큰 문입니다.원래 처음에는 소동문(小東門)으로 불리우는 작은 암문(暗門)이었으나성문 위치가 문 북쪽 기슭 행궁(行宮)이 있는 곳에서 이곳을 통과하여형제봉과 보토현(輔土峴-현재 북악터널 위쪽)을 경유하여 경복궁으로이어지는 편리한 코스에 위치하고 있어서 임금이 이문을 출입하게됨으로써 뒤에 성문을 더욱 성대하게 개축하여 임금이 출입하는 성문으로위용을 갖추고 이름도 대성문(大城門)으로 바꾼 것이 아닌가 추측된답니다.
※ 행궁(行宮)이란 임금이 국도(國都)의 왕궁 밖에서 머물던 별궁(別宮)으로북한산성 내 행궁은 산성을 축조하던 조선 숙종37년(1711년)에 지워졌답니다.
대성문은 대남문에 이어 1992년에 복원되었고 현판의 글씨도북한산성을 축조한 숙종임금의 친필을 집자해서 새로 걸었습니다대성문은 높이 13척(4m)에 폭 14척(4.5m)으로 대남문(11척/11척)과 대서문(11척/13척)에 비해 월등히 규모가 큰 성문입니다
⑨ 보국문(輔國門)
정확한 본래 이름은 동암문(東暗門)으로 대동문과 대성문 사이의해발 567m 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 아래에 보국사(輔國寺)가있었다고 하여 지금은 보국문(輔國門)이라 불리우고 있습니다. 보국문은 1993년 완전 해체된 후 복원 되었습니다.
성문 안쪽 성돌에는 북한산성을 축조 할 당시인 1711년에공사책임자와 기간 그리고 구간을 표시한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⑩ 대동문(大東門)
북한산성 성문 중 동서남북, 4개 방위중 동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으로우이동 진달래능선이 끝나는 해발 540m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지금의 문은 1993년에 문루(門樓)를 갖추는 등 화려하게 복원되었습니다. 대성문과 마찬가지로 1993년에 복원 당시 현판의 글씨도북한산성을 축조한 숙종임금의 어필을 집자해서 걸었답니다.
보국문과 마찬가지로 성문 안쪽 성돌에 축조 당시인 1711년에공사 책임기관과 구간을 기록한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⑪용암문(龍岩門)
정확한 본래 이름은 용암봉암문(龍巖峰暗門)으로 무인대피소인 지금의북한산장 부근 용암봉 기슭 해발 580m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과거 이 일대의 수비를 담당하던 용암사(龍巖寺)가 부근에 있었답니다. 용암문은 1998년 보수가 완료되어 복원 되었습니다.특이하게도 성문 뒷편에도 현판(?)을 걸어 놓았습니다.
⑫ 위문(衛門)
정확한 본래 이름은 백운봉암문(白雲峰暗門)으로 백운대와 만경대사이의 안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한산성 성문 가운데 가장 높은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위문(衛門)이라 일컫고 있는데,일제시대 때부터 그렇게 불리어 왔다고 합니다. 용암문과 마찬가지로 위문 뒷편에도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⑬ 북문(北門)
북한산성 성문 중 동서남북, 4개 방위중 북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으로원효봉(元曉峰)과 영취봉(靈鷲峰-현재 염초봉의 본래 이름) 사이의해발 430m 지점 안부(鞍部)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는문루(門樓)가 폐기되어 없어진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⑭ 시구문(尸柩門)
정확한 본래 이름은 서암문(西暗門)으로 대서문 북쪽, 수문(水門)에서원효봉으로 오르는 해발 180m 기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성안에서 생긴시신을 내보내던 문이라 하여 주민들에게 시구문(尸柩門)이라고불리웠고 이 이름이 원래 성문이름인 서암문(西暗門)을 대신하여고착화(?) 되어 현재도 성문에 '시구문'이라 쓴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부왕동암문과 마찬가지로 정식 홍예(虹霓)는 아니지만 위쪽장대석을 둥글게 파서 홍예문(虹霓門)처럼 만든 성문입니다.북한산성 암문중 유일하게 뒷편도 홍예(虹霓)형태 띄고 있습니다.시구문(尸柩門)과 연결된 성벽은 'ㄱ'자 모양으로 돌출되어 있어성문으로 접근하는 적을 측면에서도 공격할 수 있습니다.
첫댓글 14성문 3년전에 송기영.임성의 이창훈 최현주.임광주......(몇친구는 기억이않남 )친구과 윤형준친구의 도움으로 14성문을 답사한 기억이 있읍니다 다시한번 기회를봐서 답사하면좋겠읍니다 대장님 부탁해요
다음번 산행을 회장님과 논의 해보겠습니다. 구미가 당기시지요!!!
나도 개인적으로 2 ~3개성문은 가본거같은데 ... 회장님 세월이 지났으니 그동안 어떻게변했나 다시한번 흩어보자고요 ...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