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Manang에서
쉬기로 하니 몸과 마음이 여유롭다. 동네 산책을 나간다. 불과 4-500m 거리지만 가로등도 있고 버젓한 빵집도 있다. 오늘 다들
어디로 갈까? 날씨가 몹시 흐려 브리 일행이 걱정이다. Ice Lake를
무사히 갔다 올 수 있으면 좋겠다. Milktea와 Lightbreakfast를
주문했는데 Gingertea가 나온다. 그냥 마신다. Gingertea는 힘들게 올라 Gyurau에서 마셨던 것이 가장
훌륭했다. Lightbreakfast라는 것이 토스트 2, 계란후라이 2, 볶은 감자 4이다. 그리고 430R.이다. 비싸도 먹어야 그래도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편한
마음으로 먹으니 좋다. 3540m 이곳에서는 먹는 것도 천천히 먹어야 한다, 걷는 것처럼. 산소 공급량이 부족하니 장기의 기능도 따라서 늦을
것이다(내 생각). 식사를 하며 창 밖의 온통 하얀 산을
바라보니 아내가 생각나 눈물이 난다. 창 밖 아래로 보이는 마당은 온통 장작나무로 울타리를 쳐놓았다. 이래서야 히말라야가 살아남을까? 인간이 땔감으로 베어내는 속도보다
히말라야가 자연스럽게 키워내는 속도가 더 빠르다 치더라도 이들의 화기연료를 빠른 시일 내에 대체하지 않으면 히말라야는 죽을지도 모른다. 날씨가 흐리긴 해도 비가 올 것 같지는 않다. 강 건너 전망대를
찾아간다. 가만 있으면 뭐하냐. 걷기 위해서 구경하기 위해서
온 것이니 시간이 되는대로 돌아다녀야 한다. 가만히 앉아있는다고 쉬는 것도 아니다. 준비물을 아주 간단히 하고 08시에 호텔을 나선다. 어제 만났던 중국인을 또 만나니 서로가 어제보다 더욱 반가와 한다. Tilicho
Lake로 가는 중이란다. 강가푸르나 호수를 한참 아래 내려다 보며 오르는 길 우측은 아찔한
절벽이다. 전망대가 바로 눈 앞에 보이지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은 절대 아니다. 가다 보니 눈길이다. 눈도 보통 눈이 아니다. 초반에 길을 잘못 들어 좀 더 길게 눈길을 밟게 된다. 앞서 가던
사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가 갔으니 나도 갈 수가 있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이 곳에서 할 일이란 걷고 오르는 일 밖에 없으니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닌가? 눈길이
험악하긴 해도 한 발 한 발 조심해서 가면 되지 않을까? 나는 가도 남들이 못 가는 길이 있을지언정
남이 가는데 내가 못 갈 길은 없다. 한 시간 넘게 걸려 전망대에 오른다. 눈 녹은 옆 능선을 따라 조금 더 걸어간다. 한 프랑스 여성에게
내 사진을 부탁한다. 그리고 Tea House에 돌아왔는데
전망대 위 높은 곳으로 5명이 계속 오른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궁금하던 차에 따라간다. 고산에서는 잡힐 듯이 잡힐 듯이 잡히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더욱이 눈이 쌓였으니 더하다. 앞서간 발자국을 조심스레 따르지만
때론 실수로 허벅지까지 눈 속에 빠진다. 더 빠질 수도 있지만 나머지 한 쪽 다리에 걸려서 더 빠지질
못한다. 스틱을 꽂아 본다. 손잡이 끝까지 들어가고서도 끝이
닿지 않는다. 도대체 끝은 어디인가? 앞 사람 모습은커녕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고개 넘어 또 고개라더니 내 입장에서는 끝이 안 날것만 같다. 그러다가 깃발이 보인다. 제1 전망대를
지나 네 번째 급경사 눈길을 헉헉대며 오르니 엄청 큰 규모의 집터가 나타난다. 누군가 있을 것만 같은데
인기척이 없다. 커다란 쵸르텐에 두 명의 가이드와 세 명의 프랑스인이 서 있다. 이들이 나 보다 앞서 오른 사람들이다. 다짜고짜 가이드에게 사진을
부탁한다. 처음 내게 일본말로 인사를 한다. 나는 한국인이다. 다시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그도 몇 마디 정도는 할 줄 안다. 그들을 따라 하산이 시작된다. 가이드, 프랑스인 둘, 나, 프랑스인, 그리고 가이드 순으로 내려간다. 처음 가이드 하나가 나보고 천천히
내려오란다. 야 임마! 나도 배고파! 점심 먹으러 빨리 내려 가야 해! 너만 배고프냐? 그리고 네가 뭔데 나보고 빨리 가라 천천히 가라 참견이냐? 나 혼자
중얼거리며 중간에 끼었다. 출발하자마자 시끄럽고 수다스러운 프랑스 아줌마. 나를 잘 따르라고 했더니 긴 다리가 푹푹 빠지며, 재미있고 웃어
죽겠단다. 그러더니 이번엔 이상한 자세로 미끄러지더니 아줌마 두 다리 사이로 내 다리가 끼게 되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이 아줌마 재미 있다며 자지러지게 웃는다. 나도
함께 웃는다. 그럭저럭 제1전망대까지 내려와 다시 그들이
출발하기를 기다린다. 기왕이면 위험구간에서는 함께 움직이는 게 좋다.
그런데 이번에도 제2가이드가 나보고 천천히 오란다. 알았다, 이놈아. 치사하게 네 도움은 안 받는다. 그리고 내가 너보다 경력도 많고 경험도 많고 사건 사고에 대처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놈아! 먼저 가라! 오름 2시간 40분, 내림 1시간 20분만에 끝났다. 나는
결국 Mamang에서 하루를 쉬면서 당초 계획했던 셋(Ice Lake,
Chhonger View Point, Braga Gompa)중 하나 만을 다녀오기로 했는데 두 곳을 다녀온 셈이다. 욕심을 부린 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이 곳 사정을 단지 예측만하고
집에서 계획을 짰을 뿐이다. 생각지도 않게 사전 정보도 없이 가깝게 느꼈던 곳이 꽤나 멀고 힘들었다. 눈을 헤집고 다녔더니 등산화 양말 몽땅 젖었다. 숙소에 거의 도착할
무렵 길에서 아난다와 프렘을 만난다. 참으로 질긴 인연이다. 그의
일행은 내일 Ice Lake에 다녀올 계획이란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우선 치킨스프로 속을 달랜다. 아침에 본 빵집으로 간다.
서울에서 흔히 보던 빵 종류가 여러 가지 진열되어 있지만 300R.에 식빵 한 덩이만을
산다. 물론 서울과 비교하면 비싼 편이지만 숙소에서 제공하는 어떤 식사보다도 아주 저렴한 가격이다. 앞으로 이것으로 수 차례 점심을 떼 울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음식이 입에 잘 맞지 않는다. 억지로 먹는 것도 무척 어렵다.
차라리 굶고 싶을 정도다. 2시가 조금 안 되는 시각에 가느다란 눈발이 날린다. 브리는 Ice Lake를 무사히 다녀왔을까? 브리가 올까 봐 14:30 밖으로 나가 Braga쪽을 한 없이 바라보았지만 다른 사람만 보인다. Yeti호텔에
딸린 가게에서 wi-fi를 하루 500R.에 사용할 수 있단다. 너무 비싸서 거절했다가 다시 2시간에 100R.에 사용할 수 없느냐고 했더니 시스템 운영상 그렇게 할 수가 없단다.
하는 수 없이 500R.에 개통을 하고 아내와 눈물의 통화를 한다. 겨우 울음을 멈추고 잠시 통화를 했지만 역시 통신상태가 좋지 않아 소리가 끊긴다. 아내의 목소리는 맑고 명랑했다. 나보고 잘 있느냐고 한다. 소리가 자주 끊겨 카톡으로 주고 받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온다. 차가운
눈이 더욱 쏟아지는 길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브리는 보이지 않는다. 어떤 상태인지 알 수가 없다. 악천후 때문에 오늘도 Braga에서 머물지 아니면 내가 잠깐 한
눈 파는 사이에 다른 호텔로 들어갔는지 알 수가 없다. 또 다시 밖으로 나가보지만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네팔리인지 알 수는 없지만 고봉등정자의 모습으로 큰 배낭을 메고 지나간다. 아주 자랑스럽게, 어찌 보면 일반 트레커 들과는 다르다는 듯 주변을
무시한 채 당당하게 걸어간다. 무척 부러운 모습이다. 그리고
프랑스인 부부가 완전 무장한 채 눈을 맞으며 지나친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다. 내가 미소를 지으니 아는 채 한다. 나도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Ice Lake 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아마 어제 내가 Ice Lake를 마치고 차를 마시던 곳에 숙소를 정하던 부부 같다. 대충
이야기가 오늘은 날씨가 나빠서 어려웠다는 것인지 실패했다는 것인지 정확히 알아 들을 수 없지만 나를 보고 내가 묶고 있는 숙소로 들어온다. 어쨌든 반가운데 딸 같은 브리가 몹시 궁금하다. 영리한 아가씨니
잘 처신하고 있으리라 믿는 수 밖에 없다. 다시 카톡을 하려니 서비스지역이 아니란다. 얼른 판쵸우의를 쓰고 wi-fi 개통지역으로 가서 아내와 메시지를
주고 받는다. 아내는 나를 믿고 있지만 그래도 노파심에 이 걱정 저 걱정 걱정거리가 많다. 어제는 내 대신 천희 딸 결혼식에도 다녀왔단다. 두현이는 왜 카톡방에
전혀 나타나지 않을까? 5시까지 카톡을 하고 숙소로 철수한다. 다시
한 번 Manang거리를 거닐지만 브리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식당으로
바로 가서 900R.짜리 야크스테이크를 주문한다. 사실 브리와
클로디아를 만나면 오늘 저녁으로 야크스테이크를 사주려고 했다. 식당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법들이 다양하다. 휴대폰을 보는 사람, 인터넷을 검색하는 사람, 카드놀이 하는 사람, 그런데 나처럼 글을 열심히 쓰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야크스테이크가 철판 위에서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나온다. 뭔
소리냐는 듯이 모두들 쳐다본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했다.
야크 고기에 감자튀김, 당근, 양배추다. 어쨌든 산에서 처음으로 음식다운 음식을 먹는다. 야크 고기가 질기다고
이야기를 듣긴 들었는데 정말 질기다. 게다가 나이프는 고기를 자르라고 나온 건지 폼으로 나온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깨끗하게 맛있게 먹어서 다행이다. 가끔
이렇게 스테이크를 하는 집이 있어야 할 텐데. 7시 다 되었는데도 눈비는 그치지 않고 있다. 내일의 날씨가 궁금하지만 난 오늘도 Lucky Guy다. 마침 내가 쉬는 날 궂은 날씨이니 말이다. 미리 걱정 말고 내일
아침에 결정하자. 비싼 스테이크를 먹어서인지 종업원의 태도가 달라진 것 같다.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다. 더운 물 좀 달라고 했더니 금방 뜨거운
물을 물병에 담아 온다. 난롯가에는 프랑스 청년들이 둘러앉아 뭘 하는지 빈 틈이 없다. 하품이 나온다. 오늘은 아내와의 통화로 대만족이다. 난로 밑에 두었던 등산화를 들고 가서 잠을 청해야겠다. 그런데 어떤
놈인지 난롯가에 앉았다가 무심코 내 등산화를 건드렸는지 주둥아리 부분이 조금 탔다. 참을까 하다가 은근히
화가 난다. 종업원을 불러 누가 앉았었냐고 물어도 모른다고 한다. 다른
손님이 식사를 하고 있음에도 한국말로 욕을 하며 누가 앉았었냐? 찾아내라고 했지만 찾을 수가 없고 그
얼굴이 그 얼굴이고 그 놈이 그 놈이다. 한참 성질을 부리고 못 찾아내면 돈을 못 내겠다고 윽박지르고
내 방으로 왔지만 분이 풀리지 않는다. 다시 매니저를 찾아가 누군지를 찾아내라고 했더니 프랑스 청년들이
모여있는 방으로 안내한다. 그러나 그들은 난롯가에 앉은 적이 없다고 한다. 매니저는 사고였을 뿐이라고 발뺌이다. 나도 더 이상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그 동안의 비용을 안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실
신고 운행하는데 큰 문제는 없다. 해결 방안이 없으니 그만 참고 말자.
소 똥 한 번 밟았다고 생각하자. 내게는 아직도 한 달 반 동안의 여정이 남아 있다. 큰 사고도 아니고 경미한 사고일 뿐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타는
냄새가 났을 텐데, 아주 아주 괘씸한 놈이다. 누군가 한국
놈 성질 더럽다고 했겠다. 젊은 친구들이 밤 늦게 이웃은 생각 않고 술 취해 들어와 시끄럽게 소란을
피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