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이 살아 있는 오지 '충남 서산 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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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갈 땐 제맘대로 들어가도 나올 땐 그리 못한다. 하루에 두 번 바닷길이 열리고 닫히는 웅도. 때를 맞출 줄 아는 사람에게만 접근을 허용하는 섬이다. 그러나 내가 들어간 길이 바닷물에 덮이면 오히려 나 자신이 하나의 섬이 되어버린 듯 비로소 떠났다는 묘한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글·사진 | 정명국 (사진가·서산시청 press7773@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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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도 입구 |
웅도는 제부도처럼 간조 때에는 길이 열려 도보와 차량통행이 가능하고 만조가 되면 배를 이용하는 섬이다. 그러나 제부도와 달리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도 않고 문명의 혜택도 거의 없는 오지다. 관광객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섬이 다 그러하듯 주민들은 그저 섬의 앞마당인 갯벌을 터전으로 삼아 소박하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그 섬에 간다. 섬이 굳이 나를 부르지는 않지만 향기로운 갯내음과 소박한 삶의 모습이 그리워질 때 그곳에 가면 아담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복잡한 마음을 차분히 어루만져주기 때문이다.
행정구역이 충남 서산시 대산읍 웅도리. 가로림만에서 가장 큰 섬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곰이 웅크리고 앉은 형태와 같다고 하여 웅도라 했다는데 조선시대의 문신 김자점(1588~1651)이 역적으로 몰려 이곳으로 귀향을 오게 되면서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주민들은 대부분 섬의 남쪽에 마을을 형성하여 농사와 바다를 업으로 생활하는데 바다와 더불어 더 많은 시간을 살아간다. 많지 않은 농가지만 단정하며 깨끗하다. 섬주위의 이곳저곳 들풀과 잔잔히 파도어린 해안선과 수정처럼 속살이 비치는 바닷물을 촬영하고 하루정도 몸을 쉴 수 있는 인심 좋은 민박도 있다. 덤으로 운이 좋다면 하얀 달이 지고 동쪽에서 솟아오르는 붉은 태양도 맞이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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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도 분교 |
살아 숨 쉬는 갯벌과 소달구지 그리고 벚꽃
봄이 오면 아이들이 몇 안 되는 자그마한 웅도 분교에 벚꽃이 다투어 핀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냥 저혼자 피었다 지는 시골 분교의 벚꽃은 오히려 벚꽃의 홍수를 이루는 진해보다 더 운치 있게 다가온다. 더구나 저 아래 봄이 찾아온 갯벌에서는 바지락 채취 작업이 한창이다. 주민들은 함께 모여 그 흔한 경운기 한 대 사용하지 않고 달랑 바퀴 두개 달린 소달구지 위에 바지락 담을 망과 호미를 올리고 매서운 갯바람을 이기기 위해 겹겹이 껴입은 몸을 싣고 양식장으로 향한다. 벚꽃 사이로 바다를 내려다보면 그런 삶의 현장이 여느 관광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살아있는 봄을 진하게 전해준다. 물이 들어오기 전에 나갈 양으로 굽은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않고 살이 제대로 오른 바지락을 캐는 주민들. 이곳 역시 우리나라 대부분의 농어촌 마을과 같이 젊은이들은 도시로 나가 있어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깊숙한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내 아버지 어머니 같은 분들이다. 바쁘게 바지락채취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달구지를 등에 매단 누렁 소들은 늘 그러하듯 싣고 온 볏짚들을 그렁그렁 씹거나 무심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얌전히 주인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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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달구지 |
섬에서 장화를 챙겨 신고 바지락 채취장까지는 걸어서 약 편도 30분 거리. 미끄럽기도 하고 석화껍질들이 발바닥을 찔러 걷기가 그리 만만하진 않지만 질퍽거리며 가는 동안 갯벌에 사는 생물들을 볼 수 있어 마음이 즐겁다. 양옆으로 펼쳐져 있는 굴밭, 뻘 위로 햇살을 쪼이러 나온 통통하게 살 오른 쭈꾸미, 더듬이를 꿈벅이며 기지개를 켜는 농게, 그리고 소라...
한 시간쯤 주민들과 이야기도 나누며 촬영을 하고 달구지들의 행렬이 나오기 전에 부지런히 먼저 입구로 빠져나와 달구지의 행렬을 담을 알맞은 장소에서 기다린다. 한대 두 대, 바지락망을 가득 실은 달구지 행렬을 사진으로 담고 있노라면 어릴 적 방앗간에 벼를 싣고 가던 아버지의 달구지 한 귀퉁이에 몸을 싣고 신나했던 기억 속으로 빠져 든다. 그렇게 넓고 커보이던 초등학교의 운동장과 아버지의 가슴이 이젠 왜 이리 조그마하고 가슴 저린 공간이 되었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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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락 채취 작업 (왼쪽) 볏짚을 씹으며 얌전히 기다리는 누렁소 (오른쪽) |
힘겹게 작업을 마치고 싣고나온 바지락을 수협에 공동판매하고 가벼워진 달구지를 몰고 섬 동네 어귀를 돌아 귀가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마음으로 배웅한다. 다시 오리라 생각하며. 그때쯤이면 촬영으로 잊고 있던 허기가 갑자기 몰려오고 나는 습관처럼 대산읍 변두리에 위치한 자매 칼국수 집으로 향한다. 이름이 자매 칼국수집이지 정작 주인은 연세 지긋하신 노부부이다. 싱싱한 낙지, 바지락, 오징어와 갖은 야채를 듬뿍 넣은 해물칼국수는 웅도 촬영 후 나를 맞이하는 또 하나의 작은 기쁨이다. 노부부의 후덕한 미소 속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칼국수를 앞에 놓고 생태의 오묘함을 다시 생각한다.
봄이 찾아오면서 나들이가 잦아진다. 특히 사진애호가들은 저마다 장비를 들고 봄을 찾아 나선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여느 관광지가 싫다면, 삶의 진솔한 현장을 느끼고 싶다면, 서산의 웅도를 권하고 싶다. 물론 이 섬이 행여 관광지가 될까 걱정스럽지만 봄이 가기 전에, 벚꽃이 지기 전에, 싱싱한 쭈꾸미가 들어가기 전에 한번 봄바다를 보러 오면 좋을 것 같다. 특히 아이들 손을 잡고 오면 아이들에겐 좋은 체험이 될 것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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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하는 주민들 |
찾아가는 길
웅도는 충남 서산시에서 북서쪽으로 16㎞ 해상에 위치하며, 대산읍 북쪽의 육지 끝에서는 700m 떨어져 있다. 육지와 연륙되어 간조 때에는 도보와 차량 통행이 가능하고, 만조 때에는 선박을 이용한다.
대중교통 이용시 서산버스터미널에서 웅도 시내버스 이용(1시간 20분 소요)
자가용 이용시 1. 서해안 고속도로 서산 I.C→운산→32번국도→서산→성연→대산→오지리→웅도 2. 경부고속도로 천안 I.C→22번국도→예산(45번국도)→해미→서산→성연→대산→오지리→웅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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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도 갯벌(왼쪽) 웅도에서 채취한 바지락(오른쪽) |
사진예술 2006년 6월호 104~107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