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첫사랑이 있기 마련인데 남자에게 있어 첫사랑은 좀 특별한 것 같습니다.
첫사랑의 개념은 처음 사랑이지만 요새는 당사자가 첫사랑으로 치고 싶은 사람이 첫사랑
이랍니다. 응쌍팔 18회는 악동 5인 방이 스물네 살이 된 1990년으로 상황 설정을 합니다.
저는 그 시절 서울에 완전 상경하여 대우자동차 딜러를 하고 있었는데 돈벌이도 신통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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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고 첫사랑도 별 볼일 없어서 돌파구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선을 보았고 소개팅으로
만난 지금의 아내와 내 청춘을 담보로 한 도박을 했습니다. 채팅이 유행하던 시절 언제나
유행에 민감하고 빨랐던 정봉은 천리안을 즐겨 사용합니다. 586 모니터가 정겹습니다.
오늘 날 우리나라가 인터넷 강국이 된 것은 IMF와 국민PC가 일조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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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국민 PC로 컴맹을 탈출했으니까요. 성균네 집을 항상 통화중으로 만들어버리는
정봉은 채팅 덕에 다시 한 번 기회를 잡게 됩니다. 잊으려 해도 잊지 못했던 운명의 여인
만옥을 다시 만나게 될 것 같습니다.'퀴즈로 배우는 상식' 방을 운영하며 그 재미에 흠뻑
빠진 정봉은 단어를 던져 답을 찾아가는 단순한 방식이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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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여행'이라는 단어에 당연한 답들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메기의 추억'이라는 닉을
가진 이가 '브루마블'이라는 답을 내놓았습니다. 각설 하면 '종로에서 일요일 5시에
만나자는 내용입니다. 2층에서. 복권은 아무나 일등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운수대통 손
복 있는 정봉이 선물해줬던 그 분홍 셔츠를 입고 나갔고, 갈비뼈가 으스러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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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힘껏 안았습니다. 정봉 고놈 참 독자에게 묘한 감동을 넉넉히 주는 녀석입니다.
이들의 운명적인 재회는 그렇게 극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짝, 짝, 짝. 저는 정봉이보다
8년 전에 “86 팀 스피리트”를 나갔다가 피아노 치는 여자를 만났고 응쌍팔 무렵 이별을
경험한 스무 살의 과거가 있습니다. 그리고 17년이 지나 2004년도에 다음 카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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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기"에서 정봉 이처럼 극적으로 만났습니다. 사실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지만 첫사랑만큼 맹목적인 것도 없기 때문에 첫사랑의 감정만 남아있다면
썸을 건너뛰고 케미로 갈 수 있는 잇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첫사랑이 위험한 것입니다.
50점을 먹고 들어가니까. 택이 생일에 간만에 모인 친구들 모두 잘 들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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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친구야! 정팔 이는 공사에 입대 해 조종사가 되었고, 세계 최고의 바둑 기사
최택 이 승승장구입니다. 전교 1등 선우는 제법 폼 나는 레지던트, 춤꾼 도용용은
음식점을 하며 삽니다. 그리고 예쁜 덕선 양은 스튜어디스가 되었으니 악동 5인방은
다들 출세했습니다. 근데 왜 택이 생일 파티만 하는 지 누구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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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 복만 입으면 도라 이가 되듯이 악동들도 모이면 시망스럽습니다. "내가 찼어."를
외치는 덕선 이에게는 이것이 항상 콤플렉스입니다. 그녀는 "차였다와 찼다"는 민감할
수밖에 없는 모양입니다. 우리 때는 "내가 먹었다"로 센 척 했는데 말입니다. 친구들과
간만에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보기로 했지만, 그날이 하필 디데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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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콘서트"에 가기로 했던 덕선은 삐삐 음성 메시지를 통해 그 남자가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또 "차인 년"이 되고 말았습니다. 쉿, 아직 친구들은 모르는 상황,
덕선은 엄마 심부름을 하러 나가다 친구들을 만난 것은 운명의 장난입니다.
콩나물을 사러 나왔다가 슬리퍼를 끌고 콘서트 장까지 가야했던 덕선은 불쌍한 콩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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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앞에서는 숨기고 싶었던 초라한 자신. 그런 그곳에 누군가가 찾아왔습니다.
택인가, 정환인가? 이제 보니 덕선이가 만나는 놈은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는 것이
아닙니까?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을 봤나. 바둑이는 화장실에서 덕선이 선배를 통해 듣게
되었고, 정환은 동룡이와 극장에서 덕선이 소개팅 남이 콘서트를 봐야 할 시간에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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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극장에 온 것을 직접 보고 확신합니다. 늘 망설이기만 했던 정환은 영화 보다말고
갑자기 뛰쳐나갑니다. 카메라는 정팔이를 주목해야합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 생각한
정환은 그렇게 미친 듯이 차를 몰았습니다. 그래봤자 이번에도 한 발 늦었으니 다시
찾아온 좌절은 필연입니다. 좀 더 자신이 빨리 갔다면, 혹은 신호등에 걸리지만 않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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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는 자신의 차지였다고 기차 떠난 뒤에 후회하는 정환이가 안 됐습니다.
불쌍한 놈. 쯔 쯧. 택이의 대국 기권 소식이 충격이긴 한데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차지한다는 것을 확인사살 시켜줬습니다. 사랑이란 타이밍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간절한지에 대한 문제였고, 그 간절함의 승부에서 정환은 또 택이에게 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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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사법연수원에 있는 보라는 친구의 미팅 권유를 받습니다. 절 친의 아버지가 소개한
본 과 천재 "미친개" 랍니다. 보라 표정이 묘한데 나가려는 모양입니다. 하여튼 가시나들은.
보라와 선우는 쌍문동 골목길에서 우연하게 마주쳤지만 둘은 의례적인 인사만 하며 지나
갔습니다. 별똥별이 떨어지던 날 이별을 한 후 그들은 그렇게 낯선 존재가 되고 말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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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들이 운명처럼 다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거 너무 짜 집기 한 것이 티 나는데
한번 봐줍시다.'천재 쓰레기' 김 재준은 선우와 같은 과 친구입니다. 마이 콜을 통해
알게 된 재준은 족보를 넘기는 조건으로 선우의 삐삐 번호를 얻어갑니다. 그리고 이는
장난처럼 선우와 보라가 다시 강렬한 운명의 끈으로 연결되는 이유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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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연수생 소개팅도 거부할 정도로 재준에게는 오직 나정이 밖에는 없습니다.
특별 출연을 통해 응답하라 전편과 후속 편을 묶어 버리는 감독의 연출력은 뭐지?
재준의 선택으로 선우는 소개팅 자리에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차피 한 번은 들어줘야
할 빚이 선우에게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뜬금없는 자리에서 마주한 선우와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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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에서 보라는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전합니다. 똑 부러진 보라는 1%에 걸고 미팅에
나왔답니다. 선우가 그 사람이기를, 그것도 아니라면 이 사실을 선우가 알기를 바라고서.
"미친 소리 같지만 보고 싶었어." 아, 아름다운 밤입니다.
또 한편, 바보처럼 자신이 그렇게 사랑했던 덕선에게 좋아한다는 고백조차 못해봤던 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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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공사 졸업반지인 "피앙새 반지"를 들고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에 가지고 나갑니다.
그리고 정환은 덕선이에게 그 반지를 건넵니다. 오래 전부터 덕선이를 좋아했답니다.
함께 등교하기 위해 1시간이 넘게 기다려야 했고, 독서실에서 늦게 오는 덕선이로 인해
잠도 자지 못하고 안절부절 했었답니다. 완전 감동입니다. 내가 덕선이라도 뻑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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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극적인 상황이 만들어지는 듯했던 그 순간 정환은 그 모든 것이 동룡이의 바람을
들어주기 위한 농담으로 치부해버립니다. 뭐야? 장난이야, 픽션이야? 관건는 정환이의
고백을 들은 덕선이의 표정입니다. 택이가 오지 않아 반복적으로 출입문을 바라보던 덕선.
그런 변화를 누구보다 민감하게 바라본 것은 정환입니다. '이승환 콘서트'장 앞에서 택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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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선을 위해 달려온 것을 알고 있었던 정환은 덕선이가 택이를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다고
확신한 것 같습니다. 그런 확신이 그 허무한 고백으로 이어지게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장난이라는 말 뒤에도 덕선이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놀라는
것과 달리 덕선이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정환이의 고백이 장난이 아닌 진심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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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을 덕선이는 믿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택이와 덕선이의 콘서트 데이트가 정환이가
상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는 의미로 다가옵니다.영화 "포레스트 검프"가 중요하게
다가온 이유는 그저 당시 유행했던 영화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직한 바보 검프의 거짓말
같은 여정 속 운명과도 같았던 연인과의 사랑을 담고 있다는 것은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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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중에도 전쟁 영웅이 되어 수많은 이들의 환영을 받던 검프가 '링컨 기념관' 앞 호수를
가르며 달려오는 제니와 재회를 하는 장면은 그저 우연처럼 쓰이지는 않았습니다.
오벨리스크가 보이는 그곳에서 제니와 재회한 검프의 모습과 덕선을 향해 달려가던 정환.
검프처럼 우직하고 바보처럼 앞만 보고 달린 정환에게는 덕선 밖에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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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프에게 먼전 손을 내밀고 평생의 연인으로 살았던 제니. 그 사랑이라는 단어와 동일한
제니를 향한 검프의 마음이 곧 정환이가 아닙니까? 혹시라도 술자리를 옮기는 친구들
때문에 테이블에 남겨진 '피앙새 반지'는 걱정하지 마세요. 설마, 유나가 그 것 가지러 올
일도 없고, 내일 당장 술집 철거할 것도 아니니, 덕선이가 가져가겠지요. 허-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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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첫사랑이란/문신처럼 영원히/지워지지 않는 문신사랑,
싸늘한 바람이 스칠 때마다/가슴속 깊이 담겨 있는/첫사랑은 살포시 고개를 든다.
2016.1.10.sun.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