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3 현장체험학습이 遠足원족이나 逍風소풍으로 바뀌어야한다.
아침 자습으로 화요일과 목요일은 체육관에서 체력훈련을 하는데, 오늘 운동을 마치고 나올 때 지우가 “롯데월드 현장학습 갈 때 집에서 도시락 싸는 대신에 거기서 사먹어도 되는가요?”라고 물어본다. 접입가경이다. 잘못의 단초가 학교에서 나갔기에 가정에서도 그 틈새로 들어온다. 학교와 가정, 사회가 모두 타락하는 현장 속에 나 역시 함께 있다. 잠시나마 거기서 벗어나 주위를 둘러본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자각은 외부에서 왔다. 태권도 동료인 매튜 다우마 사범이 내가 스카우트 지도자라는 것을 알고 캐나다의 사례를 들려줄 때 심히 부끄러웠던 기억이 지금도 강렬하게 남아있다. 매튜는 미시간 호수에서 가까운 곳에 살았는데 거기도 큰 곰이 민가로 출현한다고 한다. 때로는 학교 운동장까지 내려와서 휴교가 되기도 한다는데, 매튜의 경우 초등학교 때 스카우트 대원으로 3학년부터 장총 사용을 배우고 겨울 영하 30도에서도 야영을 했다고 한다. 이를 이끄는 스카우트 지도자는 자원봉사자로서 지역의 어른들이 담당하여 그야말로 그 책임감과 권위가 대단하다고 한다. 매튜의 추억으로 인해 나 역시 매튜에게 존경을 받았으니 얼마나 부끄러웠겠는가? 캐나다와 우리가 다를진대 우리가 너무나 안이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서 당시 스카우트 활동을 조금이라도 차별지우기 위해 태권도, 구보 등으로 꽤나 열심히 했었다. 스카우트 활동마저 학교에 들어오면서 그 야생성과 건강성과 절도감을 잃어버리지 않았나 짐작한다. 학교가 아닌 야생성과 건강과 절도를 회복할 수 있도록 지역의 자원봉사자에게 열어주어야할 것이다. 소수정예로 가는 것이 적절하다.
일본 여행에서 나의 스카우트 단복을 보고 명문 쿄토대학 학생들이 나를 깍듯하게 대해준 기억도 이채롭다. 이유인 즉 일본에서도 스카우트 활동은 캐나다와 비슷하게 굉장히 힘든 과정이기에 소수 정예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활동이었던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강한 정신력과 인내심을 북돋우는 스카우트 지도자에게 존중감을 표현할 정도로 캐나다와 일본에서는 자라나는 미래세대에게 중요한 활동이 무엇인가를 자각하고 지키고자 노력한다.
일제 강점기를 체험한 아버지로부터 遠足원족과 수학여행을 들었을 때, 내가 체험한 逍風소풍과 수학여행을 비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을 돌이켜본다. 일제 강점기엔 원족이라 하여 도시락과 물만 들고 유적지나 경승지를 다녀오는 것이 한달에 한번 있었다고 한다. 지금 한 학기에 한번 이루어지는 현장체험학습과 비교된다. 걸어다녀야 했으니 당시 교사나 학생들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두 다리로 삶의 공간을 누볐던 것이다. 나 역시 어렸을 때 遠足원족에 해당하는 逍風소풍을 꽤나 멀리 다녔던 기억이 생생하다. 적어도 초등학교 때는 걸어다녔다. 가서는 짐을 풀고 김밥과 음료수, 과자를 먹고 게임과 장기자랑 등을 하고 다시 먼 길을 걸어왔다. 참 그리운 추억이 되었다. 미래세대에도 물려주어야할 풍경 아닌가? 적어도 이날만큼은 엄마표 김밥을 맛볼 수 있고, 그동안 먹을 수 없었던 사이다도 마시고, 보물찾기도 하고 놀았던 것이다. 중학교 때는 산으로 갔는데 그곳 골짜기에서 가재를 잡다가 잡고 있던 큰 돌을 놓는 바람에 가재를 잡던 친구의 손가락이 잘려나가는 사고가 있기도 했다. 선생님께서 잘린 손가락을 수습하여 긴급하게 돌아가 해군본부 안에 있는 병원에서 봉합 수술을 했으나 결국 실패하여 이후에 엉덩이 살로 수술하는 경과를 치르기도 했으니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 경승지로 떠나는 소풍을 내 몸 속에 저장되어 있다. 떠나온 고향이지만 그런 곳이 가끔 그립다. 아마도 그 속에 소풍의 추억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이웃 일본은 일제강점기에 우리가 체험한 遠足이 아직도 건재하다. 얼마나 건강한 족속들인가? 얼마나 고향을 아끼겠는가? 말로만 지방자치를 떠들게 아니라 자기 고향을 사랑하는 체험을 어른들이 미래세대에 심어주어야할 것이다. 학교 교사가 학생들을 이끌고 먼 길을 다녀오는 遠足원족은 일본 전통이라고 버릴게 아니라 오히려 배워야 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스라엘도 자기네 조상들이 누볐던 역사적 유적지인 사막을 걸어다니며 향토애와 조국애를 몸소 겪는다고 하지 않는가? 제도를 핑계대고 편하게 타락하는 우리의 현장체험학습을 변혁시키지 않고서는 학교가 권위를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롯데월드에 가서 놀이기구를 타는데 엄마표 도시락이 무슨 소용인가? 간단히 햄버거로 때우면서 놀이기구를 한번이라도 더 타는 것이 장땡이다. 도무지 뭘 체험하고 시간이 흘러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 학교에서 뭘 해주었는지 항의라도 할까 두렵다. 지금 이대로라면 나는 빨리 죽는 게 나을 것이다. 어찌 나중의 회한과 망조를 견뎌내겠는가? 제도를 변혁시키지 않고서는 같이 침몰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생각을 오래하면 해로울 뿐이다. 운동이나 해야겠다.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