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재경동문들과 버스를 대여해 중학교 체육대회에 다녀왔다.
6신 반경에 서둘러 출발했는데도 몽탄에 도착해보니 10시가 넘었고 행사는
상당히 진행이 된 상태였다. 대로에서부터 학교까지 꽉 찬 승용차들 때문에
버스를 큰길가에 주차해 놓고 걸어가야 했는데, 수많은 차들이 세월 따라
모든 것은 변한다는 제법무상의 진리를 웅변하고 있었다.
중학교 때는 등교를 하려면 북재등을 지나 한참을 걷다 건널목을 건넌 후
철길을 오른쪽으로 끼고 걸었는데 지금은 철길이 왼쪽으로 이설되었고
철길 밑을 통과해 학교를 가야 했다. 대로에서 중학교까지 버들은 다 베어
없어지고, 내리 남천 앞 앙상한 서해안 고속도로의 교각에 대비되어서인지
학교 앞 전경에 뭔가 메마른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교사(校舍)는 기본구조를 옛날 그 모습대로 하며 초라히 버티고 있는데
작년에 개관한 꿈여울관 이란 이름의 체육관이 본 건물과는 어울리지 않게
큰 모습으로 운동장 왼쪽에 들어섰다. 그나마 숙직실 뒤의 하늘을 찌를 듯
곧게 자란 메타세콰이어가 사십년 전부터 현제까지의 시간을 관류하며
의연히 서있다. 그 위용은 누구 선생님이 누구를 안았다는 전설 같은
소문을 아름답게 변색하고도 남음이 있다.
몽탄중 교지 ‘꿈여울’을 보니 올 2013년에 40회 졸업생 21명을 배출했고,
우리는 3회로 1976년도에 221명이 졸업했다. 그러니까 졸업한지 37년 만에
중학교 땅을 다시 밟아 본거다. 강산이 세 번 변화고도 7할이 더 변했을
세월이다. 오십 년 만에 갔건 백 년 만에 갔건 다른 사람에게는 오불관언
이겠지만 개인적 소회가 없을 수가 없다. 회향(回鄕)이 공간적으로 얼마나
멀고 가까웠건 간에 또 시간적으로 짧고 길었던 간에 세상에 대한 전투력과
적의를 잠시 내려놓고 동문들의 축제 마당에서 옛 순수한 동심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그게 바로 금의환향이라고 생각한다.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는
순수한 마음은 재물이나 높은 관직과 비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자리에 참석한 동문 모두는 금의환향 했다.
서울에서 함께 내려 간 석원 갑봉 기완 광주에서 미리와 있던 동식 그리고
고향의 영열 영준 종팔 성진 상렬 등이 우리 동기들의 면면이었는데,
서교 친구들은 하루 전에 함평에서 모임을 갖은 후 참석 못하고 곧바로 흩어져
아쉽고, 가까이 사는 친구들도 생각보다 참석을 하지 않은 것 같아 서운했다.
그날 하루 내내 전화를 받지 못했는데 뒷날 보니 몇몇 친구들의 번호가 찍혀있었다.
참석 못해 미안하다는 애기일건데 은심 일순 수현은 종아리라도 때리고 싶다.
맛있는 밥에다 선물까지 들려준 영열이는 참으로 고맙구만~
사실 나는 고향에 가는 것을 한동안 저어했다. 고향 분들을 만나면 일단
대화의 시점이 과거로 돌아가게 돼 생각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것을 떠올려야
할 때가 많고, 중간의 역동적인 삶이 이해되지 않은 채 현재의 표피적인 것을
가지고 다시 과거와 대비해 설명해 야 하는 이중고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금 뱃지를 단 어떤 분이 오셔 지금 뭐 하냐 묻기도 하고
관에 근무하는 후배는 형님동기들 종종 만나는데 부군수로 나가기 시작했다며
그들의 안부를 전하기도 했는데 난감했다. 외지인으로 고향에 근무하는 사람이
인사를 하는데도 긴 세월 때문에 순간 그 얼굴을 몰라 봤을 때는 정말 미안하기도
했는데,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도 고향 냄새와 생명이 통통튀는 후배들에게서
내가 그동안 잊고 지냈던 내 삶의 원형질을 다시 발견한다는 것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내 인생에 있어 또 다른 변형의 출발점에 서고픈 욕망이 일기도 했다.
세월이 그만큼 무섭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자신과 타인에 대해 좀 더 객관적이 되고 세상을
편안히 관조 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나는 우뚝 솟은 산과 굽이져 흐르는 강, 잔잔한 평야를 모두 가지고
있는 몽탄 사람들은 인접지역 사람들에 비해 정적인 부분을 생득적으로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귀경길 버스에서 귀여운 후배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서 승달산과 연증산의 기개도 함께 충만히 가지고 있는 것을 알았다.
노령의 끝단 풍수적으로도 드물게 좋은 곳을 택하여 조물주께서 내 코에
입김을 불어 넣어 주신 후 어느덧 육십갑자 한 바퀴의 수레를 다 돌리려 한다.
또 다른 한 바퀴가 남아있는지 아니면 반 바퀴가 남아 있는지 모르겠지만
모교를 방문하고 오니 많은 소회가 인다.
개인적 입지와 허명을 위하는 사람들에 의에 휘둘리지 않고
몽탄중동문회가 영원이 이어졌으면 한다.
VIVA! 몽중
임웅균 모음곡 -끝없는 사랑- 외
01. 임웅균 - 끝없는 사랑
02. 임웅균 - 고귀한 사랑
03. 임웅균 - 초우
04. 임웅균 - 나그네
05. 임웅균 - 떠나는 마음
06. 임웅균 - 표정
07. 임웅균 - 허공
08. 임웅균 - 내 맘의강물
09. 임웅균 - 사랑하는 마음
10. 임웅균 - 청산은 날 보고
임웅균 모음곡 -끝없는 사랑- 외
첫댓글 수고 많았습니다. 모교를 방문한 소회를 피력해 주니
그 때의 추억이 아스란히 떠오릅니다.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이러저러한 핑계로 함께 하지 못해
많이 아쉽고 자책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