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1구간, 2022. 6. 6.(월) - 음력(5. 8.), 일출 05:15~일몰 19:42
2구간, 2022. 6. 16.~18.(목~토) - 음력(5. 18.~20.). 일출 05:15, 일몰 19:48
●산행지: 천황지맥(天皇枝脈) 2구간 졸업
●산행코스: 서구이재-2.7km-팔공산(1151m)-1045m봉-마령재-성수지맥분기점(861m)-655m봉-비행기재(719번도로)-개동산(845.9m)- 말치고개(751번도로)-상서산(627.4m)-850m봉-상서바위(840m)-천황산(909.6m)-천황봉재-남대문치(634m)-553m봉-구라치(세멘도로)-약산(448m)-청룡산분기점(461m)-갈치(721번도로)-381.3m봉-뒷밤재(17번도로)-수동고개(745번도로)-242m봉-분토고개(2차도로)-노적봉(565.1m)-신재-풍악산(605m)-응봉(575m)-423.4m봉-사리재-374m봉-비홍치(24번국도)-비홍산성(306.7m)-문덕봉(599.7m)-고정봉(597m)-그럭재-삿갓봉(624m)-고리봉(708.9m)-신기철교(730번 도로)-요천/섬진강 합수점
●먹거리: 생수1.5리터, 캔맥, 오징어포, 마늘바게트, 빵3, 양갱, 단백질바, 자유시간, 사탕20, 게비스콘2
●준비물: 하계텐트, 바람막이, 메트, 스틱, 헤드랜턴, 구급약, 피부연고, 부직반창고, 충전지3, 충전짹, 손수건, 면수건, 휴지, 물티슈, 팔토시, 비닐우의, 안대, 귀마개, 마스크, 양말, 여분의류, 띠지20
●거리: 약 14.1+61.6=75.7Km
●소요시간: 6.43+44.43=51.26h
●누구랑: 나홀로
●경비 1구간: 고속버스15,100, 시외버스7,800, 7,600, 점심7,500, 저녁72,150, 모텔35,000, 편의점5,700, 택시15,000, 뒤풀10,000, 고속버스25,200
2구간: 고속버스: 13,800, 시외버스7,600, 택시23,200, 택시9,600, 뒤풀18,000, 고속버스25,200
●날씨: 1구간 15~25, 비, 2구간 16~30, 둘쨋날 정오 소나기
●산행경과:
* 6. 6.(일) :
- 05:21 : 서구이재(西九耳峙, 850m)/ 서구리치
- 06:20 : 팔공산(八公山, 1,151m)/ 천황지맥분기점
- 07:26 : 마령재(馬靈峙)/ 오두막
- 07:38 : 성수지맥분기점(861m)/ 삼면봉(진안군 백운면 → 장수군 장수읍, 산서면)/ 임도삼거리
- 09:35 : 비행기재(530m)/ 비행기고개/ 읍면계(장수읍 - 산서면)
- 10:57 : 개동산(847m)/ 묘복산(猫伏山)
- 12:04 : 말치고개(526m)/ 화장실, 식수, 전망대
* 6. 16.(목) :
- 10:58 : 말치 출발
- 11:10 : 상서산(上瑞山, 628.9m)/ 삼각점봉/ 읍면계(산서면 - 장수읍)
- 11:47 : 동막골봉(807.4m)/ 사계분맥 분기점/ 시군삼읍면봉(장수군 장수읍, 산서면 → 남원시 보절면)
- 12:20 : 풍암산(風岩山, 852.7m)/ 바람바위산/ 시군삼읍면봉(남원시 보절면, 장수군 장수읍 → 장수군 번암면)
- 12:35 : 삼배재(825m)/ 시군면계(남원시 보절면 - 장수군 번암면)
- 12:48 : 상서바위(上瑞巖, 839.6m)/ 시군삼면봉(남원시 보절면, 장수군 번암면 → 남원시 산동면)/ 대성분맥 분기점
- 13:40 : 천황산(天皇山, 909.6m)/ 만행산, 萬行山)/ 나무데크 전망대
- 15:15 : 귀정사갈림길
- 15:28 : 663.2m봉/ 연화봉갈림봉
- 15:42 : 남대문치(南峙, 663.6m)
- 15:55 : 522.1m봉/ 삼각점봉
- 17:23 : 구라치(求螺峙, 310m)/ 면계(산동면 - 보절면)
- 18:22 : 약산(藥山, 450.9m)
- 19:27 : 461.4m봉/ 청룡산분기점(-0.9km)/ 삼면동봉(남원시 보절면, 산동면 → 갈치동)
- 19:55 : 갈치(葛峙, 220m)/ 동면계(남원시 보절면 - 갈치동)/ 721지방도로/ 비박
* 6. 17.(금)
- 05:28 : 갈치 출발
- 06:20 : 고산봉(高山峰, 427.1m, -1.4km)분기점/ 삼면경계면(남원시 보절면, 갈치동 → 광치동)
- 06:30 : 에끼재/ 여시재/ 여우고개(狐峙)
- 06:48 : 책여산(380.5m)/ 삼면봉(남원시 광치동, 보절면 → 사매면)/ 계룡산분기점
- 07:41 : 대신리-에끼재(호치) 도로/ 돈사
- 09:38 : 나분들고개(387m)/ 나분덜재/ 임도
- 10:10 : 뒷밤재봉(371.6m)/ 삼각점봉
- 10:21 : 뒷밤재(240m)/ 휴게실/ 백의종군로
- 10:30 : 왕묘산(王墓山, 322.9m)/ 왕재산
- 11:09 : 꽃쟁이재/ 안부사거리/ 삼면동봉(258.9m)/ (남원시 사매면, 광치동 → 대산면)/ 교룡분맥분기점
- 12:41 : 2차선 포장도로/ 수동고개/ 관개수로
- 13:13 : 계동(桂洞)고개(250m)/ 분토고개
- 14:03 : 심곡재 임도
- 15:07 : 노적봉(露積峰, 565.1m)/ 삼면봉(남원시 대산면, 사매면 → 순창군 동계면)/ 헬기장
- 15:44 : 신치/ 시군면계(순창군 동계면 - 남원시 대산면)
- 16:50 : 풍악산(楓岳山, 606.9m)/ 시군계(남원시 - 순창군)
- 17:49 : 응봉(580.8m)/ 매봉/ 웅산/ 헬기장
- 18:45 : 상의령갈림길
- 18:51 : 십자산(423.4m)/ 삼면봉(남원시 대산면, 순창군 동계면 → 남원시 대강면)
- 19:29 : 사라재/ 면계(대산면 - 대강면)
- 20:02 : 달봉(374.5m)/ 삼면봉(남원시 대강면, 대산면 → 주생면)
- 20:11 : 비홍치(飛鴻峙, 240m)/ 면계(대강면 - 주생면)/ 비홍재 비박
* 6. 18.(토) : 15.5km
- 05:50 : 비홍재 출발
- 06:14 : 비홍산성
- 08:07 : 문덕봉(門德峰, 599.7m)/ 삼면봉(남원시 대강면, 주생면 → 금지면)/ 무인산불감시카메라
- 08:34 : 고정봉(596.8m)/ 면계(대강면 - 금지면)
- 10:12 : 그럭재(雁峙)/ 기러기재
- 11:14 : 두바리봉(555.3m)
- 11:55 : 삿갓봉(624.3m)/ 입봉/ 수두봉
- 13:22 : 고리봉(還峰, 710.1m)/ 계단/ 면계(대강면 → 금지면)
- 13:33 : 만학골재
- 14:29 : 천만리장군묘
- 16:12 : 상귀사거리
- 17:10 : 요천-섬진강 합수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세부구간거리:
접속 : 자고개-2.7km-팔공산-2.4km-서구이재
팔공산-2.0km-마령재-4.4km-비행기고개-2.0km-개동산-1.9km-말치고개-1.2km-상서산-1.8km-삼배재-2.0km-천황산-3.4km-연화산(-0.4km)-3.3km-구라치-0.3km-약산-1.3km-청룡산(-0.9km)-1.2km-갈치-1.0km-고산봉(-1.4km)-0.8km-계룡산(-2.0km)-3.6km-뒷밤재-6.7km-노적봉-2.8km-풍악산-2.1km-매봉-3.7km-사라재-1.7km-비홍치-4.1km-문덕봉-1.6km-그럭재-1.9km-삿갓봉-1.5km-고리봉-4.3km-요천
* 구간거리:
- 자고개~갈치: 32km
-. 서구이재~말치고개: 14.1km (접속 2.7 km + 지맥 11.4 km)
-. 자고개~말치고개: 14.6km, 5시간
- 자고개~천황봉: 18km
-. 말치고개(751번도로)~갈치(721번도로): 16.3km
-. 말치~천황봉: 6km
- 천황봉~비홍치: 31.2km
- 갈치~그럭재: 31.4km
-. 갈치(721번도로)~비홍치(24번국도): 23.8m
-. 갈치~계동고개: 10.8km
-. 계동고개~비홍치: 13km
- 비홍치(24번국도)~요천/섬진강합수점: 15.5km
-. 비홍재~그럭재: 5.7km
-. 비홍치~상귀3거리 13.4km
* 식수 보충 및 참고사항
- 장수 제일택시: 010-6232-0049, 063-351-0049
- 산서 개인택시: 010-9439-3457, 063-351-3457
- 말치고개: 우측 100m 정자, 화장실, 수도, 전망대
- 갈치: 행복의집 수도, 버스정류소, 목재소 정수기
- 뒷밤재: 폐휴게소, 춘향각(팔각정), 수도(플라스틱 냄새로 식수 불가)
- 수동고개: 관개수로(음용 가)
- 계동고개: 계성농장 수도
- 비홍재: 버스 손들음 태워줌, 택시 많음
- 상귀사거리: 바로 옆 옛 음식점 인가 수도
- 남원택시: 남신교통(063-632-6565)
- 곡성택시: 061-363-8822
* 천황지맥 장수읍 서구이재 가는 교통편
- 서울경부~대전복합: 06시, 20분 간격, 1.34h, 15,100원
- 대전복합~장수: 11:10, 12:50, 10,400원
- 용산~전주(KTX): 08:40, 06:55, ~18:50, 1.34h, 34,400원
- 남부터미널~장수터미널: 09:20, 10:40, 3.30h, 22,300원, 장수공용터미널: 063-351-8889
- 센트럴시티~전주: 05:30, 06시, 06:10, 06:25, 06:35, 2.40h, 13,800~20,100원
- 전주~장수 버스: 06:15, 07시, 08:50, 09:40, 10:50, ~19시, 21시, 1.30h, 7,600
- 전주 인후동~장수 09:20, 10:15, 1.20h
- 장수읍~서구이재: 택시 1,2000원, 말치 15,000원
* 합수점에서 서울 올라오는 길
- 곡성택시: 061-363-8822
- 상귀리~곡성: 택시 9,000원
- 곡성역 KTX: 14:48, 18:54, 02.25h, 39,900
- 곡성~남원: 13시, 13:45, 15:15, 17:05, 18시, 1,000원, 0.35h
- 곡성버스터미널: 061-363-3919, 3913
- 남원~센트럴시티: 13, 15, 17, 19:30, 3h, 25,200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천황지맥만 비가 안온다고 좋아라 한방에 끝내자고 천황봉과 비홍치를 비박지로 잡고 내려갔는데 하늘이 줄줄 새네요. 기우제를 지내는 판국이라 오지 마랄 수도 없고, 하는 수 없이 논개사당을 구경하고 장수에서 하룻밤 인연을 쌓으며 명품관에서 일품소주로 한잔~ ㅋ
천황지맥은 장수 황씨의 지맥이기도 합니다. 선초 청백리 황희정승의 관향이 장수이고, 그분의 호가 방촌이지요. 그래서 장수에는 방촌로가 있습니다. 황희정승은 정승의 자리에 24년, 영의정 18년을 재위하며 선초 네명의 임금을 섬겼습니다. 황희정승의 유배(3년 9개월)지가 남원이라 하는데 정확한 위치는 현재의 장수군 장계면 월강리 도장마을입니다. 그 당시로는 남원부 장수현이었으니 남원이라 한 것이지요. 남원부 유배시절에 요천가에 광한루를 지었습니다. 유배를 온 이유는 적장자 수양대군 대신 충녕대군을 세자로 삼자 세자 폐출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향수 90세를 누렸습니다. 공교롭게도 비홍치 넘어 대강면 풍산리 산촌마을은 황희정승의 조부 묘지가 있는 곳입니다.
6일 새벽 서구이재에서 출발할 땐 곧 갤 것처럼 좋았는데 팔공산 정상에 오르니 소나기가 쫘악 지나가네요. 이후로 하늘이 내려앉아 보슬비가 오락가락 비를 털고 말치까지 가긴 했지만 오후에 또 비가 들었습니다. 비를 맞고 천황봉을 넘어 최소한 갈치까진 가야하는데 젖은 몸으로 비박하기가 갑갑합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먹을 식량마저 집에 빼놓고 빈 배낭으로 왔지 뭡니까 이래저래 말치에서 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산서택시를 불러 탈출하려는데 귀인을 만나 남원까지 가서 광한루를 한바퀴 돌고 올라왔습니다.
내려갈 때도 표가 매진되어 전주를 거쳐 들어갔는데 코로나 이후론 예매를 꼭 해야 되겠더군요. 기차는 모두 매진이고 간신히 임시편성 버스로 상경했습니다. 순조롭게 계획대로 진행이 된다면 좋겠지만 지맥이 그리 만만한 것만도 아닙니다. 더군다나 먼저 진행하신 부뜰이,천황봉운영자님께서 중간 두군데에 물과 식량까지 대포시켜 주셨는데 찾아먹질 못해 죄송하게 되었네요. 바가지 쓴 느낌이었지만 장수에서의 하룻밤도 괜찮았습니다. 개치재 태양열단지에서 호밀농사를 짓는 젊은 농부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컵라면 세개를 주셨어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마음이지만 유연하게 갖고 싶습니다. 탱크처럼 무던하게 밀어 붙이시는 동료분들이 계시기에 저는 페이스조절이 맞는것 같습니다. 산행을 아끼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한정품인 지맥은 아껴보기로 했습니다. 속도전으로 지맥을 치르기 보다는 오랜동안 변치 않는 벗으로 삼고 싶네요. 천황지맥에 들어서기 전에 보는 눈을 키우기 위해 짝(duo)을 이루는 성수지맥도 마저 공부를 했습니다. 대간을 하며 고남산 오름에서 북쪽을 바라보며 저 산은 어드메일까 궁금했는데, 참으로 명확한 답은 바로 천황지맥에 있었습니다. 정확하게 만행산을 보고 물었던 기억이 아련합니다.
꽉 채울 것인가 텅 비울 것인가?
어리석은 자는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똑똑한 자는 자기가 어리석음을 안다고 했던가....
천황지맥의 주산인 만행산은 꽉 채운 천황과 다 비운 만행이 정상에서 공존하며 모두를 잃은 것이 모두를 얻은 것 일 수도 있고, 그 반대 일 수도 있다는 반어와 역설로, 지리산을 향하여 사바세계를 구도하는 모습 그대로 였습니다. 허허(虛虛)실실(實實)이라.
와사보생!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 백세 시대 최고 건강법은 걷는 것입니다.
대구 이재구선배님이 내걸은 162지맥 섭렵의 장점은 대한민국 전국 방방곡곡을 구경하며 살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은 아직까지 광한루 한번 가보지 못하고, 지리산을 다니며 스치는 정도인지라 남원에게 미안했는데 앞으로 성수와 견두지맥이 있습니다만 천황과 성수지맥을 하며 임순남을 제대로 알 기회로 부풀어 있습니다. 광한루 돌아보고 남원추어탕으로 뒤풀이 할 날이 손꼽아 기다려 집니다.
요천이라는 큰 물줄기를 가두는 지맥으로써의 천황지맥이니 마지막에 합수점이 있습니다. 합수점 논란은 산자분수령원칙에 끌어다 댈게 아닙니다. 원칙은 공히 제반 조건 모두에 적용되는 것을 말합니다. 산줄기가 물을 가르는 건 맞지만 정맥 입해처 처럼 몇 개의 지맥이 큰 물에 이르는 합수점에 이른다고 지맥에서 산자분수령을 말하는건 원칙이라 볼 수 없습니다. 원칙을 말할려면 모든 지맥이 공히 합수점을 향해야 합니다. 신 산경표가 산줄기를 정리하여 큰 업적을 이루었으니 물줄기도 정리해 보자는 아류에 불과합니다.
고리봉에서 내려서며 요천이 섬진강을 만나는 합수점을 살펴보게 됩니다. 산자락 끝에서 요천 합수부까지 거리는 약 2.8km입니다. 사실 산자락 끝에서 요천 사이에는 작은 도랑이 하나 있는데 금풍저수지에서 나온 풍촌천과는 별개로 만학골 골짜기 물이 한 가닥 도랑을 만들며 상귀삼거리로 내려와 섬진강으로 들어갑니다. 도랑 저 너머에 요천 합수부가 있는데, 금지면 들판 경지정리로 인해 세월따라 뒤바뀐 지형의 변화일 뿐 그 의미는 충분히 가늠할 수 있겠습니다.
공부가 부족하여 산행기를 창작품으로 남기지는 못합니다만 선답자 산행기를 하나하나 덧칠 할수록 완성품에 가까워지는 즐거움을 만끽합니다. 맥꾼들에게는 색이 바랜 띠지 하나, 먼저 지난 발자취가 발길을 인도하는 스승입니다. 비록 짜깁기한 산행기일지언정 맥길을 진행하는데 일말(一抹)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보람이겠습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천황지맥(天皇枝脈)이란?
금호남정맥의 팔공산(八公山, 1151m)에서 섬진강(蟾津江) 본류와 그 지류인 요천(蓼川)을 가르며 서쪽 마령재로 내려선 산줄기는 다시 마령치에서 올라선 봉우리(861m)에서 오수천(獒樹川)을 감싸며 내려가는 두 개의 산줄기로 나뉜다. 북서쪽으로 분기한 성수지맥(聖壽枝脈)은 오수천의 서쪽 울타리를 이루며 성수산(聖壽山, 875.9m), 삼봉산(529.4m), 고덕산(619m), 봉화산(467.6m), 원통산(603.5m), 무량산(586.4m)을 거쳐 순창군 적성면 평남리 구남마을의 어은정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56.9km 되는 산줄기이고, 남서쪽으로 분기한 천황지맥(天皇枝脈)은 개동산(묘복산, 845.9m), 상서바위(840m), 천황산(天皇山, 909.6m), 약산(448m), 노적봉(565.1m), 풍악산(605m), 응복산(575m)을 지나 서쪽으로 오수천의 남쪽 물막이를 내보내고, 문덕봉(599.4m), 삿갓봉(624m), 고리봉(708.9m)을 거쳐 섬진강을 건너는 신기철교 앞까지 이르며 남원시 금지면 하도리 요천/섬진강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65km 되는 산줄기인데, 이 산줄기의 서쪽과 북쪽에는 오수천, 율천, 매내천 등이 섬진강으로 흐르며, 이 산줄기의 동쪽과 남쪽에는 요천, 갈치천, 옥율천 남원천 등이 섬진강으로 흘러간다. 요천의 좌측 분수령이 된다. 신 산경표 초판에서 개동지맥이라 명명했으나, 개정증보판에서 천황지맥으로 그 명칭이 변경된 산줄기이다.
* 천황지맥 개념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천황지맥을 지나는 동네
* 진안군(鎭安郡)
진안군은 전북의 동부 산악권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 무주군, 장수군, 남쪽으로 장수군, 임실군, 서쪽으로 완주군, 북쪽으로 충남 금산군이 인접하고 있다. 백제 난진아현(難珍阿縣)이었고 신라 경덕왕의 전국 지명 한화정책 때 지금까지 사용하는 이름인 진안현(鎭安縣)으로 바꾸었다. 1914년 용담군 지역을 흡수하였다. 1979년 진안면이 진안읍으로 승격하였다. 금호남정맥이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삼남지방 이남을 남서로 관통하며, 덕유산 등의 커다란 산이 형성되어 있다. 군 대부분이 산간 지역이지만 산지의 기복이 적어 인접한 무주군, 장수군에 비해 지세가 그렇게 험준하지는 않아 진안고원이라고 불린다. 남으로 지리산으로 이어지고, 전북 장수의 영취산에서 백두대간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금호남정맥의 주봉인 진안군의 운장산을 이루고 진안의 부귀산을 거쳐 전주의 모악산, 정읍시의 내장산으로 이어진다. 이 양대산맥이 폭 10∼20km의 서남방향으로 아주 가까이 평행하며 고원을 이루는 양상이고, 해발 200∼400m의 산간 구릉지로서 약 82.4%의 산악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진안고원에서 북으로 흐르는 금강과 남쪽으로 흐르는 섬진강으로 수계가 구분되고 있다. 대부분 금강 수계이나 백운면, 마령면, 성수면 등은 섬진강 수계이다. 백운면은 섬진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지형적 영향으로 인해 대기 불안정으로 인한 강한 소나기가 잦으며, 무진장에 속해 있는 무주군, 장수군과 함께 겨울에 눈이 많이 온다. 진안군은 전주-거창간의 간선도로, 익산-장수간 고속도로가 지나고 있으며, 소태정을 통한 4차선이 개통되어 전주와의 교통이 원활하게 되었다. 또한, 국토종합계발계획에 의해 대전-통영간 고속도로가 건설되었으며, 익산-장수간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전북과 경남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가 될 전망이다. 2001년 국내 5위 규모의 용담댐이 완공되어 용담면을 비롯하여 주천면, 정천, 안천, 상전면과 진안읍 등 진안군 전체 면적의 절반에 해당되는 1000여 만평이 수몰되었지만, 전주시, 군산시, 익산시 등지에 맑고 깨끗한 생활용수 및 공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고속도로는 새만금-포항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진안IC를 통해 이용할 수 있다. [통합포탈에서 발췌정리]
* 장수군(長水郡)
전북의 동부 중앙에 위치한 군으로 장수군은 7개 읍면으로 전북 동부에 위치하여 있으며 군의 동부는 백두대간의 서사면에 걸쳐있고 서부는 호남정맥의 동사면에 해당되어 장수읍, 장계면 일대의 분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험준한 산악지대(군전체면적의 70%)를 이룬다. 따라서 무주·진안과 함께 전북의 동부산악권에 속한다. 군의 동쪽에는 백두대간을 따라서 솟아있는 시루봉(1,162m)·남덕유산(南德裕山, 1,507m)·깃대봉(1,015m)·백운산(白雲山, 1,279m)·월경산(月鏡山, 980m)·봉화산(烽火山, 920m) 등이 솟아 있어 경상남도와의 경계를 이루며, 서부에는 천반산(天盤山, 647m)·성수산(聖壽山, 1,059m)·팔공산(八公山, 1,151m)·묘복산(猫伏山, 846m) 등이 솟아 있다. 그 밖에 깃대봉(930m)·백화산(白華山, 851m)·봉화산(烽火山, 786m)·장안산(長安山, 1,237m)·마봉산(馬峰山, 724m)·사두봉(蛇頭峰, 1,015m) 등의 높은 산들이 있다. 경상남도 거창, 함양군과 도계를 이루고 있으며, 남은 남원시, 서는 임실군, 진안군, 북은 무주군과 각각 접하고 있다. 또한 백두대간과 호남정맥사이의 분지로서 호남정맥의 종산인 장안산(長安山, 해발1237m)이 있고, 금강과 섬진강의 발원지를 이룬다. 호남지방을 동부의 산악지대와 서부의 평야지대로 갈라놓고 있는 산줄기가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이다. 백두대간의 산줄기에 우뚝 솟은 장수 영취산에서 북서쪽으로 주화산까지 뻗은 금남호남정맥이 북쪽의 금강과 남쪽의 섬진강 유역으로 갈라놓는다. 금강 섬진강 상류지역의 풍부한 물과 구릉지역, 험준한 산악권역을 바탕으로 특정한 세력을 확장하기에 유리하였고 동서남북의 다른 세력집단이 꼭 넘어야 할 관문으로 발전하였으며 동서의 중요한 역사적 관문지로는 육십령이 있다. 장수읍과 장계면은 편마암류의 기반암을 소규모로 관입한 화강암의 심층풍화에 의해 발달한 금강 최상류의 산간분지로, 형태는 분지이지만 진안고원의 일부로 간주된다.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계는 대체로 장안산·수분령·팔공산을 잇는 선으로, 이 선을 경계로 해발 250m 정도인 섬진강 유역과 400∼500m인 장수분지의 고도차가 확연해지며 지형이 구분된다. 지형의 영향으로 수분령 남쪽의 섬진강 지류인 오수천 유역의 산서면과 요천 유역의 번암면은 인접한 장수읍보다 거리가 먼 남원시와 교류가 더욱 활발하다. 금강은 장수읍 수분리의 수분령(水分嶺, 530m)에서 발원하여 장수읍을 지나면서 북류하다가 장안산에서 발원한 장계천(長溪川)과 천천면에서 합류한다. 금강은 수량이 증가하면서 심하게 감입곡류하여 각각 진안군으로 흐른다. 수분령 남쪽은 섬진강 수계로 장안산 서쪽에서 발원한 용림천(龍林川)과 백운산에서 발원한 백운천(白雲川)이 번암면에서 합류하여 요천을 이루어 남원시로 흐른다. 이들 하천 연안을 따라 소규모의 평야가 발달해 있다. [통합포탈에서 발췌정리]
* 순창군(淳昌郡)
순창군은 대한민국 전라북도 남부에 있는 군으로 동쪽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남원시, 서북쪽은 호남정맥의 주능선을 경계로 정읍시, 남쪽은 전라남도 장성군, 곡성군, 서남쪽이 담양군, 북쪽은 임실군과 접하고 있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영토로 오산(烏山) 또는 옥천(玉川)이라 불렀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토로 도실군(道實郡)이 되었다. 백제가 망하자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었으며, 757년(경덕왕 16) 순화군(淳化郡)으로 개칭되어 적성현(赤城縣)과 구고군(九皐郡)을 관할하였다. 고려가 건국된 뒤 940년(태조 23) 현재의 지명인 순창(淳昌, 일명 淳州)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시대의 학자로는 실학자로서 『강계지』를 저술한 신경준(申景濬)과 성리학자로서 주리설(主理說)을 주장한 기정진(奇正鎭) 등이 있다. 근대의 인물로는 한말 대유학자로서,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제자인 임병찬(林秉瓚) 등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순창객사에 총본부를 두고 항일의병활동을 전개한 최익현(崔益鉉)이 있다. 북서부는 노령산맥 말단부의 동사면에 위치하여 험한 산지를 이루고, 동남부는 섬진강의 지류 주변에 분지가 발달하여 서로 대조되는 지형을 이룬다. 북부와 북서부의 정읍시·임실군과 인접한 지역은 호남정맥의 주능선이 지나가 회문산(回文山)·장군봉(將軍峰, 780m)·여분산(如紛山, 774m)·깃대봉(644m)·국사봉(國師峰, 655m)·내장산(內藏山, 763m)·백방산(栢芳山, 660m) 등의 비교적 높은 산들이 있다. 서부의 전남 장성군·담양군과의 인접지역에도 추월산(731m) 등의 산들이 솟아 있으며, 북서부의 쌍치면·복흥면에는 200∼350m의 고원이 발달해 있다. 북서부에서부터 광덕산(廣德山, 584m)·무이산(武夷山, 558m) 등 500∼600m의 산지가 연속되다가 남원시와 인접한 동남부에서 섬진강의 지류 주변에 100∼200m의 분지가 발달해 있다. 섬진강은 군 동부에서 흐르며 주변에 비교적 넓은 충적평야를 이룬다. 임실군 오수면 일대에서 흘러온 오수천은 적성면에서 섬진강과 합류하면서 강폭이 크게 넓어지는데, 이곳에서는 적성강(赤城江)으로도 불린다. 팔덕면 서쪽에 있는 광덕산과 산성산(山城山, 573m)에서 발원한 경천(鏡川)에는 인계면 북쪽에 있는 갈재[盧嶺]에서 발원한 양지천(陽芝川)과 금과면에서 발원한 지류들이 순창읍에서 합류하여 비교적 넓은 충적지를 이루며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그 밖에 서부에서 추령천(秋嶺川)이 복흥면·쌍치면을 지나 정읍시 산내면에서 갈담저수지로 흘러든다. 북부에서는 구림천이 구림면 일대를 지나 임실군에서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북서부의 산지는 부근의 다른 지역보다 높아 고랭지대에 속하여 여름에는 비교적 서늘하고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린다. 1950년 6.25 남침으로 순창농림중학교 학생들이 대거 학도의용군에 가담하여 포항전투에서 158명이 전사하였다. 또한 9·28수복 후 이 지방 사람들은 구림면 ‘회문산공비토벌작전’에 참가하여 향토 수호를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1979년 5월 1일 순창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통합포탈에서 발췌정리]
* 남원시(南原市)
남원시는 전북 남동부에 위치한 시이다. 동쪽은 경남 함양군, 서쪽은 순창군, 남쪽은 전남 구례군과 곡성군, 북쪽은 임실군·장수군과 접하고 있다. 남부내륙지방의 상업·서비스업의 중심지로 순창군·임실군과 전라남도 곡성군·구례군도 세력권에 포함하고 있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영역에 속했으며 마한 54개국 중 고랍국(古臘國)이 위치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지리산을 경계로 진한과 변한의 국경지역에 위치한 군사상의 요충지였다. 이와 관련해 마한이 달궁(達宮)지방에 별궁을 두고 정장군(鄭將軍)과 황장군(黃將軍)을 파견해 진한·변한의 침략을 막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역에 속했는데, 기원후 15년(온조왕 33) 고룡군(古龍郡)이라 했다가 196년(초고왕 31)에 대방군(帶方郡)으로 개칭했으나, 평안도지방에 한사군(漢四郡)의 대방군이 설치되자 220년(구수왕 7)에 남대방군(南帶方郡)으로 또 바꾸었다. 660년(무열왕 7)에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당하자, 이 지방에 대방도독부(帶方都督府)를 두고 당나라 장수 유인궤(劉仁軌)를 검교대방주자사(檢校帶方州刺使) 겸 도독으로 삼았다. 685년(신문왕 5) 전국에 5소경(五小京)을 설치할 때 그 중 하나인 남원경(南原京)이 설치되었으며, 757년(경덕왕 16) 대방을 남원이라 고쳤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뒤 940년(태조 23) 남원부(南原府)로 개칭되었고, 현종 때 지방제도 정비를 거쳐 임실(任實)·순창(淳昌) 등 2개의 속군(屬郡)과 장계(長溪)·적성(赤城)·거령(居寧)·구고(九皐)·운봉(雲峰)·장수(長水)·구례(求禮) 등 7개의 속현(屬縣)을 관할하는 행정의 중심지가 되었다. 명종 때에는 공주에서 망이(亡伊)가 난을 일으키자 남원·완주 등 호남 일대에서 이에 호응했는데, 그 때 윤위(尹威)는 남원지방의 반란군을 평정한 공으로 남원부백(南原府伯)이 되었으며, 그가 남원윤씨의 시조이다. 1379년(우왕 5) 왜구가 경상도지방을 노략한 뒤 함양을 거쳐 운봉의 인월리에 주둔하였다. 그 때 삼도순찰사(三道巡察使)이던 이성계(李成桂)는 이지란(李之蘭)과 함께 운봉 황산에서 왜장 아지발도(阿只拔都)를 사살하는 등 황산대첩(荒山大捷)을 거두었다. 1418년 황희(黃喜)가 세자책봉에 이견이 있어 남원으로 유배되었는데, 그 때 광통루(廣通樓)를 세웠으며, 1444년(세종 26) 전라도관찰사였던 정인지에 의해서 광한루로 개칭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쳐들어오자 의병장 양대박(梁大樸)은 운암에서, 조경남(趙慶南)은 운봉의 팔량치(八良峙)에서 각각 왜군을 대파하였다. 또한 임진왜란중에 변사정(邊士貞)은 교룡산성의 수성장이 되어 산성을 크게 수축하였다. 정유재란 때에는 남원성이 함락되었으며, 그 때 용성관·향교·만복사·광한루 등이 모두 불탔다.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김개남(金開男)은 남원성을 점령하고 교룡산성을 거점으로 활약하다가 여원치(女院峙)에서 관군에게 패하였다. 1896년 지방관제 개편 때에 전남과 전북으로 개편되었는데, 그 때 전라남도의 관찰부를 남원에 두었다. 이듬해 전라북도에 편입됨에 따라 관찰부는 광주로 옮겨졌다. 1950년 6·25 때 7월 24일 공산군에게 점령당했다가 9월 28일 유엔군의 진주로 다시 수복되었다. 이 때 각급 관청과 학교·교회·주택 등이 불탔으며, 9·28 수복 후에는 패주하던 공산군이 지리산으로 들어가 인근 주민을 약탈하는 등 그 피해가 컸다. 그 때 애국청년·학생들이 경찰을 도와 공비 토벌에 참가하였다. 동쪽·북동쪽·남동쪽이 백두대간에 속하는 높이 1,000m 이상의 산지이고, 남서쪽 순창군과의 접경지대는 500∼700m의 산지로 되어 있으며 섬진강의 본류가 흐른다. 백두대간의 주 능선인 지리산지에는 삼봉산(三峰山, 1,187m)·명선봉(明善峰, 1,586m)·반야봉(盤若峰, 1,734m)·노고단(老姑壇, 1,507m)·만복대(萬福臺, 1,433m)·고리봉(環峰, 1,304m)·세걸산(世傑山, 1,207m)·덕두산(德頭山, 1,150m) 등 높은 산들이 많다. 그 밖의 지역에는 이보다 낮은 천황산(天皇山, 910m)·고남산(高南山, 846m)·견두산(犬頭山, 775m)·황산(荒山, 697m)·문덕봉(門德峰, 590m)·노적봉(露積峰, 568m) 등의 산들이 있다. 산지 사이에는 분지가 발달해 있는데 산동면·이백면·주천면을 경계로 동쪽의 운봉분지와 서쪽의 오수분지·남원분지로 구분된다. 남원분지를 흐르는 요천(蓼川)은 장수군에서 발원해 북동부 산동면으로 흘러서 시의 중앙부를 지나 남서부의 금지면에서 섬진강으로 흘러든 뒤 전남 곡성군으로 흐르고, 오수분지를 흐르는 오수천의 소지류들은 임실군으로 흐르면서 연안에 소규모의 충적평야를 형성한다. 오수·남원분지를 흐르는 이들 하천은 섬진강의 지류들이다. [통합포탈에서 발췌정리]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서구이재(西九耳峙, 850m)/ 서구리치
장수와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를 잇는 도로를 개설하면서 절개했는데 동물이동통로를 만들었다. 옛적에 쥐(鼠)가 많아서 붙여진 서구이치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하며 장수방향의 단평마을에서 서구리재를 바라보면 꼭 소쿠리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소쿠리가 서구리로 변화되어 생긴 지명이라고도 한다. 서구리치 도로에는 이정표(팔공산 2.9km, 와룡휴양림 5.0km)가 있는데 팔공산 남쪽의 이정표보다 거리표기가 잘 된 편이다. (팔공산까지 1시간 소요)
♤ 자고개(670m)/ 차고개
장수와 오수를 잇는 719번도로의 차고개에 닿으면 장수읍 용계리와 대성리를 잇는 13번국도가 지나가고 대성고원이라 쓰인 표석이 마중 나온다. 북쪽으로 합미성(合米城)과 남쪽으로 신무산(神舞山)이 위치하고 있다. 이정표의 자고개는 작고개가 변화된 것으로 보이며 또한 차고개란 이름도 부르고 있지만 이곳 주민들과 지명표기에는 작고개가 원명으로 보여진다. 이곳에서 조금 더 가면 대성리에 장수의 특산물인 돌그릇이 유명하다. 차고개에서 서북쪽으로 임도를 따라 오르다가 우측 산길로 접어든다. 차고개에서 20분이면 후백제때 군량미를 쌓아두려고 축성한 합미성에 닿는다. 성벽이 일부는 원형을 보존하고 있으나 거의 무너져 있다. 장수군지에는 백제가 마한을 병합할 때, 또는 근초고왕때 쌓았다고 기록돼 있는데, 안내판에는 후백제때 쌓았다고 기록돼 바로잡아야 될 성 싶다. 금남호남정맥길이고 등산로도 잘 정비되어 있어 산행이 무척 편리하다.
- 팔공산 3km, 수분재 3.61km, 신무산 1.68km 이정표가 안내한다. (팔공산까지 1시간 10분 소요)
아는 만큼 보이지 않을까요.^^ 사두봉에서 금호남정맥이 빙 둘러 오고, 지리 주능과 백두대간의 남덕유산 그리고 가야할 개동산과 천황봉...
♤ 팔공산(八公山, 1,151m)/ 천황지맥분기봉
장수군 장수읍과 진안고원의 남쪽 백운면의 경계에 자리한 팔공산(1,151m)은 대구 팔공산(1,193m)과 이름이 같고, 높이도 비슷하다. 전북의 팔공산은 백두대간 영취산에서 갈려나온 금호남정맥의 중심으로 금남정맥을 통하여 전북의 북부와 충남지역, 호남정맥을 통하여 전북 남부와 전남, 광주지역의 산줄기를 이어주는 산줄기의 가교역할을 하는 요충지다. 장수 팔공산은 동쪽 기슭에 백제 무왕 때 해감스님이 창건하고, 의상대사가 중창했다는 비구니사찰인 팔성사(八聖寺)가 있다. 예속된 8개 암자마다 성인이 한분씩 거처했다는 의미로 팔성사라는 이름을 얻었다. 성인성(聖)과 귀공(公)은 글짜만 다를뿐 성(聖)스럽고, 귀(貴)한 사람으로 풀이된다. 문헌으로 고찰해 본 팔공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성적산(聖迹山)산으로 나와 있고, 팔성사는 팔공암(八功庵)으로 의상이 중건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하지만 산경표에는 팔공산으로 나와 있다. 정상에 예전에 군부대가 주둔했으나 지금은 통신시설이 자리잡고 있고 혈은 그 옆 중봉의 둥근 돌 위에 있다. 정상에 서면 동쪽으로 장수읍 시가지가 한눈에 보이고 남쪽은 산서와 오수가 다가온다. 전북 동부지역에 위치한 무주, 진안, 장수군은 고원지대로 분류되며, 장수읍을 중앙에 두고, 해발 1천m이상 된 산들이 첩첩히 둘러쳐 있다. 동으로 지리산 연봉과 천왕봉(1,915m), 서로는 팔공산, 동으로 장안산(1,237m), 남쪽은 사두봉(1,015m), 북으로 진안 성수산(聖壽山, 1,059m)·마이산(馬耳山, 673m)으로 연속되고, 선각산, 덕태산, 남덕유와 덕유산(1,614m), 서북으로 운장산(1,125.9m) 산봉우리가 에워 쌓고 있다. 해발이 1,000m가 넘는 산임에도 불구하고 들머리가 해발 800m에 있어 산행이 비교적 순탄하다. 팔공산의 서북쪽에는 동명이칭의 성수산(聖壽山, 876m), 서쪽의 영대산(靈臺山, 666m), 남쪽의 신무산(神舞山, 897m)·묘복산(猫伏山, 846m)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북쪽의 서구이치(西九耳峙), 서쪽의 마령치(馬靈峙)·구름재 등이 있어 산을 넘는 통로가 된다. 동쪽·남쪽·북쪽 사면은 모두 완만하게 기울어져서 북쪽으로는 화암제(花巖堤)를 중심으로 한 분지가 되고, 서남쪽은 필덕제(必德堤)가 있는 장수분지(長水盆地)를 이룬다. 동쪽사면 산록에는 팔성암, 남쪽에 합미성(合米城) 등의 명승고적이 있어 장수군의 주요관광지가 된다. 또, 이 일대는 전북의 주요한 광산지대로 북쪽사면에 금·아연광, 남쪽사면에 팔공금광(八公金鑛) 등이 분포한다. 물줄기는 남쪽은 섬진강에 합수되어 남해의 광양만으로 흘러들고, 북쪽은 금강에 합수되어 서해로 흘러든다. 물방울이 떨어져 흐르는 방향에 따라 남해와 서해로 흘러들어 그 운명을 달리한다.
- 삼각점은 정상에서 조금 떨어진 동봉(헬기장) 한쪽 귀퉁이에 있는데 마모되어 식별이 불가하다.
진안과 장수의 경계를 따라 1시간 정도(약 5km) 진행하면 마령재에 이릅니다.
♤ 마령재(馬靈峙)/ 오두막/ 군읍면계(진안군 백운면 - 장수군 장수읍)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에서 장수군과 임실군을 넘나들던 4개의 고개 중 하나가 마령재(치)이다. 마령재는 백제시대 어느 장군이 애마가 화살에 맞아 죽자 이곳에 묻었더니 3년간 밤마다 말울음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렸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으로 백두대간 금남호남정맥의 성수지맥, 천황지맥 분기점이기도 하다. 진안 신암마을과 장수읍 필덕마을을 넘나드는 이곳 마령재 주변으로는 1960~80년대 초반에 소를 치던 덕소목장이 있었던 곳으로 지금은 조림을 하여 잣나무, 물푸레, 자작나무, 상수리나무, 등이 목초지를 대신하고 있다. 성수지맥은 팔공산-마령재-임실성수산-고덕산-봉화산-응봉-용골산-무량산에 이르는 총 56.9km구간이다. 천황지맥은 팔공산-마령재-개동산-천황산-연화산-노적봉-삿갓봉-고리봉에 이르는 총 59.5km 구간이다.
잣나무 군락속 임도삼거리로 성수지맥은 직진하고, 천황지맥은 산서면과 장수읍의 경계를 따라 왼쪽으로 내려섭니다.
♤ 성수지맥분기점(861m)/ 삼면봉(진안군 백운면 → 장수군 장수읍, 산서면)/ 임도삼거리
금남호남정맥 팔공산에서 서쪽으로 갈려나온 산줄기는 마령치를 지나 백운산(갈미봉)에 닿는다. 백운산에서 북쪽은 성수지맥(성수산 줄기), 서쪽은 영대지맥(영대산 줄기), 남쪽은 천황지맥(천황봉 줄기)으로 세 갈래를 친다. 백운산에서 천황지맥은 남쪽으로 뻗어가며 장수군 산서면과 장수읍의 경계에 비행기재, 개치, 개동산, 상서산을 지나 동막골봉에 닿는다. 천황지맥은 동막골봉에서 서쪽으로 사계분맥을 분기한다.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는 풍암산(바람바위) 산을 일으킨다. 동막골봉에서 천황지맥은 작은 복치봉, 큰 복치봉, 상사바위봉(대성분맥 분기), 만행산 천황봉, 노적봉, 풍악산, 문덕봉, 고리봉으로 뻗어간다.
♤ 장수군 장수읍 대성리 필덕(必德)마을
필덕은 옛날 박상이란 도사가 팔공산아래 큰 들녘에 장래에 마을이 생기면 필히 덕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대로 마을이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해발고도 700m에 이르는 고산지대이다. 대성리는 지형 상 곡식을 계량하는 큰되처럼 생겨 큰뒷골, 또는 대승곡(大升谷), 대성으로 불렀는데 1914년 일제가 행정통폐합을 하면서 대성리로 고쳤다. 마을 입구에 필덕제(必德堤)가 있다. 팔공산 남쪽 기슭을 막아서 계곡형 저수지로 만든 필덕(必德)저수지는 전북의 동부지역에서 손꼽히는 낚시터로 유명하다. 지맥꾼들에게는 성수지맥 마령재로 오르는 들머리로 많이 이용된다.
♤ 비행기고개/ 비행기재(530m)/ 읍면계(장수읍 - 산서면)
금호남정맥에서 분기한 천황지맥의 팔공산 능선에 자리한 비행기재는 산서면과 장수읍의 경계로, 임실군과 장수군을 잇는 13번국도가 지나는 중요 요충지로 옛부터 걸어서는 못 올라가고 비행기타고 올라가야 한다고 해서 비행기재라 불렸다. 2차선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지나간다. 고갯마루에 비행기재 표지판과 표지석(산서면 등)과 또다른 입석(대성고원)이 있다. 고갯마루 우측에서 임도를 따라가면 임도 갈림길이다.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올라가면 다시 갈림길이다.
- 장수군 산서면과 장수읍의 경계이며 산서면 표석 앞 임도로 오른다.
사과과수원도 지나고 태양열판넬이 설치된 넓은 지역도 지나게 됩니다.
♤ 개치재
20분간 시멘트 임도를 따르다 산으로 달라붙어 봉우리 하나를 올라치고 안부로 내려선 곳이다. 양쪽으로 넘나들던 길은 사라지고, 등로 오른쪽으로 산서면 오성리에 개치마을이 있다. 이곳에서도 우측으로 임도 10여m 따르다가 임도를 버리고 제법 가파르고 잡목이 방해하고 등로가 흐린 우측 능선에 올라붙어 능선길 이어가면 바위를 만난다. 바위를 좌측으로 우회하여 올라갔다가 우측으로 이어지는 약간의 굴곡이 있는 내리막 능선을 따라 내려갔다가 다시 급한 오름길을 올라가면 개동산 정상이다.
♤ 개동산(847m)/ 묘복산(猫伏山)
묘복산/ 개동산은 전라북도 장수군의 산서면 오성리에 위치한 산이다. 대구 김문암님 작품인지 널판지 산패가 걸려있다. 정상에 묵묘가 있고 조망은 없다. 산서면 오성리와 번암면 식천리의 경계에 있고 북으로 개치재와 비행기고개, 남으로 말치고개와 이웃하고 있다. 산의 모양이 고양이가 엎드린 것 같다고 하여 유래된 것으로 전해진다. 개동지맥의 개동산은 복묘롱서(伏猫弄鼠)의 음택이 있다 하여 괴복산 또는 묘복산이라 하여 1961년 묘복산(猫伏山)으로 고시되고 지도에 표기되어 왔으나 2000. 1. 4. 복구혈(伏狗穴)이 있는 명산이라는 의미의 개동산이라고 지명이 변경고시 되었다고 한다. 신 산경표 초판본에서는 천황지맥을 개동지맥이라 했었다.
- 3등삼각점(임실 317/ 1984 복구)이 있다. 남서방향으로 우틀하여 급경사로 내려선다.
♤ 말치고개(526m)/ 마치(馬峙)/ 읍면계(장수읍 - 산서면)/ 화장실, 식수, 전망대
장수읍 식천리와 산서면 쌍계리의 경계로 751번 지방도로(장남로)인 2차선 아스팔트 포장도로다. 고갯마루에 표지판(산서면, 번암면 등)이 있다. 장수읍 방향에서 표지판이 있는 곳으로 잡목을 뚫고 가파른 절개지를 따라 능선에 올라가면 길이 나오고,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상서산 정상이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패턴의 변화를 필요로 했습니다. 힘드니 내려와선 소주 생각이 간절하고, 식도락을 즐기는 산행으로는 운동효과 아무 것도 건질 수가 없더군요. 그럼에도 관성으로 밀어붙여 봤는데 우아~~하기 싫은거 억지로 하는 것처럼 힘은 곱절 들고, 땀도 배로 나고 죽다가 살아난 기분입니다.^^
첫번째 시도는 비때문에 날씨예보가 어깃장을 놓아 말치에서 그쳤고, 사실 엄두내기도 힘들었지만 비오는데 천황봉을 넘기는 아깝기도 했습니다.
두번째 비박지는 갈치였는데 채석장 인부들 숙소가 있길래 부탁해 물을 사용하던 중 어느 분이 술 하세요 하고 묻더니 천문동 담금술을~
가만 생각하니 땀 딥다 흘리고 빈속에 술만 채웠네요. 담날은 술병이 나서 거은 300m 가다가 한번 쉬고, 졸립고 눕고만 싶고, 산딸기 하나씩 따먹은거 다 토하고~ ㅠㅠ
어떻게 갔는지 죽을똥살똥 하지라 해는 길어 비홍치에 도착은 했는데, 비라도 오면 핑계대고 때려치겠구만...
비홍치에서 부뜰, 천왕봉운영자님이 10일전 데포시켜둔 물로 간단하게 씻고, 참외도 칼이 있어야지 껍질째 와작와작 술은 쳐다도 안봐지더군요. 하루더 비박한다니깐 두병 주셔서 한병은 물병에 옮겨 지고왔고 비홍치에 소주도 한병..
비홍치 이후 남원의 용아장성이라는 문덕봉~고정봉~두바리봉~삿갓봉~고리봉 그리고 만학동봉을 지나니 천만리장군이 딱 누워 계시네요. 하긴 고리봉도 커다란 무덤이 차지하고 있더군요.
그래도 내가 언제 천황에 다시 올쏘냐, 섬진강 뚝방 자전거 도로를 걸어 요천과 합수점까지 미련하게 걸었습니다.
♤ 상서산(上瑞山, 628.9m)/ 삼각점봉/ 읍면계(산서면 - 장수읍)
정상표지판이 없다면 그냥 지나칠 그런 능선상 산이다. 조망은 없다. 상서산은 전북 장수군의 산서면 쌍계리에 위치한 산이다. 번암면 국포리 · 장수읍 식천리 · 산서면 쌍계리에 걸쳐 있고 이들을 연결시켜주는 말치고개와 이웃하고 있다. 특히, 산서면의 침식분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조선지형도』 (임실)에서 상서산의 위치를 추정할 수 있으며, 바로 위쪽에 말치고개가 있다. 북서쪽에 마평리가 있었는데 현재는 쌍계리에 통합되어 마평마을로 남아 있다.
- 등로 가운데에 4등삼각점(임실 463/1984 복구)이 있고, 널판지로 만든 정상표지판이 나무에 걸려있다.
♤ 장수군 산서면 쌍계리 마평마을 동막골
장수군 산서면 쌍계리 마평(馬坪)마을 동쪽에 동막골이 있다. 동막골봉 서쪽에 위치한 마평마을은 산서에서 남원방향으로 가다가 이룡삼거리에서 번암방향으로 접어들어 쌍계 삼거리에서 진입할 수 있다. 행정구역은 남원시 보절면 사촌리, 장수군 산서면 쌍계리, 장수읍 식천리와 경계를 이룬다. 동막골봉의 물줄기는 서쪽은 도룡천과 율천이 오수천에 합류하여 섬진강으로 흘러가고, 동쪽은 장남제가 요천에 합류하여 섬진강에 합류한다. 동막골봉은 남원시 보절면 사촌리와 장수군 산서면 쌍계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나, 보절면 사촌리보다 산서면 쌍계리에서 접근성이 더 좋다. 동막골봉은 옛날 산서지역이 호수였을 때 정상에 있는 상여바위에 박아놓은 동(銅)으로 만든 고리에 매어 놓은 배를 보호하는 장막(帳幕)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남쪽으로는 사계분맥이 분기되어 장수군 산서면, 임실군 지사면 , 남원시 보절과 덕과면의 산줄기들을 형성한다. 그리고 동남쪽으로는 남원과 천황지맥의 싱징인 천황봉을 비롯한 수많은 봉우리들을 일으키고 남원시, 임실군, 순창군 지역 산들을 일으킨다. 《한국 지명 총람》과 《장수의 마을과 지명유래》에는 “동막골은 마평마을 동쪽에 위치한 골짜기다. 동막저수지는 마평 동쪽에 잇는 저수지로 쌍계리 양신, 이룡리, 건지들 등에 물을 공급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마평마을에서는 한자를 고리 동(銅)을 호수 동(銅)으로 해석한다고 한다. 지리적으로 동막골봉의 북쪽은 고려와 조선의 창업설화가 서린 임실 성수산이 다가온다. 북동쪽은 금강의 발원지 뜬봉샘을 품은 신무산, 동쪽은 철쭉으로 유명한 봉화산과 매봉의 능선이 너울너울 춤춘다. 동남쪽은 벡두대간 산불산 너머로 거대한 지리산의 백두대간 능선이 용틀임한다. 남쪽은 임금을 상징하는 만행산 천황봉 솟아 있고, 남서쪽은 노적봉이 다가온다. 서쪽은 사계봉 너머로 덕재산, 서북쪽은 임실 삼봉산과 고덕산이 있다.
♤ 동막골봉(807.3m)/ 사계분맥 분기점/ 시군삼읍면봉(장수군 장수읍, 산서면 → 남원시 보절면)
삼각점 정상을 지나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제법 가팔라진다. 조망이 트여 있는 무덤이 나오고, 무덤을 지나 올라가니 807.4m봉의 정상이다.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가면 흔적만 있는 고개 안부다. 고개를 지나 올라가서 무덤 2기를 지나면 갈림길이다.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을 따라 올라가면 헬기장이 나오고 무덤이 있는 봉이다. 무명봉에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면 850m봉의 정상이다.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면 무덤 1기가 있는 봉이 나오고, 봉을 지나가면 이정표(천황봉 2.7km/ 상서 바위 0.7km/ 우측에 하산로가 있음)가 서있다. 이정표를 지나 내려가면 우측에 하산로가 있는 삼배재다. 삼배재를 지나 올라가면 두번째 이정표(천황봉 2.0km/보현사 2.9km)가 서있고 조망이 트여있는 상서바위다.
지도상 바람바위는 809m봉을 지난 오른쪽 보절면에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 풍암산(風岩山, 852.7m)/ 바람바위산/ 시군삼읍면봉(남원시 보절면, 장수군 장수읍 → 장수군 번암면)
풍암산은 바람바위와 투구봉이라는 아름다운 수식어와 별칭을 가진 산이다. 《한국지명총람》에는 “풍암산은 칠상동 서쪽에 있는 산으로 바람바위가 있다. 바람바위는 풍암산에 있다. 동해안에서 세찬바람이 불어와 농사에 피해를 입히는데 이 바위에 제사를 지내면 바람이 잔다. 투구바위는 칠상동 서쪽에 있는 바위로 풍수지리상 장군대좌혈(將軍臺座穴)에 투구형상이다. 안불치(암불재, 뒷재)는 사촌에서 장수군 번암면 국포리 말치로 넘어가는 고개다.”고 기록돼 있다. 《남원의 마을유래》에는 “마을 뒤에 바람바위가 있는데 농사철에 이 바위에서 강풍이 분다고 하며, 장군의 묘자리라고 전해온다.”고 나와 있다. 풍암산의 물줄기는 도룡천과 율천이 오수천에 합류하여 섬진강으로 흘러간다. 행정구역은 남원시 보절면 사촌리와 도룡리의 경계를 이룬다. 지리적으로 풍암산의 북쪽은 동막골봉과 작은 복치봉, 그리고 상서산 너머로 팔공산과 고려와 조선의 창업설화가 서린 임실 성수산이 솟아있다. 동쪽은 큰 복치봉과 작은 복치봉이 지척이다. 남쪽은 안래산, 남서쪽은 노적봉이 다가온다. 서쪽은 성산산성과 영월암을 품은 성적봉과 성산, 서북쪽은 사계봉 너머로 영대산과 오봉산, 칠봉산이 눈앞을 가득 채운다. 풍암산 남서쪽에 위치한 사촌리는 보절면 전 지역에 능선을 이루는 천황봉을 기점으로 12평 파가 동서로 뻗어있는 첫 번째 능선인 제1용이 넓고 평평한 마을 터를 싸안고 있어 평사낙안형(平沙落雁形)이라고 한다. 즉 하늘을 높이 날던 기러기가 날개를 편 채 평평한 모래톱으로 내려앉은 모습이라 하여 사랭이라 불리다가 지명이 한자로 바뀌면서 사촌(沙村)으로 불리고 있다. 사촌리에는 느티나무 보호수가 있다.
♤ 삼배재(825m)/ 시군면계(남원시 보절면 - 장수군 번암면)
남원시 보절면·산동면과 장수군 번암면의 경계부에 솟아있는 안부이다. 삼배재 오른쪽 아래 보절면 도룡리에 삼베골 지명이 있다. 정면으로 상사바위가 보이고 오른쪽 보현사로 내려가는 길에 띠지가 많이 달려있다.
- 보현사 2.4km, 천황봉 2.4km 이정표가 서있다.
♤ 전북 장수군 번암면(蟠岩面)
전북 장수군 남동부에 남북으로 길게 펼쳐져 있는 면으로 조선시대에는 남원군의 관할 하에 있었으며, 1895년 조선 고종 32년에는 장수군 번암면이 되었다. 하천연안을 제외한 전지역이 험준한 산지를 이루고 있다. 면의 북부는 백운산(1,279m), 장안산(1,237m) 등 높은 산이 솟아 있으며, 팔공산, 대성산, 고남산이 동서남북으로 병풍처럼 둘러 있다. 이렇듯 큰 산들이 첩첩으로 둘러 있어 수분계곡, 국포계곡, 사암계곡, 지지계곡, 유정계곡 등이 수십리의 골짜기를 이루고, 자연경관이 빼어나서 가히 무릉선경을 연상케 한다. 계곡마다 흐르는 요천 맑은 물은 노단에서 합류하여 번암들의 젖줄 역할을 하며, 유유히 남원으로 흐른다. 번암면의 지형은 동으로는 백운산과 경계를 이루어 경남 함양군 백전면과 남원시 아영면, 운봉읍과 접해있고, 남으로는 대론들을 가로질러 흐르는 실개천으로 경계를 이루어 남원시 산동면과 접해있고, 북으로는 수분치와 경계를 이루고 장수읍과 장안산과 경계를 이루고, 계남면, 장계면과도 무룡궁재와 경계를 이루어 양면과 인접해 있다. 용림천·백운천 등이 노단리 일대에서 합류해 면의 남서쪽으로 흐른다. 쌀·보리 생산 외에 약초와 고랭지채소 재배가 행해지며, 국포리의 장남호에서는 붕어·뱀장어·메기 낚시도 행해진다. 유적으로는 노단리에 영조의 친필을 보관하고 있는 어서각이 있다.
북쪽으로 뚜렷이 난 길은 잠바지기재로 이어지는 장수군과 남원시를 나누는 경계능선입니다.
♤ 상서바위(上瑞巖, 839.6m)/ 시군삼면봉(남원시 보절면, 장수군 번암면 → 남원시 산동면)/ 대성분맥 분기점
지맥의 오른쪽은 계속하여 남원시 보절면이고, 여기부터 지맥의 왼쪽이 장수군 번암면에서 남원시 산동면으로 바뀌어 완전하게 남원시로 들어서서 보절면과 산동면의 면계를 따른다. 보현사 뒤쪽으로 우뚝 서 있는 웅장한 바위 봉우리인 상사바위(상서바위)는 만행산 최고의 경관으로 꼽힌다. 상서바위에서 조망 즐기고 이정표(천황봉 2.0km/보현사 2.9km)로 돌아와 올라가면 쓰러진 이정표(상서바위/ 보현사 3km/ 하늘별만행산천문체험관 5km)가 서있는 839.6m봉 정상이다. 우측으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가면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연이어지다가 이정표(천황봉 1.2km/ 보현사 2.4km/상서바위 0.8km)가 있는 고개(용평제 하산로)가 나오고, 고개를 지나면 내리막길과 좌측 사면길, 약간의 굴곡이 있는 오르막길이 연이어지다가 두번째 이정표(천황봉 0.7km/상서바위 1.3km)다. 두번째 이정표를 지나면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제법 가파름)이 연이어지다가 세번째 이정표(천황봉 0.2km/ 보현사 2.3km/상서바위 1.8km)가 있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바위지대 밧줄을 잡고 오르고, 목책계단 밟고 만행산에 오른다.
- 보현사 2.9km, 천황봉 2.0km 이정표가 서있다. 발아래 보현사와 용평제가 보인다.
조만간 전망대를 만들 모양입니다. 공사용 자재와 물이 잔뜩 있네요.
♤758.8m봉/ 면계(보절면 - 산동면)
상서바위봉에서 내려서면서 능선 양쪽이 다 남원땅이다. 보절면과 산동면의 면계를 따른다. 천황봉에 오르기 직전 조망처로, 돌아보면 팔공산부터 이어온 지맥길과 백운산에서 육십령을 넘어 남덕유로 오르는 대간 능선이 보인다.
목책 계단으로 천황산을 오릅니다. 지맥의 이름을 부여한 천황산의 조망이 사방팔방 막힘이 없네요. 멀리 지리산 주능까지 환하게 조망이 됩니다.
♤ 천황산(天皇山, 909.6m)/ 만행산, 萬行山)/ 나무데크 전망대
만행산(천황산, 天皇山)은 전북 남원시의 보절면 신파리, 도룡리와 국포리 · 대상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주봉(主峰)은 천황봉이며, 보현봉(普賢峰)이라고도 하고 천황산이라고도 부른다. 원래 산의 옛 이름은 만행산이다. 산동면에서는 천황봉, 보절면에서는 만행산이라고 부른다. 수계는 천황산의 동사면과 남사면의 대상천으로 모여 남쪽으로 흐르다가 요천을 만나 합류하고, 서사면으로는 도룡천과 다산천이 모여 율천에 합수하면서 진기천으로 합류된다. 백두대간의 주맥에서 덕유산과 장안산을 지나 장수 동쪽의 영취산(靈鷲山)으로부터 맥이 갈라져 내려와서 수분치(水分峙)를 지나 천황산에 이르렀다. 천황산에서 서남쪽으로는 교룡산이 이어진다. 남원의 지세는 주산인 백공산이 교룡산에 압도당한 형국이다. 주산을 북돋우기 위해 비보사찰인 선원사를 백공산에 배치하고, 현판을 '만행산 선원사(萬行山 禪院寺)'라고 쓴 것은 백공산의 모체가 천황봉 아래의 만행산 줄기이므로 만행산의 큰 힘을 불러오려는 뜻이 담겨 있다. '만행'은 만 가지 고행을 몸소 체험해야 비로소 진리를 얻을 수 있다는 교리를 담은 불교 용어다. 하지만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상에는 이 산의 이름이 왕을 뜻하는 '천황산(天皇山)'으로 돼 있다. 정상에 서면 동쪽으로 천왕봉에서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능선과 정령치·고남산·백운산·덕유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북쪽으로는 팔공산, 서쪽으로는 보절면의 들녘, 남쪽으로는 교룡산·풍악산·문덕봉·고리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들이 펼쳐진다. 산의 동쪽 사면에 전북지방에서는 가장 오래된 백제 고찰 귀정사(歸政寺)와 옛 귀정사의 절터인 귀정사지(歸政寺址, 전라북도기념물 제76호), 만행산천문대가 있고, 서쪽 사면에 보현사(普玄寺)가 자리 잡고 있다. 전주-남원간 4차선 국도를 따라 달리다가 오수를 지나 남원시 춘향터널에 도달하기 전 남원 덕과면과 사매면 땅에서 동쪽으로 유독 뾰족하게 솟아 보이는 산이 바로 천황산이다. 천황산은 남원 동북부지역에서는 제일 높은 산으로 남원시 보절면과 산동면의 경계선상에 솟아 있으며 일명 만행산으로도 불리워진다. 등산기종점이 되는 보절면 도룡리 용동마을에서 정상에 이르기까지 아흔아홉골이라 일컬어지는 계곡에 시원한 용동폭포가 걸려있고 이곳에 자리잡은 보현사 일대의 수려한 경관 때문에 찾는 이가 많다. 사계절 어느 때 찾아도 좋지만 특히 봄철의 철쭉능선과 철쭉군락 지대가 유명하다. 구조선이 남북으로 달리며 임실쪽 섬진강의 지류에 의해 율천과 산동천의 분수계가 되고 있다.
- 우틀로 꺾어 급경사로 내려서는데 오른쪽 보절면쪽으로 군부대가 있어 세번째 사격장 경고판이 있는 676.6m봉까지 1시간 정도 포성이 계속 들리는 능선을 지난다.
♤ 귀정사(歸政寺)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귀정사의 옛 이름도 만행사였으나, 고려 말 이성계가 고남산에서 운봉 황산벌에 침범하는 왜장 아지발도와 왜구를 멸하고 회군길에 이곳 만행사에서 삼일 동안 머물다 돌아갔다가, 임금이 된 뒤에 다시 만행사에 와서 삼일 동안 정치를 하고 돌아갔다 해서 귀정사라 명했다 한다. 그 뒤 지명도 바뀌어 법당 뒷산인 만행산을 천왕봉으로, 왼쪽의 봉우리를 태자봉(太子峰), 앞산을 승상봉(丞相峰), 남쪽 산골을 남대문재(南峙), 북쪽산골을 북대문재(北峙)로 하였으며, 병사들이 주둔한 곳을 둔병치(屯兵峙), 천황봉 줄기 산자리 밑에 평평한 바위를 상소바위, 사찰아래 마을을 삼일 동안은 당나라 요순시대와 같다하여 요동(堯洞) 또는 요골이라고 했다고 한다.
♤ 남대문치(南峙, 633.6m)
남대문치는 남원시 산동면 태평리와 보절면 진기리를 이어주는 고개로서 봉우리 주위로 산불지역이라 잡목이 무성하여 여름철 회피 지역이다. 지맥은 오른쪽으로 향하고 왼쪽으로 연화산(527.9m) 능선이 왼쪽으로 분기되어 연화산삼거리(663.2m)에서 조금 더 진행하면 만나는 봉우리이다.
♤ 522.1m봉/ 삼각점봉
고남산의 뒷면목과 지리산 주능을 실컷 바라보며, 가시잡목과 맹감나무로 더디게 진행하는 구간이다. 천황봉에서 2시간 정도 내려선 지점이다.
- 3등삼각점(남원 305/ 1981 재설)이 있다.
♤ 구라치(求螺峙, 310m)/ 면계(산동면 - 보절면)
남원시 산동면 목동마을과 보절면 괴양리를 잇는 고개로 양회임도가 지난다. 괴양리 개신마을의 지명유래를 낳게 한 부안 김씨와 광주 안씨가 이곳 구라치에서 만나 부안 김씨는 산동면에, 광주 안씨는 보절면 괴양리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깊게 깍은 절개지라 급경사로 내려와 급경사로 다시 오른다. 구라치에서 약산갈림길까지 꽤 가파르다.
띠지가 잔뜩 걸린 작은 소무나무가 있는 약산갈림삼거리에서 지맥은 왼쪽으로 가는데 오른쪽으로 약간 비켜서 있으며 산패도 조망도 없고 달랑 선답자의 띠지만 몇 개 보이는데 최근 부뜰, 천왕봉운영자님의 수고로 준희선생님 산패가 달리게 되었습니다.
♤ 약산(藥山, 450.9m)
전북 남원시 보절면 서치리에 있는 산이다. 지맥에서 오른쪽으로 약간 비켜서 있다. 약산은 지네의 형상이고 맞은편에는 닭벼슬 형상의 계룡산이 자리하고 있다. 지네는 닭에게 천적으로 닭벼슬 형상의 마을 뒷산을 보호하기 위해 옛 선조들이 꾀를 내어 행한 것이 남원 삼동굿에서 행해지는 지네밟기의 시초가 되었다. 산자락에 고려후기에 창건한 남원관음사가 자리하고 있다.
- 다시 맥길로 되돌아 나가야 한다.
♤ 463m봉/ 청룡산분기점(-0.9km)/ 삼면동봉(남원시 보절면, 산동면 → 갈치동)
오른쪽에 채석장이 있다. 채석장으로 인해 마루금이 훼손되어 길이 변해있다. 채석장 절개지를 따라 내려서기도 하고 왼쪽으로 행복의 집으로 내려가는 임도를 따르기도 한다. 목동리 마을 앞으로 국도 19번 도로가 동쪽의 장수군과 연결되어 있다. 또한 서부지방산림청 근처에서 북쪽의 보절면으로 이어진 도로가 있다.
- 30분 정도 내려서면 갈치에 닿는다.
♤ 청룡산(靑龍山, 479.1m)
전북 남원시 산동면 목동리에 있는 산이다. 목동리는 나무가 무성하여 나무골로 부르다가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목동이 되었다. 청룡산 풍곡골 자락에 형성된 중산간부 지역으로 지형은 높은 편이다. 산아래 자연마을인 요천의 본래 이름이 청룡이다. 1900년경 새로 생긴 마을로 요천강변 국도변에 위치하여 요천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청룡산 아래 터를 잡았다고 해서 청룡마을이라고도 부른다. 산자락에 남원자연휴양림이 있다.
왼쪽 아래로 꽤 큰 규모의 행복의집 건물이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후 도착하는 묘지에서 좌틀로 내려서면 행복의집 임도를 통해 갈치로 나가고, 묘지에서 직진하면 채석장 능선을 통해 갈치 정상에 내려섭니다.
♤ 갈치(葛峙, 220m)/ 서치재/ 동면계(남원시 보절면 - 갈치동)/ 721번지방도로
남원시 보절면 서치리와 시내동(갈치동) 사이에 경계를 이루는 고개로 721지방도로(보산로)가 갈치를 통과한다. 고산봉 동쪽 기슭에 칡이 많아 칡고개라 하였으며,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갈치라 하였다. 노인요양원 행복의집이 있고, 버스정류소가 있다.
- 다음 구간 들머리는 도로건너 전봇대 옆, 짤려진 능선으로 오른다.
멀리서 봤을 때는 고산봉쪽이 지맥 줄기인지 알았는데 지맥은 고산봉을 포기하고 급우틀합니다.
♤ 고산봉(高山峰, 427.1m, -1.4km)분기점/ 삼면경계면(남원시 보절면, 갈치동 → 광치동)
전북 남원시 갈치동에 있는 산이다. 앞쪽으로는 고산마을 경계가 되고, 뒤로는 식정과 경계하는 청룡산이 놓여 있다. 갈치마을 앞으로 조그만 소하천인 갈치천이 길게 흘러 남원시로 이어지고 있다. 고산봉은 왼쪽으로 가고 지맥은 오른쪽으로 내려간다. 보절면과 갈치동의 경계를 따라오던 지맥의 왼쪽이 광치동으로 바뀌어 우틀한다.
♤ 남원시 광치동
광치동은 본래 남원군 왕지전면의 지역이었다. 1914년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율치리, 광석리, 호치리를 병합하여 광석과 율치의 이름을 따서 광치리라 하여 왕치면에 편입되었다. 1956년 남원읍에 편입되고 1981년 남원시 광치동이 되었다. 광치동 율치마을은 옛날 서울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지리적으로 마을 뒷산이 높아 고개를 넘어가야 했다. 이곳에 쉬어가는 주막이 생기면서 밤재마을이 형성되었다. 일설에는 밀양 박씨가 1700년대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서남대학교가 마을 앞에 있어 대학촌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2018년 2월 28일 폐교되면서 마을도 생기를 잃었다. 산 주변에 밤나무가 많아서 밤재라고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마을 이름이 한자로 율치(栗峙)로 바뀌었다.
채석장에 이르기 직전 돌무더기가 있는 안부인데, 예전에 성황당고개였나 하며 지난 곳입니다.
♤ 에끼재/ 여시재/ 여우고개(狐峙)
고산봉 분기점에서 내려선 안부사거리로 사매면 대신리에서 광치동 호치마을을 잇는 고개이다. 광치천의 세천인 호치천의 발원지이다.
♤ 호치봉(狐峙峰, 331.3m, -0.3km)
호치봉의 행정구역은 남원시 광치동 호치마을과 사매면 대신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호치봉은 남원시 광치동 호치마을 서쪽 천황지맥에서 남쪽으로 0.3km쯤 벗어난 지점에 남원시내 방향으로 우뚝 솟구친 산이다. 호치봉의 지명은 광치동 호치(狐峙)마을에서 따온 이름이다. 여우 호(狐)를 쓰는 호치를 우리 고유어로 해석하면 옛적에 여우가 살았던 여우고개 아래에 있는 마을이란 의미다. 그런데 오늘날의 호치봉을 품은 호치마을 주변은 온통 태양광발전 시설로 자연경관이 크게 훼손되었다. 설상가상으로 호치마을에서 사매면 대신리를 잇는 호치(여우고개, 여시재)에도 대형축사가 들어서고 석산개발로 인해 북쪽의 산허리가 잘려나가 황량한 몰골이다. 따라서 천황지맥을 산행하려면 호치에서 북쪽의 사매면 대신리 방향으로 내려가서 석산개발 복원지로 올라야 한다. 국토정보지리원 《지형도》에는 호치봉의 위치에 산의 높이(331.3m)만 표기하였다. 하지만 호치의 위치를 책여산의 위치에 잘못 표기해서 혼선을 야기하고 있다. 《전라북도 전도》는 호치를 호인치로 잘못 표기하였다. 이 때문에 호치를 호인치로 잘못 인용하는 산악인들이 있다. 《남원시 행정지도》에는 호치나 호치봉에 대한 표기가 없다. 어떤 지도나 문헌에는 《전라북도 전도》처럼 여우 호(弧)를 쓰는 호치(狐峙)를, 범 호(虎), 사람 인(人)을 쓰는 호인치(虎人峙)로 잘못 해석한 경우도 있다. 호치봉의 물줄기는 광치천을 통하여 섬진강의 지류인 요천으로 흘러든다.
♤ 책여산(380.5m)/ 삼면봉(남원시 광치동, 보절면 → 사매면)/ 계룡산분기점
지맥 마루금은 정상 오르기 전에 좌틀이지만 100m쯤 올라갔다가 되돌아 온다. 조망은 없고 바닥에 부서진 산불감시초소 흔적이 있다. 영진 5만지도에 호인치로 표기된 곳으로 계룡산 분기점이다. 보절면과 사매면의 면계를 따라 직진하면 계룡산으로 가는 등로이고, 지맥은 100m쯤 되돌아간 둔덕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서 사매면과 광치동의 경계를 따른다.
- 4등삼각점(남원 415/ 1981 제설)이 있다.
♤ 계룡산(391.3m, -2.0km)
정상에 통신시설이 보인다. 보절면 괴양리는 계룡산 줄기를 따라 형성된 구릉에 위치한 중산간 지역의 마을로, 안개가 심하다. 덕과면 양선리는 보절면 북쪽 성산 줄기에 계룡산이 있어서, 아침해가 뜰 때 이 마을이 제일 먼저 햇살을 볼 수 있다고 하여 양선(陽先)이라 부르게 되었다. 금호남정맥의 천황지맥이 동·서·남의 삼방을 준령으로 둘러싸 사매면 일대를 분지화하였다. 동쪽은 계룡산(388m), 서쪽은 노적봉(580m), 남쪽은 율치(368m)의 준평원 구릉지로 낮은 야산 지대이다.
♤ 도로/ 호치, 여우고개, 여시재
오른쪽 사매면 대신리와 왼쪽 광치동 어끼재(호치) 방향으로 남원시 향교동으로 이어지는 편도 1차로를 횡단하여 절개지를 올라 코를 찌르는 돈사 우측으로 올라선다.
♤ 남원시 사매면(巳梅面)
전북 남원시 북서부에 있는 면으로 동쪽은 계룡산(391.3m)을 경계로 보절면, 서쪽은 노적봉(565.1m)을 경계로 순창군 동계면·임실군 삼계면과 오수면을 접하고, 남쪽은 춘향터널을 경계로 광치동·대산면과 접하며, 북쪽으로는 덕과면과 인접하고 있다. 노적봉이 솟은 면의 서부는 500m 내외의 산지이며, 그밖의 지역은 300m 내외의 낮은 산지와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있다. 하천이 서쪽으로 흐르는데, 섬진강의 상류인 율천천, 매내천, 월평천 등 중소 하천이 삼계석문(三溪石門)을 통하여 흐른다. 사매면은 원래 조선시대 남원도호부 48방 중 2방(사동방·구내방)에 속한 지역이었는데, 남원부사 정엽이 구내방의 구자(丘字)는 공자의 이름이므로 지명으로는 불가하다 하여, 그가 지은 매화시(梅花詩)에 연유하여 구내방을 매안방으로 고쳐 불렀다. 그후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 때 매안방과 사동방을 합쳐 사매면으로 부르게 되었다. 매내천 등 면내를 흐르는 소하천들이 율천을 이루어 남서류하며, 하천양안에 소규모의 충적지가 발달했다. 벼·보리 등의 주곡작물 외에 사과·배 등의 과수재배가 활발하며, 양잠업과 축산업도 이루어진다.
♤ 혼불
남원시가 소설 『혼불』의 배경지를 문학코스로 개발한 혼불문학관은 소설의 주 무대인 남원시 사매면 노봉봉 기슭에 자리잡았다. 『혼불』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 암울한 현실 속 남원의 작은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유서 깊은 가문 "매안 이씨"문중을 지키는 종부 3대의 이야기다. 특히 "나 홀로 내 뼈를 일으켜 세우리라"라는 말을 몇 번이고 말하며 청상과부로서 종가집을 지키는 청암 부인을 중심으로 소설의 전반부가 진행된다. 또한 손자 강모의 이야기와 거멍굴 사람들의 고된 삶 또한 그려져 있다. 한편 청암부인의 혼불이 효원에게로 흡수되면서 효원이 종부로서 문중을 지키는 것으로 소설이 마무리 된다.
♤ 나분들고개(387m)/ 나분덜재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고갯마루 안부이다. 남원시 사매면 대신리와 광치동을 잇는 이 안부는 향교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다시 산으로 오르면 등로가 좋다. 광석마을은 남원시 향교동이 관할하는 법정동인 광치동에 속하는 자연마을이다. 마을 앞에 넓고 큰 돌이 있어 마을 이름을 ‘넓은 돌’ 또는 ‘너븐 들’, ‘나븐 들’ 등으로 불렀는데, 마을 이름을 한자어로 표기하면서 광석이 되었다. 광석마을의 동쪽은 호치마을, 서쪽은 문고마을과 율치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 뒷밤재봉(371.6m)/ 삼각점봉/ 삼거리
뒷밤재봉 아래에 있는 뒷밤재는 남원 광치동에서 사매면 대율리로 넘어가는 밤재로 북율치, 후율치, 대율치 등의 별칭을 가졌다. 밤나무가 많았다는 밤재가 남원의 남쪽(앞)과 북쪽(뒤)에 두 개가 있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서 주천면에서 구례군 산동으로 넘어가는 밤재를 앞밤재, 전율치(前栗峙) 또는 남율치(南栗峙)로 불렀다. 《호남읍지》와 《전라도 각 읍지》 등을 통해 왕치동의 밤재는 후율치, 주천면의 율치는 전율치라고 한 것을 알 수 있다. 뒷밤재봉은 사매면 대율리와 옛적에 밤나무가 많았던 광치동의 밤재마을에서 따온 이름이다. 지리적으로 뒷밤재봉의 북쪽은 나분들재봉과 계룡산, 북동쪽은 약산 너머로 만행산 천황봉이 수호신처럼 지켜준다. 동쪽은 채기산과 청룡산, 동남쪽은 고산봉, 남쪽은 남원시가지가 한눈에 잡힌다. 남서쪽은 교룡산, 서쪽은 왕재산과 천황지맥의 노적봉줄기가 에워싸고 있다. 전주와 남원을 잇는 17번 국도가 오리정에서 춘향터널을 거쳐 남원으로 곧바로 가는 지름길이 뚫리기 전만해도 차량과 길손들은 반드시 뒷밤재를 지나야만 했다. 예로부터 한양과 전주를 오가던 곳으로 밤재마을과 주막이 있었다. 이 충무공의 백의종군 길도 오수에서 뒷밤재를 거쳐 남원으로 이어졌다. 지금의 뒷밤재는 집 한 채만 있는 한적한 곳으로 변해 버렸다. 송림이 어우러진 뒷밤재에서 서남대학교까지 '뒷밤재솔바람길' 등산로가 개설되었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에는 남원시 광치동과 사매면 대율리 경계의 천황지맥에 뒷밤재봉의 이름은 없고 높이(371.6m)만 표기되어 있다. 《한국지명총람》 (사매면)에는 “대율리(大栗里)는 밤재 아래에 있어 한바미 또는 대율로도 불리며, 밤재는 박석마을에서 남원시 광치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밤 명당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남원의 마을유래》에는 “남원시 광치동 율치마을은 옛날 서울로 가는 길목으로 밤나무가 많아서 밤재라고 했다.”고 나와 있다. 《조선환여승람》 남원에는 북율치는 왕치면(현재 왕치동), 남율치는 주천면에 있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밤재는 조선시대에 남율치로 불린 것으로 보인다. 뒷밤재봉의 물줄기는 서쪽은 사매면 대율리에서 발원하는 월평천이 같은 면 서도리에서 오수천으로 유입되어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남쪽은 율치천이 용정동에서 광치천에 유입되어 주생면에서 요천을 만나 섬진강에 합수되어 남해로 흘러든다. 뒷밤재봉의 행정구역은 남원시 광치동 밤재와 사매면 대율리와 경계를 이룬다.
- 삼거리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고 이정표 아래 봉우리가 아닌 능선상에 3등삼각점(남원 304/ 1981 재설)이 있다.
♤ 뒷밤재(240m)/ 휴게실/ 백의종군로
17번 구도로가 지난다. 17번국도 춘향터널이 아래로 뚫리는 바람에 차량통행이 없어 고개마루에 솔바람캠프 휴게소 건물이 방치되어 있고, 남원시에서 테마길로 조성한 '뒷밤재솔바람길'로 변했다. 오른쪽으로 뒷밤재휴게소가 보인다.
- 뒷밤재에서 청사초롱길을 지나 왼쪽으로 오르면 춘향각 팔각정자가 있다.
춘향각에서 '뒷밤재솔바람길'로 올라서면 무덤 같지 않은 무덤이 하나 보입니다. 지맥은 여기서 좌틀입니다.
♤ 왕묘산(王墓山, 322.9m)/ 왕재산
선답자들의 띠지만 나무에 매달려 있는 봉우리이다. 왕묘산 남쪽 내척동 내동마을 위에 위치한 왕묘동은 신라 때 교룡산을 쌓고 남원에서 죽은 중국의 장수 '왕유후'를 왕으로 예우하여 장례한 왕묘(王墓)를 간직한 곳이다. 왕지전방(王之田坊)의 지명도 '왕유후'가 묻힌 왕묘를 보살피고 제사지낼 전답이 있었던 곳이란 의미다. 내동마을 위에 있었던 왕묘동에는 왕묘를 관리했던 사람들이 거주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왕재산은 내척동의 옛 지명인 왕치면(王峙面/ 왕재)에서 따온 이름이다. 따라서 왕재산보다 왕지전면의 유래와 왕으로 예우하여 장례했던 '왕유후'의 왕묘(王墓)를 간직한 왕묘산으로 불러야 역사적 의미가 더 깊다. 《한국지명총람》에는 “왕재산은 너랭이골 북쪽에 있는 산이다. 왕묘동(王墓洞)은 내동 북쪽에 있는 골짜기다. 왕묘골 방죽은 왕묘골 남쪽을 이루는 연못이다.”고 나와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에는 산의 높이(322.9m)만 표기되어 있다. 《전라북도 전도》, 《한국 지명유래집》에는 왕묘산 기록이 없다. 역사적이나 풍수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에서 임금 왕(王)을 쓰는 산의 유래를 고찰해 보면 모두 왕이나 임금과 연관되어 있다. 예컨대 산청군 군서면에 있는 왕산(王山)은 가락국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릉이 있다. 문경시 산양면의 왕의산(王衣山)은 고려 공민왕이 몽고군의 침입 때 안동으로 피난했다가 환궁 때 이 산의 나무에 옷을 걸어놓고 쉬었던 곳이다. 포천시 포천읍에 있는 왕방산(王方山)은 조선 태조가 왕위에서 물러난 뒤 귀경하다가 왕자들의 골육상쟁의 소식을 듣고 아픔을 달래기 위해 이 산에서 며칠을 머물렀다하여 왕방산으로 불렀다.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왕모산(王母山)은 홍건적 난 때 고려 공민왕의 어머니가 피난을 갔다. 군산대 곽장근 교수는 “왕묘는 왕이나 임금이 묻힌 왕릉이 아닌 왕으로 예우 받았던 무덤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 322.9m봉을 내려서면 전라선이 지나는 화정터널 위이다.
♤ 남원시 내척동/ 향교동
내동마을은 1200년경 권씨가 정착하여 생겨난 마을이며, 미동마을은 1540년경 오씨가 정착하여 생겨난 마을로 마을 뒤 산기슭에 미륵부처가 있다. 보성마을은 1962년 8월에 집단 이주된 마을이며, 재실마을은 1540년경 오씨가 정착하여 이룬 마을이다. 《남원의 마을유래》와 《한국 지명 총람》에는 “내척동은 본래 왕지전면(王之田面)의 지역인데 1914년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내동리, 미척리, 구봉리 일부를 병합하여 내동과 미척의 이름을 따서 내척리가 되었다.”고 나와 있다. 1981년 다시 남원시로 승격되면서 리가 동으로 바뀌어 용정동 관할이 되었다. 1995년 1월 1일 남원시와 남원군이 통폐합함에 따라 남원시 내척동이 되었다가 1998년 9월 22일 용정동이 향교동에 통합되었다. 《조선환여승람》 (남원)에는 왕묘동(王墓洞)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왕묘동은 왕치면(王峙面)에 있다. 신라 때 중국 장수 왕유후(王儒候)와 설인귀(薛仁貴)가 교룡산에다 성을 쌓았는데, 설장수는 일을 마치고 돌아갔다. 하지만 왕장수는 이곳에서 죽었다고 한다. 이에 그를 왕으로 장례하였으며 그를 제사지낼 전답까지 주었다. 이 방(坊)의 이름을 왕지전(王之田)이라하였다. 훗날 사람들이 그의 묘를 가르켜 왕묘(王墓)라 하였다.
♤ 꽃쟁이재/ 안부사거리/ 삼면동봉(258.9m)/ (남원시 사매면, 광치동 → 대산면)/ 교룡분맥분기점
258.9m봉에서 오른쪽(북서)으로 꺽으면 별다를거 없는 낮은 안부사거리이다. 꽃쟁이재에서 몇 발자욱 떨어진 곳이 능선상 258.9m봉이다. 지맥의 오른쪽은 계속 사매면이고, 왼쪽이 광치동에서 대산면으로 접어든다. 지맥의 왼쪽(남쪽)으로 교룡분맥이 분기한다.
♤ 교룡분맥((蛟龍分脈)
백운산에서 천황지맥은 남쪽으로 뻗어가며 장수군 산서면과 장수읍의 경계에 비행기재, 개치, 개동산, 상서산, 852.7m봉을 일으킨 뒤, 장수군 번암면과 남원시 보절면과 산동면의 경계의 상사바위(839m)에서 천황지맥이 두 갈래를 친다. 동쪽으로 대성산 줄기를 보내고, 남쪽의 산줄기는 남원의 만행산 천황봉, 약산, 책여산, 호안치, 춘향터널을 지나 노적봉으로 가기 전에 동쪽으로 가지 친 교룡분맥에 교룡산(518.9m)을 지나 기린산과 복음산을 일으킨다. 백제시대에는 교룡군(蛟龍郡)이라 불렸던 남원이 현재의 이름을 얻은 것은 통일신라 경덕왕 때다. 교룡산은 남원시내 서북쪽에 있는 산이다. 능선에는 남원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3km 교룡산성이 둘러있고, 산속에는 신라 고찰 선국사가 자리한 남원의 명소 중 한 곳이다. 기린봉과 복음산의 물줄기는 요천을 통하여 섬진강에 합수되어 남해로 흘러든다. 행정구역은 기린봉은 남원시 산곡동이고 복음산은 남원시 왕정동이다. 기린봉(麒麟山, 239m)은 교룡산과 함께 남원의 서쪽을 수호하는 산이다. 교룡산에서 남쪽으로 길게 뻗은 산줄기가 기린의 긴 목처럼 생겼기 때문에 기린봉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교룡산에서 갈려나온 기린봉의 남쪽에 위치한 복음산(福音山, 190.9m)은 남원시 왕정동에 위치한 만복사지 뒷산이다. 이 사찰은 노총각과 처녀의 사랑을 이야기한 김시습의 <만복사저포기>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교룡산 남쪽에 위치한 복음산 정상에는 앙증맞은 정상석과 삼각점, 운동시설 등이 있다. 복 복(福) 소리 음(音)을 쓰는 복음산은 사전적 의미로 ‘복되고 반가운 소식’을 전해 주는 산이라 할 수 있다.
♤ 만복사지(萬福寺址)/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매월당 김시습의 《만복사저포기》의 무대인 보련산과 보련사가 금지면 서매리에 있는 고리봉과 옛 폐사지 절터(보련사)가 고려시대부터 자생했던 야생차 군락지로 알려졌다. [만복사지] 만복사는 기린산 아래에 지은 사찰로 일설에는 신라말 도선국사가 지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기록에 의하면 고려 문종 때 세운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사찰에는 대웅전, 천불전, 영상전, 종각, 명부전, 나한전, 약사전이 있었으며 5층 석탑, 석불입상, 당간지주, 석인상등이 있어 규모가 매우 큰 사찰이었다고 하며 만복사지 부근에는 백뜰, 썩은 밥배미, 중상골 등의 지명이 있어 당시의 사찰 규모를 추정할 수 있다. 《금오신화》의 저자 김시습은 만복사를 배경으로 《만복사저포기》라는 한문소설을 남겨 한문소설의 효시를 이루었으며 당시 만복사의 실상을 알 수 있게 하고 있다. 만복사지는 고려시대의 절터로 7차에 걸친 전북대학교 박물관의 발굴조사(1979~1985년)로 여러 건물지가 확인되고 다수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현재 고려시대 오층석탑(보물 30호), 석조대좌(보물 31호), 당간지주(보물 32호), 석조여래입상(보물 43호)과 석인상 등의 유물과 건물의 초석 등 많은 석조 유물들이 남아 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왜적이 남원 서문을 통과하여 이 절에 와서 방화하여 거의 불타 버렸다.
♤ 2차선 포장도로/ 관개수로/ 745번지방도로
과거 채석장을 복원한 소나무 조림지를 요리저리 지난 지점이다. 남원시 사매면과 대산면을 잇는 745번지방도(대사로)가 지나고 그 위로 농사용 물이 흐르는 관개수로가 지난다.
- 수로를 따라 도로를 건너 잠시 양회임도를 걷다가 오른쪽 비탈로 치고 오른다.
들머리가 복잡하다고 하여 왼쪽 대산면 쪽으로 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다 우사로 올라가니 관개수로 아래로 지맥으로 합류하는 임도가 있습니다. 소나기가 잠깐 사이 몽창 쏟아지네요. 우사에 들어가 잠깐 소나기를 피하고 나섭니다.
♤ 계동(桂洞)고개(250m)/ 분토고개/ 745번지방도로
왼쪽 남원시 대산면 옥율리와 오른쪽 사매면 계수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오른쪽 아래로 사매면 계수리 계동마을이 있다. 계성농장 표석이 서있고 남원시내로 통하는 시내버스 노선인 745번 지방도로가 지난다. 반사경 옆이 들머리다. 처음 10여 분은 길이 고약하다.
♤ 심곡임도/ 소곡제
사매면 수동마을에서 대산면 심곡마을로 이어지는 임도로 적은 차는 능선까지 올라설 수 있다. 발 아래 땅 속으로 순천-완주고속도로 심곡터널(사매1터널)이 지나간다. 왼쪽으로 300m 가량 가다가 사매면과 대산면계가 나뉘는 지맥 마루금을 만나 비탈로 올라간다.
노적봉에서 비홍치까지는 잡목 걱정없이 등로가 좋습니다. 서쪽으로 용골산, 회문산, 성수지맥 무량산, 원통산이 한눈에 훑어지고, 남쪽에는 교룡산이 지척이고, 동쪽으로는 지나온 만행산이 조망되는 곳입니다.
♤ 노적봉(露積峰, 565.1m)/ 삼면봉(남원시 대산면, 사매면 → 순창군 동계면)/ 헬기장
남원시 사매면, 대산면, 순창군 동계면에 걸쳐 있는 삼면봉이다. 화강암질 편마암의 암석들이 봉우리를 이룬다. 지맥이 순창군을 만나 여기부터 사매면과 헤어지고 동계면과 남원시 대산면의 경계를 따른다. 정상 약간 아래쪽의 거대한 암벽에 고려시대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노적봉 마애여래좌상(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146호)이 있다. 마애불 근처에 호성암이라는 암자가 있었으나 한국전쟁 때 없어졌다고 한다. 노적봉 남쪽으로는 풍악산(606.9m)·응봉(매봉)·문덕봉(599.7m)·고정봉(596.8m)·삿갓봉(624.3m)·고리봉(710.1m)이 이어진다. 노적봉은 소설 《혼불》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며, 서도리 노봉마을에 혼불문학관이 있다. 정상 이정표에 풍악산 2.8km, 사매면 서도리 혼불의 배경지인 노봉마을에 있는 혼불문학관을 3.4km, 2시간 거리로 안내한다.
- 2등삼각점(남원 21/ )이 있다.
♤ 순창군 동계면(東溪面)
순창군 동계면은 섬진강 상류에 위치한 순창군의 동단으로 남원시·임실군과 인접한다. 동계면 지역은 삼한 시대에는 마한,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속령이었다. 통일신라, 고려를 거치는 동안 남원부에 속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아동방(阿東坊)은 순창군에, 영계방(靈溪坊)과 성남방(城南坊)은 각기 남원부에 속하였다. 1914년 아동면(阿東面)과 영계면(靈溪面)을 병합하여 순창군에 편입되면서 아동면의 ‘동’ 자와 영계면의 ‘계’ 자를 따서 동계면이라 하였다. 지형은 용골산과 두류봉이 남쪽을 향해서 전개됨으로써 구릉성 산지와 함께 소규모 분지가 나타나고, 그 사이로 섬진강이 남쪽으로 흐르고 있다. 한편 천황산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보절면과 둔남면을 거쳐 임실군 삼계면 산수리를 지나면서 동계천이란 이름으로 적성면 평남리에서 북쪽으로 흘러온 섬진강과 동계면 끝자락에서 합류한다. 금호남정맥의 지맥으로 용궐산(645m)·무량산(587.6m)·노적봉(565.1m)·풍악산(606.9m) 등이 솟아 있다. 평야는 오수천과 그 지류를 따라 소규모로 분포한다. 동쪽으로 노적봉(露積峰) 등을 경계로 남원시 사매면·대산면, 남서쪽으로 섬진강(적성천)을 경계로 적성면 북쪽으로 임실군 덕치면·삼계면과 접한다. 동계면의 동부와 서부를 섬진강의 지류인 오수천(獒樹川)과 섬진강이 흘러 남서쪽의 적성면 평남(平南)에서 합류하며, 높이 300~600m의 산과 그 사이 분지로 되어 있다.
이 높은 곳에 무슨 고개가 있을까 생각하게 한 곳입니다.
♤ 신치(466m)/ 신재/ 시군면계(순창군 동계면 - 남원시 대산면)
오른쪽은 순창군 동계면 수정리이고 왼쪽은 남원시 대산면 길곡리로 시군면계이다. 잘룩한 안부로 양방향으로 뚜렷한 길흔적이 남아있는데, 예전에 동계면 사람들이 남원장터를 오가던 제법 큰 고개다. 동으로 조망이 터지면서 교룡산과 북남원 인터체인지가 바로 아래다. 북남원IC와 계동마을에서 올라 온 능선이 다 보인다
성수지맥의 끝머리 부분 섬진강 가에 있는 체계산이 보이고 그 뒤로 무등산도 아스라하게 보입니다. 성수지맥은 아직 미답의 지맥입니다.
♤ 풍악산(楓岳山, 606.9m)/ 시군계(남원시 - 순창군)
남원시 대산면과 순창군 동계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금강산(金剛山)처럼 경관이 아름다워 이름을 풍악산(楓岳山)이라 하였으며 단풍나무산이라고도 한다. 정상에는 뫼 산(山)자의 커다란 삼각형 바위가 자리 잡고 있다. 산은 높지 않지만 섬진강 옆의 평지에 우뚝 솟아올라 산행할 때 조망이 좋으며, 특히 정상 주위는 시원한 전망과 함께 온갖 기암괴석과 울창한 송림을 갖추어 경관이 빼어나다.
- 이정표가 가리키는 비홍재방향으로 향한다.
♤ 응봉(580.8m)/ 매봉/ 웅산/ 헬기장
정상부는 널찍한 헬기장이지만 주위에 웃자란 나무가 둘러쳐져 조망은 없다. 이정표에 응봉(525m)이라고 쓰여 있다.
- 이정표가 풍악산 2km, 비홍재 5.5km를 가리킨다.
♤ 제봉산(濟鳳山, 283.3m)/ 젯봉/ 수덕분맥
응봉에서 동쪽으로 갈려나온 수덕분맥이 월계산을 지나 제봉산을 일으킨다. 물줄기는 북쪽은 옥율천이 요천에 합류하여 섬진강, 남쪽은 대곡천(봉황천)이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행정구역은 남원시 대산면 대곡리다. 지리적으로 제봉산의 북쪽은 천황지맥의 풍악산과 노적봉, 동쪽은 교룡산, 남쪽은 봉황대 너머로 옥녀봉, 서쪽은 월계산과 천황지맥의 응봉 능선이 에워싸고 있다. 제봉산은 봉황을 상징하는 상서로움의 길지다. 제봉산(젯봉)은 대실(대곡) 북쪽에 있는 봉(鳳)의 형국이다. 봉황대는 대곡리 상대 앞(남쪽)에 있는 산으로 옛날 중국의 도사가 지나면서 중국 어느 곳에 있는 봉황대와 같다고 했다. 본래 대곡은 봉황의 먹이가 되는 대나무 열매가 많아서 대실(大實), 또는 죽곡(竹谷)이라 했다. 그런데 1914년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 통폐합 때 열매 실(實)의 음만 바꿔서 대곡大谷으로 왜곡했다.
♤ 냉기재
서쪽 계산저수지, 동쪽 신계리 석산이 보이고, 작은 매봉에서 산줄기가 서쪽으로 꺾여 내린다. 벌목지를 내려서면 남쪽으로 금풍제와 감동마을이 다가온다. 곧이어 북쪽 동계면 상외령, 남쪽 대산면 감동마을을 잇는 냉기재가 나온다.
♤ 순창군 동계면 수장리(壽墻里) 상외령(上外靈)
동계면 소재지에서 신촌교를 지나 동계천을 따라 2㎞ 정도 올라가면 수장 마을이 나온다. 풍악산 준령으로 이어진 조그마한 산줄기에 마을 터가 이루어져 마을이 숯다리미 형국으로 되어 있다. 하늘에서 보면 풍악산을 달리던 말에서 말안장이 떨어져 있는 말안장 터 형국으로도 본다. 한편 화재를 막기 위해 마을 중앙에 인공 호수를 만들어 물을 가두었다는 설이 있다. 그때 만들었던 방죽 터가 남아 있다. 동계면 소재지에서 5㎞ 지점의 남원군 대강면과 경계를 이루는 풍악산 영봉의 계곡에 위치해 영계(靈溪)라 부르던 것을 남원 고을 영계방(靈溪坊)의 바깥 영계라 하여 외령(外靈溪)라 불렀다[강촌, 내령을 안령계[內靈溪] 상외령, 하외령을 밖영계[外靈溪]라 불렀음]. 1972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외령리를 상외령(上外靈)과 하외령(下外靈)으로 분리 개칭하였다. 상외령에는 임진왜란 때 경주 정씨(慶州鄭氏)가 파주에서 피난 와 터를 잡고 약 400년간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하외령 마을은 양촌, 음촌 2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장 마을에는 광주 이씨(廣州李氏) 이필방(李必芳)이 순조(純祖) 때 적성면 괴정에서 와 선산 아래 터를 잡고 정착하였다. 가작 마을의 옛 이름은 소고촌(小孤村)으로, 선인(仙人)이 바둑을 관람하다가 짚고 있던 지팡이가 썩었다는 설화가 전한다.
♤ 십자산(423.4m)/ 삼면봉(남원시 대산면, 순창군 동계면 → 남원시 대강면)/ 상의령갈림길
상외령갈림길표지판에서 조금 더 진행하여 등로 왼쪽에 3등삼각점이 있는 삼각점봉이 있다. 등로는 오른쪽으로 비켜가고 삼각점은 풀밭에 숨어있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삼각점봉에서 내렸다가 살짝 올라선 봉우리가 삼면봉인 십자산(423.4m)이다. 삼면봉임에도 인증할 아무런 표시가 없다. 여기부터 노적봉에서 만난 순창군 동계면과의 군면계를 벗어나 남원시로 진입하여 면계를 따르는데 왼쪽은 대산면 오른쪽은 대강면이다. 오른쪽으로 남원에서 비홍치 너머에 있는 대강면 풍산리 산촌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황희정승의 조부 묘터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 3등삼각점(남원 302/ 2001 복구)이 있다.
♤ 사라재(274m)/ 면계(대산면 - 대강면)
남원시 대산면과 대강면 풍촌리를 잇는 풍산리, 수홍리의 경계지점으로 깊이 패인 안부로 임도가 지나는 갈림사거리 고개이다. 대강면 풍산리와 대산면 풍촌을 잇는 농로다. 좌우 지척에 밭이 보이고, 한 5분 올라가면 능선 왼편으로 묵은 수렛길이 나와 따라가면 322.6m봉까지 왼편으로 휘돌아 간다.
- 풍악산 5.7km, 비홍재 1.8km 이정표가 서있다.
♤ 달봉(374.5m)/ 삼면봉(남원시 대강면, 대산면 → 주생면)
비홍재까지 0.5km를 안내하는 이정표가 보이는 갈림삼거리로 왼쪽으로 조금 벗어나 있다. 지맥의 오른쪽은 계속 대강면이고 왼쪽이 대산면에서 주생면으로 바뀌는 지점이다. 잡목으로 조망은 없다. 바로 아래 이정표가 있고, 이정표에서 우틀로 내려선다.
♤ 남원시 주생면(周生面)
남원시에서 남서쪽으로 8㎞ 가량 떨어진 주생면은 북서쪽이 막히고 동남쪽이 훤히 터진 비옥한 평야지대, 그 중심부를 요천이 가로지르는 곳으로 서북쪽이 구릉성 야산, 동남쪽이 평야지대로 형성돼 있다. 주생면은 조선시대 이언방(伊彦坊), 주포방(周浦坊), 자성방(者省坊,南生坊) 등 3개 방이 있었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주포와 남생의 이름을 따서 주생면이라 칭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쪽으로 남원시와 송동면에 접하고, 북쪽으로 대산면, 서쪽으로 대강면, 남쪽으로 금지면에 마주하고 있다. 남원 시내에서 길게 흐르는 요천이 주생면 너른 들 중심을 관통하며 생명수를 공급, 농사짓기 알맞은 고장이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남원 48방의 명당을 손꼽을 때 첫째가 이언, 둘째가 지당이었다고 하니, 예로부터 물 맑고 공기 좋고 물자가 풍요로웠던 주생면은 인물 나기 좋은 고장이었다. 주생면의 명산은 서쪽의 문덕봉(599.7m)이다. 위로 대강면, 아래로 금지면에 걸친 문덕봉은 대둔산, 구봉산 등과 함께 전북의 5대 바위명산으로 꼽힌다. 문덕봉에 올라서서 남으로 장쾌하게 뻗어나간 산줄기를 따라 솟아오른 삿갓봉(629m)과 고리봉(708.9m)을 바라볼라치면 마치 천군만마를 거느린 대장군의 위세를 실감할 지경이다.
기러기가 나는 형국이라는 비홍치는 남원-순창간 국도가 지나 버스가 자주 있는 편이며, 정상에 정류소는 없으나 손을 들면 버스가 정차해 줍니다.
♤ 비홍치(飛鴻峙, 240m)/ 비홍재/ 면계(대강면 - 주생면)
비홍재는 대강면과 주생면의 경계로 4차선 24번 국도가 지난다. 풍악산 등산안내도가 있다. 전북 남원에서 순창 가는 24번 국도를 따라 비홍(飛鴻)재를 넘으면 풍계서원이 있는 풍산리다. 행정구역으로는 남원시 대강면 풍산리 산촌마을인데 여기에 조선조 명재상으로 유명한 황희 정승 조부 묘가 있다. 이 묘를 쓰고 황희 정승을 배출하였다 하여 유명한 곳이다. 마을 뒷산 중턱에는 여러 기의 묘가 자리 잡고 있는데 제일 위가 황희 정승 조부 황균비(黃均庇) 묘다. 전설에 의하면 황희 정승 아버지가 어려움에 처한 나옹대사를 구해주고 그 보답으로 얻은 명당이라고 한다. 무학대사의 스승으로 알려진 나옹대사가 전국을 유람하다가 친한 친구사이인 남원 오부자 집에 오랫동안 머물게 되었다. 오부자는 자신의 신후지지(身後之地)를 잡아 달라며 많은 돈을 미리 나옹대사에게 주었다. 나옹대사는 이 돈을 가난한 절에 주어 불사를 하는데 사용하도록 하였다. 그 후에도 오부자는 여러 차례 나옹대사에게 많은 돈을 주면서 불편이 없도록 해주었다. 그런데 욕심 많은 오부자 아들이 아버지의 그러한 모습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어느 날 아버지가 출타한 틈을 이용하여 나옹대사를 묶고 시줏돈만 받아 가고 명당은 잡아 주지 않는다며 이리 저리 끌고 다니면서 봉변을 주었다. 마침 이 장면을 목격한 황희 정승 아버지 황군서(黃君瑞)가 그 동안 나옹대사가 받은 돈 전액을 마련하여 오부자 아들에게 주고 대사를 곤경으로부터 구해 주었다. 이를 고맙게 여긴 나옹대사는 오부자 신후지지로 잡았던 자리를 황군서에게 소개 해주었다. 명당을 소개받은 황군서는 아버지 황균비 묘를 바로 이장하였다. 그러자 부인에게서 태기가 있었는데 장차 아이가 큰 인물이 될 것이라 예견한 그는 태어날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 서울인 송악으로 이사를 하였다. 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아이가 바로 황희 정승이다. 황희 정승 조부 묘터 이야기는 세상사 모든 것은 주인이 따로 있는데 그 주인이 덕을 쌓고, 사람을 감동시키면 명사를 만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 인연으로 명당에 조상을 모시면 후손의 번창을 기약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남는다 하겠다.
- 비홍치부터 이후에 서있는 이정표는 모두 엉터리,,, 문덕봉 4.1km, 고리봉 9.1km, 상귀삼거리 13.4km입니다.
♤ 359.6m봉/ 삼각점봉
- 4등삼각점(남원 446/ 2001 복구)이 있다.
♤ 비홍산성
이 산성은 남원시 대강면과 주생면 내동리에 걸쳐 있는 삼국시대 포곡식 산성으로 유적은 비홍재와 곰재를 잇는 산줄기에 위치한다. 남원∼순창간 국도를 따라 가다가 비홍치 정상에서 남으로 직선거리 500m 남짓한 곳에 성의 북쪽면이 시작된다. 성벽은 적당히 깎은 가공석을 이용하여 내외면의 면을 맞추고 그 안쪽에는 할석을 채웠으며 내탁법으로 쌓아올린 성벽 중 6m 가량 높이가 남은 곳도 있으며 대체적으로 잔존 성벽 상부 폭은 4.7m 내외이다. 또한 『고적조사』에 의하면 주위는 약 900m 정도로 알려져 있다. 망루지와 건물지로 추정되는 터가 보이고 있으며,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편과 기와편이 보이고 있다. 이 산성과 관련된 이야기가 『용성지』에 전한다. 순창 양(楊)씨 집안의 이씨 성을 가진 할머니가 고려 때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치마폭으로 돌을 가져다 쌓은 성이라서 ‘할미성’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또한 군대 식량으로 쓰일 군량미를 창고에 모으고 합하여 둔 곳이라는 의미에서 합미성(合米城)이 할미성으로 와전되었다는 설이 있다.
- 산성 옆으로 난 등로를 따른다.
♤ 곰재(310m)/ 88고속도로 남원터널
곰재(남원터널 상단부)는 주생역과 남원으로 걸어서 넘나드는 지름길이었다. 안부 사거리에 있는 고개로 올라서면 왼쪽으로 반야봉과 주생면 내동리에 금풍제가 보이고 정면으로 문덕봉이 있다. 주능선 왼쪽으로는 비홍치, 오른쪽으로는 문덕봉~고정봉~삿갓봉~고리봉을 잇는 천황지맥이다. 이 산줄기의 터널이 남원터널로서 광주-대구 88고속 도로가 옥전과 평촌, 입암 앞 들을 지나서 남원과 순창을 연결한다.
문덕봉-고리봉 거리는 4.9km, 섬진강 건너 호남정맥이 가깝고 순창시내에 있는 아미산이 조망됩니다.
♤ 문덕봉(門德峰, 599.7m)/ 삼면봉(남원시 대강면, 주생면 → 금지면)/ 무인산불감시카메라
남원시 대강면 평촌리에 있는 산이다. 암릉으로 된 이 문덕봉은 남쪽에서 바라보면 거대한 절벽을 이루고 있어 소금강을 방불케 한다. 문덕봉 남쪽에는 손잡이가 달린 석문(石門)이 지금도 있다고 하는데 찾을 길이 없어 안타깝다. 옛날 대강면 옥전마을 뒤에 있는 사찰의 대사가 석문 옆에 있는 샘에서 금바가지로 물을 떠먹고 수도하며 마을사람들에게 큰 덕을 베풀었다고 하여, 門德의 이름을 얻었다 한다. 그 뒤, 어떤 사람이 석문 안에 있는 갑옷을 꺼내려고 석문을 정으로 흠집을 내자 벼락이 쳐서 실패했다는 전설이 있는가하면, 송내마을에서는 뾰족하다고 해서 촛대봉, 금지방면에서는 도장봉으로 부른다. 정상에 서면 동북쪽으로 남원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섬진강으로 합류되는 남원 요천이 광활한 금지평야의 젖줄이 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암릉 철계단으로 오르면 일망무제의 조망이 트인다. 고리봉과 문덕봉이 여러 지역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고지라 6.25때 빨치산이 일시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 2등삼각점(남원 26/ 1991 재설)이 있다.
♤ 남원시 금지면(金池面)
금지면은 기지방(機池坊)과 금안방(金岸坊) 등 2개 방이 있었던 지역으로, 1897년(고종 34)에 8도를 13개 도(道)로 개편하면서 방이 면(面)으로 바뀌었고, 금안면이 금지면의 중심이 되었다. 면의 동쪽은 송동면, 서쪽은 대강면, 북쪽은 주생면과 접하고 있으며, 남쪽은 전남 곡성군과 각각 접하고 있다. 서쪽에는 고리봉(710.1m)과 문덕봉(599.7m)이 위치하고 있으며, 해발 55m의 평야 지대이다. 면의 동쪽은 풍천천이 요천에 합류하고 이는 다시 남쪽 하도리 근처에서 섬진강에 합류하여 남쪽으로 흐른다. 남원군 남서부지역으로 금안부곡(金岸部曲)이 있어 금안향면(金岸鄕面)이라 했으며 창활, 내기, 택촌, 신기, 하귀, 상귀, 석전 등 7개 리(里)를 관할했는데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통폐합 때 기지면(機池面)의 고룡, 옹정, 호산, 입암, 서촌, 매촌, 방촌 등 7개 리(里)와 두동면(豆洞面)의 임촌, 상신, 도촌의 각 일부와 주포면(周浦面)의 제천리 일부를 병합하여 금안과 기지의 이름을 따서 금지면이라 하고 옹정, 입암, 서매, 방촌, 창산, 택내, 신월, 상귀, 귀석 등 9개 리(里)로 개편하고, 면사무소를 창산리에 두었다. 1919년 창산리에 위치한 면 청사가 화재로 전소 되어 다시 지을때 지금의 옹정리로 옮겼다. 또 1935년 3월 1일 행정구획 개편에 따라 두동면의 상신리와 하도리가 금지면에 편입하여 12개 리(里)를 관할하게 되었다. 1995년 1월 1일 남원시,군이 통합되어 남원시 금지면이 되었다. 논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비닐하우스의 시설 재배 단지로 이용되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벼를 비롯하여 딸기·포도·수박·감자·복숭아·토마토 등의 생산으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주요 관광지로는 남원시 금지면과 대강면의 경계를 이루는 고리봉과 삿갓봉, 그리고 금지면과 대강면, 주생면의 경계인 문덕봉이 있어 등반로로 유명하다.
고정봉에서 화산과 체계산 출렁다리 뒤로 용골산과 무량산이 보이는데 성수지맥의 끝자락에 있는 산입니다.
♤ 고정봉(596.8m)
고정봉은 이 산 동남쪽 방향의 남원시 금지면 문덕봉과 고정봉 사이에 있는 고정골에서 따 온 이름이다. 행정구역은 남원시 대강면 송대리, 금지면 서매리에 경계를 이루고 있다. 고정봉은 대강면의 많은 산들을 천황지맥을 통해서 금남호남정맥과 백두대간에 연결시켜 주는 산줄기의 거점이 되는 중요한 산이다. 《한국지명총람》에는 “고정봉은 문덕봉 동남쪽 줄기에 있으며, 고정골은 고정봉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절터가 있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처럼 산악인들에게는 많이 알려진 산인데도 불구하고 국토정보지리원의 《지형도》, 《전라북도 전도》, 《남원시 행정지도》 등에서는 고정봉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다행히 남원시에서 고정봉 정상에 표지석을 세웠다. 남원에서 곡성방향의 17번 국도를 달리다보면 서남쪽 방향에 한 폭의 병풍처럼 비경을 자랑하는 암릉이 눈앞에 다가온다. 문덕봉과 고정봉의 멋진 암릉이 남원의 작은 용아장성으로 불린다. 비홍치와 비홍산성에서 이어지는 문덕봉, 고정봉, 송내봉 등 남원시 대강면과 금지면의 경계를 이루는 금남호남정맥에서 뻗어온 천황지맥의 산줄기가 암릉과 송림이 어우러진 비경을 자랑한다. 고정봉에서 천황지맥은 남쪽으로 뻗어가며 송내봉, 망태봉, 삿갓봉, 두바리봉, 고리봉, 천만리 묘봉, 성안성봉 등을 형성하고 섬진강 앞에서 끝을 맺는다. 고정봉의 물줄기는 서쪽은 섬진강 본류, 동쪽은 요천을 통해서 섬진강에 합류하여 남해의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 정상석이 있고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에 묶여있다.
♤ 남원시 금지면 서매리 서재(書齋)마을
금지면 서매리는 본래 남원군 기지면 서촌리 지역으로 시저굴, 서당골 또는 서촌이라 했다. 1914년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 통폐합 때 서촌리, 매촌리, 입암리 각 일부가 병합되어 서촌과 매촌의 이름을 따서 서매리라 하고 금지면에 편입하였다. 고정봉의 동쪽자락에 위치한 금지면 서매리 서재마을은 약 360년 전 순창 설씨가 입주하여 서당을 개설 학문을 습득케 한 뒤 곡부 공씨 등이 이주 정착하였다. 서쪽의 대강면과 금지면의 지름길인 기러기재(雁峙)에 흘러내리는 계곡의 북쪽에 반월마을이 있다. 순창 설씨가 서당을 설립한 후 서재라 칭하였다. 법정리인 서매리에서 1972년 서재리로 행정 분리되었다. 남서쪽에는 고리봉, 북서쪽에는 문덕봉을 배경으로 서동향 산줄기가 마을을 감싸고 있다.
♤ 557.5m봉
새로 세운 이정표에서 능선으로 가지않고 급좌틀로 그럭재로 급하게 내려서는 알바 주의지점이다. 잘못하면 대강면 송대리 송내마을로 가게 된다. 갈림봉인 557.5m봉을 이 지역에서는 송내봉이라 부른다.
♤ 그럭재(雁峙, 335m)/ 기러기재
대강면 강석과 금지면 서재마을의 경계인 기러기재는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대강면 송대리 송내마을은 송내, 상대치, 하대치마을이 합하여 법정리인 송대리라 하였다. 1960년대에 행정리로 분리되면서 송내리가 되었다. 1380년 경(고려 말)에는 지금의 마을에서 1.5km 떨어진 방터에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1750년경에 그 마을이 폐허가 되자 장수 황씨 8세대가 현 위치에 터를 잡은 후 방씨, 소씨 등이 이주하여 왔다. 당초에는 마을 뒤에 금지면 서매리로 넘어가는 그럭재(기러기재, 雁峙)에서 기러기가 쉬어 간다고 하여 서안리라 하였다. 그 뒤 마을이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이자 솔안으로 바뀌었고, 솔송松, 안내內를 끄는 송내(松內)로 되었다. 마을 주변의 산줄기가 북에서 남으로, 또 동에서 서로 내려와 병목형상을 이룬다. 마을의 물(水, 재물)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다는 수구막 역할의 돌탑 2개소가 있었다. 그러나 1942년 마을 입구에 송강제를 막으면서 멸실되었다. 마을 아래에 원수평들이 있는데, 옛날부터 이름난 한해 상습지로서 ´물이 원수´라는 뜻으로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 이끼가 피어 푸르딩딩한 이정표가 서있다.
♤ 두바리봉(555.3m)
두 개의 산봉우리가 사랑하는 부부처럼 서로 마주 바라보고 있는 두바리봉은 전국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한국지명총람》에는 “두바리봉은 삿갓봉 북쪽에 있는 산으로 두 봉우리가 양쪽에서 마주보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리적으로 두바리봉의 북쪽은 천황지맥의 백미인 암릉으로 이어진 송내봉과 고정봉 너머로 문덕봉이 다가온다. 남쪽은 삿갓봉에서 고리봉으로 이어지는 스릴 넘치고 유려한 암릉이 춤을 춘다. 서쪽은 장군이 투구를 쓰고 천군만마를 호령하는 투구봉이 지척이다. 서북쪽은 덕산과 장구봉이 보인다. 전라북도 전도에는 두바리봉이 나와 있으나, 《남원의 마을유래》, 《남원시 행정지도》에는 산 이름이 없다.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는 산의 높이(555.3m)만 표기되어 있다. 천황지맥 산행의 백미는 두바리봉에서 삿갓봉까지는 송림과 아기자기한 암릉이다. 연꽃형상의 고리봉이 가까워 올수록 암릉으로 이루어진 산세가 웅장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삿갓봉과 고리봉 능선은 암릉으로 이루어진 웅장한 자연성곽의 형상이다. 호남지역에 우뚝 솟아오른 추월산, 모후산, 무등산 그리고 담양과 곡성지역의 산들이 한눈에 잡힌다. 섬진강은 남원, 순창, 곡성일대의 산허리를 감고 돌아 기름진 들녘을 가로지르면서 젖줄 역할을 하고 있다. 두바리봉의 물줄기는 서쪽은 섬진강 본류, 동쪽은 요천을 통해서 섬진강에 합류하여 남해의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행정구역은 남원시 금지면 서매리와 대강면 사석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섬진강 너머로 곡성의 명산 동악산과 최악산이 조망되고, 광주 무등산도 가깝게 조망이 됩니다.
♤ 삿갓봉(624.3m)/ 입봉, 수두봉/ 면계(대강면 - 금지면)
행정구역은 남원시 금지면 서매리, 대강면 사석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지리적으로 삿갓봉의 북쪽은 천황지맥의 암릉미를 자랑하는 두바리봉과 송내봉, 고정봉 너머로 문덕봉이 춤춘다. 동쪽은 삿갓봉에서 뻗어 나간 매화낙지의 형국인 매화봉이 보인다. 남쪽은 하얀 연꽃형상의 고리봉과 섬진강 너머로 곡성의 동악산이 다가온다. 서쪽은 두바리봉과 투구봉이 손짓한다. 신라시대의 마애불상과 남방식 지석묘의 문화유산을 간직한 삿갓봉은 입봉과 수두봉의 별칭을 갖고 있다. 《한국지명총람》에는 “금지면 서매리와 대강면 사석리 경계에 있는 삿갓봉은 금지면에서는 일명 수두봉으로 부른다.”고 나와 있다. 《남원의 마을유래》에는 풍수지리상 삿갓봉은 삿갓을 쓴 스님이 목탁(목탁봉)과 바랑(바랑봉)을 벗어 놓고 춤을 추는 형국이라는 기록이 보인다. 하지만 수두봉에 대한 유래는 알 수 없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 전북 전도에도 등재된 산으로 삿갓봉 너머에는 마애불상과 남방식 지석묘 등의 유물이 있다고 《남원의 마을유래》에 나와 있다. 문덕봉을 내려서면 암릉으로 들어선다. 암릉이 위험할 것 같지만 바위사이로 산행 길이 열려있고, 바위 벽이 앞을 가로막으면 그 옆으로 길이 나있다. 바위가 모여 있는 암릉에 올라서면 바위사이로 오르는 길이 있다. 세 번째 암봉에 올라서면 남쪽의 삿갓봉과 고리봉의 수림이 짙게 우거진 산길로 접어든다. 삿갓봉의 물줄기는 서쪽은 섬진강 본류, 동쪽은 요천을 통해서 섬진강에 합류하여 남해의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 매화봉(梅花峰, 195m)/ 매촌마을 홍화촌
행정구역은 남원시 금지면 서매리 매촌마을이다. 삿갓봉에서 동쪽 매촌마을 방향으로 뻗어 내려온 산줄기에 매화봉을 일으켰다. 매화봉에서 매촌마을 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3번 도로를 건너서 멈춘 곳이 바로 매화낙지 명당인 홍화촌이다. 매화봉은 풍수지리상 매화낙지(梅花洛池)형국으로 알려진 서매리 매촌마을 홍화촌(紅花村)을 품었다. 서재(書齋)골은 서매리 중앙에 있는 마을로 옛적에 서당이 있어 생긴 이름이다. 《한국지명총람》에는 “매촌은 서재골 남쪽에 있는 마을로 풍수지리상 매화낙지형국으로 나와 있다. 풍수지리설에서 매화낙지 형국이란 산줄기가 뻗어 내려오다가 마치 매화 꽃 잎이 떨어진 것처럼 산줄기의 맥이 뚝 끊어졌다가 다시 조그만 봉우리를 이룬 것을 말한다. 그곳에 묘를 쓰면 매화꽃 향기가 멀리 퍼지듯 명성과 인망이 높은 자손들이 태어나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고 한다. 《남원의 마을유래》에는 매화봉 주변 문화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서매리 매촌마을은 매화낙지형국이라서 매촌이라 했다. 매촌마을은 약 460년 전 남평 문씨가 넓은 들을 보고 살기 좋은 곳이라 하여 정착하였다. 그리고 매화봉이란 아름다움과 남쪽은 우뚝 솟은 고리봉과 북쪽은 문덕봉이 있어 시원스럽고 맑은 물이 흐르는 만학동 계곡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 《전라북도 전도》, 《남원시 행정지도》등에는 매화봉의 기록이 없지만, 매화낙지 형국인 홍화촌은 등재되어 있다.
정상에서 서북쪽인 남원시를 바라보고, 남쪽으로는 대강면과 전라남도 곡성군 삼기면이 한눈에 둘어옵니다. 지맥은 고리봉에서 대강면과의 경계를 벗어나 완전하게 금지면 내로 들어섭니다.
♤ 고리봉(還峰, 710.1m)/ 계단/ 면계(대강면 - 금지면)/ 삼각점봉
행정구역은 남원시 금지면 방촌리. 상귀리와 대강면 사석리와 경계다. 조선시대 남원에는 고리봉이 세 개나 있었다. 큰고리봉(1,305m)은 석기시대에 운봉이 호수였을 때 고깃배를 매었고, 만복대 남쪽에 있는 작은 고리봉(1,248.0m)은 옛적에 홍수가 나면 배를 매었다. 금지면의 고리봉은 이제 수심이 낮아져 배가 드나들 수 없다. 예전에는 소금을 실은 배가 경남 하동에서 구례와 곡성의 섬진강을 거쳐 남원성 동쪽 쌍교동의 십수정(十樹亭), 오수정, 참나무정까지 올라가서 닻을 내리고 소금을 보급했다고 한다. 금지면의 고리봉은 옛날에 경상도에서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온 소금배를 정박시키기 위해 배 끈을 묶는 쇠고리를 고리봉 동쪽 절벽에 박아 두었다 하여 고리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고리봉의 물줄기는 서쪽은 섬진강 본류, 동쪽은 요천을 통해서 섬진강에 합류하여 남해의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지리적으로 금지평야 너머로 우뚝 솟아 있으며 웅장하고 수려한 산세를 지닌 바위산으로, 동·서 양쪽 사면에 거대한 바위병풍을 연상시키는 바위 봉우리들이 펼쳐진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전라남도 곡성군의 동악산(動樂山, 735m)과 마주 보고 있다. 고리봉 북쪽으로는 삿갓봉(629m)·두바리봉(555m)·고정봉(605m)·문덕봉(598m)이 이어진다. 남원시가지와 주생, 금지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동쪽은 운해에 감싸여 있는 지리연봉과 서쪽 섬진강 너머로 순창의 강천산과 담양의 추월산이 조망된다. 고리봉(보련산, 골회봉, 환봉)의 주변 문화와 인문지리는 이렇다. 《용성지》에는 “골회봉? 回峰은 일명 고리봉(環峰)이라고도 한다. 도선이 남원부의 지리를 진압하기 위해서 여러 비보사찰과 함께 축천(丑川)에는 철우(鐵牛)를 만들었고, 골회봉에는 용담(龍潭)과 호산(虎山)에 철환(鐵環)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남원지》에는 “ 고리봉은 일명 환봉이라 한다. 남원시의 형세가 풍수지리상 요천과 축천에 의해 둘러싸인 행주형行舟形이라고 한다. 이에 배가 떠내려가지 못하게 매어 두어야 남원에 인재와 큰 부자가 나온다하여 요천 강변의 절벽에 고리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고리봉 정상에는 경주 김공 합장묘 한 기와 3등삼각점(남원 311/ 1981 복구)이 있다. 고리봉에서 산행 날머리 상귀사거리 이정표까지 약 4.3km이다. 다른 사람 묘비에 시비걸 일은 없지만 고리봉에 올라서면 가장 먼저 묘지와 마주한다. 해서 초행자는 자칫 묘지로 알고 지나쳐 정상석을 놓치는 경우도 있겠다. 彰信校尉慶州金公, 孺人原州元氏 합묘다. 창신교위는 조선시대 종오품(從五品) 무관으로 현령급 (군수-현령-현감), 현재로 치면 5급사무관이다. 郡 아래에 縣을 두었고, 일정인구를 기준으로 하여 인구가 많은 데는 현령을, 인구가 적은 데는 현감을 두었으니 요즘으로 치면 읍장, 면장이다. 합장한 부인은 종5품의 부인이니 품계는 유인이 아닌 공인(恭人)이 맞다.
♤ 만학골재(611m)
만학골은 골짜기에 바위도 많고 작은 폭포도 많아 마치 만마리의 학이 깃든 풍취를 말함일까 아흔아홉골이라 불리는 고리봉~문덕봉 줄기의 동쪽 사면에서 가장 수려하고 물이 풍부한 골이다. 고리봉에서 급비탈길을 7분여 내려오니 고도는 100m가 빠지면서 [만학골재 정상] 이정표가 나온다. 고개라 하기엔 너무 높은데, 왼쪽 만학골에서 올라서는 곳이다. 천장군묘는 정면으로 0.5km이다.
♤ 635m봉/ 천만리(千萬里)장군 묘
금지면 방촌리에 위치한 환봉(環琫, 고리봉)이라는 산줄기에 천장군묘라는 무덤이 있는데 그 무덤의 주인공은 천만리라 하는 분이다. 천씨는 본래 영양(潁陽) 천씨 단본이다. 영양(潁陽)은 중국 노나라의 지명인데 영양천 세보에는 그 시조는 명나라 초기의 중신 천암(千巖)이라 하는 분으로, 그 후손은 대대로 이곳 영양에 살았다. 천만리는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천씨들의 중시조로 아호(雅號)를 사암(思庵)이라 하였다. 선조(宣祖) 25년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군 이여송(李如松) 취하의 영량사(領糧使) 및 총독장(總督將)으로 있어 그의 아들 천상(千祥)과 천희(千禧)와 함께 싸움에 참전하여 군량수송 및 그 보급에 만전을 기하여 평양 및 곽산 등지에서 아군이 크게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정유재란(1597) 때에는 양호(楊鎬), 마귀(麻貴)등과 함께 세 부자가 다시 조선에 나와 직산(稷山), 울산(蔚山)등 여러 곳에서 큰 전공을 세웠다. 그는 명군이 철수할 때 그대로 머물러 조선에 귀하하니 조정에서 그를 화산군(花山君)에 봉하고 또한 후일에 충장공(忠壯公)이라 시호(諡號)하였다. 숙종 때 조정에서 그의 전공을 기리기 위해 대보단을 설치하여 이에 종안하였고 순조 때는 고성군 호암서원에 봉안하고 현종 때에는 청도군의 황강서원에 각각 봉안하였으며, 고종 때에는 문경군의 노양각, 진주의 만첨각, 안동의 동산서원에 각각 봉안하였으며 고종 33년(1896)에는 이곳 금지면에 환봉사를 세워 그 명나라 장수 이여송의 휘하에서 전쟁에 참가했던 천장군은 천사했다고 한다.
♤ 천황지맥 합수점
천황지맥의 마지막 산줄기는 지도상으로는 요천이 섬진강으로 흘러드는 금지면 하도리의 하도리마을이 맞겠지만 보통은 하산하여 전라선 철로를 지나 인공수로로 생각되는 무명천이 금지면에서 흘러 섬진강과 합류되는 상귀삼거리(상귀교) 아래에서 천황지맥을 마무리한다. 금지천과 섬진강이 만나는 합수점 직전 58.8m봉에 4등삼각점(남원 446)이 있다. 천황지맥은 요천을 분수령으로 하기에 요천과 섬진강의 합수점까지 고집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는 요천과의 합수점은 왼쪽에서 흘러오는 무명천이 섬진강과 만나는 상귀교를 넘어야 하는데, 요천과 섬진강의 합수점까지 금지천을 건너지 않고 천황지맥을 잇자면 고리봉을 지난 만학골봉에서 동쪽에 위치한 매촌마을로 가야하는데 매촌마을에서 요천 합수점까지는 논두렁으로 중간중간 인공수로를 건너야 한다. 고로 현재의 변형된 지형으로는 요천 합수점까지 물을 건너지 않고 가는 방법은 요원하다. 상귀사거리에서 자전거길을 따라 직진하면 귀석리이고 귀석리를 지나 합수점이 있는 하도리다.
♤ 요천(蓼川)
요천은 섬진강의 지류들 중 하나로서 전북 장수군 장안산(1,236.9m)과 팔공산(1,151m)에서 발원해 전북 남원 분지에 있는 남원시 산동면의 중앙부를 지나 남원시 금지면 하도리와 곡성군 고달면이 경계를 이루는 지점에서 섬진강과 합쳐진다. 섬진강의 제1지류이며 하천연장은 60.03km이며, 유역면적은 485.70㎢이다. 요천이 지나는 곳에 형성된 충적평야에 남원시내와 금지면의 광활한 논밭이 형성되는 등 남원의 젖줄이라고도 불린다. 하천 주위에 여뀌꽃이 많이 핀다하여 蓼(여뀌 요)川이라 한다. 골산(骨山)의 전형을 보여주는 고리봉의 이름은 소금배를 묶어두었던 '고리(還)' 에서 유래한다. 지금 남원 시내를 관 통하며 흘러내리는 요천은 남원 관광단지 앞 물줄기만 둑을 쌓아 뱃놀이가 가능하지만,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하동을 출발한 소금배가 섬진강에 이어 요천 물줄기를 거슬러 남원성 동쪽 오수정(참나무정)까지 올라와 닻을 내렸다고 한다. 당시 소금배가 중간 정박지로 금지평원에 머물기 위해 배 끈을 묶어두었던 쇠고리를 바로 고리봉 동쪽 절벽에 박아 놓았다는 것이다.
♤ 남원시 금지면 하도리(下島里)
본래 남원군 두동면 지역으로 용연촌, 용소촌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구기리, 도촌리 일부와 금안면 석전리 일부가 병합되어 하도리라 했으며, 1956년 7월 금지면에 편입되었다. 용전리는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 전 박씨, 황씨, 김씨, 이씨, 기타 30여 개의 성씨가 200여 호의 마을을 형성하였다. 1900년 발생한 대홍수로 인하여 전답 및 가옥이 수몰되었으며 이재민과 인명 피해가 발생하였다. 1909년 다시 대홍수를 맞아 마을 전체가 수몰되면서 마을은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용전리는 마을에 연못이 있어 그 연못에서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에 따라 용소촌 또는 용연촌이라 하였다. 하도리는 폭우만 내리면 사면이 침수되어 마을이 섬처럼 우뚝 솟아 보이고 남원시의 제일 남단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아래 하(下)’자와 ‘섬 도(島)’자를 합하여 하도(下島)라 칭하게 되었다. 섬진강과 요천(蓼川)이 합류되는 곳으로 물이 맑고 산이 없으며 마을의 위치가 높아 임진왜란 당시 나주임씨가 난을 피하여 정착하였다. 그 후 옥천조씨가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하게 되었다. 용전리 동쪽으로는 요천이 흐르고 하도리 남쪽으로는 섬진강이 흐르고 있다. 비가 많이 오면 상습적으로 침수되는 지역이었으나 1961년 섬진강 연안에 제방 공사가 완료되어 침수에 대한 우려는 사라졌다. 하도리 남쪽은 섬진강을 경계로 전라남도 곡성군과 도계를 이루고 있어 남원시의 최남단에 위치한다. 금지면 소재지로부터 남쪽의 전라남도 곡성군 방면 17호선을 따라 5㎞ 지점에서 동쪽으로 500m 거리에 있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1980년대부터 시설 원예 작목인 딸기와 감자 등을 재배하여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그 중 감자는 전국적으로 맛과 품질이 뛰어나다.
첫댓글 운영자님 천왕지맥 졸업을 축하 축하드립니다
더운날씨 고생하셨습니다
법광산줄기종주영웅선배님!
선배님 띠지에 21. 3. 17로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맞나요.^^
같은 해 6월인가에 주왕지맥으로 졸업하셨으니 막바지에 다녀가셨네요.
성수지맥과 견두지맥을 계속 살필 수 있었고,
고남산 뒤로 지리산 서북능선이 쳐져 있고, 지리산 주능은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성수지맥 임실 청웅의 백련산이 보였으니 그 앞줄기 성수라인을 짐작해 보았구요.
용궐산도 특이한 모습으로 잡혔으니 그 앞 라인으로 성수지맥을 살필 수 있었습니다.
쳬계산 뒤쪽 배경이 되는 라인이 호남정맥 곡성 옥과를 지나는 설산정도이겠구나 생각도 해봤구요.
풍악산에서부터 무등산이 구름속에 보였구요. 문덕봉에서부터 선명하였답니다.
전체적으로는 죽을 맛이었습니다. 너무 힘든 진행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천황지맥 완주 축하 축하 드립니다
늘 홀산으로 가끔 한방에 강펀치를 날리는 풍라라님 대단 하십니다
소낙비도 맞으시고 그래도 미세먼지가 없는 멋진 하늘이 펼쳐 지네요
몇군데 조망터는 풍광들이 끝내 주네요
아직 미답이라 잘 포스팅 하고 갑니다
성수지맥은 마무리 했지만 천황지맥은 하반기에 할까 합니다
우린 3~4구간으로 나누어 할까 합니다
산행에 많은 도움이 될것 같네요
늘 안산 즐산 하시기 바랍니다^)^
와룡산선배님!
이번엔 전혀 준비가 없이 출발했습니다.
그동안 운동 없이 지나치게 먹고 마신 원인으로 체중은 늘고 근육은 소진되어
장거리산행에 필요한 근지구력을 다른 방법으로 보충해야 하게 되었습니다.
힘들게 진행했습니다.
구간 거리를 짧게 끊어서 가기는 양이 차지 않구요.
준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금남정맥 팔공산에서 분기된 천황지맥을 마무리하셨네요.
천황지맥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지난 현충일에 진행하고 이번에 연이은 행보로 결국 지맥을 끝을 보았네요.
무더위에 주야없이 걷고 걸어서 종착지인 요천 합수점에 이른 감회가 느껴집니다.
마지막 날은 날씨도 좋아 시원스런 합수점 시계를 확인할 수 있었네요.
힘든 여정 마무리하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방장님 감사합니다.^^
몸도 마음도 너무 느슨해져 있습니다.
이런 산행은 남는게 없을것 같아 패턴의 변화를 꾀하고자 했는데
그래도 한번 덤벼보았습니다만 역시나 힘들었습니다.^^
장거리가 되는 지맥은 대충 마무리하고
이제 거리가 짧은 지맥들이니 만치
그만큼 더 쉽게 성큼성큼 가야하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다시 준비되면 또 시작하면 되겠죠, 산이 어디로 가는게 아니니깐요. ^^
퐁라라 운영자님 천황지맥 팔공산 마령재 천황산 노적봉 풍악산 문덕봉 고리봉 등이 눈에선합니다 섬진강도 선명합니다 아름다운 천황지맥 완주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화이팅입니다 부뜰이 운영자님 조력도 한보탬입니다 ~~~~
세르파대장님!
정성들여 걸어두신 대장님 띠지도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하도 힘들어서 세르파대장님도 한숨 돌리며 쉬시느라 띠지를 걸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따로 이순신장군 백의종군길을 알아보지 않았지만,,,
뒷밤재휴게소에서 쉬고 있는데 이순신장군백의종군길을 따르는지 배낭꾼이 두분이나 지나가네요.
그때 합천에서 진을 치고 있는 권율장군을 찾아가 40여 일을 머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슨 지맥?? 수도지맥인가 하면서 알게된 사실입니다.
뒷밤재에서는 남원 요천을 건너 여원재를 넘어서 가셨겠네요.
대간하면서 여원재도 백의종군길이라는걸 알았으니깐요.
더운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여여하게 밀고 나가시는 대장님이 부럽습니다.^^
우여골절 끝에 천황지맥을 끝내기는 끝냈네요.
아무리 더운 날이라도 지맥 산행에서 우중산행은 못할짓 입니다.
그나저나 왠 술은 얻어가지고 생고생을 하셨어요.
참외가 그 때까지도 온전하게 있었다는 것도 신기합니다.
다음으로 성수를 마음에두신 가븐데요.
성수도 만만치 않습니다.
참았다가 늦가을에나 가보시는게 좋겠습니다.
부뜰이성님!
이끼재를 지나서는 등로에 누워 한 시간 정도는 잔것 같습니다.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나는 돼지 돈사를 올라선 무명봉에서 토하고 난리를 치렀습니다.
심곡재임도에서 노적봉에 올라서는 데에도 열번 이상은 쉰것 같네요.
아! 구라치에서도 잠시 누워 있었습니다.
마지막 구간도 힘들었는데 특히 그럭재에서 두바리봉에 올라 삿갓재까지 가는데 멀고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두바리봉 정상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아볼 겨를도 없었네요.
천장군묘에서 내려서는 길에도 몇번이나 쉬었습니다.
그래도 꾸역꾸역 갔다는게 대단했습니다.
마지막 3~400m는 도저히 반바지로 능선을 타지 못하고 임도로 내려섰네요.
상귀사거리에서 택시를 부를까 하다가 또 꾸역꾸역 합수점까지 걸어봤습니다. ㅋ
비홍치에서 형님이 숨겨둔 물 4리터와 참외, 건빵, 쏘시지가 없었다면 남원에 나갔다 들왔을텐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여러모로 감사드립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수동고개에서의 관개수로 물속에 퐁당 들어갔다 나온게 시원했습니다.
물살이 쎄서 몸을 담그지도 못하고, 발이 시러워 물속에 오래 있지도 못할 정도였습니다. 한여름엔 그만입니다.^^
멋진 산줄기 하나를 멋지게 마무리하셨네요.
시간이 갈수록 山心이 쫀득쫀득 더 깊어짐이 행간에서 읽혀집니다.
산행하면서 경험하는 여러가지 일들이 생을 살찌우기도 하는 것 같고....
채석장에서 인심 후한 분을 만나 천문동 귀한 술도 맛보시고
곳곳에 데포해 놓은 부뜰이님의 따뜻한 정성도 나누어 누리시고....
아마 이십 년은 훨씬 넘었을 것 같은데,
금지면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신 지인 한 분이
문덕봉~ 고리봉 라인을 추천해 주셔서 훑은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는 지맥이니 하는 개념은 몰랐었지만
섬진강이 동악산과 지리산 사이를 미꾸라지처럼 흘러가는 이치는 감을 잡았었지요.
천황지맥과는 형제 같은 성수지맥도 곧 밟겠네요.
섬진강과 오수천과 요천이 서로를 그리워하며
희롱하는 우리의 산천이 멋지고 오묘하게 생각됩니다. 멋진 산행 즐감했습니다.
범산선배님!
제 자신이 왜이리 맘에 들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술을 좀 줄이자 싶었는데 그 새를 못 참아 오늘 또 한잔 했습니다.
지고 온 천문동 반틈 먹었네요. 속상한 일이 있어서요.
몸은 더 두꺼워지고, 클라이밍 운동을 단박에 재개하기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제는 운동하며 소일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미치는건 또 뭔지요.
전에는 하루 종일 머무는 죽도리였는데, 그리고 5회 5셋트로 25번 정도 벽을 오르내렸습니다.
미친듯이 무식하게 운동했는데, 이젠 그 시기도 지난것 같습니다.
아쉬움이랄까 미련을 버리기가 어렵습니다.
젊음, 재물, 이성, 청춘, 음식...
이제는 하나하나 놓아야할 시기이고, 결국에는 모두 놓아아할 것들인데
애착과 집착이 눌러붙어 놓아주지를 않고 있습니다.
스물다섯에 제대하고 집에 가서
과거 기록은 아무 필요가 없을것 같아 통신표니, 상장이니, 사진이니 모두 다 불태웠는데....
지나고 보니 정작 남겨 놓은거 하나 없이 쓸데없는 세월만 소일했습니다.
버려야 할건 버리지 못하고, 남겨야 할건 남기지 못하고 남들처럼 평범한 인생을 살지도 못했네요.
오늘은 암담하니 제가 왜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ㅋ~
무지막지한 천황지맥을 2구간 4일간 마무리를 하셨네요
처음부터 끝까지 생각보다 힘들고 어려운 등로였다는 기억인데 중간에 많은 도움들을 받으며 어려웠지만 잘 마무리를 하셨구요
무더위에 농수로에서 더위도 식혔지만 갑작스런 소나기로 고생도 하신 듯 싶습니다.
막바지로 가면서 바위암릉으로 고통을 더해주던 청황지맥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들이 뛰어나 그 또한 오랜 기억속에 남아 있네요
무더운 계절에 천황지맥 완주를 축하 드리며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칠갑산선배님!
천황지맥 멋지네요. 특히 비홍치 이후로 마지막이~
다만 제가 컨디션조절을 못해 힘들었을 뿐입니다.
소나기는 피할 수 있었는데요.
컨디션이 엉망인데에다가 술병까지 얻어서 더 고생했습니다.^^
남원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 수 있는기회가 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