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동이 곧 공부”
종단 초대 교육원장 맡아 ‘교육 체계’ 정립
돌연 사임후 무문관 3년 수행 ‘신선한 충격’
생활과 공부는 하나”…젊은이 포교 새 원력 세워
초대 교육원장을 지내고 3년간 무문관 결사를 마쳐 이(理)와 사(事)를 걸림없이 회통한 원산스님은 현재 젊은층에 대한 포교에 남다른 관심과 원력을 기울이고 있다.
1994년 종단은 개혁을 통해 낡고 비효율적인 제도를 대폭 개편했다. 그 중에서도 교육원의 출범은 종단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통합종단 32년이 지난 뒤 출범한 교육원은 과거 정화운동을 계승하고 미래 조계종의 나갈 길을 밝히는 등불과 다름없었다. 당시 초대 교육원장이 원산스님이었다. 경봉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제방선원에서 화두 참선 정진한 수좌이면서도 당대 최고의 강백인 직지사 관응스님 밑에서 경학을 공부한 원산스님은 선(禪)과 교(敎)를 두루 아우르는 종단 교육 대의를 수행할 지도자로서 제격이었던 셈이다. 교육원을 제 궤도에 올려 놓은 스님은 임기 중간에 산으로 돌아갔다. 3년 뒤 세간을 놀라게 한 소식이 들려왔다.
통도사 율원인 취운암을 지나 영축산으로 오르면 10여개의 암자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온다. 도자기와 들꽃 시조로 유명한 성파스님이 주석하는 서운암을 뒤로하고 숲길을 오르면 백련암이 나온다. 원산스님이 주석하는 암자다. 선원으로도 쓰이는 큰방인 백련사(白蓮舍)가 절의 중심이다. 지난 1월29일 오전 겨울 볕이 백련암을 밝고 따사롭게 감싸고 있었다. 교육원장으로 재직할 때 뵙고 처음이니 벌써 10여년이 흘렀다.
초대 교육원장은 말 많고 어려운 소임이었다. 많은 종도들의 염원을 안고 교육원이 탄생했지만 오랫동안 굳어진 습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수행자에게 ‘교육’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못마땅하게 여기는 스님들도 적지 않았다. 행자를 마치면 모두 스님으로 받들여지던 상황에서 비구(니)계를 수지하기전은 ‘예비승’으로 부르고 복장도 차별을 두는 제도가 입안되자 사미들이 불만을 토로했다. 교육이 길어지면 사중(寺中)일을 볼 ‘인력’이 줄어든다며 교구본사 주지스님들도 시큰둥했다. 지금은 당연시 된 제도들이 10여년 전만해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해괴망칙’ 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 난관을 초대 교육원은 하나씩 뚫고 나아가 오늘날과 같은 안정된 교육체계를 만들었다.
교육원이 어렵게 기반을 마련한 1997년 6월 교육원장 원산스님은 돌연 사표를 던지고 산으로 들어가 버렸다. 3년여 뒤 놀라운 소식이 영축산에서 들려왔다. 서울을 떠난 원산스님은 1998년 2월부터 무문관에 들어가 3년간 하루 한끼만 먹고 묵언하는 용맹정진하였던 것이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해제날 전국에서 모인 신도 1500명이 스님의 얼굴이라도 보려고 모였지만 ‘마음 찾는데 온갖 것이 있다(觀心一法 總攝諸行)’는 글만 상좌를 통해 남기고 스님은 다시 수행생활로 돌아갔다. 이후 원산스님은 초대교육원장에다 무문관 수행이라는 ‘호칭’이 곁들여졌다.
“당시 왜 그렇게 갑자기 내려가셨습니까.” 스님은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갑작스럽지 나는 오래전부터 준비했었다”고 말했다. 스님은 은사인 경봉스님의 가르침대로 오직 화두 참선 정진했다. 대중생활에서 벗어나 더 치열하게 수행할 토굴을 찾아 나섰다가 백련암과 인연을 맺었다. 1937년 운봉스님이 조실로 계실 때 제자인 향곡스님과 성철스님이 정진했던 유서 깊은 선원이었다. 1964년 출가해서 이곳을 찾은 해가 11년 뒤였다. 스님은 3년간 토굴 생활을 하기위해 찾았지만 은사스님 시봉, 통도사 총무, 게다가 직지사에서 관응스님을 모시고 경학을 공부하느라 시기를 자꾸 놓쳤다. 봉암사 선원에서 정진하다가 당시 통도사 총무 현문스님의 청을 받아 강원 강주 소임을 맡기도 했다. 백련암 불사가 시작되고 무문관이 만들어지자 스님은 지체하지 않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스님은 “원을 세우면 반드시 실현된다는 것을 그 때 배웠다”며 “관응스님께 경을 배운 것도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3년간 오직 화두만을 들고 수행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지내셨습니까”라는 질문에 스님은 웃으며 “할일이 태산처럼 많은데 한가할 시간이 어딨냐”며 “3년이 하루 같이 휙 지났다”고 말했다. 스님은 “화두를 드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공부 중에 시간은 의미가 없다”고 덧붙혔다. 스님은 “보고 듣고 말하고 오고 가고 하는 일상 생활 중에 공부가 있으니 생활과 공부는 같은 것이다. 이를 모르고 공부라는 것을 따로 한다고 생각하면 힘들어진다. 바른 생각을 갖고 바른 말을 하며 바로 행동하는 것이 곧 공부임을 명심해야한다”고 말했다.
참선과 경학 원력을 세운 스님은 이제 “포교 원력을 세웠다”고 한다. 특히 어린이 청소년 청년층에 대한 포교에 관심을 갖고 있다.“49재를 지내면 우리나라 가정이 종교문제로 심각하게 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돌아가신 부모님께 올리는 절도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거부하는 자식들을 보면 가정의 의식 변화 없이 무슨 나라 발전과 사회통합이 될 수 있을지 걱정이 든다”고 말했다.
스님은 “이렇게 된데는 우리 스님과 사찰의 책임이 크다”며 “백련암이 비록 산중 사찰이지만 정기법회를 개최하고 교리를 강의하다보니 부인 절에 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처사들이 더 열렬한 신도가 됐다”고 소개했다. 신도 자제가 결혼하면 부모와 자식을 모두 불러서 표구한 가훈과 성전 단주 등을 선물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가르침을 준다는 스님은 “젊은이들이 찾아오는 사찰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산유원지 반대운동에 바쁜 스님 시간을 너무 오래 빼앗았다. 지금껏처럼 앞으로도 스님의 원력이 실현되기를 빌며 자리를 일어섰다. 스님도 “불교신문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경봉스님이 쓴 ‘명월선원’(明月禪院) 현판 앞에 서자 병풍처럼 휘두른 영축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불지종찰’(佛之宗刹)의 화합과 안녕을 실어 보냈다.
“방장도 주지도 가지만 산은 영원히 남는다”
유원지 개발 반대 ‘앞장’
“통도사 앞산 해쳐 산중 분란 여생 남산 살리기에 바칠 것”
인터뷰 내내 스님이 가장 강조하고 걱정한 것은 영축산이었다. 1996년 양산시는 통도사 앞산인 초산을 개발하는 이른바 초산유원지 사업을 발표했다. 28만여평에 위락시설과 호텔 등을 갖춘 관광지로 개발해 돈을 벌겠다는 것이 이 사업의 핵심이다. 국비 200억원과 개인투자 100억원을 들여 진행되는 사업안이 발표되자 마을 주민들과 환경단체 그리고 통도사는 격렬히 반대했다. 사업성이 의심스러운데 자연환경을 파괴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 사업을 가장 반대하는 사람이 바로 원산스님이다. 스님은 통도사 바로 앞인, 사업 구역중심부에 위치한 초산리 출신이다. 하북초등 보광중학교를 거쳐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일 만에 불문(佛門)에 들어 지금껏 영축산에서 살고 있으니 평생을 통도사 사람으로 살아온 셈이다. 스님은 “초산은 영축산의 남산으로 지형적으로 백호(白虎)의 등에 해당한다.
통도사가 혼란스러운 것도 산을 해쳤기 때문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라며 “남은 여생을 남산을 살리는데 바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사업을 추진했던 역대 시장들 중 몇 명이 구속되거나 좋지 않은 일을 겪었으며 개인사업자도 파산하는 불운을 당했다고 한다. 스님은 “양산시는 개발을 통해 돈을 벌 수있다고 하는데 가령 예술인촌이 들어서는 역은 겨울 내내 눈이 녹지 않는 응달인데 누가 올려고 하겠느냐”며 “남산만 파괴되는 재앙을 입을 뿐”일라고 일갈했다.
초기부터 반대운동에 나서고 가장 앞장섰던 스님은 “지난 2004년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중재로 합의한데로 통도사가 토지를 매입하면 사업을 막을 수 있었는데 이를 놓친게 안타깝다.”며 “나 혼자라도 이 사업이 중단될 때 까지 운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기자가 찾아간 날에도 양산시장과 기관장 주민들에게 보내는 탄원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통도사는 앞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아야 할 곳이다. 속리산 법주사, 조계산 송광사도 문화재청에서 문화유산 지정 추진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양산은 찬란한 역사와 문화 아름다운 경관을 지닌 영축산을 망가뜨려 유원지화 하겠다고 한다. 이는 반문화적 반시대적 처사다” 스님은 끝으로 이렇게 말했다. “방장도 주지도 가지만 산은 영원히 남는다. 초산유원지 사업은 전면 취소돼야한다. 원력을 세우면 안되는 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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