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발탄-이범선
● 줄거리
계리사 사무실 서기인 '철호'는 음대 출신의 아내, 군대에서 나온 지 2년애 되도록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동생 영호, 그리고 양공주가 된 여동생 명숙, 전쟁통에 정신 이상이 된 어머니 등과 함께 어렵게 살고 있는 월남 가족의 가장이다.
그는 퇴근하여 산비탈에 해방촌 고개를 올라 집으로 향한다. 다 쓰러져 가는 판자집이다. 대문에 들어서면 어머니의 "가자! 가자!"라는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철호'는 38선 때문에 고향에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했으나 이를 알아듣지 못하는 어머니는 아들만 야속하게 생각한다.
'영호'가 집에 들어오자 '철호'는 그의 성실하지 못한 삶의 태도를 나무란다. '영호'는 자기 방식대로 살겠다고 한다. '철호'의 아내는 십여 년 전 대학 시절의 아름답던 모습을 연상하다가 이제 아무런 희망도 가지려 들지 않는 그녀를 흘끗 쳐다본다. '영호'는 대상 없는 분노를 터뜨리면서 눈물을 흘린다. 골목 밖에서 '명숙'의 발자국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온다. 그녀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채 아랫방으로 가서 가로 눕는다.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어머니의 외침은 밤중에도 계속된다.
다음날 경찰로부터 영호가 강도 혐의로 붙잡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경찰서에서 나온 '철호'는 집으로 돌아간다. 아내가 위독하다는 말을 들은 철호는 명숙으로부터 돈을 받아 들고 병원으로 간다. 그러나 아내는 이미 시체로 변해 있다. 충치가 아파옴을 느낀 그는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충치를 모두 뽑는다. 철호는 택시를 잡아 타고 해방촌으로 가자고 했다가 경찰서로 행선지를 바꾸고, 다시 병원으로 목적지를 바꾼다. 혼란에 빠진 철호는 방향 감각을 잃는다. 운전사는 '오발탄'과 같은 손님이 걸려들었다고 투덜거린다. 차는 목적지도 없이 차량 행렬에 끼여들고 철호는 입에서 선지 같은 피를 흘린다.
● 핵심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전후(戰後) 소설
▣ 배경 : 시간적 → 6 · 25 직후 / 공간적 → 서울, 해방촌 일대(현실에 적응하지 못해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로 혼란과 무질서가 횡행하는 해방촌) / 사상적 → 전후의 허무주의
▣ 시점 : 작가 관찰자 시점
▣ 갈등 : 인물과 사회 간의 갈등
▣ 특성 : 전후 한국 사회의 암담한 현실을 고발한 작품
▣ 문체 : 사실적이며 간결한 문체
▣ 성격 : 객관적인 묘사를 통해 시대의 궁핍상과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냄
▣ 주제 : 선량한 양심을 가진 사람이 겪어야 하는 비참한 현실에 대한 증언
● 인물의 성격
● 송철호 → 계리사 사무실에서 서기로 근무하는 인물로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가난하고 열악한 현실 속에서도 성실하게 살아가려고 애쓰는 인물이다. 그러나 동생 영호가 권총 강도 행각을 벌이고 아내가 죽자 그는 극도의 혼란에 빠지고 만다.
● 영호 → 성실하게 살아봐야 자신만 손해라고 생각하고 한탕주의에 빠져 권총 강도 행각을 벌이는 철호의 동생이다. 그러나 인정에 끌려 차마 사람을 죽이지는 못하며 이로 말미암아 범행이 발각되어 수감된다.
● 어머니 → 전쟁 통에 정신 이상이 되었으며, 북쪽에 두고 온 고향을 한시도 잊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아들 철호를 괴롭힌다.
● 아내 → 일류 여자 대학 음악과 출신이나 말없이 남편의 뒷바라지를 해주면서 살아가는 여성이다. 만삭의 몸으로 가난과 병고에 지쳐 병원에서 죽는다.
● 명숙 → 양공주 노릇을 하는 철호의 여동생
● 감상의 길잡이
이 소설은 철호 일가의 비참한 삶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허기를 참아가며 성실하게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철호, 전쟁 통에 정신 이상이 되어 고향으로 ‘가자’ 소리만 뇌이는 어머니, 생활고에 시달려 과거의 발랄함을 잃어버리고 아이를 낳다 죽는 아내, 전쟁에서 상이 군인이 되어 돌아와 방황하다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권총 강도를 하다가 수감되는 영호,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양공주가 된 명숙, 이들 철호 일가는 모두 궁핍함 때문에 온전하게 자기 삶을 살지 못한다.
이 작품에서 철호 일가의 궁핍한 삶의 원인은 두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는 양심과 법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빈곤할 수밖에 없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부패다. 둘째는 남북 분단과 전쟁이라는 역사적인 굴레가 삶의 터전을 뿌리채 흔들어 놓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철호 일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1950년대 한국 사회 전체의 문제다. 작품에서 계속 반복되는 어머니의 ‘가자’라는 외침에서 ‘현재 여기’의 당대 사회는 더 이상 양심 있고 인간다운 삶이 불가능한 극한 상황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철호가 택시를 타고 방향을 잡지 못하는 것은 1950년대 전후 사회가 뚜렷한 방향성을 상실한 채 혼란에 빠져 있음을 말해 준다. 이처럼 이 소설은 1950년대 전후 사회상을 잘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다.
◈ <오발탄>은 짙은 허무주의를 바탕에 깔고, 전후의 암담한 현실을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는 작품이다.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은 주인공 철호의 가족을 통해서 나타내고 있다. 어머니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워하다가 미쳐 버리며, 동생 영호는 어머니의 원수를 갚기 위해 자원 입대했다가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와서 권총강도를 저지른다. 여동생 명숙은 양공주가 되어 남의 수모를 당하면서도 밤이면 남몰래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울고 몸을 판 돈을 올케의 병원비로 선뜻 내놓는다. 여대생 시절 꿈많던 아내는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음악도였으나 생활에 찌들어 고통을 당하다가 죽어가며, 어린 아이는 영양실조에 걸려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성실히 살아보려고 무진 애를 쓰던 철호는 결국 택시에 몸을 싣고 어디론가 가자고 한다.
◈ 이 작품의 본질적인 의미는 전후의 비참하고 불행한 면을 그리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처럼 비참하고 불행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양심은 어떻게 지켜질 수 있는가를 모색하고 있는 점에서도 찾아져야 할 것이다. 이미 타락해 버린 현실과 화해하지 못하는 인간의 자의식, 양심이라는 '가시'를 빼어 버리지 못하고 가족들의 비극적인 삶을 바라보게 되는 송철호를 통해서, 전후 현실에서 양심을 가진 인간의 나아갈 바를 묻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소설 속에서 그 해답은 도출되지 않고 있다. 다만 방향 감각을 잃어 버린 송철호의 모습이 결말에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 <오발탄>에서 '가자! 가자!'라는 어머니의 외침은 전체적인 소설의 분위기를 결정짓고 있는 독백어가 되고 있다. 암울한 가족적 배경 속에서 간헐적으로 반복되는 어머니의 '가자! 가자!'라는 외침은 철호에게 현실의 압력을 더욱 강박적으로 느끼게 하는 효과음이 되고 있으며, 소설의 분위기를 암울하게 만든다. 어머니의 '가자'라는 말은 과거의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말이다. 이 고향은 분단과 전쟁으로 인해 실향민들의 보편적 삶의 가치가 훼손되기 이전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과거의 행복했던 고향으로 갈 수 있는 길은 없기 때문에 어머니의 '가자' 라는 외침은 현실의 각박함을 더욱 대조적으로 부각시키면서 뿌리 뽑힌 현실에 대한 절망감을 느끼게 한다. 한편 소설 종반에서 철호는 택시를 타고 아무데로나 '가자'고 말한다. 철호의 '가자'는 외침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삶의 방향감각을 상실해 버린 소시민의 삶의 비극적인 절망과 좌절을 표현하고 있다.
● “오발탄”의 분위기
이 작품은 전쟁이라는 비극적 상황 때문에 비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게 된 한 가족상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작품 곳곳에서 발견되는 암울한 분위기는 한 가족과 가정의 분위기일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전쟁을 겪은 사회와 시대의 비극적 분위기를 상징하고 있다.
● 전후(戰後) 소설의 세 가지 경향
- 새로운 기법과 의식 : 전후 의식을 새로운 기법으로 수용하는 경향으로 전쟁이나 그 이후의 극한 상황에서 전통 의식을 부정하고 전후 의식에 의한 성찰을 현대 소설의 기법으로 그리고 있다. - 대표 작가 ; 손창섭, 장용학, 오상원, 김성한 등
- 전통적 기법과 전후 의식 : 근대 소설의 전통적인 소설 기법인 리얼리즘에 의행 전쟁의 소용돌이를 겪은 한국적인 현실에서의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절규하는 인간상을 부각하고 있다. - 대표 작가 ; 전광용, 선우휘, 서기원, 이호철, 최인훈 등
- 전통적 기법과 의식 : 전통적인 생활 의식을 전통적인 소설 미학으로 형상화하는 경향으로 6․25 전쟁 같은 격동기에도 변함없이 살아가는 인간상을 부각시키고 있다. - 대표 작가 ; 강신재, 이범선, 오유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