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無比스님과 함께 하는 유마경 공부(2020.09.21.PM7시)
유마경 불국품
보살의 정토행(淨土行) 국토에 대한 공덕
여러 불자님들 반갑다.
유마경도 3일 쉬었다가 월화수목 공부한다.
오늘 화엄경도 2시에 시작했었다.
이런 어려운 시기가 아니라 하더라도 불자들은 항상 정진(精進)해야 한다. 우리 6바라밀 중에 정진이 있지 않은가?
정진이라는 것은 자기가 마음에 드는 수행법을 선택을 해서 쉬지 않고 꾸준히 하는 공부다. 그것을 연공이라고 한다. 이어서 공부를 한다.
그래 뭐든지 이어서 해야 한다. 쉬어버리면 앞에서 한 것이 연결되기가, 되긴 되겠지만, 좀 어렵다.
그래서 계속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이 시간에 많은 분들이 오셨다.
2시 화엄경 시간은 한낮이라서 이런저런 일이 많을 줄 안다. 그래서 그런가 저녁 시간 이 시간이 더 어렵다고 했는데, 7시 이 시간에 참여율이 더 많다. 반가운 일이다.
유마경 9번째 시간이다.
<10>십선(十善)
십선(十善)이 시보살정토(是菩薩淨土)니 보살(菩薩)이 성불시(成佛時)에 명불중요(命不中夭)하고
“10선이 보살의 청정국토니 보살이 성불할 때에 목숨이 중간에 요절하지 않고”
십악(十惡) 열 가지 악을 반대로 돌이키면 십선(十善) 열 가지 선이 된다.
그 첫째가 살생(殺生)이다.
살생 많이 하지 않으면 중간에 요절하지 않고 장수하고 몸에 병이 없다는 것이다.
저는 몸에 병이 많은 것으로 봐서, 어릴 때 기억만 해도 살생을 많이 했다. 물고기 잡기를 좋아했다. 잘 안되는데도 친구들 따라가서 물고기 잡는 일을 같이 하고 그랬는데 과거생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어릴 때 잠깐 세속에서 살았는데도 살생을 그렇게 많이 했다. 그래서 병이 많은가 보다.
여기 보면 보살이 성불할 때에 목숨이 중간에 요절하지 않는 것은 살생을 안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대부(大富)
“크게 부유하며”
크게 부유하며 라고 하는 말은 투도(偸盜), 십악은 투도 도둑질 하지 말라 하는 것인데, 그 대신에 보시를 많이 하면 그 공덕으로 부유하게 된다.
물질적인 보시를 많이 하면 부유하게 된다.
여기 부유하다는 말은 물질적인 보시를 많이 했다는 뜻이다.
범행(梵行)하며
청정한 행을 갖추고
청정한 행을 갖추고라고 했는데 이것은 사음(邪淫)을 아니했다 그런 뜻이다. 그러면 십선이 된다.
소언(所言)이 성제(誠諦)하고
“말이 진실하며”
망어(妄語)를 하지 아니했다. 망령된 말을 하지 않았다.
상이연어(常以軟語)하며
“항상 부드럽게 말하고”
악구(惡口)의 반대말이다. 악한 말, 악담하는 말, 아주 사람 가슴에 못을 박는 말이다. 참 우리는 어리석게도 그런 말을 많이 했다. 이런 사실을 알면 절대 안해야 되는데 또 업이 있다 보니까 참는다고 참아도 도를 넘을 때가 있다.
권속(眷屬)이 불리(不離)하고
“권속들은 이별하지 않고”
양설(兩舌)은 두 가지 말인데 여기 가서 이 말하고, 저기 가서 저 말해서 사이를 갈라놓게 하는 말버릇이다. 그것의 과보는 권속들이 이별하게 된다.
선화쟁송(善和諍訟)하며
“다툴 일은 잘 화합하며”
양설(兩舌)을 반대로 선(善)하게 하면 화합하게 하는 것이다.
언필요익(言必饒益)하고
“말을 하게 되면 반드시 이익하게 하며”
부질불에(不嫉不恚)하는 정견중생(正見衆生)이 내생기국(來生其國)하나니라
“시기하거나 성내지 않는 바른 견해를 가진 중생이 그 국토에 와서 태어나느니라.”
십악을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면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 탐욕(貪慾) 진에(瞋恚) 치암(癡暗)이다.
마지막에 탐진치(貪瞋癡)는 제일 독한 것, 독약과 같은 것이다. 탐에, 탐욕, 진에, 분노하고 화내고 성내고 하는 것, 치암이라고 해서 어리석음, 그런 것을 반대로 선하게 적극적으로 바꾸면 전부 십선이 된다.
예를 들어서 남의 것을 훔치는 것보다 베풀고 배려하고 보시하는 것, 그런 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11> 방편으로 중생을 성취함
여시(如是)하야 보적(寶積)아 보살(菩薩)이 수기직심(隨其直心)하야 즉능발행(則能發行)하고 수기발행(隨其發行)하야 즉득심심(則得深心)하고 수기심심(隨其深心)하야 즉의조복(則意調伏)하고 수기조복(隨其調伏)하야 즉여설행(則如說行)하며
수여설행(隨如說行)하야 즉능회향(則能廻向)하고 수기회향(隨其廻向)하야 즉유방편(則有方便)하며 수기방편(隨其方便)하야 즉성취중생(則成就衆生)하고
“이와 같으니라. 보적이여, 보살이 정직한 마음을 따라서 곧 능히 행동에 옮기고, 행동에 옮김을 따라 곧 깊은 마음을 얻고, 그 깊은 마음을 따라 곧 생각이 조복되고, 그 조복됨을 따라 곧 말한 대로 행동하며, 말한 대로 행동함을 따라 곧 능히 회향하고, 그 회향을 따라서 곧 방편이 있게 되고, 그 방편을 따라 곧 중생을 성취하느니라.”
이와 같으니라 보적이여, 보살이 정직한 마음을 따라 곧 능히 행동에 옮기고, 정직한 마음을 따라서 곧 행동에 옮기고, 행동에 옮김을 따라 곧 깊은 마음을 얻고, 그 깊은 마음을 따라 곧 생각이 조복되고, 그 조복됨을 따라서 곧 말한 대로 행동하며, 말한 대로 행동함을 따라 곧 능히 회향하고, 그 회향을 따라서 곧 방편이 있게 되고, 그 방편을 따라 곧 중생을 성취하느니라.
중생을 성취한다는 말은 교화하고 조복하고 성숙시키고 성취하고 그런 뜻이다.
<12> 마음청정, 공덕청덕
수성취중생(隨成就衆生)하야 즉불토정(則佛土淨)하고
“중생을 성취함을 따라서 곧 불국토가 청정하고”
중생을 성취함을 따라서, 중생을 곧 교화 조복 성숙시켰다면 그것을 따라서 곧 불국토가 청정하다. 우리 국토가 청정하고
수불토정(隨佛土淨)하야 즉설법정(則說法淨)하고 수설법정(隨說法淨)하야 즉지혜정(則智慧淨)하며 수지혜정(隨智慧淨)하야 즉기심정(則其心淨)하고 수기심정(隨其心淨)하야 즉일체공덕정(則一切功德淨)하나니라
“불국토가 청정함을 따라서 곧 설법이 청정하고, 설법이 청정함을 따라서 곧 지혜가 청정하고, 지혜가 청정함을 따라서 곧 그 마음이 청정하고, 그 마음이 청정함을 따라서 곧 일체공덕이 청정하느니라.”
여기 이 대목을 유마경에서 특히 아주 화려한 설법이다 라고 본다.
이것을 한 호흡에 촥 읽고, 또 한 호흡에 읽고 하면 그 느낌이 마음에 와 닿는다.
<13> 마음청정, 불토청정
자꾸 절정을 향해 내닿는다.
시고(是故)로 보적(寶積)아 약보살(若菩薩)이 욕득정토(欲得淨土)인댄 당정기심(當淨其心)이니
“그러므로 보적이여, 만약 보살이 청정한 국토를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그 마음을 청정하게 하여야 하나니라”
참 좋다. 욕득정토(欲得淨土)인댄 당정기심(當淨其心)이니
청정한 국토를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그 마음을 청정하게 하여야 하나니
수기심정(隨其心淨)하야 즉불토정(則佛土淨)이니라
“그 마음이 청정함을 따라서 곧 불국토가 청정하여지느니라.”
내 마음이 청정하면 우리가 사는 환경이 곧 청정하다. 청정하게 보인다. 훌륭하게 보인다.
내 마음이 그렇지 못하니까 세상도 그렇지 못하게 보이는 것이다. 모든 것은 내 마음이 열쇠고 내 마음이 주인공이고 내 마음이 내 인생을 좌지우지한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불교는 세상을 바꾸는 일도 있지만, 근본 뜻은 내 마음이 바뀜으로 해서 세상이 달리 보인다는 것이다. 세상이 바뀌어져 보인다.
우리 불자들은 그런 원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다시 한 번 읽겠다.
그러므로 보적이여, 만약 보살이 청정한 국토를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그 마음을 청정하게 하여야 하나니, 그 마음이 청정함을 따라서 곧 불국토가 청정하여지느니라.
그렇다고 청소도 안하고 몇날며칠 내버려 두고 “당신 마음이 부정하니까 집안이 부정하게 보이지.” 이렇게 이야기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중도(中道)라는 말이 거기에 또 등장한다.
무엇이든지 중도다.
이런 입장을 지키면서 저런 입장도 지키고 저런 입장을 지키면서 이런 입장도 지킨다. 언제 그런 이야기를 할 계기가 있으면 열심히 설명 드리겠다.
제가 소참법문에 이세간품을 한 130여회 했는데 내가 이세간품을 좋아하는 것이 불교의 궁극적인 가르침은 전부 중도적인 삶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특히 이세간품에서는 모든 분야 분야를 전부 중도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중도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주 많다.
그래서 내가 이세간품을 좋아한다.
*
부처님이 이렇게 이야기 하니까 사리불 같은 소승들, 또 굳이 소승이라 하지 않더라도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에 의문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사리불이 이런 의문을 갖는다.
10. 사리불의 의문
이시(爾時)에 사리불(舍利弗)이 승불위신(承佛威神)하사 작시념(作是念)하되 약보살(若菩薩)이 심정즉불토정자(心淨則佛土淨者)인댄 아세존(我世尊)은 본위보살시(本爲菩薩時)에 의기부정(意豈不淨)이리요마는 이시불토부정(而是佛土不淨)이 약차(若此)인가하니라
그때에 사리불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만약 보살이 마음이 청정하여 곧 불국토가 청정하여진다면 우리 세존은 본래 보살로 있을 때에 생각이 어찌 부정하였겠는가마는 이 불국토가 청정하지 못한 것이 이와 같은가?’
지금 부처님하고 유마거사와 사리불과 많은 제자들이 함께 같은 장소에 있다.
같은 장소에 있는데 부처님은 이렇게 한결같이 ‘마음이 청정한 사람에게는 불국토가 청정하다’ 라고 했는데, 사리불이 주변을 둘러보니 절대 청정하지 않았다. 온갖 가시덤불도 있고, 경사진 곳도 있고, 돌, 바위 온갖 사람에게 상처를 줄 만한 거리들이 국토에는 많이 있다.
사리불이 그런 것을 두고 한 소리다.
‘만약 보살이 마음이 청정하여 곧 불국토가 청정하여진다면 우리 세존은 본래 보살로 있을 때 생각이 어찌 부정하였겠는가마는 이 불국토가 청정하지 못한 것이 이와 같은가?’
부처님은 청정했을텐데, 청정했다면 이 국토가 청정해야할텐데 왜 이 국토가 청정하지 못한가?
그런 의문을 갖는다.
이것은 사리불의 의문이면서 우리 모두 보통 평범한 사람들의 의문이기도 하다. 그래 부처님의 답변이 나온다.
11. 부처님의 답변
불지기념(佛知其念)하사 즉고지언(卽告之言)하사대 어의운하(於意云何)오 일월(日月)이 기부정야(豈不淨耶)하야 이맹자불견(而盲者不見)가
부처님이 그 생각을 아시고 곧 말씀하였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해와 달이 어찌 캄캄해서 맹인이 보지 못하는가?”
잘 생각해야 된다.
해와 달이 어찌 캄캄해서 맹인이 보지 못하는가?
해와 달은 캄캄한 것도 아니고 환하게 대낮으로 밝은데 맹인들은 못본다는 것이다.
대왈불야(對曰不也)니다 세존(世尊)하 시맹자과(是盲者過)언정 비일월구(非日月咎)니다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맹인의 허물이지 해와 달의 허물이 아닙니다.”
‘맹인이 눈이 어두워서 해와 달을 못보고 세상이 어두운 것으로 보니까 그것은 맹인의 허물이지 해와 달은 아무런 허물이 없습니다.’
사리불(舍利弗)아 중생죄과(衆生罪過)로 불견여래국토엄정(不見如來國土嚴淨)이언정 비여래구(非如來咎)니
사리불(舍利弗)아 아차토정(我此土淨)이어늘 이여불견(而汝不見)이니라
“사리불이여, 중생의 허물로 여래의 국토가 청정하게 장엄한 것을 보지 못할지언정 여래의 허물은 아니니라. 사리불이여, 나의 이 국토는 청정하지만 그대가 보지 못 할 뿐이니라.”
사리불이여, 중생의 허물로 여래의 국토가 청정하게 장엄한 것을 보지 못할지언정.
중생의 허물로 이 국토가, 그대들의 허물로 이 국토가 청정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여래의 허물은 아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여래의 안목으로 이 국토는 더없이 청정하고 훌륭하다.
심지어 화엄경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땅은 견고하여 다이아몬드로 되었더라’ 온세상이 전부 다이아몬드로 황금으로 칠보로 얼마나 화려하고 고급스러운지 이루 말로 설명할 길이 없더라. 그렇게 표현했잖은가?
그 말이다.
여래에게는 그렇게 보이는데 중생들에게 그렇게 못 보이는 것은 중생들의 안목의 문제다.
그대가 보지 못할 뿐이로다. 이 국토는 청정하지만 그대가 보지 못할 뿐이로다.
이것이 여러분들은 믿어지시는가?
받아들여지겠는가?
받아들여야 된다.
우리가 사는 환경이 우리는 청정하지 못하다고 온갖 불평불만이 많다. 저부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것은 내 마음의 문제다.
내 마음의 문제다 하는 것이다.
설사 황금으로 세상을 다 장엄하고 다이아몬드로 집을 짓고, 온갖 금은보화 칠보로써 우리들이 사는 환경을 꾸몄다손 치더라도 인간적인 문제에 걸려있어서, 아주 가슴이 쓰리고, 가슴이 아픈 일이 있다면 그 무슨 황금이 눈에 들어올 것이며, 다이아몬드가 눈에 들어올 것이며, 금은보화로 된 넓은 몇 백평짜리 아파트 궁전이 어떻게 눈에 들어오겠는가?
눈에 들어올 까닭이 없다.
그런 이치 하나만 가지고 잘 생각해 보면 이러한 법문을 우리가 알 수가 있다.
그러니까 이러한 것들도, 그렇다고 전혀 그야말로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만족하다’ 그것이 공자님이 하신 말씀인데 그 정도 수준이 되면 더 말할 나위가 없고, 거기도 중도적인 이론이 필요하다. 너무 치우친 표현은 좀 우리가 생각해야 할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못받아들인다고 해서 이 이론이, 이 가르침이 틀린 것은 절대 아니다.
절대적으로 철저히 맞는 말씀이다.
내 마음이 청정하면 이 세상 그 어디에라도 다 잘못이 없고 허물이 없다.
12. 나계범왕의 충고
나계범왕은 범천왕이다. 범천왕의 이름이 나계다.
이시(爾時)에 나계범왕(螺髻梵王)이 어사리불(語舍利弗)하사대
물작시념(勿作是念)하야 위차불토(謂此佛土)를 이위부정(以爲不淨)이라하라
소이자하(所以者何)오 아견석가모니불토청정(我見釋迦牟尼佛土淸淨)을 비여자재천궁(譬如自在天宮)이니라
그때에 나계범왕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이러한 생각을 하여 이 불국토가 부정하다고 여기지 마라. 왜냐하면 내가 석가모니의 불국토가 청정함을 보기를 비유하자면 자재천궁과 같이 보느니라.”
이 범천왕, 나계범천왕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국토를 청정하기가 비유하자면 저 자재천궁과 같이 보인다고 하였다.
나계범천왕도 상당히 안목이 높아서 사리불의 안목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나계범왕도 그정도로 보는데 사리불은 그렇지 않게 보는 것이다.
사리불(舍利弗)이 언(言)하되 아견차토(我見此土)하니 구릉갱감(丘陵坑坎)과 형극사력(荊棘沙礫)과 토석제산(土石諸山)과 예악충만(穢惡充滿)이로다
나계범왕(螺髻梵王)이 언인자(言仁者)의 심유고하(心有高下)하야 불의불혜고(不依佛慧故)로 견차토위부정이(見此土爲不淨耳)니라
사리불(舍利弗)아 보살(菩薩)이 어일체중생(於一切衆生)에 실개평등(悉皆平等)하며 심심청정(深心淸淨)하고 의불지혜(依佛智慧)하야 즉능견차불토청정(則能見此佛土淸淨)하니라
사리불이 말하였다.
“내가 이 국토를 보니 언덕과 구릉과 가시덤불과 모래와 자갈과 흙과 돌과 여러 산과 더러운 것이 가득합니다.”
나계범왕이 말하였다.
“그대는 마음에 높고 낮음이 있어서 부처님의 지혜를 의지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이 국토를 부정하게 볼 뿐이니라. 사리불이여, 보살은 일체중생에게 모두 다 평등하며 깊은 마음이 청정하고 부처님의 지혜를 의지하여 능히 이 불국토를 청정하게 보느니라.”
이러한 법문을 가지고 우리 생활에 적용해야 된다.
사람 마음에 한이 있는가?
끝없이 끝없이 채운다 한들 욕심이 끝이 없다.
그러니까 내가 그 상황에 적응을 해야 한다.
그래서 결국은 어떤 상황이 닥쳐오더라도, 그 상황에 적응해야 된다. 그 상황에 적응해야지, 그 변한 상황, 달라져 버린 환경 이것을 내 마음에 들도록 바꾸려고 하는 것은 답이 안된다. 절대 될 수가 없다.
되면 좋을 것이지만 그런데 그렇게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하더라도 내 마음이 얼른 그 상황에 적응하도록 그런 훈련이 되어야 한다.
사람은 원래 전지전능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마음은 아주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얼마든지 어떤 상황에든지 적응할 수가 있다.
늘 불평하고 적응하지 못하면 결국 지옥을 자신이 스스로 만든 것에 불과하다.
유마경이 이러한 것을 잘 표현했다.
13. 부처님의 신통
다음으로, 사리불이 그래도 못알아 들으니까 부처님이 신통을 보이신다.
어시(於是)에 불(佛)이 이족지(以足指)로 안지(按地)하시니
즉시삼천대천세계(卽時三千大千世界)에 약간백천진보엄식(若干百千珍寶嚴飾)이라
이에 부처님이 발가락으로 땅을 누르시니 곧바로 삼천대천세계에 백천 가지 보물로 장엄이 되었다.
발가락으로 땅을 슬쩍 한 번 이렇게 부처님이 장난을 치신다. 신통을 한 번 보이는 것이다.
저 어리석은 사리불 같은 제자들을 깨우치려면 이런 무슨 마술같은 신통이라도 한 번 보여야 되지 그렇지 않고는 어떻게 할 길이 없다.
그래서 제가 ‘방편이지만 신통한 번 있었으면 좋겠다. 신통을 보여야 말세중생들은 그 마음이 감화를 받는다’ 이런 말을 가끔 한다.
*
부처님이 발가락으로 땅을 누르시니까 곧바로 삼천대천세계에 백천 가지 보물로 장엄이 되었다.
비여보장염불(譬如寶莊嚴佛)의 무량공덕보장엄토(無量功德寶莊嚴土)라 일체대중(一切大衆)이 탄미증유(歎未曾有)하며 이개자견좌보연화(而皆自見坐寶蓮華)러라
비유하면 보장엄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으로 보배가 장엄한 국토와 같았다. 일체 대중이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고 찬탄하였으며, 모두 자신들이 보배 연꽃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신통으로 무슨 일인들 못하겠는가? 부처님이 신통을 한 번 부렸다.
유마경은 ‘대승불교 운동의 선언서다’
너무 교단중심 출가중심 자기중심 그런 수행에 젖어 있는 소승들을 깨우치는 운동이 대승불교 운동이다. 그 대승불교 운동의 중요한 서적들이 유마경 법화경 화엄경이다. 이런 뛰어난 대승경전들이 다 그런 역할을 한다.
사리불 같은 어리석은 소승들의 마음을 한꺼번에 한 번 돌이키도록 부처님이 발가락으로 땅을 눌러서 세상을 한 번 변화시키는 이런 신통을 보였다.
그러자 모두 자신들이 보배 연꽃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딱 돌아보니까 저기 마당에 쭉 앉아 있었는데, 문득 부처님이 발가락으로 땅을 한 번 누르는 사이에 그만 자신들이 보배 연꽃에 앉아서 얼마나 근사한지 알 수 없는 정도의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14. 부정(不淨)한 국토는 교화의 방편
부정한 국토, 청정하지 못한 국토는 교화의 방편이다.
불고사리불(佛告舍利弗)하사대 여차관시불토엄정(汝且觀是佛土嚴淨)하라
사리불(舍利弗)이 언(言)하사대 유연세존(唯然世尊)이시여 본소불견(本所不見)이며 본소불문(本所不聞)이러니 금불국토(今佛國土)에 엄정실현(嚴淨悉現)이니다
불고사리불(佛告舍利弗)하사대 아불국토(我佛國土)에 상정(常淨)이 약차(若此)언마는 위욕도사하열인고(爲欲度斯下劣人故)로 시시중악부정토이(示是衆惡不淨土耳)니 비여제천(譬如諸天)이 공보기식(共寶器食)하되 수기복덕(隨其福德)하여 반색(飯色)이 유이(有異)니라
여시(如是)하되 사리불(舍利弗)아 약인심정(若人心淨)하면 변견차토공덕장엄(便見此土功德莊嚴)하리라
부처님이 사리불에게 말씀하였다.
“그대는 불국토가 아름답게 장엄한 것을 보는가?”
사리불이 말하였다.
“예, 세존이시여, 본래는 보지 못하던 것이며 본래는 듣지 못하던 것인데 지금의 불국토는 아름다운 모습이 다 나타났습니다.”
부처님이 사리불에게 말씀하였다.
“나의 불국토는 항상 청정한 것이 이와 같지만 이곳의 하열한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온갖 나쁘고 더러운 국토를 보였을 뿐이다. 비유하자면 여러 천신(天神)들은 다 같이 보배로 된 그릇으로 식사하지만 그들의 복덕을 따라서 밥의 색깔이 다 다른 것과 같으니라. 이처럼 사리불이여, 만약 사람의 마음이 청정하면 곧 이 국토가 공덕으로 장엄한 것을 보게 되리라.”
부처님의 말씀 한 번 더 읽겠다.
나의 불국토는 항상 청정한 것이 이와 같지만
어디에 계시더라도 부처님의 국토는 항상 청정하다. 사리불에게 신통으로 보여준 모습과 똑같다는 것이다.
이곳의 하열한 사람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온갖 나쁘고 더러운 국토를 보였을 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이 반고반락((半苦半樂)이라고 해서 고통이 반, 어떤 사람은 반을 넘기도 하고, 최소한 반이 다 고통이다. 그래서 사바세계는 참고 견디면서 살 수 밖에 없는 세계다. 감인(堪忍)세계다. 그러지 않는가.
그래서 반고반락이라. 반은 고통이고 반은 그런대로 살만한 세상이다 라고 표현한다.
고통스럽게 한 그 순간에 발심하라는 것이다.
그 순간에 공부할 생각을 하라는 것이다.
그게 없으면 공부할 생각을 안 낸다.
팔난(八難)이라는 불법 만나기 어려운 여덟 가지 조건을 이야기 한 것 가운데, 장수천(長壽天)이 나온다.거기는 오래 살고 고통도 없고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곳인데 거기에선 불법이 먹혀들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 불법이 없어도 잘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바세계가 수행하기 딱 좋고 발심하기 딱 좋은 곳이다.
풀었다 조였다 풀었다 조였다. 인간들을 누가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사는 환경이 그렇게 하고 있다. 정말 죽을 맛인데 또 그 시간이 지나면 그래도 숨쉴만하고, 숨쉴만한 시간이 지나면 또 아주 고통스러운 시간이 경과하기도 하고 그렇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가 발심해서 좀 더 복을 짓고 복을 닦고 수행을 하고 다른 사람도 배려하고, 다른 사람 고통 받을 때 어여삐 여기기도 하고 불쌍히 여기기도 하고, 내가 또 그렇게 받을 경우도 있고 하니까, 그런 것을 전부 생각하면서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온갖 나쁘고 더러운 국토를 보였을 뿐이다.
비유하자면 여러 천신(天神)들은 다 같이 보배로 된 그릇으로 식사하지만 그들의 복덕을 따라서 밥의 색깔이 다른 것과 같으니라.
복덕 따라서 보배로 된 그릇에 밥을 담았는데 그 사람의 복에 따라서 밥의 색깔이 다르다.
복덕에 따라서 밥의 색깔이 다르다.
우리가 똑같은 식당에서 똑같은 음식을 먹지만, 그 느끼는 것, 맛, 이런 것이 다 다를 것이다.
약간의 차이는 있다손 치더라도 그래도 세밀하게 따져보면 다 다를 것이다.
이처럼 사리불이여, 만약 사람의 마음이 청정하면 곧 이 국토가 공덕으로 장엄한 것을 보게 되리라.
사람 마음이 청정하면 거기에 따르는 공덕이 얼마겠는가? 청정하다고 하는 말 속에는 모든 좋은 의미가 다 담겨져 있다.
마음이 청정해야 된다. 그러면 낱낱이 다 해석하지 않더라도 그속에는 아주 훌륭한 뜻이 다 담겨있다. 그것이 청정하다는 의미다.
마음이 청정하면 곧 이 국토가 공덕으로 장엄하게 된 것을 보게 되리라.
참 이러한 훌륭한 가르침이 또한 이 유마경이기도 하다.
오늘 불국품 마저 읽겠다.
15. 국토에 대한 공덕
당불현차국토엄정지시(當佛現此國土嚴淨之時)하야 보적소장오백장자자(寶積所將五百長者子)가 개득무생법인(皆得無生法忍)하고 팔만사천인(八萬四千人)은 개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하니라
부처님이 이 국토를 청정하게 장엄함을 나타냈을 때 보적이 거느리고 온 5백 명의 장자아들들이 모두 다 생사가 없는 진리를 얻었고, 8만 4천사람들은 모두 다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내었다.
부처님이 이 국토를 청정하게 장엄한 것을 나타내 보였다. 발가락으로 땅을 살짝 누르니까, 발가락으로 땅을 눌렀는데 누가 봤겠는가? 발은 항상 땅에 닿아있으니까 낌새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닿아있는 발가락을 살짝 힘만 줬는데 그사이에 그렇게 세상을 장엄하게 해 보였다.
마술도 이쯤 돼야 마술이다. 이쯤 돼야 마술이지 전부 눈속임하는 그런 것은 좀 그렇다.
보적이 거느리고 온 5백 명의 장자아들들이 전부 다 무생법인(無生法忍)생사가 없는 진리를 얻었다. 또 8만 4천사람들은 모두 다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내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였다.
그랬을 때 이제 부처님이 신통을 거둬들일 때가 됐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큰 소득이 있었다.
5백 명의 장자의 아들들이 그렇게 무생법인을 얻었고, 8만 4천 대중들이 보리심을 발했다. 보리심을 발하는 것이 최고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했다. 그러니까 그런 사실을 부처님이 다 확인을 하시고는 신통을 거둬들이신다.
불섭신족(佛攝神足)하시니 어시세계(於是世界)는
부처님께서 신통을 보여줬던 발을 거두어들이니
발가락에 힘을 살짝 줬던 것을 힘을 싹 빼고 살짝 들었다는 것이다. 그거 누구에게 눈에 보였겠는가? 부처님만 아는 일이다.
환부여고(還復如故)하니라 구성문승(求聲聞乘)하는 삼만이천(三萬二千)과 제천급인(諸天及人)은 지유위법(知有爲法)이 개실무상(皆悉無常)하고 원진이구(遠塵離垢)하야 득법안정(得法眼淨)하며 팔천비구(八千比丘)는 불수제법(不受諸法)하고 누진의해(漏盡意解)하니라
이 세계는 다시 예전처럼 회복되었다. 성문승을 구하는 3만 2천 명과 여러 천신과 사람들은 조작이 있는 법인 유위법(有爲法)은 모두 다 무상하다는 것을 알고 번뇌와 때를 멀리 여의고 법안이 청정함을 얻었으며, 8천 명의 비구들은 모든 법을 받아들이지 않고 스며드는 번뇌가 다하여 생각이 풀려버렸다.
8천 명의 비구들은 모든 법을 받아들이지 않고 스며드는 번뇌가 다하여 생각이 풀려버렸다. 의해(意解)라고 했다.
불수제법(不受諸法)이라 모든 법을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이 8천명의 비구가 무엇인가? 소승들이다.
그 소승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좀 깨우쳐 주려고 의도적으로 결집된 것이 바로 유마경이다.
또 거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으니까 그런 의도가 아주 역력하다.
거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저 뒤에 가면 거사가 부처님의10대 제자들을 전부 가르치고 깨우치고 정신 바짝 들게하는 광경들이 나온다.
왜 하필이면 거사가, 부처님의 10대제자, 열 명의 최고가는 제자들을 낱낱이 깨우쳐 주는 것을 여기에 설정해 놓았겠는가?
그것이 바로 권위주의라든지 세속적인 마음이 아직 덜 떨어진 것들이 남아있는 소승비구들을 깨우쳐 주고 그들의 마음을 활짝 열어주게 하는 의미다.
참 훌륭한 가르침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이것이 불국품이다.
유마경의 서막이 이런 식으로 열린다.
그래서인지 아주 유마경은 참 하나의 극으로 봐도 아주 훌륭한 극으로 되어 있다.
이것을 영화로 만들고, 연극으로 만들어도 참 좋을 소재인데 그런 데 관심 갖는 사람이 많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하는 생각을 한다.
오늘 유마경 제1품 불국품 공부 여기까지 하겠다.
책장 넘어가는 것이 아깝다.
열 번 스무 번 같은 대목을 되읽고 또 되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참 훌륭한 경전이다.
제가 이 유튜브를 통해서 책 읽어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분야의 책을 읽어주는데, 그 책 읽어주는 내용들 하고 제가 이렇게 화엄경을 읽고 그 나름대로 조금씩 사이사이에 해설하고, 유마경을 읽고 사이사이에 해설을 하고, 제가 감동하는 또 이해하는 부분들은 설명을 하는 이런 것과 비교를 안하려고 해도 비교가 절로 된다.
그러니까 참 이 유튜브 방송 하기를 잘했다.
아주 긍지와 자부심이 생긴다.
이런 차원의 유튜브 방송이 솔직하게 없다.
이건 제가 한다고 해서가 아니라 부처님의 대승경전의 가르침 덕이다. 순전히 대승경전의 가르침 덕이다.
*
지금 80명이 이렇게 법당에 들어왔다.
80명이 법당에 들어와서 동시 시청자로 되어 있다.
오신 분들을 한 번 살펴보겠다.
모두 반갑고 익숙한 분들이 많이 와 계신다.
여러분들 동참해 주셔서 반갑다.
성불하십시오.
첫댓글 _()()()_
유마경9 (메모)/불국품
잘 보았읍니다 고맙습니다.
^^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釋대원성 고맙습니다^^
내 마음이 바뀜으로써 세상이 바뀌어져 보인다.
여래의 안목으로 이 국토는 더없이 청정하고 훌륭하나 중생들이 안목이 없어 보지 못할 뿐이다. 하열한 사람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온갖 나쁘고 더러운 국토를 보였을 뿐이다.
혜명화보살님, 참 고맙습니다. 복 받으세요..
_()()()_
"...어떤 상황이 닥쳐오더라도, 그 상황에 적응해야 된다. 그 상황에 적응해야지, 그 변한 상황, 달라져 버린 환경 이것을 내 마음에 들도록 바꾸려고 하는 것은 답이 안된다. 절대 될 수가 없다. "혜명화 님 고맙습니다_()()()_
_()()()_
_()()()_
_()()()_
_()()()_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고맙습니다. _()()()_
_()()()_
_()()()_
_()()()_
청정한 마음!...되새겨 봅니다,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_()()()_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