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2.17(일) 한강시민공원마라톤대회(풀코스, 참가번호 7660번, 4:14분17초 )
10:00- 14:17.14(4.17.14): 여의도시민공원 고수부지-성수대교(2회왕복), 2℃(최저기온 -4, 최고기온 0), 5-6M/S, 러닝모자+등산용 여름 조끼+집업티+롱타이즈+하프팬스+파워스트레치장갑,귀마개+에어줌 카다나 케이지 Ⅱ+우비+스포츠 젤(3봉)
어제 저녁에는 오늘 눈이 내리고 찬바람과 함께 기온이 급강하 할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포근했었는데, 새벽 2시경에 눈을 떠서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 졌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마음을 굳히며 잠을 청하여 평소처럼 04:30에 일어났다. 밖을 보니 온통 하얗다. 주로 상태를 짐작하기 위해 공원을 나가 보았다. 기온은 1℃ 정도 되는 듯 했고 내린 눈이 바닥부터 녹기 시작하여 질척였다. 그래도 빙판길보다는 양호하다는 위안도 해보았지만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바람은 세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한강변의 상황은 사뭇 다를 것이라 짐작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풀코스 완주가 가능할까? 풀코스 처녀 출전하는 입장이라 그러한지 자신이 없었다. 오피스텔로 돌아가는 길에 운동화의 습기처럼 불안감이 배어 들어온다.
투습성에 문제가 있을 것 같기는 했지만 기온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대회측에서 기념품으로 배부한 집업티를 입기로 했다. 가장 적합한 모자 와 장갑 세팅은 현지에서 정하기로 하고 07:30에 오피스텔을 나섰다.
송내역에서 급행전철을 타고 신길역에서 내려 5호선으로 갈아타니 차안에 온통 달리미들이었다. 녹아가는 눈밭을 걸어온 탓으로 모두 운동화가 젖어있는 상태였다. 여의나루역에 내려서는 길을 모르더라도 달리미들을 뒤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대회장에 도착하니 일기 때문인지 예상 외로 인파가 많지 않았다. 긴장감으로 대회복장을 했는데도 춥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장갑은 보온성이 강한 파워스트레치, 모자는 흰색 런닝용 모자에 귀마개를 착용하기로 했다.
눈을 미쳐 치우지 못한 관계로 하프코스를 2회 왕복해야 한다는 대회측의 발표로 시작하기 전부터 주로 사정에 걱정이 되었다. 대회측의 부실한 준비에 불만이 터져 나왔다.
풀코스 달리미들 중에 하절기 복장을 하고 소름이 돋은 채 출발선에서 발을 동동이며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어 시선이 집중되었다. 만용일지라도 용기와 체력이 가상하다고 생각이 되었다.
긴장한 탓에 마라톤 시계를 조작하는 것을 잊은 채 출발한 것을 뒤늦게야 생각해냈다. 3시간 45분 페이스 메이커를 뒤따라가기로 하고 시작했는데, 5㎞를 달리고서야 이것이 무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욕심이 앞서서 초반 페이스에 무리를 가하여 이후 페이스 조절에 계속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초반 1/3을 놀듯이 뛰라는 충고를 과욕 때문에 잊은 것이다.
5㎞ 정도의 지점에서 위에 걸쳤던 일회용 우비를 벗어던졌다. 주로는 눈을 치웠다고는 하나 대부분의 눈이 녹아 질척이고 있는 상태였다. 추월해가는 달리미들이 물까지 튀기며 지나갈 때에는 짜증스러웠다.
하프코스 2회 왕복은 심리적으로 적지 않은 부담감을 주었다. 마주 오는 사람들을 피하랴 바닥에 질척이는 눈과 물을 피하랴 어려움은 하나둘이 아니었다.
초반 페이스 조절의 실패로 헥헥대며 8㎞ 정도를 달리고 있는데 70년대 아줌마들의 속칭 몸빼바지를 입고 달리는 수원마라톤 클럽 소속의 젊은이가 눈에 띄었다. 미소가 절로 나왔다. 단순히 튀기위한 행동이라고 보기에는 그 심리적 여유가 부러웠다.
하프를 1회 왕복하고 대회장을 등지고 다시 달리는데 몸의 상태가 연습 때의 동일 상황과 비교해 좋지 않다고 느꼈다. 이제 반인데 몸이 이렇다니, 완주가 가능할까 점점 불안해졌다. 마라톤시계 조작을 제대로 하지 못한 관계로 현재 어느 정도의 기록으로 달리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것도 불안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다시 하프반환점을 돌면서 32㎞까지 달려본 경험밖에 없기 때문에 여직 껏 경험해 보지 못한 거리를 뛰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다시 밀려왔다. 속도 조절은 불가능했다. 그저 한발 한발 내딛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음료수대에 서서 물과 초코파이를 먹으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달리미들이 보였다. 너무 지친 상태인지라 뛰면서 물을 마시는 것이 어려워 보폭을 크게 걸으면서 해결했다. 컵을 버리고 다시 뛰는 것이 특히 힘들었다. 35㎞ 지점을 벋어나자 30㎞ 구간에서 나를 약 오르게 했던 달리미가 걸어가고 있었다. 걷다가 내가 따라오면 다시 100여m를 앞질러 뛰어가기를 대여섯 차례 반복했던 달리미였다. 이번에는 다시 추월할 기운이 없는 모양이었다. 메롱 메롱하며 앞서 가자니 한결 기운이 났다.
35㎞ 지점 이후 잠시 어지러움 증을 느꼈다. 증세가 완화될 때까지 속도를 늦추어 가는데(달린다는 표현이 부끄럽다) 조금 전에 추월하여 나를 기죽이던 노부부가 다리 난간에 걸터 앉아 쉬고 있었다.
약 38㎞ 지점에서 오른손에 모자를 쥐고 털스웨터에 시장표 추리닝을 입고 걷는 듯이 뛰는 기인에 가까운 할아버지에게 추월을 당했다. 기능성 내의에 귀마개, 타이즈, 인진지 양말 등등 갖은 요란을 다 떨은 달리미들을 머슥하게 하는 할아버지였다. 차림새가 하도 이상해서 초반에 뛰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동네 할아버지가 마라톤 대회에 어쩌다 뒤섞여 운동하는 것인 줄 착각했을 정도였다. 너무 인상이 깊어 완주 후에 만나 “어디서 오셨습니까?”라고 물어보았더니 묻는 말에 대답할 생각은 안하시고 며칠 전에도 산악 마라톤에 참가하여 완주 했노라고 자랑을 늘어놓으셨다. 단추가 풀린 털스웨터 사이로 사람들이 평상시 흔히 입는 흰 러닝셔츠가 보여 나를 다시 한번 부끄럽게 했다.
마지막 10㎞ 구간은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물기로 질펀한 발바닥은 전혀 감감이 없었지만 손보다는 사정이 양호 편이었다. 잠잠했던 강바람이 세차게 불어 얼굴이 얼얼하고 손가락이 구부려지지 않았다. 믿었던 파워스트레치 장갑도 이런 상황에서는 흐르는 콧물을 닦는데 유용할 뿐 보온성엔 한계가 있었다. 이러다 동상이 걸리는 것은 아닌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팔이 점점 무거워져 손 털기와 팔 흔들기를 수시로 반복하여 증세를 완화시켰다. 머리 속은 몽롱한 가운데 오직 완주를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다리는 그저 반사적으로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주로상에 괸 물을 피할 기력은 물론 의식할 여유도 없어 철퍽이며 뛰는 동작을 취하기는 하지만 평소 걷는 것보다도 속도가 느릴 것 같았다. 한발 한발 내 딛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5시간 내 완주를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함께 이 와중에 나를 추월해가는 달리미들이 너무 부러웠다. 내가 타켓맨이 된 것처럼 느껴졌지만 자존심을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나도 마지막 피치를 올려야지. 힘을 내!” 속으로 외쳐보았지만 몸은 따라주지 않았다. 40㎞ 구간 근처에서 63빌딩과 대회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 완주지점이 눈앞이다.” “조금만 더 가면 아테네의 병사처럼 역사에 남지는 않을지라도 내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자랑거리를 하나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그 조금만이 왜 뼈속 깊이 새겨지도록 길게 그리고 멀게 느껴졌는지 시작 전에는 상상을 못했다. 완주 지점 약 200전방 커브에서 걸어가고 있던 여성 2명을 지나면서 “저 사람들이 이토록 무기력한 나의 모습을 어찌 생각할까?”라는 생각에, 나와는 관계없지만 완주 지점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조금은 힘이 나는 듯 했다. 재활 환자처럼 한발 한발을 만들어 달려서 드디어 아무도 나를 반겨주는 이도 나를 향한 박수도 없는 그러나 긍지로 가득한 완주 지점에 도착!
나는 해냈다.
최악의 주로 조건을 극복하고 마라톤 풀코스 완주를 해낸 것이다. 환호와 축하 불꽃을 내 스스로의 상상으로 만들어 자축하는 동시에 잠시 숨을 고르며 짜릿하도록 나른한 쾌감을 만끽했다.
목욕탕엘 들러 오피스텔에 돌아와 쉬고 있는데 문자메세지 신호가 있어 확인해보니 “완주를 축하합니다. 님의 기록은 4시간 17분 14초입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예상보다 기록이 조금이라도 단축되어 다시 한번 날아갈 듯한 기분이 되었다.
18 월요일 휴식
걷는 것이 힘들 정도로 다리의 근육이 정상이 아니었다.
19 화요일 휴식
아침에 일어나 점검해보니 신기하게도 걷는 동작에 무리가 없을 정도로 다리의 근육이 회복되어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