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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춘천산오름산악회 원문보기 글쓴이: 산자락
강원도 경계답사 19차 참여자 : 정종인, 신지아래, 여산, 주돌프, 산자락, 이효순, 쥐약, 태산, 촌장, 이성숙, 김향숙, 산천하, 솔개 임계근님 이상 14명 소요시간 : 춘천출발 : 05:20 느릅재 도착 : 06:55 느릅재 출발 : 07:00 첫 능선 갈림길 : 07:40 승리봉정상 08:42 무명고개 : 09:15 무등산정상 : 09:55 왕박산 정상 : 10:50 조을재 : 11:30 문영월재 : 11:52 점심식사 :12:00~12:40 가창산 정상 13:55 산행종료 16:35
오늘은 휴일 전철 첫차는 05:43분이라 남춘천역은 아직 한밤중이다. 내 발소리가 쿵쿵 울리는 역사 하부공간을 지나 약속장소로 향한다. 05:00 드라마 갤러리 앞에는 임계근님이 먼저도착해서 계신다. 일정이 빠듯한지라 일찍 서둘러 출발하려 함이다. 조금 기다리니 대원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진행방향 몇 곳에서 승차를 마치니 약속시간을 훌쩍 넘어서서 한방병원 앞을 출발한다. 잠이 부족한 대원들이 잠을 청하고 버스는 충북 제천을 향하여 속도를 높이고......., 원주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출발하여 산행 기점인 느릅재에 도착하니 06:55분, 이 고개는 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 쌍룡리에서 충북 제천(堤川)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느릅나무가 많으며, 38번 국도가 이곳을 지난다. 현재는 터널이 개통되어 이 고개를 넘지 않아도 된다. 강원도와 충북의 경계 지역으로 강원도를 상징하는 동물인 반달곰 두 마리가 서 있고 충북 경계로 들어서면 느릅재 휴게소가 있다. 또한 조선 숙종 때 효자인 엄민도와 함께 시묘를 살던 호랑이가 이곳 느릅재에 파놓은 함정에 빠져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산신령이 꿈속에 나타나 호랑이를 구하라고 현몽을 함으로써 엄민도(영월읍 방절리 마굿에 효자각이 있으며 여막골에 시묘를 살던 묘가 있음)가 호랑이를 살려 냈다는 얘기가 영월 엄씨 집안의 「효부록」과 「강원도지」에 전하고 있다.
산행 준비를 마치고 출발하는데 입구도 분명치 않아 오늘 어려운 산행을 예감한다. 산 급사면을 한참을 오르니 능선이 구분되고 38번 고속국도를 달리는 소리가 능선 양쪽에서 들려와 요란하다. 약 20여분 오르다 이현으로 내려가는 길을 찾고자 신경을 곤두세운다. 안개는 짙어 100m이내만 보이는 상황이라 길을 잘 못 들면 한참을 고생해야 하겠기에 올라가면서도 주위를 자세히 살핀다. 약 40여분 잡초가 무성한 능선을 오르니 산불 감시초소가 있는 제일 높은 봉에 도착하고 여기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급사면을 내려가게 된다. 잠시 쉬는 동안 건너편 승리봉이 구름 속에서 잠시 정상부를 보여주는데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 계곡으로 내려가 저 높이를 오르려면……. 또 저렇게 가까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상당한 급사면으로 이루어진 산이라 짐작되기에 절로 아이고 소리가 나온다. 잠시 휴식은 취한 일행들은 제천시 이현에서 강원도 쌍룡리로 넘어가는 수레길에 내려서니 바로 승리봉으로 올라야 하는데 등산로를 찾기가 쉽지않다. 아무 곳이나 들어가기 쉬운 곳을 찾아 숲으로 들어가 조금 오르니 곧바로 간벌된 낙엽송 잔해가 뒤엉킨 가시덤불이다. 이리저리 가시넝쿨과 쓰러진 나무를 피하며 오르자니 힘은 힘대로 들고 초장부터 난관이다. 이렇게 한참을 오르다 쥐약님이 부르는 곳으로 가보니 그곳은 말 그대로 밭(평원)이 아닌가……. 조금 더 신중하게 찾아 오를걸. 후회하지만 벌써 일전을 치룬 후이다. 이곳에서 잠시 쉬며 간식을 먹은 후 좌측으로 조금 더 나아가며 오름길을 찾아 오르는데 조금 더 오르다보니 또 급사면에서 길이 없어지며 아무 곳이나 정상으로 무작정 오르는데 보통 급경사가 아니다. 어렵게 약 40분 이상을 이 승리봉(696.1m)을 향하여 오른 것이다. 도경계는 바로 뒤로 넘는 경로이지만 배낭을 두고 약 100여 미터 좌측에 봉긋한 승리봉에 도착 해 삼각점을 찾아보니 없다. 지난 2월 서울 새마포 산악회원들이 매어 달아놓은 승리봉 표지판 만 반긴다. 허나 어쩌랴,,,,,,, 승리봉 높이 표시가 잘 못 되었다.
696.1이어야 할 표시가 669.07로 표기되어있다. 지도상 표기가 오류 되었다 해도 고도계에서 가리키는 700m를 참고해도 새마포 산악회에서는 오류를 수정하거나 제거하기 위하여 아무래도 이곳을 한 번 더 올라야 할 것 같다. 승리봉에서 서북방향으로 급경사를 내려가다 쥐약님은 더덕을 몇 뿌리 캐고 일행들은 모두 골안고개로 내려선다. 고개에서 잠시 숨을 돌린 다음 무등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무등산! 원래 이름은 잘 생긴 소년의 춤사위를 닮아 무동산이라 불렀던 산 이름이 어느 틈엔가 없을 무(無), 베낄 등(謄)이란 낯선 한자로 이름이 바뀌었단다.
무동산 또한 첫 봉우리는 무난하게 넘을 수 있었으나 다음 무등산 정상까지의 오름길은 또 사라지고 벌목된 나뭇가지들과 가시덤불을 이리 저리 피하고 올라야 하는 고난의 길이었다. (09:55)정상에는 그래도 이정표가 서있고 등산인 들이 자주 다닌 흔적이 뚜렷하다. 안부에서 잠시 쉬며 후미가 모두 올라온 후 다시 출발하여 왕박산으로 향한다. 능선 길은 완만하고 소나무가 군락을 이뤄 이런 곳을 하루 종일 걷는다면 대단한 호사를 누리는 것이라 생각하며 걸어가는데 왕박산과 사이 안부가 가까워질 즈음부터 소나무들을 간벌을 하고 뒷정리를 하지 않아 진행을 더디게 한다. 이런 상황은 왕박산 8부 능선까지 이어져 편안하게 오를 능선에서조차 오늘은 우리 일행들을 잡아주고 갈 길을 더디게 만든다. 30여분 남짓이면 다다를 거리를 거의 50분 이상 걸려 도착하였으니 오늘 앞으로의 운행시간을 제대로 예측하기 어렵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참 좋다. 앞으로 진행해갈 가창산부터 바로 앞에 풍류산과 옥녀봉이 가깝고 계곡멀리 우리가 지나가야할 토교리 마을 주변이 누렇게 보여 가을임을 알린다. 뒤로 돌아보면 제천시가지가 한눈에 보이는데 우리는 지난구간부터 계속 제천시가지를 돌고 있다. 오늘부터는 멀어지려나보다.
왕박산(王朴山)은 조선 왕조 이태조가 새 왕조의 개창에 반대하는 권문세족을 무너뜨리고 온건개혁파 사대부를 축출하는 과정 속에 고려의 왕족이었던 왕을규(王乙規)도 멸족을 당할 처지가 되었다. 그의 형인 이부상서(吏部尙書) 왕갑규(王甲規)는 중국으로 망명하고 국내에 남은 왕을규는 외갓집 성을 따라 의흥박씨(義興朴氏) 즉 박을규(朴乙規)로 행세하며 영춘 차의곡 (현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에 피난하여 살았다. 그래서 의흥박씨를 흔히 왕박씨(王朴氏)라고도 한다. 3대를 그곳에서 살았으나 영춘에는 현청이 있고 남한강 수로를 이용하는 비교적 교통이 편리한 곳이어서 신변에 불안함을 느끼자 4세손 박근부터 제천의 송학면 만지동(음지만지실)에 은거하며 살게 되었다고 한다. 주변 산군을 이루는 무등산과 가창산의 이름 또한 이 유래와 관련 있다. 무등산은 왕이 고달픈 피난살이로 시름시름 앓으니 신하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춰 연회를 베풀었다고 해 붙은 이름이라 한다. 왕박산에서 일행들은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다시 출발하여 조을재를 향하는데 이곳부터는 등산로 주변에 잡초와 잡목을 잘 베어내어 그야말로 고속도로를 가는 기분이다. 표고차 140여 미터를 내려오니 조을치 마을 위 화전 밭에 메밀과 팥 등을 재배하는데 골짜기 전체가 화전 밭이다. 안부에서 약 60여 미터 임도를 치고 오르니 산불감시 무인초소가 나오고 여기가 바로 영춘 지맥과 만나는 지점이다. 이곳부터 가창산까지는 영춘 지맥과 같은 길을 간다. 지속적으로 잘 다듬어놓은 길을 걸어 조을재에 도착하고 내쳐 567.7봉을 넘어 문영월재에 도착(11:50)하여 후미가 도착하기를 기다려 점심식사를 한다. 새벽 04:00경에 아침을 대충 먹었거나 제천으로 오는 버스에서 도시락으로 해결한 대원들이라 어지간히 배도 고파왔으리라……. 도시락 점심식사를 끝내고나니 추위를 이기려고 서둘러 12:40분경 출발한다. 이곳부터는 길도 무난하지만 능선이 길게 누워 오르기 수월하다. 좌측으로 임도가 보이고 능선을 조금 더 오르니 임도가 능선을 넘는다. 능선 양쪽으로 석회석을 생산하고 있거나 생산하던 광산을 넘나들던 길인가보다.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으니 좌측으로 폐광흔적이 험상궂게 보인다. 광산하면서 다 깎아 먹어 수십 길 절벽을 이루고 있다. 광산에서 쓰던 송수관인지 녹이 쓴 파이프가 반쯤 묻힌 채 이어진다. 가창산 정상을 바로 앞에 두고 후미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출발하여 능선을 오르니 드디어 가창산 정상(819.5m 13:55)이다. 가창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일망무제...., 우리가 시작하였던 느릅재 방면을 보면 가까이 송학산부터 멀리 치악산 연봉이……. 조금 더 우측으로는 백덕산의 웅장한 모습이……. 더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배걸이 산과 영월 시가지 옆 봉래산 천문대가 가까이 보인다. 그 뒤로 멀리 높게 떠있는 산은 함백산과 백운산, 두위봉이 한 덩치로 보인다. 조금 더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소백산 연봉이 보이는데 연화봉에 천문대로 보이는 탑이 보인다. 더 남쪽으로는 금수산으로 보이는 산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가창산은 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 토교리와 충북 단양군 어상천면 석교리, 충북 제천시가 만나는 산이다. 가창산(歌唱山)의 전설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고려가 망하자 왕족인 왕씨가 왕박산에 숨어들어 살았다. 그 왕족을 모시는 사람들이 왕족의 어린이를 안거나 업고 어르며 더러는 무등을 태우고 춤을 추었던 산이 무등산이고, 자장가 등 노래를 부르며 왕족의 어린이를 돌보았던 산이 가창산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옛날 가창산 아래에 매우 친한 두 소년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 소년은 학문은 닦더라도 시끄러운 세상에서 벼슬만은 하지 않기로 굳게 약속을 하였다. 그들은 훌륭히 자라나 어른이 되자 헤어지게 되었다. 한사람은 그곳에 남아 살게 되었으나 한사람은 경상도 땅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경상도로 간 친구는 옛날 친구와의 약속을 잊고 계속 학문에 열중하여 과거에 급제하게 되었다. 그러자 먼 옛날 고향의 친구와 했던 약속이 생각났고 친구가 매우 그리워졌다. 그는 옛 언약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도 할 겸 고향을 찾게 되었다. 고향에 남아있던 친구는 아직도 두 부부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그리웠던 옛 친구가 오랜만에 찾아와 매우 기뻤으나 첩첩산중이라 대접할 것이 없었다. 이에 부부는 노래를 불러 친구를 대접하였다. 이리하여 이 산을 가창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 -어상천면 내 고장 전통 가꾸기(1982)- 가창산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출발을 서두른다. 약80여 미터 내려가다 우측으로 표지기가 몇 개 걸려있는 지점이 나오는데 이곳이 제천시의 경계이자 영춘 지맥과 이별하는 지점이다. 다시 약80여 미터 고도를 낮추다가 북동방향으로 능선이 휘는 지점에서 도 경계는 우측사면으로 급하게 내려가는데 여기서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정상에서 보면 그저 유순하게 능선이 건너편 봉우리까지 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실제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더욱 독도산행을 위주로 진행하는 강원도 경계 답사 산행에 깊은 맛이 있는가보다. 약 80여 미터를 뚝 떨어져 내린 경계는 다시 80여 미터를 치고 올라 펑퍼짐한 고지에 올라서는데 평평한 지대에 산소가 몇기 있고 여기서 좌측으로 약 200여 미터 진행 한 뒤 약간 능선이 살아있는 곳을 찾아 내려가는데 불확실하다. 길은 전혀 안보이고 시계종주를 하였을 텐데 흔적도 없고 두 팀으로 나뉘어 진행을 하며 내려가 보니 좌측으로 내려간 우리는 계곡으로 내려왔고 우측지릉을 따른 쥐약님 팀은 제대로 경계를 따라 내려왔다. 능선 안부 벚나무 육종장내에 모두 모여 간식을 먹고 휴식을 취한 뒤 출발하는데 앞에 보이는 소나무로 가득 찬 봉우리를 넘어야하는데 이곳이 또한 진행여건이 최악이다. 인적이 지나다닌 흔적은 아예 없이 잡목만 울창하니 진행이 어렵다. 시간은 16:00가 다 되어가고 아직도 초로봉 코스는 근처에도 못가는 상황이라 우선 돌다리 마을로 내려가고 초로봉 코스는 지난구간에 못 다한 남은 구간과 함께 겨울에 마치기로 의견을 모으고 돌다리마을로 하산 오늘의 일정을 마친다(16:35). 돌다리마을로 내려오며 지도를 보니 재미있는 점이 발견된다. 영월군지역에 토교리 마을과 단양쪽 마을이 석교리 마을의 이름이 흙다리와 돌다리로 대비되는 점이 재미있다. 점점 오지로 접어드는 도경계 답사코스는 급경사가 많고 등산로가 일부를 제외하고는 온통 잡목이 우거지고 진행이 어려워 오늘처럼 거의 10여 시간(9시간 30분)을 걸어도 애초 정한구간을 한참이나 남겨놓아야 할 만큼 어렵게 진행되는데 그래도 대원들의 열정과 의지는 점점추위가 다가오지만 식을 줄 모른다.
2011.10.04 산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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