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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지상 김근학 원문보기 글쓴이: 김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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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손인 호서(帍瑞)의 서문에는 여러 전란으로 문헌과 기록들이 모두 산질되어 완성된 족보를 간행하지 못한 것을 애석하게 여기 던 중 이 족보를 만들기 위하여 호남(湖南)의 무안(務安), 호중 (湖中)의 청주(淸州), 해서(海西)의 안악(安岳), 개성(開城)에 흩어져 사는 제 종족들의 집안 문서들을 찾았다고 하였습니다. 한편, 통해(通海)의 서문에는 편집은 통해(通海)가, 그리고 발간 의 총 감독은 수해(壽海)가 맡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그런데 이보다 앞서서 나주김씨족보(羅州金氏族譜)로는 안악파 (安岳派) 족보가 만들어졌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는 영조 45 년(1769)에 완산 이씨 이혁주(李赫)가 지은 족보 서문에,
“나주군(羅州君)의 24세손인 여(礪)가 족보 2권을 내게 가져와 보여주면서 말하기를, ‘이는 우리 족숙(族叔)되는 준흥(準興)씨가 편집한 것인데 나와 종인 (宗人)들이 여러 사서(史書)와 만성보(萬姓譜), 그리고 개인적으로 집안에 소장한 자료를 참고하여 1질로 만들어 간행했다.”
고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족보의 서문을 쓴 후손 여(礖)의 글에는 그간의 사정이 좀 더 자세히 나타나 있습니다. 이를 소개해 보면,
“숭정후(崇禎後) 재기축(再己丑: 1709년, 숙종35)에 준흥씨(準興氏)가 1권의 초보(草譜)를 만들었고, 그 후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수보(修譜)를 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때에 이르러 만성보(萬姓譜)에서 대보공(大輔公) 이하 44세 계파(系派)의 직호(職號)와 유수공(留守公) 이하는 집안에 지니고 있던 기록, 세계(世系), 제가(諸家)의 기록들을 수집하여 족보를 완성하게 되었다. 이를 취구(就구)와 종노(宗老) 두 종인(宗人)이 구재(鳩財)하여 발간하기에 이르렀다.”
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로 미루어 보면 나주김씨족보 병오보(羅州金氏族譜丙午譜: 1786년)는 1709년의 초보(草譜)와 1769년 안 악파 족보(安岳派族譜)의 뒤를 이어 간행된 것이었던 셈입니다.
• 다만, 현재로서 이 준흥(準興)이 편집했다는 초보(草譜)와 안악 보(安岳譜)는 찾을 길이 없어 매우 아쉬운 점이며 앞으로 반드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 기대합니다.
• 병오보에 이어 임진보(壬辰譜)로 알려지는 나주김씨족보(羅州金氏族譜)가 1832년(순조32)에 후손인 상언(相彦33세)과 그의 족제 의척(義倜) 등에 의하여 2년여의 준비 끝에 중간(重刊) 되었습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임진보에 우리 후손에게 가르침의 준거가 되는 종훈인 ‘家傳忠孝 世守敦睦’이 머리글과 더불어 천명된 것입니다. 임진보 머리글 내용을 원문과 더불어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임진보(1832) 나주김씨족보 머리글>
<원문>
“立譜收族 宗法遺意 有攝人心 俗厚風美 惟我羅州金氏 肇自月塘公 至參判公 訓練公 鷲巖公 龜巖公 道德文章 聯芳趾美 爲世矜式 琦歟諸賢 華慈一譜 八字弁卷 警世裕後焉”
家傳忠孝 世守敦睦
<번역문>
“족보를 만들어 종족을 모으니 종법이 남긴 뜻은 인심을 추스르고 풍속을 후하고 아름답게 하는데 있다. 오직 우리 나주김씨는 월당공(月塘公)을 비롯하여 참판공(參判公), 훈련공(訓練公), 취암공(鷲巖公), 구암공(龜巖公)에 이르기까지 도덕과 문장과 충효와 절의로 나란히 아름다운 명성과 자취를 날려 세상의 본보기가 되었으니 아름답도다. 여러 현인들을 이 한 족보에 모아 가전충효세수돈목(家傳忠孝世守敦睦)이라는 여덟 글자를 책머리에 적어 세상을 경계하고 후손을 넉넉하게 하고자 하노라”
전 6책의 이 족보에는 후손인 진척(進倜33세)과 응순(應順32세), 은진송씨 송치규(宋穉奎)의 중간 서문이 있으며, 이 임진보 발간에는 1. 휘 봉서 청주파(鳳瑞淸州派) 2. 휘 철하 무안파(哲河務安派) 3. 휘 유석 송도파(有碩松都派) 4. 휘 도 태인파 5. 휘 언호 무안파(彦浩務安派) 6. 휘 정현 제천파(廷顯提川派) 7. 휘 귀현 태천파(貴顯泰川派) 8. 휘 처연 영변 정주파(處淵寧邊定州派) 9. 휘 여 수원파(呂水源派) 등이 참여하였습니다.
• 조선시대 마지막의 족보 발간은 1887년(고종24)의 6책의 정해
보(丁亥譜)로 마감됩니다. 정해보는 도유사에 황사공(篁史公) 동현(東賢)을 비롯하여 각파 대표 유사들이 참여하였으며 정해보 발간시에는 나주김씨 행장록(羅州金氏行狀錄)까지 발간하여 선조 유적을 망라하는 족보의 체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 을묘보(乙卯譜) 7권(1915) 발간
도유사에 용순공(用珣公)과 공의(公議)에 순탁(淳鐸), 연구(練九), 교정에 황사공(篁史公) 동현(東炫), 재무에 추강 용무(秋江用茂), 별유사에 종구(鍾九), 권구(權九) 등의 당대 학자들이 참여하여 중간하였습니다.
• 병인보(丙寅譜) 18권(1926년) 발간
승구(34세 昇九)가 주관하여 전국 각 종중 대표유사 등이 참여하 여 중간하였습니다.
• 을미보(乙未譜) 3권(1955년) 발간
해은 우복(35세 海隱禹福)의 주관으로 중간하였습니다.
• 임인보(壬寅譜) 5권 발간
지강성목(37세 芝岡成穆)이 도유사가 되어 전국 각 종중의 대표 등이 참여하여 발간하였습니다.
• 기미보(己未譜) 8권(1979년) 발간
맹탁(孟鐸)의 발의로 기운(基運)이 편찬위원장이 되어 임원진과 각 지역 종친들의 협조로 발간하였습니다.
• 경진보(庚辰譜) (2001년) 발간
기운(基運), 용휘(用輝)가 공동위원장이 되고 성숙(晟淑)이 간사 장이 되어 전국 종친들의 협력으로 발간되었습니다. 특히 모든 자
료를 전산화하고 홈페이지를 구축하여 인터넷을 통해 검색할 수 있게 하였으며 책자와 함께 CD롬을 배포하여 젊은 층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족보는 단순히 조상님들의 행적을 적어 놓고 자랑하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비조나 관조로부터 일관되게 그 씨족 대대로 이어오는 ‘정신과 본질적인 가치’가 고스란히 후세에 계승되는 보이지 않는 정신문화가 담겨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우리 나주김문에게 전해오는 ‘家傳忠孝 世守敦睦’의 정신은 영원히 변치 않은 본질적 핵심적 가치인 것입니다.
(只常 金謹鶴 識)
첫댓글 좋은 자료를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종친께서 족보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