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고백교회 새벽 걸음 【40을 향한 39】
제18일 11월 8일(수)
마음 열기 찬송가 38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말씀 읽기 사무엘하 8장 1~18절
말씀 만나기
언약궤 이전과 가윗 가문에 주신 언약은 다윗과 하느님의 관계를 확실하게 드러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어떻게 평화와 안정으로 나아가게 될까요? 그 내용은 지극히 현실적인 길, 곧 정복 전쟁(1~14절)과 관료제(16~18절)라는 제국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두 단락 사이에 다윗의 통치가 공평하고 의로웠다는 평가가 위치한 점이 인상적입니다(15절). 다윗이 이스라엘을 침략하고 위협하던 모든 세력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포로 3분의 2를 처형하고(2절) 말의 힘줄을 끊어버리는 장면(4절)은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 시대의 일반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시대적 한계를 일반화시키거나 지금의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사실 당시의 이스라엘에게 폭력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성경이 가나안 입성을 타락한 원주민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으로 거듭 규정했던 것은 이스라엘의 당시 상황을 특수 상황으로 인정하려는 의도이지 그 행위 자체를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 새기기
공평과 의를 향한 다윗의 통치가 폭력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오늘 우리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폭력을 통한 평화라는 로마의 방식을 단호히 거절하시며 완전히 다른 길을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냉혹하고 폭력적인 현실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윗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살상력으로 무장한 군대가 위태로운 균형을 유지하고 있고, 무한 경쟁 사회에서의 낙오는 평범한 일상을 일순간에 무너뜨리고 말 것입니다. 이런 현실을 생각하며 우리도 다윗을 따라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성경을 대하는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 시대적 한계를 드러냅니다. 이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성경대로’라는 명목으로 십자군 전쟁을 정당화하고, 원주민 학살을 자행하며, 온갖 차별의 명분으로 삼는 것은 다윗의 길이 아니라 다윗의 폭력을 뒤따르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지는 행위가 아니라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마음 드리기
공평과 의를 이루시는 하느님, 이 냉혹한 현실에서 저희를 돌보시고 지키시는 예수님의 통치를 의지하게 하소서.
주님의 기도
✽이 묵상 자료는 하나님 나라QT(씨앗과 숲)를 기초로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