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사랑의 교회앞을 지나다가 우리가 1995년에 안식년을 보낸 삼익아파트를 찾아보니 아주 좋은 아파트로 리모델링을 했는지 옛날의 낡은 아파트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도 수지가 다녔던 서초 초등학교는 그대로여서 아이의 어린 시절 추억을 조금은 느끼게 해주어 감사했다.
1995년 1월 중순, 세 명이 갔다가 네 명이 된 우리 가족은 추운 한국으로 돌아왔다. 당시 이랜드 그룹에 속한 아시안 미션은 삼익아파트에 네 채의 선교관을 가지고 있었고 감사하게도 우리에게 그 중 한 채를 빌려주셨다. 강남이라고는 하지만 그당시 상당히 낡은 아파트였고, 방도 좁아 나는 그게 후원자들을 불편하게 하는 장소인줄도 잘 몰랐다. 우리의 행색이 초라했는지 모르겠지만 아파트 관리인들과 서초 초등학교 선생님들도 우리 선교사들의 숙소 동호수를 알고 있었고, 우리가 그 곳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때로는 약간 무시한다는 생각까지도 들었는데 후원자들의 입장에서는 또 그게 아니었을 것이다. 소위 말하는 강남이었으니. 가까운 친척들도 우리가 선교사가 되어 호사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우리 부부는 선교지로 돌아가기 위해 둘 다 신학대학원을 다녔고, 수지의 친할머니께서 월요일마다 올라오셔서 수지와 원지를 돌봐주신 덕에 나도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 한국에서의 안식년이 우리 아이들에게 여러 모로 귀한 시간이었는데 내가 공부한다고 매일 돌아다니고 때로는 사역한다고 나다닌 것이 지금 생각해도 시어머님이나 자녀들에게 정말 미안한 일이다. 다른 글에서도 썼지만 내가 원하던 영어석사도 아니고 기독교 교육학이었는데 학위를 중시하는 선교지 특성상 공부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아이들과 지난 이야기를 하다보면 내가 열심있는 선교사였는지는 모르나 좋은 엄마는 아니었다는 것이 느껴져 미안한 맘이 든다.
그래도 서초동 삼익아파트는 내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곳에서 새로 GMP선교부에 가입하고, 공부도 하고, 한국을 고국으로 마음에 담아올 수 있었기 때문에. 주말마다 갈 수 있었던 주변 도서관들과 경치 좋은 산들...언젠가 다시 한번 그런 안식년을 가질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