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7장은 예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셨다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1~8절을 보겠습니다.
1 그리고 엿새 뒤에,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으로 가셨다.
2 그런데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의 모습이 변하였다. 그의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희게 되었다.
3 그리고 마침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에게 나타나더니, 예수와 더불어 말을 나누었다.
4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내가 여기에다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에는 주님을, 하나에는 모세를, 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겠습니다."
5 베드로가 아직도 말을 채 끝내지 않았는데, 갑자기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뒤덮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6 제자들은 이 말을 듣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몹시 두려워하였다.
7 예수께서 가까이 오셔서, 그들에게 손을 대시고서 "일어나거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8 그들이 눈을 들어 보니, 예수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 설화에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이렇게 세 명의 제자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복음서에는 이 세 명의 제자들이 참여하는 사건이 더러 기록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열두 제자가 동시에 참여하는 사건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현대 신학자들 중에는 열두 제자가 정말로 있었는지 의심된다면서 상징적인 숫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쨌든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그 모습이 변했는데,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희었으며,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었다고 본문은 말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공포에 질렸던 제자들이 눈을 들어 보니 모세와 엘리야는 보이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 계셨다는 기록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 본문의 내용이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보수적인 학자들과 목사들은 이 본문을 ‘변화산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현대 신학자들은 이 본문을 ‘변화산 설화’라고 말합니다. 실제 사건이 아니라 전승된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당시 근동지역에 살던 사람들의 세계관에서 신적인 존재들은 언제든지 인간세상에 나타날 수 있었습니다. 변화산 설화의 중심 메시지는, 그리스 로마의 신들이 가끔 인간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듯이, 율법을 대표하는 모세와 예언자를 대표하는 엘리야가 예수님을 만나러 인간세상에 나타났는데, 나중에는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든지 다른 어느 곳으로 갔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냥 예수 외에는 보이지 않았다고만 말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등장하는 이유와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들은 왜 인간세상에 내려온 것일까요? 예수님을 알현하는 것 외에는 그들이 해야 할 일이 아무 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답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들이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의 시대는 끝났다는 것입니다. 영화로 비유하자면, 이 설화는 모세와 엘리야를 철저히 조연이나 엑스트라로 만들고 있습니다. 설화의 주인공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보다 위대한 분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과, 율법과 예언의 성취자로 오셨다는 것을 알리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설화의 중심 메시지인 것입니다.
이렇게 성서를 읽을 때는 기록자의 의도를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죽었던 모세와 엘리야가 정말로 나타났다고, 예수님의 얼굴이 정말로 해처럼 빛나게 되었고, 입으신 옷이 빛처럼 눈부셨다고, 그렇게 기록되었으니 그렇게 믿어야 한다고 이천년 전의 설화를 역사적 사실로 믿으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복음서 기자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의 본질을 놓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본문은 예수께서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시는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한 사람이 예수께 다가와서 무릎을 꿇고 했다는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15~16절입니다.
15 "주님, 내 아들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간질병으로 몹시 고통받고 있습니다. 자주 불 속에 뛰어들기도 하고, 물 속에 빠지기도 합니다.
16 그래서 아이를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데려왔으나, 그들은 고치지 못했습니다."
이어지는 본문에는, 예수께서 아이를 데려오게 한 후에 귀신을 꾸짖자 귀신이 나가고, 아이는 그 순간에 나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왜 우리는 귀신을 내쫓지 못했습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0절입니다.
20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의 믿음이 적기 때문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면 그대로 될 것이요, 너희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믿음이 기적을 만들어내는 일은 현실세계에서도 종종 일어납니다. 불굴의 의지로 보통 사람이 결코 해낼 수 없는 일을 이루어내는 특별한 사람들을 가끔 현실세계에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은 그런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마태공동체 사람들은 서기 80년대를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귀신처럼 달라붙어 하나님의 백성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로마제국과 그 군대 앞에서, 자신들은 마치 본문이 말하는 귀신 들린 아이처럼 무기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이 보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 본문은 그 믿음으로 모든 난관을 해쳐나갈 수 있다는 결의를 이 복음서를 읽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전하는 희망과 결단의 메시지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이 이겼습니다. 이후 기독교는 로마제국으로부터 말할 수 없는 온갖 박해를 받았지만 결국 로마제국을 정복했습니다. 서기 392년에 로마제국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주민은 오직 기독교만 믿어야 한다는 기독교 국교령이 선포되었으니까요.
이어지는 본문에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죽을 것과 부활할 것을 다시 예언하는 말씀이 이어지고, 마지막 부분에는 세금문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24~27절을 보겠습니다.
24 그들이 가버나움에 이르렀을 때에, 성전세를 거두어들이는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서 "당신네 선생님은 성전세를 바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25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바칩니다" 하였다. 베드로가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말씀을 꺼내셨다.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냐? 세상 임금들이 관세나 주민세를 누구한테서 받아들이느냐? 자기 자녀한테서냐, 아니면 남들한테서냐?"
26 베드로가 "남들한테서입니다" 하고 대답하니, 예수께서 다시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자녀들은 면제받는다.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해야 하니, 네가 바다로 가서 낚시를 던져, 맨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그 입을 벌려 보아라. 그러면 은돈 한 닢이 그 속에 있을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내어라."
이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유대에서 20세 이상된 성인 남자는 누구나 주민세를 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왕의 가족들에게까지 세금을 받지는 않습니다. 요즘에야 대통령이나 그 가족들도 똑같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 세금을 내지만, 옛날에 왕은 세금을 거둬들이는 주체이지 납세자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세상 임금들이 자기 자녀가 아니라 남들한테 세금을 받는다는 이 이야기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세상 임금에게 종속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공동체 사람들이 로마제국의 영토 안에서 살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자신들은 로마제국이나 유다왕국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음을 나타내는 본문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