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모처럼 여고생인 딸과 수다를 떨다가 내 어린 시절 얘기를 하게 되었다. 무려 30년, 길게는 40년 전의 어린 시절 얘기이건만 아직도 그때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서 애써 코믹하게 각색해서 들려주게 된다. 그래도 얘기를 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자꾸 눈물이 고여, 딸이 재미있다고 몸을 젖히고 웃을 때마다 슬쩍슬쩍 훔쳐냈다. 아무것도 모르는 딸은 여전히 깔깔 웃으며 말했다. "엄마 얘기 진짜 슬픈데 웃기다. 아, 재미있어."
<수상한 내 인생>을 읽은 소감이 그랬다. 진짜 슬픈데 웃기다. 아, 재미있어.
여덟 살 꼬마인 장이 시종 담담하게 자기 얘기를 하는데 사실은 그 내용, 몹시 슬프다. 엄마는 안 계시고 무뚝뚝한 아빠는 엄하고, 그나마 바빠서 자주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친구들에게 그리 인기 있는 아이도 아니어서 친구도 별로 없다. 장은 언제나 멀리 여행을 떠났다고 하는 엄마가 그립지만, 엄마 얘기는 집에서 금지어여서 꺼낼 수 없다. 그러나 할머니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은 "아유, 딱하지" 하며 안쓰럽게 바라본다. 이미 독자들은 장의 어머니가 어디로 여행을 가셨는지 충분히 추측가능하다. 짠해서 코끝이 찡해지며 눈물이 핑 돌려고 하다가도, 그림을 들여다보는 순간 빵 터진다. 이를테면 새 학기 첫날, <무아노 선생님은 칠판에 이름을 썼다. 음, 솔직히 말해서 이름을 썼다는 건 그냥 내 짐작일 뿐이다. 난 아직 글을 읽을 줄 모른다.>라는 지문 아래 칠판 그림에는 이름이 아니라 날짜가 적혀 있다. 귀여운 장은 심지어 까막눈이었던 것. 머리에 꽃핀을 꽂고 있는 엄마의 사진을 본 뒤로 장은 엄마의 기억을 떠올리려 애쓰는데, 그림은 꽃핀 꽂고 있는 채로 마트에서 카터를 끄는 엄마, 테니스를 하는 엄마. 시종 지문을 읽으며 짠하다가 그림 보며 웃다가의 반복이었다.
책을 읽었다고 해야 할지, 만화를 보았다고 해야 할지, 영화를 감상했다고 해야 할지……,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기고 나니 밀려드는 감동에 뭐라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아,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은 주위 내가 사랑하는 몇몇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들에게도 이 난로처럼 따뜻한 책을 선물하고 싶어서. 올해 읽은 어떤 유명 작가의 책보다 좋았다. 최고다.
권남희(일본문학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