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긴 '삼식이'를 찾아서
'선배, 번개점심 가능합니까?'
이슬비가 오는 듯 마는 듯한 오전 10시30분쯤. 아는 선배에게 문자를 보냈다. 바로 답이 왔다. '권 후배라면 무조건 가능'
사무실에서 차를 몰고 그 선배가 근무하는 광주시교육청 앞으로 갔다. 즉시 그 선배를 포함해 셋이 차에 올랐다.
"자, 가시지요. 삼식이 만나러 갑니다~"
호남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 광주 양동시장 사거리로 향했다. 기억도 선명하게 고등학교 1학년 때 350원에 두 프로를 상영했던 아시아극장도 부근에 있다. '롤러 부기'와 '지그프리드' '로미오와 줄리엣' '왕자와 거지' 등을 보았던 곳.
'롤러 부기'를 보고서 '롤러 스케이트'를 그렇게 타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끝내 한 번도 타지 못하고 고등학교를 마쳤다. 이 극장만 지나면 그 아쉬움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극장은 지금 옷을 파는 곳으로 바뀌었다.
그 옛날 아시아 극장에서 보면 양동시장 쪽으로 대각선 모서리에 '전어랑 숭어랑' 식당이 있다. 그러나 이날의 목표는 전어와 숭어가 아니었다. '삼식이'었다. 사람 ‘삼식이’가 아니라 물고기 ‘삼식이’였다.
"우선, 간재미 무침 주세요. 삼식이는 그 다음에,
소주 한 병, 맥주 두병도요."
역시 무침은 '초맛'. 매콤하되 시면서도, 달착지근한 게 초맛이다. 뼈를 통째로 먹는 찜도 맛있고, 초무침도 맛있는 것이 간재미다. 가오리처럼 생겼지만, 아주 작다. 어른 손 바닥을 펴서 맞댄 크기 정도.

▶간재미에다 미나리, 그리고 초와 고추장을 버무려 낸 간재미 무침. 입맛을 순간에 돌게 하는 서양식 전채 개념의 요리로 즐기면 그만이다. 무침을 들고 있는 이는 광주시교육청 한홍규 사무관. 뒤에서 주인 아주머니가 웃고 있다. 사진=권경안
“예전, 티비에서 '삼순이' 안했는가. 그 때 삼순이가 이름 때문에 속상해서 울다 택시를 탔다네. 택시 운전사가 왜 우냐고 했지. 삼순이가 ‘이름 때문에 속상해서'라고 했지. 그랬더니 운전사가 '뭐, 이름이 어때서. 삼순이만 아니면 되지!’라고 했다네.”
동행한 한 분이 친절하게 설명까지 했다.
“삼순이, 삼식이 딱 제짝들 아니겠어요!”
삼식이 짝은 삼순이. 예전 사람들은 갑돌이와 갑순이를 찾았다. 요즘은 삼식이와 삼순이를 더 많이 들먹인다.
동행자중 ‘삼식이’를 아는 이는 최근에 안 저를 빼고, 또 다른 한 사람. 그러니까 넷중 둘은 알고, 둘은 모르고 있었다.
“여기 있는 삼식이들은 격포앞바다에서 잡아온 것들이요. 아는 어부를 통해서 가져와요. 놀래미를 잡으려다가 이 삼식이들을 건져 올린다고 그래요.”
그런데 잡히는 숫자가 아주 적다고 했다. 그래서 삼식이가 귀하다고 했다. 흔히 하는 말로 가장 흔하디 흔하고, 어디서나 봄직한 좀 덜 떨어진 애들이 삼식이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물고기 삼식이기 귀하다고 했다. 4월까지는 여수앞바다에서도 잡히는데, 지금은 잡히는 철이 아니라고 했다. 서남해안중 전북 격포쪽에서 잡힌다고 했다. 그렇다면 ‘삼식이’가 ‘삼식이’가 아니지 않는가!
![SPA52185[2].JPG](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blog.chosun.com%2Fweb_file%2Fblog%2F406%2F906%2F1%2FSPA52185%255B2%255D.JPG)
▶못생긴 물고기로 꼽히는 '삼식이'. 잡히면 버렸다는 이 고기가 탕을 끓이면 별미를 안겨준다. 사진=권경안
주인장 김영정(53)씨가 삼식이들은 내놓은 것은 2004년 무렵.
“한번 내놓았다가 못생겼는데도, 맛있다고들 해서 계속 내놓고 있어요.”
수족관에 가 보았더니, 못생기기는 정말 못생겼다. 꼭 아귀(물텀벙)를 보는 듯 했다. 머리가 크고, 몸통은 배가 불룩했다. 몸통 아래쪽은 급격하게 짧아져 ‘짜리 몽탕’이었다. 머리 위에는 돌기들이 많았다. 턱과 머리, 뺨, 몸에 ‘가시가 뻗혀 있는 채 끝이 갈라진 나뭇잎 모양’의 살들이 붙어있었다. 그러니 못생겼다 할만했다.
못생긴데다가 바보같은 지는 몰라도, 전라도에선 그래서 이 물고기를 ‘삼식이’라고 부른다. 정식 학명으로는 삼세기라고 한다. 쏨뱅이목 삼세기과의 삼세기이다. 그것은 수베기(포항), 꺽지(강화), 삼수기 삼숙이 삼세기(강원), 꺽쟁이(서산, 태안), 탱수(경남)라고 지방마다 약간씩 달리 부르고 있다.
못생겨서 먹지 않았던 것들이 과거에 많았다. 아귀가 그랬고, 전어가 그랬다. 쥐치가 또 그랬다. 삼식이도 맛에 상응하고 희소성에 걸맞는 대접을 받아야 할 때가 되었지 않나 싶다.
간재미 무침을 다 먹을 만 하니, 삼식이를 넣은 탕이 끓었다. 미나리와 무가 고추장과 마늘 양념과 함께 김을 내고 있었다.
![SPA52219[2].JPG](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blog.chosun.com%2Fweb_file%2Fblog%2F406%2F906%2F1%2FSPA52219%255B2%255D.JPG)
▶이젠 고인이 된 코메디언 이주일씨가 즐겨 말하던 '못생겨도 맛은 좋아' 격이다. 푹 끓여낸 삼식이 매운탕은 술맛을 '땡기게' 하는 최음제(催飮劑)이다. 오른쪽은 광주시교육청 김선균 사무관. 사진=권경안
“쏘가리탕 먹을 때 나는 달착지근하고 시원한 맛이죠!”
이렇게 말했더니, 옆에서 “그렇네”라고 했다. 섬진강 상류에서 자랐던 지라 민물고기와는 좀 친했다고 해야 하나. 쏘가리나 자가사리, 피리, 은어가 그랬다.
여름철이면 지리산 노고단 자락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작은 냇가나 마을앞 섬진강에서 놀면서 물고기를 잡았었다. 아버지를 따라 섬진강을 오르내리면서 은어를 잡기도 했었다. 강 양쪽에서 긴 발을 잡고 고기를 위로 몰면 투망을 던져 잡는 식이었다.
“어, 시원하네!”
이슬비가 오는 듯 하던 날씨에 뜨거운 국물을 계속 떴다. 옆에서 ‘못생긴’ 몸통을 제 그릇에다 떠주는 바람에 어두(魚頭)를 ‘쪽쪽’ 빨아가며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해치웠다. 냄비는 바닥을 보았다. 속풀이국(탕)으로는 그만이었다.
![SPA52222[1].JPG](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blog.chosun.com%2Fweb_file%2Fblog%2F406%2F906%2F1%2FSPA52222%255B1%255D.JPG)
▶뜨거운 탕 기운이 올라오고 있다. 달착지근한 내음이 코로도, 혀로도 감식된다. 국자로 떠주는 서비스를 계속하는 이는 광주시교육청 이광호씨. 사진=권경안
“삼식이는 강원도에서 많이 먹나봐요.”
일행중 한 사람이 말했다.
남도에선 갖가지 음식을 자랑해마지 않는다. 해산물도 그렇다. 그중 장난 삼아 부르는 ‘삼식이’가 남도음식목록에 이름을 올리며, 귀한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 이 식당에 오기전, 며칠전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삼식이를 아시나요'하고. 그랬더니 거개가 몰랐다. 투망이라면 실력자로 꼽히는 사람이 그것을 알았다. 소수가 아는 정도라고 할까. 주인장께 물었더니, 광주에서도 '삼식이' 매운탕을 끓이는 식당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건 양식하지 않아요. 무조건 자연산이요. 다른 고기 잡다가 올라오면 모아서 이곳에 보내오니 그렇지 않겠어요.”
주인장 김영정씨의 말대로 삼식이는 자연산일 수 밖에 없다. 한번 즐겨 보시라, 권하고 싶다.
신경림 시인의 시 가운데 '파장(罷場)'이 있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켜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빚 얘기
약장수 기타소리에 발장단을 치다 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어디를 들어가 섰다라도 벌일까
주머니를 털어 색싯집에라도 갈까
학교 마당에들 모여 소주에 오징어를 찢다
어느새 긴 여름해도 저물어
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들고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
물고기 ‘삼식이’ 얘기하다, ‘못난 놈’이라는 것이 자꾸 연상되어 이 시를 옮겨오게 되었다.
우리네 인생이 ‘삼식이’가 아닌 것처럼 살지만, 결국 ‘삼식이’가 아닌지 모르겠다. ‘잘났다’고 또는 ‘잘 나기 위해서’ 살지만, 결국 ‘못난 놈들’이 아닌가 하고. ‘삼식이’를 밥 삼아 점심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삼식이가 누굴까’라고 자문해보았다.
![SPA52234[3].JPG](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blog.chosun.com%2Fweb_file%2Fblog%2F406%2F906%2F1%2FSPA52234%255B3%255D.JPG)
▶광주양동시장 사거리 맞은편 코너에 있는 '전어랑 숭어랑' 식당. 보통사람들 '김씨, 이씨, 박씨들'(張三李四)이 와서 싼 값에 맛있게 횟감을 안주로 밥먹고 술먹고 하는 곳이다.
![SPA52198[2].JPG](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blog.chosun.com%2Fweb_file%2Fblog%2F406%2F906%2F1%2FSPA52198%255B2%255D.JPG)
▶주인장 김영정씨가 수족관에서 '삼식이'를 꺼내서 보여주었다.
![SPA52186[2].JPG](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blog.chosun.com%2Fweb_file%2Fblog%2F406%2F906%2F1%2FSPA52186%255B2%255D.JPG)
▶수족관에서 놀고 있는 고만고만한 '삼식이들'. 수심이 10~100미터 가량 되는 모래나 개펄 바닥에서 자란다. 몸집이 작은 물고기나 새우를 주로 잡아 먹는다. 늦 가을에서 겨울 사이 알을 낳는다. 알 낳기를 전후한 때가 가장 맛있다고 한다.
첫댓글 친구들, 모두 활기찬 하루!!!
고눔 참 억울하게 생겼네이~ㅎ이름은 완죤 친근함 100%인데..ㅎㅎ~언젠가 먹어보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냥 이름같은거 신경안쓰고 묵는데만 급급해서..기회됨 삼식이매운탕이요~라고 주문하고 제대로 맛을 느껴볼께~
속이 션~하게 속풀이로 아주 그만이것구마~ㅎㅎ
우리들 추억샘터 섬진강..곱디 고운 새색시 닮은 은어랑..알고보니 모래무지가 표준어인 모자랑..잡아보면 알록달록 무지개빛이 났던건데 (이름모름ㅡ.ㅡ;;)고거랑...기억으론 은어회도 맛있었지만 요것들을 고추장양념을 맵고 약간 달짝지근하게 해서 짜글짜글 짖어묵었던 기억이...으잉~침 넘어간다~ㅎㅎ
얼른 보기엔 꼭 아귀 닮았넹.....



맛있는 것만 찾아서

기니....

뱃살 조심하시게나...

맛깔스런 얘기에 잘 쉬었다 가네...
한가지 걱정스런 점이 있구만...혼자서 넘
뱃살의 양식만 너무 찾았나? 이젠 마음의 양식을 담은 글을 올려볼까나...